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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대대적 파업, 노동조합 그리고 분업
  • 조회 수: 2100, 2015-03-27 14:32:36(2015-03-27)
  • 민주노총이 '총파업' 투쟁 일정을 올렸습니다. 안타갑게도 96, 97 노개투 총파업 이후 위로부터이든 아래로부터이든 실질적인 총파업 투쟁이 이루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올해는 정세적으로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기이기에 민주노총 지도부에서는 선제적으로 위로부터의 총파업 투쟁을 기획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기대도 있지만 많은 우려가 있습니다. 지나친 총파업 '환상'에 대한 우려, 양적 '동력'에 대한 우려, 총파업 '내용'에 대한 우려, 무엇보다 총파업 투쟁 이후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합니다. 선제파업의 핵심동력인 조직노동자들의 반응도 여의치 않은데, 이후 총파업의 주체가 되어야 할 비정규 - 미조직 노동자들의 '행동분출' 출구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아래 글은 한국에는 '대중파업'으로 알려져 있는, 총파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대적 파업'에 대한 글입니다.


    과거의 대대적 파업들과 비교해본다면 현재의 총파업은 작고 초라하고 암담해 보일뿐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대대적 파업이 하나의 과정으로서 수년에 걸쳐 준비된다는 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파업은 어느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자체의 역사와 그 이전의 역사를 갖는 여러 해에 걸친 성장을 거친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 역사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총파업 투쟁을 앞두고 아래 글을 작성한 토론모임과 같은 노동자 토론이 어느곳에서든 활발하게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코뮤니스트 노동자 총파업 투쟁에 대한 입장과 전망은 토론을 거쳐 조만간 제출할 예정입니다.

     

     


     

     

    오늘의 대대적 파업, 노동조합 그리고 분업
    (Massenstreik, Gewerkschaften und Arbeitsteilung heute)

     

     

    *토론모임 라인란트(de.geocities.com/zirkelrunde)는 국제공산주의흐름(ICC)이 구성원의 일부로서 참여하고 개입하지만 그것과는 독립적임을 밝힌다.

     

    *2007년 여름 라인란트 토론모임에서 대대적 파업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이 토론의 기본자료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1906년에 쓴 [대대적 파업, 당 그리고 노동조합Massenstreik, Partei und Gewerkschaften]이었다. 그후 토론잡지 [아우프헤벤Aufheben]의 편집진으로부터 대대적 파업에 관한 글을 청탁받고 우리는 여러가지 이유로 매우 기뻤다. 먼저, 우리는 이 잡지가 독일어권에서, 여러가지 견해들이 표현될 수 있는, 정치적으로 의식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개방적이고 풍부한 의견교환의 장이라는 것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대대적파업의 문제가 대단히 현재성을 띤다고 여기며 이에 대해 가능한 폭넓고 열린 논쟁을 희망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모임 홈페이지를 위해 우리 모임에서 이뤄진 토론에 대한 요약문을 작성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모임의 한 구성원에게 우리들의 토론을 기초로 아우프헤벤을 위한 글을 작성하도록 위임하기로 결정했다.

     

     

     

    1905년, 사회적 지진

     

    로자 룩셈부르크가 1906년 그녀의 팜플렛을 쓸 당시, 그녀에게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나라에서 막 일어났던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 그 규모에 있어서 엄청난 어떤 것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특히 1905년 러시아에서 홍수를 이룬 대대적파업들의 물결 전체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 물결은 계급투쟁의 전대미문의 폭발이었고,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대해 그때까지 상상할 수 있던 모든 것을 깨고 나온 것이었다. 서로 다른 직업군들 사이의 구별이 무너졌다. 정치투쟁과 경제투쟁 사이의 구별이 무너졌다. 즉각적인 요구들과 혁명투쟁사이의 구분도 낡은 것이었다. 갑자기, 전자본주의적 약탈을 제거하는 것은 더 이상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과 나란히 해결할 수 있는 과제의 하나로서가 아니라 사회주의혁명의 자체의 과제로 보였다. 결국 1905년의 투쟁들은 완전히 새로운 조직원칙을 낳았다. 투쟁을 조직하고 대중을 동원하는 것은 더 이상 노동조합의 임무도 그리고 노동자정당의 임무도 아니었다. 오히려 노동자대중들이 이 임무를 스스로 넘겨받았다. 소비에트가 , 독일어로는 노동자평의회가 탄생했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오직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일일 수 밖에 없다는 맑스의 표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분명해졌다. 그것은 짜르제국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질서를 뒤흔든 역사적인 지진이었다. 또한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주의혁명을 현재의 사안으로 세움으로써 그리고 수십년간 통용되던 전제들의 기반을 허물어 버림으로써 맑스주의 노동자운동을 뒤흔들었다.

     

     

    대대적 파업 - 지금 더이상 논할 필요도 없는가?

     

    우리가 현재 로자 룩셈부르크의 팜플렛을 토론할 때, 당연히 우리에게는 역사에 대해 그리고 역사로부터 어떤 것을 배우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나 백년 전 로자에게, 트로츠키에게 또는 레닌이게 있어서 만큼 우리들에게도 오늘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대적 파업의 문제가 우리의 현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언뜻 보기엔 참으로 별 상관이 없는 듯하다. 1905년의 그것과 같은 지진은 아무리 둘러봐도 눈에 띄지 않는다. 임노동자들은 전체 전선에서 지독한 방어전에 내몰려져 있다. 인원감축, 대량해고, 폐업 그리고 생산의 이전 등이 피해자들이 그에 대항해 많이 손써 볼 수도 없이 결정되고 시행된다. 실업자들은 체계적으로 압박당한다. 그들은 절대적인 빈곤에 뿐만 아니라 개별화에 내몰려서, 자신이 국가의 공격에 대해 의지할 데 없이 내던져진 것처럼 대부분 느낀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를 방어하기 위해 변질된, 한 때의 노동자조직이었던 노동조합은 1905년에 처음으로 러시아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대중들에 의한 자체조직화에 의해 범람되었다. 그들은 도처에서 상황의 주인이 아닌가? 지금 우리는, 어떻게 DGB와 같은 거대한 노동조합중앙협회들을 조합원들이 무더기로 떠나버리는지를 경험하고 있긴 하다. 그들이 실업자가 되어서 결국 노동조합귀속성의 의미를 더 이상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든 또는 그들이 이러한 노동조합들에 대해 실제로 어떤 신뢰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든. 그러나 우리는, 그 대신에 의사들, 항공기조종사들 또는 기차기관사들의 경우와 같이 공공연한 탈연대와 제각각의 투쟁을 선동하는 작은 부문노동조합들이 어떻게 세를 확대해 가는지를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철도노동자들의 파업과 같이) 사실상 국민경제에 해를 끼칠 수 있을 파업을 국가는 당장에 그냥 법원의 판결로 금지할 수 있지 않은가?

     

     

    미래의 대대적 파업이 현재에 준비되는가?

     

    지난 몇년간의 작은 충돌들 - 독일에서의 메르세데스, 오펠, AEG, 텔레콤의 경우 또는 뉴욕과 런던 지하철의 경우-을 1905년 러시아에서의 거대하고 영웅적인 파업들과 비교한다면, 현재는 사실 참 암담해 보인다. 그러나 이미 여기에서도 로자 룩셈부르크의 팜플렛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현재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법일 것이다. 오늘의 세계를 1905년의 대대적 파업의 절정점과 비교한다면, 대대적 파업은 하나의 과정으로서 수년에 걸쳐 준비된다는 점을 간과하게 될 수 있다. 로자에 따르면 대대적 파업은 소위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는 그런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자체의 역사와 그 이전의 역사를 갖는 여러 해에 걸친 성장을 거친다. 대대적 파업의 시작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것들은 종종 나중에 가서야 그런 것으로 인식된다. 러시아에서 그것은 1896에서 1906까지 10년에 걸친 한 시기였다. 그것은 성페터스부르크에서 „순전히 경제적인 부분적 임금투쟁"으로서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4만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한 총파업이되었다. „지금은 이 사건이, 혁명의 엄청난 대대적 파업들에 비해서 사소해 보일지 모른다. 그 당시 러시아의 얼음같이 경직된 정치적 분위기에서 총파업이란 전례없는 어떤 것이었고, 그것 자체가 일종의 축소판의 온전한 혁명 이었다 (룩셈부르크저작집(독어판), 제 2권, 104쪽, 풀무162,163쪽 참조 :이것과 이후 모든 인용문은 역자가 직접 번역했고 쪽수는독어판, 로자 룩셈부르크저작집(Rosa Luxemberg Gesammelte Werke)의 쪽수임, 참조할 풀무질번역판의 쪽수는 풀무표시가 첨가됨-역주 )" 아마 우리는 언젠가는, 회고하면서 2004년 보쿰의 오펠에서의 6일동안 지속된 자생적 공장점거파업의 예가 일종의 „축소판의 혁명"이었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공산주의의 종말을 공개적으로 승인하는 겉모습이 그리고 계급투쟁이 추월당한 것 같던 겉모습이 삐걱거리기 시작했을때, 그 파업이1989년이래 시기의 „얼음같이 경직된 정치적 분위기" 의 종결의 시작을 알렸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종류의 작은 충돌들에 대해 로자 룩셈부르크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것의 발단은 사소한 의미를 지닌다. 그 발생은 초보적이다. 그것들은 단지 겉으로 보기에 순전히 경제적이다. 그것들이 대부분 겪게되는 패배는 지속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왜 이러한 작은 전투들으로부터 막강하고 전반적인 운동이 되는가? 왜냐하면 그것은, 계급 전체에 쌓이는 어떤 것의 표면을 때리는 가시적이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부르조아계급이 자본을 축적하는 동안, 노동자계급은 궁핍과 비참을, 피폐와 수모를, 소외와 비인간화를, 증오와 분노를 축적한다. 노동자들은 대대적파업에 돌입하면 그제야, 로자가 썼듯이,그들의 고통이 얼마나 참을 수 없어졌는가를 포괄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의식적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고통 그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자본주의로 인한 고통이자 임금노동체제로 인한 고통 이다. 고통 그 자체보다는 그 고통에 대한 인식이, 그 원인의 인식이 노동자투쟁을 더 높은 단계로 이끄는 것이다. 대대적 투쟁의 세기에는, 임금노예제를 본래 특징짓는 모든 것들이 피부로 느껴지게 될 것이고 쟁점화될 것이다. 정체되거나 삭감되는 임금, 노동시간의 연장이나 강화 또는 두가지 모두, 직장지도부의 교만한 태도와 상사의 잔인성, 문화결핍 또는 그러한 문화에의 노동자들의 접근차단, 직장밖의 주거- 및 생활조건, 국가의 억압과 사법체계의 소란스런 불공평, 부르조아민주주의의 부패와 와해, 특히 임노동의 전반적이고 증대되는 불안정성 - 이 모든 것과 더 많은 것들이 쌓여간다. 이 모든 것들이 점점 더 피부에 와닿게 되고 의식된다. 불만이 분노로 바뀌는 시점까지, 어떤 것을 일으키기에 한점 불꽃이면 충분할 시점까지, 계급의 일부분에 대한 -개별적인 노동자 한 명에 대한 -어떤 공격이라도 계급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질 그 시점까지. 이렇게 집단적으로 저장된 경험은 노동자대중이 때때로 몽유병자같은 확신으로-행동하게 만든다 - 이것이 의식의 일부인 직관이다. 결국, 그러한 운동은 자본주의의 가장 깊은 내부의 경향 안에 강하게 뿌리박음으로써 그 자체의 힘을 얻는다.1905년의 사건은 준비된 것이었고, 그것을 위한 준비투쟁들은 무역- 및 산업위기에 의해, 실업에 의해 그리고 제국주의 전쟁에 의해 초래되었다.

     

     

    현재의 잠재력의 인식

     

    룩셈부르크의 팜플렛이 대대적 파업의 문제를 100여년전에 고찰했듯이, 그렇게 우리가 현재 그것을 고찰하자면, 우리는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와 현재가 얼마나 유사한지를 확인하게 될 뿐만이 아니다. 심지어는 오늘 쌓이고 있는 사회적인 시한폭탄은 1905년에 축적되었던 그것을 훨씬 능가한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위기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깊고, 실업의 위험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확산되어 있다. „사회적 국가"가 허물어지는 시기인 지금, 실업은 점점 더 그것 본래의 공포를 되찾고 있다. 또한 제국주의전쟁- 당시는 극동에서의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충돌, 지금은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충돌-은 체제의 본질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게 만든다. 게다가 오늘의 전쟁은 현존하는 무기체계와 테러리즘으로 볼 때 점점 더 직접적으로 민간인들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다. 또한 오늘은 자본주의에 의해 유발된 재앙과 같은 환경문제로 인한 멸망위협 등과 같은 새로운 위협들이 의식된다. 이미 그 당시에도 특수하게 러시아 적이 아니라 국제적이었던 이러한 과정이 오늘은 훨씬 더 분명하게 하나의 전세계적인 전개라는 점이 또한 부가된다.

     

    독일의 예는 이러한 전개를 잘 보여준다. 한 때 전후독일은 자본주의 복지수준의 그리고 사회적 평화의 성채었다. 이제 한 때의 모범국가였던 이 나라를 노동자투쟁이 엄습하고 있다. 이 투쟁은 아직은 점점이 고립되고 또 노동조합에 의해 통제당한 채 머물러 있긴 하지만 계급의 더욱 더 많은 부분들을 포괄하면서 자본주의의 비참함의 점점 더 많은 측면들을 쟁점화하고 있다. 역시 여기에서도 우리는 100년전의 러시아와 유사점들을 보게 된다. 그 당시 상업종업원들이, 은행의, 사무실의 그리고 관청의 직원들이, 음식점계의 종사자들이 그리고 부유층의 집안고용인들이 심지어는 경찰의 최하층이 투쟁속에서 어떤 역할을 행했는지를 보는 것은 놀랍다. 현재는 병원근무의사들이나 기관사들의 파업을 통해서야 , 지금까지 특권을 가진 것으로 통해왔던 이런 직업들이 얼마나 한심한 급료를 받고 있는지가 일반인들에게 알려진다. 이 직업군에 속하는 이들도 자신들이 „노동하는 빈곤층(working poor)"에 속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스스로도 놀란다.

     

    2007년 여름 독일에서는 , 실업자와 연금생활자들이 증가된 세금부담과 식료품물가상승 그리고 생활비삭감으로 인해 일년전에 비해 15% 적게 받은 점이 심지어는 공식적인 통계 속에서도 인정될 수 밖에 없었다. 그 대신에 작센주의 주립은행은 즉각 170억유로를 지원받았는데, 이는 그 은행이 미국의 부동산시장에 잘못 투자했기 때문이었다. 철도노동자의 파업은 , 파업이 즉각적인 행동이긴 하지만 (판결근거에 따르면) 국민경제에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이유로.법원판결을 통해 금지되었다. 실업율감소와 경제호황에 대한 모든 승리의 함성에도 불구하고 해고의 물결은 계속되고 있고, 노동자들에 대한 협박들(경영합의라 불리는)은 증가한다. 또한 경제전문가들은 피닉스-TV의 심야 토론프로그램에서, 앞으로 몇년간 실질임금이 부가적으로 30% 더 떨어지게 될 것이란 점을 어떻게하면 노동자들에게 무리없이 전달할 지를 놓고 씨름한다.

     

    게다가 68년세대인 부모보다는 패배를 덜 당한 새로운 세대가 사회적 투쟁의 장면에 등장하고 있다. 이 대세는 1년전 프랑스에서 정부의 고용불안정화법에 대항한 학교와 대학교에서의 대대적 투쟁들에서 볼 수 있었다. 또한 로스톡과 하일리겐담에서도 이 체제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고 대안을 찾는 정치적으로 의식화된 젊은 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로자 룩셈부르크의 눈으로 주시하자면, 우리가 다시 대대적 파업의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가정을 세울 수 밖에 없다. 대대적 파업으로의 성숙시기는 아마도 부르조아계급의 노련함과, 민주주의와 노동조합이라는 국가의 통제기계의 효과성 그리고 대대적인 실업의 섬뜩한 영향때문에 훨씬 더 오래 걸릴 지 모르지만 전개의 방향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노동조합의 역할

     

    참으로 노동조합은 오늘날 계급투쟁의 전개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제어요소이다. 1905년 러시아에서 그것은 달랐다. 그 당시는 대대적 파업이 노동조합의 전반적인 창립을 위한 최초의 동력을 창조해냈다. 그러나 이 노동조합들은 처음부터, 본래 투쟁의 조직자들, 즉 노동자평의회들의 그늘 안에 있었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1905년은, 계급이 단지 공동으로, 투쟁의 확대를 통해서만 어떤 것을 획득할 수 있는 그러한 새로운 시기에로의 진입을 알렸다. 노동조합적인 투쟁방법은 그래서 역사적으로 낡은 것이 되었다. „혁명적 시기의 뇌우의 기운 속에서만 노동과 자본 사이의 소위 어떤 부분적이고 작은 충돌도 하나의 전면적인 폭발로 자라날 수 있다. 독일에는 매년 그리고 매일 노동자들과 기업가들 사이에 치열하고 잔인한 충돌들이 발생하지만 그 투쟁은 관련된 개별 분야나 개별 도시, 공장의 장벽을 뛰어넘어 솟아오르지 않는다 " (129쪽, 풀무195쪽)

     

    독일에서 대대적 파업의 전개는 그 당시에도 이미 러시아에서보다 휠씬 어려웠는데, 그곳에는 막강하고 종종 사회민주주의적이기도한 노동조합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곳의 상황은 그래서 모든 오랜된 산업국가들에서의 현재의 상황과 더 유사했다. 그래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1905년에 관한 팜플렛을 쓰면서 독일의 상황을 러시아의 상황 만큼이나 주시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대대적 파업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대대적 파업, 당 그리고 노동조합"에 대하여 썼던 것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의 말에 있었던 혁명의 실패에 대한 반작용으로 평의회공산주의라는 정치적 경향이 출현했다. 그것의 특징은 노동자평의회를 선전하는데(이런 선동은 다른 경향들도 했다) 있는것이 아니라 계급당의 기구들을 모든 악의 근원이라며 거부하는데 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제 1차 세계대전 이전 시기에, 사회민주주의 노동자운동 내부에서 노동조합이 당보다 훨씬 더 기회주의적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당 내부의, 심지어 당의 의회분파 내부의 많은 이들이 전쟁에 반대했었다. SPD쪽에서는 3년동안 전쟁찬성파와 전쟁반대파사이의 투쟁이 벌어지다가 결국 전쟁찬성파가 승리하고 그 반대파는 당에서 축출되고 말았다. 그와는 달리 노동조합은 전쟁발발 이전에 이미, 향토전선에의 사회적 안정을 도모하기로 정부와 협정을 맺었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노동조합은 전쟁경제와 공장에서의 전시법의 수행을 더 많이 넘겨받았다. 뿐만 아니라 소위 노동조합측은 자본이 당을 정복할 때 추진력이었고, 독일에서 혁명의 실패에 있어서 그리고 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중요한 두뇌들의 살해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독일에서 노동조합은 본래 사회민주당의 창조물이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당의 정치적인 지도 아래 놓여 있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전의 호황기에- 베른슈타인이 당의 맑스주의적 기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을 때- 그 당시 노동자운동에서 기회주의의 발전은 특히 노동조합이 „후견인"으로서의 당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하여 정치적으로 „중립성"의 태도를 가지려는 노력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노력은 러시아의 혁명적 사건들에 의해 새로운 양분을 공급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그녀의 글에서 당이 이제 노동조합에 대한 지도적인 위치를 되찾을 것을 요구했다. 1906년 SPD의 만하임 전당대회에서 카우츠키와 32명의 동지들은 -룩셈부르크의 혁명적인 채찍질에 의해 또 러시아로부터 전해지는 기운에 고무되어- 당수뇌의 결정에 대한 한 보충안에서, 모든 사회민주주의자는 전당대회의 결정들을 따라야하고 SPD는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최고이자 가장 포괄적인 형식임을 주장했다. 그런데 그 제안에서 결정적인 이 문구를 카우츠키는 노동조합측의 대표자들이 이빨을 드러내자 철회해버렸다. 카우츠키의 중심주의의 본질은, 당내의 통일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당과 노동조합 사이의 통일을 위해서 기회주의에 굴복하고 이러면서 당의 맑스주의적 이론적 기초를 내부로부터 스스로 파괴한 것에 있다.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통일

     

    로자 룩셈부르크는 좌파의 이러한 요구에 대해 러시아에서의 투쟁 결과들을 그 근거로 들었다. 이 투쟁들은, 그녀의 논거에 따르면, 경제투쟁과 정치투쟁 사이의 오랜 구분을 낡은 것이 되어버렸음을 증명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사회민주주의적 대중정당들에게 있어서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들에 있어서도 단호한 귀결을 갖는다고 한다. 우리가 여기서 좀더 자세히 인용하자면: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사이의 구분은 그리고 이 두가지의 독립은 의회주의시대에 역사적으로 생겨난 산물이긴 하지만 인위적인 것에 불과하다. 한편으로 여기서, 부르조아사회의 평화롭고 ‚정상적인' 시기에 경제투쟁은 분산되고 각 기업, 각 산업분야에서의 여러 개별적인 투쟁으로 해체된다. 다른 한편으로 정치투쟁은 대중 자신들에 의해 직접적인 행동으로 수행되지 않고 대신에 부르조아국가의 형식들에 알맞게 입법적인 대리자들에 대한 압력을 통해서 이뤄진다. 혁명 투쟁의 시기가 시작되자마자 즉, 대중이 투쟁의 장에 출현하자마자, 경제투쟁의 분산뿐만 아니라 정치투쟁의 간접적인 의회주의적인 형식도 사라지게 된다. 혁명의 대대적 행동 속에서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은 하나이며, 분리되고 전적으로 독립적인 두개의 형태로서의 노동조합과 사회민주당 사이의 인위적인 경계도 사라질 것이다. (...) 하나는 경제투쟁 또 하나는 정치투쟁이라는, 노동자계급의 두가지 상이한 계급투쟁들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직 하나의 투쟁만이 있다. 그것은 부르조아사회 내부에서 자본주의의 착취를 제한하는 것을 그리고 부르조아사회와 착취의 폐지를 동시에 겨냥한 투쟁이다. (...) 노동조합의 투쟁은 현재의 이해를, 사회민주당의 투쟁은 노동자운동의 미래의 이해를 포괄한다. (...) 노동조합들은 그룹들의 이해를 그리고 노동자운동 발전의 한 단계를 대표한다. 사회민주당은 노동자계급을 그리고 그들의 해방이라는 이해 전체를 대표한다."(155, 156쪽, 풀무228, 229쪽)

     

    대대적 파업은, 계급정당이나 노동조합 중 어떤 것도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자들이 스스로를 투쟁 중에 조직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당은 자신의 가장 근원적인 과제에, 즉 „정치적인" 지도에, 계급의식의 옹호와 확산과 한층 더한 발전에 집중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역할은 이와는 반대로 점점 더 축소되는데, 이는 파업기금을 통한 파업준비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 노동조합들의 대대적 파업에 대한 공공연한 적대는 그 당시에도 있었다. 그것들이 노동자투쟁에 쓸모 없어질 수 록 그 만큼 더 계급의 적의 진영에서 그들의 안전을 찾는다. 그곳에서 그들은 계급투쟁에 대항한 장해물로 잘 활용될 수 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906년에 소비에트의 완전한 의의를 파악하지 못했듯이 노동조합의 이러한 발전의 종결점을 아직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참 대단하게도 그녀는 이미 매우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노동조합투쟁의 한계를 파악해냈다. 그녀는, 체제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소위 평화적으로 팽창하는 시기에 마저도 (노동조합운동의 고향인 영국에서 마저도) 노동계급의 총체는 결코 노동조합적으로 포착되지 않았음을 제시했다.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많은 주요부문들 자체를 포함하는, 계급의 특히 억눌린 부분들, 즉„서로 뒤엉켜진 노예 무리들(die zusammengeknaeulte Masse der Heloten)", 이들에서는 노동조합적인 조직화가 전혀 접근불가능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여기에는 그당시 독일제국에서는 광부들, 직조공들, 철도노동자들과 우편노동자들 그리고 농촌노동자들이 포함되었다. 로자는 조직화되지 않은 대중과 그들의 정치적인 성숙도를 과소평가하는 것에 대해 호통을 쳤다. 심지어 그녀는 다가올 혁명투쟁에서 이러한 부문들이 선두적인 역할을 할 것임을 예언했다 - 이 예언은 독일혁명에서 정확히 명중했다. 로자에 따르면, 대대적 파업은 계급 전체가 포함되지 않는 한 좌절로 끝나게 된다. 하지만 노동자 대중의 이러한 포괄은, 투쟁 속에서의 그들의 결집은 결코 노동조합적인 방법으로는 도달될 수 없다. 바로 이점에 소비에트의 비밀이 놓여있다, 즉 소비에트는 상이한 노동조합들의 구성원들을, „조직된 자들"과 „조직되진 않은 자들"을, 직장인들과 실업자들을 결합시킨 것이다.

     

    왜 이 모든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왜냐하면, 노동조합이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계급투쟁의 이해를 위해 활용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여전히 널리 확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노동조합투쟁의 표현이라 환영되는, 독일에서의 부문노동조합의 재탄생은 실은 오래동안 존재해온 그리고 반동이 되어버린 노동조합적인 편협성이 표현된 것에 불과하다. 이를 로자는 백년전에 이미 비난했었다:

     

    „노동조합 지도자로서의 업무의 전문화 그리고 평화로운 시기에 분산된 경제투쟁들과 관련하여 당연히 좁을 수 밖에 없는 시야는 노동조합관료들을 생각의 편협성과 관료주의로 이끈다."(163쪽, 풀무237쪽)

     

    „다수의 동지들은 주로 ‚규율'의 미덕, 즉 수동적인 복종의 미덕을 의무로 가지는 판단력이 없는 대중으로 폄하된다. 사회민주당과는 반대로 (...) 노동조합에서는 종속된 대중에 대한 상관이라는 관계가 그 정도에 있어서 휠씬 더 심각하다 "(165쪽, 독일어판 초안에만 있는 부분임-역주)

     

    이러한 편협성이 혁명가들을 향한 순전한 살인욕으로 바뀔 것임을 비록 로자 룩셈부르크로서는 그 당시 알 수 없었음에도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옳은지!

     

     

    대대적 파업과 분업

     

    노동조합운동은 노동자운동의 발전에서 일시적인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전복이, 계급사회의 극복이 역사의 현안이 된 시기에 노동조합은 계급투쟁의 족쇄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노동자계급 자체 내부의 분업의 특정 단계를 체화하고 영구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업 자체는 그것이 역사적으로 발전한 것과 같이, 그것을 초래한 계급사회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 프롤레타리아계급의 투쟁은 물질적 비참함에 대항한 투쟁 그 이상이다. 이는 분업 자체를 그 주요한 희생자들인 임금노예들의 주도로 폐지하는 것이다. 대대적 파업의 비밀은 프롤레타리아가 다시 전인적인 인간으로 되려는 노력인 것이다. 대대적 파업에서는 직업, 산업부분, 국가 등의 구분들이 없어진다. 경쟁을 부추기는 -또 사고와 감정사이에서의- 이러한 분리들이 의문시 될 것이다. 그렇게 로자는 러시아에서 투쟁하는 이들이 어떻게 웃고 노래했는지를 묘사하며 그녀의 기쁨을 표현했다. 그들은 서로 얼싸안았고, 밤이 되어도 각자 자기 집으로 들어가서 개별화될 필요가 없도록 거리에 남아있었다.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깊은 집단적인 이상주의가 준비되었다. „그러나 혁명시기의 폭풍속에서 바로 노동자는 (노동조합의) 도움을 청하는 신중한 가장에서 ‚혁명의 낭만주의자'로 변하고, 그에게 있어서 물질적인 행복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최고의 재산 즉, 자신의 목숨 마저도 투쟁의 이상에 비해서는 하찮게 보인다."(133쪽, 풀무199쪽)

     

    대대적 파업의 결과는 특히 „노동자계급의 ,, 생활수준의 전반적인 상승, 즉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지적인 수준의 전반적인 상승"이다.(114쪽, 풀무175쪽) 이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로자 룩셈부르크는 마찬가지로 분명히 했다: „실제로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의 전반적인 상승만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행복의 지속적인 단계로서의 물질적인 생활수준은 혁명속에서 설자리가 없다. (...) 혁명의 상승하고 하강하는 이러한 날카로운 물결속에서도 존속하기에 가장 소중한 것은 그 정신적인 결정체(강조는 로자 룩셈부르크에 의함-역주)이다, 노동자계급의 도약적인 지적 문화적 성장이다. 이것이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에서의 계속적 전진을 확고하게 담보한다."(117쪽, 풀무179쪽)

     

    2007년 10월. 토론모임 라인란트( de.geocities.com/zirkelrunde )

     

    <번역> 사회주의노동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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