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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7호] 노동당 비선/'언더' 사건이 사회운동에 던지는 의미
  • 조회 수: 7388, 2018-08-31 12:10:03(2018-08-31)
  • 노동당 비선/'언더' 사건이 사회운동에 던지는 의미

     

     2월 1일, 알바노조 선거 중이었다. 위원장 후보로 출마한 이가현 조합원이 SNS에 올린 폭로가 삽시간에 화제가 되었다. 알바노조, 청년좌파, 평화캠프, 노동당 등 여러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이 소속된 ‘'언더'’라는 비공개 조직(이하 ‘'언더'’)이 존재하고, 이 조직의 비선을 통해 여러 단체 결정에 개입했다는 폭로였다. 비선이란 말은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많은 이들이 이른바 이석기가 통솔했다는 통진당의 RO나 최순실-박근혜로 비화된 비선 게이트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으로 공개된 글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곧바로 기사화되었다. 연이어 수십 건의 폭로 글이 뒤를 이었다. '언더'의 존재를 바라보는 동료 시민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비판. 동시에 진보라 하는 사회운동, 진보정당, 노동조합 어디 한군데 믿을 곳이 없고 상식적으로 운영되는 곳이 없다는 한탄이 이어졌다. 사회운동에 대한 불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언더' 문제는 불신의 원인이라기보다는 불신의 결과로 심증을 확증으로 굳히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해당 조직 내부로 들어갔을 때 해결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알바노조와 노동당에서는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어떤 경로를 거쳐 언제, 어떻게 해결될지 미지수다. 조직을 방어하려는 내부의 논리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터져 나온다. 법적/제도적 해결 과정으로 들어가면 문제는 더 복잡해지는데 사회운동 단체의 문제해결 방식은 사법 기구와 달라 단순하게 유무죄를 결정하거나 징계수위를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이 무수히 많은 조직 사건인 데다 형태를 파악하기 힘든 '언더'라는 조직 자체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도 쉬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난해한 제도적 해법과 무관하게 사회운동의 차원에서는 더 밀도 높은 분석과 성찰이 뒤따라야 한다. 결국, 제도적 해법으로 다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정치, 문화, 운동의 관점에서 성찰하고 바꿔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더'와 관련된 내부고발자들의 폭로는 충격적이었다. 단지 비공개로 조직을 운영했을 뿐만 아니라, 목숨을 걸 수 있는 강력한 혁명가를 기른다는 명목으로 말도 되지 않는 요구가 계속되었기 때문이었다. 미행을 따돌리는 연습을 하며 비공개로 운영되는 안가에 모이면 첫 모임에서 혼전순결, 낙태금지를 포함한 문서를 읽힌다. 수시로 관련 단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임무를 부여하고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끊임없이 비판을 받는다. 연애와 성생활을 포함한 모든 일상생활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해야 하며 일상적으로 다른 멤버들과 비교, 평가한다. 보수적이고 금욕적인 도덕관, 가부장적인 조직구조, 전체주의와 비슷한 상향 피라미드식 조직구조 속에서 토론이나 이의제기는 혁명가로서 자질이 부족한 것으로 비판받는다. 이 외에도 내부고발자들 글에 드러난 수많은 문제 제기는 읽는 이의 숨통을 조여 올 정도로 힘겨운 내용이 많다.

     

     어떤 이들은 그냥 단지 비공개 모임이었을 뿐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런 모임은 어디에나 존재하지 않느냐고. 그냥 공부 모임일 수도 있다고. 한심한 이야기다. '언더'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피상적인 정보를 통해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미 수없이 많은 내부고발이 나온 상황에서 '언더'가 어떤 작동원리를 갖고 있었는지 아는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언더'는 도대체 왜 문제인가? 이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회운동이 지양해야 할 지점이 보인다. 자연스럽게 지향해야 할 지점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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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미더노동당>(https://www.facebook.com/showmethelaborparty/)이란 공개 프로그램을 통해 '언더' 조직의 문제점을 차별, 반민주주의, 재정, 노동 네 가지로 요약했다.

     '언더' 조직 내에서는 일상적인 차별이 횡행했다. 조직 자체가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이었다. 일상적인 성차별과 언어 성폭력이 벌어졌고 제대로 해결되지도 않았다. 이 외에도 청소년, 장애인,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언행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심지어 어떤 내부고발 글에는 '언더' 조직이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를 회원으로 받을지 말지 심각하게 토론했다는 내용도 있다. 한마디로 혁명을 지향하는 조직에서 이들의 존재는 대단히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여성은 지나치게 감성적인 존재라 혁명가가 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인식도 보인다. 이런 심각한 반여성주의적이고 반인권적인 사고방식은 혁명을 위해 최고의 효율과 조건 없는 충성이 필요하다는 사고방식을 통해 정당화된다.

     이런 차별적인 조직에 몸담는 활동가들은 일상적인 자기분열에 시달린다. '언더'에서는 여성주의를 부정할 것을 요청받으며 동시에 공개된 공간에서는 여성주의 운동을 하니 사람이 어떻게 제정신으로 이 모순된 상황을 견뎌 나간단 말인가. 낙태금지를 요구받으며 동시에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운동에 동참한다. 이런 모순적 상황은 너무 자주 발생하고 이의제기는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활동가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질책하며 출구가 보이지 않는 숨 막히는 상황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게 된다. 내부고발자 글을 보면 정신과 치료를 포함해 일상적인 정신질환으로 파생되는 고통에 시달렸다는 내용이 거의 모든 글에 등장한다.

     

     이런 위기는 이견을 수용하지 않는 비민주적 구조 속에서 더욱 증폭된다. 그리고 '언더' 내부의 비민주적 구조는 구성원들이 활동하는 여러 사회단체로 이식된다. 오로지 지침을 관철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공개활동 영역에서도 좀처럼 토론을 하지 않는다. 이견은 방해요소로 파악한다. 건강한 조직은 점차 생명력을 잃어가고 민주주의는 형식적 다수결로 유명무실해진다.

    끝으로 노동과 재정 문제를 언급해야만 한다. 아직 내부폭로에 많이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몇몇 글을 통해 '언더'의 작동원리, 그 가운데 노동과 재정 문제를 어떻게 다뤘는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차별적이고 비민주적인 구조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노동과 재정의 관점에서 이 문제가 사회운동에 미치는 해악에 대해서는 대부분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내부고발에 따르면 '언더' 구성원들은 일상적으로 과도한 초과노동에 시달렸다. 단체활동은 직장 이전에 활동공간으로 규정되어 끊임없이 성과를 비교·평가당했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자발적으로 고통의 늪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은 내부고발 글에서조차 이는 자신이 원했던 것이기도 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계약서조차 쓰지 않는다. 돈은 현금으로 받는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을 받기도 한다. 때에 따라 비'언더' 구성원과 차별된 액수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소위 돈 많고 마음씨 좋은 후원자라고 알려진 '언더'의 지도부는 상근자 채용과정에도 일일이 개입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분열이 시작된다. 내부고발자 다수가 알바노조 조합원이었음을 상기해보자. 노동자의 권리를 말하면서 말도 안 되는 노동윤리 속에서 살며 자신을 갉아먹는 존재들. 이 '언더'가 아주 악질인 것은 자본주의와 맞선다면서 자본의 통제 기술을 골고루 다 써먹고 있다는 점이다.

     

     나도 한때 '언더'에 있었다. 2003년 사회당을 탈당하기 전까지 그 조직과 함께하던 구성원이었다. 물경 십 년도 더 지난 지금 당사자들의 폭로를 보는 내 마음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너무 아프고 서글프고 화가 난다. 사회를 제대로 바꿔보겠다는 선의를 가진, 열정적인 활동가들을 소모품처럼 쓰다 버리는 조직이 혁명을 운운하니 수십 년을 살아남아 사회운동을 망치고 있다니. 노동당 당원으로서 나는 '언더'를 넘어 진보정당을 혁신해야 하는 과제를 내 문제로 온전히 받아안기로 한다. '언더'는 단지 '언더'만의 문제가 아니라 단절해야 할 과거로 상징되는 운동 내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미래로 한 발 더 나갈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하고픈 말이다. 우리가 극복하고픈 세상에 대해. 우리 삶 자체가 우리가 만들고픈 미래 사회 그 자체를 닮아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무엇보다 각자는 모두 중요한 자기 삶의 주체가 아닌가. 누구도 함부로 소모품처럼 쓰이거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더는 이런 조직은 세상을 바꾸는데도 효율적이지 않다.

     

     끝으로 내부고발자들에게 애정 어린 연대의 마음을 담아 건네는 말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피해자 프레임 넘어서야 한다. 이건 민주주의 상식에 관한 문제다. 이를테면 MBC 노동자들의 파업 같은 것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국민을 향해 계속 미안하다고 했다. 자신도 MBC 일부였기에 미안하고, 그래서 공영방송을 제대로 바꾸는 것으로 사죄하겠다고 했다. 제대로 바꾸기 위해 자신들을 꾸짖더라도 외면하지 말아달라 했다. 그렇게 해야 우리 모두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다. 진정한 치유도 될 수 있다. 

     

     나는 노동당에서 싸울 것이다. 함께 노동당 안에 있을 때는 내부고발자들과 의견 차이로 대립할 때도 있었다. 그들 중 다수는 이제 탈당했다. 밖에서 함께 싸우자. 그런 한에서 우리는 그래도 동시대에 조금이라도 사회운동, 진보정당 운동의 한 걸음을 위해 함께 싸우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노동당 내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과 발언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나는 당사자들이 꼭 이 글을 읽어주기 바란다.

     

    노동당 마포당협 사무국장 ┃ 나동혁

     


    <편집자 주>

    이 글은 노동당 비선/언더 사건에 대해 내부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는 동지의 기고 글로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의 입장과 다를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운동 사회에서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중요한 내부투쟁이기에 코뮤니스트에 실었으며, 이와 연관된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의 입장은 코뮤니스트 7호에 실린 「다시 혁명조직을 말하다」, 「노동계급과 혁명조직」을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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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노동당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

    http://www.laborparty.kr/bd_member/1756873

     

    [진조위] 알바노조 내 ‘언더조직’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 보고 2차

    http://alba.or.kr/xe/news/274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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