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투쟁
  • 2021년 우리네 삶
  • 조회 수: 1122, 2022-03-31 00:49:24(2021-12-21)
  • 2021년 우리네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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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모스


    아들은 무슨 일로 오지 않았다.
    아내와 딸과 나, 셋이서 바다 보러 가자고 해서 강릉엘 갔다.
    멀고 먼 바다가 있고 강릉이 있었다.

    여름이었는지 가을이었는지 그건 중요치 않다.
    바다가 보이는 강릉에 우리도 갔다는 게 중요했다.
    까마득한 날에 서해안 해수욕장을 간 적이 있다는 게 용케도 생각났다.

    바다는 흔한 바다의 모습이었다.
    모래가 귀찮아지는 시간은 짧았고 퍼런 껍질 뿐인 바다에서 
    무엇을 기다리지도 어디로 떠나지도 않는 사람들이 
    파도를 만지작거리다 흰 거품을 입에 물고 나왔다.

    점심 때가 되어 전복해물뚝배기 맛집엘 들어갔다.
    1인 분에 만구천 원이면 셋이 먹는 밥 한끼에 너무 비쌌다.
    돈 만 원쯤 하는 식당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가 곰치국집이 눈에 띄였다.

    곰치국은 한 그릇에 이만 원이었다.
    곰치국 먹자!
    아내는 잠시 망설이더니 머리를 저었다.
    육만 원이라니!
    주변 식당 밥값은 비슷했고 우린 끝내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까짓 곰치국이 뭐라고.....
    차 안에서 아내와 옥신각신 하다 언성이 높아졌다.
    값이 문제가 아니었다.
    곰치국을 못 먹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강릉까지 와서 싸운 게 문제가 된 것도 아니었다.

    길가에 차를 세웠다.
    아내가 차에서 내려버렸다.
    아내를 버려두고 차를 몰았다.
    바닷가로 마구 달리면 곰치가 펄떡 뛰어나올 것 같았다.
    곰치를 두어 마리 잡아서 다시 아내에게 가고 싶었다.

    어제 저녁 뉴스에 부부싸움을 한 남편이
    아내를 고속도로 갓길에 버려두고 왔는데
    아내가 화물차에 치여 사망했다고 한다.
    아차, 딸은 어디로 갔는지 생각지도 못했다.
    아내의 울음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딸의 울음소리를 얼핏 들었다.

    만약 아들도 왔다면 곰치국이 팔만 원이니 아들이 안 오길 잘 했다.
    아들은 생선을 싫어하니까 싸울 일도 없었을 테니
    길가에 쪼그려 앉아 코스모스를 보고 있는 아내와 딸이 보였다.
    코스모스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피어나니
    그때가 여름이었는지 가을이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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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두 달 만에 회사를 나왔다
    팔은 쓰지 못한다고 했다
    괜찮아?
    괜찮지 않은데 괜찮냐고 물었다

    죽을 뻔 했는데 산 사람도 있다
    살 뻔 했는데 죽은 사람도 있다
    그는 죽을 뻔 하다 살았다
    살 뻔 하다 죽은 사람이 많을까?
    죽을 뻔 하다 산 사람이 많을까?

    쓰러져 머리에 피가 흐르고
    노란 진액이 흘러나왔다
    피는 괜찮아요
    진액이 나오면 더 위험해요

    머리가 터져야 살지
    안 터지면 죽는 수도 있다
    완전 박살난 머리는 공처럼
    뒹굴지도 튀어오르지도 않는다

    팔로 머리를 막아서 다행이었다
    머리로 팔을 막을 순 없을 테니
    팔을 내주고 머리를 살렸다
    꿰맨 머리통 구멍난 자리에서
    머리카락이 듬뿍 자라고 있다
    그는 다시 굴러간다




    누가 네 이름을 부르는가


    모두가 가난할 땐 가난한 얘기는 통하지 않았다.
    모두가 가난할 땐 돈 많은 부자 얘기가 통했다.
    하지만 아무리 모두가 가난해도 부잣집은 있었다.
    오십 집이 사는 마을이면 한두 집은 부자였고 서너 집은 살만 했다.
    그러니까 최고 부잣집 하고 반에 반쪽 부자집 하고 
    다섯 집 정도 빼면 마흔다섯 집은 가난했다.
    그러니까 부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일할 남짓이었다.
    부자와 가난뱅이가 절반씩 오할이 되는 세상은 오지 않는다.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가 오늘 이런 얘기를 했다.
    엄마랑 아빠가 둘 다 일을 나가서 집에 없었단다.
    애들하고 놀 때면 다른 애들 엄마가 자기집 애를 불렀단다.
    누구야, 요구르트 먹어라고!
    그게 그렇게나 부러웠단다.
    그래서 어느날 엄마에게 말했단다.
    엄마, 언제 일 안 나갈 때 나 좀 불러주면 안 돼? 요구르트 먹어라고 한 번만 불러줘!
    그러자 엄마가 울면서 자기를 끌어안았단다.

    요즘엔 요구르트 굴러다녀도 안 먹는다만
    급식도 고기반찬에 과일에 우유에 무상으로 준다지만
    누군가 자식을 끌어안고 서글피 우는 사정은 이어진다.
    요구르트가 있어도 집이 없고 없는 집에는 돈도 없다.
    요구르트를 주고 더 달콤한 것을 주면서 자꾸 돈을 달라고 한다.
    한없이 뜯길수록 가난한 사람들은 비굴할 만큼 공손해진다.
    그리고 어떡하든 부자들 편에 서고 돈 많고 힘 있는 자 편에 선다.
    아무도 자기 이름을 불러주지 않은데 불러주는 것으로 안다.


    시 ┃ 임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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