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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원한 코뮤니스트 김수행을 기리는 열 가지 기억
  • 영원한 코뮤니스트 김수행을 기리는 열 가지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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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수행은 나의 친구이면서 마르크스주의자 동지이자 코뮤니스트 동지다. 우리 모두가 같이 이루어야 할 역사적 과제와 실천을 남겨두고 먼저 간 동지를 기억하며, 소중한 그와의 만남을 남기고 싶다. 그와 얽힌 10가지 기억을 정리한다.

    하나. 첫 만남.

    김수행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한신대에서 해직당한 후 기고하던 학술계간지 <현상과 인식>(1977년 창간) 필자들과의 만나는 자리였다. 우리 둘은 40대 초반이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엇물림을 줄곧 시도한 <현상과 인식>에는 우리나라의 비판적 지식인들이 필자로 참여했는데, 그가 실은 글은 ‘현대 학문의 새 경향’(1983년 여름호), ‘상업자본과 상업이윤’(1986년 봄호), ‘현대 경제학의 새로운 동향들’(1983년 봄호) 등이다. 연구 논문과 토론 그리고 뒷풀이에서의 이야기로 30년을 넘는 동지 관계를 시작했다.


    둘. 사회과학 대학원 설립

    2004년부터 ‘사회과학 대학원’ 설립을 위한 모임을 가졌다. 몇 차례 토론과 외국 사례 발표회를 거쳐 2015년 10월 김수행과 나는 다른 동지들과 함께 ‘사회과학 대학원’ 설립을 제안한다. 우리는 설립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역사 진보의 과정, 즉, 계급 없는 사회, 모든 억압과 착취가 사라진 인간 해방의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인류의 미래는 역사주체로서의 노동계급과 민중과 유기적 지식인의 변증법적 결합·통일을 통해 이루어진다.” “자본주의의 근본적 위기를 더욱 가혹한 억압·착취를 통하여 모면하려는 21세기 자본주의 체제의 시대에 노동과정을 포함한 인간의 총체적 삶의 과정이 비인간적으로 파괴되고 변혁주체로서의 노동계급과 민중이 철저하게 분권화될 뿐 아니라 지식이 시장에서 상품화되고 교육이 지배 이데올로기화되고 있음을 인식한다.”

    자본주의에 맞설 수 있는 유기적 지식인을 양성할 고등교육기관으로서 부르주아 체제에 포섭되지 않는 대안학교의 건설이 시급하다고 우리는 보았다. 이렇게 시작한 사회과학 대학원의 실험은 2008년 봄학기부터 세 학기 정도 시험운영을 하고 그 후 김수행이 대표로 전념했다. 나는 2008년 2월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을 만들면서 역할분담을 했다.

    10년이 지나 다시 한 번 새롭게 마르크스주의 학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이 때 그가 먼저 떠났다. 안타까울 뿐이다.


    셋. 사회실천연구소 설립

    2006년 11월 사회실천연구소 설립 제안이 있기 전 종합 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 연구소를 향한 주제를 놓고 김수행과 나, 그리고 최규진이 토론했다. 이 토론이 사회과학 대학원 설립과 맞물려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 제안에 김수행은 흔쾌히 함께 만들어 가자고 했고, 그 날 우리는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셨다. 김수행은 나처럼 자주 많은 양의 술을 마시지는 않지만 애주가다. 술맛 나는 자리에서는 대주가가 된다. 특별히 막걸리를 좋아했다. 정년퇴임 후 주로 집에서 글을 쓰고 밖으로 나오지 않아 연구소에 가끔 들렀지만 마르크스주의 종합 연구소와 마르크스주의 학교를 향한 그의 꿈과 열정은 젊은 회원 연구자들보다 훨씬 컸다. 연구소 설립 취지에 “사회실천 연구소는 사회주의 운동 종합연구소를 지향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밑바닥을 다지면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노동계급 해방을 위한 사상을 곧추세우는 일에 나서려고 합니다”라고 했다. 우리가 말한대로 김수행과 함께 했던 일들을 이루어 갈 것이다.


    넷. 정년퇴임

    한신대에서 해직된 후 시간강사로 지내다 서울대 교수가 된 것은 김수행 개인에게는 행운이었다. 개인의 행운을 넘어 그것은 서울대를 포함한 여러 대학 학생들의 교과과정 개혁 투쟁의 성과였다. 1984년은 전두환 체제 밑에서 억압받아 숨죽여왔던 학생운동이 한꺼번에 분출한 해였다. 학생회장을 스스로 뽑고 군사훈련을 반대하고 학원 자율화를 주장하는 대자보가 곳곳에 나붙고 집회가 열렸다. <자본론>을 가르치는 마르크스 경제학자를 채용하고 그들이 담당할 교과목을 개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김수행은 서울대에서 24년을 원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자리를 굳게 지켰다. 재직기간이 25년이 채 안된다고 그는 명예교수가 되지 못했다. 더구나 자신을 이을 후임교수를 선택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2008년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자리에 나는 친구이자 동지 대표로 축사를 했다. 나는 2004년에 이미 명예퇴직을 했기 때문에 선배라고 농담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앞에 이야기한 마르스크주의 학교와 마르크스 연구소를 만드는 데 앞장섰던 김수행이 정년퇴임을 하더라도 지금부터 다시 마르크스주의 운동이 시작되는데 발벗고 나설 것이고, 그 대열에 우리 모두가 같이 서자고 했다. 마르크스주의자 김수행에게 정년은 없다. 그 후 성공회대에서 그를 석좌교수로 초빙한 것은 그가 다시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징표였다. 아, 그런데 몇 걸음 떼어놓다가 가다니!


    다섯.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 재판 투쟁

    2008년 8월 26일 나를 포함한 일곱 명의 동지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긴급체포되어 서울 종로구 옥인동 공안분실에 잡혀있을 때 김수행은 ‘참세상’에 가장 먼저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는 이명박 정권을 규탄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그 글에서 “이명박 정권은 오세철 교수와 동료들의 구속을 빨리 풀고 ‘새로운 한국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데 동참하기 바란다. 이 벌집, 저 벌집을 자꾸 쑤시다가는 벌들의 반격을 받아 자기의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몰락하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재판과정에서는 변호인 측 증인으로 참석해 판사와 검사에게 마르크스주의와 사상·학문의 자유, 그리고 자본주의의 모순과 그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에 대해 호통치며 일갈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과 집회에 참석해 힘차게 발언하던 김수행의 모습은 많은 사회주의자들에게 큰 힘이 됐다. 그는 서슴지 않고 “나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도 잡아가야지”라며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친, 행동하는 마르크스주의자였다.


    여섯. 단호하고 간결한 성품

    김수행은 경상도 사나이라 말수가 적지만 한마디 하면 그 뜻이 확실하다. 여기서 처음 밝히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사회과학 대학원의 대표를 맡고 내가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에 참여했을 때다. 조직 운동을 할 때에는 늘 사무실 공간이 필요하다. 그 때 그 때 돈을 모은다. 교수직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동지들보다 여유가 있어 십일조를 냈다. ‘사노련’ 사무실을 얻어야 하는데 목돈이 없었다.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사무실 보증금에 돈을 보탠 적이 있는데, 그 일부를 차용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김수행을 만났다. 얼마를 빼 갈테니 그 부분을 메꿔달라고 했다. “그래 알았어.” 단 한 마디였다. 여러 말이 필요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머리를 굴리지 않는다. 이른바 ‘진보적’인 사람들이 보이는 약삭빠름과 여기저기를 살피는 못된 버릇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나이가 들수록 단순명쾌하고 낙관적이 되는 마르크스주의자의 훌륭한 본보기를 보여준 사람이 김수행이다.


    일곱. 절제하는 술

    술 문제에 대하여 김수행은 그야말로 모범생이다. 애주가이며 가끔 대주가이지만 모임 뒷풀이는 밤 10시를 넘기지 않는다. 집이 멀어서가 아니라 그 다음날 일을 위해 절제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2012년 11월 내 고희 출판기념회에서 김수행은 여러 사람 앞에서 나의 술 문제를 비판했다. 내가 술을 너무 좋아해서 건강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일을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나의 가장 큰 약점을 호되게 나무라는 진정한 동지요 벗이었다. 그와 함께 한 잔 하면서 나도 밤 10시를 넘기지 않겠다고 약속하려고 했는데 술 동무가 우리 곁에 없다. 이 자리를 빌어 그에게 약속한다. 술에 빠지지 않고 즐기는 진정한 술꾼이 되겠노라고.


    여덟.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생각

    김수행은 2012년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한울)라는 책을 쉽게 풀어 출간했다. 그는 지금까지 러시아 혁명 이후 존재했던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 성격 규정을 한 적이 없다. 마르크수주의자들 사이의 토론과 논쟁에서도 그들 국가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앞으로 올 세계 혁명에 대한 실천적 쟁점을 정면으로 다루거나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름방학 동안 ‘사회실천연구소’가 개설한 ‘자본’ 강의가 끝난 후 수강생들과 함께 종강 뒤풀이를 하는 시간에 함께 하면서, ‘현실 사회주의’와 미래사회에 대한 입장을 같이 하게 됐다. 그의 책의 한 단락을 옮겨보자.

    “노동자가 해방되고 자본가도 해방되어 인간이 해방되는 ‘새로운 사회’가 공산주의이고 사회주의라고 가르쳤습니다. 사실상 소련이나 동유럽 나라들은 노동해방의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당과 정부의 관료들이 점점 더 인민 대중을 옥죄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나라들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였다는 것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을 조금만 읽었더라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소련식 자본주의’가 내부의 위기 때문에 ‘일반적 자본주의’로 성장·전화한 것이 바로 1990년의 소련사회의 붕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그의 책, 4쪽). 얼마나 명쾌한가?


    아홉. 코뮤니스트 김수행과 못다한 과제

    김수행은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면서 스스로 자신이 코뮤니스트임을 여러 동지들 앞에서 밝혔다. 젊었을 때의 관념으로서의 사상이 아니라 70 평생 마르크스주의 연구자와 코뮤니스트로서의 실천을 통한 귀결점이었다.

    우리는 그 후 그가 이론적으로 정립하려는 ‘새로운 사회’의 구체적 모습을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 모습을 책에 담아 그 내용과 세계 코뮤니스트 운동의 역사 속에서 검증되고 비판된 실천적 강령을 비교토론하는 논쟁을 하자고 약속했다. 우리가 마르크스주의자이며 코뮤니스트임을 대중과 함께 확인하고 실천하자고 다짐했다.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아쉬운 점이다. 김수행 동지, 우리가 못다한 과제를 다른 코뮤니스트와 함께 풀어갈 것을 약속하네.

    열. 그의 마지막 강의 - 재능 농성장 거리 강연

    김수행과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현장도 대학 강단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과 거리라고. 2011년부터 김수행과 나는 시청 앞 환구단 재능농상장에서 거리 강연을 했다. 그 해 11월 15일 김수행이 한 말이다.

    “모든 공장이나 생산수단이나 기계나 토지나 모든 것은 모든 사람들이 소유해서 모든 사람을 위해 사용하는, 이런 사회를 만들자고 자꾸 우리는 외쳐야 합니다”

    “재능 투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회를 만들면 여러분이 재능교육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만듭시다.”

    잠시 중단했던 거리 강연을 금년 6월부터 혜화동 농성장에서 다시 시작했다. 1회는 내가, 2회는 김수행이 맡았다. 2015년 6월 26일 오후 6시, “세계 공황, 어디로 갈 것인가”였다. “좋은 자본주의는 있을 수 없다. 오직 자본주의를 폐절하고 넘어서는 ‘자유로운 개인이 연합’하는 코뮤니즘 만이 우리의 대안입니다”라고 김수행은 생애 마지막 강의를 했다. 이런 말이 있다. 배우는 무대에서 쓰러지고 선생을 실천의 현장에서 쓰러지는 거라고. 김수행은 재능투쟁 농성장의 거리에서 단호하고 힘찬 노동자의 세상을 외친 것이다.

    2015년 8월 18일

    오세철 

    <원문 출처> http://h2.khan.co.kr/201508071619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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