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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3호] 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 : 배신자들의 비난 2
  • 조회 수: 9057, 2014-05-04 23:57:29(2014-05-04)
  • 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 : 배신자들의 비난

     

     

     

    I. 1920년 역사적 드라마의 배경
    II. 러시아, 또는 인류의 역사
    III. 볼셰비즘의 토대 : 중앙집중화와 규율
    IV. 볼셰비즘의 역사적 궤적
    V. 반-볼셰비즘의 두 운동: 개량주의와 아나키즘에 대한 투쟁
    VI. 레닌이 한 것으로 주장되는 '타협안에 대한 승인'의 핵심
    VII. 이탈리아의 문제에 대한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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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 러시아, 또는 인류의 역사

     

    러시아 혁명과 세계 혁명


     우리는 레닌의 정연한 저작들을 이해함으로써 현재 유일하게 맑스주의에 충실한 좌익 공산주의에 적대적으로 그것을 인용하는 모든 이들이 정말 그 저작의 첫 페이지를 읽었는지 의심할 것이다. 그 저작은 ‘긴급한’ 필요에 의한 2차 세계대회의 테제의 이론적 합의안의 전조가 되었으며, 2판 부제는 맑즈주의의 전략과 전술에 대한 대중 담론 에세이(이 ‘대중 담론’의 부제는 저자의 겸손함으로 인해 고전적 제국주의로 부쳐왔다)이다.
     첫째 장은 스탈린주의 추행의 위대한 업적들을 파괴하는데 충분하다. 왜냐하면, 스탈린주의의 반혁명적 결과는 1914년의 훨씬 더 불명예스런 사회-애국주의자들이 한 짓보다 더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국사회주의라는 비열한 '이론'이다. 그동안 스탈린-후르시쵸프주의 신문과 볼셰비키 공산당 역사에 대해 ‘수정된’ 단기과정은 그 이론이 레닌에 기초한다고 여전히 계속 떠들어댄다!
     제2인터내셔널의 우익 사회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완전한 날조까지 해 왔다. 다음은 '단결! (Unitā)'의 1960년 8월 31일에 실린 글이다.

     

    좌익주의자들'은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은 오직 세계 사회주의 혁명의 지원이 있을 때에만 방어할 수 있다는 잘못된 가정으로부터, '세계 제국주의에 맞서는 전쟁을 통해 다른 나라의 혁명을 고무시키는 것이 소비에트 권력의 첫 번째 책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이것은 좌익에 대한 첫 번째 날조다. 좌익은 러시아 바깥의 혁명을 인터내셔널의 코뮤니스트 활동을 통해 고무시키길 바랐지, 러시아 국가의 전쟁을 통한 방법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발상은 초기 '스탈린주의'를 특징지으며, 좀 더 근대적인 ‘스탈린주의’나 악명높은 후르시쵸프주의와는 구분된다.
     

    그러나 거대한 날조가 레닌의 이름으로 이뤄진다!

     

    '이 국제 혁명을 '고무시키는' 이론은 맑스주의 - 맑스주의에 따르면 혁명의 발전은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의 계급투쟁의 성숙에 달려 있다 - 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레닌이 증명했다'고 새로운 책자는 지적한다. '사실 이는 레닌주의의 '평화 공존' 개념의 가정 중의 하나이다.'

     

     새로운 책자는 트로츠키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당시 레닌을 죽이려 했다는 음모와 같은 날조와 상관없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지만, 여전히 트로츠키가 레닌의 정책을 따르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자를 따르는 이들에게 맑스-레닌주의는 혁명의 잠재기에 필요한 이론임에 틀림없다.
     첫 번째 장이 러시아 혁명의 국제적 중요성을 다뤘음을 상기해보자. 러시아 혁명의 성격이 보편적이며 국제적으로 중요하다는 레닌의 명백한 정의를 다시 한 번 읽은 이라면, 후르시쵸프나 톨리아티(Togliatti)와 같은 오늘날 레닌주의자들의 공식적인 테제를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20차 러시아 당 대회 이후, 이 작자들이 각 국가들은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국가 나름의 길'이 있으며, 따라서 그 길은 상황에 따라 러시아의 길과 다소 다를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런 조작된 주장에 따르면, 대체 다른 모든 혁명 속에서 러시아 혁명의 어떤 성격이, 레닌의 용어로, 본질적이지 않은가? 그들은 그것을 신비화하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소비에트 체계, 혁명적 테러리즘, 그리고 왜 아니겠는가, 봉기 폭력들이 모두 러시아만의 우연적이고 우발적인 것들이란다. 의회(제헌의회)의 파괴 자체가 러시아 혁명의 특색이 될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모든 나라에서 일어나길 기다렸던, 그리고 진정한 레닌과 원칙적인 측면에서 함께 열광하고 이의 없이 동의하며 기뻐 날뛰었던, 맑스주의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론의 첫 번째 성취는 그런 것이 아니다.

     


    다시 레닌을 읽자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권력을 획득하고 난 처음의 몇 달 동안(1917년 10월 25일 - 11월 7일), 후진적 러시아와 서구의 선진국 사이의 거대한 차이는 서구 선진국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우리의 혁명과 거의 비슷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게 했을 수 있다.'

     

     이것이 대중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한 번 더 지적할 필요는 있다. 레닌은 러시아 혁명을 세계 혁명과 비교하지 않는다. 그는 서유럽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1920년, 레닌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 누구나 둘 다 잘못되었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모든 영역에서 반대의 경향으로 생각하는 이들을 레닌주의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 아시아나 미국에서 혁명을 그리 기대하고 있지 않았지만, 러시아와 대서양 사이에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러시아 혁명이 역사적으로 항복하지 않으려면, 그런 조건이어야만 했다.


     왜 서유럽 혁명의 발전이 러시아의 것과 다른 것처럼 보이며,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러시아는 후진적이었고, 무엇보다도 정치적으로 그러했으며, 그것은 봉건적 전제정치로부터 겨우 몇 달 전에 벗어났기 때문이었고, 그러므로 그 혁명은 전제정치나 봉건주의를 몇 세기 전에 전복한, 프랑스나 영국의 그것과는 다를 수 있었다. 이러한 차이는 다른 실제 차이와 함께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한 기대가 자본주의가 완전히 발달한 국가들의 혁명이 더 명확하고, 단호하며, 압도적일 것이라는 기대와 비교하여 보다 덜 화려하고, 더욱 불확실하고, 망설여지게 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레닌 저작의 중심 가정인 프롤레타리아트와 당의 '남아있는 노동 인민'에 대한 헤게모니는 산업화된 서유럽에서 더욱 쉽고 완벽하리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역겨운 정도로는 제3인터내셔널의 시체로부터 일어난 것들 정도에만 비교되는 제2인터내셔널의 몇몇 속물들만이 그러한 우스꽝스런 일이 일어난 후에 프롤레타리아 테러, 독재, 의회의 파괴가 유럽적인 것이 아니라 '아시아적'인 성격이라고 넌지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기의 기회주의자들은 붉은 러시아를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에 그렇게 했고, 오늘날 더욱 역겨운 이들이 그들이 격찬하는 방식대로 모든 이들이 믿는 체하며 이를 반복한다.
     만일 러시아 혁명이 진실된 선거 시스템의 설립 몇 달 후에 의회를 없앴다면, 한 세기동안 의회가 있었던 나라들과의 차이는 무엇이었을 것 같은가? 오늘날 배신자들은 호색한의 얼굴을 하고 이러한 국가에서는 의회가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다고, 그러므로 러시아에서 일어난 일은 재미로, 부주의하게, 또는 위대한 블라디미르가 보드카에 취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넌지시 이야기한다.

     

     

    모든 혁명의 특징들
     

    볼셰비키 혁명은 시작될 때에는 사회적 상황과 역사적 상황들이 근본적으로 다양할 수 있지만, 그 본질적인 과정은 모든 지역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밝히기 위해 레닌은 글을 썼다. 그 과정이란 무엇인가? 이 저작 뿐만 아니라 가짜가 아닌 맑스-레닌주의적 저작들에 대한 철저한 연구로 우리는 그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다. 맑스-레닌주의를 포기한 이들과 함께, 누구든 40년 동안의 사건들이 역사가 거꾸로 흘렀다고 믿는 이는 그럴 것이라고 이해된다. 1920년,

     

    '우리는 이제 충분한 국제적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 경험은 우리 혁명의 어떤 근본적인 성격이 지역적이지도 않고, 특히 민족적이지도 않으며, 러시아만의 것이 아니라 국제적이라는 것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앞의 책, p.512)
     

    여기서 저자는 오해를 피하고자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여기서 나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국제적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혁명의 몇몇 특징 뿐만 아니라 모든 주요한 특징과 부차적인 특징이 모든 나라들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의미에서 국제적으로 중요하다. 나는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국제적인 타당성‘(이 단어는 '가치'라는 말로 번역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혁명이 국제적인 규모로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우리 혁명의 어떤 근본적인 특징들이 그런 중요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반드시 인정되어야 한다.'(앞의 책, 512쪽)

     

     확실히 그렇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그것은 정확히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대회에서 좌익의 테제였다. 레닌은 그것을 직후에 설명한다. 하지만 왜 일반적인 의미에서 모든 사건들이 세계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고, 엄밀한 의미에서 오직 몇몇이 그러한지, 맑스주의 혁명 강령이 되는지(또는 그렇게 승인되는지) 지적하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다. 제국 황실의 숙청은 국제적으로 가장 중요하며, 여전히 그에 대한 소음이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은 '어디서든 불가피하게 반복되는' 특징이 아니다. 황실이 없는 나라들에서 그것은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짜르의 후손들은 왕조의 계승권 때문에 살해되었다. 그런 계승권이 없는 곳에서 살해는 무익한 것이다.
     그러므로 러시아 바깥의 모든 혁명에서 엄밀한 의미에서 유의미한 특징들은 전부가 아니라 오직 몇몇이 될 것이다. 어떤 것들은 타당하지 않다. 어떤 것들이 그러하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글을 세심하게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며, 가장 중요한 구절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진실을 과장하고, 우리 혁명의 특정 근본적인 특징들을 넘어서까지 과장하는 것은 당연히 엄청난 오류일 것이다. 선진국 중 적어도 한 곳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 승리 직후 뚜렷한 변화, 즉 러시아가 더 이상 혁명의 모델이길 멈추고 (사회주의적 '소비에트' 안에서) 다시 후진국이 될 것이라는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사실을 놓치는 것 역시 오류가 될 것이다.‘(앞의 책, 512쪽)

     

     혁명이 곧 유럽으로 전파될 것이다 : 이것이 레닌주의의 중심 사상이다. 예를 들면 독일에서의 승리 이후, 러시아는 경제적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사회적 경로에서 독일식 구조가 저 뒤에 남겨놓은 후진국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레닌의 사상은 소비에트 독일, 또는 소비에트 유럽의 옆에서 사회주의 러시아가 낡은 경제로부터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단축시킬 수 있고, 그로부터 비록 국가의 형태를 띄더라도 사회주의로 나아간다는 아이디어로 완성된다.
     그런 견해는 레닌 이후 분별없이 유행했던 개념, 한 나라가 모델이 되는, 주도적인 나라의 사회주의라는 공허한 개념을 부정하는 것일 뿐이다. 모방할 만한 모델이라는 이론과 러시아가 혁명의 후방에 있다는 이론 사이에는 사회주의를 향한 변질된 국가의 길과 위에서 언급한 '우리 나라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국제적인 규모로 역사적으로 불가피하게 반복된다'는 강한 주장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과 같은 모순이 있다 :  러시아 모델 이론이 바로 오늘날 모방적인 공존(emulative coexistence)이라는 미신의 첫 번째 토대였다.
     1920년 러시아로 되돌아가 보면, 약속된 땅에 대한 묘사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이는 프롤레타리아 주인들 앞에서, 우리는 위대한 레닌의 겸손한 학생들로서 우리가 사회주의로의 길과 그것이 작동하는 바를 보았다는 믿음, 마치 그것이 아이들의 장난감이나 일종의 스푸트니크과 같이 발명되고, 만들어진 무언가인 것처럼 여기는 믿음과 단호하게 싸웠다.
     사회주의가 아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맑스주의자로서, 빛나는 인간의 메커니즘이 아직 그 구실을 하기 시작하기 전인 전세계와 러시아를 위해 사회주의가 어떤 길이 되어야 할지 알았고, 그것을 확신했다. 행진하는 혁명군은 흘륭했고, 굳건했으며 고통스러웠지만, 공산주의의 즐거움을 향한 길로 인정되었다. 모든 유럽의 프롤레타리아는, 그 자신과 러시아의 혁명군에게 자리를 비켜줘야만 했고, 그들은 오직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단 그들이 대륙의 모든 부르주아 국가들을 전복시킬 수만 있었다면.
     오늘날의 사악한 공존의 이론을 받아들이고 있는 반맑스주의자와 반레닌주의자의 입장은 모델 이론에 입각해 있다. 그람시는 이탈리아에서 10월 혁명에 대해 언급할 때 그러한 엄청난 오류를 다음과 같이 의인화했다. : '자본'에 반대하는 혁명. 역사유물론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아직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불가능하다. 만약 승리했다면, 이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명백하다. 경제적 결정주의와 유물론이 모두 틀렸다는 것이다. 대신 자발적 관념론이 진실이고 빛나는 것이다. 레닌은 역사를 창조하고,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모범이 되는 모델을 창조할 수 있었던, 따라서 대망의 유토피아를 만들어 낸 신화의 영웅이 된다. 순례자들은 예언자의 망토 끝자락에 키스하는 수 밖에 없다. 모델을 심사숙고하고 그 모습과 비밀을 기다리고 있는 서구의 대중들에게 이야기해주면, 그들은 그것을 흉내낸다.
     그러나 레닌은 메시아인 체 하지 않고 그 곳에 있다. 그래서 그가 더 겸손하며, 위대하다. 그는 맑스주의 유물론의 모든 측면에 대해 언급하고, 그가 살고 있는 역사에 대해 그의 변증법으로 가르치며, 그 모델을 비웃는다. 가엽게도 그 모델이 구식이 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고, 그는 그리 되리란 것을 믿고 바란다.
     레닌을 자본의 처형자라고 믿는 이들은 자신의 머리를 숙이고 빛을 향해 눈을 뜰 것이다. 그람시는 그의 초라한 육체적 힘이 그의 관점의 날카로움을 유지시켜 주는 한 실제로 그러했다.
     오늘날 블라디미르의 푸르게 빛나는 두 눈은 죽었지만, 그의 전형적인, 가차없는 논쟁의 힘과 전 세계가 기적적인 모방 덕에 공산주의로 변할 것이라는 몰상식한 해설을 혼동하는 것으로 충분한 어리석은 모방모델에 대한 레닌의 비판은 많은 것들 중에 우리가 남긴 것이다.

     

     

    러시아가 가르쳐 준 것

     

     그러므로 레닌주의의 견해에서 러시아 혁명은 세계에 사회주의의 구조를 보여주는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소 다른, 더욱 위대한 국제적인 기능, 혼자만의 수단과 군대로 모든 곳에 있는 자본과 그 패거리들의 권력을 전복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기능을 한다.
     그러한 가르침은 교의의 중요한 행간에 이미 있었지만, 역사 속에서 최초로 증명된 것이다.
     비록 그 시기에는 오늘날보다 상업 자본주의와 그것을 모방하는 가증스런 서구의 진정한 낙인에 의한 오염이 훨씬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러시아식 뼈대의 사진을 찍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러한 비유가 허용된다면, 혁명적 사건들을 영상으로 담아, 그로부터 소위 결정적인 순서로, 모든 유럽에 보편적으로 타당하도록 뽑아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 시기의 압도적인 열정에 활기없는 것이 아닌, 역동적인 모델이 등장하는 것이다. 넌더리나는 조리법이 아니라, 사회적 부활의 분출하는 불꽃으로서.
     

    그러므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지금, 모든(이것은 레닌의 강조다, 악당들아!) 나라에게 그들의 가까운, 피치못할 미래에 대한 무언가,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밝히는 것은 러시아 모델이다'(앞의 책, 512쪽)

     

     우리가 너무 긴 호흡으로 이야기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보여주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모델은 현재의 재생산에 대한 현재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오히려 필연적인 미래에 봉사할 과거로부터의 교훈으로 의미를 가진다.
     비록 인간은 순진하게 모방하는 동물이고, 1960년의 인간은 이에 대한 안타까운 증거이지만, 1920년, 우리는 과거로부터 미래로 도약하는 그러한 권력의 돌진 뿐만 아니라 위대한 혁명 이론의 무오류성에 대한 거대한 대중들의 믿음을 똑똑히 보았다.
     우리는 열정적이고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대지의 선진 노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종종 그들의 혁명적 계급 본능으로 이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파악해 왔다.'(앞의 책, 512쪽)

     

    문화도 아니고, 부르주아 학파의 가르침을 따라하는 것도 아닌, 본능!

     

     레닌은 우리에게 그의 뛰어난 연구의 과정에서 보편적인 혁명 전선의 다양한 필수불가결한 특징들에 대해 가르쳐줄 것이다.

     

    '여기 (엄밀한 의미에서의) 소비에트 권력, 볼셰비키 이론과 전술의 근본적인 지점들의 국제적인 '중요성'이 있다.'(앞의 책 512쪽)'

     

     여기 레닌의 ‘'좌익' 공산주의'의 서론은 논쟁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소 주제에서 벗어나지만 시국적인 발언을 포함하여 가장 시급한 중요성을 살려 볼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단어들은 레닌이 약속한 러시아 혁명의 근본적인(우리는 이를 항상 유의미한, 이라고 이야기한다) 특징의 내용이 무엇인지 구체화한 것을 주석으로 달 수 있도록 해 준다.
     그것들은 '주요한' 것들이며, 레닌은 그것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볼셰비키의 이론과 전술이다.
     국제적인 반향과 함께 영광스런 볼셰비키 공산당을 특징짓는 것은 그 교의에 있는 원칙의 체계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론이 원칙의 체계에 묶여있는 반면, 전술은 자유롭고, 불편부당하다고 이야기할 권리는 없다. 모스크바에서의 몇몇 대회에서 우리 좌익이 주장한 것은 레닌 그 자신이 섰던 입장 위에 있다 : 이론에서 뿐만 아니라 전술에서도 마찬가지로, 원칙의 체계를 세우는 것은 필수적이다. 게다가 그 원칙들은 모든 나라에, 인터내셔널의 모든 당에 타당할 것임에 틀림없다. 1922년 로마 테제가 그 증거다.
     이 문서는 제2인터내셔널의 배신자 지도자들과 카우츠키, 바우어, 아들러 등의 중도파를 비난하는데, 그들은 저속한 사회-애국주의자들은 아니었을지라도, ‘반동으로 증명된 이들’과 배신자들에게 볼셰비키 당이 승리할 수 있도록 해 준 이론적이고 전술적인 원칙 체계들의 보편적인 타당성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레닌은 가공의 민주주의, 평화롭고 유혈사태에 이르지 않는(우리는 여기에 '모방하는'을 덧붙일 권리가 있다) 세계 혁명의 특징들을 러시아 혁명의 특징들과 위선적으로 대비시키는 (바우어의) 팜플렛, 소위 '세계 혁명'의 현학, 야비함, 수치스러움에 뺨을 때린다. 사실 모든 혁명에 속한 것임에 틀림없는 그러한 특징과 모든 것이 위기에 처한 것을 아는 1920년의 상황에서, 서유럽에서의 혁명 전투는 주어졌다.
     레닌은 중도주의자들을 향해 채찍을 휘두른 후, 카우츠키를 지적하며 오래 전 1902년 그가 맑스주의자였을 때 쓴 글 '슬라브 민족과 혁명'을 보여주고 싶었다. 거기서 카우츠키는 혁명의 중심이 19세기의 초반 프랑스에서 19세기 후반, 영국으로, 독일로 이동한 이후, 유럽 혁명의 지도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의 손에 넘어갔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의 머지않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저술했던 레닌은 카우츠키에게 외친다, '18년 전, 카우츠키는 얼마나 잘 썼던가!'. 오늘날 우리는 다음과 같이 메아리 친다, 58년 전, 카우츠키는 얼마나 잘 썼던가!
     슬라브 프롤레타리아의 엄청나게 기억할만한 착취 위에, 그런 얼음 비석 위로, 폐쇄된 얼음 껍질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파시즘, 공존, 데탕트(detente), 사회주의를 향한 민주주의적이고 의회주의적인 길!
     레닌이 국제 연맹을 자본의 요새라고 그 혐오스러움을 드러낸 반면, 오늘날의 러시아는 레닌을 져버리고 국제연합의 그야말로 돈독이 오른 녹색 테이블 위에 그러한 비문을 쓴다.
     맑스주의 혁명가들은 공산주의 혁명의 불꽃을 후대에 넘겨주는 근대의 올림픽을 벌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맑스와 엥겔스, 죽은 카우츠키와 언제나 빛나는 레닌은 영국이나 프랑스로부터 독일로, 러시아로 옮겨가는 불꽃을 보았다. 오늘날 러시아는 영광으로 빛나던 순간 이후 땅에 떨어졌다. 오늘날 우리는 거대한 불꽃이 다시 타오를 것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우리는 레닌이 ''좌익' 공산주의'의 서두에 묘사했던 것처럼, 수치스러운 미국과 타락한 러시아 모두의 경쟁적인 억압에 맞서는 부활하는 서유럽을 생각한다. 양쪽 모두의 악의적인 외교관들이 포악한 독일의 문제를 외설스럽게 조작할 동안, (비록 장기적으로라고 할지라도) 그런 나라들을 통해 그 역사에서 러시아와 미국에 저항하여 그들과 친구가 되든 적이 되든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는 백인이 힘을 잃고, 그들의 황인 흑인 형제들이 포효하며 행진하는 과정에서 반세기는 회복할 것이다.

     

     

    독재와 실리주의자들

     

     우리는 레닌의 글을 소개하는 이 장에서 칼 카우츠키, 오토 바우어, 프리드리히 아들러 등에 대한 파괴적인 공격 속에, 레닌은 언제나 그런 인물들, 중도주의자, 독립주의자(independents), 제 2.5 인터내셔널 주의자들처럼 제2인터내셔널과 제3인터내셔널 사이에 있는 이들에 반대하여 가장 강력한 일격을 날려왔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음을, 그것이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만큼, 밝히지 않을 수 없다. 레닌은 그들을 우익들, 사회민주주의자들, 또는 사회애국주의자들, 부르주아지의 공개된 동맹들(open allies)과 경찰들, 이름하여 샤이데만, 노스케, 밴데발트, 맥도널드, 등등보다 전쟁과, 전후에 저지른 수치스러운 일들로 훨씬 더 위험하다고 보았다.
     사실 카우츠키는 독일에서 사회-사이비 애국주의 의회의 주류에 저항하는 반대파를 만든 첫 번째 인물이었다. (우리는 의회주의의 쟁점에 대해, 그것을 다뤄야 할 때, 칼 리프크네히트 스스로 1914년 8월 14일 당의 규율에 고개를 숙인 것을 다룰 것이다. 그것은 의회 그룹의 규율에 따라, 슬프게도 카이저 정부의 전쟁 공채에 찬성하는 투표를 조용히 한 것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바우어와 과거의 맑스주의자 빅터의 아들 프리츠 아들러가 소위 오스트리아-맑스주의(마치 민족적 맑스주의가 있는 것처럼!)의 지도자들이었다. 빈에서 프리츠는 용감하게도 전쟁에 반대하려 했다.
     그러나 이런 인물들은 이론가로서 - 이런 평판의 대부분은 스스로 만든 것이었는데 - 맑스주의와 독재는 양립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볼셰비즘과 레닌주의를 건전한 사회주의의 위반으로 신랄하게 비난했다. 그들에 따르면, 맑스주의자는 자유, 민주적 합의, 대중의 지지, 다수 '시민'의 자유 민주주의적 의견의 자유라는 규칙을 깨지 않을 의무가 있다. 그런 그들이야말로 맑스에 대한 가장 수치스러운 왜곡을 만든 이들이다.
     레닌은 불과 칼로 그들에게 덤벼들며, 우리는 생사를 건 역사적 전투의 목격자이자 투사로서, 그러한 역사적 교훈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오늘날 그런 진정한, 실질적이고 물질적인 - 우리의 영원한 적대자들이 파라부르주아(parabourgeois)라고 형용사 '구체적인'을 붙여 부를 - 행동은, 그 스타일과 교훈이라는 점 모두에서, 그리고 탁월한 레닌의 논쟁이 기록된 형식 그 자체가 의미심장하다고, 감히 이야기한다. 역사 앞에서의 그의 엄청난 책임 때문에, 이 극단적으로 비학자적인 대중의 지도자는, 이제 막 최근의 반제정 혁명으로부터 벗어난 프롤레타리아의 미성숙에 직면하여, 변절자들이 칠칠지못한 비난을 자신에게 하도록 두지 않았다. 프롤레타리아의 미성숙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레닌은 쓰고 있다. : 우리는 국민투표와 숫자로 표현된 합의를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우리가 부르주아 시대의 노예제와 노예근성의 병리적 잔여물들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옳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젊은 이들은, 그리고 어떤 오염도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테제나 이론서로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도) 규범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 정치적으로 말하는 가장 가까운 이들을 흉포하게 공격하라! 그렇게 하면 너는 절대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한 편에서 우리는 레닌을, 다시말해 수백만의 인물들과 함께 실제 전투 속에 있었던 그 시절의 혁명가들의 보기로 들 수 있고, 다른 한 편에서 멍청이들, 레닌의 저작과 활동에 대해 파렴치한 왜곡을 이용했던 바보들의 가련하고 비참한 종말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블록 안에, 전선에, 가공의 적의 오른편에서 고립되어, 제1차 세계대전의 배신자들이 했던 짓의 반복일 뿐인 반대의 규범을 따랐다. 기회주의 역병의 세 번째 역사적 파동의 승리자는 우익, 중도 사회주의자와 함께 연합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전시를 훨씬 넘어서서 평화의 시기에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 그리고 카톨릭와 연합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사회적 입장에서, 오염된 프롤레타리아와의 연합 뿐만 아니라 소부르주아지와의 연합, 나아가 중간 계급과의 공공연한 협력까지 나아간 것이다.
     이론적 질문은 실질적 질문과 분리될 수 없다. 레닌은 그들이 맑스를 잘못 해석한 교수들을 혼란스럽게 하는데에 단지 기쁨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더 있다. 이 악당들은 서쪽의 부르주아지의 지원을 받는 군대가 볼셰비키 권력과 혁명 전부를 유혈낭자하게 소탕하려고 돌진해 올 때, 백군과 연대하여 영광스런 레닌주의 전위에 의해 저질러진 '독재'와 '테러'의 범죄를 벌하는, 그들의 승리를 바랐다. 우리는 언제나, 프롤레타리아 승리가 오직 역사의 '필연적인 것으로 예견할 수 있을' 방법으로 성취될 때, 그런 전선을 좋아하는 쓰레기들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고, 프롤레타리아트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배신당한다는 것을 배웠다.
     가장 호전적인 반볼셰비키, 카우츠키가, 러시아에서는 그 응답이 총살이었겠지만, 위와 같이 썼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배신자 카우츠키'를 썼고, 트로츠키는 경외로운 '트로츠키주의와 공산주의'를 썼다.
     카우츠키와 그 동료들은 오늘날 – 다른 나라에서는 이제 용서된 - 독재와 테러가 '1917년 러시아의 독특한' 수단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들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 그들은 레닌이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문장으로 발음했던 것처럼 자유주의-맑스주의자(liberal-marxists)들이고, 맑스주의자들이 사라진 이후에는, 몽땅 자유주의와 부르주아지로 간 이들이 아닌가?

     

     

    중상모략은 언제나 똑같다

     

     오늘날 바우어, 아들어의 이름은 그들의 볼셰비즘 비판을 기억하기 위해, 동시에 '독재와 테러 없는' 성공적인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이론에 대해, 패배를 선언하기 위해 기록되고 있다(Rome의 1960년 9월 2일, ‘Messagero’를 보라) ; 실제로 그것은 옳다 (바로 옆에 앉아서 보는 것보다 반대편 극단에서 보면 더 잘 보이는 것처럼, 이런 표현을 해도 된다면, 의회의 여흥 정도의 가치가 있는, 언제나 똑같은 옛날 이야기다.)
     폴란드인 도이(Deutcher)는 스탈린 사후 '스탈린 이후의 러시아(Russia after Stalin)'란 제목으로 책을 썼다. 이 최신 저자의 견해는 현대 러시아는, 무엇이라 부르든, 자유주의적인, 또는 사회민주주의적인 형태로 진화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미국인, '러시아주의자인', 크론(Croan)은 도이의 테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오토 바우어의 1931년 책, '세계 전쟁으로 나아가고 있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테제와 같은 것이라고 논쟁했다.
     만약 40년이 지난 후에도 레닌이 영원히 제거하려 했던, 오토 바우어와 같은, 레닌주의의 자칭 문하생들과 더러운 위조자들이 우리의 길을 막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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