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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노동자들이 반격을 위해 나아가야 할 험난한 길 - 국제공산주의경향 (ICT)
  • 조회 수: 5712, 2013-10-04 13:42:13(201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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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노동자들이 반격을 위해 나아가야 할 험난한 길

     

    The Difficult Path to an International Workers’ Fight-back

     

     

     

    깊어가는 위기
     

    이른바 “대불황(Great Recession)”이 6년째 계속되고 있다. 자본가계급마저 2차 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라고 인정하고 있다. 이 위기는 지금 비록 안정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점점 깊어지고 있다. 최근 몇 달 동안 세계 주식시장의 격렬한 동요는 시장에 대한 불안감과 불확실성이 여전하며 자신감이 회복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미국 연준 의장이 미국경제가 회복되고 있기 때문에 화폐 발행을 줄이겠다고 공표한다면 곧바로 시장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현재 세계 금융이 겪고 있는 혼란을 명확히 드러낸다.
     

    “대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자본가계급의 전략은 수요 확대에 근거한 것이든 긴축과 균형재정에 근거한 것이든 모두 경제성장을 유일한 탈출구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경제성장은 매우 힘든 목표이다.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경제가 2.2%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중국과 인도의 높은 성장률 덕분이다. 영국경제는 2007년에 비해 사실상 3.9% 위축되었다. 유러존 전체는 2013년 성장률을 0.5%로 예측한 유럽연합집행위원회의 예상치 도 달성하지 못 할 가능성이 높다.
     

    균형재정을 이루기 위한 시도들도 별 성과가 없었다. 유럽연합은 모든 회원국에 재정적자를 GDP의 3% 내로 낮추라고 요구했다. 영국의 재정적자는 현재 GDP의 8.2%로, 2008년 이후 가장 높다. 재정균형을 달성하는 목표 시한은 2015년에서 2018년으로 미루어졌다. 구제금융을 받은 모든 유럽연합 국가들에게 적자를 줄일 시한의 연기가 허용되었다. 포르투갈과 아일랜드의 구제금융 상환기간은 각기 7년씩 연장되었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줄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GDP의 6.5%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국제통화기금(IMF)조차 자신들이 입안한 “긴축과 균형재정” 전략의 효과를 의심하고 있다. IMF는 초기에 시행된 구제금융 조치, 특히 그리스의 경우 오류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환자에게 약으로 부채를 처방한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정반대의 전략을 시도했다. 20년 동안 디플레이션을 겪은 일본은 막대한 규모의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화폐는 매달 GDP의 1% 비율로 시장에 풀려나왔다. 이는 지금까지 미국이 시행한 최대치의 두 배나 되는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물가가 2% 상승하는 것을 감수하면서 성장률을 높이려 했다. 현재 일본의 세수로는 정부지출의 46%밖에 감당하지 못한다. 이 정책은 국가채무를 더 증가시킬 것이 분명하다. 일본의 국가채무는 GDP 대비 245%에 도달해 이미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정책은 상황이 절망적임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전반적인 부채 증가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0년 7천억 파운드였던 영국의 국가채무는 1조4천억 파운드로 두 배 증가했으며 2015년에는 GDP의 85%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단지 국가채무일 뿐이다. 기업과 개인의 부채까지 더한 총 부채규모는 7조5000억 파운드로 GDP의 500%에 이른다.
     

    이런 현실은 “대불황”에서 빠져나올 길을 전혀 찾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상황이 더욱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세계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한다면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금융 시스템을 구제하는 데 필요한 금액은 2008년의 수십 배 이상 들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정도 규모의 금액은 국민국가의 능력을 벗어난다. 자본가계급이 그때 어떻게 나올지 정확히 예측하긴 어렵다. 하지만 최근 키프로스처럼 부채를 상각하고 은행예금을 몰수하거나 1990년 아르헨티나처럼 연금기금을 국유화하는 조치, 혹은 통화팽창을 통해 부채의 가치를 절하하는 조치들이 취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거대한 금융 위기와 “자신감”의 상실을 불러와 다시 사회적 위기를 불러올 것이다.
     

    지배계급은 이런 교묘한 금융적인 술책들과 함께 위기의 부담을 노동계급에게 전가시키는 전략을 취해왔다. 그러나 그런 전략들만 가지고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가 나타나고 있다. 키프로스 구제를 위해서 부르주아인 대형 예금주들이 이른바 “베일-인(bail-in)”1)을 실시한 것은 이를 암시한다. 6월 말 유럽연합이 취한 조치들은 향후 위기 상황에서 은행 주주들과 채권자들의 “베일-인”이 취해 질 것을 명확히 했다. 이는 아직 노동계급이 자본가계급의 전략을 성공적으로 저지할 능력이 없음에도 그것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들은 위기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아내는 건 고사하고,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계속되고 있으며 지배계급은 그것들을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
     

    노동계급에게 긴축재정을 부과하려는 지배계급의 시도는 전반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왜 그렇게 되는지 고찰해보기 전에 우리는 노동자들의 어깨를 내리누르고 있는 짐이 어느 정도인지를 간단하게 그려보려 한다.
     

    2008년 이래 임금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과 사회적 복지를 통한 간접적인 공격이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져 왔다. 많은 통계수치들이 이런 공격들의 심각성을 말해 주지만, 아마도 가장 극적인 것은 그리스의 경우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 평균 가계수입은 2007년에 비해 38% 줄어들었다.
    • 임금과 연금은 35~50% 줄어들었다.
    • 실업률은 28.6%에 이르고 젊은층의 40%가 해외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
    • 단체협약이 폐기되고 있다.
    • 연금개시 연령이 67세까지 올라갔다.
    • 부가가치세가 27% 올랐다.
    • 그 결과 37%의 아동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 영아 사망률이 40% 증가했다.

     

    구제금융을 받은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에서도 이보다는 덜 하지만 직접임금의 5~10%가 삭감되는 유사한 공격이 있었다. 최저임금도 비슷하게 삭감되었다. 영국 재정연구소(Institute for Fiscal Studies)는 2008년 이후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의 임금이 각기 4.8%와 9.9%의 삭감되었다고 보고했다.
     

    동시에 유연성이 더욱 강제되어 노동자들은 휴가와 상여금 같은 예전의 혜택을 포기하고 고용주와 개별 계약을 맺거나 시간무제약고용(zero hours contracts)2)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복지와 서비스의 축소를 통해 사회적 임금의 삭감이 강제되었다. 영국의 경우, 장애급여(disability benefit)가 삭감되고 침실세(bedroom tax)3)가 도입되었다. 연금개시 연령의 상승, 연금지급액의 삭감 등과 함께 사실상 무임 노동을 의미하는 워크페어(workfare)4)가 부과되었다.
     

    이와 더불어 경제의 구조조정과 효율화가 시행되었다. 이는 당연히 대규모 실업을 불러왔다. 유럽연합 전체 실업률은 12%이지만, 몇몇 나라들은 더욱 심각하다. 실업률 12%는 노동자 188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음을 나타낸다!
     

    자본가계급에게 이는 노동비용의 순 감소로 결과한다. 그리스에서 이 수치는 약 14%에 이른다. 노동계급이 이런 모든 사태에 저항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건 대체 무엇 때문인가?
     

     
    올해 5월 그리스 교사들의 파업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서 노동계급의 저항
     

    이른바 “선진” 자본주의국가, 특히 유럽, 미국, 일본에서 노동계급은 이런 공격에 저항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전반적으로 자본가계급은 원하는 대로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데 대체로 성공했다. 우리는 이 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 두 가지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요소는 “세계화 (globalisation)”의 깃발 아래 수행되고 있는 세계자본의 재조직화이며, 두 번째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노동조합의 우리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지난 25년 동안, 세계화는 선진국 노동자들을 투쟁으로 이끄는 물질적 조건을 변화시켰다. 그것은 자본가계급에게 이전에 가지지 못했던 유연성과 노동계급의 저항을 조정할 능력을 주었다.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인 리처드 프리먼은 중국, 인도, 구(舊) 소비에트권이 세계경제로 진입한 결과로 고용 가능한 노동력 수가 14억7천만 명 늘었다고 평가했다. 이로 인해 전세계 노동력 규모는 거의 두 배인 약 30억 명으로 증가했다. 노동자의 수가 늘어난 데 비해 자본은 거의 증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자본 대 노동의 비율은 그렇지 않았을 경우의 예상치 보다 55%에서 60% 줄어들었다. (리차드 프리먼, “노동시장의 불균형”, Harvard University paper)
     

    리처드 프리먼은 핵심을 명확히 제기한다.
     

    “자본/노동 비율은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과 자본이 얻는 보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노동자당 자본비율이 높을수록, 생산성과 임금 지급은 높아진다. 세계차원에서 자본/노동 비율이 하락하는 것은 시장에서 힘의 균형을 자본에게 유리하게 이동시켰다. 자본에게 고용되기 위해 더 많은 노동자들이 경쟁하기 때문이다” (Richard Freeman theglobalist.com)
     

    선진국의 자본가계급은 새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된 지역으로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수출함으로써 새로이 창출된 노동자들을 고용했다. 이로 인해 자본은 값싼 노동력을 대규모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통신과 인터넷의 발전이 이 새로운 노동력에 대한 착취를 더욱 용이하게 만든 것은 명확하다. 전세계적인 자본의 활동으로 창출된 잉여가치의 많은 부분은 선진국에 되돌아갔고 일부는 수출이 불가능한 그 지역의 서비스업에 재투자되었다
     

    선진국 노동자들에게 세계화는 필연적으로 노동계급을 파편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대공장들은 전세계적 생산과정의 일부를 구성하는 더 작은 단위들로 찢어지거나 폐쇄되고 생산은 주변부 국가들로 이동한다. 80년대 노동계급 저항의 보루들을 패배시킨 후 선진국 자본가들은 유연화라는 명목 아래 노동조직의 많은 부분을 재구성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노동자들을 보다 작은 단위로 노동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건설노동자들은 “인력도급” 업체(“labour only” subcontractors)에서 일하거나, “개인사업자(self-employed)”로 일하거나, 혹은 악명 높은 “시간무제약” 고용 같은 유연화된 고용제도 하에서 일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진 작은 단위들로 분열되었다.
     

    대규모 생산과 노동자들의 집적이 쇠퇴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분야는 제조업이다. 제조업은 1955년 영국 경제의 40%를 차지하며 8백만 명의 노동자들을 고용했지만, 지금 그 비중은 영국 경제의 10% 이하로, 250만 명을 고용하고 있을 뿐이다(<가디언>, guardian.co.uk). 1947년 국유화될 당시 노동자 47만 명을 고용했던 영국의 탄광산업은 1984년 광부 파업 시기에 이미 대략 절반인 20만 명으로 줄어 있었고, 현재는 6천 명에 불과하다. 노동자들의 감소는 철강 산업도 마찬가지다. 1951년에는 철강 산업에 45만 명이 일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18500명뿐이다(<파이낸셜타임즈>, 2013년 5월13일). 다른 산업들에 대해서도 유사한 수치를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산업들은 교훈을 준다. 쓰라린 파업의 경험 후에 대량학살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파업은 공장폐쇄나 수입으로 대체된 생산 축소를 막는데 실패했다. 이는 60년대와 70년대 승리를 거두었던 투쟁방식을 가지고는 더 이상 성과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오늘날 철강, 자동차 및 제조업 전반은 국제적인 자본가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지역의 수익성이나 파업에 대응하여 생산을 세계 다른 곳으로 이전시킬 수 있다. 생산의 세계화는 자본가계급에게 예전의 투쟁방식을 무력화시릴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산업, 특히 제조업의 축소 때문에, 대체로 다른 산업 분야에서 창출된 잉여가치를 전용하는 산업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결국 세계화였다. 2011년 조사에 따르면 서비스업은 현재 영국 노동자의 81%를 고용하고 있다(ons.gov.uk). 공무원, 보건·교육 노동자, 운송, 여행 등이 “서비스업”에 포함된 분야들이다. 명성이 자자한 금융 분야도 당연히 여기에 포함되는데, 영국 노동자의 17%를 고용한 이 산업은 2008년까지만 해도 영국 자본주의의 구세주로 생각되었다. (런던의 시티는 영국 GDP의 9%를 생산했고, 정부세금의 27%를 조달했다.) 금융 분야는 기생적인 것이 명백하지만, 이 분야들이 전부 다 가치라는 측면에서 완전히 비생산적인 것은 아니다. 늘어나는 많은 ‘서비스 부문’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서비스 노동이 상품생산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 이 부문들이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한 가장 최근의 공격에서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중요물자들이 해외에서 수입되는 탓에 이 부문들에서 파업 행위는 제조업·탄광·철강 분야에서보다 더 어렵고 덜 효과적이다.
     

    선진국에서 효과적인 반격을 가로막는 두 번째 장애물은 투쟁들이 대부분 노조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세계화와 함께 이 체제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 단계에서 70년대 초에 시작된 위기들로 옮겨 오면서 자본주의 이윤율에 더욱 전반적인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에 노조를 둘러싼 환경 역시 변화했다. 전후 노조들은 교섭을 통해 노동조건과 임금에 어느 정도 개선을 가져올 수 있었지만, 이는 자본주의가 2차 대전 동안 자본의 파괴로 초래된 이윤율의 증대 덕분에 성장의 시기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위기가 시작되자마자 자본가계급은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를 삭감해서 이윤을 확보하려고 했다. 변화된 환경에서 노조의 주요한 활동은 그저 정리해고, 구조조정, 노동조건의 악화를 협의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노조가 자본주의의 근간인 임노동제도에 전혀 반대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전혀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노조는 스스로를 자본주의 체제 내에 위치시키고 있고 따라서 그 일부로 기능한다. 노조의 주요 과제는 자본이 노동력에 지급하는 비율을 교섭하는 것과 그 유효성을 보증하는 것이다. 이는 체제 내에서 협상이며 노조는 자본주의의 전와 조건을 수용한다. 따라서 노조는 그에 따른 이윤추구 경제의 필요성과 그 논리를 받아들인다. 결과적으로 노조는 유연화, 구조조정, 정리해고 등등과 같은 것들을 인정한다. 노조는 건전한 국민경제를 지지하며 그들이 지향하는 사회주의의 전망은 완벽하게 국가화(statified)된 경제, 즉, 완전한 국가자본주의 체제이다. 결과적으로 노조는 자본주의의 대리자에 불과하며 그렇기 때문에 체제 자체에 맞선 효과적인 투쟁을 사보타주할 것이다.
     

    그러므로 선진국 노동자들은 전세계 임금율을 서서히 평준화시키고 있는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 변화로 말미암아 반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으며, 이 공격은 2008년의 금융위기로 구체적으로 발현되고 있다. 우리는 경제위기가 심화될수록 이런 공격들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동시에 대개의 경우 여전히 노조가 저항을 통제하고 있으며, 노조는 노동자들에게 자본가들의 공격에 굴복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상황이 더 나빠져서 주변부 국가의 노동자들의 수준으로 노동조건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조언할 것이다. 이것이 현재 선진국에서 자본가계급이 노동자들에게 퍼붓고 있는 공격의 물결을 멈추는데 실패하고 있는 배경이다. 

     

    주변부 국가들에서 저항
     

    2010년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들의 투쟁


    주변부 국가들의 상황은 대체로 선진국과 반대이다. 여기서 우리는 19세기 맨체스터를 방불하게 하는, 그러나 그것을 몇 배나 능가하는 대공장에 거대하게 집중된 노동자들을 발견한다. 아마도 가장 명확한 사례는 대만 전자회사 폭스콘일 것이다. 스마트폰, 태블릿 PC, 컴퓨터 서버 등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세계적으로 백 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중국에 있는 세 개의 생산시설은 약 70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파이낸셜타임즈> 2013년 4월1일). 가장 큰 심천(深圳) 공장에서는 39만 명이 일하고 있다. 인도, 방글라데시, 브라질, 남아프리카 등 다른 주변부 국가들에서도 이와 유사한 노동자들의 대규모 집중이 발견된다. 많은 노동자들이 엥겔스가 <영국 노동계급의 처지>에서 묘사한 것과 유사한 노동조건을 겪고 있다. 중국에서 약 2억5천만 명의 노동자들이 하루에 1달러 이하를 벌고 있으며 7천만 명의 노동자들이 하루에 2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고 있다. 노동자들이 주당 6~70시간 일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파이낸셜타임즈> 2005년 9월12일).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들은 공장에 감금당한 채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임금에서 떼이고 있다. 쥐꼬리만큼의 임금에 비해 그들이 일하는 작업장은 위험하기로 악명 높다. 2012년 11월 공장 화재로 117명의 노동자들이 죽었다. 같은 해 공장 한 채가 붕괴해서 1100명의 노동자들이 죽었다. 이런 예들은 자본주의가 주변부 국가들에 건설한 “멋진 신세계”의 노동조건이 어떠한지 잘 보여준다. 그것은 혁명가들이 분노로 낙인찍을 수밖에 없는 그런 세계인 것이다.
     

    대부분의 주변부 국가들에서 노조의 역할은 선진국에서처럼 자본주의 기구로 완전히 고착되지 않은 상황이다. 물론 노조가 국가에 통합되어 있는 중국은 예외적인 경우다. 이는 많은 계급투쟁들이 노조의 통제 밖에서 벌어짐을 의미한다. 파업과 비공인파업은 일정정도 양보를 얻어내는 경우도 많지만 흔히 유혈사태라는 대가를 치른다.
     

    주변부 국가들에서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계급투쟁의 이전 전통을 가진 바 없는 노동자들의 첫 번째 세대이다. 계급투쟁이 터져 나올 때 그것은 흔히 지역에서 광포한 폭력사태로 비화되어 경찰과 폭력적인 충돌로 확대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공식통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매년 수만 건까지는 아니라도 수천 건의 파업이 발생하고 있다고 추측된다. 모두 비공인파업들이다. 이런 투쟁들은 최근 군경과 충돌로 비화되어 사상자들을 낳고 있다. 주변부 국가에서 노동자투쟁에 대한 폭력탄압의 가장 잔혹한 사례 중 하나는 2012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마리카나 백금 광산에서 파업이 발생했을 때 나타났다. 경찰은 파업에 참여한 광부 34명을 총으로 사살했다.
     

    따라서 주변부 국가의 노동자들이 야만적인 착취에 맞서 투쟁하고 있으며 임금과 노동조건에서 작은 양보들을 얻어내고 있는 것은 일반적인 상황이다. 이 투쟁들은 지역에 국한되어 있으며 국가의 탄압에 갇혀있다. 그럼에도 이 투쟁이 자본주의 자체에 맞선 전체 투쟁의 일부라는 전망은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화된 저항
     

    세계화가 자본가계급에게 지역적 혹은 심지어 전국적 차원의 노동자 투쟁을 약화시킬 수 있는 수단을 부여한 한편 또한 맑스가 <공산주의자 당선언>에서 예언한 대로, 노동자들의 국제적 단결의 토대를 놓는 단일한 세계노동자계급과 세계적 차원의 생산체제를 창출했다. 자본가들이 하나의 공장, 혹은 하나의 나라에서 파업을 무력화시킬 수 있게 된 반면, 많은 산업들에서 일반화되거나 국제적이 된 파업들은 패배시킬 수 없다. 노동자들이 <공산주의자 당 선언>이 선언한 방식 그대로 전세계적으로 단결해야 할 필요성은 명확하다. 이는 당장의 경제적 요구들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위기는 노동자들이 획득한 경제적 성과를 오래가지 못하게 만든다. 자본가계급은 항상 그런 성과물을 다시 빼앗거나 자신들이 양보한 것을 벌충할 다른 변화를 도입하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가 있는 것은 그 착취적 본질 때문에 세계를 재앙으로 몰고 가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이다. 그래서 진짜 논의해야 될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를 코뮤니즘 체제5)로 대체하는 것이다. 미래의 투쟁에 그 목표로 가는 지향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던져야 하는 물음은 어떻게 그것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은 노동할 수 있는 능력밖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그들은 자본주의에서 무산계급이며 따라서 생존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한다. 노동력의 판매야 말로 자본주의 체제 전체가 서 있는 기초이다. 이런 조건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 노동계급은 임노동 관계를 철폐해야 하며, 이는 물론 자본주의 체제 전체를 혁파하는 것을 의미한다. 맑스가 노동계급을 “근본적인 사슬”에 묶여 있는 계급이라고 묘사한 것은 이 때문이다. 노동계급은 체제 전체를 철폐하여 생산과 사회를 전세계적으로 재조직하지 않고서는 속박에서 풀려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급은 오로지 두 가지 무기에만 의존할 수 있다. 자신의 의식과 자신의 조직.


    노동자들의 의식
     

    현재 노동계급은 맑스가 <도이치이데올로기>에서 지적한 대로 자본가계급의 관념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지배계급의 관념들은 모든 시대에서 지배적인 관념들이다. (칼 맑스, <독일이데올로기>)”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은 위기가 현 체제가 작동하는데 일시적인 정체일 뿐이며 그것에 대한 대안은 없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다. 현실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최선의 선택으로 보이는 것은 지금 있는 거라도 꼭 부여잡고 머리를 푹 숙인 채 지배자들이 늘 약속하는 좀 더 나은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맑스는 <정치경제학의 비판을 위하여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 방식이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생활 과정 일반을 조건 짓는다. 인간들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들은 그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 지금까지 그것들이 그 내부에 운동해 왔던 기존의 생산 관계들 혹은 이 생산 관계들의 법률적 표현일 뿐인 소유 관계들과의 모순에 빠진다. 이러한 관계들은 이러한 생산력들의 발전 형태로부터 그것들의 족쇄로 변전한다. 그때에 사회 혁명의 시기가 도래한다.” (칼 맑스, <정치경제학의 비판을 위하여 서문>)
     

    노동자들의 삶이 더욱 어려워지고 약속된 영광의 미래가 결코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현실이 결국 노동자들의 의식을 규정할 것이다. 이는 물론 자본가계급이 미디어와 교육, 이데올로기 기구들을 통해 선전하는 사상들과 직접적으로 상충된다. 더욱 광범위한 계급투쟁과 국제적 투쟁의 사상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이다.
     

    노동계급의 “사회적 존재”는 맑스가 이야기한 대로 물론 대체로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적 존재에 얽매여 있다. 위기의 현 단계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불만을 낳고 있는데 이는 노동자들이 개인으로 참여하는 사회운동으로 발현되고 있다. 우리는 주변부와 중심 국가들에서 대중투쟁을 목격하고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일어난 봉기, 그리스·스페인·미국·영국 등지의 주요 도시에서 벌어진 광장 점거운동, 뒤이어 일어난 터키, 브라질, 그리고 다시 이집트에서의 사회운동. 이 운동들은 어떤 선명한 목적이 없는 다계급적인(interclass) 운동이긴 하지만, 그것들이 근본적인 차원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불만과 부르주아 민주주의 및 정당과 노조 같은 자본주의의 공식적인 구조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는 노동자들이 개인으로 참여하는 부르주아적 관념들에 대한 초보적인 도전들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CWO는 앞에 인용한 문단에서 맑스가 사용한 의미 그대로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족쇄라고 주장한다. 2차 대전 이후 생산력이 엄청나게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 성장이 전쟁이 초래한 대규모의 가치증발(devaluation)과 불변자본의 파괴에 의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이전에 생산된 부에 대한 이러한 파괴는 이윤율 저하 경향을 낳는 축적체제 자체의 문제 때문에 자본주의의 생존에 본질적이고 필수불가결한 일부가 되어왔다. 현대 자본주의가 세계전쟁을 통해 주기적으로 부의 전반적인 파괴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자본주의 사회 관계가 생산력에 “족쇄”라는 것은 진실로 명백해 진다. 현재 우리는 전쟁을 통한 불변자본의 전반적 파괴가 자본주의가 봉착한 난국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다시 나타나고 있는 단계에 있다. 그러나 전면적인 전쟁의 조건들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의 난국은 노동계급에 대한 점증하는 공격으로 특징화되고 있다.
     

    이것이 노동계급의 현 상황에 물질적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내에서 노동자들의 “사회적 존재”는 문제들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제기하지 않는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삶을 계속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때까지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현재 이슈는 노동자들이 지금 눈앞에 문제점들을 직면하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할 때, 그것들은 반드시 더욱 근본적인 역사적 질문들을 던지는 데까지 나아가고야 말 것이다. 1871년의 파리코뮌과 1905년, 1917년의 러시아혁명은 본질적으로 부르주아 민족주의적인 문제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결국 세계 역사적 과제로 나아갔다.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 
     

    2011년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월스트리트 점거투쟁


    조직화


     

    노동계급이 승리를 위해서는 목전의 투쟁들이 일반화되고 국제적이 될 필요가 있다고 의식하게 될 물질적 조건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 자동 방아쇠 같은 건 없다. 현재 노동자들 사이에 가장 널리 퍼진 희망은 자본주의가 좀 더 “공정하게” 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위기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부의 양극화가 계속 증대하고 있다는 증거가 확실함에도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돌파해야 할 필연적인 단계이다. 계속되는 착취 과정에서 더 광범위한 노동계급이 자본주의가 창출한 난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체제가 더 이상 인류의 미래와 양립할 수 없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글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창출하고 있는 환경파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6)). 노동계급의 투쟁들은 더 광범위해지고 더 집단적이 될 것이다. 가두의 투쟁들은 인상적인 반자본주의 대중을 더욱 두드러지게 할지 모른다. 하지만 진정으로 체제를 위협하는 것은 미래의 대중파업이 될 것이다. 낡은 생산체제를 마비시켜야만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체제로 가는 길을 닦을 수 있다. 투쟁들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아랍의 봄”에서, 특히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지역 노동계급의 파업들이 정부기관들의 항복을 얻어내는 데 필요한 힘을 제공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는 자본가 정부기관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하게 진정한 힘이 노동계급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재 모든 곳에서 노동자들의 투쟁들은 대체로 노조에 장악되어 있으며, 앞서 주장한 대로 노조는 노동을 통제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일부가 되어 있다. 따라서 미래의 투쟁들이 승리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노조의 수중에서 노동자의 조직을 빼앗아오는 것이 필요하다.
     

    투쟁들은 노동자들의 총회를 통해 민주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총회는 파업위원회를 선출하고, 파업위원회(strike committees)는 파업과 투쟁을 다른 공장 및 가능하다면 국제적으로 확대하는 임무를 부여받을 것이다. 파업위원으로 선출된 대표들은 오로지 총회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며 소환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체제를 패배시키는데 부족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역사적 의식이 높아져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형태로 발현될 것이지만 하나의 국제적인 당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찾게 될 것이다. 이 당은 노동계급이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데 꼭 필요한 도구가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정부의 당이 아니라 국제공산주의의 확산을 위해 투쟁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노동계급 속에서 활동하는 노동계급의 당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 조직은 노동계급의 투쟁에 깊이 뿌리내려 있어야 있다. 그것이 이 조직이 투쟁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명확한 정치적 목적 없이는 가장 단호한 노동자들의 투쟁조차 결국에는 혼란과 패배로 끝날 것이다. 그런 조직의 건설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현 시기 계급투쟁의 역사적 교훈과 현 정세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혁명가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어떻게 노동자들의 투쟁에 개입해서 혁명적 방식을 전면적으로 선전할 것인가 하는 것이야 말로 노동계급만이 자본주의의 역사적 대안을 만들어갈 수 있음을 이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도전과제이다. 
     

    2013년 8월 3일

    CP

     

     

    각주 ----------------------------------------------------------

    1)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진 은행에 대해 채권자들이 보유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거나 채권의 일부를 상각해 파산을 막는 것을 말한다.

    2) 이 고용방식은 고용주들이 노동자들을 필요한 시간에 데리고 와서 그 시간만큼 임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노동자들이 지금 일하러 오라고 휴대폰 문자로 통고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2012년 영국에서 20만 명의 노동자들이 이 방식으로 고용되어 있었고, 그중 10만 명은 국민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에서 일했다. 이 제도는 의사, 엔지니어, 강사, 기자 등 전문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작년에만 25% 증가했다. 이는 노동비용을 낮추고 고용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드는 방식의 전형적인 예이다. 수치는 2013년 8월 4일자 <파이낸셜 타임즈>

    3) 영국정부가 올해 3월부터 발효한 복지 개혁안 중 정부 제공 복지 주택의 주거자 가운데 쓰지 않은 침실, 즉 여분의 침실을 가지고 있는 세입자들에게 생활 보조금을 깎는 정책을 말한다. 이에 따르면 여분의 침실 한 개를 가지고 있으면 복지 수당을 14%, 두 개를 가지고 있으면 25%를 깎게 된다. 예를 들어 사회 복지사가 충분한 장애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판정하지 않은 아이를 가진 부모는 여분 침실 세를 내야 한다. 독방을 아이가 차지할 자격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또 병으로 일찍 죽은 딸의 방을 그대로 놔두고 싶은 부모도 세금과 수당 축소를 감수해야 한다. 비인권적 법안이라고 하여 노동·시민사회운동 진영 뿐아니라 종교계로부터도 격렬한 반대를 받았다. 

    4) 일하는 사람을 위한 복지, 일(work)과 복지(welfare)의 합성어로 'welfare to work'로 불리기도 한다. 이 개념은 영국이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에 걸쳐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경제적 위기를 타개해 나가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당시 복지제도의 남용으로 인해 각종 사회 안전망들이 개인들의 노동 의욕을 떨어뜨려 생산의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초래됐다. 영국에서는 실업자가 실업수당을 수령하기 위해서는 실업기간 중 새로운 능력을 학습하거나 기존의 능력을 제고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소득지원은 직업의 유무와 관계없이 최저생계비의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만 지급된다. 실직자는 직업센터를 찾아가 일자리를 찾고 있으며 일자리가 생기면 즉시 일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이들은 직업센터가 요구하는 직업훈련을 거부하거나 면담이나 직업계획 프로그램에 불참하면 수당이 중단되거나 감소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일하는 것을 조건으로 공적인 부조를 베푸는 것을 말하는데, 적당한 취직처가 없을 때 시영 신체장애자센터나 도서관 등에서 일정 시간 (주 24시간)의 무료봉사가 의무화되어 있다.

    5) (필자주) 우리가 코뮤니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의미하는 것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 이루어지는 생산을 가리킨다. 거기서 생산은 사회화되고 사회는 개인들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도록 조직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는 러시아·중국 등지에서 존재했던 국가자본주의 사회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6) (필자주) 이 점에 대해서는 마우로 스테파니니가 쓴 우리의 소책자 <자본주의와 환경 (Capitalism and the Environment)>을 보라.

     

     

     

    번역 : 사회주의노동자신문Ⅰ이정인 

    (http://sanosin.jinbo.net/Publish/magazine.php?ex=article&b_fn=RD&gotopage=1&pkno=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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