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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6호] 코뮤니즘(공산주의)의 역사 : 패배를 기억하고 미래의 전망을 간직하자.
  • 조회 수: 8124, 2018-05-23 17:16:25(2018-05-23)
  • 코뮤니즘(공산주의)의 역사 : 패배를 기억하고 미래의 전망을 간직하자.

     

     

    1. 1918년 : 혁명의 실수를 비판하다.

     

     혁명의 실수를 분석하는 방법은 1918년 감옥에서 로자 룩셈부르크가 쓴 「러시아혁명」이라는 팸플릿이 말해준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세 가지 점에서 볼셰비키를 비판한다.

     첫째, 토지문제이다. “농민에게 토지를”이라는 볼셰비키의 구호가 농민대중이 혁명의 대의를 획득하는데 전술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인식했지만, 로자 룩셈부르크는 볼셰비키가 토지의 구획을 형식화함으로써 스스로 어려움을 누적시켰다고 보았다.

     둘째, 민족문제에 대하여 민족자결의 구호에 대한 그녀의 비판은 경험으로 충분히 입증되었다. 실제로 “민족자결”은 오직 부르주아지를 위한 “자결”을 의미했다.

     셋째, “민주주의”와 “독재”에 대해, 로자 룩셈부르크의 견해에는 모순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한편으로 부정적 요소로 제헌의회에 대한 볼셰비키의 억압을 보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직후에 쓴 스파르타쿠스 강령은 노동자평의회에 의한 낡은 의회의 대체를 요구했는데, 이 지점에서 그녀의 견해가 매우 빠르게 진화했다. 그러나 노동자 운동 내의 자유 언론을 억압하려는 볼셰비키의 경향에 대한 그녀의 비판은 제대로 확립되어 있었다. 다른 노동계급 집단과 당에 반대하는 조치와 소비에트를 볼셰비키의 당ㆍ국가를 위한 고무도장으로 전환하는 것은 물론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생존과 정체성을 위해서는 부정적인 것이었다.



    2. 1921년 : 프롤레타리아트와 이행국가

     

     당대에 혁명이 직면한 근본 문제는 ... 혁명이 창조한 국가권력이 프롤레타리아트의 통제에서 벗어나려 하고 그 요구와 반대로 가려 하는 문제 ... 이 문제는 페트로그라드의 일련의 노동파업의 물결 속에서 10차 당 대회 중간에 터진 크론슈타트 반란 때문에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 볼셰비키 지도부는 ... 러시아에서의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유일한 방어가 볼셰비키당의 배타적 규칙이라는 점에서는 어떤 타협도 없었다. ... 그러나 크론슈타트 그 자체 내에서는 많은 볼셰비키는 1917년 10월 혁명의 이상인 소비에트 권력과 세계혁명을 지지한다는 근거로 반란에 가담했다.

     ... 분명한 교훈을 얻은 이탈리아 코뮤니스트 좌파의 1930년대까지는 반란의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을 분명히 확인하면서 이탈리아 좌파는 프롤레타리아 진영 내의 폭력의 관계는 원칙적으로 거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본질에서 반혁명 세력에게 이끌리는 지점이 될 수 있는 위험을 지닌 이행국가에 있어서 노동계급이 자위수단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코뮤니스트당을 국가기구와 얽히지 말고 그로부터 독립성을 방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편의주의보다는 원칙에 기반을 두고, 이탈리아 좌파는 혁명의 기본 목적을 침해하는 것을 감수하면서 권력을 유지하는 것보다 크론슈타트에서 패배하는 것이 낫다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3. 1922-3년 : 부상하는 반혁명에 대항하는 코뮤니스트 분파

     

     크론슈타트 봉기가 일으킨 피할 수 없는 필요성, 즉 농민에게 대한 양보는 레닌에게 신경제정책으로 포용 되었는데 그것은 전쟁으로 유린당한 프롤레타리아 권력이 흐트러진 경제를 재건하고 세계혁명의 기지로서 유지되도록 하는 잠정적인 후퇴였다. 그러나 실천에서는 소비에트 국가의 고립을 깨기 위한 모색은 원칙 면에서 근본적 양보를 하게 만들었다. 즉, 스스로 원칙의 위반이 아니었던 자본주의 권력과의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라팔로 협정에서 독일과 맺는 것 같은 비밀스러운 군사동맹이었다. 그리고 군사동맹은 이전에 부르주아지의 좌익으로 비난했던 사회민주주의 세력과 부자연스러운 정치동맹을 수반했다. 이것이 코민테른 3차 대회에서 채택한 “통일전선” 정책이었다.

     ... 1923년에 NEP의 첫 번째 경제위기가 터졌다. 노동계급에서 이 위기는 임금삭감과 일자리 감소를 가져와 자발적 파업의 물결을 만들었다. 당내에서는 새로운 반대파를 형성시키는 갈등과 논쟁을 촉발했다.



    4. 1924-28년 : 스탈린주의적 국가자본주의의 승리

     

     ...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 선언은 늦게 이해되었지만 깊이 있게 이해되지 못했다. 레닌의 죽음과 세계혁명의 명백한 침체에 힘입은 스탈린의 선언은 국제주의와의 공개적 단절이었으며 세계제국주의 권력으로 러시아를 건설하는 약속이었다. 이것은 사회주의가 승리한 세계혁명의 열매임을 주장한 1917년의 볼셰비즘과 완전한 대조를 이루었다.


     

    5. 1926-36년 : 러시아의 수수께끼 풀기

     

     러시아에서의 패배의 규모를 전제로 할 때, 스탈린체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초점은 이제 서유럽으로 옮겨졌다.

     ... 독일에서 나치즘이 승리하자 토론의 지역적 초점은 다시 변화하여 프랑스로 갔는데 수많은 반대그룹은 러시아 체제의 본질을 토론하기 위해 1933년 파리에서 대회를 열었다. (...) 대회는 체제 본질에 대한 수많은 이론을 제출했는데, 자기 모순적이었다. 즉, 그 체제가 새로운 유형의 계급체제로 더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견해, 새로운 계급체제이지만 지지해야 한다는 견해, 프롤레타리아 정권으로 남아있지만 방어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 등이었다. 이 모든 것은 혁명가들이 소련에서의 사건의 방향과 의미를 이해하는데 엄청난 어려움이 있다는 증언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입장이 여러 각도에서 공격대상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 좌파로부터의 이러한 압력 때문에 트로츠키는 1936년 “배반당한 혁명”이라는 러시아혁명에 대한 분석서를 썼다. 이 책은 점차 기회주의로 흘러갔지만, 트로츠키가 맑스주의자로 남아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래서 그는 소련이 노동자를 위한 낙원이라는 스탈린주의적 주장을 비판하고, 이행국가는 “부르주아지 없는 부르주아국가”라는 레닌의 언명에 기초하여 이러한 국가의 본질과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초기의 위험에 대한 소중한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다. 트로츠키는 또한 옛 볼셰비키당은 죽었고 관료주의는 더는 개혁될 수 없고 힘으로 전복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 그런데도 이 책은 근본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다. 즉, 소련이 국가 자본주의의 한 형식이라는 견해에 명백히 반대함으로써 트로츠키는 국유화된 재산형식이 국가의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의 증거라는 논지에 매달리고 있다. 자본주의 쇠퇴의 시기에 국가자본주의 경향이 있음을 이론적으로 수용하지만, 그는 스탈린주의적 관료주의가 본질에서 비개인적 “사회관계”이기보다는 자본을 법적 형식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주식과 배당이 없고 재산을 상속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지배계급일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 그러나 가장 심각한 것은 소련에 대한 트로츠키의 규정은 스탈린주의에 대한 급진적 별명가로서 세계무대에서 행동하는 그의 운동을 운명 지웠다. 스탈린 아래에서 급속한 산업 성장이 노동계급의 착취가 새로운 제국주의의 재분할 준비를 위한 전시경제의 건설에 기반을 둠에도,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증명한다는 트로츠키의 주장 속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러시아 국가 스스로 세계 제국주의 투기장에서 적극적 주자가 된 시기에, 제국주의 공격에 대항하여 소련을 무조건 방어해야 한다는 의견과 소련 외교정책에 대한 트로츠키의 확고한 방어는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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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러시아 수수께끼와 이탈리아 코뮤니스트 좌파(1933-46년)

     

     코뮤니스트 좌파는 위대한 혁명적 물결 속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위대한 도전을 한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부분 중에서 가장 선진적 부분이다. 러시아 밖에서 이것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프롤레타리아트였고, 독일과 이탈리아 코뮤니스트 좌파는 세계 코뮤니스트 좌파의 이론적 전위였다.

     ... 이탈리아 좌파는 소련의 본질에 대해 명확한 이해를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 1930년대 소련의 본질에 대한 이탈리아 좌파의 견해는 매우 모순적이었다. 표면적으로 소련이 국유화된 재정형식을 가지고 있어서 아직 프롤레타리아 국가라는 견해를 트로츠키와 공유했다. 즉, 스탈린주의적 관료주의는 착취계급이 아니라 기생적 카스트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이탈리아 좌파의 심오한 국제주의는 퇴행한 노동자국가를 방어하는 입장이 제국주의 전쟁에 참여하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 트로츠키주의자들과 분리하게 했다. ... 히틀러의 권력 장악, 프랑스 재무장 지원, “국가연맹”에의 집착, 스페인 내전은 소련이 프롤레타리아 국가로 남아있어도 세계적 수준에서 반혁명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결과적으로 노동계급의 국제적 이해는 혁명가들이 이러한 국가와의 연대를 거부할 것을 요구했다. ... 그러나 스탈린주의적 관료주의가 자본주의 계급의 새로운 실체라기보다는 “ 세계 자본주의의 도구”라고 보면서, 결국 국가 부르주아지였음을 인식하는 마지막 단계로 나아가는 데는 주저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주장하는 입장이 점점 실제 세계의 사건과 갈등을 빚자, 이탈리아 분파의 소수는 전체이론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소수파는 세계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측한 “전쟁경제”의 수정이론에 의해 맹목적으로 이끌렸던 분파에, 전쟁의 발발이 가져온 초기의 혼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러시아 문제는 전쟁의 발발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지 풀릴 수 있다는 것은 항상 자명했고, 이탈리아 좌파의 명확한 소수에게는 제국주의 전쟁에의 소련의 참여는 마지막 증명이었다.

     

    국제평론, 2006, 3rd Quarte

     

    번역 및 발췌 ┃ 오세철



    <편집자 주> 


    러시아혁명의 교훈과 주요 쟁점에 대해 코뮤니스트 좌파의 입장에서 분석한 글을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아 깊이 있는 토론을 위해 다시 소개한다.


     

    <출처> http://en.internationalism.org/ir/126_commu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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