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 정권교체를 넘어 선거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와의 전면적 투쟁으로!!!
  • 정권교체를 넘어 선거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와의 전면적 투쟁으로!!!

     

     

    1. 지난 3월 10일, 엄청난 권력으로 국가를 통치하던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연인원 1,600만 명의 촛불 투쟁과 압도적인 탄핵 찬성 여론을 고려할 때 충분히 예상되었던 일이지만, 모두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려야만 했다.

    헌법재판소는 최고 권력자가 권력을 남용했을 때 발생하는 국가적 폐해에 대해 지적하고 헌법질서 수호를 위해 박근혜를 파면했지만, 정작 대통령을 직접 선출한 주권자의 권리와 의지에 따른 파면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욱이 박근혜 정권 아래 반노동자 악법을 인정하고, 정치사상의 자유를 말살한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가 이번 사건에 내린 판결문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언론의 자유 침해, 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 등의 가장 중요한 탄핵 사유가 빠져버렸다.

     

    2. 대대적인 촛불 투쟁은 박근혜 정권의 반대편에서 정치권력을 나누며 정파적 이해관계를 추구하던 국회를 압박해 탄핵소추를 이끌어냈고, 선출되지 않은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촛불 투쟁이 박근혜 파면을 이끌어내는 과정은 언론, 보수 야당, 시민 단체 등 내외부의 ‘평화와 질서’라는 통제 압력 속에서 급진성을 배제한 채 진행되었고, 그만큼 낡은 법 제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 과정이 오래 걸리고 변수가 많았기 때문에 촛불 대중의 열망을 확장하는 대신 박근혜 탄핵이라는 당위에 모든 것을 가두어 놓았다. 주권자가 직접 대통령을 끌어내리겠다는 ‘박근혜 퇴진’ 요구는 ‘박근혜 탄핵’ 요구와 섞여 어느새 ‘박근혜 탄핵’이 촛불 투쟁의 당면 임무가 되어버렸다.

     

    3. 이번 촛불 투쟁은 대중 행동의 침체기 속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양적인 분출과 대중 행동 가능성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촛불 대중의 다수를 이룬 노동자들도 일부는 조직적으로 참여하고 대부분은 개별적으로 참여했지만, 촛불 투쟁의 자극으로 다시 생산현장과 거리에서 토론하고 투쟁할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촛불 투쟁에 계급이 아닌 시민으로 참여한 노동자들이 다시 자본가 계급과 맞서는 노동자 계급으로 돌아왔을 때 가능한 일이다.

    한편 촛불 투쟁에서 노동자·민중의 삶과 직접 연결되는 비정규직, 실업, 최저임금, 노동 삼권, 빈곤 문제 등은 박근혜 퇴진 요구와 함께 계속 나열되기는 했지만, 강력하게 밀고 나갈 주체가 형성되지 못했다. 노동자·민중에게는 가장 절박한 요구였지만, 이런 요구가 관철되기 위해서는 탄핵 과정만큼이나 복잡하고 긴 절차가 뒤따르고, 싸워야 할 대상도 정부, 국회, 사법부, 자본가, 지자체 등 분산되어 있어 촛불 투쟁이 즉각 받아 안고 싸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투쟁이 다음 촛불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주체들이 자신의 영역에서부터 조직과 투쟁을 통해 강력한 사회적 요구로 확산시켜 촛불 광장으로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노총을 포함한 투쟁의 주체들은 자기 영역에서 강력하게 투쟁하기보다는 대선 국면을 맞아 대통령 후보와 그들의 정당에 ‘정책 협약’이라는 부탁 또는 압력을 통해 약속을 받아내는 것에 매달리고 있다.

     

    4. 박근혜를 탄핵한 촛불은 규모는 줄었지만, 여전히 거리와 광장을 밝히고 있고, 촛불 대중의 일상을 바꾸는 투쟁과 사회 구조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지금까지 촛불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대중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행동이었다. 그 행동의 밑바탕에는 이 사회와 지배 계급에 대한 깊은 불신과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박근혜 정권 내내 부르주아 정치의 민낯과 국가의 본질을 보았기 때문에 투쟁의 끝을 정해놓지 않은 행동이었다.

    촛불 투쟁이 만든 박근혜 파면 정세는 선거법에 따라 대선으로 이어졌고, 촛불 투쟁의 성과도 정권교체 민심(?)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민심은 촛불 행동의 근본적인 원인과 열망의 온전한 표현이 아니라 촛불 투쟁의 한계가 만들어 낸 불가피한 결과다.

     

    5. 박근혜 파면 이후 “탄핵은 끝이 아니라 촛불 혁명의 시작이어야 하고, 대통령 교체를 넘어 세상을 바꾸는 촛불로 타올라야 한다.”며 투쟁을 지속하자고 했던 민주노총은 대선 정국을 맞아 “세상을 바꾸는 대선, 노동존중 평등사회로”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른바 노동-진보정치 세력도 대선에 뛰어들어 과거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후보를 내서 노동자들의 지지를 구하던가, 부르주아 야당을 포함한 대선 주자와 정책협약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민주노총과 이른바 좌파 세력들은 사회연대노동포럼과 같이 문재인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을 강하게 비난하면서도 부르주아 대선의 본질과 정권교체의 환상에 대해 정확하게 비판하지 못한다. 선거로는 절대 세상을 바꿀 수 없으니, 어려워도 ‘선거가 아닌 투쟁으로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켜내자’고 호소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 계급은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교체냐, 노동존중이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죽이고 생존권을 파탄 낸 ‘자본가 계급의 대리-협력세력에게 권력을 바치는 선거냐, 노동자를 살리고 스스로 생존권을 지키는 투쟁이냐’를 선택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하지 못한다.

    오히려 대선으로 세상을 바꾸자면서, 대선이 ‘노동존중 평등사회’를 가져올 거라는 환상을 유포한다. 하지만 ‘노동존중’은 노동자 투쟁과 단결의 힘이 자본가 권력과 맞설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평등사회’는 선거가 아니라 노동자 투쟁과 혁명으로 노동자계급이 자기 권력을 가질 때 가능하다.

     

    6. 정권교체의 본질은 야권세력이 과거 노무현 정권의 반노동자 정책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아서 그들을 지지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이 체제의 실질적인 지배계급이 최고 권력자의 얼굴만 바꾼 채 계속 노동자·민중을 지배한다는 것에 있다. 촛불의 민심이 정권교체를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 체제의 지배자인 ‘자본가 계급’의 이윤추구를 보장하고 이 사회의 크고 작은 권력을 가진 ‘지배계급’을 지키기 위한 정권교체이다. 지배계급은 이러한 정권교체의 본질을 숨기기 위해 자신들과 적대적인 노동자 계급을 국가의 일부인 시민사회로 통합시키려 촛불 투쟁을 시민혁명이라 칭송하고 노동자 계급을 시민으로 머물게 한다. 촛불 투쟁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시민이 되어 자본가계급과 함께 투표소에서 정권교체를 이루어 내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 혁명이다.

    따라서 노동자 운동 진영에서는 대선을 맞이해 정권교체론에 대한 비판을 넘어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환상까지 넘어서는 투쟁을 해야 한다.

     

    7. ‘노동존중’은커녕 최소한의 노동 삼권과 생존을 위한 최저임금도 보장하지 않은 반노동자 악법과 제도를 만든 주역이 규칙을 정한 자본주의 선거에서 노동자는 승리할 수도 권력을 가질 수도 없다. 어디에도 노동자를 위한 자본주의 선거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선거는 유일하게 노동자 고유의 투쟁이 지금의 촛불 투쟁과 같이 대대적으로 전 사회를 뒤덮을 때나 가능하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절대 불리한 부르주아 선거에 뛰어들어 자본가 정치세력의 들러리를 서거나 권력에 구걸하지 말고, 노동자들에게 선거의 본질을 제대로 알리고 노동자 정치의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선거가 아닌 투쟁으로 노동자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고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노동자 정치는 부르주아 국가기구와 자본에 포섭된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으로는 불가능하다. 부르주아 정치에 참여하면서 그들의 왼편에 자리 잡는 노동자 정치, 그들의 민주주의 방식을 따르는 가짜 노동자 민주주의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그것은 오직 자본과 국가권력, 그리고 부르주아 정치로부터 독립된 노동자 정치 세력화를 통해 실현할 수 있다. 노동자 정치는 대대적인 계급투쟁 속에서 다수 노동자 대중이 참여하는 정치광장에서 탄생한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열정적이고 대대적인 토론과 직접행동, 계급적 연대가 그것을 확장시킬 것이다.

    노동자 정치는 노동자 민주주의, 노동자 혁명, 노동자 권력이 실현되는 정치이며, 이것을 목표로 현실에서 투쟁하는 ‘행동의 정치’이다. 노동자들이 이러한 목표로 향하는 모든 곳에 부르주아 민주주의, 부르주아 정치, 부르주아 독재 권력이 막아서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체제이다. 그것은 세상을 지배하는 폭력이며, 노동자를 착취하는 생산양식이며, 전쟁과 학살과 굶주림과 환경재앙과 인간 파괴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이다. 노동자 정치는 바로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와 싸우는 ‘혁명적 정치’이다.

     

    8. 박근혜 탄핵 과정에서 보듯이 주권자가 직접 권력을 끌어내리지 못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노동자계급의 민주주의는 선출된 권력을 언제든 소환할 수 있어 선출한 자에 의해 통제되고, 모든 대표자의 특권을 폐지하여 위임받지 않은 권한을 행사할 수 없고, 소수(자)가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한 조건으로 향하며, 선출되지 않은 관료제는 점진적으로 폐지하고 노동자가 직접 정치와 행정에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직접 민주주의이다. 이러한 민주주의만이 노동자의 생산과 일상을 스스로 조절하고, 다수가 사회를 통제할 수 있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삶을 위선과 불평등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법 제도에 맡기지 않고 투쟁으로 돌파하면서 스스로 조직하고 민주주의를 창조해 나갈 때 가능하다. 촛불 투쟁과 노동자 투쟁이 나아갈 길은 바로 지배계급의 민주주의 환상을 깨고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만들어 나가는 것, 모든 권력을 누구에게도 위임하지 말고 스스로 권력에 참여하고 행사하는 것, 정권교체를 넘어 선거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와 싸우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무게에 눌려 후퇴하고 움츠렸던 노동자 운동과 혁명운동세력은 이제 반격에 나서야 한다. 자본가 계급과의 협력은 노동자 투쟁의 무덤이다. 노동자가 시민으로 후퇴하는 자본주의 선거는 노동자 투쟁의 독약이다. 자본주의 체제와 싸우지 않고 재벌해체와 자본주의를 개량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현재 위기와 참상의 원인이 자본주의 체제인 것을 가리고 건강한 자본주의 환상을 퍼뜨린다.

    우리 앞에 이러한 걸림돌은 늘 있었다. 우리가 후퇴할수록 걸림돌은 더 늘어만 갔다. 하지만 우리가 길을 돌아가지 않고 정면 돌파할 때 길은 다시 열릴 것이다. 둑은 큰 물결에 허물어진다. 그러나 작지만 곧고 강한 물살이 먼저 균열을 내지 않으면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비록 우리는 지금 소수지만, 곧고 강한 물살이 되어 싸울 것이고, 촛불 투쟁보다 더 크고 높은 투쟁의 물결과 만나 세상을 바꿀 것이다.

     

    - 선거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노동자를 위한 자본주의 선거는 없다.

     

    - 정권교체를 넘어 선거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와 전면적으로 투쟁하자!

     

    - 노동자민주주의, 노동자혁명, 노동자 권력을 향한 노동자 정치 실현하자!!!

     

    2017년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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