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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번역1] 자본주의 쇠퇴 논쟁 : 대공황은 혁명가에게 자본주의의 쇠퇴를 입증시킨다
  • 조회 수: 4921, 2013-05-05 21:39:44(2013-02-21)
  • 자본주의 쇠퇴 논쟁 : 대공황은 혁명가에게 자본주의의 쇠퇴를 입증시킨다1)

    -국제공산주의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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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세계대전의 유린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진정한 회복은 없었다. 대부분의 유럽 경제는 침체했고 전쟁과 혁명의 혼란과 시대에 뒤진 공장과 대량실업이 야기한 문제를 결코 풀 수 없었다. 한 때 강력했던 영국 경제의 곤경은 세계 시장에서의 영국의 경쟁적 지위를 회복하려는 허망한 시도가 직접적 임금삭감으로 나타난 1926년 상황에서 그 전형을 드러냈는데, 이는 광부의 임금과 작업조건이 공격의 중심목표가 되었을 때 광부들의 10일간의 총파업을 촉발시킨 바 있다. 진정으로 유일한 경기 부흥은 포드의 모델T를 휘저었던 디트로이트 공장의 자동차 조립라인으로 상징화된 대량생산의 발전의 가속화와 미국의 과거 경쟁자였던 영국회사의 슬픔으로부터 혜택을 입은 미국에서의 경기부흥이었다. 세계의 지도적인 경제 강국으로서 미국의 즉위는 또한 대규모 차관의 유입의 덕을 입은 독일 자본이 밑으로부터의 힘을 얻게 했다. 그러나 미국과 다른 곳의 호주머니 속에서의 으르렁거리는 20년대의 모든 소음은 19세기 마지막 수십 년대의 대대적 성장과는 대조적으로, 이러한 회복이 세계 시장의 어떠한 실질적 확장 위에 서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출 수 없었다. 이미 투기와 악성 부채로 대부분 추동된 경기 호황은 1929년에 터져 나온 과잉생산의 산산이 부서진 위기의 바탕을 놓았으며, 재빨리 세계경제를 삼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최악의 공황 속에 묻어버렸다.(International Review130호에 실린 이 연재물의 첫 번째 논문을 보라)

    이는 19세기의 호황과 불황의 순환으로의 회귀가 아니었고 전적으로 새로운 질병, 다시 말해 자본주의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의 첫 번째 주요 경제위기였다. 그것은 대부분의 혁명가들이 1914년 전쟁에 대응하여 결론을 내렸던 것의 확증이었다. 즉 부르주아 생산양식이 쓸모없게 된, 쇠퇴하는 체제였다는 것이다. 1930년대의 대공황은 노동계급의 거의 모든 정치적 언급으로 이러한 진단의 더 나아간 확증으로 해석되었는데,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이상 자발적 회복이 있을 수 없고 위기가 자본주의를 두 번째 제국주의적 분할로 다가가게 하고 있음을 점점 더 확실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위기는 여러 나라에서 중요한 계급운동이 있었더라도, 혁명투쟁의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노동계급은 독일, 헝가리, 이태리,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혁명적 시도가 목 졸리는 역사적 패배의 고통과 러시아에서의 혁명의 고뇌하는 죽음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공산주의당에서의 스탈린주의의 승리와 함께 살아남은 혁명적 경향들은 이러한 패배의 원인을 명확히 하기 위해 투쟁하는 소수파로 축소되었고, 노동계급 내에서 어떠한 주요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위기의 역사적 궤적을 이해하는 것은 이러한 우울한 시기를 통해 이러한 소수파 혁명 그룹을 이끄는데 중요한 요소였다.

     

    1. 프롤레타리아 정치운동으로부터의 반응 : 트로츠키주의와 아나키즘

     

    트로츠키 주위의 좌익반대파흐름은 새로운 제4인터내셔널로 재조직화하면서 자본주의의 죽음의 고뇌와 제4인터내셔널의 임무라는 제목이 붙은 강령을 1938년에 출간했다. 3인터내셔널의 연속선상에서 그는 자본주의의 쇠퇴가 임박했음을 증명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경제적 전제조건인 자본주의 아래에서 도달할 수 있는 결실의 최고점은 이미 전반적으로 이루어냈다. 인류의 생산력은 침체하고 있다. ……역사적 조건이 사회주의를 위해 아직 무르익지않았다는 효과에 대한 모든 말은 무지 또는 의식적인 기만의 산물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객관적인 전제조건은 무르익었을뿐 아니라 어느 정도 썩어가기 시작했다.” 이는 이미 알려져 있는 대로 이행강령에 대한 구체적 비판을 위한 글이 아니다. 그 강령의 맑스주의적 출발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조야한 유물론과 관념론으로 방향을 비틀어놓은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조건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체제의 쇠퇴를 생산력 발전에 대한 절대적 정지로 제시하는 경향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객관적 막다름에의 도달이 오로지 올바른 지도력이 위기를 혁명으로 변혁시키는데 필요함을 의미하고 있다. 그 문서는 글을 시작하면서 총체적으로 세계의 정치상황은 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력의 역사적 위기로 특징지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는 반혁명의 시기에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구성하려는 자원주의자의 시도이다. 물론 트로츠키에게 프롤레타리아트의 패배는 구체적으로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선포가 왜 필요한가의 이유이다. “회의론자들은 묻는다. 4인터내셔널의 창설의 순간이 왔느냐고? 인터내셔널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것은 거대한 사건 등등으로부터 생성될 수 있다고. ……4인터내셔널은 이미 거대한 사건으로부터 만들어졌다. 역사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위대한 패배로부터.” 이 모든 계산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의 실제적 수준, 그리고 독자적 세력으로 스스로 입증하는 능력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이러한 접근은 강령에 담겨진 이행요구의 많은 부분이 준 개량주의적이고 국가자본주의적 내용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 요구들은 현재의 부패한 지도력의 글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를 달래고 올바른 지도력으로 이끌려는 세련된 수단보다 생산력의 수축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행강령은 자본주의 쇠퇴의 분석과 강령적 결과 사이의 완전한 분리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때때로 자본주의 발전으로 획득된 객관적 조건에 기초하여 혁명의 전망을 말하는 맑스주의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19세기라는 자본주의 상승기에 바쿠닌 같은 아나키스트는 대중의 봉기가 어느 순간에도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혁명투쟁을 다소 먼 미래로 연기하는 맑스주의자들을 비난했다. 결과적으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기에 자본주의가 쇠퇴시기에 들어섰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아나키스트들의 시도는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에게 변화된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의 경제위기의 가파른 경향의 규모는 자본주의가 쇠퇴의 시기에 들어섰다는 최상의 요소임을 입증했다.

    망명중인 러시아 아나키스트인 막시모프는 1933년에 출간된 그의 책 나의 사회 신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러한 쇠퇴과정은 1차 세계대전 직후로부터 시작하며 최근 여러 해 동안 정복한 승리국가와 패배한 국가를 동시에 폭발시킨 첨예하고 점증하는 경제위기의 형식을 가정하고 있다. 이 글을 쓸 때(1933-1934)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틀림없는 세계위기 속으로 거의 모든 국가를 공격했다. 그 위기의 장기적 성격과 세계적 범위는 주기적 정치위기이론으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다.” 그는 이어서 위기를 보호조치, 임금삭감, 국가계획을 통해 풀어내려는 자본주의의 노력이 어떻게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심화시킬 뿐인지 보이고 있다. “새로운 사회적 천벌을 맞게 된 자본주의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죽이지 않고는 그 자신의 악의 소산을 제거할 수 없다. 이러한 경향의 논리적 발전은 다음과 같은 피치 못할 딜레마를 가져온다. 사회의 완전한 해체냐 또는 자본주의의 폐절과 새롭고 더욱 진보적인 사회체제의 창조인가를. 다른 대안은 있을 수 없다. 사회조직의 근대형식은 그 경로를 달려왔고, 우리시대에 사회적 쇠퇴의 원천뿐만 아니라 인류 진보의 장애물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철지난 체제는 사회진화유물의 박물관으로 내쫓길 운명에 있다.” 막시모프가 이 책에서 마치 맑스주의자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뻗어나갈 수 없는 무능력이 옛날 방식으로 위기를 스스로 풀어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할 때도 그렇다. “과거에는 자본주의는 절박한 위기를 식민지 시장과 농업 국가를 장악함으로써 구할 수 있었다. 오늘날 농업 국가는 강력한 공업화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반면, 대부분의 식민지는 세계 시장에서 중심부 국가와 스스로 경쟁하고 있다.” 새로운 시기의 특징에 대한 유사한 명확성은 영국의 혁명 그룹인 반의회 코뮤니스트 연합(the Anti-Parliamentary Communist Federation)의 저술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독일/네덜란드 공산주의 좌파의 맑스주의자들의 영향이 더 직접적이었다.2)

     

    2. 이탈리아/벨지움 공산주의 좌파


    이것은 사고가 아니었다. 자본주의 쇠퇴의 표현으로서 경제 불황의 역사적 중요성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맑스주의 축적이론에서 위기의 뿌리를 찾는 것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가장 엄밀했던 세력은 공산주의 좌파였다. 특히 공산주의 좌파인 이탈리아와 벨지움 분파는 자본주의 위기가 단순히 순환적이 아니라 역사적이었다는 것을 인식하는데 그들의 모든 강령적 입장을 정초하고 있었다. 보기를 들어 이들이 트로츠키주의자들과 명확히 구분되는 민족투쟁과 민주적 요구의 거부는 어떠한 종파주의적 추상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고, 세계자본주의의 변화된 조건이 프롤레타리아트의 강령의 이러한 요인들을 쓸모없게 만들었다는 주장에 기초하고 있었다. 일관성을 위한 이와 같은 추구는 이탈리아와 벨지움 좌파의 동지들이 자본주의 위기의 내적 역학에 대한 심오한 연구에 빠져들게 했다. 또한 최근 불역된 로자 룩셈부르크의 자본의 축적에 영감을 받아 미첼이 고뇌에 찬 자본주의의 위기와 순환이라는 논문을 집필하게 했다. 이 글은 빌랑10호와 11(1934)에 실려 있다.(International Review, 102호와 103호에 재수록되었다)

    미첼의 논문은 가치와 상품의 본질, 노동착취의 과정, 그리고 잉여가치의 생산에 내재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모순을 검토하기 위해 맑스에게로 되돌아간다. 미첼에게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결합된 소비에 의해 실현되는 잉여가치 전체의 무능을 인식하는데 맑스와 룩셈부르크 사이에 명확한 연속성이 있었다. 룩셈부르크의 책에 의해 불꽃 튄 논쟁의 중심부에 있는 맑스의 재생산표지에 관하여 미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확대재생산 표지에서 맑스가 유일한 적대는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였다고 가정했다면, 이는 인간의 필요와 균형을 이루고 조화를 이루는 과거의 자본주의 사회의 불합리를 구체적으로 증명하려는 것이었다. 이는 축적 가능한 잉여가치가 생산 확장 덕분에 직접적으로 실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한편으로는 새로운 생산수단의 구매로, 다른 한편으로는 기타 노동자의 수요에 의해. 또한 이는 자본가가 늑대로부터 평화로운 진보 인사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맑스가 그의 지표를 계속해서 발전시킬 수 있었다면, 그는 다음과 같이 정반대되는 결론으로 끝을 맺었을 것이다. , 역사적으로 불가능한 비자본주의 환경의 통합에 의해 더 이상 확장될 수 없는 자본주의 시장은 축적과정의 끝과 자본주의 자체의 끝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표지를 (몇몇맑스주의자가 했듯이) 불균형 없이, 과잉생산 없이, 위기 없이 계속 가능하게 하는 자본주의 생산의 이미지로 제시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맑스주의를 왜곡하는 것이다.”3)

    그러나 미첼의 논문은 추상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것은 19세기 순환적 위기로부터 전체 자본주의 체제의 상승과 하강의 주요 국면을 통하여 실현 및 이윤율 저하경향 문제, 제국주의와 독점의 발전, 그리고 1870년대 이후 민족 전쟁의 순환의 종결 사이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려고 시도하고 있다. 금융자본의 점증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그는 제국주의를 내적 모순에 대한 자본의 반응보다 금융자본의 산물로 보는 것을 비판한다. 그는 1차 세계대전 배후의 즉각적 요인으로 식민지 사냥과 주요 제국주의 강대국 사이의 점증하는 경쟁을 분석하여 자본주의 체제가 노쇠의 위기의 문턱에 있다고 증명한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시대에서의 자본주의 삶의 양식의 몇몇 주요 국면을 확인한다. 즉 파시즘으로 전형화 되지만 더욱 보편적 경향을 띄는, 부채와 의제자본에 대한 점증하는 의존, 경제생활에의 국가의 대대적 개입 그리고 금본위의 포기로 상징화된 화폐와 실질 가치 사이의 점증하는 괴리를 들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이후 자본주의의 단기적 회복은 다음의 여러 가지 요인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비대 자본의 파괴, 흔들리는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필요에 의해 창출되는 수요, 세계경제의 새로운 강국으로서의 미국의 독특한 위치, 그러나 무엇보다 신용이 만든 가공 번영등이다. 이러한 전후 성장은 세계시장의 실질적 확장에 기초하지 않았기 때문에 19세기 경기회복과 다른 것이었다. 같은 의미로 1929년에 터진 세계위기는 19세기의 순환적 위기와 같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규모가 아닌 해결할 수 없는 본질 때문이었고, 불황에서 호황으로 자동적으로, 자발적으로 넘어갈 수 없음을 보증했다.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법칙을 점차 모욕함으로써 생존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를 경과하는 요인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왜 세계위기가 자본주의 경제 법칙의 자연적행위로 흡수될 수 없는지, 그리고 반대로 왜 이러한 법칙이 특정한 자본주의 이해의 모든 표현을 억누르는 금융자본의 연합된 힘과 자본주의 국가에 의해 무력화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4) 따라서 만약 국가의 조작이 생산의 증가를 허락한다면, 이는 대체로 군사부문과 새로운 전쟁의 준비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위기의 손아귀를 벗어나려고 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자본주의는 저항하지도 못하고 전쟁의 운명으로 떠밀린다. 전쟁이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 오늘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전쟁이 아시아 지역에서 터지고 세계적일 것이라는 점이다.”5)

    미첼의 분석6)의 강점과 약점을 더 살피지 않고서라도 이 논문은 어떠한 표준에서도 훌륭하며 자본주의의 상승과 하강의 과정에 대한 일관되고 통일된 역사적 분석을 제공한 공산주의 좌파의 첫 번째 시도 중의 하나라는 점이다.

     

    3. 독일/네덜란드 공산주의 좌파

     

    독일에서의 반혁명적 억압으로 심하게 죽임을 당한 독일/네덜란드 좌파의 전통에서, “룩셈부르크주의자의 분석은 아직도 수많은 그룹들이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지향을 하는 주요 경향도 있다. 특히 네덜란드 좌파와 폴 매틱 주위의 미국 그룹이 그렇다. 1929년 헨릭 그로스만은 위기이론에 대한 주요저작인 축적의 법칙과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를 출간했다. 네덜란드의 국제공산주의그룹(GIC)은 그로스만의 전술을 빼어나다7)고 선언했다. 한편, 1934년 폴 매틱은 국제평의회서한12호에서 그로스만의 생각의 요약과 발전을 <영구위기 맑스의 자본축적이론에 대한 헨릭 그로스만의 해석>으로 출간했다. 이 텍스트는 몇 가지 점에서 그로스만의 논지를 발전시켰지만 그의 공헌을 명쾌하게 인정하고 있다. 독일공산당(KPD)과 다른 스탈린주의 당의 동조자로서의 그로스만의 입장 그리고 매틱을 정치적으로 종파주의적이라고8) 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로스만과 매틱은 그로스만의 저술이 제기한 쟁점들에 대해 의견 교환을 했다.

    그러므로 그로스만의 책은 세계위기가 터지기 전에 출간되었지만 세계 대공황의 구체적 실재에 대해 그의 이론을 적용하도록 수많은 혁명가들을 고무시켰다. 그로스만의 책의 핵심에는 맑스가 결론에 도달할 수 없었을지라도 자본주의 붕괴론이 맑스의자본에 절대적으로 중심이라는 주장이었다. 베른슈타인, 카우츠키, 투간 바라노우스키, 오토 바우어 등의 맑스주의의 수정주의자들은 모두 자본주의 붕괴의 개념을 거부했고, 이는 그들의 개량주의 정치와 전적으로 일치했다. 그로스만에게 자본주의가 불멸의 체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역사적 진화가 생산력의 더 이상의 성장에 족쇄가 되는 능가할 수 없는 모순으로 빠져들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이라는 것이 자명했다. “역사적 발전의 특정 지점에서 자본주의는 더 이상 생산력의 확대를 고무시키는데 실패한다. 이 지점으로부터 자본주의의 목적은 경제적으로 불가피해진다. 이 과정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자본주의의 과학적 분석을 통해 그 원인을 이해하는 것은 맑스가 스스로 자본에서 제기한 실질적 과업이었다.”9) 반면, “만일 자본주의가 왜 반드시 실패하는지의 이유가 없다면, 사회주의는 순수하게 경제 외적인, 정치적, 심리적, 도덕적 근거 위에서 자본주의를 대체할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 우리는 경제적 운동으로부터의 필요성의 연역, 즉 사회주의의 필요성에 대한 과학적 논쟁의 유물론적 기반을 포기해야 한다.”10)

    이렇게 그로스만은 몰락의 의미의 중심성을 재확인하는 길을 열었던 룩셈부르크에 동의했고, 이 점에서 그는 수정주의자들에 맞서 그녀와 함께 했다. 그러나 그로스만은 룩셈부르크의 위기이론이 맑스가 재생산표지를 사용하면서 발전시키려 했던 방법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근거하여 깊게 오류를 범했다고 생각했다. “맑스의 재생산표지를 그의 총체적 체제와 , 특히 그의 축적이론의 틀 내에서 검증하는 대신, 그의 이론의 구조에서 방법론적으로 펼치는 역할을 묻는 대신, 그리고 축적의 표지를 궁극적 결론에까지 이르도록 분석하는 대신, 룩셈부르크는 무의식적으로 수정주의 아류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그녀는 맑스의 표지가 진정으로 무제한적 축적을 허용한다고 믿는 것 같았다.”11) 그 결과 그로스만은 룩셈부르크가 문제를 잉여가치생산의 1차적 국면으로부터 순환의 2차적 국면으로 옮겼다고 주장했다. 그로스만은 오토 바우어가 자본의 축적12)에서 그 비판을 맑스로부터 채용한 재생산표지를 재검토했다. 여기서 바우어의 목적은 모든 외부시장을 제거한 후 자본주의가 잉여가치의 실현에서 풀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한다는 룩셈부르크의 주장을 논박하려 했던 것이다. 즉 바우어에게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인구학적 성장을 축적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잉여가치를 흡수하는데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로스만이 바우어의 표지를 자본주의 축적의 진정한 묘사로 간주하는데 실수하지 않은 것이 강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비난은 우리가 앞으로 언급할 그로스만에 대한 판네쿡의 비판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나는 바우어의 표지가 재생산과정의 가치측면을 반영하고 그것만을 반영할 수 있음을 보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치와 사용가치의 측면에서 진정한 축적과정을 묘사할 수 없다. 두 번째 바우어의 실수는 그 표지가 자본주의의 실질적 과정의 예시라는 것을 가정하고, 그것과 함께하는 단순화를 잊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들은 바우어의 표지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는다.”13)

     

    그들의 수학적결론에 이르는 바우어의 표지를 따라가려는 그로스만의 의도는 실현의 문제 없이도 자본주의가 능가할 수 없는 장벽에 맞서 불가피하게 따라갈 것임을 보이는 것이었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과 이윤의 경향적 저하를 고려하면 자본의 지구적 확장은 이윤의 절대적 크기가 더 이상의 축적으로 투자되는데 충분하지 않은 지점까지 절정에 달해 체제가 몰락할 것이라는 점이다. 바우어의 표지에 대한 그로스만의 가정적 처리에서 이러한 점은 35년 후에 이루어진다. 즉 이 지점으로부터 가정한 조건하에서 자본의 더 이상의 축적은 전혀 의미가 없다. 과실이 전적으로 노동자의 몫으로 흡수되는 생산체제를 운영하는데 자본가는 노력을 낭비할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자본주의 메커니즘의 파괴, 즉 그 경제적 종말을 의미한다. 기업가 계급에게는 축적은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과잉 축적자본은 게을러지고, 기능할 수 없으며, 어떤 이윤도 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14)

    이는 그로스만의 몇몇 비판이 자본주의가 불가능하게 되는 지점을 절대적인 정확성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그가 생각했다는 주장을 하게 했다. 그러나 이는 그의 목적이 아니었다. 그로스만은 맑스가 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가 축적과정에서의 중심적 모순인지를 설명함으로써 맑스의 몰락이론을 단순히 재검토하려는 것이었다. “과잉축적단계에서 이러한 이윤율저하는 자본축적의 초기단계에서의 이윤율저하와 다르다. 이윤율저하는 모든 축적단계를 통하여 축적과정의 영구적인 징표이지만 축적의 초기단계에서는 확장되는 이윤의 크기와 확장되는 자본주의 소비가 함께 간다. 그러나 어떤 한계를 지나면 이윤율의 저하는 자본주의 소비를 위해 특징지어지는 잉여가치의 하락과 곧 그 후 축적의 운명을 지닌 잉여가치의 부분의 하락의 수반한다. 따라서 이윤율 저하는 이윤 크기의 절대적 감소를 수반한다.”(맑스,자본3, 15, 252)15)

     

    그로스만에게 위기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주장하듯이 자본주의가 너무 많은잉여가치에 직면해서가 아니라, 자본가에게 이윤을 남기는 축적에 더 많은 투자를 하기 위해 노동자를 착취함으로써 추출할 수 있는 가치가 너무 적기 때문에 온다는 것이다. 과잉생산위기는 일어나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고정자본의 과잉축적의 결과였다. “뒤이어 일어나는 상품의 과잉생산은 과잉축적에 기인한 불완전한 가치증식의 결과다. 위기는 생산의 확대와 구매력의 부족, 즉 소비자의 부족 사이의 불비례가 원인이 아니다. 존재하는 구매력이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위기가 개입한다. 생산 규모가 획득 가능한 잉여가치량에 어떤 차이도 만들지 않으므로 생산을 확장하기 위해 지불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편으로 구매력은 놀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 생산요소는 팔리지 않고 남아있다.”16)

    그로스만의 책은 진정으로 맑스로 돌아가는 것이며 레닌과 부하린 같은 훌륭한맑스주의자들이 자본주의 위기와 제국주의적 추동을 내적 모순의 표현으로 분석하는데 실패했다고 비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외적 표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보기를 들어 레닌의 경우 제국주의의 원인으로 독점의 존재를 들었다.) 그의 책 서론에서 그로스만은 이 비판의 바탕이 되는 방법론적 전제를 설명한다.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경향들이 경험적으로 어떻게, 주요 기반으로서의 자본축적의 본질로부터 뻗어 나온 2차적 표면현상인지를 나는 보이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내적 관련을 통해 어떤 부가적 이론에 의존하지 않고 자본주의의 모든 양태를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한 단일 원칙, 즉 맑스의 가치법칙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를 통해 제국주의라는 마지막 단계를 조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맑스의 경제체제의 엄청난 일관성이 명료하게 그려질 수 있는 유일한 형식이라는 점을 말하려고 애쓰지 않겠다.”

    같은 기조를 계속 이어나가면서 그로스만은 순수경제주의라는 비난으로부터 스스로를 미리 방어한다.

    내가 내 스스로 이 연구에서 오로지 자본주의 붕괴의 경제적 전제조건만을 기술하는데 교묘하게 가두어두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순수경제주의라는 어떤 의심도 쫓아버리게 하자. 경제와 정치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지면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둘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맑스주의자들이 정치 혁명에 대해 광범위하게 저술하지만 그 문제의 경제적 측면을 이론적으로 다루는 것을 게을리하여 맑스의 붕괴이론의 진정한 내용을 음미하는 데는 실패했다. 여기서의 나의 유일한 관심은 맑스주의 전통에서 이러한 간극을 메꾸는 것이다.”17)

    경제적 기계가 더 이상 기능을 못하는 단순한 무능력으로 그 체제에 대한 마지막 비판을 했다고 그로스만을 비판할 때 이는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몰락에 대한 그의 추상적 정식화의 상당수가 만든 인상을 제쳐두고,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인 제국주의를 조명하는그로스만의 시도에는 더욱 근본적 문제가 있다. 보기를 들어 미첼과 달리 그는 그의 작업이 제3인터내셔널이 내린 결론, 1차 세계대전이 자본주의 쇠퇴의 시대, “전쟁과 혁명의 시대를 안내했다는 결론을 명확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명시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 (세계)전쟁을 몰락의 시기가 도래했다는 증거로 보는 작업을 하면서 부하린을 언급하는 몇몇 문단에서, 그는 세계전쟁의 위기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노쇠의 틀림없는 징표로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몰락의 시대가 도래 했고, 부하린의 주장에 대한 그의 주요 반대가 전쟁이 몰락의 원인이고 증상이 아니라는 제시를 그럴 것이라고그가 인정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또한 그로스만은 자본주의에 대한 위협이 되는 것과는 멀리, 전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존재를 전체적으로 영구화하는 수단이다. 매년 전쟁이 끝난 후 자본주의가 새로운 고조의 시대에 들어섰음을 사실들은 구체적으로 보이고 있다.”18) 이는 자본주의 전쟁이 인류의 생존을 붙들고 있는 위협에 대한 심각한 과소평가이며, 그로스만에게 마지막 위기가 순수하게 경제적 위기일 것이라는 생각을 강화시킨다. 나아가 그로스만의 책은 몰락으로의 경향이 가져오는 제국주의 사이의 경쟁의 불가피한 증가를 보여주면서, 그의 경제 분석을 구체화하는 수많은 노력을 담고 있지만, 노동계급이 그 체제를 전복하도록 강제하는 미래의 마지막 위기의 불가피성에 대한 그의 강조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역사적 시대가 이미 도래했는가를 불분명하게 남겨두고 있다.

     

    4. 매틱과 영구위기의 시대


    이런 의미에서 매틱의 텍스트는 역사유물론의 보편적 맥락에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위치지우고 따라서 상이한 생산양식의 부상과 몰락에 반대하는데 있어서 그로스만의 책보다 더욱 명시적이다. 이렇게 그 문서의 출발점은 다음을 확인한다. “경제체제로서의 자본주의는 사회의 생산력을 이전의 어떠한 체제 하에서 가능했던 것보다 더욱 크게 발전시키는 역사적 사명이 있었다. 자본주의에서 생산력의 발전의 동력은 이윤을 위한 경주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러한 발전과정은 이윤이 있는 한에서만 계속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본은 그 발전이 이윤을 위한 필요성과 갈등을 빚자마자 지속적인 생산력 발전의 장애가 된다.”

    매틱에게 자본주의 쇠퇴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과 소제목이 주장하듯이 우리가 영구위기의 시기에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절대적 착취의 증가처럼 자본주의의 대항조치가 가져오는 잠정적 호황이 있더라도 이는 발전이 아니라 쇠퇴를 의미하는 성과, 즉 죽음의 위기에서의 호황인 것이다. 다시 한 번, 매틱은 그로스만 보다는 평이하게, 이윤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 하강했을 때, “자동붕괴를 주장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는 축적에 필요한 잉여가치의 마지막 한 방울을 짜내기 위해 노동계급의 착취를 증가시킴으로써, 그리고 값싼 원료를 전유하고 시장을 정복하며, 노동력의 새로운 원천을 얻으려고 세계전쟁을 향해 진군함으로써, 역사적 난국에 대처하는 자본주의의 반응을 보이려 한다. 동시에 경제위기처럼 전쟁이 물질적 기반을 형성하는 사용가치뿐만 아니라 가치의 폭력적 파괴에 의한 고정자본의 거대한 평가절하로 본다. 착취의 증가와 세계전쟁을 향한 이러한 두 가지 추동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망을 여는 노동계급으로부터의 반작용을 촉발시킨다고 매틱을 보고 있다. 이미 대공황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가장 큰 위기이지만 그것이 자본주의의 마지막일지, 아니면 노동자를 위한 것인지는 노동자의 행동에 달려 있다.”

    매틱의 작업은 자본주의의 쇠퇴를 이해하기 위함이며 일찍 코민테른과 공산주의 좌파가 시도한 것과 분명히 연속선상에 있다. 그리고 그로스만이 이미 이윤율 하락에 대한 반대경향의 한계를 보았지만 매틱은 1929년 충돌에 의해 열려진 시기의 세계자본주의 위기의 실질적 확인을 통해 이들을 더욱 구체화시킬 수 있었다.

    우리 견해로는 그로스만 이론에 대한 매틱의 구체화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보편적 접근에는 추상적 영역이 남아있다. 우리는 불충분한 시장출구 문제가 맑스에서는 흔적이 없다는 그로스만의 견해에 당혹스럽다.19) 실현 또는 순환의 문제는 축적과정 밖에 존재하지만 그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마찬가지로 그로스만은 임노동과 자본 사이의 근본적 관계 속에 분명하게 근거를 두고 있는 맑스의 몇 단락을 무시하면서, 이윤율 하락의 단순한 부산물로서 과잉생산의 문제를 각하시키는 것 같다.20) 그리고 룩셈부르크가 이러한 요인들을 발전시키면서 지구적 체제로서의 자본주의의 승리가 왜 쇠퇴의 시대로 들어가도록 가속화시켜야 하는가를 이해하는 일관된 틀을 제공하지만,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양이 자본의 대항조치가 쓸모없어지고 쇠퇴가 들어선 수준에 도달하는 지점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물론 이러한 대항경향으로 무역을 설명하는데, 식민지의 자본주의 국가로의 전환이 이러한 중대한 선택을 제거한다고 매틱이 주장할 때, 그는 룩셈부르크주의자 같지는 않다. “대항경향으로서의 무역은 자본 수입국을 자본 수출국으로 전환함으로써, 그리고 뜨거운 국제성장으로 산업발전을 몰아감으로써, 스스로를 제거한다. (자본의) 대항경향의 힘이 멈출 때 자본주의 몰락의 경향은 통제하에 놓인다. 따라서 우리는 자본주의가 영구위기에 있는가, 죽음의 위기에 있는가의 문제만 남는다. 자본주의의 지속적 존속을 위해 남겨진 유일한 수단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영구적, 절대적, 보편적 궁핍화이다.”우린 견해로는 이는 실현의 문제, 즉 자본의 내적 모순을 상쇄하기 위한 세계시장의 영구적 확장의 필요성은 그렇게 쉽게 등식으로부터 제거될 수 없다.21)

    그러나 이 장의 목적은 룩셈부르크 이론에 대한 찬반 논쟁을 다시 탐구하는 것이 아니고 그로스만-매틱 이론에 포함된 위기에 대한 대안적설명이 자본주의의 쇠퇴를 이해하는데 전적으로 담겨져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1930년대 공산주의 좌파 내에서 이루어진 그로스만-매틱의 테제의 주요비판의 경우가 아니다. 그것은 19346월에 Ratekorredspondenz에 처음 출간된 판네쿡의 자본주의 몰락의 이론이다.22)

     

    5. “몰락이론에 대한 판네쿡의 비판

     

    1930년대 판네쿡은 Groep van Internationale Commnisten과 긴밀하게 작업을 했고 그의 텍스트는 평의회 공산주의 흐름 내부에서 그로스만 이론이 점점 유명해지는 것에 대한 대응으로 쓰여졌다. 즉 텍스트는 매틱의 통일노동자당선언에 그로스만의 이론이 통합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그 텍스트의 여는 문단은 혁명적 물결의 시대에 수많은 독일 공산주의자들이 저지른 과오를 피하기 위해 무엇이 완벽하게 정당화된 관심이었는지를 암시하고 있다. 그 시기는 죽음의 위기의 생각이 자본주의가 이미 모든 선택을 소진했고, 오로지 그를 전복시키는 아주 작은 분발이 필요했음을 의미했으며, 그 관점은 때때로 자원주의와 모험주의 행동과 뒤섞였다. 그러나 우리가 여러 곳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23) 전후시기에 죽음의 위기의 개념을 밀어붙였던 사람들의 논쟁 속의 본질적 결함은 어디로부터 불현 듯 올지 모르는 갑작스런 충돌에 의한 자본주의 몰락이라기보다는 수십 년 지속될 과정으로 이해되는 자본주의 몰락의 의미가 아니었고, 체제가 주어진 순간에 경험하는 생산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의 역사적 쇠퇴와 심각한 경제위기라는 두 가지 특이한 현상의 융합이었다. 자본주의 몰락의 생각이 당면한 어떤 것이나 경제적 수준에서 순수하게 표현된 것이라는데 맞서 논쟁하면서 판네쿡은 자본주의 쇠퇴의 의미를 한꺼번에 부인하는 함정에 빠졌다. 그 견해는 식민지에서의 자본주의 혁명의 가능성과 러시아에서의 볼셰비즘의 부르주아 역할과 같은, 그 당시 그가 집착했던 다른 입장들과 일관성이 있었다.

    판네쿡은 몰락에 대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론을 비판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그녀의 이론에 대한 익숙한 비판들을 되풀이하는데 그것은 그녀의 이론이 비()문제에 근거하고 있고 맑스의 재생산표지의 수학이 자본주의를 위한 본질적 실현의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판네쿡의 텍스트의 주요 공격대상은 그로스만의 이론이었다.

    판네쿡은 그로스만을 두 가지 주요 수준에서 다룬다. 하나는 맑스의 위기이론과 그로스만 사이의 일치성의 부족이며, 또 다른 하나는 노동계급의 자의식적 행위의 방식에서 덜 요구되는 사회주의의 도래에서의 자동적 요인으로 위기를 바라보는 경향이다. 바우어의 표를 사용하는 수많은 판네쿡의 구체적 비판, 즉 그로스만이 바우어의 표들을 그냥 그대로 사용한다고 그로스만은 비판하는 것은 처음부터 결함을 드러내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로스만이 이윤율 저하와 총이윤의 상승 사이의 관계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고, 의식적으로 맑스를 다시 쓰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판네쿡은 총이윤의 증가가 항상 이윤율 저하를 수반하기 때문에 맑스는 잉여가치의 절대적 부족이 있는 상황을 결코 상상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맑스는 위기를 재촉하는 과잉축적을 말하는데 그 곳에는 투자되지 않고 이윤을 억누르는 너무 많은 축적된 잉여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로스만의 몰락은 너무 적은 축적된 잉여가치가 있는 곳으로부터 온다.”

    이러한 비판은 따라가기 어렵다. 과잉축적을 말하는 것과 잉여가치 부족 사이에는 어떤 모순도 없다. 만일 과잉축적이 고정자본의 과잉이었다고 말하는 다른 방식이라면, 이는 생산된 상품이 잉여가치를 덜 포함하고 따라서 자본가에게 잠재적 이윤을 덜 가져다 줄 것을 의미할 수 밖에 없다. 이윤율 저하가 총이윤의 증가에 의해 상쇄될 것이라고 맑스가 생각한 것은 진실이다 이는 특히 더 많은 상품량을 팔 수 있는 가능성에 달려있고, 이는 우리를 잉여가치 실현의 문제로 돌아가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여기서 더 검토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여기서의 주요 쟁점은 자본주의 몰락의 기본개념이지 이를 위한 구체적인 이론적 설명은 아니다. 그로스만과 매틱이 실제로 이러한 견해를 고수한 것이 분명하지 않더라도 순수하게 경제적 몰락의 개념은 인간의 행위가 거의 역할을 하지 않거나 전혀 하지 않는 것, 즉 역사유물론에 대한 기계적 접근을 반영한다. 그러나 맑스는 항상 자본주의의 종말을 노동계급의 의식적 행위로부터 온다고 보았다. 이 문제는 몰락 이론의 판네쿡의 비판의 중심에 있다. 왜냐하면 그는 이 같은 모든 이론들이 노동계급이 투쟁에서 스스로 무장하고 익은 과일이 손 안에 떨어지는 것과 달리,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거대한 과업에 필요한 의식과 조직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느꼈다. 판네쿡은 그로스만이 마지막 위기의 도래가 계급투쟁을 촉발시킨다고 생각했다고 인정하지만, 이 투쟁을 순수하게 경제적 의미로 보았다고 말한다.

    반면 판네쿡에게는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경제적으로 몰락하고 노동자를 포함한 인간이 새로운 조직을 만들기 위해 필연적으로 강제되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살고 자람에 따라 노동자가 더욱 더 견딜 수 없게 되고, 자본주의의 지배를 전복하고 새로운 조직을 세울 의지와 힘이 그들 속에 자라고 그래서 자본주의가 무너질 때까지 그들을 계속해서 투쟁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견딜 수 없음이 밖으로부터 그들에게 드러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속에서 그것을 느끼기 때문에 노동계급은 행동하도록 내몰리지 않는다.”

    실제로 그로스만의 문단은 이미 판네쿡의 비판의 상당부분을 예상하고 있다. 객관적 근거 위에서 필요한 몰락의 개념은 계급투쟁과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객관적으로 주어진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몰락은 상당 부분 투쟁하는 계급의 살아있는 힘에 의해 영향 받을 수 있고, 능동적 계급개입을 위해 일정한 영역을 남긴다. ……오직 지금 왜 높은 수준의 자본 축적에서 매번의 심각한 임금 상승이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는지, 왜 매번의 주요 경제투쟁이 반드시 자본주의의 존재 문제와 정치권력의 문제가 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일상 요구에 대한 노동계급의 투쟁은 마지막 몰락에 대한 투쟁과 묶여져 있다. 노동계급이 싸우는 마지막 목적은 사색적인 수단에 의해 밖으로부터노동자 운동 속으로 들어오는 이상이 아니다. 즉 현재 투쟁과 독립적으로 그 실천이 먼 미래를 위해 예비 되어있는. 반대로 그것은 여기에 제시된 자본주의 붕괴의 법칙이 보여주는 것과 같다. 당면의 일상투쟁과 그 실천의 결과는 이들 투쟁에 의해 가속화될 수 있다.24)

    그러나 판네쿡에게 그로스만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의 실질적 경험이 전혀 없고 맑스주의의 핵심을 이해할 위치에 있지 않은 부르주아 경제학자였다. 그리고 그로스만이 낡은 노동자운동(사회민주주의와 당 공산주의”)의 측면을 비판했을지라도 낡은 운동과 진정으로 독립적인, 평의회 공산주의자들이 새로운 노동자운동으로 부르는 것과 전혀 공통점이 없었다. 따라서 판네쿡은 그로스만에게 계급투쟁에 대한 정치적 차원이 있다면, 이는 본질적으로 볼셰비키유형의 당의 행위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로스만은 계획경제의 주창자로 남아있었고, 자본의 더욱 전통적이고 무정부적 형식으로부터 국가경영유형으로의 이행은 자율적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어떠한 개입 없이도 가능했다. 즉 필요한 모든 것은 마지막 위기의 순간에 혁명적 전위의 완강한 손이었다.

    그로스만을 노동자 투쟁의 실질적 경험이 없는 부르주아 경제학자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1차 세계대전 전 그는 폴란드의 유대노동자 운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고, 혁명의 전야에 스탈린주의 당(그리고 그 후 죽기 직전 동독 라이프치히 대학에 근무)의 동조자로 남아있었지만, 그는 항상 독립적인 사상가로 그의 이론을 스탈린주의를 위한 단순한 변호인으로 규정할 수 없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그는 레닌을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매틱과 소통하고 있었다. 또한 1930년대 초 짧은 기간 동안 트로츠키주의 반대파에 매료되어 있었다. 로자, 매틱, 판네쿡처럼 혁명적 공산주의자로서 그의 일생을 보내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로스만 이론 전체를 그의 정치의 직접적 반영으로 보는 것은 환원주의다.25)

    판네쿡은 다음과 같이 자본주의 몰락 이론에서 논쟁을 요약한다. “노동자 운동이 마지막 파국을 기대하지 않지만 전쟁 같은 정치적 파국, 그리고 계속적으로 터지는 위기 같은 경제적 파국의 대부분은 가끔은 규칙적이고 때로는 불규칙적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자본주의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점점 더 파괴적이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환상과 침묵의 경향은 계속해서 무너지고 날카롭고 깊은 계급투쟁은 터질 것이다. 이전보다 더욱 파괴적인 현재의 위기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깨우는 징표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모순으로 보인다. 그러나 옛 환상의 제거는 첫 번째 중요한 과제다. 한편으로 사회민주주의 의회정치와 노동조합 행위를 통해 획득한 개혁 수단에 의해 자본주의를 견디게 만드는 환상, 다른 한편으로 혁명을 가져오는 공산주의당의 지도력 아래에서 자본주의가 전복될 수 있다는 환상이 그것이다. 전체로서 노동계급은 투쟁을 해야 하지만 부르주아지가 그 권력을 점점 더 강고하게 구축하는 반면, 노동계급은 새로운 투쟁 형식에 익숙하지 않다. 가열찬 투쟁이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위기가 줄어들어야 한다면, 새로운 위기와 새로운 투쟁은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투쟁에서 노동계급은 투쟁하는 힘을 발전시키고 그 목적을 발견하며, 스스로를 훈련시키고 스스로를 독립시키며, 사회적 생산을 통해 스스로의 운명을 그 손 안에 쥐는 것을 배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파괴가 이루어진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해방은 자본주의의 몰락이다.”

    이러한 견해에는 올바른 것이 많다. 구원자로 나서는 모든 자본주의 세력으로부터 노동계급 전체가 자율성을 발전시킬 필요성이 그렇다. 그러나 판네쿡은 왜 위기가 점점 더 파괴적이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자본주의의 규모를 하나의 요인으로 제기할 뿐이다.26) 그러나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는데 실패한다. 자본주의가 실제로 스스로를 파괴하고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을 열기 전까지 자본주의는 얼마나 많은 파괴적 파국을 거쳐야 하는가? 달리 말하면 여기서 놓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가 역사적으로 스스로의 모순에 의해 한계 지어진 체제이고, 이미 인류에게 사회주의와 야만주의의 사이에서 선택하도록 한다는 관점이다. 경제적 몰락이 자동적으로 사회주의로 이끌지 않는다는 판네쿡의 주장은 완벽하게 옳다. 그러나 혁명적 노동계급에 의해 전복되지 않았던 쇠퇴하는 체제가 스스로를 파괴하고 사회주의를 위한 모든 가능성을 연다는 것을 잊는 경향이 있었다. 공산주의자 선언의 처음 도입부는 피억압계층이 사회변혁을 완수할 수 없다면 생산양식의 진전된 모순은 경쟁하는 계급들의 상호 유린으로 단순히 끝날 것이라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마지막 위기의 지점까지 타락할 저주받은 운명이고 공산주의가 이러한 저주의 반대편에 있을 보장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실현은 자본주의 몰락에 대한 스스로의 해법을 결정적으로 가져오기 위해 행동하는 노동계급의 중요성을 감소시키지 않는다. 반대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적 투쟁과 그 안에서 혁명적 소수의 활동을 더욱 긴급하게, 그리고 더욱 불가피하게 만든다.      

    (번역 : 오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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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1)국제공산주의흐름, International Review, no.146, 3rd Quarter, 2011, 24-30

    2) 보기를 들어 19365Advance에 실린 APCF 논문, 과잉생산으로 경제위기를 설명하는 Willie McDougall의 논문 자본주의는 가야만 한다에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자본주의의] 역사적 사명, 봉건제를 넘어서는 사명은 달성되었다. 그것은 그들의 선구자들에 의해 꿈꿀 수 없었던 높은 수준까지 생산수준을 높였다. 그러나 그 정점에 이미 도달했고 쇠퇴가 시작되었다.” 한 체제가 생산력의 확장과 적절한 기능에 족쇄가 될 때마다 혁명은 내재해 있고 운명적으로 다음 계승자에게 길을 내준다. 봉건제가 더욱 생산적인 자본주의 체제에 자리를 내어주듯이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를 위해 길을 내어주기 위해 진보의 여정에서 쓸어버려야 한다.

    3) 빌랑10

    4) 빌랑11

    5) 윗글

    6) 특히 전쟁 중 자본과 노동의 파괴를 다루는 문단. IR 133호의 영광스러운 30배경이 되는 요인들에 대한 논쟁에 대하여(서론)IR 103호의 미첼의 논문 2부의 각주2를 볼 것

    7) PIC, Persdinst van de Groep van Internationale Communisten no.1, January 1930 “Een marwarrdog boek”, ICC네덜란드와 독일공산주의 좌파2001, 271쪽에서 인용

    8) Rick Khun, 헨릭 그로스만과 맑스주의의 회복시카고, 2007, 184

    9) 축적의 법칙과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1992, 축약 영어판, Pluto, 36

    10) 윗글, 56

    11) 윗글, 125

    12) Bauer, “자본의 축적”, Die Newe Zeit, 1913, 영어번역판이 Histhory of Political Economyno.18:1, 1986년에 출간되었다.

    13) Grossman, 앞 글, 69

    14) 앞 글, 76

    15) 앞 글, 76-77

    16) 앞 글, 132

    17) 앞 글, 32-33

    18) 앞 글, 49-50

    19) 그로스만, 앞의 책, 128

    20) 이 연재물의 이전 논문 부르주아 사회의 도덕적 모순을 보라. International Review139

    21) 후기 저작 경제위기와 위기이론(1974)에서 매틱은 이 문제로 돌아와서 맑스가 과잉생산의 문제를 단순히 이윤율저하의 결과로 보지 않고, 특히 노동계급의 제한된 소비력으로부터 나오는 스스로의 모순으로 보았음을 인식한다. 사실 그의 지적 솔직함은 그에게 불편한 문제를 제기하도록 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맑스가 일찍이 제기한 문제에 직면한다. 그것은 맑스가 두 가지 위기이론을 가졌는데, 하나는 이윤율 저하로서 가치 이론으로부터 위기를 도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의 불충분한 소비로 도출되는 위기이론이다.”(3, “The Epilgones.” 사실 그가 제기하는 답변은 맑스의 과소소비주의적 정식화는 판단의 오류이거나 불명확한 글쓰기에 전가되어야 한다.”(2, “맑스의 위기이론”)

    22) Adam BuickCapital and Class1977, 봄 호에 실린 영역 글.

    23) “파국의 시대”, International Revew143

    24) Kuhn, 앞 글, 135-6, 축적의 법칙, 독일어 판, 601-3쪽에서 인용

    25) 판네쿡이 철학자로서의 레닌에서 레닌의 철학 저술들에 대한 부르주아 영향력이 볼셰비즘과 10월 혁명의 부르주아 계급 본질을 드러냈다고 주장한 것도 이와 비슷한 오류다.

    26) 비슷한 논점이 전체로서의 GIC의 입장에 대해 말하고 있는 독일/네덜란드 좌파에 대한 우리의 책, 273쪽을 보라. “그로스만과 매틱의 다소 숙명론적 개념을 거부하는데 있어서, GIC는 독일 좌파의 위기 이론의 전체적 유산을 포기했다. 1929년의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쇠퇴를 나타내는 일반화된 위기로서가 아니라, 순환적 위기로 보였다. 1933년 출간된 팸플릿에서 GIC거대한 위기1914년 이래 영구적이라기보다는 만성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는 재로부터 끊임없이 재생하는 전설적 불사조 같았다. 위기에 의해 매번 재생된 후, 자본주의는 어느 때보다 더욱 강력하게 다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재생은 불멸이 점점 격렬한 죽음으로 사회적 삶의 총체를 위협하기 때문에 영원하지 않다. 마침내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자본주의 불사조를 죽음의 일격을 가할 수 있다. 그리고 위기의 순환을 마지막 위기로 변혁시킬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이론은 모순적이었다. 왜냐하면 한 편으로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확장한다는, 영원한 상승을 하는 19세기에서 순환적 위기의 비전이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점점 치명적 파괴와 재건의 순환을 기술했다.” 문제의 팸플릿은 De beweging van het kapitalitisch bedrifsleven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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