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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은글씨 3호] 리버테리언 공산주의
  • 조회 수: 4636, 2016-01-26 22:14:05(2016-01-26)
  • 「붉은글씨」가 추구하는 “혁명적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의 교류와 발전”을 위해 이번 호부터 해외의 다양한 공산주의 정치조직과 운동 노선을 소개한다. 
    libcom.org 그룹은 주로 영국과 미국에 기반을 둔 리버테리언 공산주의자의 소그룹이다. libcom.org의 웹사이트는 2002년 개설하여 십 여 년 넘게 다양한 공산주의 그룹과 개인들의 이론과 주장, 그리고 세계적인 계급투쟁의 생생한 소식을 알리고 토론하는 광장의 역할을 해왔다.

    [해외운동] 리버테리언 공산주의

    libcom.org에서 공산주의 혹은 리버테리언 공산주의라고 부르는 것의 내용과 왜 그것이 훌륭한 사상인가에 대한 짧은 소개

    번역 :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소개

    우리가 공산주의에 대해 말할 때 두 가지를 이야기 합니다. 첫째,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의 원리로 ‘각자의 능력에 따른 원칙에서 각자의 필요에 따른 원칙(편집자 : 노동에 따른 분배법칙에서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른 분배)’ 으로의 변화입니다. 둘째, 지금 세계에서 공산주의 사회를 향한 실제 운동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미가 잘 알려지지 않은 후자에서 시작하여 이를 제시할 것입니다.


    실제운동

    우리의 소개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경제를 묘사하고, 자본의 필요(욕구) - 이윤과 축적 – 가 어떻게 노동계급으로서 우리들의 필요와 반대되는지를 지적할 것입니다. 
    고용주는 임금, 연금, 일자리를 삭감하고, 근무 시간을 늘리고, 작업 속도를 빠르게 하며, 환경을 파괴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우리가 사는 경제에서 (삶의) 조건들이 우리의 필요가 자본과 대립한다고 주장하게끔 몰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저항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작업을 수행할 때: 우리가 임금 삭감이나 과도한 노동에 반대하여 파업을 조직하거나 규칙을 만들 때와 같이, 우리가 협력할 때, 우리가 직접 행동과 연대로 우리의 필요를 주장할 때, 우리는 새로운 유형의 사회 기반을 쌓기 시작합니다. 
    협력, 연대와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인 ‘공산주의 사회’.
    따라서 운동으로서의 공산주의는 협력, 상호부조, 직접행동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계급의 저항과 같이 항상 있어왔던 흐름입니다.
    때때로 이러한 흐름은 미국의 전후 비공인 파업 물결, 1969년 이탈리아의 뜨거운 가을 또는 1978년 영국의 불만의 겨울 또는 2010년 이후 그리스에서의 긴축반대 저항과 같은 사회의 불안과 작업장 투쟁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엄청나게 많은 수의 노동계급을 포함했습니다.
    때로는 이러한 사회적 불안은 심지어 혁명적인 사건의 폭발로 귀결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1871년 파리, 1917년 러시아, 1919-1920년 이탈리아, 1921년 우크라이나, 1936년 스페인과 1956년 헝가리. 
    이러한 사건들은 노동계급이 집단행동을 통해 자본의 이해가 아니라 우리의 이해에 따라 사회를 재조직하고자 해 왔던 운동들입니다. 


    각자의 필요에 따라서 …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잘 준비된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정치인 또는 정치 단체는 이 세상에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정당 또는 개별 정치인에 의해 존재를 선포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노동자 자신들의 많은 참여와 실험을 통해 만들어져야 하는 어떤 것입니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구소련이나 현재의 쿠바나 북한과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는 것을 이 단계에서 지적하는 것은 가치가 있습니다. 이들은 단지 국가라는 하나의 자본가가 있는, 본질에서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그리고 여당이 ‘공산당’이라고 자칭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자본주의 국가 중의 하나를 감시한다는 중국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다양한 혁명적인 사건(이전에 언급한 사건의 일부)에서 노동계급의 구성원들은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식의 실험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우리가 우리의 계급이익을 위해 함께 행동할 때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실질적인 예뿐만이 아니라 공산주의 사회를 조직하는 방법에 대한 원칙을 수립했습니다.


    자본가 없는

    개인이나 국가의 손아귀에 있는 생산수단-토지, 공장, 사무실 등등-의 소유 또는 통제 대신에, 공산주의 사회는 그 수단의 공동소유 및 통제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리고 교환과 이윤을 위한 생산 대신에, 공산주의는 안전한 환경을 위한 필요성을 포함하여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생산을 의미합니다.
    이미 오늘날,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하고 모든 서비스를 하는 것은 우리 노동자입니다. 우리는 도로를 건설하고, 집을 짓고, 열차를 운행하고, 병자를 돌보고, 아이들을 양육하며, 음식을 만들고, 제품을 설계하고, 옷을 만들고, 다음 세대를 가르칩니다.
    그리고 모든 노동자는 종종 사장들이 우리를 돕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효율적으로 작업장을 직접 운영할 수 있는 예는 풍부합니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계층적으로 조직된 작업장보다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최근의 한 예로 국가 산업의 3분의 1이 노동자 통제 아래 있었던 아르헨티나에서의 2001년 봉기 동안 점거한 공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더 크고 더 광범위한 예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1936년 스페인 내전 기간 동안, 스페인 혁명에서 노동자들은 산업 대부분을 장악하고, 집단적으로 운영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어떤 지역에서는, 노동자가 화폐를 폐지하거나 부족하지 않은 상품을 무료로 배분하는 등, 공산주의 사회에 근접하게까지 나아갔습니다. 
    총파업 기간 1919년 시애틀의 도시는 점거되어 노동자에 의해서 운영이 되었습니다. 1917년 러시아에서, 볼셰비키가 사장들의 권리를 돌려주기 전에 노동자들은 공장을 접수했습니다.

    임금 없는

    공산주의는 역시 우리의 행동 그리고 생산이 이제는 사고파는 형태가 아닌, 돈이 없는 사회를 의미합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이 임금 시스템에 의해 강제된 암묵적인 빈곤의 위협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충분한 생산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대부분이 의문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산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빈곤이나 기아의 위협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가 있습니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에서, 우리는 돈이나 임금노동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필요한 임무는 이미 수행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수렵채집사회는, 일과 놀이 사이에 차이가 없는 전적으로 평화스럽고 평등한 사회였습니다.
    오늘날에도 필요한 많은 일이 무료로 행해집니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는, 오랜 시간 사람들(주로 여성)이 일하는 데에도 매일 세 시간 이상 무급으로 가사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거의 10%는 무급으로 돌봄 일을 하고 있으며, 영국 성인의 25%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자원봉사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에서 무급 노동의 가치는 2011년에 약 11조 달러였습니다.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유용한 일의 형태 역시 임노동에 의한 것이 아닌 무료로 사람들에 의해 수행됩니다. 이것이 임노동이 반드시 필수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작물을 키우고, 아이들을 돌보며, 곡을 연주하고, 차를 수리하고, 청소하고, 그들의 문제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아픈 사람을 돌보고,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고, 옷을 만들고, 제품을 설계하는. 이러한 형태의 일은 끝없이 많습니다.
    복잡한 작업에서 돈이 좋은 성과를 위한 효과적인 동기가 아니라는 것을 연구는 보여줍니다. 원하는 것을 하고 원하는 방법으로 일할 수 있는 자유와 통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그리고 그렇게 하는 데 있어서 건설적이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이유를 가진 사람들은 최상의 동기가 부여됩니다.
    무료 소프트웨어 운동 같은 것들 역시 사회적으로 유용한 목적을 위한 비 위계적이고, 집단적인 조직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목표를 달성하는데 이윤을 위한 위계적인 조직에 비해 어떻게 우월할 수 있는지, 그리고 생산을 위한 동기를 자극하기 위해 임금이 필요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더 효과적으로 노동과정을 만드는 이윤 동기, 어떤 기술적인 발전 없이, 그리고 노동자를 해고해서 나머지 작업을 더 어렵게 만드는(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과 같은) 대신, 우리는 모두 바로 조금 덜 일 하고 더 많은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작업 중인 우리의 소개를 보시기 바랍니다.

    국가 없는

    국가에 대해서 우리가 얘기할 때에 우리는 정부를 “아주 소수의 사람에 의해서 통제되고 운영되는. 주어진 영역 내에서 정치적 그리고 법적인 결정을 할 수 있는, 또한 필요하다면 폭력으로 그들을 강제하는 능력을 [가진] 조직으로서” 정의합니다.
    고용주와 노동자, 그리고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분할이 없으면, 소수의 사람에 의해 통제되어 부자들의 재산을 보호하고 빈곤, 임노동, 그리고 심지어 다른 모든 이들의 굶주림을 강요하는 경찰 같은 조직된 폭력의 일체는 이제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본을 축적하거나 이윤을 창출할 필요 없이는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자원을 개척하기 위한 군대의 필요성도 더는 없습니다.
    물론 여전히 반사회적인 또는 폭력적인 개인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그들 자신의 폭력성과 살인에 대해서는 항상 처벌받지 않는 무책임한 경찰력에 의해 수행되는 것보다, 위임된, 서로 돌아가면서 그 역할을 맡으면서, 다시 소환할 수 있는 조직에 의해, 지역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
    집단적인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현재 대부분의 나라가 운영하는 “대의 민주주의” 대신에 우리는 직접 민주주의를 제안합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몇 년 동안 우리를 대신해 정치적 결정을 하는 한 줌밖에 안 되는 개인(보통 부유한)을 선출하는 권리 이상입니다. 심지어 “시장의 독재자들”이 회사의 이사회에서 하는 결정들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직장과 지역사회 집회(총회)를 통해 우리 직장의 동료들로부터 우리 자신의 투쟁을 통제할 수 있으며, 우리는 위임 및 소환권과 함께 통신 기술과 노동자 평의회를 활용하여 거대한 지리적 영역에 걸쳐서 서로 협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투쟁을 조직할 수 있듯이, 노동 계급이 전에 했던 것처럼 결국, 우리는 역시 자신의 사회를 조직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1956년 헝가리 반란 동안, 노동자평의회는 노동자들이 노동자 계급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를 요구함에 따라 사회를 운영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리고 최근에, 1994년 봉기 이후, 멕시코의 치아파스 지역은 지도자가 없고 공무원이라는 용어가 2주간 제한된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국가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결론

    많은 사람이 공산주의가 좋은 아이디어 같지만 실제로 작동할지 의심합니다. 그러나 먼저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물어보는 것이 가치가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부자들 속에서 수십억이 심각한 빈곤 속에 살고 있으며, 환경재앙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상황에서 우리는 “아니오.” 라고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어떤 시스템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사람에게, 그리고 심지어 자신의 부에도 불구하고 종종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자들에게, 공산주의 사회가 우리의 지금 현재 자본주의 사회보다 훨씬 더 잘 기능할 것임을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 사회라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광범위한 빈곤과 환경파괴와 같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주요 문제를 해결할 것이며, 더욱더 흥미로운 문제들을 다룰 수 있도록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더 많은 일, 더 많은 생산 그리고 더 많이 축적해야 하는 필요성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우리는 보다 어떻게 더 일을 적게 하고, 필요한 일을 어떻게 더 즐겁고, 더 흥미로우며, 더 행복하고, 더 기쁘게 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사회의 성공을 GDP로 측정하는 대신에 우리는 참삶과 행복으로 그것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직원' '고객' '감독' 또는 '경쟁자'로서 서로 관계를 맺는 대신에 인간으로서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읽고 쓰는 분들은 결코 완전한 자유 의지주의 공산주의 사회를 볼 수 없을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심지어 실제 운동으로서 그러한 공산주의는 - 자본의 필요에 맞선 우리의 요구를 주장하는 일상의 싸움은 -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개선하고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의 생활, 노동 조건뿐만 아니라 지구를 보호할 수 있는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즉, 매일 오늘날 우리의 조건을 방어하고 개선하기 위한 일상적인 투쟁, 실제 운동으로서의 공산주의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로서의 공산주의에 대한 기초를 놓습니다.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이 운동은 ‘아나키스트 공산주의’ '리버테리언 공산주의' 또는 단순히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고 불려 왔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름이나 이데올로기적인 딱지가 아니라 그 존재이며, 즉 미래의 이상이 아닌 일상생활에서의 우리의 요구, 바램과 저항 정신의 생생한 구현입니다.
    불의와 착취가 있는 모든 사회와 정권에서 이러한 저항 정신은 항상 존재하고 존재해 왔습니다.
    그래서 모두를 위한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에 대한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lib.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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