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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주의의 쇠퇴 (The decadence of capitalism) - 3장 자본주의에서의 쇠퇴
  • 자본주의의 쇠퇴

    The decadence of capitalism



    3장

    자본주의에서의 쇠퇴


    그러나 어떠한 접근법으로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쇠퇴를 정의할 것인가? 같은 종이나 유형인 경우가 아니라면 유사한 증상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같은 병을 진단 할 수는 없다. 과거 사회의 쇠퇴 성격을 전제로 하여 자본주의를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옛 증상과 원인이 자본주의에 적용될 때 타당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물질 생산 수준에서 사회체제가 생산력 발전에 종속되는 것은 자본주의 아래에서도 여전히 타당한 법칙이다. 인류가 “필요성의 지배” 아래 사는 한, 즉 물질적 생존의 문제가 없어지거나 적어도 부차적인 문제가 되는, 그러기에 인류가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하는 그러한 풍요의 단계에 도달하지 않는 한, 경제 체제의 첫 번째 기능은 생산력의 발전이다. 게다가, 경쟁적 시장경제를 일반화하면서 자본주의(발전하지 않는 자본은 소멸하거나 다른 손에 넘겨지게 되어 있는 체제)는 이러한 발전의 필요성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봉건제와 노예제에서와같이 자본주의에서도 생산력의 불충분한 발전은 역사적 의미로 죽음의 막다른 골목을 나타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다른 사회에서와같이 쇠퇴의 단계를 나타내거나 나타내야만 하는가?

     

    자본주의는 여전히 첫째, 계급으로 나누어진 사회이고, 둘째 인간이 계속 경제적 필요의 지배 속에 살아가는 그래서 그것의 사회구조에 무의식적으로 종속된 사회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과거 사회의 특정한 본질적 특성, 특히 쇠퇴 단계의 출현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특성을 발견한다. 이러한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집단의식이 현실에 뒤처지는 것, 지배계급의 권력이 생산 관계의 유효성에 의존적인 것, 옛 사회로부터 유래된 관습과 습관의 비중과 관성, 낡은 사회 형식의 소멸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그리고 새로운 역사적 계획이 사회 내에서 싹이 트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새로운 사회 형식의 도달이 불가한 것. 그래서 그 이전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는 쇠퇴의 시기를 겪을 수 있고 또 반드시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착취에 기반을 둔 모든 사회에서 공통적인 이러한 특성과 함께 자본주의는 노예제나 봉건제와 근본적으로 다른 특성도 지니고 있다. 첫째로, 자본주의의 부정이자 그 극복을 구성하는 체제 자체는 착취체제가 아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쇠퇴는 다른 체제에 비해서 새로운 특이성을 지니고 있다.

     

    사회주의는 그것이 극복하게 될 그 사회 내에서 자라지 않는 역사상 최초의 체제이다. 봉건적 경제 관계는 후기 로마제국 안에서 중앙권력으로부터 다소 독립적으로 된 지역에서 탄생했고 자본주의는 봉건 사회의 자치적인 도시로부터, 그 이후 도시에서 태어났다. 두 경우 모두에서 미래 지배계급은 그 이전의 지배계급을 점진적으로 대체했다.

     

    반대로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 내에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 지배계급의 이윤의 직접적 원천인 피착취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지배계급의 권력을 전적으로 파괴하지 않고서는 그 자신의 역사적 기획을 진전시킬 수 없다. 과거와 달리 두 체제의 공존은 배제된다. 자본주의는 전 세계의 생산을 지구 전체를 통합하는 하나의 회로 속에 편입시킨 최초의 체제이기 때문에 한 나라에서의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쇠퇴가 그전보다 더 분명하고 더 폭력적인 쇠퇴가 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봉건제 자체는 더는 만족시킬 수 없는 경제적 필요를 부분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게 한 부르주아지의 번영 덕분에 봉건제는 비록 군주제 형식 아래에서 일지라도 프랑스에서 18세기까지 생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자신의 무덤을 향해 스스로 돌진해 가는 자본주의의 경우는 아니다.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자는, 자본주의가 적응할 수 있는 잠재적으로 유용한 경쟁자가 아니라 수 세기의 억압에 의해 생겨나고 타협 불가능한 숙명적 적이다. 자본주의 쇠퇴의 모든 귀결은 통제 불가능하게 격렬하고 직접 사회에 떨어진다. 따라서 한편으로 이 쇠퇴는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격렬한 성격을 띠고, 다른 한편으로는 훨씬 더 짧다. 즉 이러한 영향이 더 분명하다는 것은 훨씬 더 갑작스러운 반동 시기를 의미한다.

     

    프롤레타리아트

     

    역사 속에서 다른 혁명계급과 대조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는 이전 생산체제의 쇠퇴기 동안에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산체제의 맨 처음부터 나타난다. 자본주의 사회가 절정점에 도달했을 때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미 하나의 경제 계급으로서 완전하게 발전해 있었다. 그 체제가 하강기에 들어서기 시작했을 때 그 체제의 무덤을 파는 자들, 즉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미 수적인 힘에 있어서 그 최고점에 달해 있었다. 자본주의의 종말은, 과거처럼, 즉 쇠락하는 낡은 세상의 거름더미 안에서 파괴의 건축가가 태어나고 발전하던 때처럼 그렇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두 가지 다른 요인이 자본주의 쇠퇴의 단축에 공헌한다.

     

    가 - 이념적 관계의 중요성 축소

    임노동과 자본의 체제 아래에서는 (노예제와 농노제 아래에서와는 대조적으로) 착취 관계를 중재하는 어떤 종교적, 정치적, 개인적 관계도 없다. 사회생활과 경제생활 사이의 훨씬 더 직접적 연결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쇠퇴기를 특징짓는 경제적 어려움에 대하여 사회적 수준에서 더욱 빠른 반응이 나타난다.

     

    나 - 결국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쟁(국가적이건 국제적이건)만을 위해 사는 자본주의는 발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사실 과거의 그 어떤 사회도 어떤 식으로든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의 보장 없이는 지속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과거에 이러한 발전은 존재하는 생산 관계의 내재적 성질은 아니었다. 지배계급 성원의 이윤과 특권은 그들 자신의 경제적 확장을 보장하는 능력에 직접 의존하지는 않았다. 농노나 노예의 노동으로부터 추출된 이윤은 그들의 개인적 소비나 사치에 바쳐졌다. 단지 우연적으로만 그것은 생산을 발전시키는 데 이용되었다. 이러한 체제가 그들의 경제적 모순에 대항하기 시작했을 때, 성장의 둔화 심지어 정체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았다면 지배계급이 즉각 약화되고 빈곤화되어 사회의 경제적 삶은 마비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아래서는 자본의 증가된 축적이 보장될 수 없다면 이윤추출의 전 과정, 그래서 모든 생산과정 자체가 가로막힌다.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적인 특성 중의 하나이다.

     

    한 체제 쇠퇴의 주요 특성은 기존하는 생산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는 사회가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긴 쇠퇴의 과정을 상상하기는 어려우며, 한 사회의 쇠퇴가 그 원인과 중요한 징표가 정확하게 규정될 수 있는 하나의 역사적 현상임은 명백하다. 자본주의 사회의 쇠퇴기는 그 이전 사회의 쇠퇴 단계들과 유사한 성격을 띠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자본주의의 쇠퇴는 다른 체제의 경우보다 더 짧고 격렬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렇게 말했으니 이제 이 분석은 자본주의 현실과 대면할 필요가 있다.

     

    쇠퇴론과 현대자본주의

     

    이 연구를 이 지점에서 시작했어야 했는데 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것은 결코 맞는 말이 아니다. 자본주의 쇠퇴의 개념은 1차 세계대전 발발에 의해 충격적으로 낙인찍힌 그 시기의 시작에 직면한 혁명가들에게나 오직 진정으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1차 세계대전 동안 제2 인터내셔널과 코민테른 사이의 분열은 자본주의 상승 시기의 종말과 그것이 “전쟁이냐 혁명이냐”의 시기에 진입한 것에 대한 논쟁의 맥락에서 벌어졌다. 그런데 그 이후 50년 이상의 반혁명을 겪으면서 그리고 바로 그 반혁명으로 인해서, 혁명이론은 세계의 현실이 겪는 그 변화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통찰력의 넓이와 깊이가 없었다.

     

    오늘날 이러한 이념적 터널의 끝에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다른 흐름은 매우 빈번한 경우에서 두 부류로 나뉘어 있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함의들’ 또는 ‘새로운 현실’(맑스주의는 대체되었다는)에 지나치게 흥미를 보이는 세력과 다른 한편으로 전자의 경향에 대한 반응으로서 옛 문헌과 사상에 대한 종교적 집착을 하는 세력(‘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를 그리고, 1848년 이래 혁명강령의 ‘불변성’을 주장하는 국제코뮤니스트당(ICP)의 보르디가주의자)이 그것이다. 이러한 두 축 사이에서 있으며 하지만 이 두 가지 흐름에 동시에 속하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트로츠키의 ‘이행강령’에 매달리며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어떤 새로운 이론(자주관리, 신자본주의, 제3세계주의)일지라도 약간의 신규회원을 얻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이 분명해지자마자 그것을 추종할 태세가 되어 있다. 이 결과, 맑스가 대략적인 윤곽만을 제시한 ‘쇠퇴’개념이 여전히 너무 어렴풋하고 혼란에 싸여 있어서 우리는 이 연구의 시작에서 그 정의를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상부구조

     

    상부구조는 최종적으로 분석하자면 경제의 단순한 산물에 불과하기에, ‘현실과의 대면’을 경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상부구조(이데올로기, 정치, 사회갈등)의 분석으로써 시작하는 것은 비논리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논증을 따르기 쉽게 하기 위하여 이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사실상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쇠퇴 시기의 상부 구조적 표출을 인식하기는 대체로 쉽지만(현대 도덕가들은 때때로 “문명의 위기” 등을 떠들어야 할 사명감을 느낀다), 저변의 경제과정에 대한 명확하고 뛰어난 분석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문명위기’에 대한 대부분의 분석은 관념적 경험주의를 넘어서지 못한다.

    우선 ‘상부구조’를 검토함으로써 우리는 가장 단순한 국면으로부터 시작해서 연구를 이해하기 더 쉽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이후에 경제적 문제를 풀기 위하여 여기서 중요한 논증을 확장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과학적 탐구에 중요한 일관성을 달성할 수 있다.

     

    이념적 영역

     

    여기서 우리는 지난 수 세기의 지배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 삶 사이의 연결고리 연구에 전적으로 파고들 수는 없고 단지 지배이데올로기의 해체 정도만을 말할 수 있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첫째, 그것이 수천 년 동안 계급 사회에 공통적인 이념적 유산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맹목적으로 기계적인 체제 아래서 사회적 관계는,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 수단으로서의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극히 중요하긴 하더라도 과거처럼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을 만큼 생산수단에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윤리’, ‘사회 진보의 찬미’, ‘제도에 대한 신뢰와 존경’, ‘자본주의 미래에 대한 믿음’이 지배이데올로기의 기초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모든 가치는 자본주의적 삶의 극악함으로 인해 50년 넘게 극심하게 침식당했다. 지난 50년 동안 10억 명이 그 쓸모없음이 더욱 명백해진 전쟁으로 죽은 그러한 사회의 가치를 칭송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 사회는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기본적인 생존수단을 획득하기 어려운 사회이며, 경제적으로 최강대국 두 나라의 군사비지출이 인류의 3분의 1의 수입과 맞먹는 사회이고, 세계에서 가장 특권을 누리는 지역에서 굶어 죽지 않을 권리의 대가로 일상의 끔찍한 비인간화가 빚어지는 사회이다.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마오 등과 같은 부류들이 거대한 이데올로기 작업에 의존하는 것(쇠퇴하는 로마 황제와 봉건제 후기의 군주를 신성시하는 숭배와 비교할 수 있는 현상), 교회의 위기, 오랫동안 기술적 필요에 잘못 적용된 교수법을 포기 하는 데 있어서 자본주의가 갖는 어려움, 그리고 지배 이데올로기의 주요 중심으로서의 대학의 위기(‘학생운동(Le mouvement e΄dudiant)’ 및 ‘비판(Critique)’’, 국제혁명, 옛 시리즈, 3호 참조), 이 모든 것은 쇠퇴의 첫 번째 증상인 이데올로기 해체의 날카로운 표현들이다.

     

    이러한 해체는 지난 12년 이상 젊은이들 사이에서 극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현대 세계에 대한 현세대의 경멸은 일종의 ‘주변화 지향(marginalism)’ 또는 반항적인 태도로 도피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결과시켰고, 신문과 매체에 수천 번 다루어졌다. 이러한 ‘앞으로 내닫기’는 실제로는 뒤늦게(1913년과 1917~1923년의 혁명의 파고 이후 50년이 지나서) 온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지체된 이유의 하나는 이념적 형식과 사회 경제적 현실 진화 사이의 항시적 시간 지연이다. 2차 세계대전을 겪지 않았거나 1917~1923년의 혁명적 파고에 뒤이은 반혁명의 격렬한 타격으로 고통당한 경험이 없는 세대의 도착을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또한 이러한 뒤늦은 발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의 결과로 체제가 즐긴 경제적 안정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허약함의 첫 징표는 고용 문제의 영향을 받게 되는 첫 번째 사회계층인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특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느낄 수가 없었다.

     

    철학적으로는, 사회를 더 ‘조화롭게’ 만든다는 생각의 여지가 점점 줄어들었다. 오늘날 지식인은 자신을 혁명가로 보거나 아니면 환멸을 느끼고, 비관적이며 무관심에 빠져있다. 몽매주의와 사이비주의가 다시 유행하게 되었다(국제혁명, 옛 시리즈, 6호 참조)

     

    예술 영역에서 쇠퇴는 특히 격렬하게 나타났고, 일종의 궤도이탈이 되어버린 세계에 직면한 예술의 진화를 토론하자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른 쇠퇴 시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술은 과거의 형식을 영원히 반복하는 것으로 침체하지 않으면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추구하거나 매우 빈번하게는 공포의 외침을 표현한다.

     

    관념 세계가 이러한 격변을 겪을 때, 이는 물질적 생산의 수준에서 어떤 것이 무너지고 있다는 징표이다.

     

    사회적 영역

     

    자본주의가 쇠퇴하면서 지배계급 분파 사이의 갈등이 증가한다. 한 나라 내에서 자본 사이의 경쟁 격화는 가끔 집중(국가가 전 생산 과정을 통제하는 지점에 이를 수도 있는)에 의해 완화되기도 하지만 세계시장 수준에서의 경쟁은 비정상적 수준으로 증가해 있다.

     

    1914~18년에 2천만 명이, 1939~45년 5천만 명이 죽었다.

     

    2차 세계대전 이래, 민족해방전쟁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다른 자본주의 블록 사이의 전쟁은 멈춘 적이 없고 세계지배의 제단에 수백만 명의 죽음과 희생을 더 가져왔다. 오늘날 자본가들은 협동적 기초 위에 세계를 분할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이윤을 창출할 수 없다. 이전 사회의 쇠퇴는 그 나라 전체의 초토화를 가져왔지만, 오늘날은 지구 전체가 파괴의 위협 아래 놓여 있다.

     

    피착취계급 투쟁의 발전

     

    19세기에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일반적으로 개량주의 성격을 가졌다. 즉 그들은 계급 조건을 체제 내에서 개선하는 것을 추구했다(극적으로 혁명적이었던 파리코뮨은 그 시대의 징표라기보다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러한 투쟁의 과정 동안 프롤레타리아트는 본질적으로 그리고 거의 홀로 피착취계급으로서 행동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러한 갈등은 범위와 내용 모두에서 근본적 변화를 경험했다. 발전한 운동은 더는 몇몇 공장이나 한 도시에 한정되지 않았다. 유럽 전체가 역사상 가장 강력한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으로 빛났다. 그 내용은 더는 체제의 개량이 아니라 근본적 전복이었다.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러시아 분파는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파괴하고 잠시나마 스스로 권력을 장악하기도 했다.

     

    3년의 전쟁 후 자본주의는 인류의 진보를 계속 보장할 수 없다는 역사적 무능력을 드러냈다. 동시에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투쟁을 피착취계급의 투쟁으로부터 혁명적 투쟁으로 전환시켰는데, 피착취계급으로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그리고 세계적 규모로 인류를 지도할 후보임을 드러냈다. 그 시기 이래로 자본주의의 ‘사회적’ 지형 위의 모든 것이 변화해야만 했다.

     

    1917~1923년의 혁명적 물결은 패배했고 홀로 고립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들 자신의 몇몇 지도자의 손에 의해 목 졸림을 당했다. 그러나 패배의 무게나 소련의 경험이 보여준 수십 년간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위협’은 사라지기는커녕 자본주의 사회의 삶의 사실로 남아있다. 노동자계급은 간헐적이고 고립된 프롤레타리아 투쟁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면서 일상적인 투쟁을 통하여 지난 50년 역사 동안 만만찮은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세계 모든 국가는 진정 노동자에 대항한 방어기관, 즉 혁명계급의 엄격한 봉쇄를 보증하는 기관이 되어 있다. 노동자계급 조직화의 낡은 형식인 노동조합은 국가기구 내에 통합되어 노동자계급의 봉쇄를 돕는 본질적 요소의 하나가 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번영’이 일부 사람에게 ‘계급투쟁이 끝났다’라고 믿게 했다면, 1968년 이후 전 세계에서의 노동자 투쟁의 약진은 혁명적 노동자계급이 계속 존재함을 모든 사람에게 상기시켰으며, 인류가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혁명적 물결 직전에 있음을 선언했다.

     

    정치적 영역

     

    국가의 강화는 과거 사회에서 쇠퇴의 가장 두드러진 징표 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또한 1914년 이래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다. 체제의 가장 노쇠한 형식으로서, 자본가와 관료가 기꺼이 ‘사회주의’라 부르는 국가자본주의는 이러한 경향의 최종표현일 뿐이다.

     

    국가는 자본의 원시축적 시기에 산업자본주의의 초기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특히 저개발국가에서 현대 국가자본주의가 세계자본주의의 새로운 발전의 징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적 이해가 조금만 있어도 이 시대의 국가주의가 18, 19세기의 부르주아국가의 시기적절한 개입과 아무런 공통점이 없음을 안다.

     

    20세기 국가주의는 더는 체제의 종속적 국면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과정이다. 그 기초는 더는 자본주의 이전의 봉건적 관계의 유물에 대항하는 투쟁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내적 모순에 대항하는 자본주의의 투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 시대에 국가 강화의 직접적 원인은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가 생산력 발전에 명확하게 적응할 수 없기 때문에 결과되는 모든 어려움을 표현한다. 사실상 국가가 오늘날 그 정도의 권력을 획득하게 된 것은, 빚더미의 회사를 떠맡을 수 있고, 포화된 시장에서의 국제경쟁의 심화로 인해 각 나라에 강제된 경제 집중화와 ‘합리화’를 실현할 수 있으며, 각 나라의 생존에 가장 필요한 전쟁의 수행과 준비를 할 수 있고, 끊임없이 분열 위협에 놓인 사회적 기제의 결속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자본주의 기구이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국가의 임무는 점점 더 몰락하려는 경향을 가진 체제를 무력적(국가는 이러한 무력에 대해 독점적이다)으로 붙들어 매는 것이다.

     

    저개발국가의 국가자본주의와 관련하여, 이것이 선진국에서보다 덜 노쇠한 형식일 가능성은 없다. 이들 국가는 ‘젊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세계자본의 가장 약한 부분이다. 따라서 그들은 세계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을 가장 격렬하게 느끼며 그래서 더욱 빨리, 더욱 정력적으로 체제의 국가화된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소련의 경우는 국가화된 자본주의의 쇠퇴의 성격과 모순되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우리는 자본주의에 의해 부과되는 한계의 고갈과 이러한 고갈로 인해 세계시장에서 생존하려면 각 나라가 취할 수밖에 없는 가혹한 조치들을 본다. 이것이 국가 강화의 기초를 형성한다. 여기서,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적 자본의 취약 또는 부재가 그 과정의 주요 가속제였다. 러시아의 경우 이 두 가지 주요 요소가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실패로 생겨난 상황의 결과라는 사실로 인해서 그 문제의 본질이 변화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특수성은 오직 한 가지만을, 즉 왜 소련이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 경향이 된 것을 구체화한 첫 번째 나라였던가를 설명할 뿐이다.

     

    이데올로기와 지배적 가치의 해체, 모든 수준에서의 사회관계의 불일치, 지배계급과 피착취계급 사이 만큼이나 격한 지배계급 내부에서 주기적 발작수준에 다다른 적대감, 억압기구인 국가의 강화 그리고 국가의 직접 통제 아래에서 모든 사회생활의 통합, 우리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문명 해체의 모든 속성을, 쇠퇴하는 체제의 모든 특징을 발견한다.

     

    그러나 물질생산 수준에서의 하부구조는 어떠한가?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위기의 현상은 경제적 쇠퇴가 함께 하지 않고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맑스의 관점을 따르면 사회의 상부구조에 나타나는 문제는 최종분석에서 물질생산의 위기의 징표일 뿐이다.

     

    우리가 살펴보게 될 것과 같이, 1914년에서 1931년까지 통계는 매우 분명했고, 그 누구도 이 시기가 침체 시기였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역사의 궤적은 심오하게 변화한 듯이 보일 것이다. ‘상부구조적’ 쇠퇴의 징후들은 계속 발전하지만, 기존하는 통계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전례 없는 성장기를 거쳤다.

     

    2차 세계대전의 야만 속에 맑스주의는 멸망했는가? 우리는 ‘신자본주의’ 아래 살고 있는가? 아니면 위기의 이러한 표현은 아직 멀찍이 떨어져 있는 쇠퇴에 대한 단순한 경고 표시일 뿐인가?

     

     

    국제코뮤니스트흐름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작성

    오세철 옮김

     

    <출처> http://en.internationalism.org/pamphlets/decadence/ch3


    3장.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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