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 『실천』지의 복간은 사회실천연구소의 거듭남입니다.
  • 권두언

    『실천』지의 복간은 사회실천연구소의 거듭남입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의 세월은 저의 삶을 다시 시작하는 뜻깊은 시기였습니다. 정년을 5년 남겨두고 34년 동안 봉직했던 대학을 떠나 맑스주의자로서의 본격적인 실천 활동을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함께 공부했던 몇몇 맑스주의 연구자들과 『사회이론연구소 : 빛나는 전망』을 만들고, 15년 동안 혁명적사회주의 운동을 같이 해온 젊은 활동가들과『사회주의정치연합』을 만들어 혁명적사회주의 운동의 실천을 다짐했습니다. 또한 그러한 운동과 맞물려『맑스주의 대학원』을 설립하여 젊은 맑스주의 연구자와 활동가들을 양성하자는 장기 전망을 한 주체형성 운동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작은 움직임은 첫발을 내딛는 시작이었습니다. 맑스주의가 분과학문의 벽을 넘어서는 사상이론과 실천운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은 사회과학의 분과학문에 갇혀있었고, 역사학을 포함한 보다 넓은 지평과 만나지 못하고 있었기에 맑스주의 종합연구소를 향한 머나먼 길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했습니다. 이때 사회주의 역사학자 최규진과 맑스주의 경제학자 김수행과 깊은 토론과 의기투합이 이루어졌습니다. 2006년 여름 연구소 창립을 위한 수련회에서 드디어『사회실천연구소』의 설립을 결정하고, 그해 11월 15일 연구소에 참가를 호소하는 창립취지문을 알렸습니다.

     몇 단락을 옮겨보겠습니다.


     “그동안 남한에서 좌파를 자임하는 세력은 사상이념의 생산과 유통에 무능했거나 게을렀던 것이 사실입니다. 노동계급 투쟁이 개량주의에 물들어간 데에는 ‘이론의 빈곤’도 주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사회민주주의와 제3의 사상이념을 내세우는 정치세력과 관계 맺은 연구자들은 이른바 ‘정책대안’을 사민주의 정치세력에게 제공함으로써 부르주아지의 이해에 간접적으로 복무해 왔습니다.”

     “여러 사회운동 영역에서 연구소가 설립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부르주아지와 국가의 지원을 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량주의 조합운동이나 노동운동의 지원을 받으면서 생존에 목맬 뿐이고, 총체적인 사상이념의 생산유통과는 아무런 관련을 맺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현상은 혁명운동의 쇠퇴, 그리고 실천에서 멀어진 연구진영의 무능력을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의 역사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은 ‘남한의 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증폭된 모순과 격화되는 계급투쟁을 노동자 관점에서 분석하고 노동운동의 미래를 전망하는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연구소가 절실하다’라는 것입니다. 남한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전 세계 노동계급에 희망이 되는 새로운 사회의 모습과 그 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어야 할 책임이 모든 실천적 연구자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실천연구소』는 사회주의운동 종합연구소를 지향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밑바닥을 다지면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노동계급해방을 위한 사상이론을 곧추세우는 일에 나서려고 합니다. …… 지금 관계 맺고 있는 연구조직과 실천조직을 넘어서서 노동계급운동의 전망을 열어가는 ‘사회실천연구소’ 설립에 함께 할 것을 동지들에게 제안합니다.”

     

     사회실천연구소에는 연구자뿐만 아니라 사회주의·맑스주의 운동을 하는 실천 활동가들도 함께 참여했습니다. 특히 2008년에는 이른바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건으로 탄압받았던 활동가들도 있었습니다. 연구소 창립 때부터 함께 해온 동지들 가운데 3년 전 먼저 간 김수행 동지와 5년 전 불의의 사고로 너무 일찍 간 남궁원 동지를 우리는 잊지 못합니다. 여기서 실천운동으로서의 혁명적 맑스주의운동과 코뮤니스트운동은 자세히 다루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맑스주의 교육운동(‘사회과학대학원’운동)에 대해서도 다른 기회에 평가하도록 하겠습니다. 12년 동안의 연구소 활동은 『실천』지 발간과 「이론정세토론회」에 집중되었습니다. 이글은『실천』지의 복간을 깊은 반성과 함께 뜨겁게 축하하는 의미로만 삼겠습니다.

     

     2006년 12월에 창간한 실천지는 특집으로 ‘희망의 불꽃’, 사회주의에서 아서 맥이완의 “왜 우리는 모든 일이 벌어진 뒤에도 여전히 사회주의자이고 맑스주의자인가”, 리차드 레빈스의 “빈 무덤가에서의 찬양 : 사회주의의 미래에 대한 성찰”, 그리고 레오 파니치의 “사회주의를 새롭게 하기”를 싣고, 기획 글, 정세분석 글, 역사 속의 반란자들 연재 첫 번째 인물로 스파르타쿠스를 그리고 서평을 실었습니다. 2007년 1월호에는 특집, 사회주의, ‘비관’을 넘어, 기획1에서 “요동치고 있는 지구별”을, 기획2에서는 욕망과 혁명의 첫 번째 연재물로 빌헬름 라이히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정신분석”을 그리고 정세분석글로 “북한 또는 북한문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다루었습니다. 2012년까지 실천지의 편집을 책임진 황동하 동지는 지닌 열정과 힘을 쏟아 맑스주의 이론을 선진노동자들과 맑스주의 연구자들에게 체계적으로 알리고 해설하는 중심적 역할을 했습니다.

     2007년 1월호를 내면서 동지는 “새로운 날들, 더 나은 삶을 꿈꾸며...”에서 이렇게 편집자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에 나오는 마지막 대사를 인용하면서, “자본주의는 우리의 삶을 황폐하게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의 목숨까지도 요구한다. 그런데 그 자본주의는 여전히 더욱 힘을 발휘하고 있다. (···) 그렇지만 인간은 비참한 상황에 부딪혀 있을수록 더욱더 지금까지 이루어진 것보다 더 나은 삶에 대해 꿈을 꾸게 된다.”

     1년 후 2008년 1월호는 특집으로 『초기 코민테른과 유럽혁명』이라는 주제 밑에 세 개의 글을 싣고 기획1로 「욕망과 혁명」의 연재 글을, 기획2로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본주의의 얼굴」을, 그리고 기획3으로 「소비에트 다시보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다시 편집자의 글을 옮겨봅니다.『역사의 천사』라는 제목입니다.


     “문득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쓰러져 간 혁명가들을 생각해본다.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사람들이건, 그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이들 혁명가에게서 공통분모를 굳이 찾자면, 제 한 몸을 위한 영달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신념이 아니었을까. … 그러기에 이들은 꿈과 이상이 없는 낡은 현실에서 나약하게 안주하거나 모순에 찬 동시대와 비굴하게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고난의 길, 어쩌면 시시각각으로 닥쳐오는 죽음의 위험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지 역사에 몸을 던진 사람들의 삶을 떠올려 보면서, 과연 ‘사람의 길이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 그 역사 속에서 우리는 미래로 나아가는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5 년여를 실천지는 제몫을 다했습니다. 2011년 11월호(통권 60호)는 특집 『다시 마르크스에게 길을 묻다』연재 글의 스물세 번째로 「자본주의와 삶(3)」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연재 글은 2009년 12월호(통권 37호)의 연재 글 첫 번째 「마르크스주의와 실천」을 시작으로 38호 「유물론적 역사관」, 39호 「자본주의와 세계화」, 40호 「자본주의와 국가」, 41호 「계급과 계급의식」, 42호 「계급과 계급분석」, 43호 「조직(노동조합)」, 44호 「이행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 45호 「시민운동의 가능성과 한계」, 46호 「‘21세기 사회주의’ 비판」, 47호 「계급과 젠더와 인종」, 48호 「성정치」, 49호 「실천」, 51호 「지구화와 민족주의」, 52호 「국가」, 53호 「계급」, 54호 「젠더」, 55호 「조직」, 56호 「섹슈얼리티」, 57호 「새로운 사회운동」, 58호 「자본주의와 삶(1)」, 59호 「자본주의와 삶(2)」, 61호 「자본주의와 삶(4)」로 이어지는 2년 동안의 맑스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연재물이었습니다. 사실 이 연재물은 2011년 11월호(통권 60호)에서 끝을 맺습니다.

     다시 통권 60호에 실린 편집자의 글을 옮겨보겠습니다.

     『또 다른 시작을 위하여』에서 실천지의 휴식(휴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실천』지를 펴낸지도 어느덧 5년이 흘렀다. 서구 좌파진영의 글을 번역하여 소개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형식적으로 보면 묵묵히 그 일을 해냈다. 말 그대로 브레이크 없이 달려온 것 같다.

     『실천』지가 지금 이곳에서 어떤 의미 있는 구실을 놓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곳곳에서 『실천』지 이야기가 들리고 있다. 성과도 있었고 오류도 있었을 것이다. 『실천』지는 하나의 실험이었다. 그 실험은 무엇을 바꾸려 하고 무엇을 지향하려 했는지를 스스로 묻는다.

     앞으로『실천』지는 독자들이 좀 더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문제를 치밀하게 기획해서 다룰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와 삶」이라는 주제로 자본주의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다. 누군가는 ‘세상을 바꾼다는 것, 그것은 나날의 삶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나날의 삶, 일상은 재화의 생산뿐만 아니라, 인간 자신과 인간들의 관계가 형성되는 구체적인 삶의 장이다”

     

     실천지는 그동안 어려운 글들을 발굴하고 번역한『사회실천연구소』회원들의 공동실천 결과물입니다. 3년 전쯤 잠시 휴간한 실천지를 복간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고, 2018년에 이르러서 실천지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실천연구소의 새로운 전망을 세우는 일과 함께 재창간을 모색해야 한다는 뜻에 공감하고 그 일을 함께 어깨 걸고 가자는데 회원 모두가 앞장서게 됐습니다. 재창간하는『실천』지의 편집방향과 계획은 편집팀에서 소상하게 설명하리라고 봅니다. 여기서는「연구소의 거듭남」이라는 의미에서 몇 가지 실현가능성을 짚어보겠습니다.

     12년 전 『사회실천연구소』가 맑스주의 종합연구소를 지향하는 장기적 목표를 내다보면서 전 세계 노동계급에 희망이 되는 새로운 사회의 모습과 그 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음을 깊이 반성합니다. 물론 『실천』지를 통해 5~6년 동안 맑스주의에 관련한 훌륭한 글들을 번역하고 맑스주의로부터 그 길을 찾자고 노력한 성과는 이어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몇 가지 각오를 하고 다시 한 번 한 걸음 내딛습니다. 모든 연구소 회원은 각자 자신의 연재 글을 맑스주의와 연관하여 선보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훌륭한 글의 번역도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두 번째로 연구소는 지금까지의 「이론정세토론회」를 넘어서서 매달 「맑스주의운동 콜로키움」을 열고 맑스주의 종합연구소로서의 본격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합니다. 세 번째로 이들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10여 년 전 실험적으로 선보였던 맑스주의 대학(원)을 통한 강좌를 열고 맑스주의 연구자와 사회주의 노동자를 포함한 혁명적 주체를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 네 번째로 맑스주의 연구자와 혁명적 실천가가 이론적 실천을 뛰어넘어 우리 사회 그리고 나아가 세계 사회의 변혁을 일구어내는 구체적 행동을 포함한 실천운동에 앞장서겠습니다. 이러한 구체적 운동과 사업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연구소가 연구단체를 넘어선 혁명적 주체임을 증명하겠습니다.

     6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복간되는 『실천』지가 우리 연구소의 밝고 힘찬 미래를 드러낼 징표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2018년 5월

       『사회실천연구소』를 대신하여 

    오세철 드림

     

     

     

     

     

     4월호.jpg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00 communistleft 32 2018-10-23
99 communistleft 93 2018-10-14
98 communistleft 58 2018-10-12
97 communistleft 85 2018-10-04
96 communistleft 111 2018-09-27
95 communistleft 69 2018-09-19
94 communistleft 40 2018-09-14
93 communistleft 136 2018-08-23
92 communistleft 96 2018-08-14
communistleft 216 2018-07-17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