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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2호] 계급투쟁에 대한 공헌
  • 조회 수: 4770, 2013-08-18 22:36:26(2013-08-18)
  • 계급투쟁에 대한 공헌


    2012년 5월
     Rose|InternationalistPerspective

     

     


    이 문서는 2012년 5월에 열린 국제주의전망 (Internationalist Perspective) 대회에 제출되었다. 2011년 11월 국제주의전망 대회에 제출되었던 계급투쟁에 관한 문서와 연관돼 있고, 대회에서 발전된 분석의 연속선상에 있다.


    2011년 대회에서 이 문서의 결론 중에서, 우리는 이렇게 말했다.

     

    "아랍의 봄, '분노한 사람들(indignados)'과 ‘점거운동 (Occupy Movement)'운동들은 자체 전망을 갖고 있지 않다. 그와 반대로, 계급운동들이 아랍의 봄, 분노한 사람들과 점거운동들이 구체화한 질문의 잠재력을 차지했어야 했다. 너무나 빈번히 생산 영역에서 발생한 반응들은 특정 요구들(임금, 일자리) 에 제한된다. (…) 그래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전반적인 의문을 생산 영역에서 파업과 시위를 연결시키는 시작을 하면서, 더욱 더 포괄적이고 전반적인 전망 속에서 요구하는 것이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분노하라!",  Internationalist Perspective, 56호, 2012]

     

    오늘날,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묻는 것은 적절하다. 결론적으로 두 개의 요소들을 현 상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즉, 작업장에서 자본주의 사회관계에 대한 더욱 보편적인 의문에 대한 요구들을 잇기 위한 필요성, 그리고 근본적인 사회변혁 맥락에서 이 운동들을 위치 지을 필요성이다.

     

    이 기고문에서 제시한 가설은 '분노한 사람들'과 '점거'운동이 제기한 질문이 저항 행동과 파업에서 시작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2011년 대회 문서에서 지적했던 운동 동력의 연속성과 계급행동간 관계 구축의 시작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지구적 기능에 대한 질문을 목격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운동의 열기 속에서 나타났던 역동성은 이 운동들이 약해지자마자 개량주의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제공한 환상으로 후퇴했다.

     

    우리가 이미 지적했듯이, 계급의식 발전 과정은 이질적이며 균등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는 풍부한 잠재력 또한 혼란과 환상에 필연적으로 빠진다. 그러나 혼란 때문에 단념하지 않고 계급의식 발전과 정화를 지원하면서 그들의 가능한 잠재력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토피아를 위해 투쟁하자. 사장과 권력가에 맞선 전쟁을 일으키자. 자유를 향한 사회적 반란과 폭동을. 아나키." 이것은 그리스 테살로니키 벽에서 읽을 수 있는 많은 슬로건 가운데 하나이다. 이 대중적인 문구는 시위와 파업이 멈추지 않는 그리스에서 일반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이처럼, 일부 공장들은 최근 몇 달째 파업 중에 있다. 많은 공장 중에서, 아테네의 알루미늄 공장, 아티키(Attiki)와 라리사 (Larissa)의 유가공 공장, 아티키의 제약 공장, 150일째 파업 중인 엘리니키 찰리보어지아 (Elliniki Chalivourgia) 금속 공장이 있다. 이것은 광범위한 목록이 아니라 지난 몇 개월 이후로 강조되는 파업이며, 다수 공장에서 발생한 새로운 투쟁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도시에서의 저항운동들이 있었다.


    그리스 거리는 거대한 격변의 현장이 지속되고 있었다. 2월 달에 격렬한 충돌은 48시간 총파업으로 나타났다. 공공건물 혹은 권력과 억압의 상징, 바리케이드에 대한 공격들, 경찰과 극도로 격렬한 대립 (…) 몇 시간 동안 아테네 도심을 뒤흔들었고 바로 그 다음 날까지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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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적 총회들 (Popular assemblies)"이 다양한 지역과 공동체들에서 또한 창출되면서, 집단적 행동 의지뿐만 아니라, 지배적 사회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의문을 나타내는 분명한 조짐들이 존재했다.

     

    이 특징들은 스페인에서도 또한 볼 수 있었다. 총파업은 지난 3월 29일에 시작됐다. 바르셀로나에서, 시위대는 체제를 폐쇄시키기 위한 행동으로 이어졌고, 명품상가에 집중하면서, 상품 사회(슈퍼마켓과 은행)를 상징하는 기관을 강탈하고 태업을 동시에 수반했다. 이 시위는 약 275,000명을 집결시켰고, 그리스에서처럼, 대규모 도시폭동뿐만 아니라, 무수한 반(反)자본주의 슬로건으로 나타났다. 지역 총회들 또한 다시 동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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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일반적으로, 스페인 상황은 여전히 폭발적이다! 가을에는 교직원들의 시위가 있었다. 지난겨울 내내, 발렌시아에서는 고등학교에서 단순한 난방 부족 때문에 촉발된 수천수만 명의 학생들 시위가 있었다. '임금노동자-시민들'시위는 보건의료분야와 병원 사유화에 대한 대폭적인 감축에 대응해서 폭발했다. 마드리드에서, 행동은 지난 1월 이후 지하철 시스템에 대응해서 발생했다. 특정한 선로를 저지하는 통합된 행동들, 치솟는 요금에 맞서 집단적인 무임승차 저항이 계속되었다. 집단적인 행위(TM)들이 각각 다른 운동들을 조직하면서 창출되었다. 카탈로니아 지역에서, 고속도로는 지불거부가 행동의 목표가 되었고, 흥미로운 사실은, CCOO 노동조합이 (스페인 노동자위원회, 스페인 통합좌파 경향 노조-옮긴이) 이 운동에 난색을 표명하면서 경찰보호인원을 요청했다.

     

    '분노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만약에 그들의 동력이 지난겨울에 약화되더라도, 그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운동의 일부는 기타 여러 가지 잡지 중에서 자본주의의 종식을 요구하며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Rebelaos"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이 잡지는, 자기-조직화와 같은, 구체적인 행동이 자본주의를 종식시킨다고 외치지만, 현재까지 우리는 그것에 대해 더 엄밀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여기에, 또한, 전망과 관련해서, 정치적 사회적 관계들과 계급행동에 관한 토론그룹들이 섞여있었다.

     

    이 맥락에서 우리는 또한 지난 봄 무임승차행동을 둘러싼 뉴욕 지하철 노동자들의 토론을 고려할 수 있다. 무임승차 의미에 관한 논쟁은 혁명적인 환경에서 일어났다. 행동이 용인되는지 아니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용인되지 않는지는 잘못된 논쟁으로 보일 수 있다. 어떤 것이 중요한 것인지 운동 속에 내포된 역동성을 이해하는 것이며, 반대하는 시도가 어떤 행동인지, 심지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기능에 대한 법률이냐 기본 원칙 같은 질문을 원하는 것인지 알아야한다. 행동의 역동성에 관한 질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의 내용이 아닌 형식만을 볼 뿐이다. 한 예를 들면, 자본주의 상거래 관례는 간혹 무료상품 배분을 포함한다. (“3개를 구매하시면 하나를 더 드립니다.”, '어떤 상품을 구매하시면 휴대폰을 무료로 구할 수 있습니다…….'등등) 그러나 “무료”는 상품의 내용에 의존하면서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다. 폭동과 약탈에서 보이는 상품의 재분배, 혹은 노동자 투쟁이 한창일 때 운송 노동자들이 결정한 요금철폐행동. 두 번째 사례는, 사회질서 그 자체, 혹은 가치법칙, 그것들에 의문을 제기 하는 것이다. 마드리드의 조직된 운송수단을 “무료”로 접근하는 행동에서, 또는 뉴욕에서 발생했던 토론에서 쟁점이 바로 그것이다. 비록 혼란과 환상이 가득 차 있을지라도……. 그것은 촉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었다.

    같은 태도로, 우리는 킬키스(Kilkis)에서 한 그리스 병원이 자주관리 결정을 한 후에 점거행동은 한 예를 들 수 있다. 우리는 이미 'Rebelaos' 잡지를 언급했고 자본주의를 종식시키는 잡지의 구체적 조치를 요구했다. 우리는 이 자기-조직화에서 70년대에 무엇이 발생했는지 알 수 없고, 차라리 노동계급이 근본적인 사회관계를 현재 의문시하는 필수요소로 이해한다. 따라서 그 그리스 병원 노동자들의 점거와“자주관리”결정은 그리스 경제위기에 대한 전반적인 맥락을 고려하면서 전체주의 그리스 국가로 향하는‘그들의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응답이 필요했다. 반면에 우리는 자주관리 환상과 난관을 경고하면서, 자본주의 사회관계 토대를 잠재적으로 의문시하는 역동성을 또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점거'운동과 '분노한 사람들'운동은 지난 가을 미국과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 운동들은 겨울 동안에 위축되거나 사라지기조차 했다. 이 운동들은 자본주의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질서에 대한 도전을 포함했다. 경제를 불황과 대량실업으로 곤두박질시키는 긴축정책의 쓰나미 도래는 단지 '좌파'“우파"통치 형식의 생각을 넘어 사회적 저항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이러한 운동들에서 '분노한 사람들', '점거'그리고 특유한 계급 행동 사이에 연관성을 목격했다. 따라서 '점거'운동은 워싱턴 주 롱뷰 항만시설에서 발생한 파업을 지지했다. 또한, 다른 사례로, 중국에서 발생한 파업들이 지속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지난 1월부터 청두 시 철강공장은 10,000명의 노동자들이 임금인상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다. 판강(攀鋼)그룹 산하 청두 철강공장은 지난 1월 6일부터 파업이 진행 됐는데, '점거'진영에 청두파업 문제가 또한 떠올랐다. (경찰이 점거운동 진영을 즉각적으로 난폭하게 해산시켰지만) 이것은 계급행동과 연결된 "분노한 사람들”,"점거”,"아랍의 봄"으로 대표하는 운동들이 자본주의 사회관계를 의문시하는 세계적 운동의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것은 이 모든 운동들의 근본적인 약점이었다. 자본주의 정상적인 기능을 부수고 의문시하는 역동성만으로는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미래 전망을 필연적으로 이끌 수 없었다. 이러한 자본주의 단절이나 파괴 대신에, 당시에 떠올랐던 것은 더 많은 “민주주의”라는 개량주의 요구였다.

     

    그리고 정확히 "아랍의 봄"은, 어떻게 되었는가?

     

    두 가지 모순적 요소가 강조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공개된 선거 '민주주의적' 과정을 본다. 일부 정부에서, 지배계급 이슬람주의 파벌은 성공했다. 이것은 운동 안에 어떤 식의 내포된 역동성의 분열이 대단히 강력해지는지를 다시금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상기해야 할 것은, 진정한 도전은 부르주아 정부 내 정점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두 적대적인 계급사이 대립에서 찾는 것이다. 부상하는 이슬람주의 파벌 권력은 지배적인 제국주의 권력과 더욱 연결된 파벌과는 대조적으로 '정체성'에 근거한 정당 변화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최근 프랑스 선거에서 극우세력 부상에서, 그리스와 여타 유럽 국가에서 선거가 극우세력의 중요한 돌파구로 관찰되면서, 고립주의로 기운 징후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정치의식 발전이 지배계급이 (물론!) 장악한 상황에서 발생하고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을 느끼게 만드는 것을 안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극우파 파벌들, 민족주의 경향과 인종 증오를 자극하는 행동 발전의 요지를 이해해야만 한다.

     

    이러한 우익, '포퓰리즘적' 파벌들 모두는, 기본적으로 경제위기 없이 살았던 "좋았던 옛 시절”로 돌아가려는 의지로 특징지어진다. 모든 것이 적법한 자리에 있었던 때, 공장에 노동자가 있고, 농지에 농민들이 있었을 때……. 우리는 프랑스 극우파 담론 요구를 듣는다. “우리의 뿌리”로 돌아가자. 우리의 옛 화폐 프랑(!)을 다시 찾자. 상품, 이주노동자와 만연한 지방색을 없애는 (de-localization), 불안정한 지구화 효과에서 벗어나, 우리 국경 안에 머물자.    


    다른 한편,"아랍의 봄”으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이슬람주의자 돌파구에 자격을 주어야 한다. 요컨대, 이집트 프롤레타리아트의 중요한 일원들이 이집트 선거과정을 와해시켰고 카이로에서는 반대파와 "이슬람 형제단"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다시, 지난 봄 격렬한 대립 이후 생겨난 "반대파의 역동성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문제다. 그러나 이 시위대에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역동적 도전의 발전은 정치의식 발전에 달려있고, 정치의식 발전은 두 적대적인 계급의 일상생활에 침투해야 한다. “그들이 우리의 혁명을 훔쳤다”는 슬로건은 선거과정과 군사력 본질인 제막식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권력을 지배계급에게 위임한다는 것은 운동 속에 내포된 모든 잠재력을 완전히 빼앗기는 것이다. 이것은 교도관이 도망가려는 죄수에게 열쇠를 돌려주는 것과 같다.

     

    또 다른 수준에서, 시리아도 독재자 아사드(Assad)에 도전하는 “아랍의 봄” 형태와 같은 바람을 경험했다. 그러나 시리아에서도 지난 수년 동안 많은 도시에서 계급투쟁 운동이 있었다. 또한 조정위원회가 노동자 억압에 맞서 투쟁과 자기방어를 조직하기 위해 창출되었다. 패배주의적 행동 운동은 군인들을 설득하려고 파업참가자를 버리거나 파업참가들과 친하게 지낸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계급운동이 존재한다면 계급운동 또한 지배계급의 두 경쟁적 씨족-"아사드 씨족"과 그의 반대파– 이 벌이는 피로 얼룩진 투쟁으로 뒤섞일 것이다. 여기서, 위험은 계급운동이 흑사병과 콜레라 사이에 잘못된 선택으로 희석될 정도로 커진다. 동일한 착취 계급의 하나 혹은 그 이상의 파벌에 굴복하면서…….


    개괄 

     

    다양한 사회운동들이 전(全)세계를 통해 분출하고 있고 우리는 완벽한 조사를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수업료 인상에 맞서 파업 중인 스페인과 캐나다 퀘벡 학생투쟁을 언급하지 않고 이 기고문을 끝낼 수 없다. 퀘벡의 상황은 주목할 만하다. 왜냐하면 여름방학까지 지속된 파업운동은 인구의 폭넓은 부분이 활발히 참여하는 운동과 지지를 낳았지만 (주전자와 냄비를 탕탕 치며 진행한 “캐서롤”casseroles 운동), 경찰과 수많은 대립 때문에 중단됐다.


    현재, 이 운동은 유예되고 수업료 인상 계획 반대는 일부가 되었는데,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운동의 미래는 자본주의의 경제 논리를 거부하면서 그들 자신이 나오기보다 타협과 개량을 호소하면서 위기에 처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임금인상을 위한 격렬한 충돌도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동일한 요구를 하는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운동과도 연결된다. 인도네시아, 중국은 값싼 노동 공급자에 속한다. 지배계급이 임금인상 압박을 받는 사실은 경제 (특히 중국 경제의 원동력)를 위험하게 할 수도 있다!
    또한 아르헨티나 트렐레우 (Trelew)에서 펼쳐진 운동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 운동은 바로 아르헨티나 국가 토대를 위협했던 초기 피케테로스(피켓을 든 사람들)를 상기시킨다. 분명히, 그러한 운동들은 더 많은 것을 남겼다.

     

    이 모든 운동에 직면하면서, 지배계급의 반응은 갈수록 더 단호해졌다. 우리는 앞서 2011년 여름 런던 폭동에 직면해서 경찰의 폭력적인 대응과 즉결 심판을 강조한 바 있다. 연금 "개혁"(Sic.)에 항의하는 시위대들에 맞서 아르헨티나 경찰이 공격을 가하면서 격렬한 충돌이 있었고 수많은 부상자들이 생겼다. 칠레에서는 교육체계에 맞선 약 10만 명의 항의 시위가 격렬한 대립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두말할 나위 없이, 우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마리카나 (Marikana) 광부 파업에 주목해야 한다. 더 높은 임금을 위한 노동자 투쟁은 광부 34명의 죽음을 초래했다. 이 폭력적인 경찰 대응은 ANC 정부 전체의 반응이다. 그리고 만약 무엇인가가 여전히 필요하다면, 자본주의 세계에서, 이것은 단지 근본적인 두 적대적인 계급을 상기시킨다. 프롤레타리아트와 자본가 계급. 지배계급 (자유주의자, '좌파',‘우파’,'포퓰리즘'혹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반(反)-인종차별정책”)의 서로 다른 분파들이 취한 형태가 무엇이든지, 이해관계는 여전히 똑같이 남아있다. 자본가 계급은 심화되는 세계 경제위기에 직면하면서 끊임없이 프롤레타리아트 착취 강화를 이끌고, 착취 형태에 도전하는 어떠한 불가피한 수단들에 의해서 파괴된다. ANC 정부는, 경찰의 폭력적인 대응과 역시“정의”라는 폭력적인 양식을 통해, 자본가 계급의 완벽한 멤버십을 명백히 입증했다. 우리가 이 기고문을 쓰는 바로 지금 마리카나에서 시작된 운동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다른 광산들로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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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전(全)세계 도처에서 진행되는 반대운동 검토는 현재 상황의 복잡성을 반영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제출한 전망에 대해 존재하는 의문과 세계 인구의 커다란 지역이 갈수록 더 꼼짝도 못하는 교착상태를 강조한 바 있다.

     

    이 문제제기는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계급투쟁에 더하여 "아랍의 봄”,"분노한 사람들”과 "점거"운동 폭발에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정치적으로 의식적인 프롤레타리아가 수행한 근본적인 역할을 볼 수 있었고, 삶과 노동의 조건에 맞선 저항만으로는 세계를 변혁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착취상태의 뿌리를 인지하는 능력, 집단적 반대 역동성을 사회적 이행으로 탈바꿈시키려는 능력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의식적인 행동에 달려 있다.

     

    다른 한편, 사실 이것은 현재 상황에서 약점이다. 세계적으로 나타났던 커다란 활기찬 논쟁은 앞선 투쟁 경험에 영양분을 공급하는데 기여했지만, 자본의 기능에 역동적인 단절을 표시하는 행동을 지속시키기 위한 방법을 아직 발견하지는 못했다. 현재 운동은 종종 자본의 더 인도적이고, 더 민주적이고, 더 적은 부패, 지배와 같은 개량주의 요구들로 끝났다.

    어떤 점에서, 상황은 우리를 놀라게 하지 않는다. 결정론적인 혁명과정 전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러한 전망에 따르면, 착취 조건은 자동적으로 걷잡을 수 없는 계급 대립을 야기하며,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이끄는 것은 자동적으로 그 목적을 쟁취하게끔 한다. 국제주의전망은 상황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발전시키고 있다. 하나의 전망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가 계급이 일상적으로 길에 설치한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정치의식 토대를 인식하는 것이다. 의식을 통해서만 계급운동의 역동적인 파열을 자본주의 기능 논리와 결정적으로 단절하는 전망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 이러한 의식은 집단적인 행동 속에서, 지배계급과 공공연한 대립에서 발전될 수 있다. 그리고 집단행동에서 벼려진 주체의 구체적인 경험 전유(專有)가 의식의 발전을 이끈다.

     

    확실히, 이 기고문은 그것을 입증하고자 시도했고, 이 의식은 불균등하고, 모순적인 과정에서 발전한다. 의식은 세계의 다른 지역과 과거 투쟁 경험에서 커진다. 하지만 지배계급이 부과한 이데올로기적 영향력, 자본주의가 야기한 소외와 생산양식과 사회관계의 구체화에 대해 끊임없이 반대해야한다.

     

    따라서 우리의 임무는 환상과 두드러진 약점을 비교해서 보호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우리가 이 운동에서 발견했던 역동성을 긍정적으로 지지하면서, 발본적 변혁 (radical change) 전망을 명확히 하고 자리 잡는 것이다.

     

    <출처> Internationalist Perspective 57호, 2012 FALL/WINTER
    옮긴이|성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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