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 사회주의자도 반제국주의자도 아니었던 우고 차베스 - 국제공산주의경향(ICT)
  • 조회 수: 2683, 2013-05-30 20:44:01(201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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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3월 5일 우고 차베스가 사망했다. 차베스는 1999년 2월에서 2013년 3월까지 베네수엘라 대통령이었다. 그의 장기집권은 네 차례의 선거에서 확고한 다수의 지지를 받은 결과였다. 차베스의 주요 지지층이 베네수엘라 사회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며 집권기간 동안 이들의 생활조건이 개선됐다는 데에 논란의 여지가 없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절망적인 극빈자들이 23%에서 9%로 감소했다.)
     

    신자유주의적 우파들의 어리석기 짝이 없는 논평들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자애롭고 사회적 관심이 많은 인민의 대변자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 언론들이 미디어 독점이나 무모한 베네수엘라의 부채 부담 증가를 가지고 차베스를 비난할 때, 우리는 그냥 웃어넘기면 된다. 서구사회에는 베를루스코니와 머독이 독점한 수많은 미디어가 존재한다. 베네수엘라의 부채 부담은 2008년의 충격으로 비틀거리는 G20 강대국들보다 여전히 훨씬 적다. 자본주의의 공공연한 지지자들에게 우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반박해야 할 것은 훨씬 더 위험한 신화이다. 차베스와 ‘차비스모(Chavismo)’가 진정한 사회주의를 대표한다는 널리 퍼져있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사회민주주의 좌파들 및 스탈린주의자들의 일반적인 평가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위대한 혁명의 불빛이 꺼져버렸다. 하지만 차베스 대통령의 이상은 변치 않는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그것은 전세계의 가장 훌륭한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에 진정으로 봉사했다.” 영국공산당(맑스-레닌주의)


    2006년 영국 잡지 <새로운 정치인 (New Statesman)>이 실시한 “우리 시대의 영웅” 순위투표에서 차베스는 11위로 뽑혔다. 차베스는 19세기 스페인의 라틴아메리카 지배에 맞선 반란 지도자 볼리바르가 자신의 “사회주의”에 영감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볼리바르가 자본주의를 지지한 백인우월주의자(노예제도를 반대하긴 했지만)였음을 생각하면 참으로 이상한 멘토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신경 쓸 필요 없다. 몇몇 좌파들의 핵심 논조는 여전하다. 억눌린 민중의 편에 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차베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다양한 '사회주의' 브랜드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 권위자들이 전 세계 미디어에 쏟아내고 있는 차베스에 대한 찬사는 이를 통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맑스주의와 차베스의 관계는 복잡한 것이었다. 1996년 5월, 차베스는 아구스틴 블랑코 노즈(Agustín Blanco Muñoz)와 인터뷰에서 "나는 맑스주의자가 아니지만 맑스주의에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지만, 반공주의자도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차베스는 많은 맑스주의 이론가들의 저작을 읽었고, 맑스주의 문헌에 정통했으며, 종종 이를 공개적으로 인용하기도 했다. 여러 국제적인 맑스주의자들이 차베스 정부를 “맑스주의 이론"이 예측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신호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지지했다. 2010년 차베스는 맑스주의자 “레온 트로츠키”의 “사상”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차베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호세 라몬 리베로(전 노동부 장관)에게 전화했을 때, 그는 내게 ‘대통령님, 다른 사람이 말씀드리기 전에 제가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저는 트로츠키주의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음, 뭐가 문제란 말이요? 나도 트로츠키주의자요! 나는 영속혁명이라는 트로츠키의 노선을 따르고 있소.’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차베스는 맑스와 레닌을 인용했다.” (위키피디아)


    베네수엘라 노동자계급의 상당수가 차베스를 신자유주의 우파라는 이미 알고 있는 악보다 나은 대안으로 보았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2002년 4월 미국이 지원한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백만 명 이상이 차베스를 지지하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왔고 쿠데타는 곧 진압되었다. 차베스가 많은 베네수엘라 인들의 생활조건을 향상시켰다는 주장이 어느 정도 정당성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즈>는 이렇게 썼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차베스는 1997년부터 2011년 사이에 빈곤층(moderate poverty)를 54%에서 31%로, 극빈층을 23%에서 9%로 감소시켰다. 차베스는 문맹 비율을 극적으로 감소시켰으며, 빈민가와 노동자거주구역에 진료소를 설치하고, 식료품할인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 가운데 어느 것도 차베스에 대한 과장된 수사들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가 어떤 종류의 사회주의를 대표한다는 생각을 뒷받침해주지 않을뿐더러 “반(反)제국주의자”라는 것을 입증해주지도 않는다. 이것은 자본주의에 일정 수준의 복지와 국가개입, 국유화가 더해진 것을 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물 타기에 불과하다. 이러한 관점은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 지배계급에 종속된 상태를 유지시키는데 일조할 뿐이다. 소위 맑스주의자들의 다수가 여전히 굳게 믿고 있는 것과 달리 국가자본주의는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단계가 아니다.
     

    그것은 더욱 계급의식적인 노동자의 운동이 상승하는 것을 가로 막는 방파제일 뿐이다. 또한 (포퓰리즘적인 볼리바리즘과 결코 조화될 수 없는) 진정으로 국제주의적이며 직접 민주주의적인 형식을 통해 노동자 스스로 경제의 직접 통제에 찬성하여 기존 국가를 전복하는 가능한 유일한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폐절할 명확한 강령을 가진 정치세력이 등장할 가능성을 약화시킨다. 그 방책들은 탐욕스럽고 위기에 시달리는 자본주의에 의해 노동계급이 더 심각한 불행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절대적으로 취해야 할 정치적 방향이다.
     

    평론가들은 베네수엘라에서 가난한 사람에 대한 사회지원프로그램이 개선되고, 대다수 빈곤층에 있어 문맹률, 보건, 주거, 소득 수준이 향상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미(對美)수출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석유 수입에 경제의 90%를 의존하는 베네수엘라 자본주의의 기초는 여전히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을 뿐 아니라, 차베스가 권력을 잡았을 당시보다 더욱 굳건해졌다. 차베스 치하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 빈곤층 비율은 여전히 라틴아메리카 평균 이상이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의 추정치를 인용하는 이안 제임스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정부가 ”운영하는“ 경제부문의 비중은 차베스가 1998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을 때와 동일하다. "민간 부문은 여전히 베네수엘라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G.W. 부시를 당나귀나 악마라고 욕하는 것과 같은 겉보기에 급진적인 발언들과 쇼맨십, 대중들이 의사 결정과정에 어느 정도 개입하고 있다고 생각 할 수 있게 하는 참여 민주주의 실험 이면에서 차베스와 그의 볼리바르 혁명은 자본주의 유지라는 전 세계 지배 엘리트가 정치적 쇼를 통해 추구하는 목표를 이루어냈다.
     

    석유 매장량과 유리한 시장가격의 도움으로 베네수엘라는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정치적 안정을 살 수 있었다. 또한 모든 자본주의의 특징인 복지와 국가의 경제 개입의 다면적인 변종에서 볼 수 있듯이, 베네수엘라 노동계급의 (체제)위협은 민족주의, 포퓰리즘, 부패의 뒤범벅인 사이비 혁명 이데올로기, 대중에게 일정한 생활조건의 개선을 허용하는 경제 성장의 속도에 의해 지금까지 억압되어왔다.
     

    그러나 세계적 규모의 강렬한 경제 위기라는 새로운 현실은 베네수엘라라고 해서 아무 상처 없이 남겨두지 않았다. 현재 베네수엘라 인플레이션은 25%이며 실업률은 8%에 이른다. 차베스가 집권했을 당시보다 부채는 열배 이상이다. 기본 식품은 부족하고 카라카스는 세계에서 살인사건이 가장 많이 벌어지는 도시이다. 차베스가 이끄는 베네수엘라 지배계급의 당파는 자본주의라는 경제적인 재앙에 영속적인 대안을 시행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힘을 보여주기 시작했던 노동계급을 진정시킬 수 있는 일시적인 유리한 조건을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운이 좋았을 뿐이다. 
     

    카라카소와 "볼리바르 사회주의"의 의미
     

    착취자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투쟁 능력을 보여주는 사건이 차베스 시대를 있게 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카라카소는 억압만으로 충분히 기존 질서를 영원히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배 엘리트의 일부에 경종을 울렸다. 카라카소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와 인근 도시들에서 1989년 2월 27일에서 발생한 시위, 폭동, 약탈의 물결과 뒤따른 학살​​에 붙여진 이름이다. 충돌의 결과, 일부 보도에 따르면 3000명에 이르는 수 백 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그 희생의 대부분은 보안부대에 의한 것이었다.
     

    카라카소는 정치 사회적 불안정의 시대의 막을 열었다. 그 다음 해 2월, 유사한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푸에르토 라 크루즈와 바르셀로나에 군대가 투입되었다. 6월, 마라카이보와 다른 도시들에서 운송비 인상으로 인한 불만이 봉기로 터져 나왔을 때에도 다시 군대가 투입되었다. 이것이 차베스가 권력을 잡게 되는 맥락이었다. 그는 1992년 2월에 벌어진, 수 년 동안 준비되었고, 상당한 지지를 받았지만 실패한 쿠데타의 지도자였다. 이것은 차베스를 절박한 사람들에게 도둑정치의 적으로 알려지도록 만들었고, 결국은 투표함을 통한 권력인수로 이끌었다. 그러나 카라카소가 사람들을 수십 년 간 가혹한 억압과 수치 속에 살도록 만든 구질서에 대한 가장 기초적 형태의 계급적 거부에 기반하고 있음을 잊지 말자. 만약 지배계급이 지배계급에게 지속적 위협이 되며 체제를 무덤 속에 파묻을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깨어나고 있는 거인을 직접적으로 억누를 수 없다면 그들은 다른 전략을 필요로 할 것이다. 차베스와 그의 이데올로기적 꼼수들은 증가하는 사회운동의 목소리를 안전한 범위로 포섭하기 도구였다.
     

    그래서 우리는 차베스가 "혁명적 사회주의"라고 위장하려 한 프랑켄슈타인 같은 이데올로기에 대해 규탄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맑스에 의해 구상된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진정한 사회주의는 위에서 아래로 포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수백만 노동자의 자기 활동에 의해 건설될 수밖에 없다. 유난히 학대받아온 베네수엘라의 프롤레타리아는 스스로를 위해 초보적인 방식으로나마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이야말로 볼리바르 혁명이 정부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만든 “코미시온”이라 불리는 민주적 협동체(co-ordinations)와 여타 대중동원 기관들보다 사회주의를 건설할 가능성이 높다.

    지배 그룹에 의해 정해진 문제들에 대해 국민투표를 진행하는 것은 나폴레옹 이래로 모든 포퓰리즘 정권의 전가의 보도였다. 이는 직접적인 노동자권력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노동계급의 권력 하에서 사람들은 지배 엘리트에 의해 제기된 문제에 대해 단순히 “네”, “아니오”로 대답할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차베스가 하층계급을 위해 어떠한 행동을 취했든 간에 이는 석유자원이 풍부한 베네수엘라에서의 자본주의의 지속을 위한 간접적 지출이었을 뿐이다. 차베스는 노동계급의 진정한 자기조직화에 큰 장애가 되었다. 이는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남미 지역 및 베네수엘라 국내의 부르주아들에게 지극히 유용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차베스는 미국의 달착륙을 부정하고, 아이티에 큰 피해를 준 지진의 원인국으로 미국을 지목하고,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입에 대해 반복해서 경고하는 등 모욕적 언사와 극적인 규탄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베네수엘라 석유의 일등 소비국이다.


    반제투사 차베스?
     

    이는 다른 어느 특징보다 차베스가 조지 갤러웨이나 켄 리빙스턴 등 자본주의의 좌익적 지지자들 전반의 사랑을 받게 한 차베스 수사학의 한 가지 특징으로 이어진다. 그 특징이란 바로 차베스가 자주 표방하는 “반제국주의”이다. 이것은 또 하나의 사기이다. 차베스는 반제가 아니라 반미를 했을 뿐이었다. 이 점에서 그는 라틴아메리카 포퓰리즘 민족주의자의 긴 행렬에 속해 있다. 여기에는 부르주아 민족주의, 반공주의, 에두아르도 치바스(Eduardo Chibás)의 ‘정통파(Ortodoxo)’의 일원으로서 경력을 시작한 쿠바의 카스트로도 포함된다. 카스트로는 1959년 1월 권력을 잡자마자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를 협상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 정부가 자신의 정부에 제재를 부과하는 것을 명확히 했을 때에야 민족주의자 카스트로는 1961년 갑자기 "맑스-레닌주의"를 발견했다. 그때까지 미국은 쿠바에 대한 침공 정책(예를 들어 피그스 만 사건)을 지지하고 있었지만, 카스트로의 "맑스-레닌주의"로 전향은 소련이 쿠바의 제국주의적 후견인 자리를 인수했다는 신호였다. 카스트로는 설탕 단일 재배에의 의존성을 끝내겠다고 맹세하며 권좌에 올랐지만, 카스트로가 수확 전체를 소련에 판매했기 때문에 그것은 오히려 더욱 증가했다. (당시 소련은 동유럽 위성국가들에게 설탕을 높은 가격에 판매했다.)
     

    따라서 쿠바는 “반제” 국가가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하나의 제국주의를 다른 제국주의로 바꾸었을 뿐이었다. (그 후 25년 동안 수백 명의 쿠바 젊은이들이 앙골라 둥지에서 벌어진 소련의 대리전쟁들에서 목숨을 잃었다.) 소련의 붕괴와 함께 쿠바 역시 거의 붕괴될 뻔하였고, 이후 국가개방을 통한 관광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해왔다. (그 결과 혁명 이전의 좋지 않은 사회 특성들이 여럿 복구되었다.) 1998년 차베스가 집권해서 쿠바가 의사들을 보내주는 대가로 값싼 석유를 제공하자 카스트로 정권을 구제를 받았다. 현재 공식적으로 4만 명의 쿠바인들이 베네수엘라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는 의학 분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차베스가 선택하고 쿠바가 승인한 후계자 마두로는 G2라고 불리는 쿠바 정보기관이 베네수엘라에서 자신을 대리하여 활동하도록 하고 있다. 두 국가는 지역에서 새로운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형성하려는 의제를 공유했으며 차베스는 이러한 관계를 “베네쿠바”라고 불렀다. 심지어 이는 일정 정도 중국의 자금지원을 받는 것이었다. 지난 5년 동안 베네수엘라의 대중국 석유수출액의 1/3은 4250억 달러의 빚을 갚는데 쓰였다.
     

    석유를 통한 부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약화시킬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는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에콰도르의 코레아와 같은 사회주의 계승자로 자임하는 동료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선거 지원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뿐만 아니라 싼 값의 석유는 세계무대에서의 차베스의 입지를 세워주었다. 그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시리아의 아사드, 이란 등 모든 미국의 적들에게 지원을 제공하고, 중국과 밀접한 무역관계를 만들었다. 이 국가들 모두 현재 혹은 예전에 그들 자신의 제국주의적 이해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다. 이들의 이해관계는 미국 지배적인 세계질서에 반대된다. 이에 차베스는 그들을 지지했다. 이는 반제국주의가 아니라 단지 다른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의 표현일 뿐이다. “국민성을 부정”하는 노동계급은 어떠한 제국주의적 권력을 지지하는 데에도 이해관계를 가지지 않는다.


    진짜 혁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사회주의도 새로운 것도 아니다. 그것은 지난 세기 스탈린주의와 사민주의에 의해 왜곡된 맑스주의라는 죽어가는 괴물의 사지 절단된 손발을 가져다가 서투르게 짜맞추어놓은 국가자본주의 기획에 불과하다. 증가하는 빈곤, 실업, 전쟁, 억압, 지구 환경 재해의 형태로 전 세계에서 점차 펼쳐지고 있는 자본주의의 쇠락이라는 무서운 이야기에 직면하여 가짜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현실적인 지지와 신화를 뒤섞어놓은 차베스 식 짬뽕은 계속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착취를 가려주는 위선의 베일을 제공한다.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유일한 방어수단을 왜곡하는 것보다 노동자계급과 인류 일반의 이해에 더 유해한 것은 없다.
     

    인류 문명의 미래는 세계혁명을 현실적 전망으로 바라보고 있는 전 세계 노동계급에게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 차비스모는 지배계급의 부와 노동계급의 박탈의 유래 없는 양극화를 지탱하는 많은 왜곡 중 하나일 뿐이다.
     

    절충의 길은 없다. 자본주의를 폐지하고 계급제도를 끝장내는 것은 권력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서만 제기될 수 있다. 이는 현 질서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의회, 법원과 사법제도, 그것들을 규정하는 헌법질서, 현 제도 내에서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에게 더 나은 거래조건만을 추구하는 정당들과 노조들과 단절을 의미한다. 매 4년이나 5년 또는 더 긴 주기마다 한 번씩 벌어지는, 통제되지 않는 대표를 선출하는 공허하고도 가식적인 행사 대신, 진정한 사회주의 운동의 지표는 노동자들이 직접 민주주의에 기반한 그들 스스로의 투쟁 기구를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기구들은 노동자들 자신의 투쟁 속에 언제나 잠재되어 있다. 혁명가들이 소환가능한 대표로 구성된 노동자평의회의 형태로 나타나는 노동계급의 온전한 권력을 지지할 때, 그것은 단지 이상주의적 꿈의 산물이 아니다. 이는 자본이 그토록 왜곡하고 은폐하고 싶어 하는 과거 노동계급의 혁명적 활동으로부터 도출해낸 훌륭한 교훈이다.
     

    파리꼬뮌 패배나 러시아 10월 혁명과 같은 사례에서 역사는 노동계급이 그들만의 민주적인 자치를 해낼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자의 자치는 현존하는 국가의 파괴를 통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이는 자본가 계급의 양보에 의해 관료주의적 국가기구와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 통제”가 결합될 수 있는 것처럼 왜곡하는 관점과는 상반된다. 베네수엘라의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허풍과는 달리 노동자통제는 유일하고 무제한적인 권력이다.
     

    사회주의는 압도적인 다수에 의해서만 건설될 수 있다. 국가의 칙령으로 세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로의 투쟁은 기나긴 싸움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포퓰리즘을 사회주의로 가는 단계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현 체제가 파산했다는 노동계급의 인식은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혁명적 정치조직을 찾는 시도를 고무할 것이다. 이러한 조직은 자본주의 내 좌익의 거짓된 약속을 폭로할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역사적 경험에 기반한 강령을 마련할 것이다. 우리 ICT(국제주의적 공산주의 경향)는 이 과정에 일부분으로서 복무할 것을 목표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명확한 공산주의 강령에 입각한 전지구적 정치조직의 탄생이 될 것이다. 무엇을 쟁취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전망 없이는 노동계급은 공산주의를 실현하지 못할 것이다. 비록 노동계급을 대신하여 권력을 잡을 수는 없으나, 혁명적 정치조직은 노동자 평의회 혹은 전세계 노동계급이 창조해낸 대중적 기구의 혁명적 독재를 온전히 옹호할 것이다. 2006년 우리가 차베스에 대한 논평에서 내린 결론은 아직 유효하다.


    “이것이 전세계적 차원에서 ICT가 활동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전 세계적 당은 스탈린주의적인 당이 아닐 것이며, 지역적 권력을 위한 기구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은 지역적 권력과 동일시되지 않는, 혁명을 위한 전 세계적 기구가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혁명이 성공한 지역의 계급대중 기구의 임무다. 그리고 우리가 말했듯이, 폭넓은 시야의 공산주의자들의 계급정당이라고 할지라도 정당이 노동자들을 대신하여 이 임무를 해낼 수는 없다. 그들 자신을 위해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이것은 러시아 혁명의 훌륭한 교훈 중 하나다. 동시에 혁명정당은 과거 노동자들의 경험을 종합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매순간 손상을 감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는 혁명이 이루어질 수 없다. 혁명정당의 역할은 이러한 손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해방의 과정에서 우리는 우선 여러 방해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 중에는 조합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인 양하는 국가자본주의와 같이 우리가 이 짧은 글에서 다룬 것들이 포함된다.”(leftcom.org)

     

    <원문 :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3-03-18/hugo-ch%C3%A1vez-neither-socialist-nor-anti-imperialist>

     

    <번역 : 사노신>  이 기사는 5월1일 사노신이 발행한 격월간지 <포커스>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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