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 [국제정세] 노란 조끼와 검은 우비
  • 조회 수: 4478, 2019-06-19 13:25:43(2019-06-18)
  • 노란 조끼와 검은 우비 (Yellow Vests and Black Rainco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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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현재 뉴질랜드에 사는 프랑스 아나키스트 모건(Morgan)이 쓴 프랑스 노란 조끼 운동에 대한 개인적 분석이다.

     

     먼저 나는 이 글이 현 상황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임을 밝힌다.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 운동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노란 조끼 운동은 201810월 정부의 유류세 인상으로 촉발되었지만, 그것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 일반화된 도로 주행속도 감축은 역시 과속 딱지 숫자를 늘려 세수 충당을 하기 위한 정부의 기만책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는 그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분노의 진정한 발단은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의 정책과 프랑스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은 그에게 투표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선출되었다 ; 그의 상대는 극우 후보 마린 르 펜(Marine Le Pen)이었다. 많은 유권자들은 인종차별주의자와 전직 은행가 중 한 명을 택하길 거부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크롱은 현재 우파 스타일의 통치를 하고 있다 ; 부자 감세, 전임자(역자 주 1)가 했던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공격 지속, 사회운동 탄압, 이민자에 대한 괴롭힘과 추방 등. 이러한 맥락에서 노란 조끼 운동은 사람들이 상황 전반에 대해,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사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진정한 대중 항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분노는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언제나 문제의 본질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나는 운동의 전개 과정을 설명하고, 그것의 계급 구성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런 다음 현 상황에 대한 아나키스트와 혁명가들의 반응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이후, 운동의 전망과 현 상황에 대한 결론을 맺을 것이다.

     

     초기에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 특히 페이스북에서의 결집으로 운동이 시작되었다. 수백만 명이 보았고, 수천 번 공유되었던 몇몇 영상에서는 정부의 유류세 인상, 새로운 속도 제한, 세금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노란 조끼의 상징이 등장했다 ; 프랑스에서 모든 차량 소유주는 법률에 따라 의무적으로 차량에 노란 조끼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영상에서는 또한 사람들에게 로터리(Roundabout)에 결집하고, 조끼를 입거나 그것이 눈에 띄도록 차량에 전시해둘 것을 호소했다. 이러한 로터리 투쟁은 이윽고 결집의 상당한 구심점이 되었다. 이는 우리에게 초창기 운동의 계급 구성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로터리는 프랑스의 상공업 중심지이자 지방과 도시 사이의 교외지, 시골과 작은 마을의 전형이다. 대도심 중심의 정형적 운동과는 다르게, 이 운동은 더욱 변두리 지역 곳곳에서 발생했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사람들은 로터리를 밤낮으로 점거하기 시작했다 ; 천막이 세워지고, 판잣집이 생겨났으며, 모닥불이 켜졌다. 우리는 그때가 여전히 겨울이었던 점과 밤에는 꽤 추울 수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때로는 로터리가 봉쇄되었고, 여기저기서 운전자와 작은 시비가 발생하기도 했었다. 몇몇 사람들은 심지어 자동차에 치어 사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점거 투쟁은 지나가는 자동차에 유인물을 배포하고, 다른 노란 조끼들과 토론을 하면서 지속되었다. 그 거점은 어떤 결집에도 전혀 참여해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이 친구와 동지들을 사귀고, 배우기 시작했던 장소였다. 그 당시에 소수의 사람들만이 노동조합원이거나 특정 정당의 전투적 활동가였다.

     

     정치적으로 발언하는 운동은 항상 존재해왔고,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세금과 유류세에 초점을 두는 건 좌파 활동가들에게는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또한 로터리에서는 많은 소부르주아지, 소 기업가, 인종차별주의자와 파시스트 허수아비 등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의 공격으로 일부 사람들은 이민자를 붙잡아 경찰에 넘겨주기도 했다. 이는 사건의 핵심이 되진 않지만, 많은 좌파와 아나키스트가 왜 반응하지 않았는지 설명해준다. 그러나 운동이 성장하고 경찰 탄압에 직면하면서, 상황은 진화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Acts(행동)’라 불리는 주간 시위에 결집하기 시작했고, 야만적인 경찰과 맞닥뜨렸다. 로터리 점거 투쟁은 경찰 탄압과 차량 소유주들 때문에, 점점 더 폭력성을 띠었다. 어느 순간, 이 운동은 파리에서의 시위를 위해 재편성을 결의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미숙한 노란 조끼가 얼마나 총체적인지 충분히 알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예정된 집회를 경찰에게 신고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이 운동에 형식적 대표자는 있었지만, 지도부도 중앙 의사 결정 과정도 없었다는 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여다보자. 사람들은 그저 공지를 통해 파리에 모여 시위하기로 결의했고, 언제나 기존 사회 운동의 한계를 벗어난 상징적인 장소를 택했다 ; 에투알 개선문(Arc de triomphe de l'Étoile)과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상류층 지역. 이는 경찰과의 격렬한 충돌로 이어졌고, 운동 중 일부는 급진화하기 시작했다. 노란 조끼에 경찰이 합류하길 원하고, 그들과 같은 동료 노동자로 대우받길 원했던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그들은 자신의 운동이 그저 부당하고 불합리한 폭력과 생떼로 치부되는 것에 점점 더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기업주와 우파 단체는 폭력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러나 운동의 중심부는 그렇지 않았다. 요구안은 최저임금 인상, 부유세, 민주적 개혁 조치 등과 같이 점점 더 많은 것들을 포괄하기 시작했다. 더 많은 아나키스트와 좌파 활동가들이 정당·노동조합과는 무관한 노동계급 운동인 것처럼 등장한 이 운동에 결합하고, 공감하고, 조직하기 시작했다. 일부 아나키스트와 혁명가들은 이러한 사람들이 파리 최상류층 지역에서 봉기를 일으킬 능력이 있었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파리에서 이러한 시위가 항상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 일부 도시는 사회 운동에 참여하는 전통이 없었음에도, 정치적 중심지로 떠올랐다. 경찰 탄압으로 불붙은 봉기는 수많은 도시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움직임과 더욱 결기 있는 움직임 사이의 전환은 주로 언론의 영향을 받았다. 초창기에는 부르주아지 언론에서도 이 운동을 꽤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우파에게는 꿈이 실현된 것처럼 보였다 ; 세금에 저항하는 평화적 대중운동,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 등. 그러나 운동이 점점 더 급진적으로 전개되면서, 언론은 그들을 무책임한 자들로 묘사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에게 폭도·파괴자들과 멀리할 것을 요구했다. 그 와중에 경찰 탄압은 계속해서 심해졌고, 언론은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LBD-40 Flash ball(고무탄)과 수류탄 발포로 인해, 현재까지 적어도 30명이 실명했고 5명이 손을 절단당했다. 그리고 1명이 살해당했다. 부상자 수는 수천 명에 달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시위 이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봉기와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사람이다. 경찰의 야만성과 사실 왜곡을 보도하지 않고 있는 언론의 행태. 이는 수많은 노란 조끼들이 현재, 언론을 왜 거짓말쟁이이자 적으로 생각하는지 설명해준다. 몇몇 언론인들은 시위 도중에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물론 그들이 당한 폭력의 대부분은 경찰에 의한 것이었다. 또한 우리는 운동에서 공적 인물의 역할에 대해 할 말이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지도자로 여겨지는 것을 거부하며,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사람들에게 법을 넘어서 행동하기를 촉구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현재,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운동을 이용했거나, 스스로 폭도와 거리를 두고자 했던 사람들은 대중성을 잃었다. 심지어 시위 현장에서나 집에서 공격을 당하고 생명에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이는 또한 운동을 적대시하는 정부 각료와 정치인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아나키스트, 자율주의자의 혁명 운동은 현 상황에 동의하지 않았다.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았다. 특히 초반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을 우파 운동, 심지어 극우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초창기 노란 조끼 지도자들 중 일부가 우파적 배경을 가졌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혁명 운동 일부에 대해 많은 거부감이 들었던 이유는 혁명 세력과 노동계급 사이의 단절 때문이었다. 이는 물론 다른 맥락에서 해결해야 할 큰 문제이다. 앞서 언급했던 문제들, 특히 인종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로 인해 일부 동지들은 이 운동이 그저 파시스트 운동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경찰 탄압과 봉기를 거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Appelistes’(역자 주 2)와 같은 대다수의 자율주의자 그룹은 자신의 업적을 위해, 아주 초창기부터 운동에 매우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그들의 열정이 전통적인 계급 분석을 거부한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인종차별주의 운동을 비판했고, 많은 동지들은 파시스트를 운동에서 쫓아내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주로 시위 현장에서의 길거리 싸움과 신상 공개, 파시스트 본거지에 대한 공격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때로는 좌파 조직과 단체들이 긴장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일부 공격은 정말로 폭력적이었고, 수많은 동지들이 부상을 당했다. 파시스트들은 심지어 혁명가와 안티 파시스트뿐만 아니라, 주류 좌파 단체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들은 여전히 위협적이지만 대세는 이미 기운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여러 싸움에서 패배했고, 최근에는 매우 심하게 구타당해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일부는 스스로 경찰서에 가기로 했다. 자신들의 물리력을 자랑스러워하며, 극렬 훌리건과 문화적으로 친숙한 그들에게, 이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러한 거리 그룹은 주된 위협이 아니다 ; 극우 운동의 정신적 지주, 이데올로그들이 언젠가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들 중 다수가 음모론을 지지하며, 약간 반유대주의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 당분간은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해결책이 없는 것 같다.

     

     거리에서의 봉기는 1968년 이후, 파리에서 볼 수 없었던 수준이다. 상류층 지역이 공격을 당했고, 심지어 한 각료의 공관은 시위 도중 지게차에 의해 파괴당했다. 노란 조끼는 탄압으로 인해 점점 더 급진화되었다 ; 결국 그들은 블랙 블록(Black bloc)’과 같은 전술을 채택하기 시작했고, 이는 점점 더 정당화되었다. 봉기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운동에 처음 나선 사람들이다. 노란 조끼와 프랑스어로 소위 검은 바람막이(Kway noir)’로 불리는 블랙 블록혹은 검은 우비(Black raincoats)’ 사이의 동맹은 정부에게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정부는 운동에 있어 보다 급진적인 요소를 차단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수많은 사람들은 블랙 블록 전술이 자기방어라는 관점에서 정당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블랙 블록 전술이 경찰 폭력으로부터 때때로 그들을 방어해왔다고 여긴다. 다른 한편으로, 경찰 폭력의 증가는 이제 많은 이들이 시위에 가는 것을 당연히 두려워한다는 걸 의미한다. 또한 대중성이 없다면, 참여자 수 감소를 일으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요 노동조합과 관련하여, 운동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종종 아주 적대적이었지만, 노란 조끼 내부에서도 또한 노동조합에 대한 적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이 운동에서 활약하는 노동 계급이 조직 노동 부문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노동조합은 공공 부문과 500인 이상 사업장 (상대적) 고임금 조합원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노란 조끼 대부분은 민간 부문 노동자이며 자영업, 임시직 등 더욱 불안정한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기층 조합원들과 단위 노동조합은 아주 초창기부터 이 운동에 참여해왔다. 프랑스의 새로운 점은 이러한 종류의 사회 운동이 노동조합과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 노동조합이 힘을 잃었다는 또 다른 신호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이 운동에 반대하지 않는다 ; 51일 메이데이 투쟁에서 노란 조끼와 노동조합은 함께 시위를 벌였다.

     

     정부는 전면적인 탄압 이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여 운동을 파괴하려 했다. 주된 시도는 대토론(Great debate)’이었다. 대통령에게 청원하고, 사람들의 요구를 알리는 형태로 제안된 전국적 협의의 일종이다. 무작위로 선발된 사람들이 토론을 벌이고, 청원하는 지역별 그룹의 형식을 띠었다. 그러나 대토론 끝 무렵에,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요구안을 이해하고는 있지만,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때문에 그 시도의 저의가 무엇이었는지 드러나게 되었다 ; 운동을 파괴하고, 사람들이 지쳐버리길 바라면서 시간을 벌기 위한 수작이었다. 운동은 이미 ‘RIC(시민 발의 국민투표)’와 같이 어느 정도 명확한 요구사항을 가지고 있었기에, ‘대토론을 준비하고 시작한 것은 매우 불합리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정책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고, 새로운 것을 제안할 수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부유세는 노란 조끼의 두 가지 큰 요구사항이다.

     

     최근 51일 시위에서는 경찰에 의한 더 많은 폭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정부는 더 급진적인 세력들이 집결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명령을 내렸었다. 이는 시위에 대한 수많은 진압과 공격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이러한 진압은 주요 노동조합에조차 꽤 새로운 것이었다. 프랑스 노동조합의 주요 대표인 CGT는 경찰 폭력으로 인해, 시위 현장을 떠나야만 했다. 정부는 이 시위를 통제하는 데 성공했지만, 대중이 보기에는 비참하게 실패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정부는 시위대가 병원을 공격한다.’며 거짓말을 했지만, 이는 곧 들통났다. 사람들은 그저 경찰 폭력을 피해 달아나려 했을 뿐이었다. 점점 더 많은 영상이 심지어 자신들의 건물 안에서조차, 사람들을 무작위로 공격하고 있는 특수 경찰 집단을 보여준다. 경찰 탄압은 혁명가들과 노란 조끼가 서로 더 가까워지면서 급진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렇게 다양해진 운동의 공통분모는 더욱더 경찰을 증오하고, 혁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 운동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이 운동은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봐왔던 것들과 다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운동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해결되어야 할 일들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가장 고무적인 것은 이 운동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 자발적인, 노동 계급, 사회 운동.

     

    작성 : Morgan

    번역 : Fernand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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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자 주 1 : ()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전임자였던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노동법 개악을 지칭하는 맥락이다.

     

    * 역자 주 2 : 영역하면 ‘appelists(어필리스트)’. 줄리앙 쿠파(Julien Coupat)가 핵심적으로 활동하는 아나키스트 그룹 보이지 않는 위원회(the invisible committee)’와 같은 경향을 속되게 지칭하는 표현으로 추정된다. 주로 즉각적인 봉기와 현대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사보타지를 주장, 실천하는 경향으로 이해되며, 프랑스 국영철도 송전선 파괴 투쟁 등을 벌였다.

     

    참고 링크 :

    https://www.reddit.com/r/Anarchy101/comments/9hqb0a/what_is_appellism

     

    * 원문 출처 :

    http://libcom.org/news/yellow-vests-black-raincoats-05062019

     

     

     

    <편집자 주>

    이 글은 토론에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싣게 된 글로 국제코뮤니스전망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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