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남궁원 동지를 추억하는 시인의 일기 - 조성웅
  • 조회 수: 7359, 2013-08-29 12:41:03(2013-08-29)
  • 남궁원 동지를 추억하는 시인의 일기

    조성웅

     

     

     2013년 4월 16일
     

    "시 정말 좋다. 이제 시인 같다"

    어제 아침 시 낭송이 끝나자 남궁원 동지가 내 곁으로 와 해 준 말이다
    백 번 천 번 다시 낭송해줄 테니 어서어서 제발 깨어나기를...,

    <시> 저음의 저녁

    저음의 저녁이 오고 있었다

    야트막한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오래도록 걸었다

    저물녘 쪽이 온통 평평하다

    마당처럼 겸손해져라

    저렇게 아담하게 맞이할 준비를 하는 거다

    기다리는 것은 항상 뒤늦게 온다


    2013년 7월 4일

     

    아침부터 가랑비 내린다. 성승욱 동지의 문자, "7월 4일 새벽 00시 25분에 심정지로 운명하셨습니다." 먹먹해지다가 내 심장에도 가랑비…가랑비

    조금 더 늦게 문자를 받았으면 어땠을까? 엄마의 아침밥 상을 차리기 위해 아침 5시 30분에 알람을 맞춰 놓고 잠과 씨름하다 일어났는데… 녹두죽을 끓이면서 낭궁원 동지를 생각했다.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 눈 감고 있는 그의 귓가에서 난 그가 좋아했던 시를 낭송해줬다. 그러나 참 무심했던 사람

    어머니는 손발을 주무르며 '어여 일나야지 일나야지' 우시고, 아들내미는 '할머니 울지마' 위로하면서 처연하게 '아빠 어서 일어나'…그 간절한 마음에도 기척도 없이 참 무심했던 사람

    남궁원 동지는 내가 활동을 시작했던 1993년 민중정치연합 시절부터 날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난 그를 2004년 전노투 활동 기간에 처음 만났고 어떤 쟁점에 대해선 대립하기도 했었다.

    투쟁현장에서, 술자리에서 오가면서 만나는 사이였지만 각별하게 말을 섞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사고 난 아침, 내가 시 낭송을 마치자 곁에 와 "시 정말 좋다. 이제 시인 같다"고 했던 그 음성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

    이름 없이 한 명의 코뮤니스트가 사라지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다. 이름 없이 코뮤니즘을 살고 어디에도 자신의 권리를 의탁하지 않으며 모든 곳으로부터 독립해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거리에서 투쟁하다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코뮤니스트의 운명이기를 난 바란다. 오늘 아침 내 심장에 가랑비 내리는 건 살아 함께 이뤄야 할 세계가 남궁원 동지의 이름 만큼 멀어졌기 때문이다.

    미련도 집착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할 때,

    오늘 아침 난 다시 코뮤니스트의 운명을 생각한다

     

    2013년 7월 6일


    아침부터 날은 흐렸으나 어떠한 조짐도 일어나지 않았다

    때로 갈 길이 막막할 때도 있었으나 전생을 통해 찾아왔던 길

    한국 코뮤니즘의 길

    남궁원 동지의 몸은 저승으로 낡아갔으나

    그가 남긴 웃음은 혁명정당 강령의 첫 번째 문장 같았다

     
    한 문장 한 문장

    그대 내 삶 속에 살아 다시 돌아오리니!

    코뮤니스트 혁명가 남궁원 동지

    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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