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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은글씨 2호] 장기해고자가 바라본 해고자의 삶과 노동운동 전망
  • 조회 수: 9097, 2015-06-04 14:27:33(2015-06-04)
  • 장기해고자가 바라본 해고자의 삶과 노동운동 전망

     

    붉은글씨 2014 특별기획 : 장기해고자 간담회

     

       

     정리|국제코뮤니스트전망

       

    김운용 (사회보험노조 해고자)

    이영덕 (사회보험노조 해고자)

    유명자 (재능지부 해고자)

         이동우 (기아차 비정규직 해고자)

             현희숙 (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지부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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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기획은 한국 노동운동에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장기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운동사회 전반을 가감 없이 들여다보고 이후 전망을 밝혀보고자 했습니다. 일상과 투쟁이 분리되지 않기에 삶과 투쟁 모든 면에서 수많은 장벽과 싸워야 하는 동지들의 삶에 다가가 운동의 현실과 전망을 밝혀보려 합니다. 장기해고자 간담회는 2차례의 간담회와 추가인터뷰로 이루어졌는데, 이번 호에는 1차 간담회 내용을 중심으로 싣습니다. 2차 간담회와 추가 인터뷰는 현재 진행 중이라서 이번 호에 싣지 못했는데, 신속히 마무리하여 온, 오프라인상에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각자 해고의 경과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십시오.

    김운용 :

    2000년 7월 11일 자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 점거농성 총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었습니다. 평조합원 신분이었음에도 복직이 이루어질 때마다 복직명단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이하 '해복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영덕 : 저는 2010년 11월에 해고되었습니다. 당시 대규모 전보투쟁이 있었는데, 저는 서울본부장이었고, 나중에 해고되었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복직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동우 : 2006년 11월 28일 해고 되었습니다. 사유는 무단결근에 의한 해고였습니다. 당시 비정규직지회 조직부장이었습니다. 비정규직지회가 건설됐을 무렵, 당시 30여 개의 업체 중에 25개 업체는 단체협약 체결이 되었고 몇몇 업체들은 단체협약 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단체협약 미체결 업체들을 중심으로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투쟁했습니다. 조직부장 활동을 하던 저에게 사측은 무단결근을 문제 삼았고, 우리는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표적탄압으로 판단했습니다. 그 일로 해고는 8월에 먼저 됐습니다. 그 후 10월에 단체협약이 체결되면서 원청과의 3자 교섭 테이블(원청, 정규직노조, 비정규직지회)을 진행하면서 합의서를 통해 복직을 권고한다는 내용으로 회의록이 작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경우는 사측이 공장 밖으로의 복직을 요구해서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거부했고, 비정규직지회는 사측이 먼저 회의록을 파기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사측과 지금까지 싸우고 있으며, 조합원을 인정하지 않는 노동조합과도 투쟁하고 있습니다.


    유명자 : 2007년 12월 21일 투쟁을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해고는 아니었습니다. 단체협약이 개악되면서, 임금제도 개정을 요구했는데, 사측이 단체협약 해지 통보를 해서 11명의 해고자가 발생했습니다. 2008년 11월 1일 자로 계약해지 통보가 되었습니다. 사측은 11월 1일 자로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했고 일방적으로 개악된 임금제도에 사인하고 현장복귀 하라는 명령을 했습니다. 개악된 임금제도 때문에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현희숙 : 2012년 8월 31일 자로 해고가 되었는데. 그 이후 1년간 총 세 번의 해고를 당했습니다.

    # 동지들이 해고자 투쟁을 현재에도 지속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동우 : 저는 항상 해고자들이 복직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조합원들에게 선전선동 할 때마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투쟁은 정당하다. 그 정당성을 마지막으로 확인받는 길은 해고자들이 우리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우리 투쟁을 하다 해고되었다. 혹자들은 ‘자본과 싸우다 밀려난 포로다’라고 이야기도 하지만, 그건 최종적으로 확인을 받아야 하는 문제이다. 최종의 과정이다”라고.


    유명자 : 일단 우리는 투쟁기간과 해고기간이 비슷합니다. 단체협약 투쟁을 전개하다가 해고되었습니다. 원직복직은 기본적으로 단체협약이 해결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원직복직을 내걸고 투쟁하면서 조합원들의 복직과 단체협약을 거래할 생각은 없습니다. 단체협약이 우선입니다. 왜냐하면, 이 투쟁을 하지 않았다면 해고도 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희숙 : 해고자 투쟁을 하는 이유는 내가 그 해고를 인정할 수 없으니까요.


    김운용 : 노동조합은 한번 밀리면 계속 밀리게 되어 있습니다. 노동조합은 사측보다 우위에 서거나 최소한 사측에 대한 방어망은 되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건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해고라는 것이 생계에 위협이 됨에도 불구하고 노사평화선언을 강요할 때 그것을 거부하고 사수대를 조직했었을 때, 그리고 해고되었을 때, 그 기억은 오래 남게 됩니다.

    # 현재 장기해고자로서 일상의 삶과 현장에서의 투쟁은, 예를 들어 생계문제 해결이나 투쟁방식은 어떻게 해나가고 계십니까?

    유명자 : 아시다시피 우리는 장기투쟁 사업장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장기투쟁 사업장, 비정규직 사업장, 특수고용노동자 투쟁, 해고자 투쟁의 경우, 생계문제는 후원과 재정사업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1년 내내 투쟁하면서 재정사업도 두세 번씩 해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재정사업을 하는 이유가 생계비를 모아서 해고된 조합원들에게 생계비로 나누어 주는 목적도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투쟁을 알리거나 조명받기 위한 목적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거에는 대공장이나 대기업 노조에서 연대는 못 하더라도 양심에 걸려서 일정금액을 후원하는 기풍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것도 거의 없어져서 투쟁하면서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장기투쟁 조합원들이나 해고 조합원들이 가족이 없는 경우 지금은 큰 걱정이 없다 해도 노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달 한 달을 근근이 살아가기 때문에, 아무리 사회주의를 꿈꾼다지만 현실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초기에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재정사업을 수차례 했었고, 많은 호응도 있었지만 큰 금액을 벌어본 적은 없습니다. 생계비 지급에는 단계가 있었는데, 5년이 넘는 동안 해고된 단계도 다르지만, 실제 농성투쟁을 오롯이 한 사람은 4~5명밖에 안 되었습니다. 3년간은 정말 눈물 나게 힘들었습니다. 해고생활을 중단하거나 투쟁을 중단하거나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이 문제는 민주노총이 껴안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


    김운용 :   사실은 짧은 기간 복직되었다가 두 번의 해고를 당하면서 해고기간이 총 20년이 됩니다. 직장생활 30년 중 해고자의 신분으로 80%를 살아왔습니다. 처음에는 노동조합에서 생계비 지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계 때문에 무척 어려웠는데, 막노동 나가면서도 보름에 한 번씩 몇몇 동지들이 돌아가면서 공단 앞에 텐트 농성을 했습니다. 당시 아이 기저귀 살 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고자 중에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님이 쌀을 보내오면 서로 나눠 먹기도 하고 여러 가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초장기 해고자에다 심지어 아내도 함께 해고를 당하다 보니 아빠 직업을 물어보면 아이가 우리 부모님은 "독립 운동하신다."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렇게 10여 년 싸우는 과정에서 수십 명의 해고자가 복직되었고, 투쟁으로 인해 노동조합 가입률이 높아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서 생계비를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노조 분위기가 되었음에도 한편에서는 해고자를 조합비를 축내는 사람들로 공격하는 조합원도 있었습니다. 특히 집행부를 비판하면, 해고자 생계비 문제를 걸고 나와서 임금을 반납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동우 : 저는 개인적으로 아직 가정이 없는 상태에서 투쟁을 하고 있다 보니 생계문제에서 다른 동지들에 비하면 조금 나은 편입니다만, 그동안 조합원 동지들이 보여줬던 정과 의리 등에 대해서 많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제가 해고 되고 나서 비정규직지회에 있을 때, 첫 해고자이자 해고 상태가 계속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동지들이 재정사업을 한다거나 성과급을 찔러주면서 부끄러워했습니다. “이것밖에 못 준다”, “이걸 주는 손이 부끄럽다” 하시던 중년 조합원들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교도소에서 어떻게든 나왔는데, 연대 동지들과 지인들이 많이 와주었습니다. 특히 저의 아픔을 함께 나누느라 너무 많이 아파했고 면회도 많이 와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꼭 조합원들에게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 해고자가 되고 나서 신분의 변화가 생기게 되었는데, 해고 이전과 해고 이후 사회적 관계는 어떻게 변화했습니까? 해고자가 되고 나서 동지들은 운동에도 변화를 겪게 되었을 것입니다. 노동조합의 일상적인 활동만이 아니라, 해고자 투쟁을 통해 각자 운동의 질적인 변화가 있었을 텐데, 가감 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현희숙 :

    사실 처음 투쟁을 하면서 집회를 하고 가는 것만으로도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는데, 지금은 해보니까 연대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관계의 변화는 투쟁하면서 개인적인 삶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친구도 동료도 못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삶이 피폐해지기는 했으나, 오래 살아서 그런지 내가 해고되었다고 해도 별스러워하지도 않고 "너다운 짓이다" 라며 잘 싸운다고 이야기합니다. 일단은 가족들도 제가 해보겠다고 하니, 말려서 안 될 것 같으니 다 포기하더군요.

     

    투쟁하면서 느낀 점은 자본은 나보다 똑똑하고 빠르고 연대도 잘하더라는 것입니다. 가끔 한계에 부딪히면 그만두고 싶다가도 회사라는 존재 앞에서는 어느새 투쟁을 이야기 하고 있답니다. 노동조합에 들어가 보면 투쟁 의지가 떨어지는데, 자본의 탄압이 오히려 투쟁 의지를 높이는 것 같습니다.


    김운용 : 해고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민주노조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해고가 민주노조에 대한 탄압이기도 하고, 노동에 대한 가장 상징적인 탄압이기에, 노동조합이 해고자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민주노조가 살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지금은 연대투쟁을 제대로 못 하고 있지만, 사회보험노동조합 안에서는 민주노조가 90% 이상 밀렸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다시 찾고자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연대는 소홀히 했지만, 내부투쟁은 열심히 해왔습니다.


    이동우 : 해고투쟁은 7년 넘었다고 하나, 초기에는 노동조합 간부를 했고 수배되고 구속되고 그간의 과정이 너무 복잡하다 보니 본격적으로 해복투 활동은 2012년 초여서 이제 겨우 2년 차입니다. 노동조합에서 해고 요구를 두 번째 세 번째 하려다 보니 공장 내 상황들도 안 좋아지는 경우도 있었고, 분회로 재편되면서 공장 안에만 머물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연대투쟁을 강하게 하려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해고자 투쟁을 하면서 가족관계는 오히려 더 좋아진 면도 있습니다. 이제는 반대하시던 가족들도 인정하고 계십니다. 반대로 노동조합과의 관계는 더욱 안 좋아졌습니다. 예전에 비정규직지회 할 때는 집행부에 참여한다거나 주변의 동지들이 집행부를 하면서 투쟁을 같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해고자에 대한 요구안이 핵심요구안이었고, 마지막으로 걸더라도 무조건 올라가는 요구안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제 경우 조합원 신분이 맞느냐 아니냐 하는 최악의 사건이 일어난 적도 있었고 그 때문에 위축도 됐었습니다. 김운용 동지가 말씀하셨던 해고자들에 대한 마타도어, 흑색선전의 위협도 있었습니다.  "네가 기아차 조합원도 아닌데 왜 공장에 들어오느냐,"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심지어 기아차지부 지부장이 "이동우는 조합원이 아니다" 라고 대의원대회에서 직접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과 있을 때는 괜찮은데, 혼자 있을 때는 왜소화되기도 하고, 조직적으로도 유실 되는 과정이 지금인 것 같습니다.


    유명자 : 노동조합활동 시작했던 때부터 밖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십몇 년 동안 비슷했습니다. 해고자가 되면서 관계의 변화에서 최악으로 간 것은 특수고용노동자로 규정되는 것인데, 그것은 회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 불법 임의단체의 불법 농성자로 취급받는 것이었죠. 그리고 회사로부터 부당해고 당하면서 그 관계는 최악으로 흘렀죠.

     

    1999년 노동조합 만들었을 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초급 간부부터 시작했지만, 전반적인 활동에서 질적인 변화발전은 14년간의 노동조합 활동 중 지부장을 하는 6년 동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장기투쟁하면서 스스로 변화 발전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계급운동에 대한 정치적인 고민도 많이 하고 분노도 많이 생기곤 했죠. 왜 운동적으로 가방끈이 짧은 사람들도 하지 않을 생각을 수십 년의 경력을 가진 활동가들과 공부를 많이 한 운동권들이 저렇게밖에 못할까 하는 생각에 분노가 생겼습니다. 물론 알게 되니 더 힘들어지고 스스로 기복이 더 많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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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조합에 속한(속하지 못한) 장기해고자로서 노동조합(상급단체 포함)과 노동조합운동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김운용 : 지금은 사측과의 투쟁에서 밀려 일방적으로 몰려 있습니다. 노동조합 안에서도 같이 해고되어서 동지로 지냈던 사람이 지금에 와서는 해고자들한테 임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사용자처럼) 행세하고 있어서 안팎으로 불리한 싸움을 진행하고 있지만, 복직 투쟁은 중요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복직될 줄 몰랐거든요. 그런데 결국 끝까지 투쟁하면 복직은 분명히 됩니다. 제가 40대에는 젊었기 때문에 날아다닐 정도로 전투적이었습니다. 전해투 해고자라는 신분이었기에 과거에는 현대중공업에서 칼 들고 다니는 자들과 맞설 만큼 용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노동조합 집행부로부터 탄압이나 부당한 이야기를 들어도 “욱” 하는 마음은 있지만, 예전처럼 점거하거나 물리력을 사용하는 등의 적극적 행동은 주저하게 됩니다. 저도 요즘 몸과 마음이 많이 약해지고 부실해져서 그런가 봅니다.

     

    지금은 노동조합이 해고자 운동에 방해되고 있지만, 이럴수록 조합원들에게 더욱 다가가고 선전 선동하고 조직도 해서, 결국은 조합원들의 마음이 돌아오게 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서 해고자들 투쟁에 “형식적으로 해고자 투쟁을 걸지 말고 진짜 해고자 투쟁을 걸어라” 이런 거센 요구가 나올 때까지 노동조합 안에서 투쟁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음 간담회 주제토론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운동 전체로 보면 산발적이지만, 엄청나게 열심히 투쟁사업장 연대를 다니는 동지들이 있고, 그 동지들 역시 투쟁사업장 동지이면서도 헌신적으로 연대투쟁을 하고 계시는데, 이것이 계속 산발적으로만 이어지고 민주노총이 조직적인 투쟁으로 받아 안지 않는다면 결국엔 재능투쟁과 같은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우리도 과거에 일부 복직하면서, 노동조합의 조건이 무조건 원직복직이니까 그 문제로 타협하지 않았어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원직복직을 포기하고, 해고 기간 고생한 것을 다 없애버리고 신규채용으로 복직 안을 받아서 결국 후퇴하더군요. 복직 명단에 들어갔을 때도 우리는 사실 거부했지만, 결국은 조직이라는 이름으로 다수결의 결정, 총회 결정 사항이라면서 타협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무기이자 투쟁의 수단이기 때문에 언제든 노동조합이 타락하면 투쟁해서 민주노조로 바꿔야 합니다. 오래 걸리지만, 또 가능성이 없어도 그런 생각을 늘 가져야만 포기하려는 마음이 생겼다가도 없어집니다. 그런 마음을 안 가졌으면 벌써 포기했을 거예요. 여기저기 줄 대고 사측에 아부해서 승진하는 입사 동기들도 있지만 그렇게 사는 것보다 투쟁하며 사는 것이 더 떳떳합니다.


    유명자 : 

     이번 질문을 하신 의도가 있을 텐데요. 미조직된 사업장의 해고자가 해고 돼서 장기적으로 싸우는 것도, 그리고 조직된 노동조합에서 가장 헌신적으로 경제투쟁을 하다가 해고가 되고 결국 장기해고자가 되어 싸우는 것도 힘든 건 마찬가지인데, 노동조합 내부투쟁이든 연대투쟁이든 오래 하다 보면 그 안에서 관료주의나 사측과 타협하는 어용 세력들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부 노동조합 운동 자체가 반동의 행태를 보이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재능투쟁에서 상급단체인 서비스연맹은 대놓고 “당신들 단체협약 체결이 가능할 것 같으냐? 그 요구안 걸면 우리는 공투본에서 철수하겠다" 고 공식적으로 공언하고 나갔어요. 공식적으로 “단체협약 걸고, (자신들이 보기에) 가능하지도 않은 요구안 걸면 나 (서비스연맹) 는 사측하고 만날 라인도 갖지 않겠다”고 나갔거든요.

     

    그런데 지난번 종탑에 올라가면서 내걸은 요구안이 기존에 우리 요구안하고 똑같다고 주장을 하는데, 이번에는 서비스연맹이 공대위에 들어갔어요. 요구안이 똑같았는데, 그전에 우리가 주장할 때는 가당치도 않다고 나갔던 자들인데,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근데 저는 이런 일은 설명할 필요도 없는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게 비단 노동조합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동안 노동운동 내부에서 이런 행위들이 묵인되고 방조 되며 심지어는 우리 스스로가 은폐해주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 생각합니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사회주의 활동가나 학습이 되어있는 활동가들이 우리 투쟁 초반부터 와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고, 특히 요구안이나 특수고용노동자 투쟁 전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렵게 이야기하지 마라. 우리는 현장에서 배우고 현장에서 이것을 체험하고 이제야 민주노조 운동이 뭔지 배워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분들은 거기에 큰 틈새를 만들어 놓고, 이제 막 투쟁을 배워가는 조합원들을 자기네 수준으로 맞추려고 하거든요. 그리고는 자기네 조직에 가입부터 하라고 권유합니다. 그래서 많이 싸우기도 했어요. 그때 그랬던 활동가들의 지금 재능지부 투쟁에서의 행보를 보면서 저는 그들을 믿지 않게 되었어요.

     

    재능투쟁 자체가 6년간의 과정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평가하고 드러나게 해주는 리트머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어요. 상급단체 관료가 되면 안 그랬던 사람도 저렇게 되는 걸까? 서 있는 자리가 바뀌면 생각도 바뀌게 될까? 아니면 원래 그랬던 사람이 숨기고 있다가 조건이 바뀌자 비로소 본 모습을 드러내는 걸까? 저는 지금 후자라고 봐요. 그래서 저는 인간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봐요. 숨기고 있던 자들이 그 자리에 가게 되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명예욕과 권력욕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해요. 특히 진보정당 운동이라는 것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것으로 당연하게 이해되고, 이렇게 변질되면서 금배지 한번 달고 싶어 하는 자들과 출세하려는 자들이 판치면서 변질되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인간이 변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마지막으로 제가 이러저러하게 투쟁을 6년간 하면서 느낀 점을 말씀드리자면, 많은 활동가들이 경제투쟁을 굉장히 협소하게 보고 그것을 폄하 하는 건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임금제도를 바꾸고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투쟁하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게 되고, 그 사람들이 지금도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경제투쟁에서 해고당하고 투쟁만 하면 모두 투사이고 올바른 운동관을 갖고 있느냐 하면 절대 아니라는 거죠. 꼭 상급단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투쟁사업장 노동자들도 그자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요. 게다가 그들이 내부적으로 투쟁을 방해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투쟁사업장에 연대하거나 판단할 때는 신중해야 하고 주체의 조건과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이동우 : 저는 직접적인 반론은 아닌데요. 그런 관료주의적이거나 아니면 출세의 욕구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투쟁하는 사람들한테 유입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 경험들을 저 또한 많이 했고. 비정규직지회 건설할 때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이, 그 당시에 2005년, 2006년도에 사측과 멱살 잡고 싸웠던 사람들이 지금은 어용조직이라고 불리는 곳의 조직원들이 돼 있어요. 그래서 제가 해고됐을 때 “당연히 복직해야 되지. 그래서 비정규직지회 요구안 1번은 이동우 복직이다.” 이런 걸 동의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게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은 어느 곳에나 다 있다고 생각을 해요. 문제는 제 경험상으로는 그 사람이 변하지 않을 수도 있고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것은 그 조건에서 투쟁하고 있는 조직 운동의 영향력과 그 안에서 서로 견제하는 힘이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요.

     

    또 다른 사례도 있어요. 제 경험으로는 윤주형 동지 경험이 있는데, 윤주형 동지가 재능 길거리 강연에서 거의 신앙고백 비슷하게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걸 공개적으로 그렇게 말한 동지는 이제껏 아무도 없었어요. 당시 비정규직지회를 와해시키기 위해서 사측과의 커넥션에 의해서 비정규직 활동가 20여 명이 들어왔어요. 그건 공공연한 사실이에요. 당시 비정규직지회가 생기고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입사 자체가 상당히 어려웠거든요. 그런데도 그 동지들은 20명이 대규모로 알게 모르게 들어와서는 이제 1사 1조직한다고, 직가입 한다면서 비정규직지회를 와해시키려 했었어요. 제가 보기에 비정규직지회를 와해시키는 선전선동을 물밑으로 또는 공개적으로 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합치면 힘이 세질 수 있다. 지금의 미약한 갈등은 어떻게 보면 약간의 희생일 수 있다. 나중이 되면 물리적 결합과 화학적 결합이 될 수 있다”고 얘기를 했어요. 윤주형 동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물론 자기가 해고당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까 재능 얘기했듯이 자기가 공개적으로 강연 자리에서 그런 얘길 했거든요. “자기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당시 상황에 대해서 대단히 오판했었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어떻게 보면 이런 좋은 방향으로 사람이 바뀌는 경우도 있거든요. 근데 그게 너무 극소수라서 문제이지만요.

     

    1사 1조직은 나중에 얘기하면 될 것 같고, 노동조합 운동 관련해서 상급단체 이야기는 많기도 하고 비슷해요. 상급단체에 있는 사람 중에 제가 찍어서 명단 만들어도 100명 이상 될 거예요. 저를 해고시킨 자부터 시작해서 저에게 온갖 모욕적인 발언을 했던 자들이 많아요. 그랬던 사람 중에 정말 미운 사람도 있는데, 저는 그런 사람들의 행위에 대한 비판을 계속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들의 행위가 이제 민주노조 운동의 정신을 갉아먹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 운동은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중에서 그나마 우리가 민주노조 운동을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민주노조 운동의 정신을 갉아먹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나 세력을 비판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민주노조 운동 전체가 망했다거나, 혹은 쓸모없다고 지금 섣불리 판단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솔직히 감정만 드러내라고 하면 민주노조 운동하고 싶지 않아요. (웃음) 왜냐하면 보람보다는 상처가 더 많고, 운동 의지를 하락시키는 게 더 많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운동적 대의나 아니면 지금까지 민주노조 운동이 해왔던 어떤 성과들이 있기 때문에 제가 아직 해고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많은 연대투쟁과 장기투쟁사업장의 투쟁들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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