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코뮤니스트 7호] 혁명조직의 역할과 구조
  • 조회 수: 9346, 2019-03-29 14:52:37(2019-03-29)
  • 혁명조직의 역할과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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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뮤니스트 의식


    우리는 맑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정교화하고 레닌의 실천과 이론 작업으로 확인되었으며, 제3 인터내셔널의 처음과 두 번째 회의와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의 형성에서 다시 확인되었던 혁명 이론의 습득물을 견지한다. 협상위원회(Committee of Entente) 내부의 이탈리아 좌파는 이러한 입장을 방어했고, 1930년대와 1940년대에 걸쳐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랐다.

     

    1.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므로, 필요의 세계에서 자유의 세계로 인류를 인도하는 결정적인 단계를 완수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이다.

     

    2.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점진적으로 강한 위치를 차지할 수 없다. 과거 지배 계급에 맞선 새로운 계급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존재는 부르주아지 권력을 점진적으로 사라지도록 하지 않는다. 반대로,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의 권력은 점차 절대적인 것이 되고, 시민 사회의 가장 깊은 층위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향이 있다.

     

    3. 여타 계급에 맞서는 결정적인 적대자의 입장에 서게 되는 계급의 존재 그 자체에서부터 구체적으로 “근본적인 혁명이 필요하다는 의식, 코뮤니스트 의식이 나타난다.”

     

    4. 부르주아 권력을 혁명적으로 전복할 가능성이 역사적 과제로 제시되는 것은 부르주아지가 생산 양식과 사회적 관계의 내적 모순의 폭발을 더는 통제할 수 없는 위기의 시기 동안이다.

     

    5. 이 혁명은 “필연적이다. 지배 계급이 다른 방식으로는 전복될 수 없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계급 전복이 수년간 쌓인 모든 거름 위에 올라타고 사회를 새롭게 건설하는 데 적합하게 되는 것은 혁명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맑스) 그리고 “코뮤니스트 의식의 대규모 생산과 대의명분 그 자체의 성공을 위해서는, 인간이 거대한 규모로 변화해야만 하며, 그 변화는 실천적인 움직임, 혁명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맑스)

     

    6. 앞선 시기 동안, 그리고 혁명적 과정이 일어나는 그 시기 동안, 코뮤니스트 의식은 노동계급과 다른 계급 내부의 소수 개인 사이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코뮤니스트 의식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존재, 그리고 계급 적대의 객관적 성격으로부터 비롯되고, 지속해서 다시 언급된다. 코뮤니스트 의식은 이러한 객관적 상황으로부터 그 힘과 유물론적 본질을 끌어내며, 따라서 이는 전체 계급의 유산이다.

     

    7.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운동과 강령의 표현으로써, 코뮤니스트 의식은 맑스주의 의미에서 ‘이데올로기’로 정의될 수 없다. 반대로, 코뮤니스트 의식은 사회적, 경제적 실재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도구이다. 왜냐하면, 그 목적이 바로 그 실재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혁명 의식은 귀족계급 지배의 외형에 반대하면서 하나의 착취하는 계급(부르주아지)을 다른 착취 계급으로 대체할 필요에 기초하는 반면, 코뮤니스트 의식은 오늘날 사회와 모든 그 이전 사회의 계급적 성격 그 자체에 반대한다. 그 목적은 계급 구분 그 자체이다. 그것은 적절한 단어의 의미에서 마지막 이론이 아니라, 명백히 마지막 혁명 이론이다.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코뮤니스트에게 이 국가들은 계급 적국의 국제적 노선에 완전히 편입된 국가 자본주의의 한 형태이다.)에서 나타난, 혁명적 맑스주의와 완전히 갈라선 이데올로기들이 고전적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전혀 다른 길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것조차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이다.

     

    8. 계급과 코뮤니스트 의식의 관계는 계급과 미래의 계급 독재의 실천과의 관계와 같다. 그것은 매우 역동적인 역사적 상황에서 객관적인 사회적, 경제적 모순에 기반을 둔다. 계급의식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자신의 역사를 만들 준비가 될 때까지 모든 프롤레타리아트의 마음과 심리 속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9. 맑스주의에 맞지 않는, 전형적인 소부르주아 관념론 이론에 단호하게 거부하고 맞서 싸울 필요가 있다. 이 이론은 혁명 과정 바깥에서 코뮤니스트 의식이 성장할 수 있고 일반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은 관념의 우월성이라는 관념론적 원칙에 기초하며, 현실에 대한 불가능한 비전을 내세우며, 코뮤니스트의 피할 수 없는 의무로부터 떼어놓고 그들의 일을 방해하면서 잠재적 혁명가들을 속일 수 있을 뿐이다.

     

    10. 러시아에서의 혁명과 반혁명 과정에 대한 잘못된 평가로부터 시작된 평의회코뮤니스트 운동은 근본적으로 반(反)맑스주의적인 테제를 채택했고, 코뮤니스트 운동에 적합하지 않고 그에 반대하는 관점에 도달했다.

     

    11. 평의회코뮤니스트 운동에 가까운 또 다른 입장 또한 거부해야 하는데, 오직 혁명 과정만이 코뮤니스트 의식을 일반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를 ‘혁명의 필요에 대한 의식’으로 환원하여 고도로 조직된 부르주아지 세력에 반대하는 조직된 투쟁을 포기했다. 이 입장의 옹호자들은 혁명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보존과 두 제국주의 블록 중 하나의 헤게모니에 봉사하는 것일 뿐이다.

     

    12. 이와 유사하게 우리는 코뮤니스트 의식, 전체 원칙, 테제의 계승, 그리고 코뮤니스트 혁명 이론과 견해가 한 번에 주어지는 어떤 것, 운동의 어느 역사적 단계에서 그다음 단계로 변화하지 않는 어떤 것이라고 하는 관점도 거부해야 한다. 이러한 입장 주변에 있는 이들은 코뮤니스트 의식이 계급과 자본에 종속된 상태에서 계급이 객관적으로 겪어야 하는 경험에 코뮤니스트 의식이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테제와 입장이 계급이 사는 실제 상황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다. 중요한 문제는 이 모든 변화 속에서 계급투쟁 성격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필수적인 교훈을 끌어내는 것이다. 당연히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모든 변종은 부르주아의 민족적 코뮤니스트 정당 이론에도 계급 사회의 기본적인 본질을, 또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는 계급이고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지배받는 계급이며 여전히 그렇게 남아있다는 사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

     

    혁명가의 조직: 당

     

    1. 혁명으로 향하는 기간 동안, 그리고 심지어 혁명의 초기 단계에서 코뮤니스트 의식은 소수가 갖고 있는데, 그러니까 오직 소수만이 갖고 있고 이러한 의식에 기반을 두고 행동한다. 이것은 논쟁할 필요가 없는 진실, 구체적인 사실이다. 이 소수는 계급이 자본주의 생산 양식 위기에 빠져있는 기간 동안 실천적인 운동, 혁명 – 계급 내에서 대중의 코뮤니스트 의식이 성숙하는 유일한 방법 - 을 발전시키는데 필수적인 도구를 갈고 닦을 의무가 있다. 모든 의미에서 혁명적 소수의 조직은 당이다.

     

    2. 당은 테제, 원칙, 그리고 코뮤니즘을 위한 모든 투쟁 표현의 유산을 계급에 돌려줘야 하는 영속적 책무가 있다. 코뮤니스트 의식은 노동계급이 자신이 살아가는 경험을 통해 생겨나기 때문이다.

     

    3. 그러므로 당은 계급과 그 의식의 관계가 자본주의 존재의 전 역사를 통해 표현되는 매개체이며, 자본주의에서 코뮤니즘으로 가는 이행의 시기에서도 바로 그러할 것이다.

     

    4. 노동계급의 권력 획득, 그러므로 전 사회 혁명의 시작은 오직 자본주의의 위기 동안, 그리고 계급이 혁명가들의 원칙과 강령 속에서 그 자신의 역사적 이해관계를 인지할 때, 즉 부르주아지 국가에 대한 공격 동안 당과 그 강령을 중심으로 결집할 때에만 가능하다.

     

    5. 당-조직의 기복은 계급의 삶의 기복을 충실하게 반영한다. 당-조직은 부르주아지가 경제적 정치적 수준에서 최고의 지배력을 발휘할 때 그 심각한 퇴조의 시기에는 거의 사라진다. 그러나 계급 사이 객관적인 적대가 사라질 리 없는 것처럼, 이 적대를 먹고 자라는 코뮤니스트 의식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혁명가들의 조직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지점까지 축소될 수는 있다. 계급의 패배가 일반 혁명가들에게 공포와 환멸로, 따라서 코뮤니스트 의식 수준에 대해 혼동과 착란으로 이어졌을 때 특히 그러하다. 이는 1948년 전후 이탈리아에서 확인되었다. 이 시기 스탈린주의의 결정적인 승리3) – 이는 계급을 무장해제 시키고 그 자신을 얽매는 사슬을 벼리게 했다. – 는 통일된 조직, 국제주의자 코뮤니스트당 구성원의 분리를 일으켰는데, 이 조직은 1943년 스탈린주의의 깊은 침체로부터 계급의 잠재적인 각성에 대한 반응으로 결성된 것이었다.

     

    6. 당을 자처하는 여러 조직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당의 연속성과 그 당을 보호할 투사의 필요성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이것이 제3 인터내셔널과 소비에트 권력이 그들이 판단하기에 타락의 순환을 완료하기 전인 1921년 레그혼(Livorno)에서 설립된 당에 대해 프랑스와 벨기에의 좌익 분파의 동지들의 책무였다. 이것은 스페인에서의 전쟁에 소련이 반혁명의 대리인으로서, 세계 제국주의 전쟁에 한 세력으로서 참전했을 때 완성되었다. 그러자 혁명의 연속성 방어는 새로운 국제주의 코뮤니스트당에서 구체화 되었는데, 이 조직은 이전 시기의 경험과 노력을 모두 집대성한 테제와 강령을 중심으로 재결합되었다. 이 당이 이후 2개의 경향으로 나눠진다는 사실4)과 그들 중 하나가 종종 공개적으로 반혁명적(우리는 Invariance를 생각하고 있다)5)인 그룹과 조류를 탄생시켰다는 사실은 1943년 강령의 기반에 대한 완전한 소멸이나 배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7. 프롤레타리아트 세계당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시기 ‘민족적’ 당의 지도로 어떤 국가에서 혁명적 격변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과거 역사적 경험과 제국주의 초국가적 집중의 성장은 혁명가들이 반세기 동안 혁명가의 코뮤니스트 의식으로 표현되는 이론적 체계적 강령의 기반 위에 국제 정당을 만들어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자본의 초국가적 성격, 다시 말해 모든 국가에서 부르주아지가 가지는 똑같은 계급적 이해는 역시 초국가적 성격의 프롤레타리아 이해에 대응한다. 한 나라에서 승리한 혁명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적극적인 연대 없이는 오래 유지할 수 없고, 그것은 방어 수준뿐만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 체계에 대한 혁명적 공격에서도 그러하다. 세계혁명당은 중요한 전략적 계획 실행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그리고 세계당은 자본에 대한 총체적 공격에 집중하고 있어, 혁명이 처음 터져 나온 나라에서의 전술은 이 계획에 부수적인 것이 될 것이다.

     

    8. 이것은 국제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 당이 가질 관점이다. 프롤레타리아 이해와 당 전략의 초국가적 성격은 당의 집중화된 조직에 반영될 것이다. 당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별개일 수 없는 도구인데, 왜냐하면 객관적인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계급의 계속 진행되는 발전을 오직 당만이 체계적, 정치적 강령으로 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계급은 극단적으로 잘못된 길을 가거나, 심지어 부르주아 국가의 억압 없이도 쉽게 파벌주의 및 코포라티즘 - 둘 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표현이다 - 의 먹이가 될 것이다. 당이 그 중심 입장, 연방제의 원칙이 아니라 중앙집중주의의 원칙에 따라 단단하게 재결합하고 조직되는 것은 필수적이다. 계급이 다양한, 종종 모순적인 경험을 당에 보내더라도 당이 그것을 통일된 강령으로 정교화시켜 다시 계급에 돌려줘야 하는 것처럼, 당 자신도 그 안에서 전투적 활동 경험과 전략적, 전술적 입장이 주변적인 것에서 중심적인 것으로, 다시 중심에서 주변적인 것으로 옮겨갈 수 있다.

     

    계급과 당

     

    당이 오직 혁명 직전에만, 심지어 혁명 동안에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는 당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왜곡시킨다. 만약 계급이 혁명적 공격을 수행할 역량이 있다면 - 당으로 대변되는 정치적으로 통일된 요소의 개입 없이 특정 수준의 정치적 동질성을 계급 내에서 이룰 수 있다면, 당은 그 자체로 잉여인 것이다. 만약 계급이 그 투쟁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특정 순간 당으로 ‘스스로 무장’한다면, 당은 의식의 문제와는 관계없는 작전상의 도구가 된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그 유명한 평의회주의자들의 이론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왜 좌익공산주의 운동 안에서, 혁명의 수행에 당이 필연적임을 인정하면서도 시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당 구성을 연기하는 그런 개념과 싸워야만 하는지 그 이유이다. 그것은 당(어떤 동지들은 당보다는 혁명가 조직이라 표현하길 좋아한다)의 실천적인 책무를 과소평가한 데 기반을 둔다. 우리는 당의 필수적인 책무 중 하나가 가능한 가장 구체적인 방식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경험과 존재를 기반으로 하여 정교화한 노동계급 해방의 강령을 계급에 되돌려 줄 수 있는 도구로 당이 스스로 무장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당은 계급 내에서 계급 일부로 행동한다.”라는 공식은 아무것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어디에 있든 전투적 혁명가들이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일부이고,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투쟁에 결정적인 입장과 당의 총체적인 방향을 가져온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기 때문이다. 당이 그 안내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고 전제할 때 이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당이 계급의 소수라는 일반적 상식과 배치되는 대중적 존재감을 어디서나 가질 만큼 수적 성장을 겪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 한 이것은 충분조건이 아니다.

     

    당과 계급 사이를 이어주는 기관이 혁명적 공격의 시기 전후 모든 기간에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혁명적 원칙은 분명히 후천적으로 획득한 혁명적 원칙이다. 이 기관은 당이 강령과 방향성에 대한 영향력을 가능한 확대하기 위해 사용한다. 계급은 경제적 수준에서, 또는 누군가는 계약적 수요라고 이야기하는 수준에서 움직이고 투쟁한다. 오직 혁명가만이 이러한 투쟁의 한계로 계급을 해방할 수 없음을 정확히 알고 있다. 코뮤니스트들은 자신을 노동자 대중과 구분하는데, 이는 방어적 투쟁에서 전체 계급과 함께 싸울 때조차 혁명가들이 이러한 투쟁의 한계를 비판하고 혁명의 필요성을 선전하는데 이용한다는 사실에서 그러하다. 코뮤니스트들은 계급의 투쟁을 부르주아 국가를 공격하는 정치적 전략으로 연결해야 한다. 그들은 전체 체제가 위기일 때, 그리고 투쟁이 전면화되었을 때 프롤레타리아트 공격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지향하기 위해 사용할 도구를 준비해야만 한다.

     

    만약 혁명으로 나아가는 시기에 당이 필요한 모든 도구를 갖추지 못한 채 계급 내에서 활동하는데 소홀히 한다면, 당은 그 근본적인 의무를 수행하는 데 실패할 것이다- 당은 혁명가의 조직으로 기능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상황이 객관적으로 좋을 때, 당은 준비되지도 않고 계급으로부터 고립될 것이라는 의미이고, 이는 계급이 무장해제된 채로 방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당이 무장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가능성은 계급투쟁의 성숙도, 그리고 계급 내의 혁명가들과 부르주아 좌익의 실제 관계와 물론 밀접하게 연결된다. 이것은 사용할 도구의 종류가 당의 강령에 정확하게 예상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증거는 우리 강령이 예견했던 ‘국제주의자 공장 그룹’인데, 이것은 오늘날 어려움을 겪고는 있지만, 한때(예를 들어 1945년에서 1948년까지)는 매우 중요했던 우리가 그 형성에 공헌하고자 하는 국제당 강령의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그들의 책무는 특정 동지들이 믿는 것처럼 단순히 ‘경제적 수준에서 투쟁을 불러일으키는 것’뿐만이 아니라 당의 총체적인 정치적 원칙을 당에 전파하고, 계급에 동조하는 계층을 단단하게 하며, 미래 혁명 투쟁의 참고지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오늘날 상황에서의 어려움, 낮은 수준의 계급의식은 이런 노동자들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확장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지점을 강령에서 놓치고 좀 더 나은 시기로 미룬다면, 우리는 시기가 무르익었을 때 우리의 의무를 수행할 능력을 잃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이 오랜 시간 동안 전투적으로 존재해 옴으로써만 개발할 수 있는 핵심 그룹과 경험이 부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이 계급과 혁명을 위한 작업과 동시에 스스로 갖춰야 하는 도구 가운데, 공장 그룹의 네트워크는 제일 급하고 중요하지만, 비록 혁명가의 수가 부족하다는 점과 좋지 않은 정치적 상황 탓에 필수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 외 다른 것도 반드시 연구하고 준비해야 한다.6) 다른 한 편, ‘청년 코뮤니스트’ 같은 다른 조직은 부르주아 사회와 혁명적 운동 내에서 이전 단계의 산물로 간주해야만 하고, 그러므로 이제는 불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다시 당의 중앙 조직과 계급을 진정으로 연결하는 도구 없는 계급 정당은 없다는 원칙을 확인한다. 이 주장을 과소평가하거나 거부하는 이들은 당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1. 계급과 그 당의 변증법적 관계는 권력 쟁취 기간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적 ‘반(半)-국가’의 건설 시기 동안 사라지거나 질적 변화를 겪지 않는다. 둘 다 계급이 그 목적에 집중되고 통일되어 있을 때만 가능하다.

     

    2. 프롤레타리아 ‘반(半)-국가’는 러시아 혁명의 경험 동안 프롤레타리아가 스스로 발견한 평의회 형태로 특징지어질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실천적 혁명적 운동으로 수행되는 점진적 계급의 소멸은 코뮤니스트 의식의 대량 생산, 그리고 결과적으로, 당의 점진적 소멸을 동반할 것이다.

     

    3. 당은 “노동자 국가”라는 구조와 그 자신의 구조를 동일시하지 않고, 정치적 안내라는 자신의 역할을 계급이 자신의 이해를 깨달을 때까지 수행할 것이다.

     

    4. 코뮤니스트좌파 그룹이 이행기의 문제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필요는, 노동자평의회 없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노동자 국가도 없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당 없이는 혁명도,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없다는 명백하고 근본적인 주장의 긍정에서 시작한다.



    <주>


    3) 1928년 소련에서 스탈린주의는 명백하게 승리했었지만, 이것은 스탈린의 충복, 톨리아티(Togliatti) 아래 재결성한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이 전후 시기 이탈리아의 사회적 평화를 건설하는데 돕는 과정에서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4) 이것은 1951-2년, 국제주의자 코뮤니스트당(코뮤니스트 투사)에서 분리된 보르디가와 보르디가주의자들에 대한 것이다. 앞으로 분리된 두 경향의 조직적 차이를 개괄할 것이지만, 그 분리에 대한 자세한 것은 오노라토 데이먼(Onorato Damen)의 보르디가: 신화를 넘어서 에서 찾아볼 수 있다.

     

    5) “Invariance”는 보르디가주의자 진영에서의 첫 번째 분리(1966년 일어났지만, 그 후로 더 많이 발생했다)였고, 보르디가가 실제로 살아있을 때 발생한 유일한 분리였다. 자크 카마트(Jacques Cammatte)가 지도했으며, 보르디가주의자들을 ‘활동가주의’라며 비판했다. 결국, 카마트는 혁명을 이룰 희망 없이, 모든 정치적 조직은 ‘소음’이고 노동계급은 ‘자본을 위한 계급’이라고 결론 내렸다.

     

    6) 이것은 38년 전에 작성된 글이며 그 이후 지난 30년 동안 노동계급의 재건 또한 우리 이탈리아 동지들이 ‘지역’ 그룹이라고 부르는 지역을 조직하는 시도로 이어졌다. CWO는 이라크 전쟁 시기 “전쟁이 아니라 계급 전쟁”과 같은 주제에 대해 싸웠던 그룹과 함께 자체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우리는 이것을 ‘계급을 조직하는’(ICC가 1978년 이야기한 것처럼) 시도가 아니라 혁명가들을 조직하고 계급 내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혁명적 정치 조직 또는 당은 이 문서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허공에서 단순히 선전하는 이데올로기적 개념일 수 없다.

     

     

    국제주의자 코뮤니스트 당(코뮤니스트 투사)

    1978년 10월.


    nwbcw_cwo.jpg 


    2016년, 8월 28일

    CWO 재발행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6-08-28/the-revolutionary-party-and-the-working-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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