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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6호]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선언 (1)
  • 조회 수: 5873, 2017-11-18 20:36:29(2017-11-16)
  • 국제코뮤니스트흐름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선언

    세계 혁명이 인류의 유일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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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터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대학살 이후 3년, 1917년 10월, 차르 체제를 그해 2월에 전복시켰던 러시아 노동자들은 전쟁의 안개 속에서 희망의 등불이었고, 차르를 대체하였으나 여전히 승리할 때까지 전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르주아 임시 정부를 타도했다. 노동자, 병사 그리고 농민 소비에트는 선두에 있던 볼셰비키당과 함께 당장 전쟁을 끝낼 것을 요구하며 전 세계의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의 혁명적 모범을 따르라고 호소했다. 이것은 헛된 꿈이 전혀 아니었다. 왜냐하면, 모든 적대 국가 전쟁 산업에서 파업, 반란, 그리고 전선에서의 우애들로 불평, 불만의 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1918년 11월, 독일혁명의 발발은 지배 계급이 더는 전쟁 중지를 지연시키는 것은 혁명의 불길에 부채질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전쟁을 중지해야 했다. 그 당시 ‘볼셰비키주의’의 유령이란 모든 국경 지대에서의 노동 계급의 연대, 노동자 평의회에 의한 정치적 권력 쟁취를 상징했는데, 짧은 기간 ‘볼셰비키주의’ 유령이 전 세계에 출몰했다. 지배 계급에게 이것은 혼란, 무정부 상태, 문명의 붕괴를 의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를 지지하는 노동자들과 혁명가들에게 10월 봉기는 새로운 세계의 약속을 포함하고 있었다. 2017년, 러시아 혁명은 전 세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남아있으며, 그 100주년은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들에 불편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러시아에서는 푸틴 정권이 그 축사에 적절한 초안을 쓰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도, (KGB가 훈련한) 푸틴이 복원을 꿈꾸는 제국, 스탈린의 강력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합(소련, USSR) 역시 10월 혁명의 후계자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민족주의적 해석과 나란히(사실 완전히 정반대인) 러시아 노동 계급은 어머니 러시아가 아니라 전 세계의 노동자들에 대해 충성해야 한다는 레닌과 볼셰비키의 국제주의적 관점 또한 존재한다. 서방의 ‘민주주의적’ 국가들의 혼란스러운 분석과 설명의 혼합물 또한 있을 테지만, 우리가 확신하는 것 중 하나는 그것이 자본주의의 정치, 미디어 또는 학계 대변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들은 전부 러시아 혁명의 의미를 왜곡하는데 봉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노동계급의 기억을 파묻거나 왜곡하려는 시도, 이데올로기적 공격의 핵심은 무엇인가?


    계급 전쟁은 끝났는가?


     첫 번째 공격 : 이것이 고대의 역사이며, 근대 세계와 거의 관련성이 없다는 주장. 우리는 더는 덜컥거리는 흑백 영화에서나 묘사하는 전쟁이란 여전히 기병대가 돌진하는 것이고, 여전히 농민들이 (만약 그들이 말을 소유할 정도로 운이 좋다면) 말이 끄는 쟁기로 땅을 경작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심지어 페트로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푸틸로프(Putilov)와 같은, 수만 명의 노동자가 매일 철저하게 착취당했던 대공장 또한 대부분 사라졌다. 적어도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실제로 많은 국가에서 농민들의 숫자는 감소했을까? 그뿐만 아니라, 진짜 노동 계급이라고 할 만한 것이 실제 존재하기는 한 걸까? 만약 있다면 당신이 자비로운 국가로부터 복지를 주장할 수 있고, 1917년 러시아 노동자들에게는 손에 닿지 않았던 그 너머의 모든 종류의 물건을 (그것이 외상에 의한 것일지라도) 구매할 수 있는 지금 시대에, 그들이 여전히 착취당하는 계급일까? 노동력을 그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집단으로 행동할 수 있는 집단적인 세력의 한 종류라기보다, 초-근대기업인 우버(Uber)가 주장하는 것처럼, 스스로 고용된 개인이라고 범주화하는 것이 더욱 진실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우린 모두, 어떤 일을 하던 간에, 광범위한 민주주의 질서 속 시민으로서 더 잘 정의되지 않을까?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주로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형태의) 자본주의가 좋은 것이든 그렇지 않든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매일같이 듣는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전에 없을 정도로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진정 사실이다. 자본주의는 진정으로 세계적인 체제이며, 세계의 모든 나라를 지배하는 것은 세계적 생산 양식이며, 그것은 여전히 자신을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쿠바나 중국을 포함해서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본이 있는 곳에는 그 자본을 생산하는 계급이 있으며, 이 계급의 노동은 그들이 공장, 사무실, 학교, 슈퍼마켓, 병원, 운송업 등에서 일하든 집에서 일하든 관계없이 자본에 의해 착취된다. 왜냐하면, 자본이란 그 정의에서 임금노동자들로부터 추출된 지급되지 않은 노동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추려서, 맑스는 정확히 임노동과 자본이라고 불리는 팸플릿에서 “자본은 임노동을 전제로 하며, 임노동은 자본을 전제로 한다” 고 했다.

     

    물론 세계 노동 계급의 형태는 1917년 이후 크게 변해왔다. 전체 산업 단지들은 중국, 또는 라틴 아메리카, 또는 한때 제 ‘3세계’라고 일컬어지는 지역으로 이동했다. 서유럽의 ‘산업화한 국가’ 경제 대부분에서 노동자들은 공장의 물질적 상품 생산을 멈추었고, 대신 ‘지식 경제’  또는 금융 부문, 때때로 보다 더 작은 작업장의 컴퓨터 스크린 앞에 앉아 일한다. 그리고 광업, 철강, 그리고 조선과 같은 전통적인 산업 영역이 대량 파괴되었고, 이와 맞먹을 정도의 노동계급 거주 공동체 또한 붕괴했다. 이 모든 것이 이 사회에서 뚜렷한 존재와 이해관계를 가진 계급으로 노동계급이 자신을 정체화하는 수단들의 토대를 약하게 하는 데 이바지했다. 이는 노동 계급의 역사적인 기억을 약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노동계급 자체를 소멸시키지는 못했다.

     

    객관적으로 노동계급이 존재한다고 해서, 이 계급의 상당 부분 내에서, 자본주의 체계가 전복되고 더 높은 형태의 사회로 교체되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또한 그것이 가능하다는 정치적인 프로젝트 내지는 아이디어가 존재한다는 것을 자동으로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2017년 오늘날, 다음과 같이 질문하는 것이 합당하다. 산업 노동자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발전시킬 수 있고, 그들이 대규모 행동, 파업 또는 봉기에 참여할 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러시아의 볼셰비키 또는 독일의 스파르타쿠스(Spartacists)에 해당하는 오늘날의 맑스주의 조직은 어디 있는가? ‘코뮤니즘의 붕괴’에서 포퓰리즘의 등장까지 지난 수십 년간,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해 여전히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잘 봐 줘야 관계없는 괴짜, 멸종의 위기에 처한 희소 동물로 종종 비치고 있고, 적대적인 자본주의 미디어에 의해 더욱 그렇게 비치고 있다. 노동자 계급의 광범위한 다수에게 1917년 러시아 혁명과 코민테른(the Communist International)에 대한 모든 것은 잊혔고, 아마도 일종의 깊은 무의식에 갇혀, 더는 어떤 살아 숨 쉬는 전통의 일부로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날 심지어 포퓰리즘 우파조차 그들의 자유주의 반대파들에 의해 대표되며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오늘날, 노동운동은 노동계급의 정당으로, 세계를 운영한 엘리트에 반대한 투쟁의 상속자로서의 과거를 기억해 낼 수 없는 역량 부족 상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망각 과정은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그 이전보다 더욱 생산 수단에서뿐만 아니라 소비의 대상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것, ‘지속적인 혁명화’에 의존한다. 그래서 무엇인가 한때 새로운 것, 예를 들면 최신의 스마트폰과 같은 것들도 수년 후에는 구식, 교체될 필요가 있는 것이 된다. 무엇이 ‘구식인가’, 무엇이 진정한 역사적 경험인가에 대한 이러한 중상모략은 착취당하는 계급에 유용한데, 왜냐하면 착취당하는 이들 가운데 일종의 기억상실증을 유발하는 데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은 그 자신의 혁명적 전통에 대해 망각할 위험에 직면해 있는데, 역사적 위기에서의 진정한 교훈을 버리고 있다. 왜냐하면, 미래 투쟁에서 적용할 필요가 있는 교훈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지는 반동적 계급으로서 우리에게 과거를 잊기를 바라거나, (포퓰리스트와 성전주의자들(jihadist)과 함께) 거짓의 환상, 이상적이었던 과거를 제공한다. 반대로 프롤레타리아트는 미래와 함께하는 계급이며, 바로 그 이유로 과거 인류의 최상의 것들을 코뮤니즘을 위한 투쟁으로 통합시켜낼 역량이 있는 계급이다.


    자본주의는 이미 그 수명을 다했다


     역사적 과거에 대한 교훈은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본은 자신의 내적 모순으로 인해 사멸할 운명을 가진 사회 체계이며, 1915년 전 세계를 제1차 세계대전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이러한 모순은 오늘날 세계를 야만으로 가속하여 밀어 넣으려는 위협과 같기 때문이다. 생산과 파괴에 관한 계획이 전 지구적 수준에서 이뤄질 필요와 세계를 경쟁하는 국가들로 나눌 필요 사이의 모순은, 거대한 제국주의 전쟁과 20세기의 분쟁들 너머에 있으며, 중동, 아프리카와 같은 지역 전체를 파괴하고 있는 혼란스러운 군사적 대립들 너머에 있다. 또한, 1929년부터 1973년까지, 그리고 2008년 세계 자본주의를 뒤흔들었던 경제적 격동과 지구에서 삶의 바탕을 위협하는 생태적 파괴를 가속하는 것 모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사회화된 생산과 그 사적 전유의 하나의 표현인 바로 그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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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모스크바에 모였던 혁명가들은 제3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 1914년에서 1918년까지의 제국주의 전쟁이 세계 자본주의가 정체와 쇠퇴기, 인류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선 시기에 진입했다는 신호임을 선언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만약 자본주의가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전복되지 않는다면, 1914-18년의 전쟁보다 더욱 파괴적인 전쟁이 있을 것이며, 그것은 지금까지 등장한 그 어떤 자본주의자들의 지배 형태보다도 더욱 무시무시하리라 예측했다. 또한, 국제적 혁명 물결의 패배는 러시아 혁명의 고립과 타락이라는 결과와 함께 그들이 너무 옳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나치즘, 스탈린주의와 2차 세계대전의 공포는 그 이전에 있었던 어떤 것보다 진정으로 더 나쁜 것이었다.


    자본주의가 그 복원력, 생존과 심지어 번영하는 그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내는 역량에 있어서 혁명가들을 반복해서 놀라게 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그것이 세계를 지배하는 두 제국주의 블록의 손에 있었던 핵전쟁의 위협을 동반하긴 했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중심 국가들은 20여 년 넘는 경제 호황을 누렸다. 이러한 호황이 1960년대 말 무렵에는 새로운, 그리고 지연된 경제적 위기에 자리를 내어주긴 했지만,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는 생존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과거에는 ‘미개발되었던’ 인도나 중국과 같은 지역에까지 확장하는 새로운 형태를 내보였다. 그러나 바로 이 개발은, 많은 부분 엄청난 신용 투여로 부채질 된 것이었으며, (2008년의 금융 위기가 이미 경고한) 미래의 엄청난 경제적 문제들을 축적했다. 동시에, 지난 수십 년간의 성장은 자연환경으로부터 끔찍한 대가를 짜낸 것이었고, 군사적 분쟁 위험 또한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두 거대한 블록 간의 세계 전쟁 위협은 가라앉았지만, 오늘날에는 훨씬 더 많은 국가가 핵무기로 무장을 했고, 유럽과 미국에서의 테러리스트들의 폭력사태 급증, 중동과 아프리카에서의 악몽과도 같은 전쟁으로부터 필사적인 탈출을 하는 난민들의 물결 때문에 한때 저개발 지역에 다소 제한되어 있었던 강대국 간의 대리전쟁이 이제 그들 중심 국가에 직접 충격을 주고 있다. 자본주의 생존은, 그 이전보다 훨씬 인류의 생존과 양립할 수 없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혁명은 1917년보다 더욱 필수적으로 되었다. 혁명은 완전히 부패한 사회 시스템에 직면한 인류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최선 최후의 희망이다. 그리고 이 혁명은 오직 세계 혁명을 의미하며, 전 지구상의 자본주의 체계를 일소하고 지구를 ‘공동의 보물’로 만들 수 있는 세계 인류 공동체로 그것을 대체하는 것이며, 시장과 이윤이라는 비인간의 요구로부터 생산과 분배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1917년 혁명의 진정한 의미였다. 그 주역들은 그 혁명을 ‘러시아’ 혁명이 아니라 그저 세계 혁명의 첫 번째 타격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그것은 1917년에서 1923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퍼진 거대한 대중 파업과 봉기의 진실로 필수불가결한 적극적 요인이었다.

     

    혁명은 모든 것을 악화시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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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만약 새로운 사회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정말 가능한가? 그리고 사실, 1917년 10월의 기억에 대한 두 번째 공격은 혁명이 모든 것을 오직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증거? 러시아혁명이 스탈린주의 강제수용소로 끝났다는 것. 대중 테러, 재판 쇼, 역사의 위조, 다른 의견의 억압. 거대한 군사적 병기창을 대량 생산할 수 있었지만, 품위 있는 소비자 상품을 제공할 역량이 없었던 경제를 창조했다는 것. 1953년 동독, 1956년 헝가리, 그리고 1981년 폴란드에서처럼 프롤레타리아 반란을 분쇄하는 탱크를 사용했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설립.


    이 모든 것은 1924년 레닌의 죽음과 스탈린의 권력 획득 이후에 도달한 우울함과 같은 것이 아니다. 심지어 레닌 생전에도 노동자들의 파업과 반란은 무장된 군대에 직면했고, 체카의 통제되지 않은 폭력에 많은 노동자 농민들이 희생자가 되었다. 심지어 레닌 생전에도, 소비에트는 점차 국가에 대한 어떠한 실질적 통제의 행사를 멈추었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이미 진즉에 볼셰비키당 독재로 거의 교체되었다.

     

    혁명의 가능성에 대해 진지한 사람들은 노동계급이 직면한 과업의 거대함이나, 그들이 자본주의 체계에 맞서고 전복시킬 대담성을 가졌다는 것에 대해 진실을 감추거나 최소화하는 데 관심이 없다. 혁명한다는 것은 시대의 쓰레기- 자본주의 사회와 그 이데올로기로부터 뿐만 아니라 수천 년 동안의 계급 지배로부터 비롯된 모든 환상과 해로운 습관들을 던져버린다는 것이다. 혁명은 과거의 정권, 국가, 그 경제를 해체할 뿐만 아니라 더는 경쟁이나 배제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닌 연대와 협력에 기반을 둔 새로운 사회관계를 창조해내는 것. 또한, 그것은 전 지구적 수준에서 이뤄지는 것을 목표로 하며, 굉장한 물리적, 도덕적, 지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거대함,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그 규모가 노동계급의 현재의 어려움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수동적으로 후퇴하거나, 현재 체제가 깊은 곳에서부터 잘못되어 있다고 이해하고 있지만 포퓰리스트적인 강한 지도자 또는 허무주의적 ‘성전’을 주장하는 사람. 또는, 현존하는 자본주의 국가에 사회주의 사회를 도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좌파’ 정당들이 제시하는 ‘더 쉬운’ 대안을 찾는 사람이 되기는 훨씬 쉽다.


    우리는 러시아 혁명의 현실성 – 그 엄청난 어려움과 비극적인 오류로부터 숨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오류들로부터 올바른 길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볼셰비즘은 스탈린주의와 그 출발에서부터 다른 것이 없으며, 현존하는 정세를 전복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불가피하게 대규모 테러와 억압으로 귀결될 것이라거나, 또는 인간의 본성이 그러므로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가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는, 낡은 역사가 제시하는 결론에 이르기 전에, 먼저 1917년 지배계급이 단순히 인간 본성의 이기심에 의존했던 것도 아니었으며, 그들이 “내가 그럴 거라고 당신에게 이야기했잖아.”라고 빈정거릴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이 잘못될 때까지 기다린 것도 아니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1917년과 그 후 수년, 전 세계의 지배계급은 혁명의 위협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며, 진실로, 억누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1918년 독일 혁명의 일어났을 때, 대중 파업과 반란 너머의 주요한 동기 중 하나를 제거하기 위해 그들은 전쟁의 종결을 서둘렀다. 이에 더해 동맹국들은 과거의 적이었던 독일의 지배계급이 10월 봉기의 모범을 따르려 하던 혁명적 노동자들, 선원들, 그리고 군인들을 찍어 누르려 하자 이를 도우러 왔다. 러시아의 소비에트 권력에 직면하여 제국주의 전쟁의 양편은 볼셰비키 위험을 그 원천에서부터 없애려는 목표로 개입했다. 내전에서 러시아의 반혁명 군대에 의해 자극되어 조직된 소비에트 권력을 방어하는 이들은 고향 땅에서 자란 백군뿐만 아니라 영국, 미국, 일본, 독일과 그 외의 국가들에서 백군을 돕기 위해 보낸 군대와 조언자들로 이뤄진 원정 군대도 상대해야만 했다. 내전은 서유럽 동맹국들에 의해 부과된 경제적 봉쇄로 강화되었는데, 이 때문에 이미 3년의 전쟁으로 기진맥진한 러시아 경제는 빠르게 축소되어 파괴되고, 끔찍한 결핍과 대규모 기근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내전의 조건 또한 혁명 뒤에서 가장 적극적인 세력이었던 산업 노동계급의 요새를 약하게 만들었다. 이들 중 가장 헌신적인 이들이 전선으로 가길 지원하였으며, 그들 중 셀 수 없는 이들이 자신의 삶을 잃어야 했고, 그동안 다른 노동자들은 도시의 굶주림을 피해 농촌으로 가 음식과 일거리를 찾는 것 외의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러시아 안팎에서 볼셰비키를 어린이들의 살인자, 여성의 강간범으로 묘사하거나, 때때로 볼셰비키주의가 유대인들의 세계적 음모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식의 반-유대적 테마를 빌리는 식의 선전이 계속하여 흘러나왔다.

     

    진실로, ‘민주적’ 강국들의 정치인 중 다수에게는 – 영국의 윈스턴 처칠을 포함하여 - , 볼셰비키의 파도로부터 분리하기 위해 의지할 수만 있다면 이탈리아의 (그리고 후에는 독일의) 파시스트 정권은 필요악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이와 유사하게, 스탈린 아래의 소련이 ‘국가들의 콘서트’에 다시 참여하고자 했을 때, 많은 부르주아 정치인과 국가는 스탈린이 ‘함께 사업을 할 수 있는 인물’임을 알아볼 수 있었으며, 그의 ‘일국 사회주의’ 정책은 그가 더는 세계 혁명에 관심이 없음을 – 실제로는 그에 반대하는 것임을 – 이해했다. 소련이 제국주의 콘서트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허락은 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군에의 참여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스탈린주의가 볼셰비키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무덤을 파고 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증명이었다. 1914-18년의 볼셰비즘은 제국주의 전쟁, 모든 교전국의 반대하여 계급투쟁을 위해 혁명적 반대파에 섰다. 1941년 스탈린주의 소련은 나치 독일과의 일시적 협정에 따라 ‘위대한 애국 전쟁’의 깃발을 들었으며, 그 끝에서 제국주의자들이 지구를 분할해 차지하는 데 참여하였다.


    거대한 거짓말 “스탈린주의는 코뮤니즘과 같다”


     그 당시 스탈린주의는 혁명의 산물이 아니라 고립과 패배의 산물이었다. 1923년 즈음, 이 시기는 10월 봉기로 촉발된 국제적 혁명의 불길이 사그라지고, 볼셰비키 당내에서 힘을 얻어가고 있던 관료층이 현재 급한 일은 세계 혁명이 아니라 소련의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주장을 하는데 필요한 총알을 공급하던 때이다. 그러나 이것은 세계적 규모에서만 사회주의가 건설 가능하다는, 사회주의의 고립된 섬은 불가능하다는 맑스주의의 근본적인 이념을 포기함을 의미했다. 그리고 스탈린주의 관료의 무자비한 5개년 계획이 만든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한 형태로 개별 자본가들이 한 국가의 사장으로 대체되었을 뿐이었다. 국가 자본주의를 향한 이러한 경향은 비단 소련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시즘, 미국의 뉴딜,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케인지언 복지 국가, 상대적으로 약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의 군사 독재와 같이 여러 가지 형식을 취했지만, 이것들은 전쟁과 경제적 위기에 대한 보편적인 자본주의의 대응이었다. 소련의 상황에서 독특했던 것은 국가 자본주의를 향한 추동력이 여기서 가장 집중되고 극단적인 형태, 혁명 중 사적 자본가들의 실질적인 제거(도피든 몰수든)라는 결과에 이르렀다는 점, 그리고 혁명으로 등장한 국가 내부에서 반혁명이 성장했기 때문에, 그리고 거의 국가와 구별할 수 없을 지경이 된 볼셰비키 당이 관계되어 있어서, 스탈린주의 정권은 나머지 기간 이미 시체 더미 속에 묻혀버렸던 10월 혁명의 연속성을 주장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거짓된 동일시는 러시아 외부의 스탈린주의 정당들에 급진적이라는 광택을 내게 해 주었고, 또한 자본주의와 각각 자신들의 국가의 민족적 이해에 대한 자신들의 완전한 헌신을 붉은 10월로 포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서방의 지배 계급의 주요 파벌들에 스탈린주의 정권은 ‘코뮤니즘’과 같다는 역사의 가장 거대한 거짓말을 공표할 자격을 주었다.

     

    이 거짓말의 거대함은 스탈린주의 체계를, 적어도 맑스와 엥겔스 시절부터의 노동자 운동 속에서 방어해 왔던, 코뮤니즘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에 대한 이해와 비교했을 때 가늠할 수 있다. 그 당시의 각성을 따랐던 이들로서 그들에게 코뮤니즘이란 1000년의 인간 소외, 인류 스스로 만들어낸 창조물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적대 세력이 되는 어떠한 사회적 질서도 극복하는 것을 의미했다. 정치 수준에서 코뮤니즘은 국가가 없는 사회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국가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한 지배의 명확한 표현이며, 따라서 광범위한 대중이 아무런 통제력을 갖지 못하는 정치적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스탈린주의 정권은 개인, 사회, 무엇보다 노동계급에 대한 국가의 완전한 지배의 전형이었다. 경제적 수준에서 코뮤니즘은 인류가 비인간적인 경제적 법칙과 이윤과 시장의 냉혹한 요구에 더는 종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코뮤니즘에서는 돈, 시장, 또는 임노동의 자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아직 생산성 전쟁이 전체 경제 체제를 지배하는 스탈린주의 국가의 전체주의적 권력은 임금노동자 계급에서 추출한 잉여가치 위에 세워져 있었다. 자본은 본질에서 사회적 관계이지 단순히 법적 소유의 형태가 아니다. 임금노동자들에게는 그 또는 그녀의 노동력이 사적 기업가에 팔리든 국가 관료에게 팔리든 차이가 없다. 자본주의 착취의 본질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코뮤니즘이 인류를 여러 민족으로 분리의 끝, 국경 철폐를 의미하는 한, 스탈린주의 정권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광신적 조달자이며, 이들은 그들의 국경의 방어에 전적으로 헌신하고 세계라는 투기장에서 그들의 민족적, 제국주의적 이해를 추구한다.

     

    그러나 만약 스탈린주의가 코뮤니즘이라는 주장이 그토록 엄청난 거짓말이라면, 어떻게 그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는가? 무엇보다도, 그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동서 일련의 지배자들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인류, 특히 노동계급에 대한 그들의 모든 범죄를 위해 스탈린주의 국가 부르주아지는 그것이 10월 혁명과 ‘연속성’을 갖고 있다는 주장에 매달렸다. 코뮤니즘으로 이행해 가는 ‘사회주의’국가라는 개념은 이러한 정권들을 이데올로기로 정당화시켜 주었다. 이 속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은 아무리 타락하거나 변질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정권을 노동자들이 방어해야 하는 진정한 노동자의 국가라는 주장을 계속해 온 트로츠키주의자에 의해 ‘좌익’으로 응원을 받았다. 서구의 많은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의 형태를 띤 자본주의의 장점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이 지구상 어딘가에 자본주의의 실제 대안이 있다는 개념은 중요한 희망의 원천이었다. 스탈린주의 정권은 실제로 자본주의였지만, 왜곡된 형태의 자본주의였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는 다른 사회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서구 대다수 이들에게는, 그리고 실제로 스탈린주의 정권 내의 노동 계급의 다수에게도, 소련과 그 위성이 사회주의라거나 또는 코뮤니스트였다는 생각은 서방의 다양한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가능한 체계이며, 방어되어야 하고, 추구해야만 하는 체계라는 궁극적인 증거였다. 바꿔 말하면, 스탈린주의 정권을 특징짓는 비참함, 결핍, 그리고 억압이 자본주의를 더욱 높은 형태의 사회로 바꿀 수 없다는 불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자본주의 경쟁, 제한 없는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욕망, 이런 것들이 인간 본성의 본질이라는 것으로 정당화되었다. 이것이 서방의 지배 계급이 동쪽의 적을 사회주의 또는 코뮤니스트로 묘사하는데 단호했는지, 동쪽의 정권이 80년대 말 몰락했을 때, 맑스주의 그리고 코뮤니즘 실패의 최종적 증거라는 거짓말이 전 세계로 증폭되면서 오늘날에도 전혀 사라지지 않는 메아리가 되는 정치 선전으로 들리지 않게 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선전은 노동계급 일반에 심각한 혼란과 무질서를 가져왔으며, 노동계급은 1980년대에 이미 더 높은, 좀 더 통일된 수준으로의 즉각적인 투쟁을 할 수 있는 전망, 역사적 프로젝트를 발전시키기 어려움을 깨달았다. 현재 사회를 넘어서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널리 알려진 아이디어는 노동계급이 자신의 투쟁을 정치화하고 자본주의 체제 전체에 맞설 수 있는 역량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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