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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논쟁] 북한 - 스탈린주의와 마오주의가 착종된 봉건적 주체주의 - 오세철
  • 조회 수: 6881, 2013-05-02 19:03:23(2013-01-27)
  • 북한 - 스탈린주의와 마오주의가 착종된 봉건적 주체주의

       

     

    - 오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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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어가며 위원장, 총통, 가족(혈통), 그리고 대중

     

    북한은 김정은 3대 세습이 공식화되면서 세계 역사에서 절대 권력이 혈족으로 이어지는 최초의 봉건 국가가 되었다. 예상보다 빠른 김정일 죽음이 계기가 되었지만, 이는 이미 김정일이 치밀하게 계획하고 진행한 권력승계 작전이었다. 1967년 이후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과정에서 김일성을 우상화하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던 김정일 입장에서 볼 때, 짧은 권력승계과정을 전제한다면 3대 세습을 위한 이데올로기 조작은 더욱 치밀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김일성 우상화를 위해 유일사상 1대 원칙을 내세워 김일성 사상을 절대화하고 북한 인민의 절대복종을 유도한 김정일로서는 김일성과 김정일로 이어지는 신적인 혈통의 계승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더구나 김일성과 똑같은 외모와 신체적 조건을 지닌 김정은은 젊은 나이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비주의적 상징조작의 가능성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강점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외부 세계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청화대학 신문방송학과 대학원 초빙교수인 정기열의 김정일 죽음 이후 20111223일 북한에 대한 묘사를 몇 문단 인용해 보자.

     

    (김정일)가 오늘 국가와 사람들 간에 서로 일정한 차이가 혹 있더라도 큰 틀에서 반제자주의 원칙을 견지하려는 여러 국가들(중국, 러시아, 쿠바, 베트남, 베네수엘라, 이란, 시리아 등)과 조직의 영도들에 의해서까지 존경과 흠모를 한 몸에 받게 된 배경이 아닐까 싶다.”

     

    김일성 주석 탄생 100돌을 맞는 ”“ 2012년 강성대국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기 위한, 특히 인민경제발전의 길을 멈추지 말 것을, 그래서 초심과 신심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중국은 자신들이 국가조사의 마지막 문장을 영어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He will be immortal’, 곧 김정일 위원장은 영원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 곳 동포들이 자신들의 조국을 하나의 대가정이라고 하는 말뜻을 조금은 더 깊이 이해하고 깨닫게 된 풍경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생각과 의식보다도 영혼 속 깊이 그 어딘가에서 경험된 깨달음이라고 표현해야 옳을 것 같다.”

    오열하고 통곡하다 심장에 질병이 있으신 어르신들이 기절도 하고, 때로 하도 울어 아예 기진해 일어나지 못하는 분들을 돕기 위해 병원들이 스스로 나서서 만든 조직들이다.”

     

    나는 앞의 연재 중에서 이미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이 맑스주의와 (혁명적) 사회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반미를 내세운 민족주의 부르주아지임을 지적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은 혈족의 세습을 한 바가 없다. 왜 가족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가 같은 뿌리를 지니고 있으며 파시즘의 이데올로기가 되는가는 이미 설명한 바가 있다. 그런데 왜 유독 북한은 가족주의보다 더 좁은 한 가족의 혈통으로 인민을 묶으려는 것일까? 여기서 잠깐 가족제도에 대한 인류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기로 하자.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은 맑스주의 기본원칙을 담고 있지만, 인류학자 모르간의 연구에 힘입은 바 크다. 라이히는 모르간과 엥겔스의 조사 결과가 발표 당시와 마찬가지로 파시즘의 대중심리의 증본 3판을 낸 1942년에도 타당하다고 하면서도 가족의 역사문제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현대의 중요한 성-정치학적 질문, 즉 성-경제학이 어떻게 반동적인 성적, 문화적, 정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가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총통으로서 히틀러의 성공을 단지 민족사회주의의 선동, ‘대중을 몽롱하게 함’, 속임수 등으로 설명하려 한다든지,‘나치 정신이상등과 같은 공허한 용어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히틀러의 성공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대중들이 왜 쉽게 속임을 당하고 몽롱해지고 정신이상의 상황에 빠져들 수 있었는가를 이해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원했던 것은 대중적 조직의 기법을 포함한 맑스주의 방법을 이용하여 민족주의적 제국주의를 시행하는 것이었지만 그러한 대중적 조직의 성공은 히틀러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선전이 정착할 수 있게끔 만든 것은 바로 인간의 권위주의적이며 자유를 두려워하는 구조라는 뜻이다. [주 : 빌헬름 라이히, (오세철 옮김) 파시즘의 대중심리, 현상과 인식, 1986, 73쪽]

    라이히는 이를 권위주의적 가족과 권위주의적 국가의 관계 속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주 : 빌헬름 라이히, (오세철 옮김) 파시즘의 대중심리, 현상과 인식, 1986, 85쪽]

     

    아버지의 정치적, 경제적 지위는 아버지의 가족 구성원과의 가부장적 관계 속에 반영된다. 권위주의적 국가는 아버지의 상을 통하여 모든 가족 속에 자신의 대리인을 만든다. 따라서 가족은 권력의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된다.”

     

    아버지의 권위주의적 지위는 그의 정치적 역할을 반영하며, 가족과 권위주의적 국가 사이의 관계를 드러낸다. 가족 내에서 아버지는 생산과정 속에서 아버지의 상사가 아버지에 대해 갖는 것과 동일한 지위를 소유한다. 따라서 권위에 복종하는 그의 태도는 아이들, 특히, 아들 속에 재생산된다. 하층 중간계급에 속한 사람들의 총통상에 대한 수동적이며 복종적인 태도는 이러한 조건으로부터 나온다.”

    여기서 본질적인 것은 대중, 개개인의총통과의 동일시이다. 이러한 동일시 경향은 민족적 나르시즘, 즉 개인들이민족의 위대함으로부터 끄집어내는 자존심의 심리적 토대가 된다. 이러한 동일시의 토대 아래에서 대중 개개인은 자신이 민족적 유산’, 민족의 수호자임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바로 민족주의자에게서 발견되는 정서다.

    그러면 노동자 계급의 동일시의 욕구는 무엇인가? 그 대상은 총통이 아니라 동료 노동자이며 환상이 아니라 자신들의 일이며, 가족이 아니라 지구상의 일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자신의 일을 국제적으로 의식하는 것은 신비주의 및 민족주의와 대립된다.

    이제 가족의 문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보자. 사회학이 가족의 문제를 거대한 사회 변동과정에서 영향을 받는 미시적 관계로 분석한다면, 심리인류학은 토대이며 상부구조인 가족을 원초적 인간관계(사회관계)로 보면서 오히려 이 관계가 사회구조와 기구의 형성에 근본적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가족제도를 부부 중심, 부자 중심, 모자 중심, 형제 중심의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그에 따른 사회구조변화를 연구한 슈(F.L,K. Hsu)는 부부 중심을 서양, 부자 중심을 동양, 모자 중심을 무슬림, 형제 중심을 아프리카의 가족제도로 분류한다. 동양의 가족제도에서 형성되는 인간관계를 연속성, 포용성, 호혜성으로 분석한 그는 부부중심의 서양을 단절성, 배태성, 독립성으로 대비시킨다.

    한국(조선), 일본, 중국을 포괄하는 동양의 인간관계가 영속성, 포용성, 호혜성이라는 보편적 구조를 가지는가의 문제는 세 국가의 차이로부터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장자상속이 아닌 균등상속제도가 발전하며, 장자상속제도를 가진 조선과 일본과 달리 대가족제도로 확대되었으나 조선과 일본은 장자에 의존하는 폐쇄성을 지니게 된다. 조선과 일본의 차이는 양자 제도에 있다. 일본은 수공업체제에서 수제자를 양자로 삼는 이에모또에 기반을 두어 혈연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반면 조선은 양자로 혈족 가운데서 선택하게 되어 혈연에 집착하고 물적 기반을 가진 장자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폐쇄적 인간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본의 세습이나 북한의 권력 세습은 이러한 가족제도의 뿌리와 연관되어 있다. 서구 자본주의에서의 파시즘 구조가 절대권력, 대가족, 민족, 국가로 이어지며 대중과 동일시된다면, 동양 자본주의는 절대권력(수령, 총수), 소가족(혈속), 민족, 국가의 연결구조가 혈연, 지연, 학연으로 동일시되는 형태를 띠게 된다. [주 : 이 문제는 한국사회의 계급의식의 주제로 더 깊게 확대될 때 자세히 다룰 것이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

     

     

    19468월에 제정된 노동당 규약은 조선로동당은 맑스-레닌주의의 학설을 자기 활동의 지침으로 삼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해방 이후 50년대 중반까지는 소련으로부터 배운다.”는 입장에서 맑스-레닌주의(스탈린주의)를 거의 그대로 수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 후 경제발전정책에 대한 입장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1955사상 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함에 대하여에서 주체라는 개념이 최초로 등장하면서 맑스-레닌주의는 교조가 아니라 행동의 지침이며 창조적 학설로 규정되기에 이르나 중소분쟁과정에서 현실적 문제 때문에 55년부터 63년까지는 주체사상이 공식적으로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중소분쟁과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분열과정에서 북한의 입장이 정리되면서 소련에 대한 비판을 통해 자주노선이 구체화되고 19644월 인도네시아에서 행한 김일성의 역설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에서의 사회주의 건설과 남조선 혁명에 대하여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김일성의 최초의 정식화가 나타난다. 이 연설에서 자주적 입장, 창조적 입장이라는 개념과 더불어 정치사상의식을 드높이는 방법이 제시되는데 여기서 주체라는 개념이 발전하여 주체사상이라는 개념으로 등장한다.

     

    그 후 1970년 조선로동당 제5차 대회는 당 규약을 개정하여 맑스-레닌주의를 창조적으로 적용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자기 활동의 제도적 지침으로 선포하였고 5차 대회는 주체사상의 전면화, 승리의 대회로 규정하였다. 또한 72년에 채택된 사회주의 헌법에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맑스-레닌주의를 우리나라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조선로동당의 주체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로 명료화함으로서 주체사상은 조선로동당의 지도이념에서 전면화 되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들어와서 주체사상이 맑스-레닌주의보다도 상위의 개념으로 격상된다.

     

     

    ……수령님께서는 일찍이 초기 혁명 활동시기에 맑스-레닌주의에 정통하셨습니다. 그러나 맑스-레닌주의를 조선혁명의 실천에 적용하는데 머무르질 않고 확고한 주체적 입장에서 혁명이론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으며 혁명실천이 제기한 문제들을 독창적으로 체결하였다고한다. (주체사상 총서 1.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 백산서당, 1989, 33)

     

     

    주체사상은 사상, 이론, 방법의 전일적 체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구체적인 형태는 주체사상, 혁명이론, 지도방법을 의미한다. 이러한 체계화는 1982년의 김정일 논문 주체사상에 대하여에 집대성되어 있다. 주체철학에서는 과거의 물질과 의식, 존재와 사유의 관계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삼았는데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문제를 새로운 근본문제로 제기한다. 그들은 선행한 노동계급의 철학이 사람의 본질을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측면에서 보았다면 주체철학은 사람을 사회적 관계 속에서 보면서 동시에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라고 하는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규정함으로써 그 내용을 풍부하게 하였다고 주장한다.

     

    주체사상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펼쳐질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주체사상의 철학적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주체사상의 사회적 역사 논리에 관해서이다. 주체사상에서 제기될 수 있는 철학적 문제로는 인간의 운명문제, 실존주의적인 가치론적 사회·역사관, 비합리주의적인 집단적 생명관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여기서는 맑스주의와의 관계를 분석하는데 한정하고자 한다.

     

    주체사상이 맑스주의에 새롭게 부가했다고 하는 합리적 요소는 이른바 사람 중심의 사상, 이론, 방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며 합리적인 것은 더욱 아니다. 사람을 중심으로 보고 그로 인해 사람의 속성들을 파악한다고 할 때 그것은 동물이나 여타의 존재와 구별되는 것으로서 사람을 포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일,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1988, 330~332)

     

    이는 맑스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것이며 포이에르바하에 의해 정식화 된 바 있다. 그가 말하는 유적존재란, 바로 물질적 존재의 최고 형태로서의 인간을 여타존재와 구별되도록 하는 속성, 특성을 의미한다. (포이에르바하, 기독교의 본질, 종로서적, 1982, 1)

     

    맑스가 비판했던 인간론도 바로 이점에 초점이 두어져 있음은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만 보아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결국 사람 중심의 세계관과 이른바 인간(의 속성)론은 맑스주의에 없던 어떤 것, 그리고 이후 시대의 발전에 수반하여 부각되는 새로운 합리적 요소가 아니라 맑스가 이미 1840년대에 포이에르바하에게서 배웠다가 그의 사상의 발전과 함께 비판하고 폐기해버린 비합리적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주체사상이 밝혀준 신사상이 맑스주의에 부가되어야할 합리적 요소라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맑스주의를 이탈했다고 본다. 이는 주체사상의 인간론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실로서 주체사상이 밝힌 사람은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존재로서 구체적 계급규정을 상실한 추상적 인간에 지나지 않은데, 이러한 추상적 인간 규정은 불가피하게 주의주의적인 실천관으로 귀결되고 만다. 주체사상이새롭게밝혔다고 하는 사람의 본질적 속성, 즉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심오한 내용이 아니며 대부분 공문구로 채워져 있을 뿐이다.

     

    둘째수령의 무한한 위력에 관한 문제이다. 그토록 공허하고 모호한 사람의 본질적 속성에 대한 규정은 수령론에 이르러 비로소 생생하게 그 의미가 드러난다.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사람의 본질적 속성이라기보다는 수령에 의해 부여되는 속성인 것이며 이를, 말미암아 수령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을 가지고 수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주체형 인간이 되기 위한 학식적 내용이 되는 것이다.

     

    여하튼 주체사상은 모든 종교가 다 그렇듯이 세계에 대한 인간의 절대성을 강조함으로서 관념 속에서의 인간의 무한한 절대성과 현실 속에서의 인간의 유한한 상대성을 적절히 조화시켜야 할 논리적 필요성을 강제 당하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부르주아적 관념론에 머물고 있다. 중세 스콜라 철학이 그 절대성을 신으로 보았고 헤겔은 절대정신으로 보았듯이 주체사상은 수령으로 보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주체사상은 상부구조의 능동성과 사회적 존재라는 역사유물론의 핵심개념을 잘못 이해한 형이상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주체사상의 모든 구성 요소는 주체의 혁명적 수령관으로 귀결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령, 결국 한 개인이 당의 역사를 만든다는 주장은 영웅 또는 위대한 개인이 역사를 만든다는 관념론자들의 주장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혁명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이 아닌 당의 지도이며 이는 본질적으로 집단적 지도이다. 수령에 대한 맹신 맹종은 전근대적인 종교와 다를 바가 없다. 더구나 이러한 관념론적 영웅관이 사회주의 맑스주의와 무관한 부르주아지가 지배하는 북한 자본주의의 사회 작동원리가 될 때 그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형식마저도 파괴하는 봉건적 국가자본주의의 형태를 띠게 됨은 명확해진다.

     

     

    <인민민주주의>와 북한 자본주의

     

     

    북한의 해체와 권력의 지주가 되고 있는 주체사상은 사회주의와 맑스주의와는 무관한 관념론으로서의 일인통치 이데올로기임을 우리는 위에서 비판했다. 그러면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은 사회주의 국가인가? 마오주의의 중국의 혁명이 부르주아 인민혁명인 것처럼 스탈린주의가 위로부터 강제한 북한의 <인민민주주의>는 노동자 계급의 혁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국가자본주의의 변형에 불과하다.

     

    북한은 조선의 역사를 근대조선역사와 현대조선역사로 구분하고 철저하게 주체사상에 입각하여 재구성하여 역사유물론에 입각한 계급사관으로부터 벗어나 자주성의 역사로 기술하고 있다. 인류사회의 발전역사는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의 역사입니다.(김정일, 주체사상에 대하여, 19)”를 인용하면서, “조선 인민의 근대역사는 외래 자본주의 침략을 반대하고 민족적 자주화를 고수하여 역사발전에서 멀리 떨어진 봉건제도를 청산하기 위한 반침략 반봉건투쟁으로 일관되었다고 하며 사회정치적 및 계급적 내용으로 보아 부르주아 민족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한다. (북한학술서, 근대조선역사,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박사 이종현), 일송정, 1988, 16)

     

    김일성 저작집을 인용하면서 서술되는 역사해석은 근대와 현대를 반제투쟁의 역사, 민족해방투쟁의 역사로 규정하고, 1866년 샤만호 침입으로부터 시작되어 오늘까지 지속되는 미 제국주의의 침략의 역사로 보고 있다. 일본에 대한 표현도 제국주의보다는 군국주의로 적고 있으며 큰 제국주의세력(미국)을 등에 업은 침략이라고 보고 미국과 일본의 이해관계의 공통성에 기반한 공모결탁으로 해석한다.

     

    반침략 반봉건투쟁을 평가하는 데는 그 역사적 의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공통적인 투쟁의 한계로 지도사상의 불철저함, 지도자의 부재나 미성숙, 투쟁조직의 한계로 요약하고 있는 것도 역사해석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결국 주체사상, 수령 그리고 당이라는 주체의 혁명 전략과 맞물리게 된다.

     

    현대조선역사는 항일혁명투쟁을 김일성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1926.10.17에 결성된 반제청년동맹(E.I)”을 주체사상의 기원으로 보고 그 이후 모든 투쟁의 효시로 E.I를 인용하고 있다. 그 이후 역사는 반봉건,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본주의) 그리고 사회주의로의 역사적 발전 단계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내용적으로는 자주성의 역사, 즉 반제투쟁과 민족해방투쟁의 역사로 기록하고 있다.

     

    김일성은 194928조선정치정세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민주와 반민주, 진보와 반동사이의 투쟁이 첨예하고 복잡하지만 형세는 이미 인민들에게 유리하게 바뀌어졌습니다. 세계민주역량은 반민주, 반동세력에 비하여 훨씬 유력 합니다.이것이 바로 전체인민이 민주주의 자주 독립 국가를 수립하기 위하여 투쟁하고 있는 우리조국이 처한 새로운 국제적 환경입니다”(김일성 전집 5(1947.1~1947.5), 조선정치정세에 대하여(1947.2.8)조선노동당출판사, 1992, 147~148)

       

    또한 그는 우리가 지향하는 인민민주주의는 구미자본주의 국가의 민주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또한 사회주의 국가의 민주주의를 그대로 본 딴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반제 반봉건 민주주의 혁명단계에 놓여있는 조선의 현실에 알맞은 새로운 민족주의입니다” (김한길,현대조선역사(1993년판)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일송정, 1988, 71)라고 말하고 있다.

     

    반제 반봉건 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한 다음 단계는 당연히 사회주의 혁명단계이며 그것을 소시기로 구분하여 기초 건설단계, 전면적 건설단계, 완전 승리 투쟁단계로 보아 1971년 이후 북조선은 마지막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사회주의 건설은 국유화를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 조치로 임시인민위원회가 소련으로부터 산업시설을 물려받은 것일 뿐이며 해방직후 북한의 일부지역의 대공장 노동자들이 공장을 접수해 자주관리를 하려 했을 때 소련군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1945년 북한지역 노동자의 수는 전체인구 1천만 가운데 10%를 넘는 100만 명 이상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북한의 노동계급이 노동자자주관리를 통해 노동자권력을 수립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소련에의 무역의존도를 보면 북한의 공업 총생산에서 소련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946년에 47.5%, 1947년에 45.7%, 1948년에 55.5%에 이르러 위성국가로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인민을 억압하는 북한의 관료는 노동자 임금보다 더 많은 봉급을 받는 특권계층이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노동자 국가가 지니는 조건을 지니지 못했다. 우리는 북한이 수령체제에 종속된 봉건적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국가라는 스탈린주의의 특수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북한경제와 시장경제

     

     

    수령체제의 파트너쉽이 1950년대 전반부터는 정()의 핵심이었다가 1956~1961년 사이에는 김일성 중심의 당 우위 그리고 1998년 김정일 승계 이후에 군으로 바뀌었다. 북한 자본주의의 중심이 시장경제체제로 자리 잡으면서 수령과 시장, 화폐가 모순 대립하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중국이 1958년부터 1961년까지 대약진운동을 통해 2천만 명이 넘는 아사자를 내는 고통을 겪었지만 국가자본주의의 개혁을 통한 노동계급의 착취에 기반한 성장을 이룬 반면 북한은 지속적인 기근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계속되는 경제계획과 수령중심의 이데올로기 조작의 실패는 봉건적 국가재벌주의 체제를 시장중심의 자본주의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197827개년 계획에서 주체경제자력갱생원칙을 강조하는 고육책을 썼으나 19806차 당 대회에서사회주의 경제 건설의 10대 전망목표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목표 달성은 55%에 불과했다. 37개년 계획(1987~1993)1989년에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개최하여 외채난이 가중되어 북한 무역액과 맞먹는 46억 달러에 이르렀다. 19924월 개정헌법에서는 외국인의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신무역체제를 도입했으며 714일에는 화폐개혁을 단행하여 소비억제를 통해 획득된 자본을 산업가동에 동원하였다. 1993년에는 향후 2~3년간을 사회주의 건설의 완충기로 설정하고 무역제일주의, 농업제일주의, 경공업제일주의라는 혁명적 경제전략을 채택하였으나 19931233개년 계획의 10대 전망 목표 달성률은 9.6%~25.9%, 공장가동율 40%에 불과했으며 1990~98년까지 9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그 이후 북한은 1994년부터 1999년까지를 고난의 행군시대로 부르면서 기존의 자본주의 축적방식으로부터의 전환을 시도한다. 196931일 김일성이 발표한 사회주의 경제의 몇 가지 기본문제에 대하여에서 제기한 것과 달리 가치법칙의 활동을 증가시키는 논의를 한다. (경제연구1994, 1(평양), 사회과학출판사 22~25, 재인용, 차문석, ‘고난의 행군과 북한경제의 성격변화’,현대북한연구81, 2005,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이 시기에 증여체제의 기본인 매입체제가 무너진다. 증여는 국가(수령)이 제공하는 선물이며, 선물에 대한 답례로 충성, 지지, 동원을 건네주는 수령제의 인격적이고 가부장적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1998최후의 승리를 위한 강행군또는 사회주의 강행군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걸고 제2천리마 대진군과 봉화라는 모범을 통한 상징조작을 하였으나 몰락하는 북한 경제를 회복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2000년 말 새로운 경제정책을 발표한다. 그것은 경제운용의 본부로서 내각의 기능강화, 각 부문에서 계획을 세우는 개별경제 지도조직의 권한과 확대, 경제 관리의 개선과 합리화를 위한 공장 기업소의 대대적 재조직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20027월경에는 노무관리의 개선과 함께 공장 지배구조의 개선을 통해 노임구조의 변화를 꾀했으며 전문경영인의 권한강화를 통하여 공장의 자율권을 확대하였다. 그 이후 2003년 종합시장개편이후 국영상점은 수매상점으로 전환되었고 독립채산제 실시, 소비재 무상급부제의 폐지, 화폐 임금으로의 전환은 노동력의 상품화가 이루어져 본격적인 시장경제체제로 들어서게 되었다.

     

    북한은 고난행군시기’(1990~1998), ‘생산정상화시기’(1999~2004), ‘경제활성화시기’(2005년 이후)를 거쳐 경제위기를 극복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07년 신년사에서 북한은 핵실험 이후 격동의 해’(2006)를 경험했으며 특히 2006년은 최악의 역경에 속한다고 말하고 있다. 2006년 북한의 중국의 교역액도 약 17억 달러에 달해 중국 자본주의에 대한 의존도가 엄청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2007년 일반 공장 및 기업소들은 대부분 가동이 멈추어 있다. 공장 가동률은 지역에 따라, 군수와 민수에 따라, 생산율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20%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주권이 고난의 행군을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아니라 핵개발에 소요되는 엄청난 비용이 북한 경제를 더욱 약화시키고 식량부족으로 인한 엄청난 굶주림의 참상을 빚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자본주의의 객관적 참상에도 불구하고 수령제의 이데올로기적 조작은 아직도 남아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중국은 공장, 꺼져버린 수도의 불빛, 멈춰선 렬차들을 뒤에 두시고 선군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며 자위적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온갖 심혈을 다 바치셨다조선노동당, “우리나라에서의 핵실험 성공은 반만년 민족사와 세계정치사에 특기할 력사적 사변이다”, (평양, 조선로동당 출판사, 2006)

     

    북한인민의 소득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불과하며 90% 정도가 장사소득이다. 식량 확보도 시장에서 구입하거나, 자력으로 확보하거나 밀수 등의 방법으로 이루어져 그들이 말하는 자력갱생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했으나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아 외국상품에 대한 유통을 통해 이익을 챙기려는 상업자본주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핵 폐기를 대가로 한 식량원조와 물질적 보상을 통해 북한 경제를 산업자본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로 세우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중국 자본주의에의 의존과 미국 및 한국 자본주의에서의 의존이라는 다른 선택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면서 김정일 권력이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 자본주의를 파멸시키는 역사적 책무는 북한의 노동계급에게 일차적으로 주어져 있으나 이는 동아시아의 노동계급의 단결(남북한 노동계급의 단결을 포함한)과 세계노동계급의 단결을 통한 혁명투쟁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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