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투쟁
  • 동양시멘트지부 투쟁 승리를 위한 간담회 "투쟁의 원칙과 전망에 대하여"
  • 조회 수: 653, 2016-08-19 11:27:01(2016-07-04)
  • [간담회] "위장도급 분쇄! 정규직 전환 쟁취!" "투쟁의 원칙과 전망에 대하여"

    - 동양시멘트지부 투쟁 승리를 위한 간담회

    삼척에 소재한 삼표동양시멘트의 사내하청노동자들은 20년 넘게 위장도급으로 옥외광산에서 석회석을 발파·채굴하는 위험한 작업을 하면서도 정규직의 절반도 못되는 임금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고자 동양시멘트 하청노동자들은 2014년 5월 17일 강원영동지역노조에 집단으로 가입하여 동양시멘트지부를 결성했다. 노조 건설 이후 노동부에 위장도급 진정을 내어 2개 위장도급 업체 250여 명의 노동자들이 작년 2월 모두 위장도급 판정을 받았고, ‘입사 때부터 정규직’이라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도 인정받았다. 동양시멘트는 곧바로 2개 위장도급 업체를 계약해지하는 방식으로 101명의 하청노동자들을 부당해고했다. 

    2015년 8월 해고자들이 일하던 49광구에서 선전전 도중 사측과 사소한 충돌이 벌어져 지부장, 총무차장 총 2인이 구속되었다. 그 사이 삼표가 동양시멘트를 인수했고 남은 조합원들은 삼표 본사 앞에 농성장을 꾸리고 상경투쟁과 지역투쟁을 병행하며 힘겹게 투쟁했다. 그러나 삼표 자본은 자회사로 고용해준다고 쓰레기 안을 제시하며 조합원들을 흔들었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노동행위, 부당해고를 인정받았지만, 삼표 자본의 쓰레기 안을 받고 27명이 노조를 집단 탈퇴하고 회사로 복귀했다. 실제로는 20% 임금을 더 받고 하청업체로 다시 돌아간 것이었다. 그마저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투쟁하는 조합원수는 23명으로 줄었다.

    2016년 1월 김경래 수석부지부장을 비롯한 조합원 5명이 추가로 법정 구속되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조합 탈퇴자는 집행유예, 벌금 판결을 받고 투쟁하는 노동자만 노린 노골적인 사법탄압이었다. 남은 조합원들은 이후에도 계속 투쟁을 이어갔고, 4월 26일 7명의 조합원들은 전원 석방되었다. <붉은글씨>는 동양시멘트 투쟁이 500일에 다가가고 있는 시점에서 이 투쟁의 승리를 위해 김경래 수석부지부장과 연대 동지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참석 

    김경래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동조합 동양시멘트지부 수석부지부장)
    조한경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 사무처장)
    강종숙 (학습지노조 재능교육 투쟁승리를 위한 지원대책위원회
    이경문 (사회자, 붉은글씨 회원)
    신정현, 한송우 (연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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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자: 동양시멘트지부가 세워진지도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민주노조를 건설해야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있었나요?

    김경래: 꼭 민주노조라기보다도, 노동조합이 앞으로 계속 민주노조로 남아있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사회자: 민주노조를 건설하고 나서 김경래 동지의 삶에서 변화한 것은 무엇인가요? 민주노조 활동에서 배우고 느끼는 점이 어떤 것인가요? 

    김경래: 노동조합 하면서 달라진 게 있지요. 그동안 살아왔던 역사관과 노동자의 역사관이 부딪치면서 많이 달라졌어요.

    사회자: 위장도급,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판정을 받았을 때의 상황과 느낌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세요. 특히 강종숙 동지는 특수고용노동자로서 이를 바라보는 느낌이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김경래: 그 당시에는 기분이 좋았어요. 며칠 동안 기뻤습니다. 하지만 법에 명시되어있다고 내치는 이상한 나라에 살다 보니 참 답답합니다.


    강종숙: ‘중규직’, ‘무기계약직’이란 말이 코스콤 비정규직 투쟁에서 처음 나왔고, 그 이후로 그게 ‘선례’가 되면서 저 정도는 싸워야 잘되면 무기계약직이고 주동자는 복직되지 못하는 이런 것들이 일종의 ‘선’이 돼 버린 것 같아요. 그 이후는 말할 것도 없이 더 비참했습니다. 계속 밀리고 지면서 지도부는 싸울 의사가 없었고, 말로는 비정규직 철폐라고 하면서 뒤에 가서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였다는 말이 비정규직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 입에서조차 노골적으로 나왔고 때로는 ‘비정규직 철폐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냐?’라고 비아냥거리는 자들도 많았죠. 최근 예를 보면 현대차 비정규직을 볼 수 있는데,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나와도 자본이 버티면 우리 내부에서 슬금슬금, 좀 지나면 아주 노골적으로 자본의 앞잡이가 되어서, 온갖 추악한 짓을 해도 민주노총 내부에서 아무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거기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탄압받고 배제되는 그런 지경을 쭉 목격하게 됩니다. 그런 것을 바라볼수록 특수고용직이 노동자로 인정받는 것이 더욱 멀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쨌든 ‘노동자’인 비정규직도 김경래 동지가 말씀하듯이, 중노위에서 다 승리해도 자본이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고, 더 큰 문제는 무시하는 과정에서 우리 내부에서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노동자들 등에 칼을 꽂아도 그게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나마 동양은 칼 꽂고 가버렸으니 어찌 보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투쟁도 그랬고 현대차비정규직도 그랬고 등에 칼 꽂는 것뿐만 아니라 난도질을 해도 민주노총이라는 우산 아래서 버젓이 완장 차고 활보할 수 있는 지경까지 온 것이 우리 운동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 동양시멘트지부 투쟁 전개 과정
     

    사회자: 2015년 11월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노동행위,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직후, 조합원들이 대거 이탈하였을 때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김경래: 2015년 7월 즈음이었어요. 노조 만들고 투쟁하기 전 생각들이 많이 남아 있었고, 민주노조가 어떤 것인지 충분히 공부하지 못하고 그냥 정규직만 되면 된다는 상황이었습니다. ‘민주노조 상관없다. 정규직만 되면 된다. 돈만 더 받고 복직해야겠다.’ 이런 얘기하면서 한국노총에 갈 수도 있다는 얘기도 있었고요. 거기서 힘을 모으지 못하고 노동조합의 어떤 목표를 정확히 하지 못하고, 분위기에 타서 다 숨기고 있었던 것이지요. 저도 그 당시에, 7월에 갈등을 많이 느꼈습니다. 어쨌든 나도 지도부였지만 그런 생각들이 보이지 않게 작용했죠. 


    2015년 8월에 상경투쟁을 시작하면서 사측이랑 교섭을 시작했습니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고, 그 과정에서 ‘자회사 복직’ 쓰레기 안이 나온 것이죠. 교섭 과정에서 회사는 노동조합 내부의 의견 차이를 간파했고, 서로의 생각이 어떤지 알고 있으니 더 이상 교섭이 안 되었던 거죠. 

    제가 볼 때는 조합원 동지들은 교섭에 의존하는 측면이 강했습니다. 평소에 안 나오다가 교섭 때면 나오고, 그런 상황을 제가 반대했지요. 그 과정에서 사측으로 넘어간 사람들이 지능적으로 총회 소집을 요구하면서 민주노조 깃발을 가져가려고 했었어요. 지부장이 감옥에 가있는 상황에서 제가 강력히 반대했고, 완강히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사측으로 넘어간 후배들한테 맞기도 하면서요. 하여튼 민주노조 깃발 지키는 것이 되게 힘듭니다.


    조한경: 사실 집단탈퇴와 관련해서 탈퇴했던 사람들의 이해관계는 당시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노동행위, 부당해고 판정 전에도 계속 있었지요. 노동조합을 설립하게 된 취지라든가 이해관계가 약간 차이들이 있었죠. 그게 지도부에서 나타난 것이 지역노조위원장 탈퇴, 사퇴였고, 이런 과정에서 두 가지 부분들이 대립점이 있었습니다. 하청을 인정하고, 하청업체와 교섭하면서 임금인상과 정규직에 비등한 임금 인상과 노동조합 활동을 계속 유지해 나가자는 입장들이 있었고요. 그와 반대로 불법파견 문제를 제기하면서 직접 고용쟁취 투쟁들을 벌어 나가야 한다, 그다음에 그런 소지들이 시멘트업계에서는 노골적으로 있었던 관행이라 현장에서 다분히 정리된 뒤에 투쟁을 하자, 그런 부분들이 이미 노동조합이 설립된 2014년 5월 17일 이후부터 내부 다툼들이 있었던 부분들이고요. 여기에 매각 단계와 해고되는 상황들이 맞물리면서 집단 탈퇴 전에도 이미 대다수 조합원 사이에는 직접고용, 불법 위장도급 철폐투쟁을 매개로 실리를 챙겨야 한다는 입장들이 노골적으로 퍼져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중노위에서 노동조합이 이길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노위 이후 자회사 안을 던짐으로써 노골적으로 갈등이 드러나게 된 것이죠. 전부터 그런 갈등은 있었죠.


    사실은 두 가지 문제가 고민이 되요. 노동조합 운동 일반이 노동조건 개선, 임금인상과 같은 투쟁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흐름들이 있는데 과연 이것이 근본적으로 노동자들의 삶을 본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들인가? 그리고 ‘정규직 전환’ 문제도 정규직이 된다하더라도 임금 노예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데 그게 최종목표가 될 수 있는가? 이런 것에 대해 전체 운동 차원에서 많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노동조합 설립 이후 노동조합 활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고, 두 번째는 김경래 동지가 얘기했듯이, 사측으로 넘어간 사람들이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이 아니라 총회를 소집하자고 요구를 해왔었어요. 왜냐하면 노동조합의 의결 정족수 이상인 과반수가 서명을 해서 총회소집을 요구해서 노동조합의 투쟁 기조를 바꾸고 그에 따라 안을 받자고 했었어요. 수석부지부장이 총회소집에 대해 완강하게 거부하고 내부에서 투쟁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러지 않았다면 총회를 소집해서 과반수가 투쟁 기조를 바꾸고 자회사 쓰레기 안을 받아들였으면, 사실 조합원들의 이탈은 없었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의 투쟁 또한 있을 수 없었겠지요.

    고민되는 것은 노조 내의 민주주의가 정확하게 원칙과 계급적 입장을 관철해 나가지 못하는 부분들로 작용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계속 수용해야 하느냐 고민이 그 이후에 생기기 시작했어요. 다수결 그 자체가 민주주의는 아니잖아요. 아무튼, 이탈은 아까 강종숙 동지가 얘기했지만 사측으로 넘어간 사람들이 끝까지 노조 내부에서 총회소집을 요구하고 기조 변화를 요구하고 투쟁을 접을 것을 요구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차라리 탈퇴하고 나간 것이 현재 투쟁에 있어서는 그나마 다행이지요. 내부에는 ‘임금 받고 그만두자’는 주장이  끊임없이 존재하고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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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종숙: 노조민주주의 관련해서 학습지노조 재능교육 투쟁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던 상황인데, 재능교육은 특수한 경우죠. 우리는 노동조합이 10년 이상 가까이 지속되었던 상황이고 동양은 없었던 건데, 동양은 그래서 그 측면에서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노동조합 민주주의라는 것을 다수결로만 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들의 이데올로기만이 이길 수밖에 없어요.

    재능교육 같은 경우도 2007년 투쟁 시작할 때 어쨌든 공식 의결단위 절차를 다 거쳤어요. 중앙위원회 열어서 표결까지 가서 싸웠는데 우리 쪽이 졌지요. 표로는 게임도 안 됐어요. 재능교육지부 총회에 부쳐서 당시 이현숙 집행부의 부정투표가 있었지만 어쨌든 우리가 졌어요. 정상적인 선거를 했으면 질 수가 없었는데, 저들은 나름의 협박도 하고 ‘우리는 안 싸울 것이니, 반대표 던진 너희들이 나가 싸워라.’ 라고 했어요. 그래서 나타난 결과는 우리가 졌어요. 그리고 규약에 쓰여 있는 대로 중앙위원회에서 승인이 났고. 그것을 막아 나선 것이 우리였던 것이죠. 당시 저는 중앙위원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반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재능지부 현장에 있던 조합원들이랑 제가 대표자로 있는 학습지노조 서울경기남부지역본부 전체 운영위원회를 열어서 우리 본부는 싸운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학습지노조와 상급단체인 서비스연맹에서는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 됐죠.


    이게 돌이켜보면 ‘민주노조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과거 한국노총이 장악하고 있는 어용노조들 내부에서는 표결은 어림도 없었죠. 물론 87년에 폭발적으로 일어났던 노동조합들에서는 달랐겠지만, 그렇지 않은 노조들은 집단적으로 모여 있는 어용세력들 때문에 아무 방법도 없었고, 민주노조로 가려고 하면 잡아서 집단린치하고 산에 끌고 가고 … 이렇게 지난한 과정에서 핵심은, 노동자계급을 위한 투쟁원칙 이런 것이 딱 성문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투쟁의 중요한 고비마다 ‘원칙’이 과연 무엇인가 실천적으로 입증되어 왔던 것 같아요. 동양의 경우도 그 당시에 사측으로 넘어간 사람들이 총회를 요구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총회를 거부하는 것이 맞다’고 봤습니다. 설사 총회가 열리더라도 분리해서 싸우면 된다.

    우리는 일방적이었죠. ‘8대2, 9대1’ 이 수준이었는데도 싸웠어요. 노조민주주의는 절대로 다수결이 아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조기구 자체가 보수화되고 관료화되는 상황에서 다수결로는 이길 수 없는 구조가 점점 더 심화될 것이다. 그럼 결국 ‘투쟁파’들이 감수하고 싸워야죠. 대가는 크죠. 자본으로부터의 봉쇄, 국가기관에 의한 구속, 노조 내부에서조차 ‘그 사람들은 완전히 깡패다.’라는 악선동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우리가 진정으로 처음 분노해서 일어났던 원초적인 요구들을 관철시키기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한경: 만약에 상상을 해보면 2월 13일 동양시멘트 투쟁은 위장도급 판결 후 해고가 되지 않았다면 투쟁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고민들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정부기관의 판정이 노조한테는 상당히 유리하게 났죠. 하지만 업체 자체는 매각과정에 있었고, 하청업체 도급계약 해지를 통해 ‘해고’라는 조건을 부여했고, 그러다 보니 어떻게 보면 투쟁하겠다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훨씬 수월하게 투쟁을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매각이나 교섭도 되지 않고 회사 측 안을 던지지도 않고 하다가 매각인수가 확정되면서부터 노조가 조직력에서 요동치기 시작했죠. 그걸 제외하면 노조로서는 해볼 만한 투쟁이었어요. 그런데 사실 동양시멘트는 손 떼고 떠날 자본이었고 그쪽 대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애꿎은 고용노동부나 시청을 상대로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풀려고 했었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 비정규직 ‘철폐’와 ‘차별 철폐’ 이런 것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교육이 상당히 부족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11월에 삼표가 던진 안으로 조합원들이 와르르 무너진 것이죠. 투쟁에서 조직과 사람을 남기기 위해서는 원칙 자체를 변경해도 된다, 투쟁 수위를 낮춰도 된다, 이런 입장들이 외부에서도 다양하게 주입됐습니다. 가끔씩 왔던 사람들도 그런 얘기를 노골적으로 했고, 진정과 관련해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자체만 유지되면 투쟁을 접고 가도 된다, 그런 부분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겁니다. 결국 23명까지 남았는데 회사에서도 16명 정도 남을 것이라고 예측했었죠. 우리가 봤을 때도 이 사람들은 갈 것이다, 총회요구 전에도 그 정도 남아있으리라 어느 정도 예측은 했었죠.

    김경래: 아까 조한경 동지가 얘기했듯이 그런 것들에 대해 교육 자료라는 것이 부족했던 것이 안타깝습니다. 자본주의적 의식 체계 속에 살고 있는 조합원들의 의식적인 부분들을 깨는 작업을 해야 했는데 잘하지 못했거든요.
     

    # 수석부지부장으로서 바라본 동양시멘트지부 투쟁


    사회자: 2016년 1월부터 4월까지 약 93일간 수감 생활을 하셨는데, 구속 당시의 심경과 수감 생활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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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래: 저는 일정 부분 각오하고 투쟁을 했습니다. 그날도 들어가지 않을까 하고 모든 휴대폰이랑 지갑이랑 다 동료들한테 전하고 … 언젠가는 감내해야 할 정권과 자본의 탄압이기 때문에, 하필이면 한창 추울 때 이 정권이 … 여하튼 각오는 했었습니다. 감옥에 있으면서 솔직하게 좋았습니다. 밖에서 너무 고생했었고, 그 안에서는 고생할 일이 없잖아요. 안에서 욕심났던 것은 그동안 못 했던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처음 두 달간은 종일 읽었는데 그 다음부터 재판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재판 끝나면 읽고 그랬습니다. 일 년 정도 살지 않겠느냐 마음을 먹었는데, 죽기를 각오하면 살지 않겠느냐 하는 말처럼 석 달 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여튼 동지들이 너무 잠을 못 자고 전국 돌아다니면서 CMS 조직하고 그런 것을 볼 때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침 선전전 할 시간에 저는 밥 먹고 있는 게 미안하기도 했고. 마음먹고 가서 그러는지 몰라도 집사람도 몇 개월 지나니까 마음의 정리를 하더라고요. “일 년 정도 살지 않겠느냐? 지부장이랑 못 나오지 않겠느냐?”하면서 … 감옥 안에서 93일이 금방 지나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감옥 안에서 흰 머리가 엄청났습니다.

    사회자: 출소 전후로 수석부지부장으로서 공백기를 가졌는데, 답답한 지점은 무엇인지? 향후 동양시멘트지부의 투쟁을 어떻게 펼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나 계획이 있는지?


    김경래: 전투력이든가 하는 건 동지들이 나보다 많이 뛰어났다고 생각해요. 동지들의 생각이 저를 능가하는 생각이 있더라고요. 감옥에 있던 3개월은 저한테는 소중한 시기였습니다. 전투력을 다시 되살리는 차분하게 생각하는 시기였고, 공백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오자마자 바로 그다음 날부터 결합해서 공백기라기보다 어떤 나의 힘을 만드는 그런 계기가 되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싸워야겠다. 싸움의 주체가 무엇인가? 어떤 놈이랑 싸워야 하는가?’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죠. 답답한 것은 사람들이 위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밖에서 투쟁할 수 있는 동지들은 힘을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데, 동지들이랑 대화를 해보니 우리끼리 서로의 투쟁을 제한하고 그러니까 그게 답답한 것이죠. 위축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자본이 쫄아서 우리를 잡아넣은 것이다. 그냥 놔두면 우리가 계속 투쟁하고 난리 날 것 같아서 우리를 잡아넣은 것이다’라고 생각해야한다고 봅니다. 어쨌든 감옥에 갔었지만 그 투쟁 같은 경우는 우리의 승리라고 봐요. 비겁하게 잡아넣어서 우리가 이긴 것이라고 봅니다.  

    조한경: 상황 자체는 사실은 4월에 49광구 투쟁부터 계속 묻혔죠. 결정적으로는 회사관리자들이 현수막 철거하는 상황에서 폭행 건이 있었고, 그 투쟁 이후에 계속 소송 들어오고 이렇게 되면서 강원본부에서 중간에 결합한 저로서는 구속 자체가 황당했었습니다. 정말 우리가 그 정도 형을 살 정도로 투쟁을 했으면 억울하지도 않았는데, 93일을 살아야 할 만큼 투쟁을 하진 못 했던 부분이 많았죠. 특히 지부장 관련한 상황을 보면 8월 3일에 회사 측에서 시비 걸고 경찰에서 연행하고 검찰에서 구속영장 청구하고 법원에서 영장 바로 발부해서 8월 6일 구속 확정되기까지 일사천리로 쭉쭉 진행되었습니다. 8월 지부장이 구속된 이후부터 올해 1월 13일 남은 5명의 동지들이 법정구속 되기 전까지 시기 시기별로 많은 투쟁을 배치했죠. 집회도 매월 지역본부 차원에서 집중결의대회도 했고, 노숙 상경투쟁도 있었고, 삼포 회장 정도원 집 앞으로도 갔었고, 23명 중 구속된 동지들 제외하고 매일 노숙투쟁… 사실 대외적으로 동양투쟁이 많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죠. 

    사회자: 강종숙 동지는 노숙농성에 대해서 어떻게 보시나요? 노숙농성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경험에서 얻은 교훈 같은 건 없으신가요?

    강종숙: 노숙농성만 가지고는 답이 안 나오죠. 아까 잘 말씀하셨는데 자본이 공격을 하려면 그들도 돈이 듭니다. 우리도 돈이 들지만 저들도 돈을 많이 써야하죠. 구속시키면 엄청 저항을 하는구나, 느끼도록 하는 투쟁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정도원 회장 집 가처분 상황과 이후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투쟁하게 되면 대가가 따르기 마련인데, 우리는 구속이든 손배가압류, 벌금이든 주로 몸으로 때우는 쪽으로 돈이 들지만 자본가들 역시 그만큼 돈이 나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 만큼 탄압을 했는데도 우리가 변함이 없거나 더 세게 투쟁하면 당황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자본가들입니다. 물론 그 지점을 넘어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동양 동지들이 노숙농성을 계속 이어 갔는데 제가 아쉬운 것은 이마빌딩 관리자들도 그렇고, 거기 나오는 경찰들도 그렇고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요. 항상 ‘이것들이 무슨 짓을 할까’ 긴장돼 있어야 정도원 회장이든 삼표 직원이든 마음 편하게 출퇴근을 못하게 됩니다. 


    재능교육 투쟁하면서 7년 동안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박성훈 회장 집 앞에 갔습니다. 박성훈도 어느 시점에서는 압박을 받게 되는데 동네주민들이 이제 박성훈에 대한 욕을 하죠. 주민들이 다 친할 수 없으니까요. 가진 놈들은 안 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열구가 있었어요. 저도 거기 가면 가만히 있는데 누가 와서 박성훈 욕하고 가고, 어지간하게 지긋지긋해야 그런 것이 생겨요. 한두 번 가서 그런 것이 생기지 않죠. 어쨌든 종합해보면 노숙농성 유지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밖에 자본이 제일 괴로워할 만한 것 우리가 큰 뭔가를 하긴 쉽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고 하다보면 저놈들이 뭘로 가장 괴로워하는지 보여요. 그걸 집중적으로 잡고 흔들어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고, 우리도 노숙농성 하는 과정에서 몇 번 씩 철거를 당하고 하면서 나아졌어요. 철거를 당하면 반짝 나아져요. 대신 다시 농성장을 차리려면 힘이 듭니다. 우린 천막은 고사하고, 깔판 하나도 깔지 못하고 몰려 있을 때가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있으면 환장하고 있는 것은 자본가들이죠. ‘안 끝나네.’라는 느낌. 이미 감옥 갔다 왔기 때문에 쉽게 두 번, 세 번 구속 안 됩니다. 그래서 오히려 구속을 계기로 해서 조금 더 사측과 경찰이 괴로울 만한 투쟁을 벌여나가면 이길 수 있다고 봅니다. 
     

    # 동양시멘트지부 투쟁의 전망
     

    사회자: 동양시멘트지부 투쟁은 다른 사업장 투쟁과 어떤 점이 다르다고 보시나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갔으면 하는지?

    강종숙: 투쟁을 하다 보면 시작된 이유가 다 있습니다. 보통 크게 보면 해고라든지 아니면 노동조합이 있었던 곳이라면 단체협약 파기라든지. 학습지의 경우도 불안정하지만 어쨌든 단체협약이 있었습니다. 사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법적이든 물리력이든 단체협약을 강제할 만한 힘은 없었던 노동조합이었는데 2007년 당시 정말 노동조합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단체협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싸웠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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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요구는 그 당시 우리 힘을 반영해서 단체협약 전체가 아닌 수수료(임금) 제도 전면 개정이었습니다. 굉장히 방어적인 요구였죠. 자본이랑 싸우고, 노동조합 내부의 어용이랑 싸우고 … 투쟁이 진행되면서 본질은 바뀌지 않았는데 점점 더 내부랑 싸우는 일이 많아졌어요. 자본이랑 싸우는 것은 기본이었고. 자본은 계속 탄압하고 건드렸어요. 손배가압류, 구속, 철거, 매일 벌어지는 용역깡패랑 충돌 … 이런 것들 때문에 자본과 치열하게 싸우는 와중에서 내부에서는 계속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내부의 회의를 통한 결정도 있었지만 조합원들의 힘으로만 싸웠던 것이 아니고 연대 동지의 힘으로 싸웠던 상황이었어요. 제가 위원장이어서 초기 4~5년 동안 집회 때 발언을 거의 저만 했어요. 제가 재능교육 소속도 아니었는데 재능교육지부 간부들도 집회 때 발언을 거의 안 하려고 해서 제가 발언을 하면서 대회사 등등 선제적으로 회의 결정 사항이든지 계속 외부로 공표를 했죠. 재능자본이 귀를 쫑긋이 들고 듣고 있으니까 귀에 못이 박이도록 얘기해서 못을 박았습니다.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복직” 거기에 자본은 치고 들어오죠. 다 보이거든요. 높은 데서 보고 있으니 농성할 때 보면 어떤 사람인지 견적이 나오죠. 사람 성향들을 잘 알기 때문에 어느 시기에 어떤 안을 던지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그들의 예측이 얼추 맞아요. 그렇게 해서 자본은 내부를 계속 흔드는 겁니다. 동양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봐요. 지리멸렬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싸움이 필요합니다. 노숙농성 하면서 자본이 가장 괴로운 것을 해야 합니다. 저는 10년을 노숙농성을 했는데, 단 한 번도 정시에 시작해서 정시에 끝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제가 피켓을 들 때 서 있던 자리는 용역깡패 대장이 와도 한 번도 제가 서 있던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았습니다. 학습지 대교 투쟁 때부터 이제 그런 것들을 고수하고 지키고, 자본한테 우리 요구는 뭐다 못을 박아놨으니, 행동이든 요구사항이든 자본가들은 이러한 지점들을 ‘자기견적서’에 넣을 수밖에 없어요. 저놈을 솎아내려면 어쨌든 여기까지는 해야겠구나, 라는 인식을 주는 것이죠. 김경래 동지가 말했던 것처럼 예를 들어 노동조합 깃발을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게 노동조합 회의석상이든 집회발언이든 해야 된다고 봐요. 자본가들이 들을 수 있는 모든 곳에서 ‘우리 요구는 노동조합 깃발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노동조합 깃발 들고 들어간다.’라고 얘기해야 합니다. 


    단체협약 원상회복! 절대 개별복직 하지 않는다, 재능교육 종탑어용세력들은 단체협약을 지키기 위해 또다시 노숙농성, 구속 불사하면서 싸울 마음이 없었던 것이죠. 저들은 마지막에 정말 그 요구가 필요해서 합의한 게 아닙니다. 지난 삼 년 동안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죠. 그래서 끊임없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자본과 연대 동지, 상급단체, 그리고 조합원 내부에서 … 우리 요구는 거의 항상 최소한의 요구죠. 늘 밀리고 있는데 가장 절박한 최소의 요구, 끊임없이 원안을 고수하고 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원안 고수하고 싸울 때, 연대 단위나 원안 고수하는 조합원들이 지지하는 안을 다수가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야금야금 넋 놓고 바라보면 어느 순간에 그 반대의 경우가 천지가 돼요. 처음에 밀고 들어올 때 간을 보죠. 장악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개떼 같이 들어와서 흔들어대요. 투쟁하는 노동자의 편인 척하면서 실상은 자본가의 앞잡이라든가, 내부를 흔드는 자들이 다수가 되지 못하게 정확하게 중심을 잡아가는 투쟁이 필요합니다. 내부가 안 흔들리면 그런 놈이 안 들어옵니다. 처음에 붙으려고 하다가도 회의 진행되는 것을 보면 들어오려고 하는 마음이 안 생기죠. 그래서 항상 치열하게 내부에서 싸워야 합니다. 밖에서 집회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안 고수가 절대다수는 아니라 해도 결국 처음에 요구했던 원안에 한참 못 미치는 말도 안 되는 안을 들고 와서 마지막에 개별로 복직해버리면 아무 의미 없거든요. 자본은 항상 투쟁하는 대오로 들어온 사람들을 최소한으로 만들어 놔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학습지노조 재능교육 투쟁에서도 그런 측면에서 마지막 남은 3인이랑 합의할 때, 복직해서 너희들 뭐 할 것인지 노동조합 할 것인지 등등 합의할 때 마지막까지 쟁점사항이었고 자본이 궁금해 했어요.

    종탑어용세력들이 계속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사측에서 교섭 자리에서 노골적으로 얘기했었어요. 너네 3인과 합의할 수 없는 이유가 종탑 측이 타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놓고 말이죠. 그래서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각오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계속 흔들리기 때문에. 자본만 흔들면 버틸 텐데, 연대부터 남아 있는 23명이 끝까지 가면 좋은데, 이건 이상적인 것이고 현실에서는 계속 흔들릴 텐데, 23명 모두를 중심 잡기 위해서 노력해야지요. 그 동지들을 모아서 똘똘 뭉쳐 결집시켜 나가야 어느 정도 끝까지 원안을 가지고 갈 수 있는 동력이 생깁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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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한경: 우리가 지금 ‘이긴다! 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들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단지 나만, 우리 조합원만 정규직이 되면 끝나는 것인지, 복직하고 나면 계속 정규직 임금 노예로 살 것인지, 이런 고민들이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 또 지금 현 시기에 있어 고민해야 할 지점은 여러 연대 단위와 함께하면서 7월 9일이면 500일인데, 그동안 우리가 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냐에 대한 고민이 확장되어야 합니다. 작년 12월에 반 이상의 조합원들이 탈퇴했을 때, 그 사람들이 애초에 주장했던 것이 무엇이냐? 그 사람들은 처음부터 임금 몇 퍼센트 인상과 하청업체의 삶을 계속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젠가는 공론화되고 다툼이 있어야 하지, 계속 놓아두면 고름만 커지고 나중에 수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단호한 부분들이 필요합니다. 투쟁의 원칙 자체가 훼손되는 것을 제어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어차피 하기로 했으면 밀고 갔으면 합니다. 자본가들의 입장에서 가장 껄끄러운 것은 정도원 회장의 집이든 정도원 회장이 다니는 교회든 최병길 사장 집이든, 필요하면 96시간, 144시간 등의 투쟁 배치가 필요합니다. 연대 단위는 외곽에서 이벤트와 퍼포먼스 중심으로 투쟁을 배치하는 데, 조합원 동지들은 거점농성장을 어떻게 만들고 투쟁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사람들 모아서 한 번 반짝하는 것이 아닌 농성장을 중심으로 적들이 가장 껄끄러운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결코 무리한 선도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해왔던 부분들에 하나둘씩 좀 더 만들어 가는 고민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경래: 조합원 동지들이 회의, 간담회, 토론회를 통해서 계속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같이 계속 모여서 얘기하고 토론하면 나아지고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마지막으로 투쟁 주체가 연대 단위에게, 연대 단위가 주체에게 한마디씩 해주시고, <붉은 글씨> 독자들과 투쟁하는 노동자 동지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간단히 해주시죠.

    한송우: 이 싸움이 결코 간단히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원칙을 지키고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갔으면 합니다. 옆에서 함께하겠습니다.

    신정현: 오늘 말씀하는 것을 듣고 상황 일부를 알게 되었는데 강종숙 동지도 말씀하셨지만, 자본과, 연대 단위, 조합원 내부 세 가지에 대해서 치열한 토론을 통해서 합의점을 찾아나가면 어차피 법률적 싸움은 이기고 있고, 시간과의 싸움인데 견뎌 나가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김경래: 어쨌든 연대 동지들이 많은 관심 가지고 계신데, 조합원들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가 가장 고민입니다. 동지들의 역할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변치 않는 원칙을 사수하고 가야지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고 원칙을 버릴 마음이 없습니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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