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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혁명 100년, 87년 노동자대투쟁 30년, 승리와 실패의 유산 모두를 기억하고, 새로운 승리를 준비하자!!!
  • 조회 수: 3247, 2022-03-09 13:18:59(2017-11-10)
  • 러시아혁명 100년, 87년 노동자대투쟁 30년

    승리와 실패의 유산 모두를 기억하고, 새로운 승리를 준비하자!!!

     

    문재인 정부와 노조하기 좋은 나라

     

     작년 10월 29일 첫 집회를 시작으로 거대하게 타오른 촛불 투쟁은 연인원 1,700만 명이라는 기록과 ‘계급투쟁’ 없는 대중행동의 한계를 남기며 박근혜 탄핵과 함께 막을 내렸다. 촛불 투쟁이 사상 초유의 규모로 분출한 계기는 박근혜 정권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면서이지만, 근본에는 자본주의 위기가 있다. 1,000만 비정규직, 사상 최대의 가계부채, 급증하는 실업, 몰락하는 자영업, 생존권 위기에 몰린 빈민과 노인, 철저한 계급사회임을 증명하는 구조화된 빈부 격차, 그리고 이렇게 불평등하고 불안정한 사회에서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수많은 사람의 분노가 촛불 투쟁의 배경이었다.

     

     촛불 투쟁에서 노동자의 요구는 현재 위기와 고통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 문제로 나아가지 못했다. 노조 할 권리,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 최소한의 기본권 요구에 머물렀던 주류 노동자 운동은 대선을 지나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기까지 끝내 넘어서지 못했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현안과 쟁점을 계급투쟁으로 다시 한 번 모아내기 위한 근본적인 반성과 쇄신보다는 ‘정권교체-적폐청산’ 환상에 기대어 ‘노조하기 좋은 나라’라는 ‘국가적’ 캠페인에 나선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시작부터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시킨 치명적 위기를 떠안고 출발했다. 그가 어떠한 개혁 정책을 펼치더라도 그 해결책을 이전 정권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찾아야 하기에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세계 자본주의 위기와 국내 정치경제 위기를 동시에 떠안은 문재인 정권은 동아시아 지역 제국주의 대립 격화와 북핵-전쟁위기까지 가중되는 상황에서 계급적인 ‘저항’에 부딪히기 전에 노동계급 일부를 ‘포섭’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래서 자신의 정치 기반이자 정권교체 주역이었던 촛불 민심을 끌어안는다는 명분으로 노동자 운동 내부를 포섭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계급투쟁의 교훈은 어떠한 정권에서라도 ‘사회적 타협(합의주의)’의 결과는 투쟁을 교란하고 결국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절차일 뿐이라는 걸 증명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30일 기업과 노동계 등 경제 주체들을 향해 '사회적 대화'에 적극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양극화가 심화하고 내수가 위축돼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기업들이 먼저 피해를 보게 되고, 기업이 어려워지거나 해외로 나가면 노동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된다.’며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짐을 나누고, 격차를 줄여가는 노력을 할 때 국가 경제가 더 발전하고, 기업과 노동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또한 정부에서도 전체 노동자의 90%에 달하는 비조직 노동자들을 어떻게 사회적 대화에 참여시킬 것인지 그 방안을 강구해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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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촛불 투쟁에서 조직노동자는 박근혜 정권의 공범인 자본가계급에 맞선 전면 투쟁에 나서지 않았다. 촛불이 100배로 커지는 동안 자신의 동료인 ‘투쟁사업장 동료를 위한 연대 투쟁’에도 적극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촛불 투쟁 이후 금속노조와 전교조 등 일부 정규직 노조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과 조직을 가로막는 일까지 발생했다. 정권이 바뀌자 민주노총 내 노사협조주의-조합주의 세력은 기다렸다는 듯이 비정규직을 위한 일자리 기금을 내겠다고 선언했고, 민주노총은 일자리위원회에 참가했고, 노동운동 내·외부 명망가와 상층 관료는 정부 정책을 지원하는 언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들처럼 노동자 대표(?)로서 적당히 정부를 비판하면서 노동자 투쟁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는 세력이 많아지고, 그 영향 아래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아진다면 정부로서는 큰 우군을 얻게 되는 셈이다. 앞으로 이와 같은 투쟁 회피 세력과 제대로 된 투쟁 없이는 원칙적인 투쟁, 계급적인 요구는 내부 협조자와 조직질서에 의해 차단당할 것이다. 결국 ‘노조하기 좋은 나라’란 이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노동조합이 공식적인 정부 파트너(정부에 포섭, 통합되어) 역할을 하며 ‘노동자를 통제하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유산

     

     올해는 ‘거제에서 구로까지 족쇄 깨고 외쳤던’ 1987년 7,8,9 노동자 대투쟁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노동자 투쟁이었다. 70여 일 동안 3500여 건의 쟁의가 발생했고, 122만 명 노동자가 투쟁에 참여했다. 지난 촛불 투쟁과 비교해도 계급적으로 훨씬 ‘각성’되는 투쟁이었고, 준법-평화시위가 아니라 점거 파업, 거리 투쟁 등 선 투쟁-후 협상, 비공인-탈법 투쟁이 주요 투쟁 방식이었다. 물론 단위사업장 요구를 넘어 전 계급적 요구의 투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투쟁 속에서 얻어낸 노동자 민주주의를 계급적으로 확산하지 못하고 ‘(민주)노동조합’ 형식에 갇힌 한계도 있었다. 문제는 지금 노조운동도 여전히 87년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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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노동 운동 역사의 필연이었다. 이미 1970년에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 있었고, 70, 80년대 치열하고 헌신적인 노동 운동의 밑거름이 87년을 가능케 했다. 지금의 암울한 노동 운동 현실 또한 역사의 필연으로 볼 수 있다. 87년과 다른 점은 30년 전에는 상승하는 노동자 투쟁의 역사적 필연이었고, 지금은 ‘퇴보하는 운동의 결과’라는 반대의 내용이다. 87년 이후 급격히 성장한 대공장 정규직 중심 민주노조운동은 퇴보의 길을 걷다가 근본 쇄신에 실패하고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위기로 인한 불안정노동의 구조적인 증대와 1998년 이후 노동자운동 패배의 연속은, 노동자 조직화의 기나긴 정체현상과 계급운동의 자신감 결여를 초래했다. 이제 과거 민주노조 운동의 뼈저린 ‘각성과 영광’을 되살리는 건 고사하고, 87년 역사적 대투쟁의 기억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더욱이 운동을 파탄으로 이끈 세력과 전면전을 이끌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투쟁’은 내부의 조합주의-관료주의에 막혀 있고, 소수 의식 있는 노동자(계급운동가)의 헌신적 투쟁도 여전히 ‘노조운동’ 안에 갇혀있다. 이것이 우리 현실이자 반드시 기억하고 극복해야 할 민주노조 운동의 유산이다.

     

    1917년 러시아혁명 그리고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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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또한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자 세계혁명의 미래’를 꿈꾸게 했던 러시아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17년~1920년은 전 세계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 봉기가 일어나는 시기였고, 1917년 러시아혁명은 세계혁명의 첫 단추였다. 하지만 그것은 독일 등 유럽에서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물결이 패배하고 소비에트 러시아가 고립되면서 좌절된다. 1차 대전 패배와 내전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러시아는 결국 세계 자본주의 체제 내의 후진적이고 종속적 지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 자본주의적 이행 형식을 들여온다. 이러한 상황을 이어받은 스탈린은 5개년 계획 도입과 농업 집산화로 소련이 사회주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발표했지만, 노동자 권력이 아닌 당 독재의 강화를 가져왔다. 당이 곧 계급이라는 잘못된 결정에 당이 모든 권력을 장악했고, 당이 노동계급을 대신하는 사회가 시작되었다.

     

     1919년은 세계적으로 혁명 물결의 정점이었고,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후 코민테른) 창립총회의 입장은 당시 프롤레타리아 운동에서 가장 혁명적인 것이었다. 사회-애국주의 반역자와의 단호한 단절, 자본주의 쇠퇴의 새로운 시기에 요구되는 대중행동 방법, 자본주의 국가의 파괴 및 노동자 소비에트의 국제적인 독재 등 강령적 명확성은 거대한 혁명 물결을 반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낡은 사회민주주의 정당 내부 혁명적 좌파(이후 코뮤니스트 좌파로 자리매김했다.)의 투쟁과 공헌으로 준비된 결과였다.

     

     코민테른의 혁명적 원칙은 혁명물결 퇴조와 러시아혁명의 고립으로 변질된다. 이 과정에서 소속 당에 러시아 국가 방어를 요구했고, 사회민주주의 전략과 전술로 후퇴한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코민테른은 결국 코뮤니스트 좌파, 혁명운동 세력을 배제하고, 국제주의를 포기한다. 타락해가는 코민테른에 맞서 코뮤니스트 좌파들은 투쟁했으나 분리해 나왔고, 독일 이탈리아에서 파시즘 등장과 함께 반혁명의 시기가 열린다. 파시즘과 스탈린주의 반혁명의 무게에 눌려 결국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는 패배한다.

     

     우리는 러시아 혁명 승리와 실패의 유산 모두를 기억하고자 한다. 러시아혁명의 교훈은 첫째, 일국사회주의가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고립된 프롤레타리아 권력은 적대적인 자본주의 세계에서 오래 생존할 수 없으며, 만약 프롤레타리아트가 한 국가에서 권력을 쟁취하였을 때, 모든 정치, 경제 정책은 반드시 혁명을 전 세계로 확산하는 데 복무해야만 한다. 둘째, 사회주의는 명령경제가 아니며, 생산수단이 사회화되고 국가 권력이 노동계급 지배 아래 존재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반(半)국가-국가소멸로 향하는 노동자평의회의 국제 권력이어야 한다. 셋째, 러시아 혁명에서 국가기구는 반혁명의 도구가 되었고, 이행기에 계급과 국가 사이의 관계가 복잡하고 난해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앞으로 혁명에서도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으며,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코뮤니즘은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으로,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권력 창출과 강화를 통해 가능하다. 코뮤니스트 혁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당의 역할은 필수이지만, 당이 노동자평의회를 대신할 수 없으며, 노동계급의 집단적 권력을 당이 가질 수 없다.

     

     세계적인 혁명 물결이 패배한 후, 이른바 사회주의, 코뮤니즘(공산주의), 그리고 맑스주의라는 용어만큼 더 왜곡되고 남용된 사례는 없다. 과거 동유럽 스탈린주의 체제, 그리고 현재 중국, 쿠바, 북한과 같은 나라가 사회주의, 코뮤니즘과 연관되어 있다는 건 역사상 가장 큰 ‘거짓말’이다. 거짓의 핵심은 스탈린주의 국가가 ‘10월 혁명의 연속선’ 위에 있다는 것과 자신들의 체제가 코뮤니즘으로 이행하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곧 이데올로기로 정당화되어 거짓이 진실인 듯 오랫동안 유지된다. 또한, 스탈린주의 정권이 아무리 타락하고 변질되었더라도 그것이 노동자 국가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도 거짓을 응원했다.

     

     스탈린주의 정권은 실제로 자본주의였지만, 왜곡된 형태의 자본주의였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다른 사회를 대표하는 거로 보였다. 스탈린주의 정권을 특징짓는 비참함, 결핍, 그리고 억압이 자본주의를 더욱 높은 형태의 사회로 바꿀 수 없다는 불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자본주의 경쟁, 제한 없는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욕망, 이런 것이 인간 본성의 본질이라는 걸로 정당화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소련과 동유럽 정권이 몰락했을 때 그 정권의 실패가 맑스주의 또는 코뮤니즘의 실패였다는 ‘거짓말’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코뮤니즘에 대한 오해와 반감(증오)은 더욱 커졌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거짓 선전은 노동계급 일반에 심각한 혼란과 무질서를 가져왔다. ‘현재 자본주의 사회를 넘어설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라는 의식은 노동계급이 자신의 투쟁을 정치화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맞설 수 있는 역량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도 노동계급의 투쟁은 완전히 멈추지 않았으며, 2006년 이후 투쟁은 되살아나 세계로 넓혀져 갔으며 2009년 자본의 위기 전가에 맞선 세계 노동계급 투쟁은 5년, 9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1년 대중투쟁의 부활로 잠시 희망이 보였으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민주주의 환상) 공세와 스탈린주의(민족주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했다. 극단적 테러리즘과 포퓰리즘은 대중의식을 더욱 황폐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에트, 68혁명에서와 같은 성장하는 계급과 새로운 세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 들어 몰락을 거듭한 정규직 대공장 노조운동과 진보정당(민족주의, 사민주의) 운동을 거부하는 노동자의 전반적인 불신 현상 속에서 새로운 세대와 주체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새로운 운동에 대한 요구, 그리고 기성 운동에서 소외된 비정규노동자, 실업자, 빈민, 장애인, 소수자는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 출현의 기반이지만, 낡은 형식과 무너진 계급의식에 막혀 분출하지 못하고 있다. 2017년 노조하기 좋은 나라 캠페인은 투쟁을 통해 스스로 ‘투쟁할 권리’를 찾고 계급적 단결을 통해 ‘노동해방’을 (추상적으로나마) 지향했던 87년 노동자 대투쟁 정신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민주노조 운동 실패의 산물이다.

     

    승리와 실패의 유산 모두를 기억하고, 새로운 승리를 준비하자!!!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계급투쟁과 혁명운동의 미래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지금의 극심한 침체는 낡은 운동의 몰락과정에서 겪어야 할 필연적 고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며 꾸준히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실패의 유산을 반복하지 말고 새로운 승리를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1919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 낡은 운동인 ‘사회-애국주의 반역자와의 단호한 단절’로부터 시작했듯이, 낡은 운동과 지금 당장 단절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무너진 운동의 복원은 과거의 유산으로부터 교훈을 끌어내 다시 한 번 제대로 된 운동의 씨앗을 뿌리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제는 ‘거짓’ 사회주의 운동의 재구성과 낡은 조합주의 운동의 쇄신이 아니라 그것과 철저하게 단절하고 새로운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주체는 소수라도 현실에서 원칙을 지키며 ‘투쟁하는 노동자’, 계급의식을 갖고 실천하는 ‘의식적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 이에 우리는 낡은 운동 속에서도 새롭게 소생하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전망하면서 ‘계급투쟁의 최종목표를 분명히 하고 계급 안에 튼튼히 뿌리내리는’ 장기적인 운동에 나설 것이다. 그 첫 걸음은 노동자 투쟁을 교란하고 계급의식을 갉아먹는 모든 형태의 조합주의와 의회주의, 그리고 계급투쟁을 막다른 골목에 밀어 넣고 코뮤니즘을 왜곡하는 이른바 진보 좌파 정치, 스탈린주의(민족주의) 세력과 철저히 단절하는 일이다.

     

    “코뮤니스트로서 우리의 임무는 노동자 대중 사이 일상적인 투쟁의 슬로건을 발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장의 노동자들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일상적인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노동자들의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으며, 그것으로는 절대 자본주의의 몰락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항상 지적해야 합니다. 코뮤니스트들은 이러한 일상적 투쟁에 참여하고 투쟁의 선두에서 전진할 책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지들! 우리는 일상적인 전투를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이 전투에서 대중의 선두에 서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대중에게 코뮤니즘의 길과 위대한 목표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3차 대회,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 마이어-베르크만 연설 중에서)

     

     현재 자본주의 위기상황에서 분출하는 새로운 노동자 운동은 노동조합 수준에 갇혀서는 안 되며, 정치적으로도 운동 주체와 최종목표가 불분명한 반자본주의 운동이 아니라, 노동계급 자기해방의 최종목표, 코뮤니스트 혁명의 목표를 분명히 밝히는 운동이어야 한다. 이 과정은 어려운 계급투쟁 속에서 주체가 혁명적 계급의식을 갖는 과정이기 때문에, 단기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매우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노조운동을 넘어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으로 나아가자. 계급분열과 국가주의를 넘어 국제주의를 사수하자. 아래로부터의 대중행동, 계급투쟁이 있는 모든 곳에서 세계혁명과 코뮤니즘의 목표를 분명히 밝히자. 코뮤니스트 강령,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혁명적 실천에 기반을 둔 혁명조직(당)을 건설하자. 이것이 ‘코뮤니스트 노동자운동’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30주년, 민주노조운동을 넘어 코뮤니스트 노동자 운동으로!

    러시아혁명 100주년, 계급분열과 국가주의를 넘어 국제주의 사수! 자본주의를 넘어 세계혁명과 코뮤니즘으로!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기억하고 패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자. 그리고 새로운 승리를 준비하자!

     

    2017년 11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러시아혁명 100년 성명.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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