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당 건설/혁명조직 특집] 당에 관한 잘못된 이론 3 - 노동자계급과 당, 국가 사이 관계에 대한 혼란
    • 당에 관한 잘못된 이론 3  


      노동자계급과 당, 국가 사이 관계에 대한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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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혁명가들은, 그 시기 대부분의 혁명가처럼,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에 대해 전적으로 명확하지만은 않았다. 대체로, 코뮤니스트들은 노동자평의회를 권력 장악을 위한 기관으로 보았다. 1920년까지 모든 경우에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혁명에서, 권력의 실천에서 평의회(소비에트)의 탁월한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어떤 코뮤니스트도, 어떤 혁명적 조직도 지역 소비에트(이행기 국가의 토대)와 노동자평의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명확하게 바라보지 못했다. 국가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사이의 혼란 또한 존재했다.

     

    더욱이, 룩셈부르크가 1918년 독일 코뮤니스트당 스파르타쿠스 연맹(Spartacist League)의 창립대회에서 한 연설은 여전히 굉장히 모호한 여지를 남겨두고 있었다. 그 연설문은 특히 부르주아 국가를 프롤레타리아트가 파괴하는 문제에 대한 정치적인 명료성이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권력의 정복이 한 번의 타격으로 결과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점진적인 행동일 것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장악한 것은 끝까지 방어하면서 점진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의 모든 지위를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평의회가 국가의 모든 권력을 가져야 한다(…) 한 단계 한 단계씩, 손에 손을 잡고, 모든 지역에서, 모든 마을에서, 모든 도시에서, 모든 공동체에서, 국가의 모든 권력은 조금씩 조금씩 부르주아지에서 노동자병사평의회로 옮겨가야만 한다.”

     

    이 문장이 제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1.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 국가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국가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 (이 입장은 혁명적 의회주의의 흔적이 나타날 수 있게 만들었다)

    2.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 국가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야 한다는 것

    3. 노동자들의 독재는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통해 표현된다는 것

     

    부르주아 혁명의 도식과 유사한, 혁명에 대한 이러한 발상으로 인해, 프롤레타리아당이 권력을 장악할 필요가 있다고 혁명가들이 생각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스파르타쿠스 단원들이 옹호한 입장이 레닌의 입장과 아주 다르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권력 쟁취에 있어서 당의 ‘대중적’ 성격을 굉장히 강조했다.

     

    “스파르타쿠스 연맹은 단지 샤이데만-에버트의 성원들이 전적으로 그들 자신을 불신했기 때문에 정부 권력을 차지하는 것을 거부한다(…) 스파르타쿠스 연맹은 오직 독일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절대다수가 그 의지를 의심할 바 없이 명확히 선언함으로써만 정부 권력을 차지할 것이다.” (1918년 설립 당시 독일 코뮤니스트당 스파르타쿠스단 단원들이 채택한 강령 제안, 붉은 깃발 (Die Rote Fahne)에서 출판, 1918년 12월)

     

    ‘대리주의의 기원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 ‘사회민주주의적 사고의 무게’라고. 그러나 ‘무엇이 대리주의 개념의 발전을 유발했나?’는 질문에 대해서는 : ‘국제 노동자계급의 일반적인 정치적 미성숙함’이라고 답한다.

     

    “자본주의의 상승기의 끝을 알린 제1차 제국주의 전쟁이 19세기 노동자 운동과 그 당면 목표에 있어서 돌이킬 수 없는 절대적인 점을 찍었다. 전쟁에 대한 인민의 혐오는 빠르게 정치화되어 유럽의 주요 국가에서 국가에 대한 전면적 공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의 다수는 과거의 유물(이제는 계급의 적의 산실이 되어버린 제2 인터내셔널의 정책에 집착하는 것)을 완전히 폐기할 수 없었고, 새로운 시대의 함의를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었다. 전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도, 그들의 정치 조직도 ‘전쟁과 혁명’,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새로운 시대에 프롤레타리아 투쟁에 요구되는 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시기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영웅적 투쟁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물결은 유럽에서 노동자계급의 학살 속에 익사했다. 러시아혁명 시기에 노동자계급 전체의 지침이었다는 사실이 그 고립이 심각한 위험이었다는 사실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혁명적 봉기 사이의 일시적 틈조차도 그러한 위험을 내포할 수 있었지만, 1920년경 그 격차는 점점 더 벌어져서 다시 이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 J.A. ‘러시아혁명의 변질’, 『국제평론(International Review)』, 3권, 1975년)

     

    그러나 계급, 당, 국가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혼란은, 계급이 충분히 강하고 혁명적 운동이 격동기에 있는 한, 구체적인 투쟁의 경험으로 극복될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 노동자들의 실천은, 노동자당은 비록 자체가 그 계급에 속한 소수라 할지라도 노동자계급 전체의 활동을 대체하는 것은 물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누가 권력을 차지했는가 하는 질문은 프롤레타리아트 자신의 역사와 실천으로 대답할 수 있다. 봉기의 전날 밤,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는 소비에트 회의의 소집을 요구해서 그 회의에서 무장봉기의 준비를 촉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고, 지역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 소비에트는 그 회의의 역할이 “혁명 권력을 조직하는 문제에 대해 해답을 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소비에트와 공장 위원회에서 볼셰비키당이 불굴의 선전을 펼친 이후, 노동자 다수는 결국 그들 스스로 권력 쟁취를 선언했다. 군사적 관점에서 보자면, 페트로그라드에서 봉기를 준비한 것은 바로 「혁명위원회」였다. 이 위원회는 소비에트, 해군, 공장위원회, 철도와 적위대(Red Guard, 무장된 노동자들)에서 파견된 대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비록 볼셰비키가 그 속에서 지배적이었다 할지라도 당의 기관은 아니었다. 혁명위원회」는 전체 노동자계급과 지속적인 접촉을 유지하는 상태였고, 끊임없이 계급의 통제 속에서 행동했다. 그것은 소비에트와 공장위원회에 직접 연결된 기관이었다. 병영, 공장, 위원회와 당 사이의 접촉은 한순간도 끊기지 않았다. 생생하고 지속적인 연결이 계급의 집단의지를 굳히면서 모든 기관 사이에 존재했다. 비록 일상적인 군사행동은 소수의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을지라도 노동자 전체가 결정했고, 그들의 손에 역사의 고삐를 쥐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트로츠키가 작은 그룹의 ‘음모론자들’, 즉 「혁명위원회」로써 권력을 차지하려 했다고 기소되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포크로브스키(Pokrovsky)교수는 소비에트냐 당이냐는 양자택일의 바로 그 중요성을 부인한다. 군인들은 형식주의자가 아니라며, 그는 웃는다. 그들은 케렌스키(Kerensky)를 전복시키기 위해 「소비에트 회의」가 필요하지 않다. 라고 하면서. 그 모든 농담과 더불어 그런 식의 표현은, 왜 당으로 충분하다면 소비에트 따위를 만드는가? 라는 설명되지 않은 문제를 남긴다. 그 교수는 계속해서, ‘합법적으로, 즉 소비에트의 합법성으로서 모든 것을 행하려는 이러한 열망으로부터는 아무것도 결과되지 않았고, 권력이 결국 마지막 순간에 소비에트에 의해서가 아니라 명백히 비합법적인 특별 조직에 의해 쟁취되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라고 말한다. 포크로브스키는 여기서 트로츠키가 소비에트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군사혁명위원회’의 이름으로, 케렌스키의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인용한다.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결론이다. 군사혁명위원회는 소비에트의 선출된 기관이었다. 전복에서 위원회의 지도적 역할을, 이 교수는 조롱하지만, 대중들은 극히 열광하는 그 소비에트 합법성을 결코 위반하지 않았다.” (트로츠키, 『러시아혁명사』 3권, 우리의 강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0월 혁명이 엄격한 부르주아 합법성 아래에서, 형식적 민주주의의 보호 아래서, 어떤 비밀 결사적 행동도 없이 일어났음을 암시하는가? 물론 아니다! 트로츠키가 말한 ‘소비에트 합법성(Soviet Legality)’은 단지 노동자들의 집단 의지의 필요성, 즉 혁명 과정 전체를 노동자들이 통제할 필요성 바로 그것이었다. 러시아에서 권력 쟁취는 어떻게 노동자 전체가 혁명을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지를 놀라운 방법을 보여주었다. 『러시아혁명사』에서 트로츠키는 이 통제가 어떻게 구체화되었는지, 노동자들이 소비에트를 통해 봉기를 어떻게 준비했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어떤 당도 실천적이고 결정적인 노동자의 행동을 대체할 수 없다. 볼셰비키는 그들의 계급 안에서 단호하게 행동했지만, 그들은 노동자를 대신해서 권력을 차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 노동자계급, 그리고 국가 사이 관계의 본질과 당의 역할에 대한 이론적 혼란이 존재했다. 그리고 당은 단순히 의식의 수동적인 반영이 아니기 때문에, 1902년부터 맹아적으로 존재하던 이러한 오해들은 혁명의 퇴행을 확장하고 가속했다. 1918년부터 계속, 노동자계급의 정치 권력은, 그 정상에 볼셰비키 당이 앉아있는 국가기구에 의해 제한되고 억압되어 왔다. 권력 장악 후, 볼셰비키 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단위 기관과 갈등하게 되고, 그 자신을 ‘통치’ 당의 면모를 드러냈다. 이렇게 당의 권력이 평의회 권력을 대체하는 것은, 20년대 초의 트로츠키의 저작 『테러리즘과 코뮤니즘』 - 크론슈타트 학살과 같은 행동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내용을 이미 포함하고 있던 비극적 저작 – 에서 (노동의 군사화와 함께) 이론적으로 정당화되었다.

     

    “우리는 소비에트 독재를 당 독재로 대체했다고 여러 번 비난받았다. 그러나 소비에트 독재는 오직 당 독재를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었다고 완전히 정당하게 말할 수 있다. 당의 이론적 전망의 명확함과 그 강력한 혁명조직 바로 그 덕분에, 당은 소비에트가 볼품없는 노동자의 의회로부터 노동자들이 우위를 갖는 기관으로 변화될 가능성을 제공했다. 노동자계급의 권력을 당의 권력이 이렇게 ‘대체’하는 것에, 우연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사실상, 대체란 전혀 없다. 코뮤니스트들은 노동자계급의 근본적인 이해관계를 표현한다. 역사가 그러한 이해관계를 전적으로 당대의 질서가 되도록 만든 시기에, 코뮤니스트들이 노동자계급 전체의 대표성을 자각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 (트로츠키, 『테러리즘과 코뮤니즘』)

     

    일단 당과 국가가 노동자계급 전체의 공언된 ‘대표자’가 되고 나자, 그들은 절대 틀릴 수가 없었으며, 비록 전체 노동자계급에 대항하게 될지라도, 학살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항상 옳았다. 그 순간부터, 사회주의 자체는 당과 국가의 일이 되어버린다. 그 순간부터 러시아 국가는 평의회를 파괴하기 시작했고, 이는 혁명의 힘을 파괴하고 반혁명으로 빠져드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심각한 혼란과 나란히,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공동전선의 개념, 대중 정당을 통해 최소 강령을 보호한다는 생각, 노동조합 과업의 필요성, 혁명적 의회주의 입장 등을 발전시켜갔다.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혁명적 물결의 퇴조에 저항하며 코뮤니스트 원칙을 그대로 지키려 노력하기보다는, 오히려 더욱더 이러한 후퇴에 전념하고 이러한 실천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전술’과 원칙 사이의 차이는 제2 인터내셔널의 안에서 그랬던 만큼이나 발전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이해를 항상 염두에 두기보다,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더더욱 러시아 국가의 대변자가 되었고, 일국 사회주의 이론을 선택했을 때, 그 조종을 울렸다.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 옹호한 이러한 테제들은 단지 러시아 국가자본주의의 강화를 옹호하기 위해서 제출되었을 뿐이었다. 바로 그 지점부터 볼셰비키 당은 반혁명의 가장 유순한 도구가 되었다.

     

    나오며

     

    코뮤니스트당(세계혁명당) 건설과 코뮤니스트 혁명의 과정에서 노동자계급과 당 사이의 관계 규정은 여전히 중요하며,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방향과 목표를 정하는 핵심요소이다. 100년 전 사회민주주의의 유산을 완전하게 극복하지 못한 혁명가들의 이론적 오류는 퇴행하는 코민테른에 맞선 투쟁, 반혁명에 맞선 혁명적 코뮤니스트들의 투쟁, 그리고 미래의 세계혁명당 건설을 위한 코뮤니스트 분파들의 공헌으로 대부분 극복되었다.

     

    이미 70년 전인 1948년에「프롤레타리아트 정당의 본질과 기능」이라는 글이 「국제주의(Internationalism)」 38호에 게재되었다. 이 글은 1848년 맑스와 엥겔스의 「코뮤니스트 선언」 이후 100년 동안의 혁명적 노동자 운동의 모든 표현물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를 통해 미래(1948년 이후)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당은 계급투쟁의 진화를 따르고 역사의 각각의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유기체로서 특정한 형식에 조응한다. 19세기 전반에는 국지적 투쟁, 교리 학파, 정차, 동맹의 출현이었는데, 가장 발전된 표현이 「코뮤니스트 동맹」, 그리고 「코뮤니스트 선언」의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나타났다. 제1 인터내셔널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유럽 주요국가에서 사회·정치적 투쟁에 효과적으로 진입하고 노동계급의 단일조직으로서 정점을 찍었으며 제2 인터내셔널에서는 임금 노동의 경제투쟁과 사회·정치투쟁의 분화로 나아갔다. 1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자본주의의 역사적 위기와 쇠퇴의 시기를 열었으며 코민테른에서는 투사의 철칙이라는 조직적 수단을 통해 대응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혁명이 조직 문제를 포함하지만, 조직의 문제는 아니다.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넓은 대중 속에서의 의식의 성숙이라는 이념적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조직도 어떤 당도 계급 자체를 대신할 수 없다. ‘노동자의 해방은 노동자 자신들의 과업이다.’

     

    ⦁당은 지시와 집행의 조직이 아니다. 이 기능은 계급의 단일조직에 속한다.

     

    ⦁혁명 후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 시기에는 당을 전체주의체제의 「단일 당」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당은 국가와 구분된다.”

     

    이후 당과 계급과의 관계 규정은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조직의 강령으로 표현되었고, 혁명조직(당)의 역할(기능)과 구조에 관해서는 70년~40년 동안 논쟁을 지속해오고 있다. 기나긴 토론 과정을 거쳐 현재는 많은 공통점과 해결하지 못한 이견이 정리되어 심화한 토론을 진행 중이다. 그중 코뮤니스트 좌파 사이의 논쟁은 「코뮤니스트」 7, 8, 9호를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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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국제코뮤니스트흐름의 강령 중 「노동자계급과 혁명조직 사이의 관계」를 인용하면서 더 깊고 실천적인 토론을 기대한다.

     

    “비록 계급의 일반조직(평의회)과 혁명조직(당)이 하나의 같은 운동 일부일지라도 그것은 두 개의 다른 조직이다.

     

    평의회는 계급 전체를 총괄한다. 유일한 소속기준은 ‘노동자라는 점’이다. 그와는 달리, 혁명가의 조직은 계급의 혁명적 성원만을 총괄한다. 여기서 소속기준은 사회학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다: 강령의 동의와 그것을 옹호할 태세가 그것이다. 그래서 계급의 전위에는 사회학적으로 노동자계급에 속하지 않지만 자기 출신 계급과 단절을 통해 프롤레타리아의 역사적 이해관계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개인도 속할 수 있다.

     

    비록 계급과 혁명조직이 두 개의 다른 조직이라도 그것은 하나가 다른 하나의 외부에 존재하며 분리되어 있지 않다. 또한 그뿐만 아니라 ‘노동자주의’와 ‘평의회주의’ 흐름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심지어는 두 조직이 상반된 위치에 서 있는 것과 같은 식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흐름은 계급의 두 성원 - 계급과 혁명가 - 이 상충하거나 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로서 서로를 보완한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이 두 성원 사이에는 결코 어떤 권력 관계가 존재할 수 없는데, 이는 코뮤니스트는 ‘전체 프롤레타리아의 이해관계로부터 분리된 어떤 이해관계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코뮤니스트 선언)

     

    계급의 일부로서 혁명가들은, 자본주의 안에서 계급투쟁을 할 때도, 자본주의를 타도할 때에도 그리고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행사할 때에는 더욱이나, 그 어느 때에도 계급을 대체할 수 없다. 이전의 역사적 계급과는 반대로 소수의 의식은 비록 그것이 이미 그렇게 계발되어 있을지라도 프롤레타리아의 과제를 실현하는데 충분하지 않다. 이에 덧붙여 계급 전체의 항시적이고 지속적인 참여와 창조적 활동이 필수적이다.

     

    계급의식의 균질화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승리를 위한 유일한 보장이며, 이러한 균질화는 주로 실천적인 경험의 결과이기 때문에 계급 전체의 활동은 대체될 수가 없다. 특히 계급에 의한 필수적인 폭력사용은 계급의 전반적인 운동으로부터 분리된 활동일 수가 없다. 그래서 개인이나 고립된 단체가 행사하는 테러리즘은 노동자계급의 투쟁방식과는 전혀 거리가 멀며, 그것은, 부르주아 분파 간의 냉소적인 투쟁방식이 아니라면 기껏해야 소부르주아적 절망을 표현할 뿐이다.

     

    노동자 투쟁의 자기조직화와 계급의 권력 행사 자체는, 하나가 다른 하나에 대해 저울질할 수 있는 그러한 코뮤니즘을 향한 두 가지 길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코뮤니즘을 향한 유일한 길이다.

     

     2019년 4월


    정리 ㅣ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전문 다운로드> 당에 관한 잘못된 이론.pdf


    <이전 글> 


    당에 관한 잘못된 이론 1 - 대리주의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6968



    당에 관한 잘못된 이론 2 - 사회민주주의의 유산 : 레닌의 정정과 룩셈부르크의 망설임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6973



    <참고 할 글>


    혁명당과 노동계급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6925



    혁명조직의 역할과 구조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6931



    혁명조직의 기능에 관한 보고서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6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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