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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9호] 이탈리아 코뮤니스트좌파의 분파-당 문제
  • 이탈리아 코뮤니스트좌파의 분파-당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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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소개할 문서는 1971년 처음 작성되었고, 이탈리아 코뮤니스트좌파의 전통에 대한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ommunist Workers’ Organisation)의 내부 토론에 사용될 목적으로 수기로 작성된 형태로 1981년 번역되었다. 그리고 최근 온라인 저널 비타협(https://intransigence.org/2018/11/02/fraction-and-party/)에 출간되었으나, 여기서는 서문을 대폭 추가하여 소개한다.

     

    원문은 국제코뮤니스트당(Internationalist Communist Party, PCInt)이 소집한 코뮤니스트좌파의 국제대회 시기에 작성되었다. 이 글은 저널 빌랑(Bilan)을 중심으로 한 국제 코뮤니스트좌파의 이탈리아 분파가 이탈리아좌파의 최고 표현(highest expression)이라는 국제코뮤니스트흐름(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의 주장에 대한 부분적인 응답이었다.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망명한 동지들로 이뤄진 분파(Fraction)는 전체 이탈리아 코뮤니스트좌파의 일부(이러한 사실은 오직 보르디가주의에 감화된 다양한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정당들만이 거부한다)이긴 하지만, 최고의 표현은 아니다. 그 구성원의 대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 말에 이탈리아에 돌아가 국제코뮤니스트당(PCInt)에 가입하였으나 그때까지도 많은 문제들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한때는 프롤레타리아 조직이었던 소련의 코뮤니스트당(the Communist Party of the Soviet Union, CPSU)이 반()혁명의 앞잡이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그 상황을 이해하고 교훈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CPSU는 러시아에서 노동계급에 맞서는 국가자본주의 괴물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코민테른(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을 점점 더 제국주의 이익에 복무하는 도구로 만들어버렸으나, 분파는 많은 문제들을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보기를 들어 그들은 소련의 계급 본질에 대한 분석을 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오직 국제코뮤니스트당을 세운 동지들만이 분석했을 뿐이다.

     

    그러나 앞으로 소개할 문서는 빌랑(Bilan)의 대차대조표(bilan)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 문서의 목적은 훨씬 정확하다. 해외의 국제주의 코뮤니스트좌파의 이탈리아 분파의 경험을 특정한 역사적 국면의 맥락, 그러니까 좌파의 많은 투사들이 외국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이탈리아 파시즘의 맥락에서 설명한다. 분파(Frazione)라는 단어는 1928년 사용되었고, 이는 과거 사회주의당이 나뉘기 전, 코뮤니스트들이 그 안에서 분파를 형성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과거 “1921년의 당과의 정치적 연속성과 통합을 가리키는 의도였다. 좌파의 투사들은 (전체 명칭으로 표현하자면) 3 인터내셔널 지부인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Communist Party of Italy, Section of the Third International)을 건설했고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으나 여전히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의 정치적이고 조직적인 연속성을 주장했다. 그러므로 이것이 그들 스스로를 국제주의자 분파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그들은 코민테른과 그람시(Gramsci)와 톨리야티(Togliatti) 아래의 이탈리아 당이 반()혁명으로 가는 도중에 있었던 것도 알았지만, 완전히 반()혁명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들은 중도파로 불렸고, 그들의 이름이 이야기해 주듯이, 분파의 주요한 노력은 혁명적 정치로 돌아가려는 그들의 시도들을 가로막도록 이용되었다.

     

    1935, 소련의 타락이 명백해지면서 코민테른과 그 모든 당들은 결국 그들을 계급의 적들의 손에 넘겨버렸고, 분파는 새로운 딜레마에 직면했다. 계급에게 의미 없어진 당의 분파로 더 이상 남아있을 수도 없었지만, 어떤 지점에서 새로운 당을 출범해야 하는지도 결정하지 못했다. 특히, 베르세시(Vercesi)는 대중정당이 다시 생길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래의 글이 보여주듯이, 분파의 많은 구성원들이 그렇게 주장했다. 그러므로 분파는 제2차 세계대전 초기부터 마비되었고, 결국 해산되었다. 전후 잠재적 혁명 계급투쟁을 부활시킨 정치적, 경제적 혼란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는 1943년이 되어서야, 전쟁이 완전히 끝나기 전 국제코뮤니스트당의 탄생하면서 당의 문제가 분석되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문서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분파의 경험이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독특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분파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의 분파?”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과거의 당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의 전투에서는 다루었었고, 그들의 시기의 문제들을 둘러싼 사항들은 결정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똑같은 입장에 있지 않다. 프롤레타리아의 과거 경험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모든 것을 우리는 받아들이지만, 그것은 미래의 인터내셔널을 건설하기 위해서이다. 맑스가 브뤼메르 18에서 지적했듯이, 심지어는 혁명가들 사이에서도 너무 과거에 기대하는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랜-과거의 정치적인 경험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 혁명적 위기의 시대, 전례 없는 것을 일으키려 한 우리들이 등장한 시점에, 유서 깊은 위장과 빌려온 언어로 새로운 역사적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우리는 안절부절못하고 과거의 정신, 그들의 이름, 그들의 전장에서의 함성, 그들의 복장을 소환했다.

     

    오늘날 우리는 오래전에 죽어버린 당의 분파가 아니라, 미래 당의 핵심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소그룹들과 함께 새로운 길을 걸어가려 하고 있다.

     

    이것은 베르세시(이탈리아 좌파의 해외 주대변인)가 노동계급이 움직일 때까지 당 건설은 기다려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인정하지 않았던, 소위 역사적 과정의 문제에 대해서도 진실이다. 그러나 역사적 과정이란 아이디어는 특히 마크 치릭(Marc Chirik, 미래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의 설립자)과 같은 이들에 의해 선전되었다. 그의 관점 -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의 관점 - 에서는 역사적 과정이 반혁명으로 향하고 있는 오늘날 계급 정치를 만들려는 어떠한 시도도 실패하게 되어있다. 베르세시와 같이, 그 주장은 계급 역학의 실제 균형은 계급 정당의 건설에서 결정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치릭은 역사적 과정이 전쟁과 반혁명으로 향하고 있으며, 따라서 분파의 나머지 대부분과 다르게 국제코뮤니스트당에의 합류를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보르디가가 국제코뮤니스트당(Internationalist Communist Party, 1943년 창설) 설립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몇 년 후, 1948-52년 취했던 초기의 입장과 매우 유사하다. 국제코뮤니스트당은 각지에서 노동계급의 정치적 동요의 신호와 함께 북부 이탈리아에서 대중파업의 물결이 있었던 시기, 1차 세계대전 말과 같이 전후 혁명 물결의 전조처럼 보이는 시기에 설립되었다. 그러나 1948년 즈음에는 자본주의가 그 폭풍을 잠재운 것이 명백해졌다. 보르디가는 이제 당을 건설할 시점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심지어 국제코뮤니스트당(PCInt)이 처음부터 해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는 이탈리아에서만 4천 명이 넘는 구성원이 있었을 때였다!

     

    역사적 과정의 옹호자들에게 반혁명은 끝나지 않았고, 따라서 당의 문제는 그 시점에서 제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냉전이 노동계급에게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마크 치릭 뿐만이 아니었지만, 그는 그 결과가 핵 재앙이 될 수 있고, 한국 전쟁 발발 당시 베네주엘라를 위해 유럽을 포기하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3차 세계대전은 발발하지 않았다. 1952년 보르디가주의자들과 결별한 국제코뮤니스트당(PCInt)은 숫자가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 내에서 제국주의 세력에 반대하는 끈질긴 싸움을 계속했다. 그들에게 역사적 과정이란 혁명적 조직을 살아 숨 쉬게 하는 책무를 포기하는 변명에 불과한 지적 개념에 불과했다.

     

    마크 치릭과 그 동료들은 당의 문제는 객관적인 조건이 성숙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한 1930년대의 분파와 동일한 방법을 공유했다. 이는 분파 내의 기다립시다”라는 경향과 역사적 과정에 대한 옹호자들의 입장을 보여준다. 여기서 오류는 당이 오직 대중 정당이 될 즉각적인 가능성이 있을 때만 만들어진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 정당의 본질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적(그리고 코민테른의) 개념에 대한 동의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태어난 개념도 아니다.

     

    러시아 노동계급 가운데 작은 소수(8000)였음에도 불구하고, 1912년 멘셰비키로부터 분리한 후 볼셰비키는 이미 존재했었고, 그리고 1917년 소비에트 권력을 방어하는 조직된 세력임을 명백히 보여주고 계급으로부터 승인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알려졌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조직으로서 뚜렷하게 만들어지지도 못했고 중도주의 USPD(독일 독립사회민주당) 내부의 분파로서 집어 삼켜졌던 독일의 스파르타쿠스단과 명백하게 대비된다. 191811, 프롤레타리아 저항이 발발한 이후에야 그들은 실질적으로 코뮤니스트당 건설을 고려했고, 곧 기회주의에 굴복하여 혁명적 정책과 보수적 정책 사이에서 찢어졌다.

     

    아래의 글이 언급하듯이, 정당은 하룻밤 만에 건설될 수 없다. 이론적 작업뿐만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강령)와 작동 방식 구성원들이 모두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도 혁명적인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준비하는 데에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당은 방정식의 주체적인 부분이고, 자유의 도구이며, 그것은 혁명 발발 이전 투쟁의 과정에서 벼려질 것이었다. 오노라토 데이먼(Onorato Damen)이 언급했듯이, 노동계급은 즉각적인 희망과 조건이 어떻든 당을 영구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으며, 분파는 역사적인 배신이 불러온 심각한 혼란의 시기, 독특한 역사적 막간극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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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후 활성화된 경기가 끝나가는 첫 번째 신호가 명백해지자 1960년대 후반, 마크 치릭은, 역사적 과정이 이제 역전되어 유럽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전제로부터 작업하고 있었다. 이윤율의 하락에 의한 경제적 위기의 재래는 자본가들이 노동의 조건과 임금에 대한 그들의 공격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노동자들은 저항했으나 이는 대게 노동조합이 통제하고 있는 기업별 투쟁에 기반하고 있었다. 국제적으로는 이러한 틀을 넘어서고자 하는 가시적인 시도들이 있었으나 예외적이었다. 그러나 마크 치릭에 있어서는 반혁명이 끝났고, 이제 새로운 혁명적 조직(기존의 것은 경화되었으니”)을 건설할 때라고 주장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과거 평의회주의 그룹들 몇몇은 (그들 중 다수는 근래에 건설되었는데) 1975년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에 합류했고, 그것이 혁명가들의 재편성의 축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반혁명은 끝났으며,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은 노동계급은 이미 혁명적이며, “역사적 과정이 이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향하고 있으니 탈신비화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노동조합이 이제 노동계급에 반대하고 있다고 노동자들이 듣기만 한다면, 그들의 눈에 비늘이 떨어지고 혁명으로 향한 길이 열릴 것이었다. 놀라울 것도 없이 역사적 과정은 훨씬 더 복잡한 것으로 나타났다. 1940년대와 같이, 1970년대는 계급투쟁이 부활하는 시기였는데, 그것이 노동계급 안의 폭넓은 대중 가운데에서 혁명적 의식으로 자연스럽게 변화되지는 않았다. 투쟁의 새로운 물결은 반혁명의 끝을 나타내는 신호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새로운 위기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해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은 앞으로 25년 동안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방향을 잃은 자들이라고 비난받을 것이었다. “역사적 과정의 확실성으로 무장한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은 그들이 남은 코뮤니스트들이 다시 모여야 하는 재편성의 축이라 확신했다.

     

    1980년대가 시작되면서,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은 점증하는 계급 적대에 따라 진실의 시대를 선언했다. 이것은 위기가 가져온 구조조정이 중국과 같은 저임금 경제로 생산이 옮겨감에 따라(그 당시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과거의 산업 중심지 자본의 대손상각을 불러왔다는 점에서 어떤 면에서는 진실이었다. 노동자들은 수세에도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자본가들이 이미 고정 자본을 없앨 준비가 된 상황에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파업은 결코 편한 입장인 것은 아니었다. 사기 저하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계급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사적 과정이 심화된 계급 대결로 향하고 있다는 사상의 지지자들은 이를 보지 않았고, 그들이 이론을 재평가할 필요를 느끼게 된 것은 소련과 그 블록이 붕괴한 이후가 되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과정이라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잘못되었다는 주장은 없었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에는 노동계급도 자본가도 서로의 안건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1979년 이후 노동자의 생활 수준이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 구조조정이 전체 공동체를 무너뜨렸다는 사실이 그들의 대차대조표 계산 속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대신,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은 포스트모던 대열에 합류하여 혼돈해체등 그들 자신만의 개념에 도달한다. 자본주의는 이제 해체(은유로서, “쇠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으로 이제는 진짜, 진짜 쇠퇴를 의미한다)되고 있는 것이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에게 혼돈해체역사적 과정이 혁명으로 향하고 있다는 그들의 관점이 무너지는 것을 가려주는 미봉책 이론이었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하락의 점증하는 신호가 있다는 것은 거부하지 않지만, 이것은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이 무시하고 있는 물질적인 요인들(그들에게 자본주의의 위기란 영속적인 것이다) 때문이다. 또한 자본주의 위기는 사라진 적도 없고, 자본주의가 연장되면 될수록 강화된다.

     

    자본주의는 수십 년이 넘도록 위기를 관리하려 하거나 또는 이윤율을 높이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71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남아있는 한 요소는 자본의 과잉 축적이다. 과잉축적이란 생산 주기의 새로운 부활이 자본의 평가절하를 통해서만 가능함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는 만연한 전쟁의 대량 파괴 또는 여러 차례의 전쟁만이 이를 달성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제국주의 시대가 시작되던 시기부터 가졌던 우리의 관점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 전쟁이냐 혁명이냐는 이 체제의 점증하는 대립의 유일한 해결책이다. 상황이 아직 급박하지 않고 코뮤니스트좌파의 경험에 근거하여 국제적인 프롤레타리아 당을 위한 작업을 시작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춤추는 자들은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우리는 본다.

     

    여기에는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도 포함될 수도 있다. 우리가 그럴 수도 있다고 한 이유는 그들의 최근 답변이 너무 혼란스러워 그들의 현재 입장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4년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은 일종의 내부 위기를 경험하였으나, 결국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그들의 동조자들에게서도 명확해진 적이 없다. 그 대신 그들은 2016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40이란 제목으로 국제평론(International Review) 156권에 실린 대차대조표를 생산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과거 입장의 몇 가지를 비판한다. 우리는 일부만을 여기 요약할 수 있다. 아래는 그들의 언어로 표현된 것 중 일부이다

     

    . 계급 사이의 세력 균형 분석: 프롤레타리아가 지속적으로 공격적으로 되어가는 경향

    . “대 재앙적비전

    . 경제적 위기와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이 필연적으로, 기계적인 방식으로 투쟁의 물결을 촉발시킬 것이라는, 1970-90년대에 동일한 인물이 발전시킨 동일한 모델 - 환상을 보유하는 경향.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이 수년 동안 오류를 저지른 유일한 조직은 아니지만(일반적으로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 이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이러한 오류들은 역사적 과정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그들의 주장의 결과이다. 이러한 재검토는 환영받을 일이지만(그들의 문제에 대한 실제 원인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같은 호의 분파로서의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의 역할에 대한 보고서라는 이름의 글이 인용된 글 다음에 이어졌다. 이것은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포럼에서 몇몇 논쟁을 불러일으킨 매우 혼란스러운 글이다. 2017년 발간된 세계 혁명(World Revolution)376호에서 한 동조자, 링크(Link)는 그 글에 대해 질문했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은 이제 분파로서의 역할을 채택한 것으로 보이지만, 나는 그 이유와 가능한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이 역할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며, 이러한 변화의 정치적인 정당화는 어떻게 될까요? 다시 말해 이 결론에 이르는 현재 상황에 대한 분석이 무엇일까요?

     

    나는 이전, 이 포럼에서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재편성의 축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했고 어떤 비판이나 반대도 없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은 단순히 그 방향을 설명하거나 명확히 하길 피해왔습니다. 이 새로운 분파로서의 역할이란 것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은 그 대답으로 오직 더욱 큰 혼란만 가져왔으며, 역사에 대해 조금 다른 말로 서술했을 뿐, 링크(Link)가 제기한 핵심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어떤 직접적인 대답은 없다. 그들은 이제 스스로를 분파라고(그렇다면 무엇의 분파?) 여기는 것일까? 그들의 활동에서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 링크(Link)가 왜 그들이 자신의 비판에 응답하지 않느냐고 질문할 때, 그들은 코뮤니스트좌파 진영의 나머지에 대한 비판으로 돌린다.

     

    좌익공산주의 진영의 보편적인 낮은 사기는 40년 동안 자기-비판이 없었던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이 대답이 없는 배경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이 그토록 오랫동안 방향을 잃고헤매었지만, 여전히 선하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명백한 현재의 사기 저하를 남들에게 투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신의 활동을 정의하기 위한 역사적 과정이란 변하지 않는 비전은 갖고 있지 않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내재적 위기이지만 그 최종 결과는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맑스가 코뮤니스트 선언에서 사회의 혁명적 재편성이거나 대립하는 계급들 모두의 파괴라고 공표한 것, 또는 이후에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전쟁이냐 혁명이냐의 형식으로 표현된 것과 여전히 동일한 것이다.

     

    혁명가들은 예언가의 수정 구슬 따위는 갖고 있지 않으며, 헤겔주의 목적론적 역사와는 다르게 언제나 하나 이상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최근, 우리는 계급으로서 계급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으나 앞으로 계속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투기 거품의 폭발은 과거에는 자본주의가 호황이라는 거짓된 이념을 유지시켜 주었지만, 그 이후 세상은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다. 코뮤니스트들은 이제 공개적으로 비웃음당하지 않고 자본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 자본에 대해 질문하는 새로운 대중운동이 비록 계급의 기반이 없기 때문에(Indignados - 2011-2014년 스페인 시위 -에서 노란 조끼 운동까지) 스스로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더라도, 체제의 실패를 보여주고 있으며,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조차도 알아차렸듯이, 1970년대 초 이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젊은 세대의 혁명가들이 코뮤니스트좌파로 모여들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혁명적인 국제주의 진영을 확대하는데 단호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고, 동시에 우리가 언제나 해 왔던 것을 하고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을 직면하게 하고 있다.

     

    미래 당 건설을 위한 근본적인 조건은 물론 계급투쟁 그 자체이다. 그러나 당 건설은 또한 진정으로 오늘날 계급투쟁에서 혁명가들의 적극적인 활동에도 달려있다. 혁명적 소수를 역사라는 수동적인 범주에 가두는 것은 능동적인 두 기둥 사이의 복잡한 변증법적 관계에 대한 진정한 이해의 가능성을 닫는 일이다. 그것은 역사가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것이고, 인간 존재가 역사를 만든다는 진실을 잃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수동적인 관찰로 후퇴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자본주의 위기가 개선되기보다 더욱 심화되는 것처럼 보일 때, 자본주의가 자신만의 해결책준비를 개발하고 있을 때, 지구의 생태적 오염이 일상적인 자본주의의 위협으로 우리 존재에 대한 위협을 보여줄 때, 그리고 많은 젊은 세대들이 해답을 갈구할 때, 우리가 해야 할 마지막 일이 기다려 봐라라는 것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ommunist Workers’ Organisation)

     

    <원문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8-12-22/the-fraction-party-question-in-the-italian-left

     

    번역 ㅣ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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