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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르크스주의와 한국 사회주의(정치)운동에 대한 회고 -1990년대 이후
  • 조회 수: 74214, 2016-12-22 12:41:45(2016-12-22)

  • 마르크스주의와 한국 사회주의(정치)운동에 대한 회고

                                   

    -1990년대 이후-

       

     이 글은 필자가 20여 년간 몸담아 왔던 사회주의 정치운동의 경험에 기초하여 역사를 되돌아보는 글이다. 회고의 역사에 대한 평가에는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이 요구된다. 마르크스주의는 유사한 공산주의적 사상과 구별되는 과학적 사회주의 또는 코뮤니즘이다. 마르크스주의의 또 하나의 원칙은 지배계급과 소부르주아지로부터 오는 이데올로기, 즉 종파주의, 개인주의, 기회주의, 모험주의와의 투쟁이다.

    첫째, 1990년대 초반의 사회주의 정치운동을 NL, PD, ND 사이의 논쟁으로 살펴보면 그 당시 우리 사회 이론진영과 실천진영이 국제주의적 마르크스주의와 너무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 혁명에 배타적으로 의존한 역사해석으로 폭넓은 역사인식이 부족한 점,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본질 분석과 함께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다.

    둘째, 1990년대 중반의 국제 사회주의운동을 평가하면, 실천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운동이 국제주의 경향과 만났다는 점이다. 이 세력은 스탈린주의, 마오주의, 김일성주의를 같은 것으로 보았으며 혁명당이 아닌 진보정당 건설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셋째, 2004년 이후 혁명적 사회주의운동을 살펴보면, 이 세력은 1997년 IMF 관리 체제 아래에서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의 경험과 그 위기의 한국 자본주의에의 관철을 통해 보다 근본적인 세계 자본주의 쇠퇴의 과정을 살펴보게 되고 역사유물론과 방법론으로서의 변증유물론의 원칙을 부여잡게 된다.

    넷째,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미래는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객관적 인식과 더불어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노동계급의 투쟁이라는 주체적 조건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세계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단결과 연대를 통한 세계 혁명당의 건설과 소비에트 건설을 향한 노동계급의 자발적 투쟁이 요구된다.


    주요 용어: 공산주의, 과학적 사회주의, 민족주의, 당, 소비에트, 스탈린주의, 트로츠키주의, 좌익공산주의, 평의회공산주의.



    마르크스주의와 한국 사회주의(정치)운동에 대한 회고 

     

    1. 들어가며


    소련 붕괴 이후 한국의 사회주의(정치)운동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마르크스주의의 역사관으로 다시 정립하는 작업은 마르크스주의 역사 연구자뿐만 아니라 혁명적 사회주의자의 몫이다. 이 글은 그러한 책임 있는 연구 성과물이 아니다. 단지 이 글은 지금까지 내가 몸담아 왔던 사회주의 정치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면서 역사를 거꾸로 뒤돌아보는 회고의 글임을 밝힌다.

    역사에 대해서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정치적 입장과 원칙 위에서 나름대로 해석하고 평가한 것이기 때문에 이 글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진다. 1990년, 2004년, 그리고 2006년 내가 쓴 글을 차례로 인용하면서 시작하려 한다.

    “마르크스가 오래전에 관념론과 교조주의 그리고 모험주의, 기회주의와 끝까지 싸우며 비판했던 것처럼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유물론의 올바른 정립을 이루어야 한다. …… 이른바 ‘개혁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회의의 늪에서 빠져나와 교조주의의 고집과 우경화의 변질을 준엄하게 꾸짖으면서 관념론, 수정주의, 모험주의, 소시민적 혁명주의와 싸워야 한다. ……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원칙인 이론과 실천의 통일, 혁명적 사유와 행동의 통일을 굳건히 견지하면서 과학적 사회주의의 빛나는 전통성을 훼손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오세철, 1990: 16-19).

    “20여 년간 사회주의 정치운동에 몸담아 오면서 내가 끊임없이 문제제기 하고 비판했던 것은 사상의 동요와 변질이었다. 이런 사상적 동요가 현장과 대중조직뿐만 아니라 정치조직과 사회운동조직에서도 확산됐고 전체 운동을 합법 개량주의의 늪으로 빠지게 한 요인이 됐다.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체제, 이념, 정책을 모두 포함한)의 위력은 동북아를 포함한 한반도에도 어김없이 전면적으로 관철되고 있으며, 한국의 대중운동과 정치운동 또한 신자유주의에 포섭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적 합의주의의 틀 속에서 현장에 기반을 둔 대중투쟁을 포기하고 교섭주의로 나아가는 민주노총과 억압받는 현장에 기반을 둔 혁명적 사회주의정치를 포기하고 사회개량적 선거정치로 급속하게 전화된 민주노동당이 혁명적 사회운동 영역을 시민운동으로 재편하면서 신자유주의의 이중대로 나아갈 개연성이 크다.

    이는 오랫동안 혁명적 운동의 전통이 뿌리내린 유럽의 경우에도 벌어지고 있는 보편적 경향이며 제3세계의 경우에는 오히려 신자유주의로의 포섭 속도가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오세철, 2004).

    “우리는 지금까지 세계 여러 곳에서 정기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 대회(모임)가 열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강단의 추상적 논의나 자본주의의 좌파에 속하는 정치적 세력들의 연대를 위한 행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자본주의 데카당스 시대의 객관적이고 주체적 조건이 야만과 전쟁을 넘어서서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더욱더 깊이 인식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계급은 현장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고 혁명적 정치세력은 전망을 분명하게 열어젖히지 못하고 있지만 과거 혁명운동이 국제주의의 원칙을 저버리면서 참담한 패배를 경험했던 역사를 뿌리로부터 반성하면서 우리는 하나의 현장,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을 넘어서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단결을 이루어내야만 한다. 이번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국제대회는 한국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세계의 좌익공산주의자들과의 소중한 만남과 토론의 마당이며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진영 내의 입장과 노선 차이를 드러내고 소통하는 첫 번째 경험이 될 것이다. 대회의 주제를 이론, 실천, 전망으로 구분하고 이를 꿰뚫는 인식의 지평을 넓혀 나가는 것이 이번 대회의 주요 목표이다.

    우리는 이번 국제대회를 시작으로 세계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세력이 연대하고 단결하여 세계혁명을 향한 힘을 축적하고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그 역사적 과업을 완수하기를 바란다.”(오세철, 2006).

    그 당시 전술당으로서 ‘민중당’ 건설에 인텔리가 집단적으로 참여했지만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와 소련 붕괴로 인한 사상 동요에 항의하여, 인텔리 그룹과 젊은 활동가 그룹이 탈당하게 되고 그 이후 나는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을 견지하면서 사회주의 정치운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 위의 인용문은 그러한 일관성을 표현하는 보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사회주의 운동세력이 지녀왔던 한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2. 역사적 평가에 필요한 마르크스주의의 원칙


    1980년대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해를 지금의 시점에서 뒤돌아보면 얼마나 단편적이고 피상적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마르크스엥겔스의 전집이 일부 번역된 것도 1990년대에 들어서였고 1987년 이후 레닌전집의 일부가 번역되어 나왔다. 이른바 ‘마르크스-레닌주의’로 통칭되는 스탈린주의를 마르크스주의와 동일시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 당시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광주민중항쟁을 겪으면서 민족주의적 볼셰비즘에 대한 친화적 경향이 더욱 커졌으며 군사 파시즘의 한국과 짜르 체제의 러시아 상황을 비교하면서 혁명적 정세를 해석하려는 경향도 정서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일본 번역서를 통한 독해, 주체사상의 도입들이 이러한 척박한 이론풍토에 가세하면서 마르크스주의는 스탈린주의의 교리로 채색된 채로 교조화됐다.

    ‘과학적 사회주의’로 부르는 마르크스주의는 유사한 공산주의적 사상과 구별하기 위해 쓰였다. 초기 기독교, 스팔타쿠스 노예반란, 영국 농민봉기와 같은 초기 공산주의 사상은 돌아갈 수 없는 잃어버린 공동체를 찾으려는 복고적이고 신비주의적 요소를 지닌 사상이었고 16세기 독일 뮌처(Mu¨nzer)가 이끄는 재세례파(Anabaptist) 운동으로부터 영국 내전의 윈스탄리(Winstanley)와 디거스 (Diggers)로 그리고 프랑스 혁명의 바뵈프와 ‘평등인의 음모’(Conspiracy of the Equals) 같이 종교적이고 계시적 관점에서 착취적 사회질서로부터의 인간해방의 능력을 강조하는 운동, 그리고 산업자본주의의 공포를 비판한 오웬, 생시몽, 푸리에의 사상은 자본주의에 의한 역사적 진보와 과학적 세계관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부상에 근거한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와 구별된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의식이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나오고 공산주의 전위는 이 과정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50년 후 카우츠키가 “외부로부터” 노동계급에게 주입되는 공산주의 의식을 가진 사회 인텔리켄챠라는 테제에 대한 반박이었음을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다. 또한 『1844년 경제철학수고』는 자유로운 사회에서의 인간 활동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데 이 글이 헤겔의 철학체계의 주요 개념인 소외를 다루었기 때문에 “마르크스 이전”의 글로 여겨졌지만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과 『자본론』같은 후기 저작 사이에는 근본적인 연속성이 있으며 그 후『요강』에서도 이어진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크스가 말한 공산주의를 요약할 필요가 있다.1)

    첫째 밑으로의 “평등화”라는 의미와는 반대로 “역사의 수수께끼가 풀리는” 인류의 거대한 진보이다. 둘째, 특히 화폐와 자본의 지배하에 있는 생산이 인류를 끊임없이 경쟁하는 원자로 갈라놓는다면 공산주의는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회복하게 해서 노동의 만족이 타인의 욕구를 위해 이루어지게 한다. 셋째, 분업이 개인 수준에서 극복되는 것은 생산자가 더 이상 단일한 활동형식(육체노동이건 정신노동이건)에 매이게 하지 않고 정신적·육체적·예술적·지적 활동이 결합되는 전인적 인간이 된다. 넷째, 빈곤과 강제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경험, “모든 감각의 해방”의 길을 열어 놓는다. 인간은 더 이상 자연에 반대하는 원자화된 자아가 아니라 자연과 통일된 새로운 의식을 경험한다.

    마르크스주의 원칙은 1차 인터내셔널에서의 논쟁과 고타강령비판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1차 인터내셔널에서의 논쟁은 첫째, 부르주아 개혁주의자에 대항하는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의 원칙과 부르주아 민족주의자에 대항하는 계급 자율성의 원칙이고 둘째, 반정치적 입장과 무정부주의자의 연방적 편견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 정치와 집권조직의 방어이다. 이 두 가지 원칙은 사회주의 정치운동을 평가하는 기본이 된다. 1875년 ‘독일사회주의노동당’은 라쌀레의 국가숭배주의와 베벨과 리프크네히트 같은 마르크스주의 분파의 타협의 산물인데, 마르크스는 『고타강령비판』에서 혁명과 공산주의 문제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첫째, 당면한 개혁과 장기적 공산주의 목표를 혼합시킨 강령을 비판하고, 둘째, 사회민주주의를 민주적 개혁의 계급당으로 만든 경향을 반대하여 당의 계급적 성격을 분명히 했으며, 셋째, 교육받은 엘리트로서의 당의 대체주의적 사고를 반대함으로써 부르주아 편견의 척결을 주장했고, 넷째, 개혁을 통해 사회주의로 이끄는 “인민국가” 개념에 대한 환상에 반대했으며, 다섯째, “공평한 분배”를 요구하는 강령에 반대하면서 교환과 가치법칙의 폐지를 요구했다.

    마르크스주의의 또 하나의 원칙은 지배계급과 소부르주아지로부터 오는 이데올로기와의 투쟁이다. 그러한 이데올로기는 종파주의, 개인주의, 기회주의 그리고 모험주의 등이다. 종파주의는 조직에 대한 소부르주아 개념의 전형적인 표현으로서 자신을 “세계의 유일한 하나”로 보고 프롤레타리아 조직의 다른 조직을 경쟁자나 적으로 보고 논쟁을 회피하는 경향이다. 개인주의는 역사주체를 개인으로 인식하고 투쟁을 모든 사람에 대한 개인투쟁으로 본다. 소부르주아지거나 프롤레타리아 조직에 새롭게 프롤레타리아화된 요소인 농민, 장인, 인텔리, 학생의 경향이다. 또한 기회주의는 역사적 미래가 없다는 인내심 부족으로부터 나타나며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두 계급 사이의 입장과 이해를 조화시키려는 경향이다. 끝으로 모험주의는 비타협과 급진화라는 이름 아래에서 어느 때나 부르주아지에 대한 공격이 가능하다고 보고 투쟁조건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결정적”인 투쟁에 돌입한다고 하는 경향이다. 따라서 실패할 투쟁으로부터 노동계급을 방어하려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마르크스주의의 흐름을 기회주의로, 심지어 반동적이라고 낙인찍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실제로 이러한 경향은 기회주의와 같은 소부르주아 조급성 때문에 기회주의로 수렴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와의 투쟁의 보기는 다음과 같다. ① ‘국제노동자협회’ 내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벌인 바쿠닌에 대한 투쟁, ② 1860년대와 1870년대의 라쌀레의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투쟁, ③ 19세기 말 베른슈타인류의 수정주의와 개량주의에 대한 투쟁, ④ 멘셰비즘에 대한 투쟁, ⑤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카우츠키와 중도주의에 대한 투쟁, ⑥ 코민테른의 퇴행과 1920년대와 1930년대 공산당(스탈린주의)에 대한 투쟁, 그리고 ⑦ 1930년대 트로츠키주의의 퇴행에 대한 투쟁이 여기에 속한다.


    3. 1990년대 초반의 사회주의(정치)운동에 대한 평가


    1989년부터 1991년 중반까지 사회구성체를 둘러싼 논쟁은 주로 ≪현실과 과학≫과 ≪우리사상≫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현실과 과학≫은 PD를 대변한 반면 ≪우리사상≫은 ND를 대변했다. ≪현실과 과학≫은 연구자 중심의 집단이었지만 ‘노동계급’ 그룹과 관련이 있었고, 이들 그룹은 ‘인민노련’ 및 ‘삼민’과 통합하고 그 주력인 인민노련은 민중당의 다수파로서 그 이후 합법개량주의의 주도 세력이 된다. ≪우리사상≫은 ‘사노맹’의 기관지 역할을 했다(사노맹도 민중당에 개입했다). ≪현실과 과학≫은 소련공산당 제26차 당대회(1981년)와 제27차 당대회(1986년)의 논쟁을 검토하면서 27차 당대회에서의 종속국독자론의 기각을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역사발전의 보편성으로서의 세계사 또는 그 합법칙적 발전으로서의 현대에 대한 설명에 불과하다. 이제 역사발전의 특수성 또는 그 합법칙적 발전의 차별화, 즉 유형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가 신식국독자론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변증법적 통일을 가리킨다”(윤소영, 1999: 172).

    그리고 제4집에서는 “그 동안 우리는 한국판 쁘띠부르주아 민족주의인 주체사상과의 사상·이론을 투쟁을 통해 노동계급의 관점에 입각한 변혁의 과학적 전망을 모색해왔다. 그 결과물로서 우리는 (적어도 2집 이후로는) 신식국독자/반제반독점PDR론의 ‘세계’를 나름대로 제시하기에 이르렀다”(≪현실과 과학≫ 제4호, 1989: 8). 여기서 이 그룹이 비판한 식민지반봉건사회/반제반봉건NLPDR론 은 마르크스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 뒤의 논쟁의 초점이 NDR론 쪽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현실과 과학≫이 ND 그룹을 비판하는 강도는 점점 커진다.

    “이정로 씨는 불행히도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이 제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카우츠키, 플레하노프, 심지어는 트로츠키)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말과 실천은 마르크스주의 과학으로부터의 일탈이라는 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다”(이창휘, 1989: 11).

    “우리는 다시 한 번 ‘이론적 청산주의’나 경험주의와 일선을 분명히 그어두지 않으면 안 된다. 소위 ‘계급투쟁적 관점’에 의한 비판이 그 하나이다. 이러한 좌익 비판가들은 우리의 이론적 탐구에 대해 ‘계급투쟁적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실제로는 진지한 이론적 탐구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을 혁명적 공문구로 덮어두는 것에 다름 아니다”(≪현실과 과학≫ 제6호, 1990: 7).

    “페레스트로이카를 계기로 준동하고 있는 비당파적 조류의 본질이 민중의 민주주의적 열망을 수단화하고 그 결과로서 민중의 투쟁을 자유주의 세력의 부수물로 전락시키는 데 있음을 최근의 양상에서 확인됐던 터이다”(≪현실과 과학≫ 제9호, 1991: 6).

    이에 대해 ND 그룹의 본격적 대응은 ≪우리사상≫ 창간호(1991년 5월)에 잘 드러나 있다. 창간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노동해방’ 사상은 본래 물질적 힘과 실질적 투쟁을 지향하는 혁명적 사상으로 태어났다. …… 미약한 사상적 조직적 수준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시작한 남한의 혁명운동은 80년대를 거치며 실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반제투쟁, 반파쇼투쟁, 통일투쟁의 각 영역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이루었으며 무엇보다도 혁명운동의 주체로서 노동자 계급과 근로민중이 자유민주주의 부르주아세력과 구별되는 독자적 정치세력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 그 간의 과정에서 이론 수준은 극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사회구성체론, 혁명론, 국가론, 계급론 등 남한 혁명의 전략과 전술 등 혁명운동의 전반에 이르는 이론적 기초가 폭넓게 형성되고 있다”(≪우리사상≫ 창간호, 1991: 창간사).

    이들 그룹은 남한을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로 규정하면서 자신들의 이론적 기초를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부르고 있다. PDR론을 비판하면서 PD의 독점강화 종속심화 테제의 한계를 비판하고 북한과의 연대를 통한 민족민주혁명을 주장한다.

    “PD파의 ‘좌’편향적, 경제주의적 변혁이론을 비판하기 위하여 …… 이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남한 당면 변혁은 ‘노동해방변혁 단계’와 질적으로 구분되는 ‘민주주의 변혁단계’라고 규정한다”(≪우리사상≫ 창간호, 1991: 104).

    이들 그룹의 당시 소련과 북한에 대한 인식은 눈여겨볼 만하다.

    “신연방안의 국민투표에서의 통과를 통해 고르바초프로 대변되고 있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와의 중립적 세력연합’이 부르주아적 개혁세력으로부터의 승리를 거두면서 가시화됐다”(≪우리사상≫ 창간호, 1991: 104).

    “중국, 쿠바, 북한은 굳건한 반제 사회주의혁명의 기지이자 프롤레타리아적 개혁의 전형으로서 전 세계 노동자 계급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우리사상≫ 창간호, 1991: 36).

    “북한이 최근 거두고 있는 ‘통일운동의 진전과 새로운 동북아 질서의 구축’의 측면에서의 중대한 성과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 이러한 성과는 북한이 부르주아적 개혁·개방 압력으로부터 사회주의적 혁명운동을 굳건히 수호하고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앞당길 것임을 입증하는 것이다”(≪우리사상≫ 창간호, 1991: 39-40).

    이 시기의 논쟁을 돌이켜보면 그 당시 우리 사회 이론진영과 실천진영이 국제주의적 마르크스주의와 너무 떨어져 있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몇 가지로 정리해 보자.

    첫째, 세계혁명에 대한 폭넓은 역사인식이 부족하여 러시아 혁명의 영향력이 우리나라 사회주의운동에 깊이 침윤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1930년대부터 코민테른 영향 아래 종속되어 있던 과거로부터 한국 전쟁으로 인한 분단, 자생적 사회주의운동의 고사로부터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축적되지 않은 사회주의운동의 사상과 이론 그리고 올바른 실천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는 PD와 ND의 입론이 여전히 그 당시 소련 공산당의 논쟁이나 아니면 레닌과 스탈린 저술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대한 역사적 접근이나 마르크스주의의 전통과 원칙을 지키려했던 유럽 공산주의운동의 역사와 사상가에 대한 인용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혁명이 성공한 러시아를 본보기로 보면서 실패한 유럽 혁명을 뒤돌아보지 않는 배타적 정서도 한몫을 했다고 본다.

    둘째로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본질 분석과 함께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전히 분석수준이 일국적 수준에 머물고 있었고 이는 민족주의적 색조와 함께 스탈린주의의 일국사회주의론에 함몰되어 있었다. 자본주의 쇠퇴가 세계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전개되면서 전쟁과 파시즘으로 이어지는 세계 역사에 대한 역사 유물론적 해석과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주체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변증 유물론적 해석을 총체적으로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혁명과 반혁명의 소용돌이를 구분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이론적 기반을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부르는 것은 기본적으로 반혁명의 스탈린주의를 교조로 삼은 결과 마르크스주의의 기본원칙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양진영 테제도 소련을 사회주의의 중심으로 보고 세계 부르주아지와 투쟁하는 세력으로 규정하여 동맹·연대 세력으로 수용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잉여노동을 점유하고 국가자본의 축적이라는 특수한 기능을 수행하는 계급으로서의 “사회주의 국가”는 낡은 부르주아지에 불과하다. 국가와 그 관료조직에 의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집중화와 계획화는 소유의 폐지를 향한 진전이 아니라 착취강화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없었다.

    ND의 소련과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인식은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인식은 이러한 규정의 극치에 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현실과 과학≫ 역시 소련 등의 국가에 대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지만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신뢰를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ND와 차이가 있다면 2단계혁명론을 부정하면서 민중민주혁명론을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이들 세력은 탄압으로 소멸됐거나 스스로 합법개량주의로 전환됐다. 서로 종파주의, 기회주의 또는 모험주의로 비판하여도 이는 원래의 의미와 다른 의도로 사용됐다. 요약하면 이 당시 논쟁은 소련의 몰락이라는 중대한 역사적 경험을 경과하면서도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의 본질, 세계 자본주의의 데카당스의 특성에 대한 깊은 이해에 기반을 두지 않은 남한 사회에서의 혁명론, 조직론에 매달리면서 마르크스주의의 국제주의와 분리됐다. 한국사회성격 분석이나 일국혁명론은 여전히 소련과 북한이라는 스탈린주의의 틀 속에 갇힐 수밖에 없었고 마르크스주의와의 올바른 만남을 단절시켰다.


    4. 1990년대 중반 국제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평가


    스탈린주의를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미화시킨 스탈린의 영향력으로부터 해방되기는 쉽지 않았다. 소련 같은 국가자본주의의 몰락을 목격하고 그것이 사회주의 모델로 보았던 수많은 활동가들은 푯대를 잃고 방황하거나 좌절했으며 소부르주아의 본성으로 돌아가거나 부르주아지에 투항했다. 일부 연구자들은 마르크스의 원전을 찾아 읽고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으로 돌아가려는 학습을 시작했고 일부는 재빠르게 포스트류의 담론으로 간판을 바꾸었다. 여전히 스탈린주의를 고수하려는 세력은 스스로를 ‘레닌주의자’로 부르고 레닌의 저작에 다시 빠져들었고 그렇지 않은 반스탈린주의의 경향은 급속하게 트로츠키를 읽고 트로츠키주의의 경향들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실천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운동이 국제주의적 경향과 만났다는 사실이다. 국제사회주의자 그룹(IS)의 기관지 ≪사회주의 노동자≫는

    제2호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992년 “우리의 입장”에서 그들은 사상적 전통을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룩셈부르크, 트로츠키, 그람시로 규정하면서,

    “≪사회주의 노동자≫와 ≪국제사회주의≫를 만드는 편집부는 마르크스와 레닌과 룩셈부르크의 국제사회주의 사상을 ‘일국사회의론’으로 뒤집어버린 스탈린에 반대해 트로츠키와 그람시가 그것을 옹호했을 뿐 아니라 더욱 발전시켰다고 믿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다”(≪사회주의 노동자≫ 제2호, 1992: 103)

    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들은 국제주의적 입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우리는 다른 나라 노동자 계급과의 연대를 지지한다. 우리는 한 나라의 노동자와 다른 나라의 노동자를 분열시키는 민족주의에 반대한다. 우리는 제국주의-동서방 모두의-에 반대한다. 우리는 모든 피억압 민족의 민족자결권을 옹호한다. 우리는 피억압 민족의 반제 민족해방투쟁을 지지한다. …… 사회주의 혁명은 생존하려면 확산되어야 하며 사회주의는 한 나라에서는 건설될 수 없다. 북한,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 국가이다. 우리는 여성의 진정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평등을 지지한다”(≪사회주의 노동자≫ 제2호, 1992: 110).

    여기서 트로츠키주의의 역사를 거론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소련을 포함한 중국과 북한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한 것이다. 물론 “퇴행한 노동자 국가”로 보는 제4인터내셔널 계열의 입장보다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음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IS의 국가자본주의론을 상세하게 검토할 필요는 없다.2) 특기할 것은 이들이 룩셈부르크를 레닌과 함께 거론한 것, 그람시를 전통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사실이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적극 지지를 표시함으로써 국제주의의 원칙과의 모순을 드려내고 있다. 그런데 이들 그룹은 2~3년 후에 내부논쟁 끝에 분리된다. 혁명적 진영임을 자임하는 그룹은 나머지 경향을 기회주의적 진영으로 규정하고 남한의 멘셰비키로 부르고 있다. 이들 문건은 1994년 11월 29일 『현 단계 남한 운동에서 국제사회주의의 두 가지 전술과 두 가지 조직노선』(당 창건을 위해 투쟁하는 국제사회주의자들)로 나타난다. 이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남한 국제사회주의는 이제 그 전사(前史)를 마감할 시점을 맞고 있다. …… 전사 시기는 국제사회주의가 남한 운동에서 스탈린주의에 대한 사상적 대안으로 떠오르고 정착된 시기였다. 이 시기에 국제사회주의는 스탈린주의에 반대하여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거머쥐어야 할 유일한 이념적 대안이었다. 이른바 ‘현존 사회주의’가 국가자본주의에 지나지 않음을 밝히면서 ‘노동자 계급의 자기해방으로서의 사회주의’ 사상을 정력적으로 옹호해 낸 것은 무엇보다도 이 시기 국제사회주의자들의 훌륭한 업적이었다. 현 단계 남한 운동에서 노동계급 전위당 건설을 사회주의자의 최우선적 임무로 인식하며, 그것을 위한 당면 실천의 중심 고리로의 전국적 정치선동의 조직화를 핵심적 투쟁방향으로 제기하는 하나의 경향과, 전체 노동계급 운동의 이익과 분리된 별개의 이익을 내세우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모든 이론들을 고안해내면서 오직 종파의 양적 성장을 ‘사회주의자의 임무’로 내세워 추수주의로 기꺼이 나아가고 있는 다른 한 경향, 국제사회주의 내의 이 두 경향이 이제 완전한 형태를 취하면서 각자 자신의 진정한 이름으로 싸울 수 있게 됐다. 그것은 국제사회주 의 내의 투쟁하는 두 진영, 혁명적 진영과 기회주의적 진영이다”.

    이 두 세력이 분화되기 전 표면적인 공통점은 그 당시 좌익 세력을 스탈린주의 세력으로 규정했다. 스탈린주의, 마오주의 그리고 김일성주의를 같이 보았으며 혁명당이 아닌 진보정당 건설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즉 그 당시 좌익들이 노동자 계급의 자기해방을 부정하고 일국사회주의의 신봉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1990년대 초 벌어진 PD와 ND에 대한 논쟁을 벌인 사노맹과 인민노련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런데 혁명주의 노선을 자임하는 그룹은 1995년 ≪노동해방의 불꽃≫ 창간호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주요 단락을 인용하기로 한다.

    “현 남한 사회에 미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과 과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의 과제라고 지목되어 온 것들, 즉 농업문제의 해결-전 자본주의적 착취양식의 제거, 토지 소유의 해체의 의미에서-와 민족해방, 그리고 민주공화정 따위는 더 이상 남한에서 혁명의 과제가 아니다”(≪노동해방의 불꽃≫ 창간호, 1995: 26).

    “≪사회주의 노동자≫와 ≪사회주의 평론≫을 내고 있는 국제사회주의자들 (IS)은 전형적인 남한의 멘셰비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강령적 문건 90년대 중반 남한에서 사회주의자들의 행동지침.을 통해 러시아의 멘셰비키가 그랬던 것처럼 ‘과정으로서의 조직(당 건설)’과 ‘과정으로서의 전술’ 이론을 체계화하고 최근에는 자본주의적 통일을 호소하면서 멘셰비키와 똑같은 기회주의적 실천으로 나아갔다”(≪노동해방의 불꽃≫ 창간호, 1995: 27).

    “국제사회의자들(IS)은 자신들의 기관지 ≪노동자 연대≫와 ≪사회주의 평론≫에서 ≪노동해방의 불꽃≫을 발행하는 ‘당 창건을 위해 투쟁하는 국제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사회주의자들’(노해투사)을 ‘순수주의’, ‘초좌익주의’로 비난했다. 이유는 두 그룹이 민족통일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문제는 IS가 자신들의 추수주의적 전술관에 바탕을 둔 ‘전술변화’를 통해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를 저버리고 민족주의로 경도되어 노동계급의 이익을 저버리고 있다는 것이다”(≪노동해방의 불꽃≫ 창간호, 1995: 83).

    “남한에서 사회주의자들이 건설할 당은 선전주의 ‘당’과는 다른 전투조직으로서, 공장세포를 통해 ‘노동자 대중의 일상적 요구 투쟁에서 선두에 섬으로써 대중을 노동자 권력을 위한 투쟁으로 안내하는’ 전략노선을 지향한다. …… 공장위원회, 직장위원회 같은 소비에트형 조직에 기반을 두어 대중의 부분적인 요구 투쟁을 주도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코민테른 초기의 전략노선은 남한 사회주의자들에 의해서도 마땅히 추구되어야 한다”(≪노동해방의 불꽃≫ 창간호, 1995: 73).

    IS 내부 투쟁이 전술과 조직노선에 맞추어지면서 전개됐지만 핵심적 쟁점은 다시 스탈린주의에 대한 원천적 문제제기가 되어 코민테른 초기의 소비에트 전략노선에 입각한 코민테른 7차의 민중통일전선전략에 대한 비판으로 한 단계 상승했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북한에 대한 태도와 연결되고 당 건설 투쟁의 현안으로 귀결된다. 위의 논쟁에서 어느 그룹이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에 충실했는가를 평가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트로츠키주의가 지닌 문제, 보기를 들어 사민주의와 연대한 통일전선전략 그리고 반파시즘 전선, 사민당 내의 입당전술 등이 결국 핵심적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불꽃’ 그룹이 IS와 분리한 원칙이 올바른 방향임에는 틀림없으나 국제 공산주의운동의 역사를 트로츠키주의로 협소화하고 그에 대한 원칙적인 비판적 평가로 나아가지 않았다는 점은 논쟁의 지점을 역시 일국적 관점으로 끌어내렸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어서 논쟁은 조직노선으로 이어져 ‘신질서’ 그룹과 ‘불꽃’ 그룹 사이에, 그리고 ‘노동해방의 길’과 ‘선진노동자의 길’(‘노동해방의 불꽃’의 연속성) 사이에서 계속된다. ‘신질서’와의 논쟁은 전위당 노선과 평의회공산주의 노선 사이의 대립으로, ‘노동해방의 길’과의 논쟁은 소비에트 노선과 “집단적 지식인의 결합체로서의 사회주의 조직” 노선으로 대립한다.

    ‘신질서’는 전위당 노선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과거 전위당 건투운동, 혹은 전위당 노선이 갖고 있는 오류는 분명하게 비판되어야 한다. 특히 물질성 이론에 기초한 ‘밖으로부터의 주입’ 사상은, 엘리트주의를 구조화시켰으며 계급대중과의 결합을 일방적인 관계로 협소화시켰고 정치선동을 정치폭로 정도로 격하시켰다. …… 우리는 과거의 전략노선을 국가주의적 관점에 입각한 단일 당봉기 전략, 그 구체태인 통일전선전략이라고 규정했으며(NDR, NLPDR, AMCPDR 등이 여기에 속한다) 대안으로 소비에트 이행전략을 주장한 바 있다. 소비에트 이행전략은 통일전선보다 계급조직인 공장 세포와 소비에트형 노동자 투쟁조직에 조직적 무게중심을 설정하고 전선운동은 이것을 지지, 엄호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토대로 해서만 존립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신질서≫ 2호, 1995: 161).

    ‘신질서’의 반당적 경향을 비판하는 ‘맥박’(노동해방의 불꽃)은 ‘신질서’의 “소비에트형 전략”을 혁명 전략이 아닌 무당파적 지식인들이 벌이는 변혁론 논쟁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응수하고 있다.

    “‘신질서’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의 구현체 그 자체인 레닌주의/볼셰비즘을 괴이하게도 그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와 대립시키고 있다. 그 때문에 ‘신질서’의 ‘소비에트 전략’은 레닌주의 당에 반대하는 절대 자유주의 종파들의 평의회공산주의 노선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위당 건설에 반대하여 일상적 상황에서 평의회를 건설하려는 평의회공산주의는 초좌익적 대리주의 실천을 조장해왔다. …… 실제로 ‘신질서’는 볼셰비즘을 ‘단일당 봉기전략, 단절적 이행전략’으로 오해함으로써 볼셰비즘에 대한 시민운동론자들의 상투적 왜곡에 가세하고 있다”(≪노동해방의 불꽃≫, 1996: 62-63).

    그런데 ≪노동해방의 길≫은 원칙상의 초좌익과 실천상의 대중추수주의의 기묘한 결합이 트로츠키 진영의 기본특징이라고 비판하면서 ≪불꽃≫ 그룹을 평가하고 있다.

    “≪불꽃≫ 그룹이 민주노조운동을 소비에트운동, 또는 소비에트의 맹아로 평가하자마자 그것의 필연적 귀결은 그들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 아마 로자 룩셈부르크의 ..대중파업론..일 것이다 ― 소비에트는 혁명적 시기에만 등장할 수 있다는 자명한 진리 때문에 남한의 현 시기를 혁명적 시기로 규정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노동해방의 길≫, 1996: 27).

    “레닌의 볼셰비키의 유형의 정당의 진정한 위대함은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를 노동자 계급의 규율 잡힌 조직운동과 결합시킬 수 있었다는 데 있다. …… 로자 룩셈부르크, 트로츠키, 그람시 같은 혁명적 사회주의운동의 위대한 지도자들은 선진 노동자들과 결합된 규율 잡힌 조직운동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레닌과 구별된다”(≪노동해방의 길≫, 1996: 153).

    “현재 남한의 사회주의운동과 사회주의 조직은 인텔리겐치아 출신과 노동계급 출신의 사회주의자들의 단결된 노력과 상호침투 없이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남한 사회주의운동이 수백 명의 인텔리겐치아 출신의 집단적 지식인과 노동계급 출신의 집단적 지식인을 가지게 될 때 남한 사회주의자들은 이렇게 선언할 것이다. ‘이제 남한에서 사회주의 정당은 이미 형성되고 있다’”(≪노동해방의 길≫, 1996: 202).

    이에 대해 ≪선진노동자의 길≫로 이름을 바꾼 ≪불꽃≫ 그룹은 IMF를 겪고 난 정세에서 계속해서 노동자평의회(소비에트) 노선을 주장한다.

    “그러나 어떻게 서로 다른 요구들과 서로 다른 형태의 투쟁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민주노총 또는 산별노조를 통해? …… 전국연합 또는 IMF 범국민운동본부를 통해 …… 이 문제에 대해 역사는 대답을 내린 지 이미 오래다. 즉, 노동자평의회(소비에트)를 통해서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 노동자 계급의 모든 정치적 조류들이 가장 폭넓은 민주주의 기초 위에서 노동자평의 회의 지도력을 놓고 투쟁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평의회의 슬로건은 과도기 요구체계의 최정점을 이룬다”(≪선진노동자의 길≫, 1998: 38-39).

    이들 사이의 논쟁은 마르크스주의 혁명 전략에 대한 핵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볼셰비키 대 멘셰비키, 혁명주의 대 기회주의의 대립구도를 넘어선다. 그것은 소비에트와 당의 관계이다. 혁명적 정세에 대한 인식 그리고 소비에트 혁명 전략을 ‘초좌익’으로 규정하는 것은 상대적 의미로 사용된다.

    이 문제는 결론과 전망에서 다루어질 문제이지만 당을 부정하는 평의회노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비판이 중요하다. 좌익공산주의와 평의회공산주의, 그리고 평의회주의 사이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모두 당을 부정한다고 보는 부정확한 규정이 이루어지면서 당과 평의회의 변증법적 통일을 향한 수준 높은 논쟁으로 진전시키지 못함을 볼 수 있다.

    평의회주의는 평의회공산주의운동에서 1930년대 이론화되기 시작한 오류의 극한적 표현이며 퇴행이다. 평의회주의는 러시아 혁명, 프롤레타리아독재, 당, 집권화에 대해서 부르주아지가 수천 번 주장하고 무정부주의자가 반복해서 주장한 입장에 “마르크스주의적 형식”을 입히려는 공개적인 기회주의적 시도이다. 평의회주의의 본질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International Review, 2004: 19-24).

    첫째, 평의회주의가 일국사회주의라는 스탈린주의적 입장에 반대 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가 세계 혁명을 기다리지 않고 임노동과 상품을 폐절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무정부주의의 낡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둘째, 국제주의에 반대하여 1926~1927년에 스탈린주의는 ‘일국사회주의’를 주장하는데 트로츠키와 좌익공산주의의 모든 경향은 이러한 입장을 반역으로 보았으며 이탈리아 좌파잡지 ≪빌란(Bilan)≫은 코민테른의 죽음으로 보았다. 이점에서 무정부주의의 논리는 스탈린주의와 기본적으로 같다. 반집권화가 ‘일국사회주의’의 정식화를 싫어하는 것 같지만 ‘자율’과 ‘자주관리’의 기반 위에 ‘한 마을’과 ‘한 공장’에서의 사회주의를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민주적’ 외양과 ‘대중 주도권의 존중’을 하는 것 같지만 자본주의적 착취와 부르주아국가의 방어라는 스탈린주의와 동일한 방향으로 이끈다.

    셋째, 평의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추진은 공산주의적 경제조치의 채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21세기 초 세계시장을 완성했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기지의 권력 장악은 ‘해방구’를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은 자본주의의 가치법칙에 완전히 종속되어 나갈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적에게 속해 있다. 공산주의를 위한 투쟁의 목적은 새로운 착취의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착취를 폐절하는 것이다.

    넷째, 평의회주의의 러시아 혁명에 대한 대차대조표(≪빌란≫)는 이렇다. 즉 정치의 물신화와 ‘머나먼 혁명’의 희망 대신에 공장에서 노동자통제의 즉각적 조치 그리고 임노동과 상품교환의 폐지를 채택하여 ‘관료주의’를 만들지 않고 혁명이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평의회공산주의를 유혹하고 주물화시킨 주장이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 전통으로부터 벗어나면서 무정부주의와 경제주의에 연결된다. 이러한 평의회주의의 정식화는 프루동에 이어 아나코생디칼리즘과 혁명적 생디칼리즘으로 이어졌으며 1917~1923년 오스트로-마르크 스주의로, 그람시의 공장평의회 이름으로, 그리고 오토 륄레와 AAUD(Allgemeine Arbeiter Union Deutschlands, 독일노동자총연맹)의 이론가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콜론타이, 1936년 스페인에서의 무정부주의도 여기에 속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노동계급을 단순한 경제적 사회적 범주로 보고 역사적 계급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5. 2004년 이후의 혁명적 사회주의운동과 앞으로의 전망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또는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은 1997년 IMF 관리체제 아래에서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의 경험과 그 위기의 한국 자본주의에의 관철을 통하여 보다 근본적인 세계 자본주의의 쇠퇴의 과정을 살펴보게 되고 마르크스주의의 사상이론으로서의 역사유물론과 방법론으로서의 변증유물론의 원칙을 부여잡게 된다. 자본주의 노동과정을 포함한 구체적 삶의 총체적 영역 속에서 관철되는 가치법칙의 무자비함 속에서도 노동자운동과 정치운동이 개량화되고 관료화되어 자본에 포섭되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계급본능을 가지고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처절한 투쟁과 혁명적 의지를 조직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한국 사회변동이라는 구체적 현실 속에서 그들이 벌여왔던 논쟁들은 사실 일국적 관점을 넘어서는 국제주의로의 도약이었고 마르크스주의 원칙에 대한 끊임없는 확인과정이었다. 돌이켜보면 지엽적 논쟁이기도 했고 마르크스주의 원칙에서 벗어난 주의주장이기도 했다. 15년이라는 과정 속에서 많은 사회주의 세력은 운동을 포기하거나 부르주아지에 투항했고 이합집산과 분화를 거듭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모임’을 여러 세력에게 제안했다.4)

    우리는 이러한 세력의 연대와 단결이 계급투쟁 속에서 그 힘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던 주객관적 조건이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해당 주체들의 의식적 노력이 보완되지 않고서는 힘들 것이라는 사실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2005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이러한 모임은 나름대로 서로 소통하고 토론하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 모임은 그 동안 자본주의의 위기(데카당스), 세계 공산주의운동사, 레닌, 트로츠키, 좌익공산주의, 당, 노동자평의회 등의 주제를 놓고 토론해왔으며 결국 당과 계급과의 올바른 관계설정, 즉 (세계)혁명당 건설과 노동자평의회를 향한 자발적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창출이 이 시대 국제주의에 기반을 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임무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모임에서 발제된 몇 그룹의 입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5)

    A그룹 : 사민주의(의회주의, 개량주의)와 조합주의가 노동운동에서 대세를 이루는 양 날개 운동(민주노동당과 산별노조운동)의 안착화에 반대하는 ‘혁명적· 전투적’ 세력의 결집이 필요하다. 운동지형 또한 1970~1990년대 중반의 서유럽처럼 장기적인 침체기에 접어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 투쟁도 고립되고, 비정규직노조 운동은 조합주의로 흡수될 위험성이 크다.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조직의 결집을 통하여 강령과 정책을 건설하고, 사회주의 선전선동을 하고 공장세포를 건설해야 한다. 혁명당의 건설로 가기 위한 과도기 틀의 결성 이 요구된다.

    B그룹 : ‘노동자 계급 해방정당’은 현 시대 혁명정당의 유일한 근본 정체성이다. 이 당은 노동자대중이 계급의식을 획득하도록 돕는 역사적 도구이며, 그 계급의식을 혁명적 행동으로 물질화시키는 작업에서 최선두에서 실천하는 중 핵조직이다. ‘스탈린주의 정당의 독재’는 ‘노동자 계급의 독재’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에 ‘대한’ 독재”이며, 그 당의 지배정책은 노동자 계급에 대한 공포통제와 군사적 억압에 의지하고 있다. 반면 ‘노동해방주의 정당의 지배’는 ‘노동계급의 지배’이며, 이 당의 지배방식은 노동자 계급 자신의 동의와 의식, ‘자발성’ 에 의지한다.

    노동계급의 실천은 첫째, 노동해방주의 정치로 무장한 노동자 투사들을 창출하는 것, 둘째, 아무리 작은 수더라도 이 노동해방 투사들을 공장, 작업장 내 혁명조직으로 결집시키는 것, 셋째, 바로 이들과 바로 이 과업과 연동지어 지식인 출신 혁명가들을 재구성해내는 것, 넷째, 노동해방주의 중핵들로부터 확고히 출발하는 것이다.

    C그룹 : 21세기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에 요구되는 핵심과제는 첫째, 사상적 측면에서 ① 스탈린주의에 대한 발본적 비판, 대리주의 및 관료주의 극복, ② 생산력주의 극복이며, 둘째, 조직적·실전적 측면에서 ① (세계화된 신자유주의로 인한 분화 양상을 반영한) 노동자 계급 통합전략의 현대화, ② (세계 자본주의 발전을 반영한) 이행강령의 현대화, ③ 아래로부터 노동자 대중 권력을 향해 나가는 노동자평의회운동과의 결합이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모임’은 스탈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반혁명적 흐름과 단절하고 그것이 마르크스주의의 근본원칙으로부터 벗어나 마르크스주의와는 아무런 관련 없는 반혁명세력이라고 규정했으며 그러한 공통적 기반위에서 서로 소통하고 토론하면서 국제주의의 원칙에서 세계혁명을 향한 한국 사회에서의 교두보를 건설하는 데 뜻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모임에는 트로츠키에 영향을 받은 그룹, 좌익공산주의에 영향을 받은 그룹 등이 참여했고 스탈린주의적 경향과 친화적인 그룹은 참여하지 않았다.

    이 모임이 1년여 계속되는 시점에서 세계의 ‘좌익공산주의’ 세력과 소통하던 ‘사회주의정치연합’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국제대회”의 한국 개최를 제안하게 됐고 ‘국제공산주의자 흐름’(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과 ‘국제주의자 전망’(Internationalist Perspective) 이 참여했으며 한국에서는 ‘당건투’, ‘노동해방연대’, ‘울산노동자배움터’, ‘사회주의정치연합’이 참여하는 국제대회가 2006년 10월 27일과 28일 서울과 울산에서 열렸다. 제1부는 이론으로 자본주의의 데카당스를, 제2부는 실천으로 세계의 계급투쟁을, 제3부 전망은 혁명 전략을 다루었다.6) 여기서 이론으로서의 자본주의 데카당스의 문제는 혁명 전략의 이론적 기초임에도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게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자본주의 위기와 관련해서 앞으로 활발한 토론이 국제적 수준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마르크스주의는 폐쇄된 체계와 교리가 아니라 계급투쟁과 직접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혁명이론의 유일한 틀이다. 그리고 과거의 혁명은 결핍을 특징으로 하는 두 개의 생산양식 사이의 것이었다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결핍에 기반을 두는 생산관계를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모든 착취의 종말을 의미한다. 이러한 원칙에 입각하여 이를 벗어나 ‘마르크스주의’나 ‘혁명’을 위장한 모든 반혁명적 경향과 투쟁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역사적으로 트로츠키의 공과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함께 연대해야 한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국제대회”에 서 발제한 ICC의 입장은 참고할 만하다.7)

    “트로츠키주의의 비극은 1917년 혁명에서 그렇게 결정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그리고 활동하는 소비에트에 대한 가장 명쾌한 묘사들을 남긴 그 위대한 혁명가가 반혁명기에 종지부를 찍어야 했던 그 세대에게 어떤 기여도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트로츠키주의 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민주주의적 제국주의를 지지함으로써 그리고 스탈린주의의 추악한 테제에 의해 야기된 모든 전쟁을 지지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진영을 버렸다. 여기서 나탈리아 트로츠키가, 1951년 제4인터내셔널의 스탈린주의 지지를 훈계하기를 더 이상 거부했을 때의 그녀의 말을 인용할 만하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당신들이 밝힌 전쟁에 대한 입장입니다. 인류를 위협하는 제3차 세계대전이 혁명운동을 가장 어렵고 복잡한 상황들, 가장 중대한 결정들 앞에 세웁니다. …… 그러나 최근 몇 년의 사건들에 직면해서 당신들은 스탈린주의 국가의 옹호를 끊임없이 도청하고 그리고 전체 운동을 그것에 맡깁니다. 이제 당신들이 한국의 인민들을 십자가에 매달고 있는 그 전쟁에서 스탈린의 군대를 비록 지지하더라도 …… 나는 이 점에 있어서 당신들을 따를 수 없고 난 그러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앞으로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국제연대를 위해 ‘국제대회’를 평가하면서 ‘사회주의정치연합’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정리하면서 앞으로의 토론을 제안하고 있다.8)


    6. 마무리하며


    전쟁과 파시즘이라는 야만으로의 길만이 유일하게 노정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미래는 필연적으로 억압·착취당하는 노동계급의 밑으로부터의 격렬하고 자발적인 투쟁을 통하여 그 끝을 마무리하고 자유로운 인간의 공동체인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전 세계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와 노동계급은 세계혁명을 향한 전략위에서 그를 실천할 조직인 세계혁명당 건설과 프롤레타리아 대중권력의 수립을 위한 대중투쟁을 힘차게 전개해야 할 역사적 책무가 있다. 한국의 노동계급과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를 위해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인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역사유물론과 변증유물론의 원칙에 굳건히 서서 지금까지의 사회주의운동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반성하고 스탈린주의라는 이름 아래 저질러진 역사적 과오와 범죄를 철저하게 넘어서야 한다.

    개량주의와 관료주의의 늪에 빠져 있는 대중운동은 대중 스스로의 힘으로 올바르게 세우고, 민족주의와 사회민주주의와의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통하여 자본의 이중대로서의 이른바 ‘좌파’를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으로 바로 세우는 것이 특히 우리가 이 시기에 감당해야 할 과업이다. 지금의 한국에서의 대중운동을 막연하게 신자유주의 반대나 한미 FTA 반대로 규정하면서 노동계급 주도의 계급투쟁전선을 흩트리려는 현실에 대해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진영은 자본주의 반대와 공산주의사회 건설이라는 명확한 기치 아래에서 부문별, 사안별 투쟁을 묶어세우는 피나는 노력을 기우려야 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의 연대’를 통한 구체적 실천이 요구된다.


    2007년 5월

    오세철



    참고문헌


    ≪노동자≫, 12호. 1990년 12월. 민중당 노동자위원회

    ≪현실과 과학≫, 3호(1989. 4), 4호(1989. 9), 6호(1990. 7), 9호(1991. 3).

    ≪우리사상≫, 창간호(1991. 5).

    ≪사회주의 노동자≫, 2호(1992. 9).

    ≪노동해방의 불꽃≫, 창간호(1995).

    ≪신질서≫, 2(1995. 11).

    ≪맥박≫, (1996).

    ≪노동해방의 길≫, (1996. 5).

    ≪선진노동자의 길≫, (1998. 8).

    International Review 1st Quarter 2004, 1st Quarter 2006, ICC

    국제대회준비위원회 2006.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국제대회 자료집』, (2006. 10).

    사회주의정치연합. 2006.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국제대회를 열며』

    오세철. 1990.『개혁사회주의에 대한 환상과 회의와 좌절을 넘어서』≪노동자≫, 12호.

    민중당 노동자위원회.

    오세철. 2004.『사회주의와 노동자 정치』, 박종철 출판사.

    윤소영. 1999.『한국 사회성격논쟁에서도 ‘페레스토로이카’가 임박 했는가?』≪현실과

    과학≫, 제3호. 1999. 4.

    이창휘. 1989. 『PDR론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현실과 과학≫ 4호. 198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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