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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3호] 운동과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 이정인
  • 조회 수: 6387, 2013-10-04 13:34:48(201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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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과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1)

     

     

    사회주의노동자신문이정인

     

     

     [편집자 주1]

    편   이 기사는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이 주최한 [조직 내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회]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에 사회주의노동자신문의 양해를 얻어 코뮤니스트에도 게재한다.

              기사의 관점은 코뮤니스트의 입장과 다를수 있다. 사회주의노동자신문의 focus (2013.7.29.)에 게재된 글이다.

     

     

     

    지난 6월1일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주최로 조직 내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사노위 분열, 통진당 사태 등에서 나타났듯이 한국의 운동진영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사고는 최근까지도 지극히 편의적이고 도구적인 경우가 많았다. 

    운동진영에서는 대개 기본적인 민주주의 원리들을 부르주아민주주의라고 불신하고 이를 대체하는 개념으로 노동자민주주의 혹은 민주집중제를 자신들의 조직원리라고 표현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하지만 민주집중제에 대한 강조는 흔히 중앙의 과도한 권력, 소수의 독재, 반대파에 대한 억압으로 귀결되곤 했다. 

    운동진영이 그동안 사회의 민주화를 주장하면서도 내부에서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해왔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 토론회는 민주주의에 대한 피상적인 토론에서 벗어나 조직 내 민주주의와 민주집중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집중의 논리로 변질된 민주집중제


    민주집중제를 조직원리로 내세운 운동단체들은 많은 경우 조직의 통일성, 혹은 지도부의 지도력에 대한 이의제기에 대해 조직의 절차를 내세워 폭력적으로 억누르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는 특히 여성주의적인 문제제기에 대해 그랬던 사례가 많았다. 여성주의에 대한 동의성이 없다거나 하는 이유로 성폭력 가해자들을 감싸 안고 문제 제기를 외면해온 조직들은 <다함께> 같은 정치단체부터 민주노총, 전교조 같은 노조조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하지만 이런 양태는 비단 여성주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는다. 운동진영에서 민주집중제를 내세워 조직 내 이견을 억누르고 묵살하는 경우는 다른 예들에서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08년 기아화성비정규직지회 김수억 집행부는 정규직노조의 집요한 조직통합 공세에 결국 굴복하고 이를 통과시키기 위한 조합원 총회를 소집했다. 당시 이동우 부지회장과 조직국장 2인은 비정규직지회 집행부를 사퇴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입장에서 부결 선동에 나섰다. 이에 대해 김수억 집행부는 두 동지가 민주집중제의 원칙을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기아 사태 당시 비정규직지회 집행부의 입장을 지지하던 노동자정치협회(이하 ‘노정협’)에서도 이에 관련한 내부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은 이견을 제기한 소수파 동지들이 노정협에서 탈퇴하는 것으로 결과했는데, 내부 논쟁이 탈퇴로까지 이어진 이유는 다수파가 기관지인 <노동자정치신문>에 소수파의 이견을 게재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유사한 예가 2011년 사회주의노동자정당공동실천위원회(이하 ‘사노위’)에서 되풀이되었다. 사노위가 발행한 <사회주의 지금 여기에!>라는 선전용 소책자에 대해 당시 사노위 회원이던 임천용 활동가가 서울지역위원회가 발행하는 온라인 신문에 비판 기사를 싣자 사노위 지도부는 조직 내부의 혼란을 부추기고 조직 사업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기사의 삭제와 사과를 요구했다. 결국 이 사건은 소수파가 사노위에서 탈퇴하는 것으로 결과했다.


    민주집중제란 무엇인가


    모두 알다시피 민주집중제는 ‘민주주의적 중앙집권제’의 줄임말이다. 이 용어는 한국에서 흔히 중앙집권을 강조하는 용어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민주집중제라는 말이 나온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그것은 중앙집권에 대한 강조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강조였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 수 있다.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이하 ‘러시아사민당’) 건설 운동을 주도한 레닌을 비롯한 ‘이스크라 파’는 중앙집권을 매우 강조했다. 이러한 강조는 광활한 러시아 전역에 산개해 있는 각기 배경이 상이하고 자치적인 성격이 강한 지역서클들을 하나의 단일한 정당으로 묶어 세워야 했던 러시아 당 건설 과정의 특수함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이스크라 파’가 캠페인 한 강력한 중앙집권주의에 대한 반대는 사실상 첫 번째 당 대회였던 1903년 러시아사민당 2차 당 대회에서 심각하게 나타났다. 레닌의 주장들은 광범위한 반대 견해에 부딪쳤고 종국에는 ‘이스크라 파’ 자체가 분열하는 결과를 낳았다. 가장 강력한 반대파였던 유태인 동맹 분트가 자치권을 주장하다가 당 대회에서 퇴장하면서 레닌 지지자들은 간신히 다수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 반대파들은 이후 당 대회 결정에 따르지 않았다. 이에 레닌은 <일보전진 이보후퇴>라는 저작을 써서 당 대회 의사결정 과정을 세세하게 분석하면서 다수파(볼셰비키)의 합법성을 강조하고 당 대회 결정에 대해 소수파(멘셰비키)가 복종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 책에서 레닌은 소수파를 “귀족적 무정부주의자”라고 비판하면서 “조직된 당”이 가져야할 최소한의 원리로 당내에 지도적인 중앙기관의 형성, 다수자에 대한 소수자의 복종, 전체에 대한 부분의 복종, 상급기관에 대한 하급기관의 복종, 중앙권력의 지도 아래에서의 업무의 분업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당의 위계와 규율에 대한 레닌의 강조는 반대파 뿐 아니라 독일사민당에서 활동하던 폴란드 사회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의 비판을 받았다. 로자는 사회주의정당이 중앙집권제를 추구하는 것은 일반적인 경향이지만 레닌의 경우는 정도가 지나쳐 “창조성과 자발성을 질식시키기 쉬운 상하명령식 발상에 다름”아닌 “초중앙집권주의”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여기에 레닌은 자신이 어떤 새로운 원리를 창조하려 한 것이 아니라 매우 일반적인 조직원리를 적용하려 했을 뿐이라고 응수했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 저서(<일보전진, 이보후퇴>) 전체를 통하여 내가 옹호한 것은 어떠한 당 조직의 어떠한 체계에서도 적합한 초보적인 원칙이다.”

    사실 레닌이 제기한 여러 원리들은 당시 독일사민당이나 대다수의 정당에서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조직 원리들이었으므로 그의 답변은 확실히 일리가 있는 것이었다. 이는 지금까지 그를 “진짜” 초중앙집권주의자로 만들어온 한국의 많은 운동집단들이 잘못됐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레닌이 유럽 사민당들에 비해 상급기관에 대한 하급기관의 복종을 매우 강하게 강조했던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민주집중제와 러시아 당건설 운동의 특수성


    레닌이 제기한 중앙집권주의가 그의 주장대로 유럽사민당들의 운영원리와 특별히 다른 것이 없었다면 왜 굳이 ‘민주집중제’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해야 했는가? 이는 러시아사민당에서 실제로 민주주의 원리들이 많은 부분 제약을 받아왔기 때문이었다. 레닌은 당의 완전한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경제주의자들과 논쟁 속에서 민주주의가 온전하게 실현되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공개제와 선출제가 시행되어야 하는데 당시 러시아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공개제라는 것은 당내 벌어지는 모든 활동과 논쟁이 당 내외에 공개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선출제는 말 그대로 당의 모든 기관은 아래로부터 선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1905년 이전까지 거의 정치적 자유가 허락되지 않던 러시아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이런 상황 때문에 1905년 혁명 이전까지 러시아사민당에서는 상급기관에서 하급기관을 임명하거나 기관에서 성원을 자기 충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레닌은 대신 보완책으로 소수파의 의견에 대한 출판의 자유를 보장하고 완전하진 않지만 “광범위한” 공개제를 채택할 것을 주장했다. 비합법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당 대회 의사록이 비록 해외에서였지만 공개발간된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물론 대회의 구체적인 장소, 일시, 참가자들의 신상은 공개되지 않았다.) 현실의 한계가 있지만 부분적으로라도 민주주의 원리들을 관철시키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러시아 2월 혁명은 우리나라의 1987년 6월 혁명처럼 부분적인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귀결되었다. 어느 정도의 정치적 자유가 보장된 듯 보였고, 이를 계기로 레닌은 중앙집권제의 기초 위에 그동안 제한적으로 적용되어온 민주주의 원리들을 크게 확대해서 실시하려 했다. 즉, 당의 하부에서 상부까지 광범위한 선출제를 실시하고 선출된 기관들에게는 자신의 활동에 대해 당원들에 보고하는 엄격한 의무를 지우며 상급기관은 임기 중이라도 경질될 수 있게 하는 조치들이 공개제의 더 넓은 확대와 함께 도입되었다. 

    중앙집권주의에 민주주의라는 말이 더해져서 민주집중제라는 새로운 조어가 등장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 따라서 민주집중제라는 것은 사실상 다수결, 대의제, 상임기관에 권력의 위임, 중앙의 경질가능성 등 일반적인 부르주아민주주의 기구들에서 시행되는 조직원리와 별 다를 것이 없는 것이었다. 


     

    민주집중제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조직원리인가


    때문에 우리가 사회주의를 민주주의의 전면적인 실현으로 볼 때, 의사결정 모델로서 민주집중제는 역시 한계가 많은 조직원리이다.

    1921년 3월에 열린 소련공산당 10차 대회는 신경제정책과 분파금지 조치가 통과된 대회로 유명하다. 그러나 분파금지 조치와 함께 노동자민주주의가 강조된 결의가 통과되었다는 것은 대개 망각되고 있다. 이 대회에서 통과된 <당 건설 문제에 대해여>라는 결의는 “혁명의 모든 단계에서 통용되는 절대적으로 올바른 조직형태”는 없다는 선언으로 시작해서 전시공산주의 시대에 도입된 군사화된 당 조직 형태가 불러일으킨 폐해를 해소하기 위해 노동자민주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당 조직형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결의에서 노동자민주주의의 원리로 거론된 것은 기존의 민주집중제의 원리들에 “당원 전체”에 의한 의사 형성과 문제해결이라는 원칙, 중요한 모든 문제에 대한 광범위한 토론, 비판의 “완전한” 자유를 추가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결의는 분파금지가 일시적인 조치일 뿐이며 민주집중제 역시 절대적인 당의 조직원리는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반면 스탈린 시대에 들어서 민주집중제는 당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절대적인 조직원리로 변질되고 나아가 모든 조직에 일반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보편 원리로 확대되었다. 그로부터 민주집중제는 당뿐 아니라 소비에트와 노조 등 대중조직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보편적인 조직원리로 인식되었다. 한국에서도 노조나 학생회 같은 대중조직이 민주집중제를 기본 조직원리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스탈린주의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민주집중제는 높은 정치의식을 갖고 있다고 상정된 당원들을 전제로 하고 있는 조직원리이다. 즉, 적극적으로 당의 정보를 알려하고 자발적으로 토론에 참여하는 성원들을 전제한 개념인 것이다. 하지만 조직 구성원들의 의식 편차가 큰 대중조직에서 민주집중제는 관료주의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중조직에서는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에서 흔히 보듯이 중요한 결정이 대의기구가 아니라 집행기구로 편의적으로 위임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조합주의자들과 관료들이 하급기관의 상급기관에 대한 복종 같은 원리를 절대화해서 투쟁을 억압하고 가로막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흔히 한국 노동운동의 빛나는 전통이라고 칭송되는 총회민주주의는 민주집중제와 대립되는 것이었다. 과거 민주노조운동 초창기에는 조합원의 의사에 거슬러 체결권을 행사한 노조 위원장을 조합원 총회에서 곧바로 소환하고 그 자리에서 새롭게 지도부를 선출하곤 했다. 이런 총회민주주의의 전통은 선출된 교섭권자에 대한 권력 위임을 부정하는 직접민주주의의 형태를 띠었다. 민주집중제의 핵심원리 중 하나가 권력의 위임이라는 점에서 볼 때 총회민주주의는 민주집중제와 상충되는 개념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대중조직의 지향점이 민주집중제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소비에트, 노조, 학생회와 같은 대중조직은 최대한 직접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 맞다. 민주집중제가 주장하는 상임기구로 권력의 위임은 현실적 한계로 말미암은 것일 뿐이며, 현실을 고려하면서도 그것을 절대화 하지 않고 대중조직 속에서 지속적으로 직접민주주의 요소들을 관철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사회주의정치조직과 민주집중제


    그렇다면 당이나 정치조직에서는 어떠한가? 민주집중제를 마치 일반적인 민주주의와 별개의 특수한 조직원리인 것처럼 강조하는 해석들은 정치조직에서도 민주주의를 침해할 때가 많았다. 요즘에도 운동조직에서는 절차민주주의를 부르주아민주주의라고 하여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비밀투표의 원리가 부정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표자들이 투표권을 위임받은 간선제나 대의기관에서 투표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회원총회와 같은 평의회 구조에서 공개투표는 개인의 입장 표명을 어렵게 만든다.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에서는 모두가 대등한 주체라는 관념은 허구적일 때가 많다. 어떤 조직에서나 개인들 사이에 권위와 권력의 차이가 있게 마련이며 이에 따른 권력관계와 진영논리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공개투표는 타인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자기 의사와 다른 결정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일반 당원이나 회원이 조직 앞에 개인으로, 진정으로 대등한 주체로 서기 위해서는 비밀투표와 같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수용해야 한다. 노동자민주주의는 부르주아민주주의가 이룩한 성과 위에서 그 형식적인 절차주의를 뛰어넘는 실질적이고 고도의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으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지 그것들을 그냥 부정한다고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민주집중제를 집중과 통일을 강조하는 조직원리로 이해하는 해석은 여전히 분파금지를 민주집중제 조직의 중요한 원리로 보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은 대개 분파를 일반적인 반대파와 동일시하는 매우 경직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분파(fraction)란 독자적인 정강과 행동원리를 가진 조직 내 조직에 한정되는 개념이다. 때문에 레닌 역시 반대파의 존재는 당연한 것이며 조직의 건강성의 표출이라고 생각했지만 분파에 대해서는 당의 통일성을 근간에서 뒤흔드는 것으로 보고 경계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1921년까지 러시아사민당이 분파를 금지시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분파는 금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견그룹의 출판물 발행의 보장, 공개적 선동의 보장 등 당내 민주주의를 더욱 적극적으로 실현함을 통해 끊임없이 조류(일반적인 의견그룹)화 시켜야 할 것으로 인식되었다. 사실 1912년 프라하 당 협의회에서 자신을 독자적인 당으로 선언할 때까지 볼셰비키 자체가 러시아사민당의 분파였던 것이다. 

    분파금지는 크론슈타트 반란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내려진 임시 조치였을 뿐이다. 당내 소통과 민주주의가 제약될 때 반대파 혹은 소수파가 자신의 견해를 관철할 수단 중의 하나로 분파를 형성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로 보장되어야 한다. 


     

    민주집중제를 넘어서


    민주집중제의 여러 전제들이 오히려 해악을 가져오고 있는 현실에서 그 올바른 이해뿐 아니라 과감히 넘어서려는 시도도 필요하다. 민주집중제는 보통 “토론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이라는 슬로건으로 요약된다. 

    레닌이 제시한 기준은 당이 어떤 입장으로 캠페인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결정된 이후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토론의 자유와 이견을 공개적으로 표현할 권리가 있지만 일단 캠페인이 시작되면 통일된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준도 애매하며 실제로는 개인이나 소수파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억누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아주 노골적인 이적행위가 아닌 이상 캠페인 기간에도 이견자들의 활동이 전면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볼셰비키 역사를 레닌의 저작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제 역사로서 살펴본다면 그런 행동들에 대한 제재가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시월 혁명 당시 지노비예프, 카메네프는 봉기 계획을 공개하는 명확한 이적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에서 제명되지 않았다. 조그만 이견과 실천의 차이를 가지고 제명이나 축출을 반복해온 우리 조직운동의 역사를 생각하면 놀랄 만큼 관대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레닌의 주장처럼 민주집중제는 지금 사회에서 불가피한 일반적인 조직원리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다수결과 권력 위임은 상시적으로 조직 구성원 전부가 모여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강제되는 방식이다. 때문에 오히려 정치의식이 높은 활동가들의 결사체로서 정치조직은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하되 가능한 한에서 더욱 과감하게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

    형식 절차나 일회성 투표행위보다 다양한 공식·비공식 통로를 통해 조직 내외 소통을 활성화시키는 노력, 직접민주주의를 바로 구현할 수는 없다 해도 의사결정구조에서 아래로부터의 의견이 직접 관철되는 구조, 예를 들어 상시 소환, 상시 선거, 선출자에 대한 상시 통제 등 적극적인 고민과 다양한 시도들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들은 규약·규정 놀음을 넘어 조직 전체의 성실하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수 활동가에 대한 개인적 충성이나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흔히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은 대개 유능한 몇 사람에게 일이 몰리다가 그것이 그대로 권력으로 고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의식적인 활동가들의 결사체인 정치조직에서는 선출제를 넘어 추첨을 통한 직무 순환 같은 직접민주주의제도를 부분적으로 도입해 보는 것도 고려해볼만한 일이다.



    서클주의와 폐쇄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실 한국에서는 민주집중제가 제대로 시행된 적이 없다. 노정협과 사노위의 예에서 나타나듯이 민주집중제의 기본적인 운영원리들마저 이해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적용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 조직운동에서는 보안을 강조하면서 내부 논쟁이나 문제의 공개를 막은 적이 많았다. 이건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닌데 최근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성폭력 사건에 관련해서 회원들이 SNS를 통해 논의했다는 이유로 제명조치를 내렸다. 이런 행위들은 조직을 더욱 폐쇄적으로 만들 뿐이다. 

    자족적인 서클이 아니라 공조직이라면 조직 내의 모든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내부 논쟁을 공개적인 논쟁으로 이끌어야 한다. 예컨대 <일보전진 이보후퇴>는 당 대회 전 과정을 세세하게 공개했는데, 이런 일은 소위 한국 운동권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운동진영이 폐쇄적인 서클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엄존하고 언젠가 국가 탄압의 최전선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사회주의 조직에서 보안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며, 지난 몇 년 동안 과거 비합법 시대의 역편향으로 무조건 공개를 지향했던 흐름들은 교정되는 것이 마땅하다. 실질적인 보안대책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 무시된 무조건 공개가 선(善)이라는 노선으로의 갑작스런 전환은 불필요하게 조직성원의 신상을 노출시키거나 경찰의 수사에 대한 대응에 있어 진술거부 같은 중대한 원칙을 무시하는 행위로 귀결되었다. 

    이런 일들은 결국 다수 조직성원들의 일상에 피해를 주는 것으로 결과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현실의 탄압을 방어하기 위한 보안대책과 민주주의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이 보호되어야 개인의 의사가 온전히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운동진영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보안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집중과 통일이 강조되며 조직 내부의 이견이 밖으로 공개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고, 강철같이 통일된 조직이 가장 우월한 조직이라는 관념 속에 조직 내 민주주의는 성장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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