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당 건설/혁명조직 특집] 당에 관한 잘못된 이론 1 - 대리주의
  • 당에 관한 잘못된 이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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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뮤니스트 혁명의 본질, 프롤레타리아 의식 성장의 특징,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계급으로 구성하는 것, 이 모든 개념은 매우 이론적으로 다루어져 왔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분석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물어야만 한다. 혁명가의 역할을 정의하고, 또 이데올로기와 계급의식 사이의 차이점을 강조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가? 코뮤니스트 혁명의 본질이 코뮤니스트의 개입에 영향을 주는가?

     

    오늘날 혁명가들은 계급투쟁의 구체적이고 복잡한 과정을 그들의 눈앞에 전개되는 그대로 이론화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들의 분석은 여전히 매우 일반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그들에게는 대대적인 노동자 투쟁의 경험이나 그러한 투쟁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부족하다. 기나긴 반혁명의 무게가 노동자계급을 무겁게 짓누르고, 오늘날 혁명가들은 과거의 혁명 조직으로부터 오랫동안 단절된 이후, 마치 걸음마를 배우는 것과 같다. 100년 전의 코뮤니스트에게는 당연했던 것이 오늘날의 혁명가에게 깜짝 놀랄만한 것으로 다가오고, 과거의 일상적인 실천과 생생한 개입으로부터, 즉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은 오늘날에는 추상적이고 여전히 애매모호한 발상처럼 보인다. 코뮤니스트의 적극적인 역할, 계급과 코뮤니스트와의 관계, 투쟁 속에의 효과적인 개입(…), 이 모든 것을 1920년대 혁명가들은 실천에 옮겼고, 구체적으로 논했다. 오늘날 이러한 전통을 되살리려는 혁명가들은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많다.

     

    그렇다면 왜 이 글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하 코민테른) 대회에서의 당에 대한 테제를 충실하게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는가? 레닌의『무엇을 할 것인가』는 훌륭한 참조점이 아닌가? 불행하게도, 아니다.

     

    사실, 1920~1921년 코민테른의 당에 대한 이론적 저작들은 1917년 볼셰비키의 실천을 진정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졸렬한 모방이나 변형에 불과하다. 그것은 이론적 수준에서, 특히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담겨있는, 기존의 현저한 혼란을 증폭한다. 우리가 혁명가의 역할 문제를, 코뮤니즘에 관한 문제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화에 관한 전반적인 분석과 함께 시작할 필요를 느꼈던 이유는, 코뮤니스트의 개입에 관한 일반적인 이론적인 틀이 제3 인터내셔널의 노동자 운동에도, 심지어는 그 후 코민테른의 퇴락에 반대하여 투쟁한 좌익 분파에게마저도 완전히 명확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성과를 재전유(再專有)한다는 것은 우리에 앞서 존재한 혁명 조직을 흉내 내서 과거 문서를 한 자 한 자까지 그대로 베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과거의 경험을 재전유한다는 것은 또한 긍정적인 교훈과 부정적인 교훈을 끌어내면서 비판하는 것을 뜻한다. 1920년대의 혁명적 물결과 그에 뒤따른 투쟁의 퇴조는 교훈의 무궁무진한 보고이다. 이러한 교훈으로 인해 우리는 세계혁명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화 과정과 자기 조직화의 특징을 좀 더 명확하게 다시 정의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교훈으로 인해 우리는 당의 역할과 노동자계급과의 관계에 대해 이전에 존재할 수 있었고, 심지어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혼란을 좀 더 잘 드러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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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리주의

     

    코민테른 2차 당 대회에서 혁명가들은 당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혁명을 독립적인 정치적 당 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관점을 단호히 거부한다.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 투쟁이다. 내전이 될 수밖에 없는 이 투쟁의 목적은 정치 권력의 장악이다. 정치 권력은 오직 당에 의해서만 장악되고, 조직되고, 지도될 수 있다. 다른 방도는 있을 수 없다.( 『당의 역할에 대한 테제』, 우리의 강조)

     

    이 입장은, 특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이 시기 혁명가 대다수의 입장이었다. 이 입장은 어디서 제기되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발전해갔는가?

     

    당에 대한 이러한 생각의 기원은 제2 인터내셔널이 표방한 일반적인 입장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번영하는 자본주의로 인해 노동자계급이 여전히 지속적인 개량을 얻을 수 있던 시기와 혁명가들이 혁명의 궁극적인 목표를 멀리 떨어져 있어 닿을 수 없는 미래로 격하시킨 시기와 동시에 일어났다.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는 코뮤니스트 혁명을 위한 시기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고 파악하면서 노동조합의 몫일(과업)을 강조하고 당이 의회의 몫일에 전념할 필요를 강조했다. 영국 사회민주주의자, 에드워드 데이비드(Edward David)가 다음과 같이 강조했을 때처럼: “혁명주의의 짧은 개화는 매우 다행히도 과거의 일이 되었다.(…) 당은 의회에서 그의 권력을 긍정적으로 활용하고 확장하는데 전념할 것이다.” 바로 이렇게 해서 베른슈타인과 카우츠키의 ‘수정주의’가 탄생하고, 노동자의 (노동조합이 이끄는) 경제적 활동과 그들의 (의회 대중정당에 위임된) 정치적 활동사이의 점점 더 날카로운 분리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것은 노동자 투쟁의 최종 목적의 포기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1902년에 벌써, 카우츠키는 ‘점진적인 운동, 민주주의적이며 거의 알아차릴 수 없는 수단을 통해, 자본주의에서 코뮤니즘으로!’를 주창했다.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유일한 임무는, 이러한 점진적인 운동을 강제할 목적으로 의회에 참가하는 것뿐이었다. 권력 쟁취는 더는 노동자 스스로가 부르주아 국가를 폭력적으로 전복하는 것, ‘노동자들의 해방’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당의 책무로서, 부르주아 국가를 평화적으로 정복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맑스주의가 이렇게 엄청나게 왜곡됨으로써, 또 다른 왜곡이 초래되었다. 즉, 프롤레타리아트 당은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준비하는 필수적인 분파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 대신에, 당은 통치 기구가 되었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 당에 투표함으로써 자신의 정치 활동과 권력을 그 당에 위임해야만 한다.

     

    사회민주주의는 공공연한 목표로 부르주아 국가의 ‘정복’을 내세웠지만, 노동자계급의 대중 정치 기관에 대한 생각은 존재하지 않았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유일한 정치 기구는 당이었다. 만약 국가가 프롤레타리아당의 통제 아래에서 프롤레타리아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제2 인터내셔널이 그렇게 믿었듯이, 권력 쟁취는 오직 당에 의해 조직되고, 수행되며, 지도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논리적이었다. 이러한 책무를 위해, 특히 개량을 위한 투쟁을 이끌기 위해, 당은 대중적이고, 극도로 규율 잡히고 위계적인 조직이어야 했다. 부르주아 혁명의 이데올로기적 유산이 이러한 발상에 심하게 남아 있었다.

     

    20세기 초, 사회민주주의의 좌파 인자들은 건강하게 제2 인터내셔널의 테제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큰 이점은 새롭게 열리고 있는 시대를 인식하고 그 시기에 비추어 혁명가들의 역할을 명확히 한 점에 있었다. 그들의 첫 번째 행동은 베른슈타인, 카우츠키와 그 친구들에 의해 만들어진 경제 투쟁과 코뮤니스트 혁명이라는 궁극적인 목적 사이의 분리에 집중되었다.

     

    레닌은 나로드니키(Narodniks, 농민 코뮨에 기초한 혁명을 지지했던 러시아 인민주의자)에 반대하는 그의 첫 번째 저작에서, 프롤레타리아트 경제 투쟁의 최종 목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들의 활동과 관심을 산업 노동자계급에 집중시키고 있다. 이 계급의 선진 인자들이 과학적 사회주의의 생각을 흡수하고, 러시아 노동자의 역사적 역할을 이해했을 때, 그들의 생각이 널리 퍼지고, 현재의 지리멸렬한 경제적 전투를 의식적인 계급투쟁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안정된 조직을 만들어 내었을 때, - 러시아 노동자들은 모든 민주주의 인자의 선두에 나서서, 절대주의를 전복시키고,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를(모든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코뮤니스트 혁명의 승리를 위한 공개적인 정치적 투쟁으로 이끌 것이다.” (레닌, 저작집, 1권)

     

    그 후 레닌은, 사회민주주의당의 일부로서 러시아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객관적인 조건을 보지 못했던 '멘셰비키에 반대하여’ 맹렬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또한 대중 정당이라는 사회민주주의적 개념을 버렸다. 레닌에게, 투쟁의 새로운 조건은, 경제적 투쟁을 정치적 투쟁으로 변환시킬 소수 전위 정당이 필요함을 의미했다.

     

    로자 룩셈부르크 또한 그의 저작 『사회개량이냐 혁명이냐』(Sozialreform oder Revolution)(1898년)에서, 제2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적이고 반혁명적 일탈에 대해 반대했다.

     

    룩셈부르크는 특히 “사회민주주의는, 현존하는 체제 내에서의 투쟁만이, 즉 개량을 위해, 노동자의 생활 수준 개선을 위해, 민주주의적 수단을 위해 일상적으로 투쟁하는 것만이,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 개입하고 그 최종 목표, 즉 정치 권력의 정복과 임금 체제의 철폐로 향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대대적 파업, 당, 그리고 노동조합』, 우리의 강조.)라고 상기시켰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또한 경제적 투쟁과 정치적 투쟁의 통일을 주장했고, 방어적인 투쟁은 오직 권력 쟁취를 위한 최종적 정치 투쟁을 준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주장했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민주주의의 좌파는 새로운 시대에 의해 의제로 부과된 코뮤니스트 혁명의 필요성을 단언했다. 이러한 좌익 반대파는, 1차 세계대전 초기에 제2 인터내셔널과 노동조합을 결정적으로 압도해버린 애국주의와 민족주의에 반대하여 그 보루로써 1915년침머발트에서, 그리고 그 이후 1916년 키엔탈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러한 보루는 여전히 약하고 미성숙했다. 시기는 극적으로 변화했다. 사회민주주의의가 죽음을 고함으로써 혁명가들은 이전에 가졌던 ‘개량주의적’이고 조합주의적인 생각을 거부해야만 했다. 투쟁의 새로운 요구에 적응하기 위해서, 코뮤니스트 강령을 발전시키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이 모든 것에는 희생이 필수적이었다. 과거 사상에 대한 쓰디쓴 투쟁에도 불구하고, 혁명가들은 여전히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사회민주주의의 무게를 느꼈다. 레닌, 룩셈부르크, 판네쿡 등과 같은 혁명가들의 정치적이고 전투적인 저작들이 제2 인터내셔널의 이론적 짐을 다 청산하지는 못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혁명가의 대부분이 처음 무기를 들었던 것은 자본주의가 여전히 진보적이고, 카우츠키의 테제들이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질 때였다. ‘낡은 껍질을 벗어던지기’는 전혀 쉽지 않고, 구시대의 생각의 찌꺼기는 여전히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었다.

     

    그런 생각의 보기를 들자면, 몇몇 혁명가들이 여전히 주장하는 것인데,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을 앞당기는 데에 부르주아 민주주의 기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20세기 초, 대부분의 코뮤니스트들은 1871년의 파리코뮨을 노동자계급에 의한 민주 공화국의 통제의 모델로서 보았고, 민주주의적 기관을 노동자 권력의 도구로써 사용하는 모델로 보았다.

     

    “국제 사회주의는 공화국을 사회주의 해방의 유일한 가능한 형태로 본다 - 이런 조건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의 손에서 이것을 빼앗아 ‘ 한 계급에 의한 다른 한 계급의 억압을 위한 도구’로부터 인류의 해방을 위한 사회주의의 무기로 변화시킨다.” (레온 트로츠키. 그 후 35년: 1871~1906)

     

    레닌은 “부르주아지에 반대하는 계급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는 모든 민주주의적 기구들과 열망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레닌,『전집 23권,』1915년~1916년)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Two Tactics of Social Democracy, 1905)」에서 그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제의 힘을 제거하기 위해 농민 대중과 결연을 함으로써 민주주의 혁명을 성공적인 결말로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을 옹호했다. 볼셰비키에게 어떠한 민주주의적 국가의 창설도 진보적이었다. 반면 판네쿡과 네덜란드 좌파에게는 인류를 제국주의적 학살 속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체제가 그 역사적 파탄을 드러낸 시대에는, 오직 국제적 프롤레타리아 혁명만이 실행 가능한 전망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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