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코뮤니스트 6호] 10월 혁명 100주년에 즈음하여 : 1917년의 명백한 유산
  • 조회 수: 24251, 2017-11-23 10:59:28(2017-11-23)
  • 10월 혁명 100주년에 즈음하여 : 1917년의 명백한 유산

     

     1917 10월혁명.jpg

     러시아 혁명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해는 1917년이다. 하지만, 이 혁명을 최초의 제국주의 간 세계대전(1914-18)을 끝낸 1917년부터 1921년(중국에서는 1927년까지 계속)까지의 노동자계급 투쟁이라는 세계적 고조 속에 위치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고조는 독일 혁명(1918-21), 이탈리아 북부의 공장 점거(1919-20), 1919년 영국의 전국적 파업 물결, 헝가리 혁명(1919), 그리고 1919-20년 프랑스, 1919년부터 1923년까지 스페인, 미국(1919)에서의 중요 파업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러한 투쟁은 미국의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 1908-14년 영국, 아일랜드와·스코틀랜드의 생디칼리스트 파업 물결, 1914년 이탈리아의 “붉은 주간,” 그리고 어떤 이론가의 산물도 아닌 투쟁 속 노동 계급의 실천을 통해 발견한 노동자평의회와 무엇보다 소비에트를 역사적 의제 위에 올린 1905-07년의 러시아 혁명과 연관된 세계대전 이전의 정치적 동요를 지속시하고 증폭시켰다.

     

    영국의 조지 6세(George VI)와 같은 가망 없는 목격자가 말하듯이, “전쟁에 감사를 드립니다! 전쟁이 우리를 혁명으로부터 구해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유럽과 미국에서 급증했던 투쟁들뿐이다. 자주 잊고 있지만, 1905-14년의 시기는 동시대인들에게는 이란(1906), 멕시코(1910-20), 중국(1911)의 혁명, 인도(1909)의 봉기를 포함해 혁명이 증가하는 시대로 나타났다.

     

    반-식민지와 식민지 세계에서의 이러한 투쟁은 1925-27년에 절정에 이르는 중국에서의 오랜 정치적 동요 기간, 1918년 일본의 쌀 폭동, 1922년에 일어난 (다소 문제가 있는) 남아프리카의 총파업1), 1922년 브라질 좌파 장교들의 쿠데타, 1925년까지 터키의 투쟁 물결2), 북부 이란의 질란 소비에트,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좌익 성향의 친-소련 쿠데타와 함께 1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계속 되었다.

     

    나는 이들 반란과 혁명에서 현재까지 최고의 유산은 헤르만 호르터, 안톤 판네쿡, 아마데오 보르디가와 같은 인물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독일-네덜란드 변형(變形)과 이탈리아 변형 두 가지를 지닌 이른바 좌파 코뮤니스트들이라고 본다. 두 변형이 공통으로 주장한 것은 러시아에서 “이중 혁명”을 이뤄낸 노동자-농민 연맹과는 달리 서구의 노동계급은 홀로 서 있었고 이미 토지를 가진 농민층과 동맹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미아스니코프 주변의 ‘노동자 집단’과 같이 서구의 흐름에 동조한 러시아인도 있었다.

     

    (실제로 훌륭한 전략가들이었지만, 자신들의 조직 이론 및 실천 때문에 반혁명을 촉발시킨, 레닌과 트로츠키의 모호한 역할을 조금이라도 깊게 평가하는 것은 이 짧은 글의 길이를 두 배로 늘이는 일이라서 유감스럽지만 생략한다.)

     

    좌파 코뮤니스트 조류는 1921년의 크론슈타트 소비에트 분쇄를 통해 가장 기억에 남는 상징이 된 세계 혁명 물결의 퇴조 속에서 러시아 중심의 제3 인터내셔널 헤게모니와 그것이 세계적으로 확산시킨 수십 년의 스탈린주의적 반-혁명에 의해 묻혀버렸다. 부차적으로, 1917년에 노동 계급이 인구의 10% 이하이던 나라가 주 무대가 되었다.

     

    이 흐름에 나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름을 붙여야 한다.

     

    룩셈부르크는 사회 민주주의와 완전히 단절하는 1918년 이후의 명확한 관점을 보여주기에는 너무 일찍(1919년 1월) 살해당했다. 그러나 1905년 이후 대대적 파업에 대한 그녀의 저술들, 민족주의에 대한 그녀의 거부, 그리고 정치경제학 비판에 대한 그녀의 두 저술은 오늘날도 그것들을 썼던 때만큼 의미가 크다. 세계대전 동안 감옥에서 보낸 그녀의 편지에 담긴 놀라운 인류애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볼셰비키 혁명이 첫날부터 부르주아 혁명이었다고 말하는 (또는 보기를 들어 오토 륄레 같은) 좌파 코뮤니스트들에게는 동의하지 않는다. (편집자 주 - 러시아 혁명을 부르주아 혁명으로 규정하는 흐름은 “평의회주의 경향”으로 좌익공산주의에서 출발했지만 극단적인 오류에 빠진 정치사상이며, 현재 코뮤니스트 좌파 흐름은 러시아 혁명을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1920년대 초에 이러한 성격 규정이 발전했고, 러시아의 내전(1919-21) 기간에 서구의 좌파 코뮤니스트들은 러시아 백군들에게 무기와 탄약을 운반하는 기차들을 폭파했다. 소비에트의 짧았던 권력과는 별도로 1917년은 러시아 농민 코뮌의 광대한 확장을 나타냈는데, 농민 코뮌은 1930년 스탈린의 “집단화” 실시 이전까지는 러시아 영토의 98%를 통제했다.3)

     

    대체로 이들 이름과 흐름 대부분은 현재로서는 호박 속 화석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오늘날을 위한 지침으로써 독일-네덜란드 (코뮤니스트) 좌파와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 좌파(“보르디가주의자들”)의 통합 가능성을 가리킨다. (나는 두 흐름이 서로 싫어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편집자 주 - 이탈리아 코뮤니스트 좌파는 보르디가주의 경향과 데이먼이 창설한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PCINT) 경향이 있으며, 후자는 독일-네덜란드 코뮤니스트 좌파의 영향을 받은 조직(CWO) 등과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을 만들어 함께 활동 중이다.) 이러한 요소에는 개별 작업장에 나타난 노동 분할(그람시의 자랑거리인 공장 평의회에 대한 보르디가의 비판)을 극복해내는 실업자와 은퇴한 프롤레타리아의 지역 조직인 소비에트, 소비에트의 부속물인 노동자평의회, 러시아의 1917년을 규정하는 “이중 혁명” 이론, 그리고 모든 “범계급” 동맹으로부터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에 대한 강조 등이 포함될 것이다.

     

    나는 또한 소련(그리고 오늘날 중국과 베트남까지 이르는 이후의 파생 현상들)을 “자본주의로의 이행”으로 본 보르디가의 성격규정도 지지한다.

     

    이런 관점은 “노동자 국가”라는 트로츠키주의적 개념도 거부하면서, 독단적이며 내가 보기 에 손쉬운 “국가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피하게 해준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오늘날 수습할 수 있는 정통적 연속성에서 단절되지 않은 실마리는 없으며 단지 지침일 뿐이다. 새로운 국제적 통합은 진행 중인 작업이며, 이것이 하나의 기여다.

     

    1917년의 격동 이후 100년


    2017년, 트럼프, 푸틴, 시진핑, 두테르테, 모디, 에르도간, 아사드와 네타냐휴의 세계에서 다음세대 세계 노동계급의 고조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극히 “비-동시대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심스러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천 건의 파업을 포함해 매년 더 많은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중국(2016년에 150,000건)을 선두로, 지난 10년간 3~4 차례의 총파업을 벌인 베트남4),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섬유 및 의류 수출 부문에서 수많은 파업과 폭동이 일어나고 있는 방글라데시, 그리고 마루티 스즈키에서와 같은 파업을 겪는 인도5)가 있는 아시아만 보면 된다.

     

    과제는 1848년 이후의 모든 혁명적 상황에서 임금 노동 프롤레타리아가 새로운 투쟁 형식을 찾아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든 “불변적 요소”를 규명하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가 자본의 축적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한다면, 세계의 임금노동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어두운 이면”인 집단적 실천 주체이며, 이들은 노동계급을 상대로 계속 시도되는 “우버화(Ueberization)”로 귀결되는 1970년대 이후의 파편화 전략에 의해 더욱 전도되어 소외된 형태로 되어 있다. 이윤, 금융, 부동산(지대)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는 인간 노동의 결과물들이 거꾸로 걷는 것처럼 보이고, 여기서는 파열이 일어나는 예외적 국면에서만 자신들의 일상적 행위로 그런 소외된 형태를 떠받치는 사람들의 “대자적 계급”이 마법 신발(7리그 신발)을 싣고 똑바로 서서 현실을 활보할 수 있다. 코뮌을 촉발시킨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1905-07년 러시아 및 폴란드에서의 분출로 이어진 1904-05년 일본과의 전쟁에서 러시아의 패배, 영국의 봉쇄에 맞서 확실한 죽음을 맞느니 차라리 폭동을 일으킨 키엘의 독일 수병들은 체제의 논리에 의해 한계로 내몰리다가 그것을 뒤집은 프롤레타리아의 과거 사례들이다.

     

    오늘날 두 제국주의 세력 간 세계대전 차원의 전쟁은 말할 수 없는 재앙일 것이며,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라는 질문에 아마도 분명히 후자에 찬성하여 대답할 것이다. 오늘날, 그리고 오랜 시간 야만인들이 승리해왔다. 미국의 슬픈 예만 들자면, 우리는 “세계의 가장 부유한 나라”가 근무 중 사망에서 늘 “선진 자본주의” 세계를 이끄는 것을 보고 있다. 최고경영자와 노동자의 소득 비율은 1970년대의 40 대 1에서 오늘날은 200 또는 300대 1로 증가했고, GDP에서 노동자의 몫은 1945년 이래 최저다. 현재의 거대한 허리케인 하비와 어마는 “기후 현상들”의 급증이 기후 변화의 증거가 필요하다면 추가적 증거임을 강조해주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코뮤니즘(공산주의)을 무엇보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현실적 운동”(『코뮤니스트 선언』)으로 보기 때문에, 아시아에서 계속되는 위에서 언급한 파업 물결들 이외에도 2001년 아르헨티나의 피케테로스(piqueteros) 운동과 이후 2014년 마이클 브라운의 총격 살해로 매일 거리로 나온 미주리주 퍼거슨 시의 흑인 청년들, 현재 진행 중인 마크롱의 최우선 의제가 된 국가에 의한 노동법 개악에 맞선 프랑스 노동자와 청년의 저항, 이집트의 말할라 섬유공장에서 이어지는 전투적 노동 투쟁과 2017년 3월의 빵 폭동, 그리스에서 유럽연합에 의한 긴축에 대항해 일어난 수년의 파업과 폭동, 그리고 남아프리카의 광산노동자 파업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우리는 2017년 초 멕시코에서 휘발유 가격이 또다시 오른 데 반대해 일어난 폭력적인 전국적 저항, 2017년 3월 공장 경비를 공격한 베트남 노동자들도 언급할 수 있다.6) 이것들은 “오래된 두더지”가 죽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몇몇 예일 뿐이다.

     

    우리는 그래서 1917-21년의 분출이라는 더 큰 맥락에서 바라볼 때, 먼 과거에 일어난 한 역사적 파열을 행복한 명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늘과 내일의 투쟁들, “역사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이며, 자신이 그 해답임을 아는” 다가오는 계급의 반란을 통합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가장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주>

     

    1) 남아프리카의 파업 노동자들은 “백인의 남아프리카를 위해 세계의 노동자는 단결하라”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2)http://breaktheirhaughtypower.org/socialism-in-one-country-before-stalin-and-theorigins -of-reactionary-anti-imperialism-the-case-of-turkey-1917-1925/에서 이 시기를 다룬 나의 글을 볼 수 있다. 로렌 골드너

     

    3)http://breaktheirhaughtypower.org/the-agrarian-question-in-the-russian-revolution-from- materialcommunity-to-productivism-and-back/에 실린 나의 글 참조

     

    4) insurgentnotes.com에 있는 Art Mean의 새 글을 볼 것.

     

    5) Insurgent Notes no. 15, insurgentnotes.com에 있는 [인도의 코뮤니스트 집단] 카무니스트 크란티(Kamunist Kranti)의 글 참조.

     

    6) 이들 사례와 다른 사례들에 대해 블로그 “Nous sommes les oiseaux de la tempete qui s’annoncent”에 감사드린다. https://mail.google.com/mail/u/0/#inbox/15e65efbe9e4d76f.

     

    2017년 9월

    로렌 골드너

     


    <출처>


    http://breaktheirhaughtypower.org/on-the-extreme-margins-of-the-centennial-of-the-october-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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