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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은글씨] 4호를 내면서
  • 조회 수: 8009, 2016-10-03 18:25:34(2015-12-18)
  • [붉은글씨] 4호를 내면서



    2012년 11월 공동이론지 형식으로 창간한 잡지 붉은글씨가 3년이 지난 올해 5월, [붉은글씨]의 취지와 목적에 동의하는 개인들의 모임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붉은글씨를 만드는 사람들’(이하 붉만사)은 활동가들 스스로의 문제의식에 기초한 이론적·실천적 고민의 교류를 위해 [붉은글씨]를 발간하는 모임이다.


    1. 새롭게 출발한 붉만사는 창간호에서 밝힌 ‘새로운 침머발트 좌파 경향을 창출하고 그것으로 새로운 운동과 결합’하는 것을 넘어 한국에서 새로운 경향의 운동을 창출하기 위해 보다 근본적이고 실천적인 모습으로 자리 잡고자 한다.


    "[붉은글씨]는 진지한 이론적, 실천적 노력 없이 야합과 무원칙이 현실 개입이라는 미명아래 정당화되는 운동의 흐름에서 새로운 경향을 창출하고자 한다. 우리는 혁명적인 원칙을 가지고 새로운 세대를 만나고 기다리려 한다". - [붉은글씨] 창간호 발간사


    "자본주의의 파괴적인 힘은 더욱 커져서 인류 전체에게 재앙으로 다가와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제도와 국가를 이용해 재앙과 참사를 막을 수 없으며, 이 제도를 이용해서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붉은글씨]는 이제 창간호에서 밝힌 정치 입장을 더욱 명확히 하고 새로운 운동의 창출에 기여할 것이다.
    [붉은글씨]는 혁명적인 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며, 새로운 운동과 주체를 만나려 한다. 우리의 취지에 동의하는 동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한다." - [붉은글씨] 2호 발간사

    "3년이 흐른 지금 이러한 흐름은 보다 실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번 호의 특집에서 다룬 재능교육 투쟁과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투쟁, 그리고 이번호에 다루지 못했지만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문제는 오늘날 민주노조 운동의 현재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또한 쟁점에서 다룬 노동자연대·대학문화 성폭력 사건은 한국의 정치조직과 운동사회가 얼마나 성폭력사건의 운동적 해결에 무능하고 성평등 실현을 위한 실천에 무관심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대다수 운동진영은 기존 운동질서의 여러 가지 이해관계에 얽혀 이 사건들에 대해 불명확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재 [붉은글씨]를 만들고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 문제들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붉은글씨가 제기했던 새로운 침머발트 좌파의 결집이라는 정신은 이러한 실천적 태도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치적·실천적으로 계급적 원칙을 견지하고자 하는 많은 동지들을 만나려고 한다. 새롭게 재탄생할 붉은글씨와 ‘붉은글씨를 만드는 사람들’이 혼돈과 무원칙이 난무하는 운동의 혼탁한 현실에 새로운 주체들을 형성하는 작은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 [붉은글씨] 3호 발간사


    2.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의식수준이 낮고 국제적 혁명운동과의 교류가 부족한 한국에서는 혁명적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진영에서조차 큰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작년은 1914년 8월 4일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칼 맑스는 이에 앞선 1848년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는 자본주의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의 근본 원칙 하나를 정립했다. 이 원칙은 노동자들이 민족 국가의 문제에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반대로 민족문제와 그들의 역사적 투쟁의 기능으로서 계급적 입장에서 민족 전쟁의 문제에 대해 입장과 태도를 규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쟁의 문제와 프롤레타리아트의 태도는 제1인터내셔널(1864~73)과 제2인터내셔널(1889~1914)에서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제2인터내셔널의 주요 당들은 애국주의 홍수와 전쟁 열기에 휩쓸리며 자신들의 기회주의 본색을 드러냈고, 결국 부끄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기회주의자들 수중에 있었던 프랑스와 독일 사민당과 영국의 노동당은 ‘조국방어’와 ‘외세침략’에 맞서기 위한 부르주아지와의 ‘신성한 동맹’을 요구하며 전쟁채권에 찬성표를 던졌다. 프랑스에서는 계급투쟁을 포기하면서 장관직을 보상으로 받기까지 했다. 그들은 “맑스주의의 황제”라고 불렸던 카우츠키가 계급투쟁은 “평화 시기”에만 가능하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면서 전쟁과 계급투쟁을 구분했을 때, “중도주의”(인터내셔널의 좌파와 우파 의 중간)로부터 이론적 지원을 받았다.


    제2인터내셔널의 죽음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심대한 패배였다. 이는 노동자들이 참호 속에서 피를 흘리게 했다. 수많은 혁명적 노동자들이 살육당했다.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들의 국제 조직을 잃어버렸다. 그것을 재건해야 했다.


    이때 소수의 당만이 이러한 폭풍 속에서 우뚝 섰다. 특히 이탈리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러시아의 당들과 로자 룩셈부르크와 호르터와 판네쿡 주위의 혁명그룹인 네덜란드 “트리뷴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계급투쟁에 충실했으며 재조직화를 시도했다.


    1915년 9월 “국제사회주의자들의 침머발트 대회”가 열렸다. 이어서 스위스의 키엔탈에서 1916년 4월 2차 대회가 열렸다. 전쟁과 억압이라는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를 포함한 11개국의 대표들이 참여했다. 침머발트 대회는 전쟁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식했다. 대회의 다수파는 ‘거룩한 동맹’의 진영으로 넘어갔거나 그들과 분리되어 관망하는 사민당들의 기회주의 우파를 비난하기를 거부했다. 이러한 중도주의 다수파는 “평화”라는 표어를 방어하는 평화주의자였다.


    볼셰비키 분파의 대표인 레닌과 지노비예프의 주도 아래 통일된 “침머발트 좌파”는 분립의 필요성과 제3인터내셔널의 건설을 주창했다. 평화주의에 맞서 레닌은 “혁명적 행동이 없는 평화 투쟁은 공허하고 기만적인 문구”라고 선언하고,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자”는 슬로건으로 중도주의를 반대했다. 이들 대회를 통해 “좌파”는 힘을 얻었지만, 다른 대표들을 깨닫게 할 수 없어 소수파로 남았다. 하지만 “침머발트 좌파”는 각기 다른 나라 좌파 사이의 회의와 그들 사이의 공동투쟁을 통해 “형성 중인 제3인터내셔널의 첫 번째 핵”을 만들 수 있었다.


    1917년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유럽 전역에 혁명적 물결을 열어젖혔다. 프롤레타리아의 위협은 제국주의 대학살이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을 국제 부르주아지에게 확인시켰다. 레닌의 슬로건은 현실이 되었다. 러시아 그리고 국제 프롤레타리아트가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시켰다. 이처럼 프롤레타리아트는 “침머발트 좌파”의 결의를 적용함으로써 그들의 원칙이 올바르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이에 생명을 다한 공식적 사회주의당들의 냉담, 거짓 그리고 부패를 쓸어버리면서,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제3인터내셔널에서 하나가 되어 바베프로부터 칼 리프크네히트, 그리고 로자 룩셈부르크로 기다랗게 이어지는 혁명 세대들의 영웅적 노력과 순교의 직접적 계승자라고 우리를 생각한다.
    제1인터내셔널이 발전의 미래 경로를 미리 비추고 그 도정을 가리켰다면, 그리고 제2인터내셔널이 수백만의 노동자들을 모으고 조직했다면, 제3인터내셔널은 열린 대중행동의 인터내셔널이고 혁명적 실현의 인터내셔널이며, 행위의 인터내셔널이다." (코민테른의 선언)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의 기반을 이룬 흐름, 분파, 전통 그리고 입장은 바로 제2인터내셔널의 좌파인 침머발트 좌파가 발전시키고 방어한 것들이었다. 이러한 침머발트 좌파의 교훈은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근본 원칙이 위선적인 선언들이나 정당의 간판에 의해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실천에 의해서 입증된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보여주었다. 제국주의의 대학살 동안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깃발을 홀로 나부끼게 한 것도, 러시아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수호로 다시 모여든 것도, 전쟁 발발 시 수많은 나라에서 발생했던 파업들과 봉기들을 주도한 것도 모두 침머발트 좌파와 같은 흐름이었다. 그리고 1919년 창설된 새로운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 핵심을 제공한 것도 이들 동일한 흐름들이었다.


    그리고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 창립총회에서 발표한 입장은 프롤레타리아운동의 역사상 가장 진보된 입장이었다. 사회-애국주의적 반역자들과의 전적인 단절, 자본주의 쇠퇴의 새로운 시기에 의해 요구되는 대중행동의 방법들, 자본주의 국가의 파괴 및 노동자 소비에트의 국제적인 독재. 이러한 강령적 명확성은 혁명 물결의 거대한 기세를 반영했지만, 그것은 이미 기회주의 정당들 내부의 좌파들이 정치적 이론적으로 준비했던 것이었다.


    1930년대 동안의 스탈린주의 반혁명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제국주의 전쟁의 암흑기 속에서도 침머발트 좌파와 그들의 정신을 이어나간 수많은 혁명가와 혁명분파들이 펼쳤던 이름 없는 노력 덕분에 오늘날 혁명적사회주의/공산주의 그룹들이 부활해서 존재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침머발트 좌파와 그 계승자인 혁명 분파들이 이루어낸 비판적 재평가의 기초 위에서 미래의 새로운 인터내셔널 정신이 살아나게 될 것이다.


    [붉은글씨]는 이러한 침머발트 좌파의 역사적 공헌인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을 중심으로 내용을 구성하고자 한다. 또한, 침머발트 좌파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타락해가는 코민테른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방어하려 했던 혁명분파들이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을 재평가한 성과이자 현재에도 진행 중인 “직접민주주의”와 “반스탈린주의 경향”을 중심으로 내용을 구성하기로 했다.


    [붉은글씨]는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토론과 논쟁의 장을 현실운동으로 넓혀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구체적 원칙들을 정립해 나가고, 프롤레타리아 조직과 계급의식의 문제에 대한 전망을 세우고, 이행기와 코뮤니즘 사회에 대한 강령 수준의 토론을 지속해나가며, 계급 주체의 문제(새로운 주체 문제,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민 운동의 전망과 관계 등)에 대한 심화 토론을 장기적으로 벌여나갈 것이다.


    3. 박근혜 정부의 노골적인 반노동자, 반민주 정책이 이제는 파시즘 논쟁을 일으킬 만큼 공격적이고 파괴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 유신 체제로의 회귀가 아니라 끝 모를 위기에 직면한 지배계급의 극단적이면서도 철저하게 선제적인 방어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정부는 자본주의 세계질서의 한 부분이자 제국주의 경쟁구도의 한 축에서 벗어날 수 없고, 총자본의 한시적 집행자 역할을 담당할 뿐 자본주의 가치법칙을 거스를 수 없으며, 헌법으로 표현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그 기반인 의회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를 이른바 '파쇼정권'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이유는 위와 같은 한국 자본주의 지배 권력의 한계뿐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다수 대중의 계급의식이 반북·반공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파시즘에 동원될 만큼 다수가 생존과 체제불안을 느끼지는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확장과 후퇴의 연속은 '위선과 허위’ 정도의 차가 있을 뿐 본질에서는 같다. 그것은 그들의 민주주의가 처음부터 허위이자 지배계급을 위한 위선적인 제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더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 이후 28년이라는 기간, 여러 차례 정권이 바뀌고 정치인이 바뀌고 노동자 출신이 정치무대에 등장하기도 했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후퇴하거나 안정적인 삶을 누구도 보장받을 수 없는 매우 위험한 사회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여전히 생존권 위협과 각종 차별에 직면해 투쟁하는 것 말고는 어떠한 해결책도 없으며, 처음부터 지금까지 투쟁할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자본주의 국가-정부, 지배계급의 민주주의의 민낯을 더는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붉은글씨]와 붉만사에서는 이러한 박근혜 정부의 반노동자, 반민주적 통치의 현실에서도 침머발트 좌파와 그 계승자들이 고수했던 방식을 교훈 삼아 계급투쟁의 원칙을 세우고자 한다. 박근혜 정부의 계급적 본질과 자본주의 세계질서 속에서의 관계, 자본주의 쇠퇴의 위기 상황에서의 계급투쟁 전망, 민주주의와 파시즘의 본질 그리고 대안, 노동자 운동의 쇠퇴와 새로운 운동(주체) 창출의 조건 그리고 조직방안 등에 대해 실천적인 논의를 해나갈 것이다.


    4. 이번 4호에서는 많은 내용을 포함하지 못했다. 정세의 엄중함을 담아내지 못하는 주체들의 한계 때문이었다. 하지만 붉만사는 [붉은글씨] 4호 발행을 기점으로 새롭게 출발할 것이다. 독자들의 많은 비판과 의견을 귀담아들을 자세 또한 되어있다. [붉은글씨]의 취지에 동의하는 동지들은 언제든지 참여할 수 있도록 [붉은글씨]의 모든 문은 활짝 열려있다.


    앞으로 [붉은글씨]는 붉만사 회원, 독자뿐 아니라 붉만사가 지향하는 코뮤니즘 사회를 위해 현실에서 실천하는 모든 운동과 투쟁 주체들의 공동의 성과물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점증하는 착취와 가난에 직면해 프롤레타리아트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침머발트 좌파”의 입장을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근본 원칙으로 다시 한 번 인식해야 한다.


    경제 전쟁에서 부르주아지와는 어떠한 신성한 동맹도 없다!
    민족 경제를 구하기 위한 어떤 희생도 반대한다!
    계급투쟁 만세! 경제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라!

    2015년 11월

    붉은글씨를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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