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투쟁
  • [시] 뼈만 남은 사람 - 임성용
  • 조회 수: 6703, 2014-09-13 15:33:19(2014-09-13)
  • 뼈만 남은 사람



    지옥에서도 밥을 먹는가
    밥이 죄일 때가 있다
    산 목숨이 죄일 때가 있다
    밥이 목숨이고 목숨이 저항일 때
    서 있던 사람이 앉아 있고
    앉아 있던 사람이 누워 있고
    누워 있던 사람이 쓰러져 있다


    마른 얼굴에 눈물이 마르고 있다
    입 안에 남은 밥알같은 말이 마르고 있다
    한숨이 마르고 목젖이 마르고
    눈 앞에서 눈동자가 말라가고 있다
    모두가 뻔히 보이는 곳으로
    뜬구름도 아닌 뜬구름이 사라지고 있다
    모래알이 부서지고 햇살이 부서지고
    바람마저 제 몸의 무게를 내려놓고 있다


    뼈만 남은 사람이
    마지막 뼈를 들어내고 있다
    뼈만 남은 사람의 뼈가 마르고 말라
    눈 뜬 자들의 눈 앞에서 사라지고 있다
    마침내 눈 앞에 없는 사람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다
    뼈만 남은 사람들이 서로의 갈비뼈를 들고
    버려진 머리와 굳은 근육과 사지를 쓸어담아
    이미 오래 전에 항전이 끝난 무덤으로
    터벅터벅 향하고 있다






    썩지 않는 슬픔



    슬픔은 썩지 않는다
    진저리치는 슬픔의 씨앗은
    한 잎 새파란 싹을 틔우기 전
    몸서리치는 뿌리를 먼저 뻗는다
    후욱, 뜨거운 김을 내뿜고 발효되는 슬픔은
    분노의 질량과 목숨의 성분을 모두 끌어모아
    짓이겨진 손바닥 발바닥 아래
    치우지 못한 무거운 돌맹이의 이끼로 달라붙는다
    벌레처럼 절망하는 자는 슬픔을 사용하는 법을 모른다
    눈물을 흘려야만 하늘이 보인다


    슬픔이여, 나를 쳐라
    바퀴에 치인 뱀의 허리가 용을 쓰며 질질 기어가는 것을
    얼굴이 물어뜯긴 고양이가 외눈을 흡뜨고 밤새도록 울고 있는 것을
    제초제를 뒤집어쓴 풀밭의 바람이 죽은 가을의 목덜미를 물고오는 것을
    한순간, 기쁨을 동경하다 기쁨의 심장을 관통하여 추락하는 새가
    저 수없이 사라지는 잿빛 가루와 반짝이는 먼지들이
    그 어떤 슬픔의 기색도 없이 슬픔의 몸통으로
    바싹 말라 그대로 타들어가는 것을


    - 임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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