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 다가오는 이스라엘 총선 : 계급의 전망
  • 조회 수: 3388, 2019-01-10 15:54:14(2019-01-10)
  • 다가오는 이스라엘 총선 : 계급의 전망


    israel_palestine.jpg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서문

     

    2018년 12월 말 이스라엘의 소설가 아모스 오즈(Amos Oz)가 79세로 별세했다. 그는 근대 이스라엘 국가의 지난한 역사를 연대기로 기록한 탁월한 소설가였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점증하는 군사적 정책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자였다. 1967년, 6일 전쟁의 열광의 한가운데에서 오즈는 그 점령이 이스라엘 사회에 가져올 도덕적으로 부패한 영향력을 경고한 드문 몇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는 점령의 즉각 종결과 이스라엘과 나란히 팔레스타인 국가의 건설을 옹호했다. 이 견지는 그 당시 과격하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곧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2000년 캠프 데이비드 합의의 핵심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무제한적 포퓰리즘의 시대에는 심지어 이렇게 온건한 제안조차도 극도로 공상적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의 우익 네타냐후 정권은, 팔레스타인 국가의 건설을 향한 그 어떤 진전도 말살시키려 모든 가능한 노력을 다 해오고 있는 와중에,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의 대대적인 국외 추방을 초래하게 될 한 국가 해법인 ‘더 위대한 이스라엘’을 공공연하게 요구하는 보다 더 우파에 속하는 이들로부터 점점 더 커지는 압력에 직면해 있다. 한편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운동은 그 시온주의 국가의 군사적 파괴를 결정하게 될 이슬람주의 분파들에 의해 점점 더 지배되고 있는데, 이 해법은 의심의 여지 없이 또 다른 대대적 국외 추방, 즉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추방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점점 더 험악해지는 분위기에서 이스라엘 내부로부터 나오는 진정으로 국제주의적인 입장의 흔치 않은 표현의 하나인 한 기고문의 출현을 우리는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고문의 저자는, 자본주의 쇠퇴의 시기에 모든 국가의 투쟁과 슬로건은 반동적으로 되어 버렸다는 맑스주의의 입장을 취하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 제국주의가 만든 함정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길은 계급에 기반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의 단결이고 모든 부르주아 국가에 대항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향해 나아가는 것임을 거침없이 주장한다.

     

    상당히 올바르게도 이 동지는 이러한 전망을 대표할 혁명 정당의 건설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것은 무엇보다도 세계 자본의 주요 중심지에서 노동자계급이 그 역사적인 기획인 코뮤니즘을 다시 활용할 수 있는 국제적인 발전의 일부로서만 오직 가능하다는 점을 주장하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노동자들 사이에 어떤 지속적인 단결도 오직 계급투쟁의 전 세계적인 재생의 일부분으로서, 최근 모든 곳에서 점점 더 강해지고 있지만, 특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는 그 특별한 역사 때문에 더 증가한 힘을 방출하는 민족주의와 외국인 혐오의 물결을 물리칠 수 있는 운동의 한 일부로서만 오직 가능할 것임이 거의 확실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롤레타리아적인 대안을 중동에서 옹호하는 극소수의 출현은, 그것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이러한 혁명적 미래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연결 고리이고, 이 혁명적 미래는 여전히 가능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하다.

     

    ICC

     

    2019년 4월에 예정된 이스라엘의 조기 총선에서는 이 시온주의 국가의 불안정성이 주목될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조기 총선 요청을 선택한 것은 텔아비브 정권이 직면한 곤경을 나타내고 있다. 게다가 이스라엘 검찰이 네타냐후를 뇌물 수수 및 사기 혐의로 고소하려는 결정이 예상되는 것 또한 조기 총선을 발의하려는 그의 결심에 한 요소로서 작용하면서 시온주의 체제는 극심한 경제적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이스라엘의 노동자계급은 생활 조건뿐만 아니라 수십 년간의 군사 점령 대가를 계속 지불할 가능성의 측면에서 지독한 악화를 느낀다. 보건과 교육 체계의 재정 지원은 미흡하고 소비 재화와 용역의 가격은 상승하여, 빈곤에 처하게 된 국내 노동자 사이의 여러 계층은 그들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헤쳐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스라엘 국민의 20%가 빈곤하게 사는 이 나라는 서방에서 가장 불평등한 사회 중의 하나이다.

     

    정치적 측면에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점령군에 저항하는 웨스트뱅크(요르단 강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무장파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 그 남쪽 국경은 분단 장벽 근처로 무장된 저항을 진행해가려는 하마스의 계속된 시도 때문에 불안정하다. 이슬람 투사들은 남쪽의 이스라엘인들에 대항해 미사일을 발사한다. 북쪽 국경에서 이스라엘은 시리아에 있는 이란 혁명군의 기지들을 계속 군사적으로 공격하느라 바쁘다. 게다가, 이스라엘군과 헤즈볼라는 전쟁 가능성에 그 어느 때보다도 근접해 있다. 미국 행정부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있는 이슬람주의자들을 항복시키기 위해 국경에서 공격적인 정책(가자 지구는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으로 인해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혹독한 상황에 처해 있다)을 펼치고 있고 이란의 민병대를 (이들이 장래의 전쟁에서 헤즈볼라를 돕게 될까 두려워하며) 시리아에서 몰아내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의 이러한 상황은 그 불안정성과 위기를 표시한다. 차별주의 국가로서 이스라엘은 노동자계급이 점령과 국가의 군사적 공격성의 대가를 치르면서 그와 동시에 정부가 경제를 운영하는 자본주의적 방식을 수용하게 될 조건을 유지하려 모색한다. 해외의 우익-포퓰리스트와 파시스트 지도자들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 지배 계급은 민족주의적 보이콧과 박탈과 처벌(BDS) 운동에 대항해 싸우면서 시온주의적 식민화 계획을 생생히 유지하기 위해서 대중들을 억압한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젊은이들은 민족적 억압과 자본주의의 잔혹한 착취라는 이스라엘의 조건을 더는 순순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일부는 네타냐후 정부에 대항하는 이스라엘 야당이 이스라엘의 부르주아 엘리트에 봉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당에 의해 이미 동원된다.

     

    정치적 대안의 부재

     

    이스라엘의 정치체계는 파편화되어 있고 허약하다. 정치적으로 우파 정당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Likud)당을 위주로 전통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그런데, 현재 나라를 통치하고 있는 우파 정당 사이에서도 분열과 위기가 있다. 크네셋(Knesset) 안에는 1973년 창당된 극히 배타주의적인 신자유주의 형태인 리쿠드가 가장 큰 정치 분파이지만, 리쿠드보다 작은 다른 정당도 있는데, 이들의 정책은 더 극심하게 민족주의적이고 배타주의적이다. 이러한 정당은 팔레스타인인을 내쫓게 될 더 위대한 이스라엘(The Greater Israel)을 만들려는 목표를 추진한다. 네타냐후의 연정에 참여한 유일하게 ‘중도적’ 분파는 이전의 리쿠드 당원 몇몇에 의해 구성되었다. 그렇지만, 이 분파는 네타냐후와 정치적 우파들이 국가의 경제를 자본주의적 극단으로 내몰아 가는데 협력했다.

     

    네타냐후에 대해 반대파를 형성하는 정당은 정책과 이념에 있어서 균일하지 않다. 그들 중의 하나는 노동당인데, 그 기회주의적이고 사회배타적인 정책을 대부분의 이스라엘인은 불신한다. 다른 하나는 작은 사회민주주의적 시온주의 당, 메레츠(Meretz)인데, 그 정치적 선거 영향력은 협소하다. 이스라엘 내의 팔레스타인사람들은 민족주의적 정치정당에 의해 대표되는데, 이 안에서 스탈린주의적인 이스라엘 코뮤니스트당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좌파-중심 뒤죽박죽 집합체의 문제는 정치적 측면에서 그들의 이질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 중 그 어느 하나도 이스라엘과 아랍 노동자들에게 전망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유사-좌파 시온주의자 분파들도 반시온주의 아랍 코뮤니스트 당들도 수십 년간의 점령, 잔인한 자본주의, 긴축 정책과 계속되는 사회적 위기로부터의 탈출구를 제시하지 않는다.

     

    이 상황은 이스라엘이 정착민-국가로서 팔레스타인 민중을 계속해서 식민화하는 한 유감스럽긴 하지만 이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의 점령 문제는 이 나라의 정치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정치적 우파가 점령과 식민화의 강화를 갈망한다면 정치적 유사-좌파는 이미 사멸한 두 나라(Two-States) 해법을 추진하는데, 그 해법 상으로는 작은 팔레스타인 반투스탄(Bantustan)국가가 이스라엘과 나란히 창건될 것이다. 민중들은 이 유혈 충돌의 종결을 보게 되기를 열렬히 갈망하는 반면, 우파는 노동자계급을 민족주의의 대열로 분열시키려고 과격한 배타주의와 해악한 민족주의를 퍼뜨리면서 번창한다. 유사-좌파는 자본주의 체제가 계속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게 될 제국주의적 질서에 기반한 해법 밖에는 제시하지 않는다. 100년 이상의 유혈 충돌에 대해 진정한 대안 없이 민족주의는 번창하고 배타주의는 이스라엘 노동자들과 팔레스타인 노동자들 사이의 진정한 화해로의 그 어떤 변화도 좌절시키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한 나라 해법(The one-state solution)

     

    몇몇 좌파 써클 사이의 새로운 유행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두 민족 단일 국가 개념인데, 이 국가는 그 두 민족에게 ‘자결(self-determination)’을 제공할 것이라는 개념이다. 이 생각은 팔레스타인에 두 개의 독립국가를 건설한다는 전망에 대해 절망하는 과격파 진영에서 점점 더 유행하고 있다. 그런데, ’자결’이라는 슬로건은 기만적이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쇠퇴의 시기에 자결에 대한 요구는 부르주아 체제의 확립을 의미한다. 노동자계급의 시점에서 볼 때 부르주아 국가의 건설은 계급투쟁의 측면에서 궁지에 몰리는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 안에서 자결을 요구하는 것은 부르주아 질서에 대한 위험한 환상을 구성하고 노동자계급이 민족 부르주아계급과 구별되지 않는 상황을 초래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족 대열을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존재하고 혁명 행동을 수행할 수 있는 그러한 나라에서의 혁명가들은 ‘자결’의 요구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한층 더, ‘자결권’을 지지하는 것은 바로 이 권리가 민족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와 상충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이 입장은 팔레스타인에서의 현실과 모순되는데, 부르주아지는 한 나라로 단일화된 자본주의 경제 상황에서 이득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는 그들이 계급 대열을 따라서 통합되는 것이다. 민족주의와 자결에 대한 반동적 요구는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를 성취하는 것을 저지하길 원하는 민족 부르주아지가 손에 쥔 무기이다. 이점에 우리는 제국주의의 시기에 자본주의는 민족 국가와 경제를 파괴하고 식민화 과정을 통해 세계시장을 건설하려 모색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민족 독립을 위한 투쟁은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덧붙인다. 진정으로 독립적인 민족 국가의 건설이 가능하던 시대로 회귀하려는 과격한 충동은 공상적이고 심지어 반동적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질서 내에 하나의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려는 요구는 사실상 부르주아지에게 또 하나의 자본주의 국가를 건설하라는 요구와 마찬가지이고, 이렇게 건설된 나라에서 노동자계급은 억압받고 자본주의 지배 계급에 대항해 자체의 권리를 방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트로츠키주의 그룹이 주를 이루는 극소수는 하나의 팔레스타인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 즉, ‘억압받는’ 민중들, 즉 팔레스타인인들의 자결권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 성격을 지닌 민족 국가의 건설을 주창한다. 이렇게, ‘억압받는 자’와 ‘억압자’ 사이를 구분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권력 쟁취를 목표하는 혁명 기획에 모순되며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계급 차이를 흐리게 만든다. 민중의 통합성은 오직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기반 위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이런저런 좌파주의자들 사이에서는, 파시즘에 의해 분쇄되는 것으로부터 이스라엘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구해내기 위해서 다양한 정당 - 자유주의자, 개량주의자, 스탈린주의자 또는 트로츠키주의자 - 에 투표하라는 요구가 있다. 그런데, 이 요구는 제국주의 시기에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적 체제이고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는 믿음을 반영한다. 민중은 민주주의를 보게 되기를 진정으로 원하고 파시스트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잔재를 파괴하기를 진정으로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부르주아-민주주의/자유주의 정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파시즘이 승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혁명적 행위자로서 노동자계급의 힘을 위축시키는 정치적 전략이다. 파시즘은 민중들의 직접적이고 독립적인 혁명적 행동을 통해 패배할 뿐이지 자본주의를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자들에 의해서 패배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정치 체계 안에 존재하는 현재의 ‘좌파’정당은 자본주의 질서를 옹호하고 자본주의 내에서 민족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에 대한 환상을 유포하는 점에 있어서 유럽과 미국의 다른 정당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부패되어 가는 질서를 옹호한다, 그 죽음의 마지막 고통을 겪고 있는 질서를. 이러한 정당은 민중을 자신들 주위로 끌어모을 수 없는데,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들을 경멸하고 그들의 지도력도 그들의 강령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코뮤니스트 강령을 추진할 자신의 혁명당이 필요하다. 그런데 개량주의자와 스탈린주의자에 의해 제안된 게임, 즉 부르주아 의회에 참여하고 그래서 혁명이 허공에서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잘 못 된 것이고 기만적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신비화는 ‘시민권(citizenship)’과 같은 개념을 확고하게 믿는 자들이 행한 잘못된 분석에서 유래한다. 사실상, 계급 사회 안에서 유일한 진정한 민주주의,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서 성취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혁명이 근접해 있거나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하지만, 부르주아 의회 안에서 활동한다는 환상을 가지고는 노동자들은 해방되지 않을 것이다.

     

    이 분석이 목표한 것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내의 노동자계급에게 그들의 투표용지를 망쳐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코뮤니스트 강령에 근거한 단일한 혁명 정당 안에 조직하라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민족주의와 전쟁을 일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혁명을 통해서이다. 노동자들에게는 조국이 없고 그래서 노동자들은 그들의 미래를 코뮤니스트 사회 안에 건설하기 위해 단결해야만 한다.

     

    DS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다가오는 이스라엘 총선.pdf

     

    <원문 출처>

    http://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618/coming-elections-israel-class-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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