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당 건설] 새로운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에 대하여 1
  • 새로운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에 대하여

    1. 노동자계급에게 당(혁명조직)은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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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올가을 본격적으로 진행될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진영(이른바 '좌파' 또는 '사회주의 자임 세력'과 분명히 구분되는)의 '당 건설' 논의를 앞두고, 당(분파)에 대한 기본 개념과 당 건설 원칙을 정립하기 위해 ICP를 포함한 코뮤니스트좌파 진영의 입장과 자료를 공유합니다.

    앞으로의 연재에는 과거 '사회주의당 건설 운동' 실패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과 성찰 없는 조직보존 도구로서의 (사이비) 당건설 논의 흐름, 혁명적 주체와 전망이 부재한 후퇴한 당 건설 경로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계 프롤레타리아트가 역사상 최초로 계급투쟁에 대한 자신감과 세계혁명에 대한 희망을 표현했던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 창설된 지 100년이 지난 오늘, 여전히 혁명적 소수는 세계혁명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프롤레타리아트는 100년 전과 다르게 자본주의의 심각한 위기 속에서 전쟁, 긴축, 환경파괴, 증가하는 빈곤에 맞서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열되고 해체된 상태로 생존의 위험에 빠져 있다.

    이러한 현실을 뛰어넘어 미래의 세계혁명당(인터내셔널) 건설 경로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몇 가지 전제조건을 밝히는 것에서 시작한다.

    미래의 세계혁명당은 (국가별) 당의 연합 수준이 아니라 ‘국제적인 당’이어야 하고, 당 건설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의식과 투쟁력의 발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당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이 혁명당을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고 정치적 강령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따라서 필자를 포함하여 현존하는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세력이 「세계혁명당」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 쇠퇴기 계급투쟁과 정세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단일한 국제적 혁명 조직을 의미한다.

    세계 혁명당 건설의 전제조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혁명조직)의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당’ 개념은 노동자운동의 경험(코뮤니스트동맹, 국제노동자협회, 제2 인터내셔널의 당, 코뮤니스트당)을 통해 이론적 실천적으로 조금씩 정련되어 나아갔지만, 결정적인 개념은 코민테른 시기까지 혼란이 계속되었다. 보기를 들어 1920~1921년 코민테른의 당에 대한 테제와 이론들은 1917년 볼셰비키의 실천을 진정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졸렬한 모방이나 변형에 불과했다. 이러한 혼란은 심지어 코민테른의 타락에 반대하여 투쟁한 좌익 분파마저도 명료화하지 못했을 정도로 심각했다. 이것이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전망하는 글에서 코민테른의 테제를 해답으로 제시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운동의 역사에서 당은 무엇이었나? 당과 계급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알아보자.

    필자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계급투쟁, 혁명과 관련된) 조직을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이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투쟁의 역사에서 목적이 다른 두 가지 조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하나는 노동조합과 같은 대중(단일)조직으로 전체 노동자를 공동의 투쟁으로 결집시키고 노동자들의 경제적 요구를 방어하는 목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다른 하나는 당과 같은 정치조직으로 이 조직의 목적은 계급의식의 발전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자신의 혁명적 본성과 목표를 인식해 혁명적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유형의 조직은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의 역사적 조건 변화와 함께 자신도 변화하면서 계급투쟁의 역사 속에 (목적에 맞는 역할을 하지 못했을지라도) 항상 존재했다.

    먼저 대중조직의 진화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19세기 동안에는 노동자계급의 출현과 상승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 향상을 위해 여러 형태의 대중조직이 발달하게 된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이었지만, 실업이나 병환 시의 상호부조를 위한 친목회인 노동자협회, 그리고 스포츠클럽이나 문화협회와 같은 모임까지 발달했는데, 이들은 노동자 대중의 교육 수준을 향상시키는 목적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20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계급투쟁의 역사적 조건이 변화하면서 계급조직의 형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1914년의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1905년, 1917년의 러시아혁명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이 시기는 프롤레타리아계급과 부르주아계급 사이의 계급투쟁이 첨예화되었다. 이제는 노동자계급의 생활 조건 방어만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계급과 인류 자체의 파멸을 초래할 제국주의 전쟁이냐, 아니면 세계 노동자계급에 의한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과 코뮤니즘의 건설이냐, 라는 역사적 선택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때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의 투쟁을 위해 만들어진 노동조합은 노동자 권력을 향한 혁명 투쟁에는 부적절할 것으로 판명되었다. 대신에 프롤레타리아계급은 1905년과 1917년 러시아에서 새로운 대중(단일)조직을 창조했다. 자본주의 사회 내부에서 노동자들의 이해를 옹호하기 위한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에 의한 권력 장악과 자본주의 질서의 전복을 위한 조직으로써 노동자소비에트를 만들어낸 것이다. 자본주의가 상승기에서 쇠퇴기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계급의 대중조직도 변화한 것이다. 노동자의 대중조직과 마찬가지로 정치조직의 형태와 역할도 물질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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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코뮤니스트동맹, 제1 인터내셔널 시기의 ‘당’ 개념

    자본주의 초기,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가진 개별적인 계급으로 자각하지만, 자본주의 전복을 위한 전망을 갖지 못한 채 처음으로 독립된 행동체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당시 노동자계급이 만들어 낸 정치조직은 아주 작고 사실상 극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은 즉자적인 계급투쟁을 넘어 노동자계급 자체에 내포하고 있는 미래까지 내다볼 수 있었고, 이러한 경향의 가장 분명하고 역사적인 표현이 코뮤니스트동맹(Communist League)이었다.

    근대 자본주의가 동틀 무렵인 19세기의 전반부에는 여전히 형성 단계에 있던 노동자계급은 지역적이고 고립적인 투쟁을 벌였고, 교조적인 학파, 종파 그리고 연맹을 탄생시킬 수밖에 없었다. 코뮤니스트동맹은 이 시기의 가장 선진적인 표현이었던 한편, 동시에 그들의 선언문은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구호와 함께 앞으로 다가올 시기를 예고했다.” (프롤레타리아계급당의 본질과 역할, 「Internationalisme」 38호, Gauche Commune de France(프랑스 코뮤니스트좌파), 1948년 10월)


    그 이후는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 사회 내부에서 대중적으로 형성되기 시작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노동자계급이 쁘띠부르주아계급의 영향으로부터 이탈하고 있던 시기이자, 노동자들이 투쟁 속에서 다양한 새로운 조직 형태를 실험했던 시기이다. 이 시기 최고의 표현은 파업하는 동안 파업파괴자들의 수입에 저항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노동자들이 설립한 국제노동자협회(International Workingmen’ Association, IWA)이다. 국제노동자협회의 가장 중요한 유산 중 하나는 “노동자계급에 의한 권력 장악은 소그룹의 헌신적인 혁명가들이 (인민을 위해)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 점이다. 블랑키와 바쿠닌과 같은 인물과 그룹이 갖고 있던 이러한 시각에 반대해 제1 인터내셔널은 1864년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자신이 쟁취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제1 인터내셔널은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유럽 주요 나라에서 사회적 정치적 투쟁의 무대 위에 효과적으로 등장한 것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모든 조직화된 역량을, 계급의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경향을 함께 결집했다. 제1 인터내셔널은 경제적, 교육적, 정치적 그리고 이론적인 노동자 투쟁의 모든 흐름과 모든 우발적 측면 두 가지 모두를 함께 모이게 했다. 그것은 모든 다양성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단일 조직의 최고점이었다." (같은 글)


    불법조직이었던 코뮤니스트동맹은 여전히 종파의 시기에 활동했다. 하지만, 국제노동자협회(IWA)의 임무는 바로, 이러한 종파를 넘어서서 유럽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결집과 그들의 의식에 내재한 수많은 혼란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었다. 물론 제1 인터내셔널은 이질적인 구성(노동조합, 협동조합, 선동그룹 등)으로 인해 제2 인터내셔널의 당이 가졌던 근대적인 의미의 당은 아니었다.

    제2 인터내셔널은 임금노동의 경제투쟁과 사회적 정치투쟁 사이 분화의 시기를 나타냈다. 자본주의사회가 완전히 꽃핀 이 시기에 제2 인터내셔널은 개혁 투쟁의 조직이자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확인을 위한 정치적 정복의 조직이었던 동시에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역사적이고 혁명적 사명의 이론적 기초를 명확히 하고 정련함으로써 계급의 이데올로기적인 구분에서 더 높은 단계를 나타냈다.” (같은 글)


    위와 같이 계급의 대중조직(노동조합)과 정치조직(당) 사이의 구분은 제2 인터내셔널에서 분명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구분은 제3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이 창립될 당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최초로 역사의 현안으로 된 순간에 더욱더 분명해졌다. 새로운 인터내셔널에 있어서 계급의 대중조직은 더는 노동조합이 아니라 노동자평의회로 구성되었다.

    이렇게 코뮤니스트동맹에서 코뮤니스트당까지 다양한 조직 사이의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들은 계급투쟁의 진로에 영향력을 갖고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는 ‘당’이라는 명칭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뮤니스트동맹이 민주주의 운동의 좌익으로서 활동했던 혁명 시기(1848~1849년)에 영향력은 여전히 미약했지만, 국제노동자협회의 영향력은 훨씬 커졌고, 무엇보다도 제2 인터내셔널이야말로 역사상 최초로 노동자 대중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가졌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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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제2 인터내셔널의 ‘당’ 개념

    제1 인터내셔널은 1871년의 파리 코뮨의 패배와 이에 뒤이은 반동의 물결에 따라 사라졌다. 코뮤니스트동맹이 해체되었을 때, 미래의 새로운 당을 향한 가교 역할을 할 어떤 형식적 조직도 남아있지 않았었다. 하지만, 국제노동자협회가 사라졌을 때, 제2 인터내셔널 창립의 기원이 될 조직이 남아있었는데, 독일의 사회당이 그중 하나였다.

    당시 사회당은 혁명적 전망이 멀어진 시기에 노동자계급 내부에서 (특히 독일에서) 영향력을 얻었다. 대부분 노동자의 의식이 혁명적이지 않던 시기에 사회당이 얻은 영향력은, 그들의 강령 안에 사회주의의 전망을 포함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내부에서의 개혁이라는 ‘최소강령’을 옹호했다. 당시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코뮤니스트 혁명을 위한 시기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노동조합의 임무를 강조하고 당이 의회의 임무에 전념할 필요를 강조했다. 1902년에 벌써 카우츠키는 “점진적인 운동, 민주주의적이며 거의 알아차릴 수 없는 수단을 통해, 자본주의에서 코뮤니즘으로!”를 주창했다.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유일한 임무는, 이러한 점진적인 운동을 강제할 목적으로 의회에 참가하는 것뿐이었다. 권력 쟁취는 더는 노동자 스스로가 부르주아 국가를 폭력적으로 전복하는 것, ‘노동자들의 해방’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당의 책무로서, 부르주아 국가를 평화적으로 정복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맑스주의가 이렇게 완전히 왜곡됨으로써, 또 다른 왜곡이 나타났다. 즉, 프롤레타리아트당은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준비하는 필수적인 분파로 간주되지 않았다. 대신에 당은 통치 기구가 되었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적으로 당을 신뢰하며 당에 투표함으로써 자신의 정치 활동과 권력을 당에 위임해야만 했다.

    이렇게 베른슈타인과 카우츠키의 ‘수정주의’가 탄생하고, 노동자의 (노동조합이 이끄는) 경제적 활동과 그들의 (의회 대중정당에 위임된) 정치적 활동 사이의 점점 더 날카로운 분리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것은 노동자 투쟁의 최종 목적의 포기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민주주의는 공공연한 목표로 부르주아 국가의 ‘정복’을 내세웠지만, 노동자계급의 대중 정치 기관에 대한 생각은 존재하지 않았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유일한 정치 기구는 당이었다. 만약 국가가 프롤레타리아당의 통제 아래에서 프롤레타리아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면, 권력 쟁취는 오직 당에 의해 조직되고, 수행되며, 지도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논리적이었다. 이러한 책무를 위해, 특히 개량을 위한 투쟁을 이끌기 위해, 당은 대중적이고, 극도로 규율 잡히고 위계적인 조직이어야 했다. 부르주아 혁명의 이데올로기적 유산이 이렇게 사회민주주의의 발상에 심각하게 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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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당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혁명을 독립적인 정치적 당 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관점을 단호히 거부한다.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 투쟁이다. 내전이 될 수밖에 없는 이 투쟁의 목적은 정치권력의 장악이다. 정치권력은 오직 당에 의해서만 장악되고, 조직되고, 지도될 수 있다. 다른 방도는 있을 수 없다.” (당의 역할에 대한 테제)


    코민테른 2차 대회는 당의 역할에 대해 위와 같이 정의했다. 이 입장은 특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이 시기 대다수 혁명가의 입장이었다.

    볼셰비키는 노동자계급 안에서 단호하게 행동했지만, 처음부터 노동자를 대신해서 권력을 차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 노동자계급, 국가 사이 관계의 본질과 당의 역할에 대한 이론적 혼란이 존재했다. 1918년부터 계속 노동자계급의 정치권력은 볼셰비키당이 정상에 앉아있는 국가기구에 의해 제한되고 억압되어 왔다. 권력 장악 후, 볼셰비키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기관(소비에트)과 갈등하게 되고, ‘통치’ 당의 면모를 드러냈다. 이렇게 당의 권력이 소비에트 권력을 대체하는 것은 1920년대 초 트로츠키의 저작 「테러리즘과 코뮤니즘」에서도 이론적으로 정당화되었다.

    우리는 소비에트 독재를 당 독재로 대체했다고 여러 번 비난받았다. 그러나 소비에트 독재는 오직 당 독재를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었다고 완전히 정당하게 말할 수 있다. 당의 이론적 전망의 명확함과 그 강력한 혁명조직 바로 그 덕분에, 당은 소비에트가 볼품없는 노동자의 의회로부터 노동자들이 우위를 갖는 기관으로 변화될 가능성을 제공했다. 노동자계급의 권력을 당의 권력이 이렇게 ‘대체’하는 것에, 우연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사실상, 대체란 전혀 없다. 코뮤니스트들은 노동자계급의 근본적인 이해관계를 표현한다. 역사가 그러한 이해관계를 전적으로 당대의 질서가 되도록 만든 시기에, 코뮤니스트들이 노동자계급 전체의 대표성을 자각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테러리즘과 코뮤니즘」, 1920, 트로츠키)


    일단 당과 국가가 노동자계급 전체의 공언된 ‘대표자’가 되고 나자, 그들은 절대 틀릴 수가 없었고, 전체 노동자계급에 맞서게 될지라도, 심지어 학살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항상 옳았다. 그 순간부터, 사회주의 자체는 당과 국가의 과업이 되어버렸다. 그때부터 러시아 국가는 소비에트를 파괴하기 시작했고, 이는 혁명의 힘을 파괴하고 반혁명으로 빠져드는 것을 의미했다.

    독일 혁명가들도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에 대해 전적으로 명확하지는 않았다. 코뮤니스트들은 대체로 노동자평의회를 권력 장악을 위한 기관으로 보았다. 1920년까지 모든 경우에서, 코민테른은 혁명에서, 권력의 실천에서 평의회(소비에트)의 탁월한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어떤 코뮤니스트도, 어떤 혁명적 조직도, 지역 소비에트(이행기 국가의 토대)와 노동자평의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명확하게 바라보지 못했다. 국가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사이의 혼란 또한 존재했다.

    이러한 심각한 혼란과 함께, 코민테른은 통일전선의 개념, 대중 정당을 통해 최소 강령을 보호한다는 생각, 노동조합 과업의 필요성, 혁명적 의회주의 입장 등을 발전시켜갔다. 코민테른은 혁명적 물결의 퇴조에 저항하며 코뮤니스트 원칙을 그대로 지키려 노력하기보다는, 오히려 더욱더 이러한 후퇴에 전념하고 이러한 실천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전술과 원칙 사이의 차이는 제2 인터내셔널의 안에서 그랬던 만큼이나 커졌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이해를 항상 염두에 두기보다, 코민테른은 더욱 러시아 국가의 대변자가 되었고, 일국 사회주의 이론을 선택했을 때 조종을 울렸다. 코민테른이 옹호한 이러한 테제들은 단지 러시아 국가자본주의의 강화를 옹호하기 위해서 제출되었을 뿐이었다. 바로 그 지점부터 볼셰비키당은 반혁명의 가장 유순한 도구가 되었다.  <계속>

    (「실천 복간 3호」, 이형로, 2019.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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