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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4호] 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 : 배신자들의 비난 3
  • 조회 수: 7111, 2015-04-22 13:37:07(2015-04-22)

  • 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 : 배신자들의 비난

     

     

     

    I. 1920년 역사적 드라마의 배경


    II. 러시아, 또는 인류의 역사


    III. 볼셰비즘의 토대 : 중앙집중화와 규율


    IV. 볼셰비즘의 역사적 궤적


    V. 반-볼셰비즘의 두 운동: 개량주의와 아나키즘에 대한 투쟁


    VI. 레닌이 한 것으로 주장되는 '타협안에 대한 승인'의 핵심


    VII. 이탈리아의 문제에 대한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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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장. 볼셰비즘의 토대 : 중앙집중화와 규율


    20차 대회 이후, 같은 인물들이 독재와 테러가 반자본주의 혁명이라면 어디서든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국지적’인, 러시아 10월 혁명의 독특한 현상이었다며 이를 유감스럽게 여기는 야비한 태도를 취했다. 물론, 크렘린 갱들에 따르면, 독재는 세계의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의 수단으로 비춰져서는 안된다. 테러가 아니라 문화, 문명, 그리고 모방을 통해서 이뤄져야만 한다. 그러나 그들 자신의 권력이 위태로울 때에는 독재, 테러, 그리고 야만적인 수단들이 여전히 타당하다!


    바우어-도이체(Deutscher)의 ‘맑스주의’ 교의는 무엇인가? 스탈린은 러시아 혁명이 소비에트와 전력의 공급으로 구성된다는 레닌의 모토를 되살려 이용했다. 그들에 의하면, 스탈린은 정치적 기관 중에서 진정한 대중 민주주의의 대표 단체로 여겨지는 소비에트를 완전히 파괴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다음에 다룰 문헌에서 레닌이 보여주듯이, 소비에트는 혁명 정당의 독재가 없다면 실패할, 독재를 위한 계급 구조이지, 새로운, 다수당 체제가 춤을 추는 우스꽝스런 장소가 아니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전력의 공급에 있어서는 성공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러시아 인민들의 학교와 기술 교육 체계를 이루어냈다. 이들에 의하면 이와 같은 것들은 사회주의가 숨 쉴 수 있는, 모든 훌륭한 민주주의 체계의 기반이다. 스탈린은 의도치 않게 새로운 러시아, 의회, 자유와 다수당, 선거 등의 기반을 쌓았다.


    카우츠키는 스스로 이러한 낡은 바우어의 테제에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이후로 이 악의에 가득찬 기질의 소유자는, 이전에는 무섭도록 박수갈채를 보냈던, 외부의 무장진압에 의해서만 독재의 범죄가 보상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카우츠키는 ‘파트너’ 바우어를 러시아의 ‘건전한’ 진화에 대해 낙관적이라는 이유로 모욕한 반면, 제3자인 아들러는 바우어의 편에 섰다. 아들러가 스탈린이 민주주의자가 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틀리지 않다. 오히려 유럽에 침범한 파시즘적 전체주의에 대한 두려움과, 유럽이 (볼셰비키 전통에 반대하는 극도의 분노와 파렴치함으로 똘똘뭉친) 러시아와 동맹을 맺음으로써 파시즘의 위험으로부터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구원할 것이라는 희망에 의한 것이었다.(아들러는 제3 인터내셔널보다 더 오랫동안 살아남았던, 제2 인터내셔널의 서기장 시절 이야기했다. 얼마나 수치스러운가!)


    그러나 이러한 직업적 기회주의자(professionalists of opportunism)들의 동요는 그들의 테제의 근본적인 중요성에 비하면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공식화된다. ‘문명화’되고 ‘선진화된’ 국가에서의 프롤레티리아, 사회주의 혁명은 테러와 독재가 발생할 여지가 없는 방식으로 일어날 것이다. 러시아에는 선진, 근대 국가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원인들이 중요했다. 짜리즘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그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러시아 인민들이 굉장히 무지하다는 가정이 그것이다. 레닌이 아시아적 독재자였다고 믿는 광대들은 러시아 인민들이 그토록 무식하지 않았더라면 레닌의 방식을 용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열하기 짝이 없는 서구의 전문가들이 과거의 야비한 문화에 근거하여 여전히 생채기를 내고 있을 때, 우리는 반대로 위대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강력한 혁명 본능과, 이미 미래의 과학의 승리자가 된 위대한 맑스주의 정당이 제시하는 역사적 관점을 연관짓는 장엄한 방법을 간파했다.


    본능문화에 반비례한다. 문화는 지배 계급이 셀 수 없이 많은, 한심하고 하찮은 학교들을 통해 유포하는 것이다. 우리는 심지어 초등학교 졸업장이 없다 할지라도, 경험으로 혁명적 진실을 파악하는 뛰어난 자질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존경한다. 혁명적 진실은 부르주아 과학과는 몇 세기나 떨어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스탈린이 하찮은 교육 문화로 러시아 인민들을 사회주의의 수준에 끌어올리는 방법을 취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겁쟁이처럼 후퇴한 세계에서, 그러한 방식으로 러시아 인민들은 소위 ‘진보한 과학’의 근대의 점쟁이들이 목사 설교처럼 이야기하는, 기술과 비실용적 학문으로 가득 찬, 부르주아적 무능함의 수준으로 양육될 뿐이었다.


    비록 러시아 인민들에 대한 문화적 장난질로부터 의회 자유주의는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결정론적 설명이 소용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변증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부르주아지는 자유, 계몽주의적 진보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첫 번째 단계는 계급적인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류를 위한 단계였다. 맑스는 그 두 번째 단계가 어떻게 하부구조와 상부구조 모두에서 계급으로서, 계급 형태로서 계속 성장하는지(자본주의는 미국과 러시아에서 실질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다른 한 편에서는 비인간적이고 몽매한 사회 기관으로 무시무시하게 사라져 가는지를 묘사한다.


    독재는 시급을 요한다. 왜냐하면 이 세계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쇠퇴과정에서 우리를 질식시키며, 교육기관, 대중 미디어와 꼭대기에서 들려오는 자본주의의 승리가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 더욱 더 축제를 벌이기 때문이다.


    바우어, 그리고 아들러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쓸데없는 글을 쓰는 저자들과, 종종 그들과 함께 오물에 떨어지고 마는 모든 철면피 같은 이들은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보편적인 조건


    레닌은 그의 저작 두 번째 장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쟁취할 수 있기 위해 모든 유럽 국가들에서 일어나야만 할 10월 혁명의 성공을 러시아 볼계비키가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들을 다룬다. 우리는 여기서 유럽을 이야기하는데, 1920년의 전망은 서유럽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가 승리를 열망하는 곳이라면 전 세계 어디든 관계있는 것이다.


    레닌은 집필하는 동안 두 가지 역사적인 성취를 이뤘다. 2년 반 동안 엄청난 공격으로부터 1917년 10월의 권력 쟁취와 그 방어에서의 승리였다. 다음은 그의 말이다. ‘당의 엄격하고 진정한 철칙이 없었다면, 또는 노동계급의 전체 대중들, 그러니까 뒤떨어진 계층을 이끌 수 있고,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고민하고, 솔직하고, 헌신적이고 영향력 있는 모든 이들로부터의 전적이고 무조건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볼셰비키는 2년 반은커녕 두 달 반 동안도 권력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예측은 이제와서 거의 보편적인 사실로 여겨진다고 생각한다.’(앞의 책, 514쪽)


    많은 사람들에 의심스러워하고 논쟁했던 규율 요소의 필연성에 대한 레닌의 설명과 그에 맞는 계급 안에서 규율의 의미를 정의하기 전에, 우리는 어떤 시기를 인용하고자 한다. 이 시기는 ... 공산주의의 근본적인 개념인 규율과 다른 것들, 어떤 맑스주의 개념에서도 중추가 되는, 필수적인 중앙집중화(centralisation)에 비교되는 시기이다.


    ‘나는 반복한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승리의 경험은 심지어 그것을 생각할 수 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이들에게조차 프롤레타리아트의 절대적인 중앙집중화와 엄격한 규율이 부르주아지에 대한 승리의 필연적인 조건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윗 글, 514쪽)


    그 시기 레닌은 스스로를 좌익(leftist)이라고 정의하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절대적인 중앙집중화’와 ‘철칙’이라는 두 원칙들에 대해서는 망설임이 존재함을 알고 있다. 그것은 언제나 매우 씁쓸한 것이었다.


    위의 원칙에 대한 저항은 소부르주아 사이에 만연하고 프롤레타리아트에게까지 넘쳐흐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이것이 이 고전적인 저작이 제기하고 있는 진정한 위험이다.


    부르주아지는 역사에서 자신의 임무를 절대 군주제의 폭정에 대한 저주로 이상화시켰다. 중앙 국가의 통제나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며 양심을 억압하는 종교적 권력으로부터 시민 개인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옹호한다는 것이다.


    부르주아 급진주의는 자유사상의 수사를 교육시켜왔으며, 규율을 이야기하는 모든 사상들은 교회의 반계몽주의로의 회귀로 여겨졌다. 흩어져 있는 생산력의 집중과 나아가 지방분권적이었던 중세에 반대하여 국가로의 권력의 실제적인 집중이라는 진짜 단계를 밟아 온 이 자본주의 경제 조직은 사기업의 자율과 경제적인 자유주의에 대한 이름으로 스스로를 위장했다. 중앙집중주의에 관한 모든 단어들은 자유로의 도정에서의 후퇴로 여겨져 거부되었으며, 자유주의에의 배신으로 취급되었다. 자유주의(libertarianism)의 악화는 19세기부터 일부 프롤레타리아 계층을 꾀어왔다.


    당의 형태에 대해 위험스럽게 제기된 의심의 잘못된 논리 중 하나는 당이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강요하는 교회이며, 모든 결정이 중앙으로부터 비롯되는 군대 막사라는 것이었다. 우리를 수십년동안 방해해 온 이런 종류의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레닌이 단호하게 반대해 온 것이며, 그와 맞먹을 만한 정열로 맑스주의 좌익, 특히 이탈리아의 맑스주의 좌익이 항상 싸워왔던 진정한 유치증(infantilism)이다. 우리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살아있는 수세대의 속물스런 앞잡이들의 더욱 야만스러운 공격을 받으면서, 아마도 위대한 레닌보다도 더 무분별할 정도로, 동지들에게 항상 이야기했다. 그렇다. 만약 내가 당에 있다면, 나는 개인적인 생각과 비판적인 의견을 하루에 일곱 번이고 참고 조용히 있어야 하며, 나의 행동은 나의 개인적인 의지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역사가 당을 통해 보여주고 지시하듯이 당의 비인격적인 의지로부터 비롯될 것이라는 것이다.


    대체 누구로부터 그러한 집단의 명령이 비롯되는가? 우리는 언제나 기계적이고 형식주의적인 규칙의 존재에 대해 부정했다. 그런 부르주아 방법이 많은 상황에서 필수적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권력을 가지는 것은 1 더하기 2 분의 1이 아니다. 우리는 형이상학적 규칙으로서 당, 노동조합, 위원회나 계급 내 ‘두목의 숫자’를 용인하지 않는다. 불안한 대중들로부터도, 당 구조(우리가 보았듯이 레닌은 과두제라고 말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내부의 그룹으로부터도, 또는 개인으로부터도, 레닌으로부터도, 1917년 4월과 10월에 그러했던 것처럼, ‘모두’의 의견에 반대하는 결정적인 의견이 나올 것이다.


    독재는 전쟁이다.


    레닌은, 우리의 것은 어쨌든 실험적 유물론이며, 역사로부터의 교훈이 우리를 이끈다고 여기서 이야기한다. 만약 우리가 러시아에서 승리한다면, 그것은 규율을 받아들이고 중앙집중화를 이용한 것에 따르는 사건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둘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성공의 두 조건이다. 규율과 중앙집중화를 완전히 승인한다는 것은 극단적인 경우, 극소수의, 또는 오직 한 명이 이야기하고 결정을 내리며, 다른 이들은 완전히 납득하거나 단호하진 않더라도 명령에 복종하고 수행하는 경우이다. 따라서 이는 혁명적 역사에 선행한다.


    자, 이제 보자. 이 인상적인 문구에서는 규율과 특히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자들 고유의 ‘나는 내 자신의 마음에 따라 생각하길 원해’라는 어리석은 변덕을, 그리고 중앙집중화와 분권화, 자율, 경제적 생산과 사회적 형태 모두의 분자적 파편화를 무자비하게 대비시킨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더 강력한 적, 부르주아지에 저항하는 새로운 계급에 의한 가장 결정적이고 가차없는 전쟁을 의미한다. 부르주아지의 저항은 (심지어 단 하나의 국가에서도) 그들 자신이 전복되면서 10배 증가하며, 그들의 힘은 국제적인 자본, 국제적인 연결망의 지속성과 강도뿐만 아니라 소규모 생산의 강력함에 있는 습관의 힘에도 있다. 불행히도 소규모 생산은 여전히 세계에 만연해 있으며, 이들은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지를 지속적으로, 매일, 매시간, 동시적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발생시킨다. 이 모든 것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가 필수적인 이유이며, 부르주아지에 대한 승리가 끈질김, 규율, 그리고 단호하고 확고한 의지가 요구되는, 길고 완강하며 필사적인 사활을 건 투쟁 없이는 불가능한 이유이다.’(위의 책, 514쪽)


    레닌의 강조를 포함한 이 글 속에 우리가 본분으로 생각하고, 심지어 우리가 현학자라고 여겨진다 할지라도 그 정도로 깊이 심사숙고한, 일련의 모든 사상들이 다시 언급된다.


    아나키스트들과 유치한 혁명가들은 혁명적 행위를 1회성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거나, 적어도 전투의 일부로 폄하한다. 부르주아지는 이를 보편적이고 결정적인 폭동으로 여겼다. 그러나 혁명적 행위는 그런 것들이 아니라 사회전쟁의 시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서막이다. 그 원인은 본질에서부터 다르며, 처음에는 내적이고, 민족적이며, 다음에는 국제적이고, 마지막으로 ‘사회적’이다.


    무엇보다 부르주아지로부터 권력을 쟁취했다는 것(오직 이미 (부르주아지의 권력이) 독점적일 때에만! 그 때 최초의 승리는 더욱 쉽고, 전쟁은 짧아질 것이다)은 경제적 권력을 제거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독재의 의미는, 부르주아 정당이 산산히 흩어지고, 부르주아지가 새로운 국가에서 계급으로서도 개인으로서도 아무런 대표성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계급 테러의 의미는 부르주아지가 스스로의 정치적인 영향력을 다시 획득하려는 어떤 시도도 박멸될 것임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지 소수가 제거된다거나 추방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1917년 이후 몇 년간 러시아의 몇몇 회사들처럼, 소유주는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통제 아래 있을 것이지만, 그 정도는 그의 노동자들만큼도 아닐 것이다. 자유주의적 환상에 의하면, 그 유명한 자율적인 생산자들의 연합에 의해 하루 온종일의 전투가 수행될 것이고, 그 후 곧 물리적 생산이 완전히 정지하는 것보다는 덜 위험하지만, 여전히 극단적으로 위험한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적으로 패배한 부르주아지는 더욱 강력하며(여기서 레닌은 매우 명료하며, 모순적이라는 비난을 거부한다), 우리는 그 이유를 침착하게, 이전보다 10배는 더 긴 목록으로 작성할 것이다. 이 시기에 군수공장은 멈출 수도 있고, 다른 민족적 부르주아지들이 공격하고 있는 전선에서의 패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공장의 공격 부대는 부르주아지를 도울 준비를 할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지를 위해서라도 8발의 총알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 총격은 혁명 세력의 군대를 제거할 것이다.


    그러므로 식량뿐만 아니라 군수품의 생산 논리는 부르주아지를 위험한 존재로 만든다. 부르주아지가 권력을 빼앗긴 이후에라도, 모든 관리적, 기술적 기능들을 그들로부터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지의 연대


    더욱이, 어려운 국제적인 문제도 있다. 우리는 몇몇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부르주아지가 같은 날 동시에 그 정치적 권력을 잃을 것이라고 가정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교묘한 실수를 했다면, 사회 민주주의자들의 함정의 피해자가 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오직 한 국가에서만’ 권력을 쟁취하지 말라고 (동시에 정치권력을 쟁취하라고:역자 주) 권한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언제나 해야 할 것으로, 역사적으로 시작된 세계 혁명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언제나 부르주아 국가의 가장 약한 부분을 전복시킬 것이고, 1917년 당시 신생 러시아 국가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것은 정확히 봉건적 정권의 무너짐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승리적인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관점에서, 삽입된 레닌의 글에서 독자가 읽은 것은, 최소한의 호의적인 상황이 다른 국가들이 여전히 부르주아지의 손에 있을 때임을 의미한다. 만약 역사적으로 주어진 시기에 근처의 국가들이 전복된다면, 승리적인 공산주의 독재의 상황이 지속적으로 나아질 것이다. 오늘날 그러한 가정은 추상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 당시에는 거의 현실화되었던 일이다. 1919년 1월, 우리는 영광스럽게 시도된 독일의 스파르타쿠스 혁명(spartacist revolution)의 승리를 희망했다. 1919년, 헝가리에서는 우리는 승리 후 패배했고, 그 패배는 독재의 강화에 대한 민주-자유주의적 유형의 망설임이라는 피할 수 있었던 실수로 인한 것이었다. 그 이후 곧 같은, 또는 거의 동일한 일이 바바리아에서 발생했다. 이러한 거대한 순간들이 그 당시의 모든 유럽인들의 눈 바로 앞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레닌은 이러한 일들을 소홀히 하다가는 파업과 실천에서 더 큰 패배를 겪을 것을 우려하며 이야기했다. 1920년, 2차 당대회가 있었던 바로 그 시기에, 러시아-폴란드 전쟁이 한참일 때, 우리는 바르샤바로부터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대한 승리 이후 재빨리 국가간의 중재가 이뤄졌고, 이는 붉은 러시아와 베를린 사이에, 부다페스트, 그리고 뮌헨의 요새 사이에 완충장치가 되어 어떤 도움을 받을 기회도 없었다. 만약 그것이 심지어 단순한 군사적 행위를 통해서였을지라도 바르샤바를 전복시켰더라면, 강력한 프롤레타리아트와 공산당에 의해 중앙-서유럽을 정복하는 계획은 역사에서 부활했을 것이다. 그러나 눈치빠른 프랑스의 부르주아지는 위태로운 폴란드 자매를 여러 수단을 통해, ‘영웅적인’ 장군들로 하여금 지원하도록 했고, 혁명의 파도는 막혔다. (바르샤바라는 중요한 목표로부터의 러시아 공격의 재앙스런 양동작전에 대한 트로츠키와 스탈린 사이의 논쟁은 잘 알려져 있다. 잘못 전달된 전보는 몇 십년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


    레닌이 이 글에서 이야기한 것은 모스크바의 첫 번째 독재가 무엇이든 홀로 부르주아 국가를 전복했다고 털어놓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읽었던 것처럼, 국제적인 요인들이 자본과 국제적 부르주아지들의 연결을 강화했기 때문에, 최악의 조건 속에서 투쟁이 계속되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중앙집중화와 독재를 통해 획득하는) 독재의 활력을 필요로하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문제를 논하기 전에, 다양한 정권을 가진 외국의 내적인 문제에 대한 무관심! 이라는 표현은 레닌에게 있어서 잘못 쓴 문구의 문제가 절대 아니었다는 것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레닌(그리고 모든 제3 인터내셔널 창립시기의 모든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이 신경쓴 것은, 러시아에서의 프롤레타리아 권력에 대한 것이었고, 무엇보다 경험으로부터 획득한 뛰어난 교훈에 대한 것이었다. 이는 맑스주의 혁명 이론의 옳음을 명백하게 확인함으로써 이뤄질 것이며, 이것은 ‘다른 국가들’의 내적 균형상태에 영향을 행사하고, 그들의 헌법적 구조를 날려버리고 철저히 소거할 것이었다. 여기서 레닌은 그 방법들을 논의하고 선택한다. 레닌은 많은 좌익의 유치한 작자들이 어리석게도 그러하듯이, 이러한 방법들이 아름답지 않고, 우아하지 않으며, 상냥하거나 깨끗하지 않다고 해서 사용하지 않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추론이지 맑스주의가 아님을 가르쳐주고자 한다. 그러나 먼저, 목적을 이해해야 한다. 레닌에 따르면, 특정한 환경에서는 의회에서 투쟁함으로써 민족적인 균형과 부르주아 헌법구조를 전복시키는 데 공헌하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적인 근거에서 그러한 가능성을 논의하길 거부할 ‘선험적인’ 이유는 없다. 오히려 반대로, 우리가 그러한 방법을 승인할 역사적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 헌법적 구조를 존중하고 방어하려 한다면, 그리고 대중들로 하여금 이를 영속화하도록 재촉한다면, 이는 더 이상 레닌이 이야기한 그런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목적이 뒤집혀 거부된 것이다.


    우리는 아직 의회주의를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레닌이 직면한 그 문제 - 의회를 가능한 한 빨리 죽이기 위해, 그 외부에서 활동하는 것이 나은가, 내부에서 활동하는 것이 나은가? - 를 보여줄 기회가 있을 것이다. 레닌이 우리의 해결책에 대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는 그의 방법이 미덥지 않다. 그러나 이탈리아 또는 다른 나라들에서 ‘내부 정권과 의회 헌정을 존중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레닌과 우리는 그러한 패거리들을 향해 불덩이를 던지는 경쟁을 할 것이다.


    독재의 쟁취 이후에도 부르주아지가 여전히 강력한 적이라는 개념은 레닌이 ‘타협’을 다룬 다른 글에서 반복될 것이다. 다음은 거의 같은 문장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첫 번째 사회혁명 이후, 그리고 몇몇 국가들에서의 부르주아지 전복 이후, 그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오랜 시간 부르주아지에 비해 약한 채로 남는다. 이는 단지 부르주아지가 광범위하고 국제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각 국가의 부르주아지를 전복한 소생산 부르주아지들이 자본주의를 자발적이고 지속적으로 회복시키고 재생시키기 때문이다.’(앞의 글, 550쪽)


    그러므로, 레닌이 고립된 국가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는 다른 국가에서의 혁명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본주의적인 구조를 온전히 가진 채로 평화적으로 ‘존재하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이론을 세웠다는 근대의 돼지들의 주장에 대답하는 것이 여전히 필요한가? 레닌은 40년 전 두 가지 가능성으로 이미 대답했으며, 그 중 불리한 가능성이 현실화되었다. 긍정적인 가능성은, 사회주의 정치가 승리한 국가가 다른 외국의 혁명을 계속 조장하는데 성공한 경우이다. 그 결과로 프롤레타리아트가 약함으로부터 내부의 저항에 대해 강해졌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스탈린의 경우가 그러한데, 다시 말해 더 이상 국제적인 혁명을 조장하지 않은 경우, 내적 상업주의와 소상품생산자들은 자발적으로 내적, 사회적 자본주의를 부활시키고, 국제적 부르주아지에게 항복할 것이다. 그들은 이미 함께 존재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합쳐져도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파렴치하게도 10월의 전통과 레닌의 가르침을 능욕하고 있다.


    우리,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은, 계급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레닌에게는 헛된 것으로 보였던, 우리 좌익이 표현한 공포를 따랐던 우리의 세계 당 조직이 없었더라면 ‘우리 이론의 적절함’은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그들의 레닌주의를 뽐내는 이들은 똥투성이 늪지의 바닥에 있었다. 레닌은, 역사의 이론가로서, 숭앙받고 더렵혀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


    사회적 위험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승리했고, 그 당은 독재를 공고히 자신의 손에 넣었다. 그러나 외국으로부터 오는 위험과는 별개로, 백군에 저항한 내전에서 승리한 이후에도 내부의 위험은 남아있다. 레닌이 명확하게 정식화한 정의에 의하면 그것은 소규모 생산이다.


    맑스주의의 의미에서 독재 전후의 소규모 생산은 대규모 생산보다 더 위험하다. 공산주의자들은 많은 수의 소생산자가 굴복하는 과정을 소부르주아지의 망상으로 묘사할 수 있지만, 그것은 거부되거나 회피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경우에서, 맑스와 엥겔스의 몇몇 문장이 아닌 모든 글에서, 이러한 테제의 힘을 우리는 보여주었다.


    레닌에게 있어서 맑스주의의 변증법은 이미 완성에 도달한 것이고, 그를 따르는 것은 고된 일이다. 그러나 배신자들의 죄는 그 무지가 아니라 노골적인 강도짓에 있다. 이탈리아어로 carogna(짐승의 썩은 고기 – 이 문맥에서는 악당들로 번역된다)는 원래의 의미에서 악취가 있다고 해서 비난할 수 없는 시체의 잔해를 가리키는데, 신화와 의례, 매장의 수단으로 시체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단어를 비유적으로, 우리나라 감옥의 훌륭한 손님들이라는 의미로 쓴다. 감옥에서는, 범죄자는 다른 범죄자를 버림받았다고 경멸하지 않으며, 본능적으로 피해자로 여기며 악행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의 범주는 제외된다. 그것은 악당(scoundrel)이다. 이들은 스파이이며, 모두를 억압하는 감옥 구조에 밀고하는 자이며, 자신의 탐욕스런 이득을 위해 그의 동료들의 운명을 더욱 괴롭히는 자이다.


    다시 레닌의 문구로 돌아가보자. 여기서 소상품 생산자라는 표현은 비-프롤레타리아 대중의 구성원과 같은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가 그런 사회적 집단(소규모 자영농과 도시의 장인들, 그리고 비슷한 형태의 집단을 포함한 집단)을 다룰 때, 레닌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들과 동맹을 맺어야 하며, 짜리즘에 반대하는 투쟁의 단계에서 뿐만 아니라 그 다음 단계인 산업, 농업 자본가 부르주아지를 반대하는 투쟁에서도 그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레닌이 이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러시아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존재하는, 의사(疑似)적 형태에 대해, 차이는 있지만 상당히 많은 정도로 이야기할 때, 그는 이미 자리잡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게는 가장 큰 위험이 되는 형태라고 가리킨다. 소상품 생산자의 경제적 유형에 대해 이야기하는 한, 농업과 메뉴팩쳐는 모두 변화하는 사회 내에서 용인될 것이며, 레닌와 같은 단어로 표현하자면, 자본주의, 독재는 매일, 매시간 고개를 쳐들고, 자발적으로, 지속적으로 부활할 것이다.


    공산주의 독재는 어떻게 그러한 부활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농민과 장인 계층, 또는 통계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보다 더 많은 소생산자들을 닥치는 대로 제거하는 함으로써 되는 것은 확실히 아니다. 산업 부르주아지가 여전히 생산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때 독재를 통해 그들을 섬멸시킬 수 없다면, 또는 추방하거나 감옥에 가둘 수 없다면, 이러한 시기는 상당히 길어질 것이다. 사유재산은 많은 관심 속에 매우 빠르게 폐지될 것인데 반해, 매우 적은 관심 속에서 우리는 소생산자를 오랜 기간 용인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단계가 얼마나 길어질 지에 대해, 그리고 스탈린이 1928년 미심쩍은 집산화와 쿨락, 또는 부유한 농민들의 제거를 통해 그 기간을 줄였다는 주장의 오류에 대해, 우리는 러시아의 구조에 관한 우리들의 많은 연구들, 그리고 최근 출판된 저작(Il Programma Comunista, 1960년, 여름-가을호), ‘Dialogato coi Morti’(1956), 그리고 ‘L’économie russe de la révolution d’Octobre a nos jours’(1963)에서 이미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반드시 소상공인 계급과 공존(불행히도 이러한 표현은 적절하다)해야만 한다면, 이러한 심각한 위험에 대해 레닌은 어떤 처방을 바라고 제안했었을까? 당장은 당과 정치적인 치료: 의심할 바 없이 규율중앙집중화이다. 이를 볼셰비키는 시의적절히 이해했고, 이를 통해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동맹이었던 짜르와 러시아 부르주아지에게 농민과 노동하는 소부르주아지가 갖는 증오를 이용하는 거대한 ‘책략’을 사용하고, 그 동안 그러한 하이브리드 계급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적 리더십과 공산당의 우월성을 확신시키고, 그러한 계층으로부터 오는 정치적인 조직을 조금씩 제거하고 파괴함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하이브리드 계층들이란 멘셰비키 사회민주당과 사회혁명당, 인민당을 비롯한 러시아 혁명에 대한 비맑스주의 비프롤레타리아 공식을 지지하는 세력들이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서, 중앙집중주의와 규율은 분명히 종속을 의미한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소생산자 계급은 혁명에서 헤게모니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에 종속된다. 레닌이 당 내에서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내에서의 규율을 이야기할 때, 그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전체가 공산주의 정치 당 내에서 조직된 그 전위의 엄격한 리더십을 따라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당을 정상에 위치시키는 것은 오히려 레닌이 이 글을 통해 투쟁하고자 했던 유치한 편견을 낳았다. 그러한 (우리가 이탈리아와 외국에서 싸웠고, 그리고 지금 전후 시기, 그리고 항상 싸울) ‘즉자주의자(immediatists)’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 협의체 체계는 다소간의 선출 메커니즘과 그에 대한 복종을 통해, 반드시 그 정책을 당과 의논하고 결정해야 한다. 당은 반드시 계급과 대중으로부터의 복종을 요구해야 한다. 오직 당만이 모든 시기 모든 국가의 혁명 역사의 경험을 통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레닌은 볼셰비키 당이 그럴 수 있고, 그것이 왜 승리했는지의 이유이며, 모든 나라에게 그 길을 가리켜야 함을 보여주었다.


    볼셰비즘의 역사


    뜨거웠던 1920년의 사건으로 인해 레닌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필수적인 규율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지 이해하기 위해 어떤 요인이 필수불가결한지에 대해 볼셰비키 당의 완전한 역사를 서술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제기한 아이디어는 문제를 이해하기에는 더없이 충분하다.


    규율의 기반은 우선 ‘프롤레타리아 전위의 계급의식’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는 당에 모인 프롤레타리아 소수인데, 레닌이 이 전위의 합리적인 특징보다 ‘열정적인’이라는 특징에 관심을 기울였고,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는 이성적으로라기보다 본능적으로 당에 합류한다는 글이 그의 저작 ‘무엇을 할 것인가’를 비롯한 다른 저작들에서 많이 보인다. 그런 테제는 1912년 이탈리아 청년 사회주의당이 그 당시에는 문화주의자와 반문화주의자들의 투쟁으로 불렸던 논쟁에서, 언제나 아나키스트가 ‘교육론자’로 불리는 것과 같은, ‘즉자주의자’에 반대한 주장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반문화주의자들이 학력보다 청년의 혁명적 믿음과 감수성을 요구했으며, 이들이 유물론과 당 이론의 엄밀함에 엄격히 따르고 있음을 증명했다. 레닌은 학술적인사람이라기보다 활동가로서, ‘헌신, 끈기, 자기희생, 무용’의 훌륭함을 언급했다. 소심한 학생들로서 우리는 최근에 와서야 변증법적 해결책으로, 당을 고수해야 한다는 ‘영적’ 사실을 요구한다.


    이것이 첫 번째 기반이다. 두 번째로 레닌은 전위에게 ‘광범위한 노동 인민 대중, 주요하게 프롤레타리아와 그 뿐만 아니라 노동 인민의 비프롤레타리아 대중과 어떤 특정한 방법으로 연합하고,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그리고 만약 당신이 원한다면, 동화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앞의 책, 515쪽)


    그러나 연합한다는 것이 만약 대중의 분위기가 차갑고, 파시스트적이며, 타협적이라고 해서, 기회주의자 타르튀프(Tartuffes)가 이 부분을 해석하는 것처럼, 당이 반드시 그 수준까지 맞추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연합한다는 것은 당이 대중과 연결됨으로써 혁명적 기운을 끌어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여러 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실 이것은 우리의 발견이 아니다. 자기조직화를 통해서 정치적인 당이 된 이들에 의해서만 (소생산자에 의해 감염된) 무정형의 노동 대중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선택될 수 있다. 혁명당 없이 진정한 계급, 역사의 주체, 혁명적 독재의 내일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앞의 두 근거에 대한 설명으로서 그것들과 분리 될 수 없는 세 번째 근거이다. ‘셋 째, 전위에 의한 정치적인 리더십, 그리고 정치적 전략과 전술의 옳았음을, 광범위한 대중들은 그들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보아왔다.’(앞의 책, 515쪽)


    우리는 윗 구절이 다른 많은 것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가 ‘옳음의 이론’(theory of rightness)이라고 부르는 것을 형성하는 근본이라고 믿는다. 만약 대중들이 진정한 역사적 투쟁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통해 혁명당 전략의 옳음을 증명해야 한다면, 그것은 역사의 과정에서 당이 대중에 선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은 과거 역사의 해석적인 이론 덕분에 역사발전으로서 계급투쟁의 형식이 과거의 대안적 사회적 형식을 따를 것임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당은 어떤 추진력이 결정적인 단계가 되어 대중을 휩쓸지, 어떤 계급이 이론과 당으로 무장하여 계급의 주인공이 될 지 미리 내다보았다 – 어떤 의미에서 실질적으로는 예언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일들이 일어날 때가 되면, 심지어 경계가 애매한 대중들조차도 과거에 어떻게 투쟁 속에서 단호한 세력으로 훈련되는지, 그리고 당이 보편적인 투쟁 속에서의 묘사로 그 사건들을 올바로 예견했다는 사실을, 경험할 것이다. 레닌은 산업 프롤레타리아트가 투쟁의 선봉에 섰던 1905년 이후에 러시아 농민들이 어떤 시각을 가졌는지 이후에 보여줄 것이다. 레닌은 혁명을 이론화하려 했던 다양한 당이 쇠퇴함을 논의하는 것으로 나아갈 때, 이후에 논의를 주도할 관점에서, 그는 농민과 소생산자들이 전반적으로 러시아에서 헤게모니적 계급이 됨으로써 혁명을 대표하는 세력으로 여기려 했던 이론들이 실패했음 보여주었다. 이것은 한 편에서 구 프루동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왜곡되고 이론적으로 상궤를 벗어난, 다른 한 편에서 오늘날 친-러시아, 친-크레믈린 기회주의의 파도에서 경솔하게도 다시 일어나고 있는, 인민주의다. 농민들은 이미 그들이 봉건주의로부터 해방되는 게임에서 패배했으며, 그들 앞에 훨씬 더 훈련된 노동자들과 그들의 볼셰비키 당이 없음을 깨달았다. 같은 사건은 멘셰비키도 제거했는데, 소생산자들의 눈에는 공산주의자들의 논쟁적인 암시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당들이 마치 대규모 생산자들과 동맹인 것처럼, 반혁명자들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보였다.


    여기 거대한 대중들의 경험 속에서 계급의 혁명적인 당의 정치적인 전략의 옳음을 보여줄 수 있는 실질적인 예가 있다.


    그런 호의적인 상황의 결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당은 반드시, 과거에 그러했던 것처럼, 소부르주아지 정당들이 했던 것처럼 어떻게 될지 기다리거나 대중의 승인을 기다리지 않고 발언해야만 한다. 당 이론은 과거 사건들의 과학적인 설명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용감한 예상이어야 한다. 대중은 그것을 경험해야 하지만, 당은 그 전에 이를 알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


    이 시점에서 그들은, 그리고 그의 계승자들은 스탈린의 추잡한 변형을 정당화한다. 레닌은 이 문구에서 이론은 교조가 아니다(theory is not a dogma)라고 이야기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당은 언제나 새로운 것으로 변할 준비가 되어 있고 그런 경향이 있다는 어리석은 해석으로 이해하여 이를 이용해 마치 ‘교조적인, 탈무드같은’ (당의) 변형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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