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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롤레타리아트 혁명가들의 사상과 열망은 영원하다!
  • 프롤레타리아트 혁명가들의 사상과 열망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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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래왔고지금도 그러하며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1월은 가장 뛰어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가 세 명을 추모하고 계승하는 달이다. 짧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살았던 세 혁명가는 노동계급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들의 모든 인생을 노동계급을 위해 바친 열정적인 사람들이었다. 코뮤니스트는 개인숭배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혁명가에 대한 종교적 태도 또한 갖지 않는다. 다만, 먼저 가신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들의 경험과 교훈을 계승하고 미래의 계급전쟁에 적용하고자 할 따름이다.

     

      1914년 압도적 다수의 사회민주주의자가 부르주아 진영에 영원히 가담하고 노동자들을 제국주의 전쟁의 먹이로 던져 넣었을 때, 누구보다도 레닌은 전쟁의 본질에 대한 제국주의적 평가에 대해 프롤레타리아의 입장을 방어했다. 노동 운동의 등장과 함께 레닌4월 테제로 볼셰비키의 발전과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계급투쟁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과 함께 볼셰비키는 세계혁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개념을 일상적인 실천으로 전환했다. 자본의 좌파(사회민주주의자)의 변절과는 대조적으로 레닌은 국제주의자였고 세계혁명을 믿었다. 레닌은 러시아혁명이 오직 세계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일부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혁명을 시작하는 큰 영광이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에 주어졌다. 그러나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운동과 혁명이 오직 세계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의 일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보기를 들어 독일은 매일같이 운동 탄력이 붙고 있다. 우리는 오직 이러한 관점에서만 우리 책무를 정의할 수 있다.” (424일 대회의 개회사 중)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볼셰비키의 특징이었고, 1919년 제3 인터내셔널(이하 코민테른) 건설에 레닌이 중심 역할을 한 맥락 속에 있었다. 그러나 코민테른은 세계혁명의 퇴조와 스탈린주의 등장으로 쇠퇴해 갔다. 부르주아지는 언제나 스탈린주의가 레닌의 생각과 이상에 대한 진화라고 가장(假裝)했다. 부르주아 사상가들은 대중매체를 통하든, 교육 시스템을 통하든 자본주의를 전복하려는 어떤 시도도 스탈린주의가 될 것이라는 추악한 거짓말에 의존했다. 스탈린주의는 레닌의 가장 가까운 동지들을 학살하고, 가장 중요하게는 레닌의 혁명적 사상을 10월 혁명의 폐허 위에서 거꾸로 뒤집음으로써 승리를 축하했다. 그러나 레닌의 이름은 노동자평의회, 혁명에 대한 맑스주의 등의 개념에 연결되어 있다. 레닌은 살아있는 계급전쟁 가운데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위대한 사상가이다.

     

      1919115, 두 명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칼 리프크네히트가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구스타프 노스케(Gustav Noske)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그 이전 룩셈부르크는 1916년 재투옥되었으며,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감옥에 있었다. 룩셈부르크는 독일혁명이 시작했을 때 여전히 감옥에 있었다. 전후 1918118, 룩셈부르크는 석방되자마자 독일혁명의 심장부, 베를린으로 달려갔다. 191811, 독일 부르주아지는 노동자평의회를 해체하고 노동자와 병사의 투쟁을 피로 물든 진흙발로 짓밟았다. 191812, 스파르타쿠스 동맹의 구성원들이 독일 코뮤니스트당을 창설했다. 블러드하운드(집요한 추적자)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가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노동자 탄압 시기, 유럽 심장부에서 수백 명의 노동자를 살해했다. 룩셈부르크는 적기(Red Flag) 신문사 사무실에 있었는데,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동지들에 의해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범죄자들이 군중들을 설득하여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를 가두고 베를린 벽보에 포스터에 그들을 죽이라고 요구했다. 벽보의 주제는 섬뜩했다.

     

      “평화, 일자리, 빵을 원한다면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죽여라.”

     

      결국, 그들의 은신처는 발각되었다. 1919115일 밤, 베를린의 부촌 빌머스도르프(Wilmeersdorfin) 거리의 무장한 부르주아 자경단 위원회 구성원 5명은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를 납치했다. 범죄자들은 인질을 경찰에 넘기지 않고, 기병 수비대 소총 사단이 최근 새 본부로 삼은 호화스러운 에덴 호텔(Eden Hotel)로 데려갔다. 범죄자들은 그들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재판을 열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 혁명가들은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범죄자들은 리프크네히트가 도망치려는 와중에 총에 맞았다고 했으나, 구타당한 뒤 총살되었다. 그들은 룩셈부르크 또한 총으로 구타하고 머리에 총을 쏜 다음 수로에 시체를 버렸다. 부르주아 언론은 리프크네히트가 도주하던 중 총에 맞아 숨졌으며, 룩셈부르크는 폭도 중 한 명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썼다. 노스케(Noske)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가 암살에 연루된 공무원들의 무죄방면에 사적으로 사인했다. 기병대 사단의 우두머리로 살해를 명령한 발데마르 파브스트(Waldemar Pabst)는 후에 나치 정권, 독일연방공화국에 봉사했다. 몇 년 후, 그는 자신이 저지른 독일혁명을 진압한 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으며, 결과적으로 자본주의를 구원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오히려 독일 국민들을 비난했다.

     

      “이 독일 바보들은 무릎을 꿇고 노스케와 나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거리와 광장은 모두 우리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

     

      1919115일의 살인은 시작일 뿐이었다. 이후 몇 달 동안 노스케 치하의 수천 건의 살인의 시작이자 히틀러 시대의 수십 년 동안 수백만 건의 살인의 시작이었다. 그것은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신호였다.


      이러한 잔학행위의 90주년을 맞아 독일자유당(FPD)은 베를린에 노스케 기념비를 세우는 것을 제안했다.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의 친애하는 기민당(CDU) 사무총장 포팔라(Pofalla)는 노스케의 행동을 공화국의 용기 있는 방어라고 극찬했다. (2009111일 베를린 신문 Tagesspiegel에서 인용)

     

      특히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혁명가의 암살은 노동 운동과 세계 혁명의 진전에 회복할 수 없는 일격을 가했다. 독일혁명은 선구자들과 사상가들을 잃었다. 불행히도, 그 결과는 무척 중대했고, 고통스러웠다. 한 편에서는 독일 부르주아지가 러시아혁명의 경험에서 배운 것들을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에 써먹었다. 다른 한 편에서 독일 코뮤니스트들은 사회민주주의 사체로부터 탯줄을 끊는데 벌벌 떨었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 정당 건설을 연기했다. 이는 모두 독일혁명 패배로 길을 닦는 것이었다. 이 패배는, 또한 세계 혁명의 패배로 길을 열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프롤레타리아 정치 진영에서 빛나는 붉은 별이었다. 비록 문명화된 야만인들, 스스로 민주주의자라 칭하는 이들이 유럽의 심장에서 룩셈부르크를 살해했다고 할지라도,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열망의 원천, 그리고 특히 자본주의의 발전, 제국주의 개념, 국가에 대한 질문 등에 대한 가르침은 여전히 생동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 혁명가들을 죽인 살인자들이 바라는 것과는 반대로 룩셈부르크는 계급전쟁에서 여전히 살아있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정신은 여전히 우리에게 살아나고 있다. 탄압받는 상황에서 자본의 질서에 관하여 쓴 마지막 글에서 룩셈부르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베를린은 질서를 되찾았다!” 비겁한 아첨꾼들아! 너희들의 질서는 모래성 위에 세워져 있을 뿐이다. 내일, 혁명은 다시 일어나, 무기를 들고 싸울 것이고, 불타오르는 트럼펫 소리가 너희를 공포에 떨게 하며 증명할 것이다.

     

      나는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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