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투쟁
  • 영국이와 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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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간부 실습생 영국이는
    밤 12시쯤 수업이 끝나면 공장으로 왔다.
    아침 8시까지 일을 했다.
    태핑머신 보루방으로 나사를 깎았다
    어느 날 아침, 구석에서 혼자 일하던 영국이는 
    보루방 작업대에 엎드려 있었다.
    그날은 주말이라 사람들이 6시에 일찍 퇴근을 하고
    공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8시까지 일을 해야 되는 영국이 뿐이었다.
    특근을 하려고 출근을 한 나는 영국이를 보았다.
    영국이가 잠을 자는 줄로 알았다.
    영국이는 태핑기에 장갑 낀 손가락이 말려 있었다.
    손가락이 잘린 채 그대로 죽은 듯이 엎드려 있던
    영국이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혼자 어쩌지 못하고 울지도 소리치지도 못하고
    얼마나 겁이 났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시퍼렇게 변한 손등에서 시커멓게 으스러진 손가락에서
    검은 피가 검은 장갑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영국이는 동양공고 야간반 2학년이었다.
    아버지는 없고 홀어머니와 둘이 산다고 했다.
    영국이 엄마가 공장 사무실에 찾아와서 목 놓아 울었다.
    그 뒤로 나는 그 공장을 나올 때까지 영국이를 본 적이 없다.
    1990년, 구로 3공단에 있던 작은 공장이었다.
    27년 전의 일이었고 어느덧 27년이 지난 일이었다.
    27년이 지났는데도 27년은 오도가도 않고 그대로였다.
    특성화고 민호가 혼자 작업하다가 기계에 끼여 죽었다.
    민호는 3학년, 영국이보다 한 살 많은 아이였다.
    열 일곱, 열 여덟 살 먹은 우리 영국이와 우리 민호는
    우리에게 어떤 자식이고 우리 어른들에게 어떤 아이들일까.
    끊임없이 27년이 반복되고 27년이 다시 오고 
    우리는 변함없이 27년을 살고 있다.
    27년이 가고 또 가도 27년 전의 영국이가 엎드려 있다.
    27년 후의 민호가 죽어서 누워 있다.

    - 임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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