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투쟁
  • [계급투쟁] 왜 진보적 장애인 운동은“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치는가? - 성승욱
  • 조회 수: 12996, 2013-05-06 09:24:04(2012-12-15)
  • 왜 진보적 장애인 운동은“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치는가?

     

     

    성승욱(장애운동가)

     

     

    들어가며

     

    2000년대 이후 장애인운동 만큼 수많은 결실을 거둔 투쟁은 거의 없다. 2001년 수도권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노부부의 리프트 추락사를 계기로 등장한 장애인이동권연대1)2000년대 진보적 장애인 운동의 새로운 막을 열어 젖힌다. 기존의 경증 장애인 중심의 운동에서 중증 장애인으로 중심축이 이동한 것이다. 새로운 축의 이동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집안에서 혹은 수용시설에서 갇혀 지냈던 그들이 -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노동력과 2007년 기준 초등학교 졸업 45.2% 학력수준인 다양한 몸의 형태로 대중들의 시선에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 한복판에 전면적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후 대정부 투쟁에 기반을 둔 현장운동을 통하여 많은 법적인 결실을 맺게 된다. 이것들은 중증 장애인이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하게끔 강제 하고자 한 것인데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05)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07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07)장애인등에대한특수교육법”,“(07)장애인활동지원에관한법률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법들은 장애인의 문제가복지라는 획일적인 틀에서는 더 이상 해결될 수 없으며 사회의 전반적인 관점에서만이 일말의 해결 가능성이 있음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속에서 장애인이동권연대의 이름으로 진보적 장애인 운동의 첫 발을 내딛은 지 10년 후인 2012. 왜 이들은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는 것인가? 그리고 장애등급제는 왜 폐지되어야 하는가?

     

     

    장애등급제는 무엇인가?

     

    1988111일 전국 읍··동사무소에서 일제히장애자등록을 받기 시작한다. 당시 보건사회부는 "우리나라 심신장애자들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장애자복지정책을 세우기 위해 장애자등록을 실시하고 장애종류와 장애등급을 진단하는 검진은 보건사회부가 지정한 진단 기관에서 받을 수 있다"라고 발표하면서 장애등급제의 도입 취지를 이야기하고 있다.2)

    이에 따라 현 보건복지부의 장애등급 판정기준은 장애를 15개의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이것들은 각각 12개의 신체적 장애와 3개의 정신적 장애 유형으로 나뉜다. 또한 각 장애등급기준은 전적으로 신체적정신적 기능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결정하는 주체는 의료 전문가이며 이들은 이 과정에서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다.3)

    위를 근거로 하면 장애등급제의 성격은 아래와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장애인은 주체적 성격을 담지한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여전히 의료 전문가 중심의 구조 하에서 객체적 성격과 환자의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둘째 전 세계적으로 신체적정신적 기능 중심으로 장애를 바라보던의료적 모델에서 사회적 모델로 이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는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이는 1960년대 영국의 분리에 반대하는 신체장애인 연합(UPIAS: the Union of th Physically Impaired Against Segregation)의 장애 정의를 참조하면 더욱 명백하다. UPIAS의 장애 정의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관점에서 손상(impairment)이 있는 사람들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사회이다. 장애(disability)는 사회의 완전한 참여에서 불필요하게 고립되고 배제됨으로써 우리의 신체적 손상에 덧붙여 부과되는 것이다. 즉 장애인은 사회 내에서 억압받는 집단인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체적 손상과 장애라고 불리는 사회적 상태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손상을 사지의 일부나 전부가 부재한 것, 또는 사지, 기관, 몸의 작동에 불완전함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서 정의한다. 그리고 장애는 신체적 손상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거의 또는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사회활동의 주류적 참여로부터 배제시키는 당대의 사회조직에 의한 불이익이나 활동의 제한을 말한다(UPIAS, Fundamental Principles of Disability).”4)

    셋째 장애등급제는 초기와 같이 우리나라 심신장애자들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장애자복지정책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권이 장애인에 대한 예산을 효과적으로 절약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단편적으로 장애인이 지속적인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현행 장애인활동지원에관한법률에 의거해 기존의 서비스 이용 장애인들이 정기적으로 수급자격을 갱신해야 하는데 이 기준이 바로 장애등급 판정기준이며 이에 미달하면 서비스는 바로 중단된다. 이것이 바로 자본이 얘기하는우리나라 심신장애자들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장애자복지정책을 세우기 위해라는 장애등급제의 실체이다.

     

    장애등급제 폐지투쟁 전개 과정

     

    201288일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출범했다. 이날 공동행동은 서울을 비롯해 경기, 대구, 대전, 부산 등 전국 16개 도시에서 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현재까지 총 22개의 사회민중단체들과 전국의 진보적 장애운동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공동행동은 더 이상 빈곤과 장애로 인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각 정당과 국회 및 정부, 그리고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자한다.

    공동행동의 목표는 장애등급제 폐지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사회적 의제로 부각 대중투쟁을 통하여 장애인운동과 민중운동을 강화해 실질적 성과를 쟁취 대통령선거 시기를 활용하여 각 정당 및 후보자의 핵심공약으로 만들어낼 것 19대 국회의 핵심 민생과제로 부각시키는 투쟁을 통하여 관련 법 제·개정을 쟁취 발달장애인법 제정투쟁,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투쟁, 수화언어권 쟁취투쟁, 사회서비스 제도개선투쟁 등 다양한 장애인과 민중의 요구를 결합시켜 연대를 확대하는 것 등이다. 5)

     

    이후 821일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전국집중 12일 결의대회를 진행한다. 그 날 광화문 역사 내부에는 수많은 경찰병력들이 미리 배치되어 있었으며 약 9시간의 마찰을 불사르며 끝내 농성장 확보의 쾌거를 이룬다. 현재까지 역사 내 농성장에서는 100만인 서명 운동, 10만인 엽서 운동, 토크쇼, 문화제, 1인 시위 등 다양한 방법으로 투쟁을 전개해 가고 있다.

    위의 공동행동의 목표에도 나와 있다시피 장애등급제 폐지 투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결코 짧은 기간에 성취될 수 없으며 장기적인 관점과 계획을 갖고 투쟁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광화문역사 내 해치마당으로 나가는 길목에서 한번쯤 발걸음을 멈추어 서명과 지지를 보내주시길…….)

     

    장애등급제 폐지를 쟁취해야 하는가?

     

    장애인 투쟁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투쟁들은 그 나름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모든 투쟁의 당위성과 정당성 그 자체가 많은 대중들에게 공감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여기에서 장애등급제가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몇 가지 쓰고자 한다.

    첫째 장애등급제는 전면적으로 신체적정신적 기능을 바탕으로 한 의료적 모델을 강화시킨다. 현행 한국 사회의 장애등급제는 1급부터 6급까지 존재하며 이를 바탕으로 각종 급여와 서비스가 제공된다. 문제는 이러한 장애등급은 의료 전문가의 권한에 의해 절대적으로 결정되며 이는 장애인의 주체적인 삶의 패러다임인 자립생활모델을 가로막는 구태의연한 의료적 모델을 강화시킬 뿐이다.

    둘째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의 사회적 위치를 그의 사회적 관계가 어떻게 조건 지어졌는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태어났는가에 의해 결정짓게끔 한다. 대부분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장애인의 반대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비장애인이다.”라고 답할 것이다. 진정으로 그러한 가? 만약 그렇다면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없는 장애인만의왕국을 만들어야 할 것이며 반대로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박멸시킨 나치즘을 포함한“(국가)자본주의6)를 기꺼이 옹호해야 할 것이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이러한 이분법적인 논리가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별 짓는 잣대가 단순히 몸의 기능에 한정짓는 일이기 때문 일 것이다. 그러한 몸의 기능을 잣대로 개인의 삶을 저울질 하는 근본이 무엇인가? 바로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가 다른 사회구성체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노동력의 상품화이다. 이는 즉시 개개인 각각이 노동력을 소지하고 있는지 없는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을 요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노동력이 없는 대상에게장애라는 낙인을 가하게 된 것이다. 장애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이름으로 늘 존재해 왔다. 자본주의를 제외한 시대에는 그들이 노동력이 없다고 장애라는 낙인을 찍을 일은 없었다. 이를 바탕으로 본다면 장애등급 판정기준에 의해 장애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내에서도 사회적 관계에 따라 각각의 위치가 조건 되어 짐이 타당할 것이며 이러한 인식이 밑바탕이 되었다면 장애인의 반대가 비장애인이 아니라 바로자본이라는 사회구조 의식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장애등급제 폐지는 자본주의의 쇠퇴7)에 따라 새롭게 발생한 프레카리아트 8)운동과 결합할 새로운 주체를 형성할 수 있다. 2008 자본의 총체적 위기는 미국을 시작으로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다. 자본은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극도로 착취함으로서 그 지위를 겨우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레카리아트의 등장은 자본주의 철폐 운동의 새로운 동력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장애역시 자본주의의 산물임을 즉시하고 이는 지금까지 장애인들이복지의 확대만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장막을 스스로를 걷어내고 당사자 본인이 계급적 본질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급투쟁의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다.

     

    나가며

     

    장애등급제 폐지 투쟁이 시작한지 벌써 50일을 향하고 있으며 언제 끝날지도 모를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장애등급제는 대한민국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가운데 하나인 만큼 강력하다. 예산 확보 및 확대를 위한 투쟁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안이다. 이 사회에서장애라는 것과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인 장애인은 한편으로는 추함, 비정상, 부정적인 것, 지양해야 할 것 그리고 억압해야 할 대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취급받아 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위와 같은 시선으로 장애()”를 바라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은 장애를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필사적으로 부정할 것이다. “내가 왜 장애()인가? 어디를 봐서 그렇다는 말인가??”라고.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장애()”는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이는 노동력이 없는 특수한 존재에 대해서만 낙인을 찍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체제에서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모든 존재들을 낙인화하기 위한 독()이다. 노동자계급은 스스로를 장애()”로 인식하는가? 자본가계급과 동등하게 상부상조 관계를 맺고 있는가? 부디 필자는 장애()를 몸의 기능으로만 구분 짓는 관념을 버리길 바란다. 모든 사람이 나이를 먹기 때문에 장애()를 겪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가 장애()를 만드는 것이다.

     

    장애()를 만드는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조건은 무르익었으며 판 또한 크게 벌어졌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쓰지 않았던가! “어떤 사회구성체도, 그것이 충분한 발전 여지를 주고 있는 생산력이 다 발전하기 전에는, 결코 멸망하지 않으며, 그리고 새로운 뛰어난 생산관계도 자신의 물질적 존재조건이 낡은 사회의 태내에서 성숙하기 전에는 낡은 생산관계를 대체하지 않는다. 이처럼 인류는 언제나 자기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을 제기한다. 왜냐하면 좀 더 자세히 검토하면, 문제 그 자체는 그것을 해결할 물질적 조건이 이미 있거나 적어도 형성과정에 있는 경우에만 생기기 때문이다.”9)라고

     

    이제 우리 장애()”를 겪는 모든 이들이 일어나 이 판에서 함께 할 일 그리고 장애()”를 만드는 자본주의 체제를 폐지해야 할 일만 남아 있다.

    만국의 장애인 들이여, 단결하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주)

    1) “장애인이동권연대에 대해서는 http://access.jinbo.net/ 참고.

    2) http://newsbeminor.blog.me/110146123992

    3) http://www.idhome.net/grade.html/

    4) 김도현, 장애학 함께 읽기, 그린비, 2009. p.52.

    5) http://www.cowalk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989

    6) 오세철, 좌익공산주의, 빛나는 전망, 2008.

    7) 국제공산주의흐름, 자본주의의 쇠퇴, 오세철 옮김. 빛나는 전망, 2009.

    8) 프레카리아트(precariat)는 불안정한(precarious)과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합성한 조어로서 불안정한 고용노동 상황에 놓인 비정규직파견직실업자노숙자들을 총칭한다. 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트(무산계급(無産階級))라는 뜻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등장한 신노동자 계층을 말한다. 이탈리아에서 2003년 최초로 사용하기 시작해, 2005년 프랑스 최고고용계약법 관련 시위에서 쓰인 바 있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88만 원 세대',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 유럽의 '700유로 세대' 등 불안정 계층은 점차 젊은 층으로 확산되고 있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9) 편집부,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2, 박종철출판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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