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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자평의회] 1장. 임무 : 1. 노동
  • 조회 수: 2878, 2017-09-13 16:03:33(2017-09-13)
  • Anton Pannekoek

    노동자평의회

    Workers' Counci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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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 임무

     

    1. 노동

     

    현재와 다가올 시기를 살펴보자. 지금 유럽은 세계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졌고 인류는 궁핍해져 있다. 이러한 상황은 세계 노동자에게 결핍과 착취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산업을 조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재화생산에 대한 관리를 장악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가 될 것이다. 이러한 엄청나고 어려운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오늘날 노동의 성격을 충분히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사회에 대해 그리고 이 사회의 노동 상황을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이 투쟁의 과정에서 마주칠 어려움, 좌절과 패배를 더 적게 겪을 것이다.

     

    사회의 토대는 삶에 필수적인 모든 재화의 생산이다. 대부분의 중요한 분야에서, 이러한 생산은 복잡한 기계들에 의해 작동하는 대공장과 공단지대에서의 고도로 발전된 기술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한 사람에 의해 조종되던 작은 도구들에서, 다양한 종류의 거대한 집합적 노동자들에 의해 조종되는 거대한 기계들로의 이러한 기술 발전은 최근 100년 동안에 이루어졌다. 비록 작은 도구들이 여전히 보조도구로서 쓰이고 있고, 소규모 작업장들도 여전히 많지만, 그것들은 전체 생산 규모 속에서 거의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각각의 공장은 자신들의 목적들에 걸맞게 산 노동과 죽은 노동을, 즉 노동자들과 노동 도구들을 신중하게 구성한 조직이다. 이러한 조직의 형태와 성격은 그것이 수행하는 목적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럼 그 목적들이란 무엇일까?

     

    오늘날, 생산은 자본에 의해 지배된다. 현금 소유자인 자본가는 공장을 세우고, 기계들과 원료들을 사고,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팔릴 수 있는 재화를 생산하도록 만든다. 다시 말해 그는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사서 일과시간 동안 소모한다. 그리고 그는 노동자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획득하고 자신들의 노동력을 계속 재충전할 수 있게 하는 노동력의 가치, 즉 임금을 지급한다. 원료의 가치에 덧붙여지는, 노동자들이 일과를 통해 창조한 어느 한 노동자의 가치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의 가치와 노동력의 대가보다 크다. 자본가가 생산물을 팔고 난 후 얻게 되는 차익분, 즉 잉여가치는 자본가의 이윤을 구성한다. 그것이 소모되지 않는 한, 그것은 새로운 자본으로 축적된다. 이런 점에서 노동계급의 노동력은 금광에 비유될 수 있다. 왜냐하면, 금광 채굴이 거기에 투자된 비용의 초과분을 산출해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자본에 의한 노동의 착취라는 개념과도 통한다. 자본 그 자체는 노동의 산물이다, 즉 자본의 크기는 축적된 잉여가치이다.

     

    자본은 생산의 지배자이다. 즉 자본은 공장, 기계류, 생산된 재화를 소유한다. 노동자는 자본의 명령에 따라 일해야 하고, 자본의 목적은 작업을 지배하며, 작업 조직의 성격을 규정한다. 자본의 목적은 이윤을 만드는 것이다. 자본가는 그를 따르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기 위한 욕망 때문에 추동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한 필요성에 의해 추동된다. 예를 들어 만약 어떤 자본가가 신발 공장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의 발이 고통을 받는 것에 대한 연민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회사가 이윤을 창출해야 하고, 이윤이 충분치 않을 경우 파산할 것이라는 사실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물론 이윤을 내는 보통의 방법은 좋은 가격에서 팔릴 수 있는 재화를 생산하는 것이다. 또한, 보통 그것들은 구매자들이 필요로 하고, 실용적인 소비재일 경우에만 판매될 수 있다. 그래서 신발 제조자는 이윤을 내기 위해 잘 맞는 신발을 생산해야 하고, 더 질이 좋거나 더 값싼 신발을 생산해야 한다. 그리하여 보통 자본주의적 생산은, 사람들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그들에게 제공한다는 생산의 본래 목적을 달성한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에, 예컨대 부자들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사치품들을 생산하는 편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하찮은 것들을 생산하는 편이 더 이윤이 많이 남는다는 지점과 문을 닫을지도 모를 경쟁자들에게 기계 전체를 파는 것이 더욱 이윤이 많이 남는다는 지점에서 볼 때, 오늘날의 자본에 생산의 근본적인 목적은 이윤이다.

     

    이러한 목적은 작업장에서의 작업 조직의 성격을 규정한다. 우선 그것은 한 사람의 절대적 지배자에 의한 명령을 수립한다. 만약 그가 소유주 자신이라면, 그는 자기 자본을 잃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하며, 반대로 그는 자본을 증식시켜야만 한다. 그의 이해가 작업을 지배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그의 “소유”이고 그에게 복종해야만 된다. 자본가는 또한 작업에서 노동자가 어느 부분으로 역할 하고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규정한다. 그래서 결국 노동자들은 긴 노동시간과 고된 작업을 불평하려 할 때, 자본가는 노동자 자신들이 더 걱정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버린 후에도, 밤늦게까지도 계속 일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노동자의 임무와 걱정거리를 지적할 것이다. 하지만 자본가는, 아마 자기 스스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자신이 밤늦도록 깨어있으면서 했던 근심 모두는 생산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윤을 위한 것을 말하는 것을 잊었다. 즉, 그가 근심하는 것은 결국 어떻게 하면 그의 상품을 내다 팔까, 어떻게 하면 경쟁자와의 경쟁에서 이길까, 어떻게 하면 되도록 많은 잉여가치를 자신의 가방에 넣을 수 있을까에 관련된 문제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생산적 작업이 아니다. 그가 그의 경쟁자들과 싸움에 분투하는 것은 사회에 유용하지 않다. 그러나 그가 지배자이며, 그의 목적이 작업장을 지배한다.

     

    만약 그가 경영자로 임명된 사람이라면, 그는 주주를 위한 이윤을 생산하라고 임명된 것이라는 점을 알 것이다. 만약 이윤을 생산하도록 경영하지 않는다면, 그는 해고되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것이다. 물론 그는 생산 작업을 감독할 정도로, 자기 분야의 기술을 잘 알고 있는 훌륭한 전문가여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이윤을 만들어내는 일에 대해 더욱 전문적이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최소비용으로 생산하는 방법, 상품을 팔 수 있는 가장 성공적인 방법 그리고 자신의 경쟁자를 이기는 방법을 발견하여 순이익을 증가시키는 기술에 통달해야만 한다. 모든 감독자는 이 모든 것들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경영 또는 사업을 규정한다. 또한, 그것은 작업장 내에서의 조직도 규정한다.

     

    작업장 내에서의 생산조직은 기술적 조직과 상업적 조직이라는 두 가지 방향을 따라 수행된다. 최근 100여 년 동안 과학의 눈부신 발전에 기반을 두어서 이루어진 급속한 기술발전은 모든 업종에서 작업 방식을 개선해왔다. 더 좋은 기술은 경쟁에 있어서 최상의 무기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경쟁자의 희생에 의한 초과 이윤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 발전은 노동생산성을 증가시켰고, 사용과 소비를 위한 재화를 값싸게, 더 풍부하게 그리고 더욱 다양하게 만들었으며, 편의수단을 증가시켰다. 그리고 생계비용, 즉 노동력 가치를 낮춤으로써 자본의 이윤을 막대하게 증가시켰다. 이러한 높은 기술발전 수준으로 인해 공장에는 대학과 실험실에서 훈련된 많은 전문가, 엔지니어들, 화학자들, 물리학자들이 늘어났다. 그들은 복잡한 기술적 공정들을 감독하고, 새로운 과학적 발견들의 규칙적인 응용을 통해, 기술적 공정들을 개선토록 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그들의 감독하에서 숙련 기술자들과 노동자들이 움직인다. 그래서 기술적 조직은 다양한 종류의 노동자들, 즉 소수의 대학에서 교육받은 전문가들, 많은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들과 숙련노동자들, 이외에 다수의 육체노동을 하는 비숙련 노동자들의 잘 규제된 조합을 보여준다. 그들의 공동 노력이 기계를 돌리고 상품을 생산하는데 요구된다.

     

    상업조직은 생산물의 판매를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시장과 가격을 연구하고, 광고하며, 구매를 자극하기 위해 판매원들을 훈련시킨다. 상업조직은 사람과 수단의 분배를 통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이른바 과학적 경영을 포함한다. 예컨대 그것은 노동자들이 더욱 열심히 일하도록 촉진하기 위해 성과급 제도를 고안한다. 그것은 대학에서조차 광고를 일종의 과학적 가르침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런 일들은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다. 때로는 자본가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기술보다도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본가들 상호 간의 경쟁에서의 중요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에 생활필수품들을 제공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이와 같은 일들은 전적으로 쓸데없이 능력을 낭비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술적 조직의 형태들도 역시 이윤이라는 같은 동기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고임금 과학 전문가들이 소수로 한정되는 것은 비숙련 노동자의 수가 막대하다는 점과 연관되어있다. 따라서 사회의 구조는 전반적으로 대중들에게는 낮은 임금과 열악한 교육환경을, 과학적 훈련을 받은 소수에게는 -더 높은 교육은 지위를 지속해서 충족시킬 것을 요구하는 한 - 높은 보수라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기술직 관리들은 생산의 기술적 공정만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그들은 노동자들의 감독으로서도 행동하여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재화의 생산이 이윤의 생산과 분리 불가능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생산의 과학적 리더이자, 착취의 조력자이기도 하다는 작업장 관리들의 성격은 하나의 존재이자 같은 행동으로 내재적으로 결합하여 있다. 그래서 그들의 위치는 애매하다. 한편으로 원료에서 재화로의 변형과정을 감독하는 그들의 과학적 지식을 통해 보면, 그리고 이윤을 커지게 하는 그들의 기술을 통해 보면, 그들도 역시 자본에 착취당하기에, 그들은 육체 노동자들의 협력자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자본의 하수인이고, 노동자들을 닦달하며,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을 도와준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이 자본에 의해 어디서나 착취 받는 것은 아니라고 보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공기업이나 협동조합 형식의 공장이 그러한 경우이다. 심지어는 공기업이 가끔은 그 이윤을 공적자금으로 전환시키기까지도 하지만, 그리하여 세금에 경감되는 것은 재산을 가진 계급일 뿐이었다. 이런 점에서 공기업이나 다른 기업이나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협동조합도 일반적으로 사기업과 경쟁해야만 하고, 공기업도 자본주의적 공적 영역에서 자본가 집단의 세심한 비판을 통해 통제된다. 언제나 사업상 필요로 빌린 자본은 산출된 이윤 중에서 이자를 요구한다. 다른 기업체에서처럼 거기에서도 감독의 개인적 명령과 작업 속도를 높이려는 요구가 존재한다. 따라서 거기에서도 다른 모든 자본주의 기업처럼 같은 착취가 존재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그 외에 어떤 이윤 일부를 임금을 올리거나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데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것들은 감각 있고 관대한 감독자들이 더 좋은 처우와 그들이 특권적 위치에 있다는 인상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접근하여, 그 대가로 더 많은 산출량을 내고 이윤을 증가시키는 사기업 모델로 비유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공기업이든, 협동조합 형태의 공장이든 노동자들이 공동체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 하인으로 스스로를 여기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감독자와 노동자는 그들 각각의 계급이 가진 사회적 환경과 감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여기서 노동은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성격을 가진다. 그것은 다소 더 좋거나 더 나쁜 조건을 가진다는 표면적인 차이 하에서 더 심층적인 본질적 본성을 구성한다.

     

    자본주의 하의 노동은 그 본성상 억압체제이다. 노동자들은 가혹한 억압에 의해서든지, 더 친절한 설득의 기술에 의해서든지 그들의 힘을 최대한 많이 사용하게끔 유도돼야 한다. 자본 그 자체는 억압의 과정이다. 만약 자본이 경쟁력이 없고, 이윤이 불충분하다면, 사업이 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압박에 맞서서 노동자들은 지속적인 본능적 저항을 통해 스스로를 방어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즉 만약 노동자들이 기꺼이 자본에 양보하려 한다면, 자본은 평소의 노동력보다 더 많은 노동력을 쥐어짜려들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노동자들의 체력적 토대를 침식할 것이며, 그들의 생명력은 때가 되기 전에 고갈될 것이고, 어느 정도까지는 작금의 경우이기도 하지만,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의 건강과 힘이 황폐해지고, 소진되는 결과를 일으킬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저항해야 한다. 따라서 모든 작업장과 모든 기업은 심지어 파업이나 임금 삭감 등 첨예한 투쟁의 순간 이외에도, 지속적인 조용한 전쟁 또는 영구적인 투쟁 또는 억압과 저항이 진행되는 현장이다. 그것의 영향력이 향상하느냐 쇠퇴하느냐에 따라서 임금, 노동시간과 노동속도의 특정한 표준이 결정되며, 참을 수 있는 것과 참을 수 없는 수준(만약 참을 수 없다면 생산 전체가 영향받는다)의 바로 그 한계가 유지된다. 따라서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두 계급은, 가장 심층적인 본질로 보면, 상반된 이해로 인해 일상적 작업과정에서 서로를 참아내는 동안에도 서로 화해 불가능한 적이며, 싸우지 않고 살아갈 때도 일종의 무장된 평화를 유지하는 것에 불과하다.

     

    노동 그 자체는 결코 강압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동은 본래 인간에게 부과된 필연성이다. 다른 모든 생명체처럼, 인간은 자신의 먹을 것을 얻기 위해 힘을 써야 한다. 자연은 이 필연성에 적합하도록 인간들에게 신체 기관, 정신적인 능력, 근육, 신경 그리고 두뇌를 주었다. 그들의 욕구와 그들의 수단은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서로 조화롭게 적응된다. 따라서 그들의 손발과 능력들을 보통 사용하는 것으로서의 노동은 인간과 동물의 전형적인 충동이다. 먹을 것과 살 곳을 마련해야만 한다는 이 필연성 속에는 분명히 억압적 요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근육과 신경의 사용 과정, 즉 그곳에서 모든 그들의 변환의 과정과 그 후 이어지는 변화의 과정, 즉 일이나 놀이의 과정에서 내재하여 있는 해방된 자발성이 인간 본성의 밑바탕에 놓여 있다. 인간의 필요가 주는 압박은 그에게 규칙적인 작업을 하게 하고, 그의 순간적인 충동을 억누르게 하며, 자기통제와 인내심을 갖게 해준다. 하지만 자신과 가족 그리고 공동체의 보존을 위해서 필연적인 이러한 자기통제는, 자신 내부 또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장애물을 극복하였다는 만족감을 제공하며, 스스로 부과한 목적을 달성했다는 자부심을 준다. 가족, 마을, 마을의 실행과 관습과 그것의 사회적 성격에 의해서 고착된 규제적인 노동습관은 새로운 본성 자체로 성장하며, 그리고 삶의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성장하고, 필요와 권력, 의무와 배치의 조화로운 단위로 성장한다. 이처럼, 일생의 힘들어도 만족스러운 노력을 통해 경작된 주변 자연은 안전한 삶의 터전으로 변형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방식이 있는데, 오래된 숙련성은 장인에게 양질에 아름답고 유용한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 그들의 기술과 환상을 응용했다는 기쁨을 준다. 


    <원문 출처> https://www.marxists.org/archive/pannekoe/1947/workers-councils.htm#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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