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코뮤니스트 5호] 코뮤니스트의 운명
  • 코뮤니스트의 운명

     

    고 남궁원 동지의 3주기를 기억함

     

     

    詩 조성웅

     

     

    이름 없이

    한 명의 코뮤니스트가 사라지는 것이

    유독 슬픈 것만은 아니다

    그의 생이 온통 프롤레타리아트의 곁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도록 눅진한 날이었으나

    그는 좀처럼 비 개인 맑은 하늘을 포기 하지 않았다

     

    곁을 내어주고 난 그의 빈 몸에

    비 개인 맑은 하늘처럼 채워지는 코뮤니즘의 길

     

    남궁원 동지의 몸은 이미 저승으로 저물었으나

    그가 남긴 웃음은

    혁명정당 강령의 첫 번째 문장 같았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곁이 되고 그 웃음에 베어드는 일,

    낮은 곳에서 솟구치는 외침은 죄다 그의 문장이었다

    조용조용 들어주는 그의 문장, 문장들

    토닥토닥 토닥여 주는 그의 문장, 문장들을 거치면

     

    아물지 않는 것이 없고

    견디지 못할 것이 없고

    해내지 못할 일이 없다

     

    이름 없이 계급투쟁을 살고

    이름 없이 혁명을 살고

    이름 없이 사멸하는 국가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코뮤니스트의 운명,

    가장 빛나는 전망이다

     

    가장 빛나는 전망

    남궁원 동지여!

    더 할 수 없는 명예여!

     

     

     

     

    남궁원 동지와 함께 걸어온 길을 회고하면서

     

     

    지금까지 맑스주의 운동과 코뮤니스트 운동을 함께 걸어온 그 어떤 동지들보다 남궁원 동지는 나와 가장 가까운 동지였다. 나는 그가 의식불명으로 투병하는 동안, 그리고 마침내 우리 곁을 떠난 후 거의 몇 개월 동안 밖에 나가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거나 술잔을 비웠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할 일을 너무 많이 남겨두고 먼저 간 동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그의 운동이 나의 운동이고 우리의 운동이었음을 더듬어보자. 1991년 내가 젊은 동지들과 민중당을 탈당하고 민중회의를 만들었을 때 남궁 동지는 은평 지부에서 활동했는데, 항상 그의 손에는 책이 들려있었다. 그는 현장에서는 몸을 사리지 않는 저돌적 투사였지만 늘 폭넓게 책을 읽고 교조적이지 않게 운동의 미래를 새롭게 모색하는 이론가이기도 했다. 그 후 그는 2013년까지 22년 동안 쉬지 않고 흔들림 없이 혁명적 맑스주의자, 코뮤니스트의 길을 걸어왔다.

     

    우리 운동에서 획기적인 결절점은 2002년 「노동자의 힘」에서의 탈퇴였다. 민중당 탈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선거에 대한 입장이 문제였다. 노동자의 힘의 다수안은 민중 진영 경선을 통한 선거 참여이었고, 우리의 소수안은 선거불참 그리고 대중투쟁을 통한 사회주의(혁명)당 건설 계획안이었다. 노동자의 힘을 포함한 공개 중도주의 세력, 반합•비합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과 대선 이후 함께 당을 건설하자는 안이었는데, 총회에서 열 몇 표 차로 부결되었고, 남궁동지와 나를 비롯한 몇 명 동지들은 노동자의 힘을 탈퇴하고 「사회주의정치연합」을 만든다.

     

    그 이후의 우리의 활동은 지금까지 일관되게 혁명적 맑스주의 운동, 그리고 코뮤니스트 운동으로 이어졌고, 활동도 그 운동을 위한 구체적인 내용으로 채워졌다. 2004년 사회이론 연구소 「빛나는 전망」, 「빛나는 전망 출판사」, 노동자평의회를 향한 전국모임 참여, 2005년 「혁명적 맑스주의자 모임」 제안, 2006년 「혁명적 맑스주의자 국제대회」 개최, 2008년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 그리고 그 후 「사노위」, 「노혁추」, 「국제코뮤니스트전망」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늘 함께 했다.

     

    같은 방향과 원칙을 가지고 같은 길을 걸어오면서도 남궁 동지와 나는 노선을 둘러싼 토론과 논쟁을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사정연」에서는 당에 대한 세미나를, 「노동자평의회 모임」에서는 노동자 평의회와 유럽 코뮤니스트 운동 역사에 대한 세미나를 하면서, 그리고 안톤 판네쿡의 「노동자평의회」와 여러 관련 책을 출간하면서 당과 평의회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남궁 동지는 좌익공산주의계열 가운데 독일, 네덜란드 등의 평의회주의자의 입장을 강하게 가졌던 것으로 보였다. 그의 눈으로 보면 나는 당주의자 또는 레닌주의자로 보였을 것이다.

     

    논쟁은 뒤풀이로 이어지고 계속되었는데, 그 시기 그는 몇 번 나에게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했고, 며칠 동안 연락이 끊긴 적도 있다. 그러나 이 논쟁도 오래가지 않았다. 당과 평의회가 대립하지 않고 혁명의 총체적 과정에서 변증법적으로 결합되고 그 이후 결국 당이 소멸되는 것이라는 좌익공산주의의 입장으로 진전되면서 해소되었다.

     

    그 후 남궁 동지는 좌익공산주의의 원칙과 입장을 알리고 설명하는데 앞장섰다. 앞으로 출간될 그의 「글 모음집」을 보면 그의 입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진정한 코뮤니스트 남궁 동지를 먼저 보낸 것도 안타깝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 마시며 논쟁하는 진정한 술동무를 잃은 것도 슬프다. 같이 술잔을 기울이지 못하지만 남궁동지를 늘 안주상에 올리고 이야깃거리를 삼을 테니 섭섭해 하지 말기를!

    투쟁, 여기가 로두스다.

     

     

    사회실천연구소오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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