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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은글씨 2호] [인터뷰] 노해투사 해산의 교훈과 새로운 전망에 대한 대화
  • 조회 수: 5140, 2014-12-29 19:08:14(2014-12-29)
  • [인터뷰] 노해투사 해산의 교훈과 새로운 전망에 대한 대화


    - 조성웅 동지와의 인터뷰


    진행 및 정리|김사자 


    (* 2014년 5월 1일에 발행된 <붉은글씨> 2호에 실린 글입니다. [편집자]) 


    < 노동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사회주의노동자들>(이하 ‘노해투사’)이라는 비합법 사회주의 조직이 있었다. 한 동지가 성폭력 사건에 대한 논의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이 조직이 지니고 있던 관료주의를 비롯한 폭력적 위계구조의 문제가 여실히 드러나면서 결성 10여년 만에 결국 해산하게 된다. 사회주의노동자신문은 노해투사의 요청에 따라 이 논의가 시작될 때부터 참여하여 모든 과정에 함께 했다. 그러나 격렬하고 치열한 논의는 적절하게 매듭지어지지 않은 채 종결되었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 조직의 성원이었던 조성웅 동지는 해산과정의 교훈을 통해 혁명정당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프롤레타리아트 민주주의, 페미니즘과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그 내용은 이미 그의 세 번째 시집 <식물성 투쟁의지>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기도 한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대책위 활동 당시 노해투사를 알고 있던 동지들에게만 한정하여 공유했던 공개서(대책위, 「노해투사 성폭력 사건 공개서-노해투사는 어떻게 성폭력을 자행했으며, 어떻게 해체되었는가?」)를 바탕으로 경과를 정리하였다. 또한 대책위 활동 중에 제출된 평가문서를 발췌하여 인터뷰 사이사이에 실었다.


      

    노해투사의 조직적인 성폭력 2차 가해에 대한 문제제기와 조직의 해산
     

    2007년 A는 노해투사의 정식 성원이 되기 위한 과정 중에 있었다. A는 언어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였고 그 언어성폭력의 가해자 중 한 명인 B는 노해투사의 성원이었다. B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대책위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었다.
     

    A의 가입과정 담당자는 박성준이었다. 박성준은 A를 정기적으로 만나는 가운데 대책위 활동에 대해 간간히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던 가운데, 하루는 “왜 대책위는 신속히 종결되지 않고 있으며 B의 현장활동은 왜 지지부진해지고 있냐”며 A를 추궁한다. 그동안 보고를 받아왔음에도 어떤 지지나 지원도 없다가 B의 현장회합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관련하여 A를 추궁하는 박성준의 태도로 인해 A와 박성준 사이에 언쟁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 당시만 하더라도 박성준이 이 대책위 활동을 서둘러 종결시키려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A는 노해투사가 이 언어성폭력사건 대책위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대책위 활동에 대한 박성준의 태도에 대한 문제제기를 담은 서신을 담당자인 박성준에게 제출하여 노해투사에 전달해 줄 것을 요구한다. (노해투사는 오로지 수직적 소통구조로 운영되고 있어 직접 조직의 기구나 다른 성원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 없었다.) 이에 박성준은 “자꾸 이런 식으로 싸움질을 걸면 담당자 교체를 요구하겠다”며 짜증과 화를 냈다. 서신은 조직에 전달되었고 A는 “피해자의 대책위 활동을 지지한다. 박성준은 대책위를 종결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조직 입장에서는 박성준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는 답변을 받게 된다. 이에 답답함을 느낀 A는 주변 활동가들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노해투사에는 담당자의 교체를 요구하고 자신의 문제제기에 대해 논의한 중앙위 회의록을 열람하고 싶다는 2차 서신을 보낸다.
     

    그러자 박성준은 A가 고민을 털어놓았던 활동가들에게 “A는 조직 내에서 정치적 거부를 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비방한다. 이에 문제를 느낀 한 활동가가 문제제기 하자 그 활동가에게만 실수였다며 사과를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A가 해명을 요구하자 박성준은 “그 발언은 신중치 못했고 그 발언은 철회했으니 그렇게 알라”고 답한다.
     

    한편 노해투사는 A가 자신의 고민을 주변 활동가들에게 털어놓은 것을 두고 조직적 계통과 보위에 관한 규율을 어겼다며 A에게 자기비판서를 요구하고 그동안 노해투사가 발행한 기관지와 주고받은 문서를 모두 회수하는 징계조치를 취한다. 담당자 교체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문제제기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회의록 열람 요청에 대해서는 그럴 권리가 없으므로 거부한다고 답한다.
     

    A는 이러한 조직의 태도에 대해 2차 가해라고 비판한다. 그러자 노해투사는 ‘조직을 검증하려 드는 것이냐. 조직은 가부장적이지 않다. 가부장적이라 매도하는 네가 문제이므로 네 입장을 철회해야 사건에 대한 조직의 입장을 밝히겠다’는 답변을 되풀이 한다. 노해투사 내에서 A의 문제제기에 동의하던 성원들은 ‘당신 현장활동이나 잘 하라’는 답을 들어야 했다. 이렇게 A는 완전히 고립된다.
     

    노해투사는 A에게 ‘A의 문제제기는 노동해방 운동의 국제적 전통으로 보아 근거 없는 개념에 의지하고 있고, 조직을 가부장적이라 매도하는 당신과는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며 관계의 단절을 선언하는 마지막 서신을 보낸다. 이렇게 A는 ‘게으르고 조직적 보위를 수시로 어기고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상담해주어야 하는 구제불능’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A는 노해투사에 맞서 싸우기로 마음먹는다.
     

    노해투사 내부에서도 일부 성원의 요청에 의해 이 사건에 대해 재논의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당시 이제 막 가입했던 조성웅은 이 사건을 ‘악랄하고 관료적인 조직적 성폭력 2차 가해’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비판이 제기되는 과정에서 A를 고립시키고 추방하는 데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지도부는 (박성준을 제외하고) 모두 2차 가해를 인정하고 반성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박성준과 그를 옹호하는 성원 일부는 여전히 2차 가해가 아니라는 주장을 개진하며 맞선다. 그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①피해자 중심주의를 인정할 수 없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거부하는 것이 조직의 전통이었고, 여성주의도 과학적이어야 한다. ②2차 가해의 범위를 넓게 적용할 수 없다. 단지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것을 2차 가해라고 볼 수는 없다. ③박성준과 A의 만남 자리와 그 이후의 일련의 조직의 관료적 조치들은 별개이며, 앞선 만남의 자리에서의 박성준의 대책위 활동에 대한 종결 발언만으로는 2차 가해가 성립하지 않기에 이후의 조직의 모습들도 2차 가해가 아니다.’ 그리고 이 문제제기를 조직 내 주도권을 위한 분파투쟁으로 인식하고 대응한다.
     

    결국 2008년에 열린 2차 총회에서 이 사안을 다루게 된다.(조직을 설립한지 10여년이 되었지만 총회제도를 신설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논의가 이루어진 회의가 2차 총회였다.) 그리고 이 회의부터 사회주의노동자신문 또한 공식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 총회에서 노해투사가 처음부터 언어성폭력사건 대책위를 서둘러 종결시키려고 했었다는 것이 폭로되었고, 언어성폭력사건 대책위 활동을 지지한다는 조직의 답변들이 사실상 모두 거짓이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박성준이 지속적으로 거짓말로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 A에게 책임을 떠넘긴 사실도 확인되었다. 논의가 진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박성준을 제외한 모든 성원은 조직의 2차 가해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깨닫고 책임을 통감한다. 박성준은 대책위의 징계조치에 이의를 제기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 과정에서 이탈하여 종적을 감춘다.
     

    결국 2009년 조직을 해산하고 노해투사 성폭력사건 대책위원회를 구성한다. 이후 대책위에서는 페미니즘 및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조직 전반의 관료주의를 비롯한 문제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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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 오늘 인터뷰는 이 사건에 대한 대책위의 공식적인 평가과정을 밟아나가기 위해 준비한 것은 아닙니다. 조성웅 동지 개인적으로 약 5년 전 노해투사의 해산과정에서 느낀 점과 교훈으로 삼고 있는 점을 얘기해봤으면 합니다.
     

    성웅: 이 사건에서 노해투사 성원들이 보인 태도를 이해하려면 먼저 노해투사에 대한 성원들의 생각이 어땠는지부터 말해야할 것 같아요. 노해투사 성원들에게 노해투사는 그 자체가 하나의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이유였어요. 전국적 정치신문(NPN)이라는 노선 하나에 청춘을 걸었고, 고립되고 외로운 시기를 신념 하나로 버텼고. 조직의 분열과정, 그 고통 속에서 정립한 이 노선은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하나의 굳어진 신념이었어요. 이 노선을 중심으로 확고하게 통일되어 있다는 환상도 필요했고요. 가장 뛰어난 노선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 악물고 버텼던 것이죠. 해체되지 않기 위해서.
     

    사자: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원들 간의 소통이나 토론은 어떻게 이루어졌던 것인지 궁금한데요. 분명 편하게 서로 의견을 나누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성웅: 먼저 노해투사의 조직구조를 보면 중앙위원회와 중앙위원회가 파견한 지역수임자망 체계, 엄격한 보안체계가 적용되었어요. 비합법, 아니 과도한 비밀주의가 조직운영을 규정했죠. 노해투사는 ‘조직의 엄격한 계통을 통해서만 소통할 수 있다’는 조직운영상의 원칙이 있었어요. 조직과 개인이 맺은 불평등 조약이었어요. 이러한 조직원칙은 노해투사가 창립되었던 시기 혹독한 조직분열 과정에서의 트라우마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고, 전국적 정치신문 노선의 기계적 모방이기도 했어요. 중앙은 정보를 독점하고 통제했어요. 이러한 정보의 독점과 통제는 하나의 형식으로 완성되었는데, 실생활과 완전히 분리된 ‘회의록과 보고서에 의존한 지도’로 귀결되었죠. 중앙에서 만들어지는 지침과 입장이 지도의 전부였어요. 노해투사 성원들은 살아 있는 실체가 아니라 회의록 상의 이니셜로만 존재했고 조직 내부의 직접적인 소통과 대화, 비판과 논쟁, 부단한 공동활동은 파괴되었죠. 중앙은 모든 정보를 독점했는데, 각 지역위원회의 활동은 각자가 알아서 진행하는, 관료적 집중주의와 무정부주의가 결합된 기형이었죠. 계급투쟁으로부터의 고립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미약한 역량, 계급투쟁으로부터의 고립, 그리고 정보는 독점되었지만 지도가 부재한 노해투사가 자신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방법은 문자 상으로는 민주주의를 얘기하고 비판의 자유를 얘기했지만, 내부의 차이를 끊임없이 봉합하고 은폐하며 통일을 강조하는 거죠. 조직이 깨지는 것을 정말 두려워했어요. 조직의 분열을 가져온 한 차례의 극단적인 논쟁을 거친 사람들은 두려운 거죠. 끊임없이 비판을 억누르고 봉합하고. 질서를 해치는 사람들을 조직의 이름으로 축출하고. 노해투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조직들이 그랬어요. 노해투사만 그런 것이 아니에요. 사실상 민주집중제가 실현된 적이 없어요. 끊임없이 관료주의를 방어함으로써, 소위 말해서 ‘효과적인 체계’에 의탁함으로써, 차이들을 축출함으로써 통일을 이룬 것이죠. 민주주의를 확대함으로써 민주집중제를 강화한 적이 없어요. 결국 그렇게 계급투쟁에 연루되기 위한 살아있는 조직이 아니라 딱딱하게 굳어졌어요. 스스로가 그걸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알고 있음에도 바꿔내지 못했던 것, 타협했던 것이죠. 자기들이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난 감각적으로는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했던, 자기가 살기 위해서 선택했던 어쩔 수 없었던 비극이었죠. 노해투사의 2차 가해를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올바른 신념을 집행했던 것이지 관료주의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혁명적인 사상을 방어하기 위해 기회주의적이고 부르주아적이고 부문적인 것을 비판한다고 생각했어요. 조직 노선을 사수하기 위해서 이견들을 축출하는 것은 하나의 싸움, 신념의 집행이었어요. 차이 속의 협력이라는 민주집중제의 실제내용은 없었죠.
     

    사자: 노해투사에서 논쟁이 일어나면 이견에 대해 비판할 때 ‘왜 그것이 과학적이지 못한가’, ‘그것이 왜 부르주아적인 것인가’, 이런 식의 접근으로 근거를 확보하려고 했는데요. 그러다보면 오히려 무엇이 합리적인 판단인지에 대한 논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우리 노선에 가까운 것인지에 대한 논의로 진행되기 쉬운 것 같습니다. 비판을 잘라버리기도 쉽고요. 성폭력 2차 가해의 문제도 주관주의라서 과학적이지 않다거나 하는 반론이 나왔었죠.
     

    성웅: 네 그러다보니 이 사안이 내가 박성준을 중심으로 한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분파적인 해석이 나온 것이죠. 2차 가해를 방어했던 젊은 동지들은 자신이 여성주의 활동을 하면서 쌓아온 경험과 감각을 배반하기까지 했어요. 내가 무오류라고 생각하는 이 조직을 살리기 위해서 그런 것이죠. 노해투사는 언어성폭력 사건을 자신의 문제라고 인식도 못했어요. 2차 가해자가 노해투사의 성원이었고 피해자가 노해투사 성원 가입 과정을 밟고 있는 동지였음에도 불구하고요. “가해자의 활동이 지체되는데 왜 대책위 활동이 종결되지 않느냐”라는 말에서 보면, 일상적인 조직 활동에서 2차 가해는 있을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 자리에서 이게 문제인 것을 인지하고 진지하게 질문에 대해서 귀를 기울였다고 하면 사건화 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지 않았을 거예요. 문제는 귀 기울이지 않고 오류를 덮어서 사건을 묻으려고 한 것이죠. “우리는 결코 그런 조직이 아니고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오해다. 부주의와 미성숙한 태도의 문제지 2차 가해는 아니”라고 한 것이죠. 그러니 실제로 공론화하고 문서화 하니까 가해자는 자기 지위를 이용해서 피해자에게 협박을 했어요. 공론화를 한다고 하니까 협박하고 화내고 진압하려고 했던 것이죠. 지지자들이 이 사실을 공유하고 함께 문제제기를 하니까 “개인적 소통 하면 안 되는데 보안수칙 어겼다”고 반응하며 토론을 금지시켰어요. 모든 사건은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모르면 모른다고 할 수 있고, 그 자리에서 솔직하게 반성하면 되는 문제를 사건화 되도록 만든 것이죠. 그 과정에서 가해자는 자신의 지위를 지켰고 피해자를 축출하는데 성공했죠. 조직의 가부장적 문화를 숨기고 반대파에 대한 숙청 작업을 진행한 거죠. 대화하려는 자세가 아닌 것이죠. 존중하려는 자세가 아닌 것이죠. 자기 자리의 흔들림에 대해서 불안 해 하고 비판을 못 견뎌했던 것은 권력의 습성인 것이죠. 
     


    노해투사의 중앙 권력은 각 지역위원회의 모든 활동에 대해 보고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성원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 외에 다른 지역과 중앙의 활동에 대해서는 모든 정보를 가질 수는 없었다. 이 모든 것은 보안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되었고, 노해투사에 가입하는 사람들이면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 불평등 규약이었다. 다른 지역의 성원들과의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권리조차 제약당한 탓에 성원들은 점차 조직 활동 전반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활동을 잘 꾸리는 것에만 집중했다.

    ...

    파놉티콘은 노해투사의 거울이다. 노해투사 중앙은 진리의 환한 빛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언제나 자신을 감추고 신비화했다. 모든 성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받았지만, 보고는 중앙의 권력을 위한 것이었지 실천 활동의 지침으로 돌려지지 않았다. 반면, 성원들은 자신 외에 볼 수 없는 지역의 단위에서 보고와 지시라는 조직의 규율을 내면화해갔다. 이 시선의 비대칭성으로 노해투사 성원들은 동등하게 토론하고 대화하는 평등한 주체가 되지 못했다. 중앙에 의한 정보의 독점과 감시는 조직 내부의 활동가들 간의 부단한 공동활동과 직접적인 소통과 대화를 소멸시켰다. 비판과 논쟁, 사회주의자들 사이의 생생한 정치생활은 회의록으로 대체되었다.
     

    -J, 「노해투사 콤플렉스-전위주의와 관료주의 사이에서의 열등감, 욕구불만, 강박」 (J는 오랜 시간 노해투사의 지도부 위치에 있으면서 조직 전반을 이끌었다. 이 글은 대책위 활동이 상당 기간 이루어진 후 조직 성원들로부터 노해투사 활동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모아 전반적인 평가를 내린 것이다.)


    사자: 조직 내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이 사건에 대한 논의가 있기 전에는 없었던 건가요?
     

    성웅: 조직방침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중앙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벗어난 것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대화와 논쟁이 불가능한 구조였어요. 조직성원들은 중앙의 회의록을 공유했는데, “조직적 결정에 책임을 다한다, 중앙에서 결정된 것은 모두가 온 힘을 다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방침을 통해 비판적 활력이 소진되어갔죠. 회의록 상에서의 몇 마디 방침과 결정이 지도일 수 있나요? 지도는 실생활이어야 하고 밀착되어 있어야 해요. 그런데 노해투사 성원들은 자신의 조직이 민주집중제가 잘 구현되고 있다고 생각했죠. 형식적으로는 민주적이었으나, 중요한 방침에 대해 토론했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은 중앙의 결정에 형식적으로 동의하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했던 민주집중제였던 거죠. 노해투사의 기관지 내용은 성원들에게 확신과 신념을 일으켰어요. 그만큼 중앙에 대한 신뢰가 크죠. 노해투사에서 특별한 것은 이론적 능력을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는 거예요. 정보는 독점되고 지도는 부재했지만 기관지 내용을 통해 중앙은 자신의 권력을 신비화할 수 있었어요. 이 신비화를 통해 노선을 벗어난 비판은 진압됐죠. 그런데 중앙의 독제체제로 유지되어 오던 조직이 최초의 총회를 통해 그 신화가 산산이 깨져버렸어요. 한 동지는 “처음 접하는 직접 민주주의 앞에 노해투사는 벌벌 떨었다”고 표현하기도 했어요. 최초의 총회를 통해 자신들의 자부심과 신념이 허구였던 것이 생생하게 드러났던 거죠. 그럼에도 난 중앙 혹은 편집국 독재체제에서 총회로의 이동, 직접민주주의로의 이동은 발전이라고 생각해요. 아주 느렸지만 변화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벽처럼 답답했던 사람들이 촛불에 연루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을 보았을 때 놀라웠어요. 하지만 낡은 껍질을 깨기 위한 용기는 없었으나 치장을 다르게 한 것인데. 노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평가 이런 것들은 허용될 수 없었죠. 변화된 현실 속에서 자신도 변화하려고 하는데, 따져보니까 조직의 노선과는 다른 거야. 발전하려다가도 회귀하는 거죠. 노선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으니까.
     

    사자: 자기 조직의 정치에 대한 신념이 상당히 강했던 것 같은데요. J가 쓴 「노해투사 콤플렉스」를 읽어보면 중앙의 이론과 구체적 방침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웅: 노해투사 성원들은 방향을 정해주면 누구보다 뛰어나게 말하고 쓰고 행동했는데, 뛰어난 동지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사유 딱 하나가 부족했어요. 이건 훈육된 것이지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죠. 그렇게 뛰어난 동지들이 중앙에 의탁함으로써, 독립적으로 사유하기를 포기함으로써 노예가 된 거죠. 방침을 주지 않으면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중앙의 방침 밖에서 수많은 사건이 내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충분히 자기 고민이 있음에도, 어떻게 대화해야하는지도 알고 있는데도, 중앙에서 지침을 주지 않으면 스스로 검열하게 되고 머뭇거리는 거예요. 중앙에서 방침이 정해지면 글도 잘 쓰고 자신감도 있고 활력을 가지고 조직을 한다는 거죠. 그런데 그게 없으면 못해. 어떤 정치적 사안이나 투쟁 사안이든 지침이 없더라도 누구나 정보를 수집하고 가공하고 분석하고 평가하고 입장을 제출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레닌은 사칙연산만 알면 국가를 운영한다고 했는데. 지식의 위계를 하나의 고착화된 구조로 만드는 것은 착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건 사회화된 편견의 문제인 거죠. 
     


    노해투사 성원들의 정체성의 근원이었던 혁명적 이데올로기, 이론적 권위에 대한 신뢰는 곧 조직활동 전반을 관장하게 되었다. 혁명적 이데올로기 생산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과 생산량이 많은 사람은 노해투사 권력의 최정점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들은 ‘선택받은 자’들로서 똑똑하다는 조직 내 인정을 받고 공식적으로 지적인 업무에 배당된 사람들이었다. 이 때문에 조직 내 편집국과 중앙위원회의 권위 또는 기관지의 주요 집필가에 대한 권위가 노해투사의 권력이 되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지적 권력은 조직 내 위계서열의 맨 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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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조직 내 위계는 현장 활동의 태도로도 이어졌다. 사회주의 현장 세포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서 우리가 조직해야 할 현장노동자들은,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잇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녀/그가 얼마나 실천적인가보다, 그녀/그가 얼마나 ‘우리 생각에 더 많이 동의하는지’가 현장노동자를 판단하는 주요한 근거가 되었다.
     

    -J, 「노해투사 콤플렉스-전위주의와 관료주의 사이에서의 열등감, 욕구불만, 강박」


    사자: 그런 것을 보면 노해투사에서 구체적인 경험으로부터 이끌어낸 것들은 ‘과학’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자기 현실운동에서 쌓아온 감각이 조직의 노선과 불일치 할 때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조직의 노선을 버리는 것으로 항상 귀결된 것인데, 여기에는 이론이 경험에 비해 우월한 것이라는 태도가 깔려있었던 것 아닌가요. 물론 이는 사회주의 운동에서 상당히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위에서 누가 만든 글을 피라미드로 뿌리는 구조면 현장에서 정치활동을 하면서 겪는 구체적 경험은 조직의 정치를 구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 어렵게 되는 거죠.
     

    성웅: 예를 들어 현장에서 제기된 전술방침 같은 것들은 이미 대중들이 다 알고 있는 문제인 거죠. 내가 얘기하지 않아도 현장에서 싸움의 주체들은 요구를 계급적으로 제기하고 전투적으로 집행을 하고 있는 문제예요. 그런데 두꺼운 기관지는 항상 때늦게 제출되어 도착해요. 그러니 현장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얘기하니 재미가 없는 거죠. 또 다른 측면에서 두꺼운 기관지의 다른 글은 또 너무 어렵게 나와. 기관지의 내용들은 정세를 따라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론은 현장과의 대화가 되지 못했던 거죠. 이론과 현장이 분리되어 대화를 생산하지 못했고 이러한 분리가 이어져 왔다고 봐요. 선동이라고 했을 때 구체적인 싸움의 재료를 가지고 구체적인 대화의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실패한 것이죠. 하나의 작은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 ◯◯◯」라고 생각하는데. 이 현장정치신문은 구체적인 싸움이 이론과 분리되지 않고 선동으로 제시되는 하나의 가능성이었다고 봐요. 그런데 노해투사는 이걸 폄하했어요. 실천적인 지도는 부재하거나 방치했던 것이고. 현장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하고 잠을 줄여가며 생산했던 「◯◯ ◯◯◯」의 생산물들에 대해 지침에서 벗어난 내용들이라고 질책하기도 했어요.

    사자: 저도 당시 「◯◯ ◯◯◯」와 같은 시도가 아주 중요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노해투사에서도 전반적으로 이걸 중요하게 여겼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네요. 앞서 질문에서 이론적인 것에 우위를 두는 문제를 얘기했었는데요. 「◯◯ ◯◯◯」가 이론적 엄밀성의 측면에서 비판을 받는 분위기였다는 얘기를 들으니 노해투사는 당시 어떤 문제의식으로 매체들을 발행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앞서 전국적 정치신문이라는 신념에 모든 걸 걸었던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는데요. 사실 노해투사에서 발행했던 잡지는 유통이 잘 안 됐었어요. 사회주의자들의 공동활동의 수단이라고 규정한다면 각자의 활동이 담기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논쟁을 매개하는 수단으로 사고했어야 하는데, 사실 내부회보와 조직화 수단으로 느껴졌습니다.
     

    성웅: 기계적으로 해석했던 것이죠. 전국적 정치신문 노선은 100년의 시간이 지난 것입니다. 레닌은 독일의 민주주의를 러시아의 차르 체제 아래서는 적용할 수 없는 조건들 속에서 전국적 정치신문을 제기했던 거죠. 기계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맞는 대중과의 구체적인 대화의 수단이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전국적 정치신문을 얘기했던 대부분의 조직들은 두꺼운 팸플릿을 발간했어요. 내용을 보면 이론지였죠. 대화의 수단이 아니라 소수의 사회주의자를 조직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죠. 전국적 정치선동의 매개체가 아니었어요. 자기복제의 수단이었어요. 노해투사의 경험을 보면 현장에서 조직된 사회주의자 성원이 된 사람이 딱 한명이에요. 대화의 수단이 되지 못했던 것이죠. 대부분의 조직에서 실패했던 수단이었던 것이고. 기계적으로 적용했으나 어느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죠.
     

    사자: 자기 조직의 노선에 대한 강한 신념, 그리고 이를 지탱해주는 이론적 작업에 대한 의미부여가 있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노해투사는 다른 조직과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한 것인가요.
     

    성웅: 경쟁의 대상이죠. 공동활동은 외교전이었고 실제로는 적대적인 경쟁관계인 것이죠. 이런 것들이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진영 전반의 실상이었어요. 말로는 공동활동 공동활동 했지만 이뤄진 적이 없고. 그것도 자기 조직의 승리를 위한 공동활동이지. 차이 속에서의 협력, 논쟁, 끈질긴 합의, 집중된 공동활동은 하나의 문자로 남았죠. 구체적인 현실에서는 실현되거나 성과를 남긴 적이 없어요. 노해투사는 극단적인데, 타 조직을 동등한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지도 혹은 견인의 대상으로 여겼죠. 노해투사는 자신들이 당건설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주도해야 하다는 신념이 강했어요. 우리는 이미 완성된 사회주의자들이라는 자부심, 어떤 조직보다 혁명적이고 뛰어나다는 신념이 있었던 것이죠. 전국적 정치신문은 사회주의자들의 공동활동의 수단이어야 하는데. 과거 분리과정에서 타 조직과의 공동활동이 제기되었을 때 이 조직과의 공동활동은 노선(전국적 정치노선을 통한 당건설)의 폐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죠. 그때 나온 논리가 “노선에 대한 것은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공동활동이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거죠. 
     


    사회주의가 아닌 ~주의는 사회주의 밖의 이론으로서 결코 환영받지 못했다. 노해투사 내부에서 여성주의는 사실상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자, 어떤 의미에서는 공공의 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올바른’ 사회주의자라고 하는 신념은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다. 따라서 여성주의라는 틀로 제기되는 논쟁은 우선, 올바른 사회주의에 의해 합당한 의견인지에 대한 검열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지적 권력에 의해 ~주의가 계급적인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내려지면 조직 내 토론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노해투사의 사회주의 지적권력의 승인을 받지 못한 이데올로기는 자유로운 토론을 인정받을 수 없었다. 전통을 옹호하고 조직을 유지하며 나와 다른 견해를 용납하지 못하는 태도야말로 혁명적 사회주의에 어울리지 않는 보수주의다.
     

    -J, 「노해투사 콤플렉스-전위주의와 관료주의 사이에서의 열등감, 욕구불만, 강박」


    사자: 두 번째 시집 <물으면서 전진한다>와 세 번째 시집 <식물성 투쟁의지>에는 각각 ‘차이’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요. 두 번째 시집에서는 노조관료들과 의회주의자들이 권력을 가지고 투쟁에서 생성되는 차이를 봉합시켜버리는 것에 대해 비판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조합원들의 의지를 무시하고 투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닌 노조관료들과 의회주의자들은 대화의 대상이 아니죠. 누르고 가야 하는 대상인데. 세 번째 시집에서 나타나는 차이는 투쟁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협력을 통해 긍정적인 힘으로 발현될 차이입니다. 노해투사 사건으로 비춰봤을 때 사회주의 조직 내에서 ‘차이’는 어떤 문제로 접근해야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성웅: 차이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는 합의의 과정을 가져봤다는 얘기를 다른 조직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축출과 분리였지. 그것을 통한 통일의 선언인 것이고. 차이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현실의 문제인 거죠. 이 차이가 합의될 때까지의 과정, 정말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고 봐요. 이런 것들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구성해낼 것인지. 이런 고민들을 하는 것이죠.
     

    사자: 그 끈질긴 노력의 과정을 관료주의와 대의제가 가로막는다는 것인가요?
     

    성웅: 대의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어느 정도 대의적인 방식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지만 관료주의적으로 갈 가능성은 상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한 개입이 필요해요. 어떤 문제에 대해서 위임하는 방식이 아니라 토론하고 결정하고 집행하는 전체 과정이 연속적인 이행이 되어야 해요. 위임된 지도부가 어떤 과정에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은 해요. 하지만 소환권을 전제로 해서 있을 수 있다. 소환권을 수단으로 직접민주주의로 이행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노동자 민주주의의 체계들은 대중총회체계를 통해서 등장했던 것이죠. 모이고 토론하고 집행하는. 불가피하게 위임될 수밖에 없다고 하면 언제든 현장에서 소환할 수 있고 책임을 묻고 평가하고 새로 선출하고 새로운 방침으로 전환되는 것이 가능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어떤 형식이란 것도 관료주의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영속혁명일 수밖에 없다고 봐요. 부단한 현실과의 교류일 수밖에 없고 발생한 사건에 대한 참여일 수밖에 없고.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위임하죠. 그것이 유능한 지도부를 구성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성공한 적이 없다는 거죠. 오히려 관료주의만 강화했어요. 이 체계를 폐기해야 해요. 위로부터 당 건설 노선에 입각한 민주집중제는 낡았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역사적 가능성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거죠. 지식의 위계, 조직의 위계를 파괴하기 위한 직접적인 자기 결정을 정치화해야 하고 이 직접민주주의를 실험해야 해요. 이미 주체들이 형성되고 소통의 망이 형성되고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촛불과 희망버스에서 대의제로 귀결되고 요약되는 것에 대한 대안이 이미 등장하고 있는 것이죠. 대중총회체계가 실제적인 전망으로 제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당의 역할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지령으로 표현됐던 시대착오적인 개념이 아니라 대중총회와 보폭을 맞추고 함께하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을 소집하고 안건들을 제출하고 토론을 제기하고 합의과정을 가져나가고 결정된 사항을 집행하고 이 과정을 연속적으로 재평가하는 이런 역할들이 필요한 거죠. 당의 이름이든 의식적인 정치활동의 이름이건 앞으로도 보존되어야 하고 계급투쟁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를 정식화하는 것이 고민의 주제예요.
     

    사자: 민주집중제와 혁명정당의 역할에 대해 얘기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기존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공통된 정치노선에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성웅: 부르주아 국가의 폭력과 훈육된 대의제, 위로부터의 당건설 노선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 것이냐의 문제인데요. 희망버스 2차부터 차벽에 딱 막혔잖아요. 3차 때는 ‘너희는 고립되었다’ 퍼포먼스로 마무리하고. 결국은 부르주아 대의제에 의탁해서 양보안을 받아들이는 모습이었어요. 이것이 현실의 운동이었고 태어난 가능성은 너무나 미약했죠. 그렇다면 희망버스에서 등장했던 직접민주주의, 정치로서의 민주주의를 정식화해내고 혁명의 가능성을 밀어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고요. 혁명의 시간들을 미리 준비하는 사람들이 필요해요. 직접민주주의에 보폭을 맞추는 사람들, 조력하는 사람들로서의 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명령과 지령으로서의 당은 돌이킬 수 없이 낡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여전히 정치적 이행기이자 사멸해가는 준국가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경계선은 여전히 개량주의자들, 중도주의자들 사이에 그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당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부정하는 자율주의자들과는 다르죠. 전 물어요. 국가권력과 구성된 공동체가 어떻게 나란히 존재할 수 있느냐. 자율주의자들에게 이 답을 듣지 못했어요. 국가는 우회하는 것이 아니라 돌파해야 하는 것, 돌파해서 ‘파괴’해야 하는 것이죠. 노해투사 해산과정을 거치면서 <국가와 혁명>을 다시 읽었어요. 예전에는 “대의기구 없는 민주주의, 특히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는 상상할 수도 없다”고 하는 데에 밑줄을 그었는데, 그 아래 “우리의 진실되고 성실한 열망이라면 의회 없는 민주주의가 상정될 수도 있고 상정되어야만 한다”는 데에는 밑줄이 안 그어져 있더라고요. 예전에 생각할 때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무자비한 계급전쟁이라고 읽고 해석했는데, 프롤레타리아트의 광범위한 대중운동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개념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무시했죠. ‘의회제 없는 민주주의’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던 거죠. 원전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부터 배우면서 사멸하는 준국가에 걸맞은 이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는 거예요. 부르주아 반혁명에 맞서 불가피하게 폭력을 사용해야 하는 권력으로서만이 아니라 의회제 없는, 대의제 없는. 그런데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사실 대의제거든요. 생산지에서 아래로부터 직접 선출된 대표자들이 모여서 국가의 운영을 논하고 결정하고 집행되는. 전 100년 전에는 가장 민주적이고 혁명적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지금은 시간이 흘렀고 사멸하는 준국가가 가장 끔찍한 국가가 되었던 경험, 부르주아 반혁명에 맞서던 혁명적 대의기구가 반혁명 기구로 급속하게 전환된 역사적 진실을 우리는 알고 있어요. 이 뼈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멸하는 준국가로서의 의회제 없는 민주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넓고 깊은 수평적 연대운동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새롭게 정식화하는 문제가 중요하겠다는 거죠.
     

    사자: 대의제 없는 민주주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성웅: 중앙은 비어있는 것이어야 해요. 완성되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집합적 힘들에 의해 끊임없이 생성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해요. 그 방법으로써 대중총회 체계를 통해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이죠. 그런데 다 위임해버리잖아요. 집행하는 자가 사실상 권력을 가지고 위계화된 것이 중앙이라는 낡은 이름이죠. 대중총회의 방식들을 통해 가장 끈질긴 방식으로 대화하고 결정하고 집행하고 경험하고 개선하고 이런 것들이 시작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한자리에 모이지 않더라도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우리에게 이미 있어요. 기본적으로 온라인으로 소통하고, 느슨하지 않은 체계로 진행되는 총회를 통해서 결정하고 역할들이 배치되고, 또 온라인을 통해서 소통이 되고. 경험들을 통해 방법을 구체화하고 개선하고. 끊임없이 실험해야한다고 봐요. 불가능한 것이 아니에요. 레닌의 얘기처럼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은 거지. 정말로 피곤하거든. 무정부적인 것이 가장 피곤하고 힘든 것이에요. 가장 피곤하고 힘든 것이 민주적인 방식이라는 거죠. 그 피곤한 단계를 거치지 않고 포기함으로써 효과적인 체계로서 위계제도를 우리 스스로 도입해왔죠. 무수한 개성들의 대화와 종합이 없는 한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대화의 마침표 없는 지속. 전망은 먼 미래의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거예요. 살아보고 싶은 것은 지금 나의 삶과 운동으로 표현되어야 해요. 미래의 문제로 밀어버려 유예시켜서는 안 되죠. 내 삶으로 표현되어야, 운동으로 지금 당장 표현되어야 해요.  
     


    조직이란 여러 사람들이 특정한 목적을 공유하고 실천하기 위해 모인 곳이다. 여러 사람이 모인 만큼 개성과 취향 그리고 욕망이 모두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조직으로서 노해투사는 성원들의 사고, 감정, 의지 그리고 개성과 취향과 욕망 곧, 개인적 자아를 수용할 수 없는 곳이었다. 스탈린 시대에 공산주의적 인간형을 상정하고 그러한 인간형이 곧 최고의 인간인 것처럼 추대되고 다른 인간들은 박해받았듯이, 노해투사는 노해투사적 인간형을 창출하고 숭배해왔다. 조직을 위해 개인의 욕망을 희생하는 사람, 조직의 기준에 맞추어 일상생활을 통제하는 사람, 혁명활동을 위해 삶의 모든 어려움을 견뎌내는 사람, 특히 사회주의 활동을 비밀리에 수행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훌륭하게 이중 생활을 꾸려가는 사람. 노해투사적 주체는 다른 다양한 개성들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주체는 감시와 처벌, 규범적 행위의 반복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노해투사 조직원들이 자신의 자아를 버린 것은 아니었다. 주체성과 자아 존중감 없이 어떻게 생활이 가능했겠는가? 다만, 성원들은 조직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를 구분하는 방식으로 사태를 조정했다. 자신을 온통 규정했던 비합 사회주의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은 조직 안에서, 지역 모임 안에서, 회합 안에서만 확인되고 발휘되었다. 그때에만 비합 사회주의 활동가로서의 노해투사 조직원은 존재감을 가졌다. 그러나 친구들 사이에서, 가족들 간에서, 현장에서, 직장에서 그들은 늘 정체성혼란에 빠졌다.
     

    -J, 「노해투사 콤플렉스-전위주의와 관료주의 사이에서의 열등감, 욕구불만, 강박」


    사자: 노해투사의 해산과정은 페미니즘과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사회주의 운동의 태도에도 중요한 교훈을 주었던 것 같은데요.
     

    성웅: 노해투사의 성폭력 사건과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봐요. 계급환원주의, 조직보신주의, 부차적인 문제와 중요한 문제, 가부장주의와 관료주의... 개량주의, 혁명적 사회주의 가릴 것 없이 지속되고 강화되어온 토대인 거죠. 이와 단절하지 않으면 부르주아 정치의 보완물이 될 뿐 혁명적 전망을 만들어 갈 수 없다고 보는 거에요. 노해투사 성폭력 사건은 이를 명확하고 고통스럽게 제기해주고 있는 것이고요. 단호한 단절 위에서 새롭게 전망을 구성할 수밖에 없어요. 몇 가지 개선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러한 단절 위에서 어떤 정치를 구성해야 할 것인가. 경험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고, 또 현실로부터 진지하게 배워야 하죠. 100년 전의 강령에 대한 해석논쟁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주제에 대한 재평가 작업과 현실에 대한 분석과 학습 속에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를 먼 미래에 고정시켜놓는 것이 아니라, 살고 싶은 먼 미래를 지금 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대안이 뭐냐고 했을 때 ‘질문하면서 배울 것이다’라는 것이 내가 가진 자세예요. 이를 위해 코뮤니스트이 여성주의를 강령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일각에서 여성주의는 부르주아 운동, 부문운동이라고 얘기하지만. 주류화 된, 부르주아 국가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여성들을 동원하는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여성주의가 질문하고 있고 여성주의가 지난 시간동안 싸워온 것을 폐기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을 본다고 하더라도 이 여성주의가 노동운동의 중심에 들어왔을 때 관료주의와 화해할 수 없는 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필사적인 싸움인 거죠.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들이 노동운동에서 사건화 되지도 못했어요. 진압되거나 개인적인 문제로 되는 건데. 여성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우리 운동의 내부에 있어야 해요. 내부로 도입되고 중심에 섰을 때 관료주의와 화해할 수 없는 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거죠. 시에 쓴 것처럼 코뮤니스트는 여성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이런 감각 없이는 전망이 등장할 수 없어요. 귀결은 노해투사와 같을 것이라는 거죠.
     

    사자: 관료주의와 가부장제가 연결되어 있고 이를 강령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인가요.
     

    성웅: 한계가 아니라 이미 퇴행인 것이죠. 공감 능력의 완전한 상실인 건데요.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절규에 대한 공감능력이 상실되는 것은 민주적이지도 혁명적이지도 않은 것이죠. 성폭력 피해자가 “짐승 같다”고 울부짖는데도 노해투사는 미동도 안했어요. 이게 노해투사만의 일이냐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박근혜 정부가 젊은 아이들 몇 백 명을 수장시키는 문제와도, 민주노총이 성폭력사건을 대했던 태도와도, 많은 사회주의조직들이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결되어 있어요.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인 거죠. 그러면서 조합주의를 비판하고 노동조합 관료주의를 비판하며 혁명적 전망을 얘기하는 것은 정말 기만인 것이에요. 정치의 뿌리가 동일한데 어떻게 혁명적 전망이 될 수 있겠어요. 문자화된 분노 이외에 피부로서 공감할 수 있는 능력, 삶으로 받아들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귀 기울이며 찾아가려는 진지한 노력 없이 어떻게 민주주의가 가능하고 혁명적 전망이 찾아질 수 있겠어요. 필사적인 자기노력들을 하지 않으면, 게을러지면 관료주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발생해요. 중단 없는 자기싸움, 생생한 감각과 긴장들, 예민한 감수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거죠. 이건 한계의 문제가 아니에요.
     

    사자: 끝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도주한 성원을 제외하면, 사실 2차 가해를 주도한 성원들을 포함하여 많은 성원들이 적극적으로 해결과정에 임했는데요. 그럼에도 마지막에 잘 매듭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성폭력 사건의 해결 측면에서 평가 지점에 대해서도 얘기할 부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성웅: 오만이 있었죠. 모르면 모른다고 얘기했어야 하는데. 이런 거 가지고 뭐 어떻게 치유가 되고 가해자 프로그램으로 뭐가 바뀌겠냐며 오만하게 여성주의 상담단체들을 폄하했던 점이 있었죠. 그래서 운동적 방식으로 풀 수 있고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책위의 운영과 과정을 보면 노해투사의 감시체계를 보존했어요. 피해자의 분노 앞에서 침묵하는 가해자들에게 너 왜 얘기 안 하냐고 윽박지르고. 노해투사 조직운동에서 그동안 해왔던 방식대로 의지를 강요하며 왜 결과물이 없냐고 하고. 가해자들과 피해자에게 차분하고 구체적인 고민을 할 수 있는 계기, 좀 더 편하게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조건과 그 자리를 제공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다 뒤섞여 애기가 되었죠. 대책위 활동을 지금하면 좀 더 잘할 것 같은데... 당시는 나도 질문을 던지던 때였고, 또 문제의식이 있었지만 대안이 무엇인지 잘 몰랐죠. 비극적인 것은 대책위 활동 과정 속에서 가해자들 사이의 또 다른 성폭력이 발생하기도 하고, 여성주의 학습 속에서 새롭게 성폭력이 인지되어 또 다른 성폭력 대책위를 꾸리기도 하고, 또 이 속에서 가해자들의 반성문에 포함되지 않았던 또 다른 비방이 폭로되기도 했다는 것이에요. 대책위 초기 활동의 기본적이고 중요한 활동을 미숙하게 처리한 결과이기도 하죠. 일련의 이런 과정이 공론화를 가로 막았죠. 정말 고통스런 사건의 연속이었죠. 하지만 가해자들도 필사적으로 자기 잘못을 평가하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건의 경우도 이렇게 필사적으로 반성하고 피해자 치유를 위해 프로그램을 완수를 했던 것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적절한 시기에 정리를 했어야 하는데 결국 하지 못했어요. 다만 노해투사가 스스로 조직노선을 평가하고 단절한 것인데, 자신의 활동을 되돌아보고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알게 된 것은 성과라고 생각해요. 만약 이를 공론화하면 무엇을 잘못한 건지 무엇을 하면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한 큰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안 된 거죠. 대책위 활동에 있어 무지와 오류를 생각하면 어떻게 하면 더 좋았을까 하는 것이 지금도 마음에 남아있어요. 구체적인 대안을 찾지 못하고 또한 낡은 습성을 반복하기도 했지만 이 과정을 통해 배웠죠. 노해투사 대책위 활동을 통해 등장했던 질문들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 질문들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끈질기게 배우겠다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답이에요. 그래서 항상 묻는 것이고요. 노해투사 성폭력 사건과 대책위 활동은 지금도 돌덩이처럼 남아있어요.
     

    사자: 오랜 시간 누적된 문제가 한 순간 터진 것이라 시간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이번 인터뷰가 하나의 매듭을 짓기 위한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해산 직후 주변 활동가들에게 한정적으로 이 사건을 공개했을 당시 다른 사회주의 조직에서 “이건 규율의 문제다. 규율이 확실하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정말 제대로 평가를 남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요. 그 이후 여러 정치조직들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태도나 관료적이고 비민주적인 사건들에 대한 얘기를 듣노라면 지금도 그 의미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얘기가 있다면 해주시죠.
     

    성웅: 어떤 문제든 곁에 있고 귀 기울이고 공감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바로 이곳에서 비판적 활력은 생성된다고 봐요. 삶이든 운동이든 곁에서 나에 대해 동의하고 함께 해줄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한 거죠. 곁은 하나의 정치이고, 공동체가 발생하는 장소죠. 노해투사의 지도력은 곁이 없었어요. 욕구를 억누르라는 것이었고, 그 위에 헌신으로 유지되었던 것이죠. 자기 삶과 운동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자신의 긍정적인 힘들을 밀고 나갈 곁이 없었어요. 그래서 중앙의 지침, 명령이 모든 것을 대체했죠. 그렇게 노해투사는 삶과 운동의 긍정적인 활력들을 대부분 소진시켰죠. 바로 여기서부터 신앙이 발생했어요. 활력이 소진되고 화석화된 신념, 신앙이 강해질수록 뒷문으로 부르주아 정치가 도입되고 공고해졌죠. 곁에 설 수 있는, 지지하고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싸움을 밀어갈 수 있는 구성된 힘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구성된 힘은 무엇보다도 독립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힘이고 비판적 활력으로 직접 행동할 수 있는 힘이라 생각해요. 이것이 코뮤니즘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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