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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령] 코뮤니즘 ABC : 제5장 제2 인터내셔널과 제3 인터내셔널(1~2)
  • 코뮤니즘 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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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장 제2 인터내셔널과 제3 인터내셔널

     


    1. 코뮤니스트 혁명의 승리에 꼭 필요한 노동자 운동의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혁명은 세계 혁명으로써 승리를 거둘 수 있다. 한 국가가 노동계급에 의해 지배되고 있지만, 다른 국가에서 노동계급이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신념에 따라 자본에 순종하는 채로 남아있는 사태가 일어난다면, 결국 약탈자 국가들은 최초의 노동자 국가를 분쇄할 것이다. 1917년에서 1919년 사이에 모든 강대국은 소비에트 러시아를 분쇄하려고 애썼다. 1919년에 그들은 소비에트 헝가리를 진압했다. 그러나 그들은 소비에트 러시아를 분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 국가의 내부 상황이 일촉즉발의 위기에 빠졌고, 러시아에서 군대를 철수할 것을 요구하는 노동자에 의해 정부가 전복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첫째, 이것의 중요성은 한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실현이 만일 다른 국가의 노동자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심각하게 위협받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그런 상황에서 노동자가 오직 한 국가에서 승리했을 때, 그 국가에서 경제적 삶의 조직화가 아주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을 뜻한다. 그 국가는 외국에서 어떠한 것도 받지 못한다. 그 나라는 곳곳에서 봉쇄당한다.

     

    그러나 만일 코뮤니즘의 승리를 위해 세계혁명이 일어나야 하고 여러 국가에서 노동자가 서로서로 원조하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이라면, 이것은 노동계급의 국제적 연대가 승리를 위해 필수적인 준비사항이라는 것을 뜻한다. 노동자의 총체적 투쟁을 위한 조건은 개별 국가에서 일어날 노동계급 투쟁을 위한 조건과 비슷하다. 파업이 한 나라에 고립되었을 때, 노동자는 그 파업을 승리로 이끌 수 없다. 개별 공장의 노동자가 서로 돕기 위해 단결할 때, 그들이 공동조직을 세워 모든 공장 소유자에 맞서 공동의 운동을 수행할 때만 노동자는 파업에 승리할 수 있다. 이는 여러 부르주아 국가에 사는 노동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들이 서로 힘을 합쳐 앞으로 나갈 때, 그들이 서로 싸우지 않을 때, 모든 국가의 프롤레타리아가 단결할 때, 그들이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단일계급이라고 느낄 때만 노동자는 승리할 수 있다. 모든 나라의 프롤레타리아가 서로 완전히 믿고 긴밀하게 동맹을 맺는다면, 세계 자본주의에 맞서 혁명적 활동은 통합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노동자계급은 승리할 수 있다. 노동자의 코뮤니스트 운동은 국제 코뮤니스트 운동을 통해서만 정복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 쪽에서 국제적 투쟁의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인식되었다. 지난 세기 40년대인 1848년에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에, 코뮤니스트동맹으로 알려진 국제 비밀 조직이 이미 있었다. 맑스와 엥겔스가 그 조직을 이끌었다. 런던에서 열린 회의에서, 그들은 조직의 이름으로 선언서를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여기서 프롤레타리아의 위대한 투사들이 코뮤니즘을 최초로 해설한 코뮤니스트 선언이 나왔다.

     

    1864년에 맑스가 주도해서 현재 일반적으로 제1 인터내셔널이라고 불리는 국제노동자협회가 구성되었다. 1 인터내셔널에 여러 국가에서 온 많은 노동자계급 지도자가 연합했으나 통일성이 부족했다. 더욱이 그 조직은 아직 광범위한 노동자 대중에 뿌리내리지 못했고, 오히려 혁명전도사들의 국제단체라는 형태를 띠었다. 1871년에 인터내셔널의 성원들은 파리 노동자의 봉기에 참여했다(파리코뮨). 모든 곳에서 인터내셔널 지부가 탄압받았다. 내적 불화, 그리고 맑스 지지자들과 바쿠닌 지지자들 사이의 투쟁으로 약화되었던 인터내셔널은 871년에 무너지고 말았다. 1 인터내셔널이 해체되고 난 뒤, 사회주의 정당이 여러 국가에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산업이 더욱더 빠르게 발전할수록, 이들 정당도 빠르게 성장했다. 상호지지에 대한 필요성이 아주 했기 때문에, 1889년에 각국 사회주의 정당의 대표자가 참석한 국제 회주의자 회의가 열렸다. 그래서 제2 인터내셔널이 태어났다. 2 인터내셔널은 전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던 1914년까지 존속했다. 그것의 실패 원인은 다음 부분에서 논의될 것이다.

     

    코뮤니스트 선언에서 맑스는 이미 선전 구호를 알렸다. “모든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 그 선언문의 결론은 코뮤니스트는 그들의 관점과 목적을 숨기는 것을 떳떳하지 않게 생각한다. 그들은 그들의 목적이 지금 존재하는 사회질서의 강제적인 전복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드러내놓고 주장한다. 지배계급이 코뮤니스트 혁명에 불안하게 하라. 프롤레타리아는 그들을 얽어맨 사슬 말고는 잃어버릴 것이 없다. 그들은 승리할 세계를 가지고 있다. 모든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이다.

     

    노동계급의 운동이 실패할 운명에 빠지지 않으려면, 프롤레타리아의 국제적 연대는 장난감이나 미사여구가 아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다.

     

    2. 2 인터내셔널의 붕괴와 그 원인

     

    세계전쟁이 19148월에 시작되었을 때, 러시아와 세르비아, 그리고 나중에 이탈리아를 제외한 여러 교전국의 사회주의자와 사회민주당은 전쟁에 맞선 전쟁을 선언하거나 노동자에게 폭동을 일으키라고 선동하는 대신에 자국 정부의 편을 들었고, 약탈을 위한 전쟁에 도움을 주었다. 프랑스와 독일의 사회주의 대표들은 약탈자 정부와 결속하는 의회에서 전쟁에 찬성했다. 봉기를 통해 함께 범죄자 부르주아에 맞서는 대신에, 사회주의 정당들은 각각 그 자신의 부르주아 정부의 기치 아래 독자적인 태도를 취했다. 전쟁은 사회주의 정당들의 직접적인 지지와 함께 시작되었다. 이들 정당의 지도자들은 변절했고 사회주의의 대의를 배신했다. 2 인터내셔널은 치욕스럽게 해체되었다.

     

    그들이 변절하기 얼마 전에, 사회주의 계열 신문과 사회주의 정당 지도자들은 전쟁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보기를 들어, 프랑스 사회주의의 배신자 구스타프 헤르베는 그의 신문 라 게레 소샬레(La Guerre Sociale)에 게재한 계급전쟁, 곧이어 다시 이름을 붙인 승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황제의 위신을 보호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 영광스럽게 죽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가! ” 전쟁이 일어나기 3일 전에, 프랑스 사회당은 전쟁에 반대하는 선언문을 발표했고, 프랑스 노동조합주의자들은 그들이 펴내는 잡지에 노동자여! 당신이 겁쟁이가 아니라면, 저항하라!”고 썼다.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수많은 항의 모임을 열었다. 바젤(Basle) 국제회의에서 통과된 결의문이 여전히 생생히 기억된다. 이 결의문은 전쟁이 일어날 때 대중이 폭동을 일으키게 선동하고 자본주의의 붕괴를 재촉하기 위해모든 가능한 수단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루 또는 이틀 만에 이들 같은 정당과 똑같은 지도자들은 조국 방어를 위한필요성을 주장했다(이것은 그들 자신의부르주아 약탈 국가를 방어한다는 것을 뜻한다). 오스트리아에서노동자 신문은 노동자들이 독일인!”을 방어하기 위해 모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2 인터내셔널이 치욕스럽게 와해된 까닭을 알려면, 우리는 전쟁 이전 노동자계급 운동의 발전에 대해 알아야 한다. 전쟁 이전, 유럽과 미국 자본주의는 식민지를 미친 듯이 약탈한 탓에 발전했다. 자본주의의 지긋지긋하고 잔인한 면들이 또렷이 드러나 있다. 잔인한 착취, 강탈, 사기, 그리고 힘에 의한 가치들은 식민지 국가에서 추출되어 유럽과 미국 금융자본을 위한 이윤으로 바뀐다. 세계 시장에서 국가 자본주의 트러스트의 지위가 세면 셀수록, 식민지에 대한 착취에서 얻을 수 있는 이윤은 더욱 더 커진다. 이러한 잉여 이윤 때문에 트러스트는 임금노예에 보통보다 약간 많은 임금을 줄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노동자계급 가운데 이러한 계층은 자본의 편으로 포섭된다. 그들이 추론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만일 우리산업이 아프리카식민지에서 시장을 찾는다면, 더 좋은 일이다. 산업은 더욱더 번창할 것이고, 사장은 더 많은 이윤을 얻을 것이며, 그리고 우리도 그 파이의 한 덩어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자본은 식민지 약탈에서 거두어들인 몫의 일부로 끌어들인 임금노예 가운데 한 부분을 매수하여 그들의 국가에 얽매이게 한다.

     

    과학적 코뮤니즘의 창시자들은 이미 이런 현상에 주목했다. 보기를 들어 엥겔스는 1882년 카우츠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당신은 나에게 영국 노동자가 식민지 정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보았다. 그 질문은 영국 노동자가 정치 일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같은 것이다. 영국에는 아직 노동자당이 없다. 그저 보수당과 자유주의적 급진당만이 있다. 노동자는 세계시장과 식민지에 대한 영국의 독점으로 생긴 이익 분배에 참여한다.” 이런 토양에서 독특한 예속의 형태, 즉 부르주아지의 부속물, 그들 앞에서 노동자의 자기 비하가 크게 퍼졌다. 엥겔스는 1889년에 다음과 같이 썼다. “여기 영국에서 가장 불쾌한 현상은 부르주아지에 대한 노동자의 존경심이 뼛속 깊이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더 나은 사람우월한 사람에 대한 선천적 존경이 아주 깊어서 부르주아지는 쉽게 노동자를 자신의 그물로 잡을 수 있다. 나는 존 번스가 그의 계급과 함께하여 얻은 명성보다는 카디날 메닝과 다른 유명 인사들, 일반적으로 부르주아와 함께해서 얻은 명성으로 더더욱 우쭐해졌다고 믿는다.”

     

    노동자 대중은 국제적 규모로 전쟁을 수행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들은 그런 종류의 일을 할 어떤 기회도 가지지 않았다. 대부분 그들 조직의 활동은 부르주아에 의해 관리되는 국가의 경계 안에 한정되었다. “그들 자신의부르주아지는 노동자계급, 그리고 주로 숙련 노동자 계층에게 식민지 정책에 관심을 끌게 한다. 노동자계급 조직의 지도자들, 노동자계급 관료, 그리고 노동자의 의회 대표자들이 같은 미끼를 삼켜버린다. 이들 모두는 안락한 자리를 보장받았고, 그리고 평화적”, “조용한그리고 법에 따르는방법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살벌한 측면이 특히 식민지에서 나타난다고 이미 지적했다. 유럽과 미국에서 산업은 고도로 발달했다. 이들 지역에서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형태를 띠었다. 1871년 뒤로 러시아를 뺀 나머지 어떤 곳에서도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1848년이 지나고 나서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앞으로 자본주의의 발전이 평화로울 것이고, 심지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해 온 사람들조차도 결코 그들 자신의 말을 믿지 않았다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었다. 노동계급 지도자들을 포함한 노동자의 한 부분은 노동계급이 식민지 정책에 관심이 있고 공동의 국가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해 노동자는 그들 자신의 부르주아지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많은 하층 중간계급은 사회주의정당으로 모여들었다. 보기를 들면, 독일에서 사회민주주의 의회 집단 가운데 꽤 많은 선술집의 주인과 노동계급 식당의 소유자가 있었다. 1892년에 35명의 사회주의 의원 가운데 4명이 이러한 일을 했다. 1905년에는 81명 가운데 6명이, 1912년에 110명 가운데 12명이 있었다.

     

    결정적 순간에 하층 중간계급이 제국주의 강탈 국가에 이바지한 것은 국제적 결속에 이바지한 것을 넘어섰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2 인터내셔널이 해체된 주요 원인은 식민지 정책과 거대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의 독점적 지위가 노동자, 그리고 특히 노동계급의 상위계층이 제국주의 부르주아 국가에 밀착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노동계급 운동의 역사에서 노동자가 그들의 억압자와 공동의 목적을 만들었던 일이 이따금 일어났다. 보기를 들면, 발전의 초기 단계에서, 그의 주인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노동자는 주인의 작업장을 마치 자신의 것이고, 주인을 적이 아닌 일의 제공자로 여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러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모든 주인에 맞서 서로 연합하게 된다. 거대 국가들이 국가 자본주의 트러스트로 전환할 때, 노동자는 처음에 개별 주인에게 했던 것과 같은 헌신을 이들 국가 자본주의 트러스트에 대해 했다.

     

    전쟁이 터지자, 노동자는 개별 부르주아 국가를 지지해서는 안 되고, 이들 부르주아 국가를 뒤엎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현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계속>

     

    니콜라이 부하린·프레오브라젠스키 지음

    황동하 옮김

     


    <영문 출처> The ABC of Communism(Ann Arbor Paperback : The Univ. of Michigan Press, 1966) 

    <한국어 출처> 빛나는 전망 출판사, 2010년



    <편집자 주>

    코뮤니스트는 진리의 담지자가 아니기에 외부로부터의 이론적 공헌과 열린 토론을 환영합니다.

    「코뮤니즘 ABC」는 '강령 토론 자료'로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의 입장과 다른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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