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 우리는 지금까지보다 더 “국가적 단결”을 거부해야 한다! - 프랑스 테러 공격에 대하여
  • 조회 수: 1459, 2016-01-25 14:05:22(2016-01-25)
  • 우리는 지금까지보다 더 “국가적 단결”을 거부해야 한다!

    - 프랑스 테러 공격에 대하여




    이 글은 지난 주 금요일 테러 공격이 벌어지자마자 프랑스의 친구가 보내준 것이다. “국가적 단결” 요구에 대한 계급의 적대성이 선명하다! ― Internationalist Perspective

    130명의 사망자들과 무수한 부상자들, 파리지엔들이 지난 주 금요일 겪은 공포의 밤은 그들에게 평생 잊혀 지지 않을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 공포의 밤은 만화가 카뷔, 샤르브, 볼린스키, 오노레, 팅우가 살해된 샤를리 에브도 신문사에서 불과 수 백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벌어졌다. 그리고 지난 10월 31일 시나이 반도 위를 비행하던 러시아 여객기가 알카에다 혹은 IS에 의해 추락하여 러시아 여행객 220여 명이 사망한 사건에 뒤이은 참사이다.


    이것은 “수공업적인” 테러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들 ― 크든 작든, 그 이념이 지하디스트든 “민주주의”든 “전체주의”든 “범터키주의”든 “범아랍주의”든 무관하게 ― 간의 전선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게릴라 전쟁이다.


    이것은 이슬람 국가와 서방 사이의 전쟁이 아니다. 문명의 충돌은 더더욱 아니며, 섬뜩한 무대 연출(참수, 팔미라 유적의 파괴, 십자가형을 당한 고고학자)에도 불구하고 지구적 규모로 벌어지는 새로운 종교전쟁도 확실히 아니다.


    이 전쟁은 작금의 위기 ― 경제 공황, 생태적 위기, (전쟁이나 환경 재앙으로 인한) 대규모 이주, 약소국들의 해체, 중동·아프리카·중앙아시아(아프가니스탄·중국령 쿠르키스탄)에서 반복되는 내전들 ― 속에서 전 지구적으로 편재하고 있는 체제에 주어진 현실이다.


    2003년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개입 이후 중근동 지역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국경이 그려지고 있다. 자살폭탄 공격, 지하드의 칼날, 공중폭격(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터키·러시아·서방, 예멘에서 사우디)및 무인폭격기의 공습, 육상에서의 군사개입. 여기서 어제의 적들(이란·러시아·미국 특공대)은 온통 뒤죽박죽 얽혀있다.


    이것은 더 이상 몇 몇 사람만 죽일지 ‘지역’ 자체를 파괴할지를 결정하는 참모들이 사랑하는 단어인 “작전 지역”이 따로 있는 전쟁이 아니다.


    이 전쟁은 죽음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이 행성의 모든 곳에 존재한다.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크든 작든 만들어지고 있는 국가든 그 모든 국가들에. 표방하고 있는 이념과 상관없이 모두 “성전”이라는 종교적 어법 아래 전쟁의 목적을 숨기고 있다. “테러리즘”에 대한 “민주주의”의 전쟁, 심지어, 웃지 마라, 푸틴으로부터 본인의 상징이 사형집행인인 이란의 아야톨라까지 “테러리즘”에 대한 “인도주의”의 전쟁을 주장하고 있다.


    죽음은 이제 모든 곳에 존재한다. 파리 뿐 아니라 베이루트 남부와 시나이 전역에. 앞으로 십년 내에 죽음을 뿜어내는 자본주의에서 “작전 지역”이 되지 못할 곳은 이 행성에서 아무 데도 없을 것이다.


    테러리즘과 “민주주의 국가들”과 중국, 러시아와 같은 자본주의 독재정권의 승리는 전쟁 같은 전채인 파리에서 일을 포함하여 이 공격들을 전시하게 될 것이다.


    *

    이데올로기. 크든 작든 IS처럼 만들어지고 있는 국가든, 이들은 모두 자본주의 국가들이다. 이들의 목적은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국가자본을 유지·강화·발전시키는 것이다. 성경과 코란 뒷면에 자본주의의 계명이 적혀있다. 너의 적과 경쟁자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죽여라. 만일 그들이 (사적소유, 상품경제, 창조적 파괴 같은) 자본의 신성한 법을 받아들이고 자본의 성소(聖所) 앞에 납죽 엎드린다면 너의 적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테러공격 이후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때와 똑같다. “국가적 단결”, “신성한 단결” 등등

    태생적으로 반(反)민족적인, 보편계급인 프롤레타리아(“프롤레타리아는 조국이 없다”)는 한 가지 대답 밖에 제시할 수 없다. 모든 형태의 자본주의에 대한 계급전쟁. 그것에 어떤 상표가 붙어 있는지와 상관없이, 크든 작든, 금융거래인의 옷을 입고 있든, 지하드의 옷을 입고 있든 자본과 부르주아에 맞서는 모든 계급 전선에서의 계급전쟁.

    세계 프롤레타리아의 빠른 각성만이 모든 전선에서 국가적 단결의 승리를 막을 수 있다. 그것은 단 하나의 결과를 낳을 뿐이다. 총체적인 격돌을 야기할 지역전쟁의 반복.

    프랑스든 어디든 국가적 단결을 받아들이는 것은 예정된 자본주의적인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제물을 찾는 자본의 칼날에 기꺼이 자신의 몸을 갖다 바치는 양처럼 순응하는 사람은 미리 관을 사두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많이 사는 게 더 좋은 것이니까 …


    Karlchen | 2015년 11월 19일
    옮긴이|이정인



    <원문 출처>  http://internationalist-perspective.org/blog/2015/11/19/on-the-attacks-in-france/

    <기사 출처>  붉은글씨 4호에 실린 번역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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