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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문학, 그것은 짓눌린 삶으로부터 - 임성용
  • 조회 수: 3916, 2013-05-05 19:35:26(2013-01-09)
  • 문학, 그것은 짓눌린 삶으로부터

    -임성용

     


    삶과 저항과 실천으로서의 문학

     

    대표적인 저항시인이자 혁명시인이었던 김남주 시인은 그 스스로 삶과 예술에서 누구도 뛰어넘을 수 없는 선도적인 투쟁과 실천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치열한 시정신과 인간정신은 앞으로도 저항하는 민중과 민중의 역사에 뿌리 깊은 이념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한국 문학사에서도 그의 혁명을 향한 순결성과 문학에 대한 진정성은 끊임없이 채찍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다.

    김남주 시인에게 있어 시는, 혁명의 무기로 복무해야 하며 시는 그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하며, 모든 사회적 현실과 인간관계, 나아가 자연현상까지도 유물론과 계급적 관점에서 파악해야 하고 시도 역시 그 철저함에 비례한다는 것으로 인식했다. 따라서 시인은 결국 혁명운동의 이념적 전위가 되어 동참해야 만이 감동적인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시인을 이렇게 규정하였다.

     

    암흑의 시대에

    시인의 일 그것은 무엇일까

    침묵일까

    관망일까

    도피일까

    밑모를 한의 바다 넋두리일까

     

    무엇일까

    박해의 시대에

    시인의 일 그것은

    짓눌린 삶으로부터

    가위눌린 악몽으로부터

    잠든 마을을 깨우는 일

    첫닭의 울음소리는 아닐까

     

    - 김남주, ‘시인이여첫 시집, 진혼가(청사)

     진혼가.JPG

    70년대의 민족문학과 민중문학도 외세의 억압과 정치적인 압제에 대한 문학적 대응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저항시, 민중시, 그리고 특히 80년대의 노동시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리얼리즘문학의 도저한 흐름으로 자리를 잡아왔다. 바로 그 정점에 전두환 군부독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광주민중을 학살하고 권력을 탈취한 폭압의 시대에 오히려 노동문학이 현실주의 기치를 내걸고 전면으로 등장했다. 그동안 소설가나 시인의 이름표를 단 작가 중심에서 노동자들 스스로 급격하게 확산하는 노동운동과 더불어 노동계급 본연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노동시)가 정치적 몰락에 이르게 된 90년대 중반까지 약 10여 년 넘게 노동문학의 발전과 중흥기가 지속하였다. 박노해, 백무산, 박영근 등으로 대표되는 노동시는 리얼리즘의 문학적 변이와 계급주체의 민중미학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찬사와 평가를 받을 만했다. 더구나 현장의 노동과 직접 결합한 그들의 시는, 수많은 노동자의 각성과 의식, 분노와 투쟁을 일깨워주는 저항의 무기로써 작용하는 역할을 했다. 이로 말미암아 한창 불붙기 시작한 노동조합과 노동운동, 파업, 그리고 노동해방의 논리 속에는 어느새 문예운동을 뚜렷한 사상으로 삼고자 했고, 문예선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프롤레타리아 계급문학(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그 중심축으로 두고자 하는 노력이 나타나기도 했다. 노동문학, 현장문학을 비롯한 잡지는 물론이거니와 녹두꽃, 사상문예운동, 이 밖의 이름을 전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문예지, 무크지 등이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사노맹의 선전매체는 노동해방문학이라는 슬로건을 달고 발행되기도 했다. 문학이 그만큼 사회변혁과 계급운동의 주요 수단이요, 도구였던 것이었음을 방증한다.

    그러나 이 시기도 십 년 남짓에 불과했다. 소비에트와 그동안 우리가 사회주의체제라 알고 있던 국가자본주의 스탈린주의 체제몰락 이후, 노동자계급 대신에 새롭게 등장한 시민과 더불어, 제도화된 민주화와 더불어, 이른바 신자유주의와 더불어, 그렇게 열렬하게 달아오른 잉걸불의 불꽃은 꺼지고 급기야 한 시대의 물결로 요동치던 노동문학의 닻이 내려졌다. 더욱이 IMF라는 경제식민지와 김대중 정부의 출범이 맞물리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사람들의 고뇌는 한 겹 두 겹 지워지고 온갖 헛것과 헛꿈에 대한 기대와 망상을 갖게 하였다. 한편으로는 십 수년간의 성과를 결집하여 오로지 당 건설을 염원하던 민중의 바람대로 진보정당이 생겨났지만, 이는 곧 개별화된 형태의 운동과 집단화된 조직들을 정치적으로노동계급에서 한층 더 멀리 분리했고 계급의 주체성을 상실한 사람들은 비로소 진보라는 이름의 정치정당이 만들어준 밥그릇을 빛나게 닦으면서 매우 편리한 개량주의 방식으로, 혁명적 투쟁을 포기한 선거와 의회주의에 복무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문예운동도 이 무렵부터는 이른바 문화예술과 운동이 둘로 나누어지는 분할의 경계선 밖에 서성이게 되었다.

     

    십 년간, 문학운동 주체들의 생산적 결합

     

    십 년간의 의미는 남다르다. 노동자 계급의식에 기반을 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카프가 1925년에 조직되었다. 카프는 우리나라에서 계급문학을 조직적으로 추구한 유일한 사상문예운동의 결사체였다. 내부갈등과 일제의 극심한 탄압으로 카프는 1935, 십 년 만에 해산하였다. 그로부터 전쟁과 분단으로 짓밟힌 이데올로기의 암흑기를 지나, 유신정권 하에서의 반독재민주화운동은 부르주아 지배문학의 틀에서 벗어나 있던 문인들을 저항의 길로 이끌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모태가 된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만들어졌고 김지하, 고은, 송기원 등의 작가들은 수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자실이나 민작은 카프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뜻있는 지식인들과 작가집단의 모임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80년대 말에 이르러, 마침내 노동문학의 붐을 타고 구로공단을 위시한 영등포, 마산, 창원, 성남, 부천, 인천 등지의 십여 곳에서 지역노동자문학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노동자, 노동조합, 파업, 현장교육, 문예선전은 노동자문학회가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고 역사적으로 맥이 끊긴 노동문학이 다시금 성장할 수 있는 토대와 양분을 제공해주는 시기였다. 그러나 노동자문학회의 깃발도 십 여년 만에 내려지고 말았다. 구로노동자문학회를 필두로 90년대 말 즈음에 모든 지역노문이 문을 닫았다. 돌이켜 보건대 그 십 년간이 카프 이후, 전문 문학인이 아닌 현장노동자들이 실천적 문학운동을 펼친 한국노동문학의 전성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시기야말로 문학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전문 시인이나 작가들의 영역에 문학운동의 생산적 주체인 노동자들이 적극 참여하여 문학의 권력을 나누고 그 경계를 과감하게 허물어뜨렸다.

    당시의 성과물들이 50여 권이 넘는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모두 노동시집들이다. 개인시집도 있고 동인시집도 있고 지역노동자문학회 문집도 있다. 이름을 들으면 금방 알만한 사람도 있고 생소한 사람이 낸 시집도 여럿 있다. 시를 계속 쓰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노동문학의 울타리에서 노동과 삶을 노래한 시집들의 면면은 생각보다 참으로 다채롭고 풍요롭다.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으므로 잠깐 일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생활과 문학/삶 글-구로노문, 하루살이의 노래-이규석, 노동의 새벽-박노해,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만국의 노동자여-백무산, 나의 밥그릇이 빛난다/눈물은 푸르다-최종천, 패배는 나의 힘/철산동 우체국-황규관, 축제/무화과는 없다-김해자, 먼지가 부르는 차돌맹이의 노래-조영관,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이면우, 대열/취업 공고판 앞에서-박영근, 그곳에도 꽃은 피는가-객토 동인, 아직은 저항의 나이/저 많은 꽃등들-일과 시 동인, 더 깊이 뿌리내리기 위하여-부천노문, 광장에 아침 햇살이 떨어지기 전에-동부노문, 시금치 학교-서수찬, 기린울음-고영서, 하늘공장-임성용, 왜 딸려?-구노문 작품집, 어색한 휴식-김명환, 너를 만나고 싶다-전노문, 아름다운 파편-이명희, 인부수첩/우리들의 사랑가-김해화, 공친 날/슬픈 희망-김기홍, 반성하다 그만 둔 날-김사이, 그네-문동만, 낡은 기계/기름미인-조기조,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꿀잠-송경동, 저 겨울산 너머에는/기찬 날-표성배, 개미집-이상호, 지리한 장마-정은호, 물으면서 전진한다-조성웅, 아내에게 미안하다-서정홍, 검지에 핀 꽃-조혜영, 평화시장-이한주…….

     

     

     여기에 밝힌 시집 외에도 이보다 훨씬 많은 작품집과 시집들이 있다. 대부분이 현장노동자 출신인 이들은 그들이 몸담은 노동현장에서 한국의 노동시를 억세고 줄기차게 걸머지고 왔다. 혹시 급진적인 좌파 계열의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은 혁명적인 시는 불요불굴의 전투적 계급성이 생명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시는 자신이 감내해온 사랑과 눈물,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 그 흔적이 아로새겨진 민중의 정서를 아래로부터 위로 밀고 나아가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현장에 삶의 뿌리를 박은 노동자들이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확연한 분노보다는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 부끄러움, 그리고 동료에 대한 애정과 연대, 미안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므로 애초의 노동시들은 처음부터 붉은 피가 아니라 자기 내면의 성찰에서 나오는 절망과 눈물이었다.

     우습게도 허구한 날 품격 높은 사기와 능숙한 거짓말을 지껄여온 공갈 문학이 노동문학을 일깨워주었다. 특히 시는 노동 현실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경우가 많고- 문화제, 노보, 투쟁이나 행사 등- 노동자들 역시 그다지 즐겨 읽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라는 문학 장르에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문학적 수단을 노동자들 스스로 마련한 것이었다하지만 전국노동자문학회가 10년을 넘기면서 양적으로 수많은 문예생산물이 쌓이고 하나둘씩 노동시집을 낸 사람들이 모두 20여 명이 넘게 나왔는데, 그 전환기가 역설적이게도 노동자문학회의 해체와 맞아떨어졌다. 개인 창작이 본질인 문학과 집단적 현실문제의 괴리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집단에서 개인으로, 그러니까 집단이 와해하여 가는 와중에 각자 개인의 약진이 이루어졌던 셈이었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집단의 단련이 만들어낸 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집단의 힘이란 문학에서 집단이 개인에게 의식적으로 발휘하는 막대한 영향력을 말함이다

    노동자문학회의 간판이 내려진 지금에야 돌이켜 보건대, 80년대에서 90년대의 노동운동과 그 궤적을 같이 해온 노동자문학은 한국노동문학사의 중대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으며 현실에 가장 뿌리를 맞댄 계급문학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수백, 수천 명의 발길이 머물다간 자리, 그들의 배면에서 고맙게 아직도 오롯이 시를 쓰고 있는 그리 오래지 않은 벗이자 동지들이 있으니 이들에게는 굳이 시인이라는 꼬리표가 썩 달갑지가 않은 일이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부산의 한진 중공업 희망버스를 선도했던 송경동 시인은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활동했던 노동자였다. 그는 단순히 시를 쓰는데 그치지 않고 거리의 시인으로 불릴 만큼 투쟁사업장에서 현장노동자들과 함께 노숙 농성을 하면서 시를 삶의 유일한 실천으로 행사했다. 언제부터인지 문화가 운동의 색다른 아이콘으로 떠오르면서 송경동의 시는 한 편의 시를 박차고 나와 대중들의 가슴팍을 향해 다가섰다. 그가 시를 통해서 내뱉는 목소리는 집회현장에서 무엇보다 강렬한 확성기가 되었고 노동자들을 움직이게 하였고 시민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이것은 실로 오랜만에 경험하는 문학의 열띤 희열이었으며 살아있는 시의 전망이었다. 문학의 역할은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현실의 가능성을 사유하게 한다. 그래서 문학은 근본적으로 당파에 갇히질 않는다. 사물화된 리얼리즘은 결국 관념의 형식에 지나지 않음으로 호사가들의 가벼운 말처럼 노동문학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설령 종말을 고했다손 치더라도, 여전히 유효한 노동의 가치를 역사적 기반으로 한 노동문학은 언제라도 급진적 재구성이 반드시 필요한 때이다.

     

    프롤레타리아의 노래와 밤을 위하여

     

    부르주아 사회에서의 예술은 개인적으로 그것을 생산하고 수용하는 집단들이 따로 있다. 그들은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를 반영하고 그 특성을 재현한다. 그들의 예술은 삶의 실천을 단절시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부르주아 예술은 부르주아 사회를 작동하게 하는 제도로서의 예술이다. 예술이 삶의 실천과 통합되는 게 아니라 삶과 예술이 분리된다. 예술 따로, 인생 따로인 부르주아 예술가의 위선은 심각한 모순과 이중성에 빠져있다. 프롤레타리아 예술은 다름 아닌 삶으로부터 생겨난 예술을 다시 그 예술의 근원인 삶과 결합하고 밀착시키는 데 있다.

     

    랑시에르는 프롤레타리아의 밤에서 19세기 프랑스 노동자들이 밤잠을 포기하고 신문을 만들고, 시와 노래를 짓고, 사회문제를 토론하는 것에 주목했다. 이 사례에서 그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위치와 자리를 나누는 경계(분할)를 넘어서고 있음을 강조한다.

    - 고봉준, ‘문학과 정치에서 문학의 정치작가들2012, 가을호.

     

    랑시에르가 주목한 것은 부르주아들이 구분해 놓은 예술의 경계를 프롤레타리아가 배제된 존재가 아닌 말하는 존재로 참여하고 입증하는 것, 그들의 분할 선을 뛰어넘는 것, 이 틈에 바로 정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이든 문학이든 그 공간 속으로 프롤레타리아가 뛰어드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굳이 노동시의 새로운 의미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한동안 논쟁의 대상이었던 시의 정치성에 관하여, 진은영 시인은 어떤 공간에서 시를 낭송하는 행위가 그 공간과 결합하고 그 공간의 성격을 어떻게 바꿔나가는지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어떤 평론가는 시는 어떻게 쓰든, 이런 중대한 사안이 있을 때는 자기 견해를 밝히고, 정치적으로 발언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시인시민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만 삶과 예술의 동시적 실험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노동자들이 시를 쓸 때, 시라는 예술을 통해 삶을 바꾸려고 했던 노력과 일치하는 지점이 있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현실은 확장되고 변하는 것이라고. 또 어떤 이들은 우려한다. 프롤레타리아라는 깃발 아래 예술가들이 똘똘 뭉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그렇다. 우리는 보고 있다. 세상이 변해 가는 것을. 하지만 그 속에서 지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중대한 도전이 가로놓여 있고 노동예술의 내용은 그 예술적 미학이나 형상화가 늘 낡은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날로 버텨내기 힘겨운 강퍅한 삶 속에서, 부르주아들이 만들어놓은 공고한 질서의 전복을 꿈꾸는 프롤레타리아의 밤은 별빛처럼 찬란하다. 사라지려야 사라질 수 없는 노래는 뜨겁다. 인류 문명과 문화예술이 낳은 생명이 노동이라면, 문학도 그 생명의 유기체로서 노동의 구성물질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1%99%, 부자와 가난뱅이들로 전 세계 민중과 노동자들의 삶이 철저하게 분할된 오늘의 시대를 살면서, 다시 한 번 선연한 프롤레타리아계급문학의 복원을 꿈꾸며, 카프의 맹원 중에 계급과 문학과 자신의 삶을 동일시한 어느 이름 없이 잊혀진 사람을 그려본다. 인민 속으로 들어가 인민의 문학을 이루어야 한다고 부르짖었던 이동규라는 작가는 6. 25 전쟁 시에 이현상이 거느린 남부군의 문화지도 위원이었다. 그는 지리산에서 펜 대신에 총을 들고 빨치산으로 최후를 마쳤다.

     

    522월 남부군이 거림골 무기고 트라는 데 머물고 있을 때 화가 양지하가 연필로 이동규의 얼굴을 스케치해서 이선생의 빨치산 모습이라는 제목을 달아 그에게 주었다. 그는 좋은 기념품이 생겼다면서 그것을 배낭에 넣고 다녔다. 그런데 그해 5월 내가 N수용소에 있을 때 205경찰연대의 정보과장이 환자 트에서 사살된 시체의 배낭 속에 들어있었다면서 보여준 그림이 바로 그것이었다. 죽은 그 빨치산은 동상으로 발이 거의 썩어 없어져 버렸다고 했다.

    - 김성동, 현대사 아리랑에서.

    동상으로 썩어 없어진 발의 주검이 있었음에도……. 그의 시를 아는 이 없다.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스무 명이 넘게 죽어나가도 세상은 노동자를 외면하고 있다. 문학의 눈이 분명하게 바라보아야 할 것은 바로 이 서글픈 역사이며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노동의 현실이다. 자본은 세계화되었고 자본의 지배는 총체적이다. 노동자들은 꼼짝달싹 없이 자본에 포위되었다. 지구촌 전체가 그들의 식민지다. 중세 이후, 너무나 잔학한 형벌이라고 해서 금지되었던 화형(火刑)을 이명박이 남일당에서 자행하지 않았던가? 기억하라, 우리도 똑같이 너희를 산 채로 불에 태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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