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코뮤니스트 9호] 동태
  • 조회 수: 6483, 2019-12-15 19:20:22(2019-08-05)
  •      동태

     

    동태는 강자였다 콘크리트 바닥에 메다꽂아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동태를 다루려면 도끼 같은 칼이어야만 했다

    아름드리나무 밑둥을 통째로 자른 도마여야 했다

    실패하면 손가락 하나정도는 각오해야 했다

    얼음 배긴 것들은 힘이 세다

    물렁물렁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한때 명태였을지라도,

    몰려다니지 않으면 살지 못하던 겁쟁이였더래도

    뜬 눈 감지 못하는 동태가 된 지금은

    다르다

    길바닥에 놓여진 어머니의 삶을

    단속반원이 걷어차는 순간

    그 놈 머리통을 시원하게 후려갈긴 건

    단연 동태였다.


    詩 ㅣ 박상화



    <저자 소개>


    박상화 朴橡樺

    (필명 상화橡樺는 상수리나무와 자작나무 곁에서 사는 사람이란 뜻으로 지음)

     

    1968년 서울생.

    뿌림글 동인.

    동인시집 <거대한 뿌리>/2000

    해방글터 동인.

    동인시집 제1<땅끝에서 부르는 해방노래>/ 문예미학사/ 2001

    2<다시 중심으로>/ 삶이보이는창/ 2003

    3<하청노동자 전태일>/ 풀무질/ 2005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음

    #박상화 시인의 첫 시집 『동태』가 출간되었습니다.

    #코뮤니스트는 박상화 시인의 작품 게재에 감사드리며, 첫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응원합니다.

    #시집_동태에 대한 코뮤니스트 독자-지지자들의 많은 구독과 관심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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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화 시인의 첫 시집 『동태』가 <푸른사상 시선 105>로 출간되었다. 시인의 주제의식과 작품들의 표현력은 콘크리트 바닥에 메다꽂아도 끄떡없는 동태처럼 단단하다. 우리 사회의 불의와 모순을 후려갈기는 통쾌함과 소외된 생명들이 한데 모여 숲을 이루려는 연대의식은 그지없이 소중하고도 아름답다. 2019년 8월 2일 간행.


    ■ 시인 소개

    1968년 서울, 첫눈 펑펑 오던 날 태어났다. 본명은 흥열, 호는 위야(爲野), 필명은 상화.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다. ‘뿌림글’ 동인 시집 『거대한 뿌리』, ‘해방글터’ 동인 시집 『땅끝에서 부르는 해방 노래』, 『다시 중심으로』, 『하청 노동자 전태일』 발간에 함께했다.      이메일 getngomart@gmail.com


    ■ 시인의 말

    언젠가 수국을 만난 적이 있다. 푸르지도 분홍빛이지도 희지도 않았다. 갈빛으로 꼿꼿이 마른, 목화된 꽃. 꽃이었으나 말라 나무가 돼버린 꽃. 꽃이 피어난 그 순간 그대로 시간을 멈춰버린. 세상에. 아무도 멈출 수 없던 시간, 그 시간을 멈춰버린 꽃이었다. 사랑하였으므로 피었고, 핀 그대로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멈춰버린 꽃이었다. 모든 시간은 순간이다. 너의 화양연화는 어쩌면, 힘든 삶을 버티고 말라가면서도 네가 꽃이었을 때 그 모습을 그대로 버티고 있는 고집은 아니었을까. 불안해하면서도 고집을 부리고 있다면 넌 잘하고 있는 거다. 잊지 말길. 지지 말길


    ■ 추천의 글

    그가 미국으로 홀연히 떠난 지도 참 오래되었다. 그는 내게 <알함브라의 궁전>으로 기억된다. 국내 처음으로 이주 노동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았던 책, 이란주의 『말해요. 찬드라』 홍보 배너에 그가 배경 음악으로 넣어준 곡이다. 그는 문예지들이 아직 종이 권력 눈치를 보고 있을 때 노동자들의 딱딱한 시를 멋지게 디자인해 사이버 벽시 운동을 처음 만들던 진취적인 벗이었다. 오랜 시간을 지나 그가 내게“ 서로 어깨 걸어 단단한 돌담…… 네가 버텨야 네 동료들도 무너지지 않는 걸” 다시 새기라 한다.“ 큰 나무가 되려면 삼백 번쯤 헐벗어야 하고/하늘을 날려면 뼈를 비워야” 하는 삶의 투명한 고투와 비애를 사랑하라 한다. 꽃도 나무도 자신을 찢고 터트려 새로운 꽃과 열매를 내듯“ 아프지 않고 나아갈 길”은 없어“ 아픈 건 (비로소) 나아간다는 것”임을 명심하라 한다.태평양 건너 머나먼 곳까지 가서도 밀양, 강정, 구미 아사히글라스, 평택 쌍용차, 부산 생탁과 한진중공업 등 전국 노동자 민중 투쟁의 모든 현장에 함께해온 정의로운 자. 이제 와 고백이지만 나는 그의‘ 과학’보다 대책 없는, 그러나 금강석처럼 빛나고 단단하던‘ 순정’을 더 사랑했었다. 긴 이별의 시간 동안에도 그는 우리가 살며 끝내 간직해야 할 정치적 당파적 인간애적‘ 올바름’이 무엇인지를 시적 극한까지 밀고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이젠 그만 아프길.“ 잎이 없어도/가지가 …… 없어도” 우뚝 선 겨울나무들의 아름다운 시의 집으로 나를 다시 초대해준 그가 오늘 몹시 그립다 . 

    ― 송경동(시인)


    ■ 작품 세계

    새삼 시를 다시 생각한다. 시가 뭘까. 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채워야 시가 되지만 비우지 않으면 사라진다. 한편으론 무겁고 한편으론 한없이 가볍다.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어지럽다. 마성이되 순정한 삶 아니면 헛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란, 순연한 통증들의 연속이다. 그런데도 시인들은 이 시라는 걸 붙들고 한 삶을 건너간다.

    박상화 시인도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랫동안 시를 앓고 있는 것 같다. 시를 넘겨받기 전까지 나는 박 시인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력을 보니 과거에 한 번쯤은 서로 맞닿았음직하나,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들은 없다. 따라서 현재까지는 시만이 그와의 유일한 소통 면이다. 그래서 참 자유롭다.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의 시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 나를 뒤척이게 한다. (중략)

    그의 말대로 혼자서는 숲을 이룰 수 없다. “큰 나무 혼자서도 안 되고/앞장선 나무 혼자서도 안 된다.” “차비가 없어서 농성장에 오지 못하는 나무”도 데려와야 하고, “밥을 굶고 연대하는 바위”도 초대해야 한다. “피켓을 든 작은 풀도 있”어야 하고, 먼 데서 함께 우는 새와 “공장에서 일하는 마음을 띄”우는 구름도 어우러져야 한다. 그래야 숲이다. 숲의 세상이다. 어디 이뿐일 것인가. “일자리 찾아가는 냇물들도 모여/함께 다 같이” 생명의 숨결 맞비벼야 진정한 삶의 숲일 것이다.

    자, 그러니 이제 어쩌겠는가 하고 그가 내게 묻는다. 당연히 함께한다. 내 등 기꺼이 내어놓고 이땅의 분투를 해소하는 화쟁의 숲에 들겠다. 당신은 어떠신가.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신도 등을 내어주고 그와 함께 등의 시간에 올라타시라. 현대인들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아 보인다. 

    ―정우영(시인)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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