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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새로운 노동의 정의가 필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증장애인의 노동은 배제당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노동권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노동을 통해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며, 이것은 노동을 통한 생존권 확보의 권리이다. 여기에는 고용의 이전과 이후에 차별받지 않으며 노동할 수 있는 일체의 권리가 포함된다. 둘째, 노동자로서 자기표현의 권리다. 이는 노동자로서 자유롭게 조직을 결성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이해를 표출해 낼 수 있는 권리이며, 좁은 의미의 노동기본권을 의미한다.
그런데 중증장애인들은 노동기본권조차도 누릴 수 없다.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에 있다. 장애인 노동에 대한 왜곡은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노동만이 생산적 노동이라는 기준과 죽은 노동으로서 노동자의 임노동이 존재하는 한 – 즉, 죽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지 않는 한 - 자본의 입장에서 노동에 대한 생산성과 효율성 논리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임노동만을 노동으로 바라볼 것인가가 문제이다. 예를 들어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광화문 농성을 진행할 때 중증장애인들이 1842일 동안 사수하는 즉 경비하는 노동을 했고, 역사 측에서도 1842일 동안 역사 경비를 했다. 둘 다 지키는 노동을 했지만, 자본주의 입장에서 한쪽은 의미가 없는 노동인 반면에 다른 한쪽은 의미가 있는 일, 즉 임노동으로 인정된다. 자본가 관점에서 우리 쪽의 노동은 가치가 없는 노동, 이윤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또 다른 예로 많은 장애인 보호작업장에서 단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최저임금의 1/10도 받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이 같은 현실은 장애인의 노동을 철저하게 자본의 기준으로 재단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노동의 정의가 필요하다. 자본의 잣대가 아니라 우리의 산 노동을 추구해야 한다. 최중증장애인에게는 존재하는 것 자체가 노동이다. 우리의 몸은 자본주의를 거부한다. 빠른 속도에 맞춰 노동할 수 없기에 새로운 노동의 정의가 필요하다. 각자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 분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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