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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12호] 트럼프와 바이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잘못된 선택
  • 조회 수: 7271, 2021-01-21 14:15:59(2020-10-30)

  •  트럼프와 바이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잘못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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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와 지구상의 모든 국가를 지배하는 생산체제인 자본주의는 깊은 쇠퇴의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한 세기의 쇠퇴기가 마지막 단계에 도달해 광적인 전쟁의 소용돌이, 경제 불황, 환경 재난 및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지구상 모든 국가는 이 죽어가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공공연한 친()자본주의 정부든 가짜 사회주의정부든, 민주적이든 독재의 옷을 걸쳤든, 모든 정부는 자본의 진정한 목표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인간의 필요 충족이라는 단 하나의 생산 목표를 가진 세계 공동체인 우리 종()에게 하나뿐인 미래를 희생하면서 이윤을 확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당과 대통령이 정권을 잡느냐를 선택하는 것은 자본주의 문명을 재앙으로 향하는 길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는 잘못된 선택이다. 이는 다른 선거 서커스와 마찬가지로 다가올 미국 대선에도 적용된다.

     

    트럼프는 노동자의 친구가 아니다

     

    많은 사람에게 트럼프는 코로나-19의 현실과 기후 위기에 대한 부정에서부터 법과 질서라는 이름의 경찰 폭력에 대한 사과, 인종주의자와 극우세력에 대한 구애, 그리고 그의 측근 여성에 대한 역겨운 개인적인 대우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썩어가는 모든 것에 대한 공공연한 옹호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저격수 마이클 코헨(전 변호사)의 말에 따른 거짓말쟁이, 사기꾼, 인종주의자라는 사실이 자본가계급의 중요한 파벌들이 그를 지지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의 노골적인 국가주의적 경제와 환경 및 보건 서비스 규제 완화가 그들의 이윤을 증가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선거에서 트럼프는 많은 미국 노동자들에게 미국 우선보호주의가 일자리를 구하고 전통 산업을 부활시킬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 이전부터 중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는 이미 새로운 불황에 빠져들고 있었고, 대유행의 경제적 결과는 훨씬 더 심각할 것이다. 보호주의는 어떤 경제도 세계 시장의 무자비한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환상이며, 트럼프의 미국 노동자에 대한 약속은 2019년 불황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공허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하지만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트럼프에 따르면 조 바이든은 버니 샌더스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 일한 오마르(Ilhan Omar) 등 주변의 '스쿼드()'가 체현한 '급진 좌파'의 손에 있는 꼭두각시일 뿐이기 때문에 미국을 '사회주의 유토피아'로 만들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1)

     

    사실 바이든은 트럼프와 공통점이 많은 오바마와 클린턴의 주류 민주당 정책의 지속성을 대변하기 때문에 민주당 후보로 선택되었다: 중국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한 "동양으로 회귀"는 오바마 정권하에서 시작되었는데, 오바마는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접근법 때문에 최고의 추방자로도 알려져 있었다. 물론 민주당은 트럼프와 차이가 있다: 그들은 푸틴 러시아에 대한 트럼프의 아첨을 의심하는 군사 및 안보 기득권 세력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트럼프의 무분별한 국제조약과 동맹 파기로 미국의 외교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 때문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미 제국주의를 위한 최선의 전략에 대한 차이점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민주주의적 신비화가 사회질서 유지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에 트럼프가 민주주의규범을 경시하는 것에 반대한다.

     

    민주당은 미국 자본주의의 양자택일 정당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몇 년간 민주사회주의동맹과 같은 내부 압력 단체와 그린뉴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운동(BLM), 그리고 공식 정당 안팎에서 다양한 형태의 정체성 정치 옹호자들이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급진 좌파는 위기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계에서 자유기업 우파와 광신도를 포함한 지배계급의 모든 파벌이 고수해야 하는 국가자본주의보다 좌파적 버전만을 제공한다. 좌파의 어떤 정책도 자본주의의 본질이자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의 근원인 민족국가, 이윤을 위한 생산, 임금 체제의 존재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노동계급이 미래의 열쇠를 쥐고 있다

     

    자본주의 정치인이나 정당은 체제의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을 제시할 수 없다. 세계의 미래는 우리가 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하는 계급에 달려있으며, 그들은 모든 나라에서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고, 모든 곳에서 똑같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진정한 사회주의, 또는 맑스가 그것을 코뮤니즘이라고 부르기를 선호했던 것처럼, 인류는 마침내 국가, 국경, 그리고 임금 노예제도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이것은 아주 먼 전망으로 보일런지도 모른다. 일상생활 속에서 노동계급은 수천 가지 방식으로 분열된다: 일자리 경쟁, 국경, 성별, 인종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예제도와 인종주의의 해로운 유산을 가진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말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집단으로 일하고 집단으로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 연합의 계급이기도 하다. 그들이 고개를 들었을 때 패배를 피하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계급의 분열을 극복하는 경향이 있다. 인종주의와 민족주의는 노동자를 분열시키는 강력한 도구지만, 계급투쟁이 전진하려면 극복할 수 있고, 극복해야 한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처음 발생했을 때, 미국 노동자들은 자동차공장, 병원, 슈퍼마켓 또는 창고에서 감염 보호 대책 없이 일하도록 강요당하는 것에 반발했다: 그리고 백인’, ‘흑인’, ‘라틴계또는 다른 모든 노동자가 피켓 라인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한 단결의 순간은 백인 우월주의와 자본주의의 썩어가는 몸에서 흘러나오는 파시스트 운동과 같은 인종 분열의 고전적표현과 상반된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인종을 계급보다 우선시하고 민주당에 의해, 맥도날드나 애플과 같은 대기업의 이익에 의해, 노동조합에 의해 - 한마디로 국가 체제에 의해 완전히 도구화하여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운동의 동원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인종에 기반을 둔 투쟁은 노동계급의 통일로 이어질 수 없다.: 지배계급 일부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는 사회로서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현실을 감추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기꺼이 무릎을 꿇고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운동을 축복한다.

     

    미국 노동계급은 선거를 앞두고 엄청난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직면해 있는데, 정치인과 미디어 슈퍼스타들은 진정한 권력이 투표소가 아닌 작업장과 거리에 있는 게 아니라 유일한 희망은 투표할 때뿐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최근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시위에서 보았듯이, 흑인과 백인의 무장 '민병대' 사이 폭력적인 충돌에 휘말릴 위험에도 직면해 있다. 미국 사회는 베트남 전쟁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양극화되고 있으며, 특히 트럼프가 이미 암시한 대로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 전체 부르주아 지형에서 내전위험은 선거 이후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이는 노동자들이 좌우 사이렌 소리를 거부하고, 민주적 슈퍼마켓(부르주아 투표)의 잘못된 선택을 거부하고, 자신의 계급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단결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할 뿐이다.

     

    20209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1] 참조 : “트럼프 대 스쿼드()” : 미국 정치기구의 악화 ; 세계혁명 384, 2019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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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부르주아 선거(서커스)의 본질을 밝히면서, ‘투표가 아닌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의 입장을 지지하며, 지난 총선(2020년)에서의 우리 입장을 다시 싣는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전 세계적인 재앙이면서도 노동자계급에게 더욱 큰 고통과 희생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선거 이후 그 결과와 관계없이 자본가계급과 정부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를 상대적으로 잘 대응하고 있다는 선전에는 노동자계급의 일방적인 희생과 인내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위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이미 오랜 기간 깊은 위기에 빠져 있었고, 코로나19 사태는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최신 경보 신호일 뿐이다. 자본주의 위기를 막을 수 없는 부르주아 정치의 무능은 포퓰리즘과 파시즘에 이어 인종주의와 배외주의를 부추기면서 노동자들을 더욱 심각한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함께 자본주의는 인류의 평화와 공존이라는 보편적 가치마저 공식적으로 내팽개쳤다. 코로나19는 인류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지만, 지배계급은 이윤 창출을 위해 착취를 멈추지 않고 있고, 오히려 위기를 노동자계급에 전가하고 있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야만으로 질주하는 것은 착취 체제 자체가 작동한 결과이다. 이것은 선거를 통해 지도자나 대표를 잘못 선출해서가 아니라 명백하게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이다. 해결책은 오로지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생산, 노동, 인간 자원과 자연 자원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조직해 소수의 착취자에게 봉사하는 이윤의 법칙을 대체하는 것뿐이다.

     

    노동자계급은 노동자의 해방이 대통령 당선/의회 장악이나 다수파 선출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과 완전한 정치참여는, 자본주의와 그 국가기구의 파괴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비록 지금 소수이지만, 선거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다수가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려는 노동자들이 우리의 희망이다. 자신의 삶을 위선과 불평등의 부르주아 정치에 맡기지 않고, 투쟁을 통해 스스로 민주주의를 창조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평등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노동자계급의 미래이다.

     

    자본주의 쇠퇴기 모든 부르주아 선거는 사기와 다름없다. 매일 세계 곳곳에서 수백 번 넘는 투쟁이 일어나고, 노동자들은 1년에만 수만 번의 투쟁을 벌인다. 하지만, 고작 몇 년에 한 번 치루는 선거만으로 노동자계급은 자신이 누려야 할 권력을 빼앗기고, 일상의 대부분을 지배받는다. 이것이 노동자들이 선거를 통해 노예가 되는 민주적인 권리의 실체다. 노동자들이 이러한 부르주아의 정치와 선거제도에 복종하는 한, 자본주의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정치는 투표소가 아니라 저항하고 투쟁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노동자들이 살아 숨 쉬며 토론하고 행동하는 곳, 계급적으로 연대하고 단결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2020년 4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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