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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4호] 6·4 지방선거에 부쳐 - ‘선거 환상’을 넘어서자
  • 조회 수: 7247, 2018-05-31 17:50:43(2014-06-02)
  • 6·4 지방선거에 부쳐

     

    ‘선거 환상’을 넘어서자

     

     

    선거철이 다시 돌아왔다. 이번엔 지방권력과 교육감을 뽑는 선거다. 부르주아 선거라는 측면에서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는 본질에서 같다. 오히려 경제적인 이해관계와 일상생활과 관련된 정치에서는 중앙정치보다 계급적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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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년간, 한국의 지배계급은 노동자 민중들을 '부정선거와 민주주의',  '애국과 안보'라는 진흙탕에 빠트려 계급투쟁의 발목을 잡아왔다. 박근혜 정권은 철저히 지배계급의 편에 서서 일방적인 통치를 해나가면서도 '이미지' 정치를 통해 가면 뒤의 모습을 숨겨 왔다. 이에 부응해 모든 공영방송과 종편들, 보수 언론들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해왔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투쟁이 자신들의 통치에 걸림돌이 된다면, 가차 없이 모든 사법제도와 국가폭력을 동원해 협박하고 회유하고 강제 진압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이번 지방선거는 노동자들에게 전혀 특별할 것이 없지만, 일부에서는 정권에 대한 심판과 자신들을 대변할 세력을 선출하는 장으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투표는 속임수일 뿐이다. 우리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실업자이든 퇴직자이든 현재의 선거는 노동자의 삶의 조건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지난 4년 전에도, 8년 전에도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수많은 약속을 해왔다. 노동자들이 조금 더 참고 함께 위기를 극복한다면 머지않아 우리의 생활과 노동조건은 좋아질 것이라 약속했었다. 말 그대로 4년 후, 8년 후 변화된 상황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나빠지는 쪽으로의 변화였지, 개선이 아니었다. 끝 모를 경제위기는 모든 노동자에게 중압감을 느끼게 했고, 그것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게 만들었다. 복지와 연금은 줄어들고, 주거와 생활비용은 비싸져만 가고, 상시적인 해고 위협과 불안정한 일자리, 장기적인 실업, 불안정 노동자의 증가와 저임금은 다수의 노동자들이 겨우 먹고살 수 있는 정도만 허락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이 약속한 변화의 전부였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 그리고 1991년 부활하어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치러진 지방선거 이래 19년에서 27년이라는 기간, 여러 차례 정권이 바뀌고 정치인이 바뀌고 노동자 출신이 정치무대에 등장하기도 했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후퇴하거나 안정적인 삶을 누구도 보장받을 수 없는 매우 위험한 사회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여전히 생존권 위협과 각종 차별에 직면해 투쟁하는 것 말고는 어떠한 해결책도 없으며, 투쟁할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약속은 이제 지키지 못할 약속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선거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른바 진보-노동정당들이 자신들에게 투표하고 집권할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약속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노동자를 팔아 정치판에 뛰어들어 엄청난 재정적, 인적 자원과 시간을 낭비하면서도 투쟁을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환상과 좌절만 안겨주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르주아 선거를 ‘서커스’나 ‘환상’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선거에 참여하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출한 정치인에게 권력을 위임했다고 생각하며, 투표행위로 자신들도 권력 일부로 참여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선출된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직접 통제를 받지 않으며 선거기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유권자와 분리되어 행동한다. 즉, 이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은 몇 년에 한 번 돌아오는 선거라는 이벤트에서만 적용된다는 이야기다.

     

    또한, 부르주아 선거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지배질서를 강화하거나 재편하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이를 넘어서 자본주의 지배질서 자체를 바꾸거나 착취와 억압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부르주아 선거라는 무대에서는 원래 무대의 주인인 ‘대중’이 아니라 무대의 설치 관리자인 ‘국가권력’이 이를 주도하기 때문에, 그들이 정한 시간과 장소, 그들이 정한 순서와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으며, 대중들도 무대를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넘어서겠다는 정치세력이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지배계급이 차려놓은 서커스 공연에 곡예사로 참여하는 것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들이 선거에 참여하면서 선거를 통해 투쟁을 확산시킨다거나 후보를 내세워 투쟁의 구심을 세우겠다는 발상 역시 또 다른 ‘환상’에 불과하다.

     

    유권자의 측면에서도 부르주아 선거판에서 투표하는 행위는 노동자계급을 자신의 주장이나 목소리 없이 정해진 규칙과 객관식 선택지 안에서의 수동적인 개인들로 축소시킨다. 개별의 투표함과 투표소 안에서 노동자계급은 작업장, 회사의 동료들과도 투쟁현장의 동지들과도 차단된 채, 자본가를 포함한 얼굴도 모르는 지역주민들과 섞여 분간하기도 힘든 1개 정당이나 정치인을 자신들의 대표로 뽑아주어야 한다. 즉, 이러한 부르주아 선거판의 투표 속에서는 그 어떠한 계급연대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투표행위를 두고 지배계급은 ‘우리 국민(주민)’들이 이 정부를 위해 투표했으니 따르라’는 것을 임기 내내 홍보하고 협박해 댈 것이다.

     

    그런데 왜 의회 제도를 부정하는 사회주의자 또는 자칭 혁명세력조차 선거에 참여하거나 선거전술을 사용하는 것일까? 정말 선거로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가? 아니면 합법적인 사회주의 선전선동의 연단이 선거시기에는 열리기 때문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는 거짓이고 하나는 환상이다. 사회주의자들의 선거참여는 사실은 지금으로부터 90년 전 레닌과 코민테른의 선거에 대한 입장이 ‘혁명적 의회주의’,  ‘선거전술’이라는 논리로 포장되어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원칙으로 받아들여져 온 결과이기도 하다. 이른바 ‘선거전술’에 대한 오해와 왜곡이 현재까지도 전혀 시정이 되고 있지 않아 다소 길더라도 당시의 논쟁을 상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1919년 8월 영국의 공산주의자 실비아 팽크허스트가 의회참여 문제에 대한 레닌의 의견을 묻는 편지를 보냈을 때, 레닌은 이에 대한 답신에서 의회 참여 포기를 비판하면서 의회제도의 적극적인 이용을 주장했다.

     

    “유럽과 미국에서의 의회주의의 비판자들은, 그들이 무정부주의자이거나 아나코-생디칼리스트들일 경우, 그들은 선거나 의회 활동에 대한 참여 전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종종 대단히 잘못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혁명적 경험의 부족이 단적으로 나타납니다. 우리 러시아인들은, 20세기에 두 차례의 대혁명을 경험했기 때문에, 혁명기 일반 속에서, 특히 혁명의 한 가운데에서 의회주의가 어떤 중요성을 가질 수 있으며, 또한 실제로 갖고 있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부르주아 의회는 폐지되고, 소비에트 기관으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이에는 어떤 의심의 여지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여기에 대비하여 노동자 대중으로 하여금 체계적으로 준비하게 하는 것, 미리 그들에게 소비에트 권력의 의의를 설명하는 것, 그것을 위한 선전․선동활동을 하는 것―이 모든 것이야말로 실제의 혁명가이고자 하는 노동자에 있어서 절대적인 의무입니다. 그러나 우리 러시아인은, 의회 무대 위에서도 활동하면서, 이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짜르의 사이비 지주적 의회(Duma) 속에서 우리 대표자들은 어떻게 혁명적․공화제적 선전을 할 것인가를 알았습니다.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부르주아 의회 속에서, 그리고 그 내부로부터 소비에트 선전도 수행할 수 있으며, 또한 수행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1)


    곧이어 레닌은 의회주의를 거부하는 좌익공산주의자들을 향해 ‘유아적’이라며 조롱하는 악명 높은 팜플릿 [좌익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에서 의회 참여 거부를 혁명 대의를 방해하는 일이라며 비판한다.

     

    “노동계급 다수의 관점 변화 없이는 혁명은 불가능하고, 선전만이 아니라 노동대중 자신의 정치적 경험을 통해서만 그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와 달리 행동하는 것은 혁명의 대의를 방해하는 것이 될 것이다.”2)

     

    그리고 공산주의인터내셔널(코민테른) 2차 총회에서 공산당과 의회에 대한 입장을 규정한다. 즉, 의회에 들어가는데, 그 이유가 부르주아 국가기구와 의회 분쇄를 안에서 돕기 위해 들어가는 것이라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공산주의는 미래 사회의 국가 기구로서 또는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의 기구로서 의회를 부정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프롤레타리아의 대의를 위해 의회가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한다. 의회의 파괴를 자신의 임무로 규정한다. 부르주아 국가기구는 오직 분쇄 대상으로만 여겨질 것이다. 이것이 [그 기구들의] 이용과 관련하여 제기될 오직 하나의 그리고 유일한 길이다.…”

     

    “공산당은 이 의회 체제 속에서 자기 역할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기구와 의회 분쇄를 의회 안에서 돕기 위해 들어가는 것이다.…”3)

     

    하지만 좌익공산주의자 호르터는 레닌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러시아의 경험이 유럽에까지 일반화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며, 상대적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한 서유럽의 혁명 전술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프롤레타리아가 독자적으로 혁명을 일궈야 하는 조건이기 때문에, 의회주의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의회주의를 폐지할 것을 주장한다.

     

    “다시 공산주의자들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의회로 들어갈 것입니다.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들은 선거에서의 투표를 위해 옹호될 것입니다. 공산주의를 위해 건설하는 당 대신, 관성적으로 정당들을 조직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 애국주의자들 및 부르주아 분자들과의 의회주의적 타협이 다시금 등장할 것이며, 그로 인해 결국 서유럽에서 모든 혁명은 점진적인 과정이 될 것입니다. 연설의 자유는 억압당할 것이고, 훌륭한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추방당하게 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제2 인터내셔널에서 발생했던 모든 관행이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좌익공산주의자들은 여기에 반대해야 합니다. 제2 인터내셔널에서 그랬던 것처럼 거기 있으면서 그런 투쟁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비록 좌익공산주의자들에게 세부적으로 오류가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모든 맑스주의자들과 혁명가들은 좌익공산주의자들을 지지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기회주의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적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 대열 외부에서 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그렇게 때문입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신과 힘을 황폐화시키는 기회주의가 다시 섞여 들어오는 것은 좌익이 너무 급진적으로 되는 것보다 수천 배 더 나쁠 것입니다.”
    “기회주의자들의 엄청난 물결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4) 동지의 소책자(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가 나온 이후에 특히 더 그렇습니다. 한때 유럽의 볼셰비끼라고 불리던 네덜란드 공산당을 보십시오. 상황을 고려해서 올바르게 봐 보십시오. 제2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 세력에 의해 벌써 얼마나 완벽하게 타락해버렸는가 그에 대한 소책자를 읽어보십시오. 전쟁 동안, 전쟁이 끝난 후, 심지어 지금까지도 협상국들(프랑스, 영국, 러시아)에 자신을 갖다 바치고 있습니다. 한때 뛰어났던 이 당은 모호함과 기만의 표본이 되고 있습니다.
    동지, 혁명이 시작된 땅인 독일을 보십시오. 거기에도 기회주의는 살아있고 번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지가 3월의 시기 동안 KPD(독일공산당)의 태도를 두둔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는 동지의 소책자를 통해서 동지가 실제 사태의 전개양상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지는 에베르트, 샤이데만, 힐퍼딩, 그리고 크리스피엔을 충실하게 반대한 독일공산당 중앙위원회의 태도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동지가 그 소책자를 쓰고 있을 때, 에베르트는 독일 프롤레타리아트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조직했고, 총파업은 여전히 독일 전역을 뒤덮고 있었으며, 그 속에서 공산주의적 대중의 압도적 다수는 비록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아마 아직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더 높은 힘으로 혁명을 밀어 가고자 분투했다는 사실을 동지는 분명 몰랐습니다. 파업과 무장봉기로 대중이 혁명을 더 진전된 단계로 이끄는 동안 (총파업과, 루르 지방에서 일어난 봉기만큼 희망적이고 거대한 것은 지금껏 없었습니다.), 지도자들은 의회주의적 타협들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루르에서 일어난 혁명에 반대하여 에베르트를 지지했습니다. 5) 혁명에서 의회주의를 이용하는 것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짓인지를 입증하는 예가 있다면 바로 그것일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동지, 이는 의회주의적 기회주의이며, 우리가 반대하고 동지가 조장하려 하는 사회애국주의자들과 독립사민당원들과의 타협이었습니다.”

     

    “제3 인터내셔널은 제2 인터내셔널에 있었던 노예적 조건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좌익 공산주의자들은 아래에서 위로 그것을 변화시키기를 바랍니다. 해악을 근절시키기를 바랍니다. 제3 인터내셔널은 서유럽에서 먼저 노동자 정신의 해방이 필요하고 모든 부르주아 정당들이 혁명기에 하나로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3 인터내셔널은 대중을 얻을 수 있는 한 - 그들이 공산주의자라고 가정해 놓고, 진짜 공산주의자인지 묻지도, 전술을 정해놓지도 않은 채 자기 주변에 대중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입니다.…”

     

    “좌익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국가에서 공산주의자들로만 구성된 정당들을 건설하기를 바라며 그에 따라 전술을 정합니다. 애초부터 소규모였던 이 정당들의 모범을 통해, 대다수 프롤레타리아트와 대중들은 공산주의로 이끌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3 인터내셔널에 있어 서유럽의 대중들은 수단에 불과합니다. 좌익공산주의자들에게 서유럽의 대중들은 목적입니다.

     

    (러시아에서는 참으로 정확했던) 그런 전술을 통해서 제3 인터내셔널은 지도자-정치를 선택합니다. 반대로, 좌익 공산주의자들은 대중 정치를 선택합니다. 그런 전술을 통해서 제3 인터내셔널은 서유럽뿐만 아니라 러시아 혁명까지도 패망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반면 좌익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전술을 통해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를 승리로 이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우리의 전술에 대해 명료한 통찰력을 얻기를 갈망할 것이 분명한 노동자들의 눈에 간략하고 개괄적인 형태로 제시될 수 있도록 저의 주장들을 몇 가지 테제들로 정리하겠습니다. 이것들은 물론 위에 제시된 설명을 참조해서 읽어야 합니다.

     

    1. 서유럽 혁명의 전술은 러시아 혁명의 전술과 다를 수밖에 없다.
    2. 왜냐하면, 이곳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홀로 서 있기 때문이다.
    3. 서유럽 프롤레타리아트는 다른 모든 계급에 대항하여 혼자 혁명을 일궈야 한다.
    4. 그러므로 러시아보다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크고, 지도자들의 중요성은 작다.
    5. 따라서 이곳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을 위해 최고의 무기를 가져야만 한다.
    6. 노동조합은 불충분한 무기이기 때문에, 단일하게 결합한 산업 조직으로 대체되거나 변화되어야만 한다.
    7.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 전체를 어떤 도움도 없이, 홀로 일궈 나가야 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으로 일어서야 한다. 그러므로 혁명에서 의회주의를 이용하지 않는 편이 더 좋다.” 6)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의 ‘선거참여-의회 이용’이라는 입장을 결정했던 공산주의인터내셔널(코민테른) 2차 총회에서, 공산주의 좌파의 입장에서 선거 보이콧을 주장했던 보르디가의 ‘의회주의에 대한 테제’를 지지하며 영국의 갈라처는 다음과 같이 발언한다.

     

    “믿을 수 없는 자들이 의회에 들어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과 혁명의 노선에 따라 투쟁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순진한 생각입니다. 영국에는 이에 대한 수많은 예들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선거에 합법적으로 참여하는 방법이 중심적으로 고려됩니다. 의회에 들어가면 연설을 통해 선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주적 제도들을 믿도록 길들여지는 것입니다. 의회에 들어간 자들에게 선동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전 세계의 공산당들은 이제 의회선거에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 다른 할 일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집행위원회의 지도력 아래 혁명적 수단과 방법, 전술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리프크네히트 동지는 분명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의회 밖 대중들 속에서 활동하는 한에서만 그랬습니다. 만약 리프크네히트 동지가 의회 안에서 발언만 했었다면, 맥도널드나 다른 많은 자들처럼 아직 살아있었을 것입니다. 러시아의 예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은 그 자체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나라의 인민들이 그런 것처럼,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앞에도 이제 양자택일의 선택이 있습니다. 두 가지 전술이 있습니다. 하나는 갖가지 민주적 단계를 통해 인민들 속에 순종의식을 키우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대중들 속에 혁명적 정신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의원의 전형적인 예로 맥클린이 있습니다. 맥클린은 커다란 선거집회들에서 자기가 볼셰비키이며 의회를 뒤엎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의회에 들어간 뒤로 맥클린은 스스로 볼셰비키가 아니라고 선언하는 쁘띠부르주아 사회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힘은 대중들 속에서 혁명적 투쟁을 날카롭게 만드는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지금 순종의 길이냐 투쟁의 길이냐 선택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 같이 이러한 논쟁의 본질은 의회전술 자체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 상황과 그에 따른 적용 문제, 즉 러시아의 후진적 정치상황에 적합한 볼셰비키의 의회전술을 일반화하여 유럽 국가들에도 적용하려는 코민테른과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일정수준 괘도에 올라 의회의 이용 자체가 혁명운동에 걸림돌이 된 유럽 좌익공산주의자들의 반 의회 혁명 전략의 대립이었다. 당시 서유럽은 이미 사회민주주의가 부르주아 계급 일부가 되어버렸고, 이들이 진출한 의회가 오히려 노동자계급을 학살하는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은 의회를 이용하기보다는 의회를 타도할 목적으로 반의회적 노동자평의회 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고 있었다.

     

    과거의 논쟁은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날에도 레닌과 코민테른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즉 선거전술과 의회의 혁명적 이용이 가능해지려면, 현재의 부르주아 선거제도에서 의회 제도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연단을 열 수 있어야 하며, 의회제도의 활용이 계급의식의 발전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역사의 경험은 그것의 반대를 보여주었다. ‘혁명적인 의원들’은 의회를 내부로부터 파괴할 수 없었으며, 설사 그러한 전략이 있는 정치조직(당)이었더라도 결국 부르주아 정치에 굴복하거나 타락하여 자본주의에 흡수되는 결과만을 가져왔다. 물론 이들에게 표를 던진 노동자들은 혁명적 경험이 아닌 타락의 경험만을 갖게 되었다.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2014년 한국의 부르주아 의회와 민주주의는 ‘혁명적 의원?’을 절대 용납하지 않으며, 애국가를 강요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해야 한다는 철의 원칙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의회제도의 활용은 바로 이런 것을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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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선전선동의 수단으로서 선거와 의회의 활용도 더는 유용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선거제도라는 메커니즘 자체가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정치제도와 지배(통치)기구를 유지하고, 노동자들에게는 ‘투표기계’로서의 수동성을 조장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의 근본적인 과제가 의회를 포함 한 부르주아 국가의 모든 제도를 파괴하고 철폐하는 것에 있는 시대에, 선거참여와 의회 제도를 이용하겠다는 발상이야말로 자신들이 추구라는 정치와 무관하게 죽어가는 자본주의 육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러한 흐름은, 의회주의를 사회의 사회주의적 변혁의 한 도구로 제시하는 그러한 흐름과 더불어 지금은 부르주아 진영의 결정적인 한 부분이다.

     

    우리 국제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은 또 하나의 선거를 맞이하여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주장한다.

     

    투표하지 말자! 선거라는 사기를 거부하자!

    노동자계급의 정치는 투표소가 아닌 투쟁하는 현장에서만 가능하다!
    노동자들이 살아 숨 쉬고 저항하는 곳, 토론하고 행동하는 곳, 집합적이고 공개적인 광장에서 직접정치를 실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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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의 민주주의 규칙과 선거제도에 복종하고 놀아나는 한, 자본주의를 결코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소극적이거나 투표를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실현할 수 없다.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선거보다 훨씬 민주적이고 계급적인, 그리고 삶에 직접 도움이 되는 투쟁을 위한 파업위원회, 투쟁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한 투표(결의)와 행동에 나서야 한다. 노동계급의 미래는 노동자계급 스스로 일어서는 것에 달려있기 때문에 누가 대리해 주거나 다른 계급과의 뒤섞임 속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선거운동과 선거정책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에 동원되거나 힘을 낭비하지 말고, 투표소가 아닌 지역의 투쟁사업장과 투쟁의 현장에 가서 투쟁의 쟁점을 걸고 파업을 위한, 연대를 위한, 저항을 위한 행동을 준비하자. 고립되거나 장기간 투쟁으로 지쳐있는 우리의 노동자 투쟁에 하나의 계급으로 연대하자.

     

    ~형로

     

     

     

    <주>

     

    1) [출처: V. I. Lenin, Collected Works, Vol. 29 (4th English ed.), Progress Publishers, 1965.]

     

    2) 레닌, 『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 1920년 5월 12일

     

    3) 『3차 인터내셔널의 첫 4개 대회의 테제, 결의 그리고 선언, 1920년 8월 2일

     

    4) [저자주] 할레에서 단 하루 만에, 50만 명의 새로운 당원이 얼마 전만 해도 그들이 샤이데만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던 지도자들의 품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뚜르에서 극히 최근까지도 대부분 사회 애국주의자들이었던 프랑스 사회당의 4분의 3이 공산당 건설에 참가했습니다.

     

    5) [저자주] 독일에 대해서 철저하게 알고 있던 판네쿡 동지는 이런 사태를 예견했습니다. 스파르타쿠스 동맹의 지도자들이 의회와 혁명 사이의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면, 그들은 의회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6) 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헤르만 호르터,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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