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코뮤니스트 5호]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반성과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망 1
  • 조회 수: 3881, 2021-11-08 01:15:46(2017-06-15)
  •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반성과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망 1

     

     

    들어가며

     

    “코민테른 내에서 ‘좌파’의 전투는 특히 노동자운동의 가장 끔찍한 시기, 1920년대 말에 시작한 반혁명의 시기 동안 싸웠기 때문에 특별하게 의미가 있다. 이러한 반혁명의 상황 속에서, 노동자 운동의 급속한 쇠퇴 속에서 코민테른의 좌파 혁명가는 잊지 못할 투쟁을 수행했다. 당과 코민테른을 바로 세우는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 있었고 그들도 스탈린주의 철권으로부터 당과 코민테른을 구하려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이탈리아 공산주의 좌파는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이론적으로 풍부하게 했다. 제국주의 전쟁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한 코민테른의 입장은 계급을 배반하여 되돌릴 수 없게 했다. 조직의 반역이 분명하지 않고, 당이 적 진영에 무기와 짐을 건네주지 않는 한 진정한 혁명가의 역할은 프롤레타리아 진영 내에서 싸우고, 필사적으로 당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좌파가 거센 반혁명의 가장 어려운 조건에서, 코민테른에서 했던 일이다.“(‘인터내셔널의 퇴행에 직면한 혁명가의 책임’, 국제코뮤니스트흐름, 1997)

     

    전대미문의 길고 깊은 반혁명기에도 코뮤니스트들이 혁명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냈기에 현재의 혁명 운동이 존재할 수 있었다. 현재의 암울한 상황은 반세기 전 혁명가들의 경험을 되살려 새롭게 발전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의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평가와 반성은 바로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이란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을 풍미한 PDR과 NDR 등 스탈린주의 이론에 기초한 민주주의 혁명론을 받아들인 기존 운동과 단절하고 보다 철저하게 맑스-레닌주의에 기초한 노동계급 운동을 창출하려 했던 일군의 정치그룹들을 가리키는 것이다.”1)

     

    ‘사회주의’와 ‘코뮤니스트'에 대한 엄밀한 구분은 별개로 하더라도, 이 용어 앞에 ’혁명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운동의 역사에서 맑스주의 연속성과 혁명 전통을 벗어난 조류가 너무 많아서 이들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직 규모나 활동 성과와 관계없이 ’프롤레타리아 계급(혁명의 주체)의 세계혁명(아래로부터의 노동자평의회 국제권력 창출)을 통해 자본주의 착취체제(임금노동, 상품생산, 화폐)를 폐지하고 코뮤니스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현실에서 투쟁하고 조직적으로 실천하는 운동‘을 혁명적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운동이라 규정할 수 있겠다. 여기서 사회주의 또는 코뮤니스트(맑스에게 이 두 개념은 동의어였다)는 당이나 국가 수준에서 실천할 수 있는 조건이나 강령이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 상품생산 및 가치법칙을 폐지하기 위한 운동, 즉 자본주의 사회 관계를 의식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혁명운동이다. 그동안 존재했던 한국의 이른바 ’혁명적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운동(이하 혁명운동)‘ 조직들이 이론, 조직, 실천적으로 이 규정에 얼마만큼 부합하는지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필자는 한국에서의 혁명운동에 대한 그간의 평가가 노선별, 시대별 평가에 머물렀던 한계를 극복하고 국제적 시각으로 토론의 폭을 넓히기 위해 한국 혁명운동을 세계적인 코뮤니스트 운동 흐름과 비교하면서 평가해 보고자 한다.

     

     

    1. 한국의 혁명운동은 왜 취약한가?

     

    먼저 세계적인 코뮤니스트 운동의 흐름에 비해 한국의 혁명운동은 왜 취약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알아보겠다. 여기에는 과거 운동뿐 아니라 현재 상황도 포함된다.

     

    첫째, 한국의 노동자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은 한국전쟁 이후 40년 넘는 오랜 기간, 그리고 계급투쟁의 결정적인 시기에 세계적인 코뮤니스트 운동, 혁명전통과의 단절이 있었다.

     

    현존하는 국제적인 혁명조직들은 맑스의 코뮤니스트 동맹(the Communist League)에서 시작하여 10월 혁명의 결과로서 창설된 제3인터내셔널에 이르기까지 노동자 운동의 혁명적 사상과 전통2)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혁명전통은 19세기 말 기회주의에 대항해 투쟁해온 제2인터내셔널의 좌익분파에서 시작하여, 1914년 제국주의 전쟁에서 국제주의를 방어했고, 1917년 러시아혁명에서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수호했으며, 1919년 코민테른 창설에 공헌했고, 1920년대 코민테른 내부의 기회주의 흐름에 대항해 저항하면서 하나의 국제적 흐름을 형성했다. 그 후 코민테른의 타락과 스탈린주의 반혁명에 맞선 투쟁, 국제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 진영으로 돌아가 자본의 좌파로 자리 잡은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정당들과 스탈린주의, 마오주의, 김일성주의 등 사회주의 참칭 세력과의 투쟁, 그리고 자본주의 방어역할을 하는 사민주의, 개량주의, 민족주의 세력과 오랜 투쟁을 해 온 혁명적 전통이다.

     

    이러한 혁명전통과 오랜 기간 단절되어 있던 한국 혁명운동은 극단적 민족주의 세력(김일성주의)이 대중운동의 다수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무기력했고, 내부적으로는 사상 이론적 취약성과 혁명운동의 경험부족으로 잦은 분열과 퇴행을 겪었다. 지금도 이 문제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계급투쟁과 정치운동 전반이 퇴보하는 상황에서 소수의 혁명운동 세력은 노동자운동 안의 조합주의조차 넘어서지 못한 채 노동자 계급 안에 의미 있는 정치세력으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둘째, 대부분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운동의 선전그룹으로 시작했더라도 서클운동에 머물지 않고 운동의 양적 질적 성장을 통해 장기적인 당(혁명조직)건설 기초를 마련해야 하는데 그것에 이르지 못하고 좌초되거나 완전히 실패했다. 여기에는 정파적 이해관계, 형식과 일정에 집착한 당 건설 경로도 문제였지만, 근본적으로는 혁명조직의 전제조건인 강령 건설(토론-실천-검증-통일)의 연속되는 과정이 없거나 부족했다.

     

    1930년대 이후 기나긴 반혁명의 암흑기에도 살아남은 세계의 혁명운동세력은 68혁명 이후 분출한 계급투쟁의 물결과 함께 유럽을 중심으로 남미, 북미, 아시아 일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 새롭게 부활하게 된다. 그리고 각개 약진하던 이들은 1970년대 초부터 일련의 국제대회를 개최하여 국제그룹을 형성하고, 1977년에는 전 세계의 혁명적 코뮤니스트 그룹에 국제대회를 제안3)하여 이탈리아에서 제1차 대회를 하게 된다. 국제대회 참가 그룹들은 이미 내부강령을 갖고 있거나 여러 가지 쟁점들을 토론한 결과 국제적인 수준의 강령을 정립하게 된다. 국제대회와 이후 과정에서 10년 넘는 지난한 강령토론과 사상투쟁의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국제적 수준의 행동통일과 혁명적 코뮤니스트 세력의 국제적 재조직화 가능성, 그리고 세계혁명당(인터내셔널) 건설의 전망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2007~20011년 사노련-사노위 강령토론 과정에서 쟁점이 되었던 주제들 대부분은 사실은 이미 40년 전, 더 올라가 80~90년 전에 국제적으로 깊고 풍부하게 토론되었던 내용4)이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의 강령토론은 여기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민주집중제 원리에 기초한 비합법 전위정당의 건설, 프롤레타리아트 사회주의 혁명, 인민전선 같은 상층연대 방식이 아니라 노동자 대중투쟁에 입각한 전술, 평의회 권력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등이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이 내세운 공통의 지반이었다.”5)

     

    한국 혁명운동의 큰 성과라 할 수 있는 위와 같은 공통의 지반은 2000년대 초, 중반 비공개 그룹들의 공개 활동과 몇 차례의 연합운동 과정에서 차이와 공통점을 확인했음에도 ‘강령 건설’을 중심에 둔 장기적인 당 건설 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조직형식, 전술문제, 써클주의 한계 등으로 좌절되었다. 당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강령 건설의 연속되는 과정’을 상정하고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국내외 여러 혁명세력과 열린 자세로 강령토론을 추진했어야 했다. 이러한 시도조차 없었기에 각 정파의 이론과 노선은 객관적으로 검증받을 수 없었고, 대중운동으로부터 실천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도 없었다.

     

    지금도 당 건설을 목표로 하는 그룹이나 분파의 역할은 미래의 ‘당 노선’을 올바르게 하는 투쟁을 하는 것이고, 그것의 결과로 계급투쟁이 복원될 때 당의 본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더디고 고통스럽더라도 이 과정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셋째, 한국 혁명운동의 가장 취약점은 조직과 운동 모두의 폐쇄성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세계적인 혁명운동 흐름과의 단절, 혁명조직 운동의 경험 부족, 혁명조직과의 교류 부재와 연결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세계적인 혁명운동의 물결을 만들었던 대대적인 계급투쟁과 그와 결합한 혁명운동의 경험이 없었고, 더욱이 이러한 결핍을 채워줄 국제 혁명조직과의 직간접 교류도 부족했기 때문에, 위대한 계급투쟁의 경험은 대중적으로 전혀 공유되지 않았다. 이렇게 사회주의 운동의 대중적 경험과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70~80년대 엘리트 운동가들 중심으로 이러저러한 맑스주의 이론이 비 맑스주의적인 것과 섞여 체계와 순서도 없이 수입6)되었다. 반공을 무기로 한 독재정권의 가혹한 탄압 아래, 일부가 독점했던 당시의 사회주의 운동은 전반적으로 폐쇄적일 수밖에 없었고, 특정 인물이나 정파가 조직과 운동을 오랜 기간 장악하는 폐해를 낳았다. 이는 90년대 중후반 이후에도 지속하였고, 현재에도 몇몇 그룹의 조직 운영 폐해 사례로 나타나고 있다.

     

    파시즘 아래서도 살아남아 혁명운동의 전통을 이어나갔던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유럽 코뮤니스트 좌파의 경험, 68 이후 다양한 사상 운동적 조류 속에서도 혁명적 흐름을 재조직화하고 코뮤니스트 운동의 지평을 넓힌 국제주의-코뮤니스트들의 지난한 노력과 경험, 노조를 넘어선 수많은 비공인 파업과 파업위원회, 대중총회를 주도한 노동자 투사들의 노동자 민주주의의 경험, 수많은 국제대회와 포럼, 캠프를 통해 얻게 된 국제주의자 토론문화는 혁명 운동의 소중한 자산들이다. 이러한 운동 경험의 축적이 혁명 운동의 생존 시기와 확장 시기, 그리고 계급투쟁의 결정적 시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혁명운동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이런 경험과 자산을 혁명 운동 진영에서 적극적으로 공유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조직/노선의 이해관계에 따라 배척할 때 그 운동은 특정 국가, 지역, 정파에 갇히게 된다. 국제적인 수준의 토론과 검증 없이 국내에 갇힌 운동은 써클주의, 종파주의, 패권주의 등 운동의 여러 폐해와 결합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내부적으로도 조직(노선)의 창립자(수입자)나 이식자가 조직과 운동을 사적으로 지배하게 되어, 아래로부터의 자기혁신이나 운동의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어왔다.

     

    안타깝지만 한국 혁명운동의 이러한 취약점은 지금도 대부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혁명운동의 경험을 공유하고 세계적인 계급투쟁의 흐름에 함께 하기 위한 공산주의자 국제대회 참가-개최, 국제주의적 공동행동 등의 노력은 아직도 보이지 않고 있고, 상시적이고 공개적인 강령토론도 중단된 상태이다.

     

     

    2. 1992년 이후 사회주의 운동의 간략한 평가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은 출범 문서를 통해 1992년 이후 사회주의 정치운동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1992년부터 자의적이거나 타의적이거나 공개영역으로 나온 사회주의 서클들은 선거주의와 의회주의로 경도되면서 합법·개량주의로 나아갔다. 특히 1997년은 양날개론으로 표현되는 민주노총의 건설과 그에 기반을 둔 민주노동당의 건설로 혁명적 사회주의의 비공개영역과 적대적으로 분리되었다. 2002년의 대선은 이러한 관계설정을 마무리하는 과정이었다. 그 당시 「노동자의 힘」과 「사회당」은 선거전술에 집착하여 혁명정당 건설을 통한 혁명주의의 복원으로부터 이탈했다. 혁명적 사회주의 서클과 함께 혁명당을 건설하려는 노력은 무산되었다.

     

    2003년 「사회주의 정치연합」은 중도주의와 선을 긋고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의 연대와 단결을 위한 매개의 역할을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노력의 하나로 2005년 7월 「혁명적 맑스주의자 모임」의 제안이 있었다. 그 제안은 다음의 몇 가지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자본주의의 표면적 사멸이라는 역사유물론에 근거하여 비 맑스주의의 역사적 오류를 비판·극복해야 한다는 점.

     

    둘째, 자본주의의 객관적 구조와 혁명적 주체의 변증법적 결합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근거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실천을 통한 진정한 계급혁명을 이룩해야 할 역사적 과제를 인식했다는 점.

     

    셋째, 과잉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축적위기가 자본의 전략으로 모면할 수 없고 전쟁과 파시즘이라는 야만에의 회귀로 나아가, 결국 인류의 파멸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는 점.

     

    넷째, 1920년대 초반의 세계 혁명의 실패, 스탈린주의의 등장은 반혁명의 역사적 반동으로 나아갔고, 이러한 역사적 퇴행에 도움을 주었던 사회민주주의, 무정부주의, 민족주의는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지의 유지·강화를 보완하는 반혁명적 이데올로기로 기능했고, 혁명세력의 복원을 가로막았다는 점.

     

    다섯째, 지금까지의 인터내셔널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진정한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건설을 목표로 한 각각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당 건설의 과제가 우리에게 놓여 있으며,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권력기관인 노동자평의회와 변증법적 결합으로 혁명을 실천해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었다는 점이다.

     

    그 모임의 제안은 세계혁명을 향한 세계 혁명적 맑스주의(사회주의) 진영의 국제주의 실현을 위한, 세계 코뮤니스트 연대를 위한 것이며, 그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의 혁명적 맑스주의자(사회주의자)들도 함께 하면서, 우리의 혁명적 운동을 복원해내고 고립·분산되어 각개약진하고 고군분투해왔던 세력들이 새로운 각오로 힘차게 연대 전진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을 하자는 취지였다. 2년간에 걸친 진지하고 열띤 토론을 기반으로 이 모임은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을 공개적으로 제안하고 동의한 주체들을 중심으로 2008년 2월 출범하게 된다.

     

    혁명적 사회주의와 혁명당 건설을 공개적으로, 대중적으로 선언하고 계급투쟁을 통해 실현하겠다는 이 흐름은 새로운 시도로 한국의 코뮤니스트 운동사에서 역사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친 혁명운동의 새로운 주체 창출이 아닌 운동의 몰락 속에서 발생한 단기적 연합운동이었기에 그 한계는 분명했다. 「사노련」은 서클연합으로 출범했기 때문에, 결합하지 못한 서클과 혁명주의자, 그리고 중도주의 세력 속의 혁명 인자들이 다시 한 번 공동실천을 통해 한 걸음 전진하자는 「사노위」 결성제안은 더욱 실험적인 시도였으며, 1년 반 동안의 공동실천은 결국 강령, 조직, 전술의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며 종지부를 찍는다.

     

    「사노위」와 분화된 세력이 「노혁추」와 「노동해방」으로 각개약진하고 「사노련」의 잔존그룹은 「노건투」로 각각 실천하게 된 것은 혁명 세력의 분열이 아니라, 오히려 독자적인 실천을 하면서 계급으로부터 검증받는 과정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12년 총선 선거전술 문제로, 「노혁추」에서 코뮤니스트좌파 세력이 분화한 것은, ‘종파적 철수’가 아니라 ’정치적 차이’의 결과였다. 그 차이는 혁명당 건설을 둘러싼 정치활동의 전망에 있었다.

     

    그리고 2012년 대선은 노동자독자후보에서 비판적 지지까지 늘 반복되는 선거전술의 재탕과 이합집산 속에서 두 명의 노동자 후보, 민주노총의 무능, 저조한 득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 사회주의 정치의 실종 등 최악의 선거결과를 초래했고 이는 노동자운동 전체의 쇠락을 가속하는 역할을 했다.“7)

     

    현재 더는 혁명조직 건설-확장을 통한(혁명 강령, 정치의식 균질화, 정치적 행동일치를 전제로 한) 당 건설 시도는 중단된 상태이다. 실패하고 타락한 당 건설 운동에 대해 제대로 된 반성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혁명주의 세력의 노선 투쟁을 통한 경쟁과 연대·단결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동안 혁명세력이 반혁명적 스탈린주의 세력이나 민족주의 세력, 각종 기회주의 세력과 대적 전선을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해 온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독자적인 사상노선으로 논쟁하고 계급으로부터 검증을 통해 신뢰를 획득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러한 노선투쟁의 역사가 이미 유럽과 러시아 등지에서 100년 전부터 있었음을 상기하고 있다. 세계 혁명당 건설을 목표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실현하려는 현 단계 한국의 혁명운동 세력은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혁명적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사상과 실천의 원칙을 분명하게 내세우고 노선투쟁을 해야 하고, 진정한 의미의 정치 원칙, 강령의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세계적인 코뮤니스트 운동의 역사에서 「코뮤니스트 좌파」의 원칙과 투쟁을 계승· 복원하고, 다른 혁명주의자들과 논쟁하고 토론하며 다시 연대하고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이형로


    <주>


    1)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붉은글씨 2호], 이태영|사회주의노동자신문


    2) 맑스와 엥겔스의 코뮤니스트연맹(1847-52), 3개의 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연합 1864-72,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1889-1914, 및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1919-1928), 1920년대에 타락해가는 제3인터내셔널로부터 분리해 나왔던 코뮤니스트좌파 분파들, 치머발트 좌파로부터 코민테른까지의 혁명가들은 로자, 레닌, 호르터, 판네쿡, 트로츠키, 팽크허스트, 보르디가 등이 있다.


    3) 국제대회 참가 제안 그룹 명단은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 : Battaglia communista(제안자), 프랑스 : Révolution Internationale, Pour Une Intervention Communiste, Union Ouvrière, Combat Communiste, 영국 : CWO, W.R, 스페인 : Fomento Obrero Revolucionario, 미국 : Revolutionary Workers Group, 일본 : 일본혁명적공산주의자연맹, “혁명적맑스주의분파”(Kakunaru-Ha), 스웨덴 : Forbundet Arbetamakt(Workers Power Leage), 포르투갈 : Combate


    4) 반혁명기였던 1930년대에 '빌랑(Bilan)' 주변의 이탈리아 좌익분파는 당시의 임무들을 정확히 정의했는데, 첫째, 전쟁에 직면해서 국제주의의 기본적인 원칙들을 배신하지 않을 것. 둘째, 러시아 혁명 실패의 대차 대조표를 작성할 것. 그리고 미래의 계급투쟁 부활 시 나타나게 될 새로운 당에 이론적인 기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교훈들을 이끌어낼 것 등이었다. 

    이때 이미 러시아혁명에 대한 평가와 소련 사회의 성격, 프롤레타리아 독재(이행기) 문제, 당과 평의회 관계, 제국주의 전쟁과 국제주의 원칙,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통일전선의 허구성, 의회주의 반대 등에 대한 깊고 풍부한 토론을 통해 강령 원칙을 정립했다.

    이후 프랑스 코뮤니스트 좌파(the Gauche Communiste de France)는 1930년대~1950년대까지 빌랑의 정신에 입각하여 활동을 계속했고, 한편으로 계급의 직접적인 투쟁들에의 개입에 대한 사명감에 태만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및 이론적 규명작업에 총력을 집중하여, 수많은 진전을 이뤘는데, 특히 국가자본주의의 문제, 이행기, 노동조합과 당에 대한 강령적 원칙의 진전을 이뤄냈다. 


    5)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붉은글씨 2호], 이태영|사회주의노동자신문


    6)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그람시 이론을 수입, 소개하면서 그가 이탈리아에 스탈린 정책을 이식시켰고, 이탈리아 공산당에서 혁명분파를 축출하고 당을 타락-변절시켰다는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지 않았다.


    7)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출범하면서’, [코뮤니스트] 창간호, 국제코뮤니스트전망


    7755d8d39e153a00462dc10467536400.jpg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notice communistleft 285 2024-02-23
notice communistleft 218 2024-02-14
notice communistleft 218 2024-02-08
notice communistleft 212 2024-02-03
notice communistleft 237 2024-01-29
notice communistleft 241 2024-01-17
notice communistleft 243 2023-12-22
notice communistleft 281 2023-11-14
notice communistleft 1073 2023-04-24
411 communistleft 1816 2022-06-08
410 communistleft 1843 2022-06-19
409 communistleft 1850 2022-05-09
408 communistleft 1862 2022-07-17
407 communistleft 1872 2022-08-26
406 communistleft 1872 2022-10-05
405 communistleft 1889 2022-05-10
404 communistleft 1896 2022-05-27
403 communistleft 1930 2022-05-12
402 communistleft 1935 2022-11-16
401 communistleft 1937 2022-05-23
400 communistleft 1937 2022-08-16
399 communistleft 1976 2022-05-26
398 communistleft 1983 2022-06-20
397 communistleft 1985 2022-07-01
396 communistleft 1992 2022-06-14
395 communistleft 2021 2022-07-21
394 communistleft 2031 2022-08-22
393 communistleft 2040 2022-05-23
392 communistleft 2067 2022-03-08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