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코뮤니스트 9호] 코뮤니즘(공산주의)이란 무엇인가? Ⅰ
  • 조회 수: 5744, 2023-09-01 10:21:23(2019-08-22)
  • 코뮤니즘(공산주의)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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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압력이 항상적(恒常的)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미래 사회를 객관적으로 묘사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목적은 자본주의가 영원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압력은 코뮤니즘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정의하려는 모든 시도를 단절하고 훼손한다.

     

    많은 노동자들에게 코뮤니즘은 그래서 러시아, 중국, 쿠바 등 이른바 사회주의국가에서 볼 수 있었던 (국가)자본주의와 군사화된 노동의 천국으로 비친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코뮤니즘의 본질 자체로 인해서 코뮤니즘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코뮤니즘이란 우리에게 있어서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가 아니며, 혹은 현실이 따라가야 할 하나의 이상도 아니다. 우리는 코뮤니즘을 현재의 상태를 폐기해 나가는 현실의 운동이라 부른다.”(맑스,독일 이데올로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것은 코뮤니스트 사회가 소수의 계몽된사람들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헤겔(19세기 초, 독일의 철학자로 맑스는 그에게서 변증법을 도출했다)의 개념과는 대조적으로, 역사는 관념(인간의 관념, 코뮤니즘의 관념)의 진보적 실현이 아니다. 코뮤니즘은 인류의 목표로서 기능하는 정신적인 창조물이나 환상이 아니다. 코뮤니스트 사회는 실재적이고 인간적이며,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신기원이다. 이것은 구()사회에 내재된 모순으로부터 그리고 그 사회 발전의 필수적인 귀결의 하나로서 출현한다.

     

    그러나 코뮤니즘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비록 코뮤니스트 사회가 자본주의에 내재된 경제적, 사회적 모순의 결과이자 실재적이고 객관적인 조건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실천적이고 집단적이며, 의식적인 창조물이다. 역사상 최초로 하나의 사회 계급이 그들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조직화되고 의식적인 방법으로만 가능하다. 이것이 코뮤니즘이 지적인 계획도 아니며,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필연성도 아닌 이유다. 코뮤니즘은 인류 공동체가 이전 사회관계의 폭력적 파괴에 뒤이어 구세계를 의식적이고 점진적으로 변혁시킨 결과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코뮤니즘을 향한 현실의 운동을 지배하는 주체적이고 객관적인 조건은, 오늘날 존재하는 조건의 산물이다. 일단 코뮤니즘이 역사적인 측면에서 하나의 가능성이 되고 나면, 그것의 실현은 주체적 발전, 다시 말해 현 시대의 의식 발전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혁명 그 자체도 코뮤니즘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의식적인 정치 행동의 형식을 취해야 하고, 그 성공 여부가 프롤레타리아트가 획득한 의식과 조직화의 수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기초 위에서 인류 공동체는 단지 객관적인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코뮤니스트 사회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코뮤니스트 혁명의 주요 국면과 혁명이 지향해야 하는 최종 목표를 정의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코뮤니스트 혁명은 오직 스스로를 의식하고 있는 운동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코뮤니즘에 의해 확립되는 새로운 사회관계의 특징 자체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과 조직양식이 발전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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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뮤니즘의 본질

     

    코뮤니즘은 유토피아라든가, 추상적인 이상향이 아니기 때문에, 그 뿌리를 이전 사회에 두고 있다. 코뮤니즘의 가능성과 코뮤니즘을 이루기 위한 객관적인 조건은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를 전복하려는 혁명적 계급의 정치적 역량, 이 두 가지로부터 나온다. 미래 사회의 자양이 되는 것은, 생산력의 발전 정도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구체화된 사회관계의 본질, 두 가지 모두이다. 코뮤니즘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객관적 필요성이 되는 시기는 오직, 생산력의 발전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렀을 때, 생산력의 계속된 발전과 자본주의의 생산 관계 사이의 모순이 발전함에 따라 이전 사회가 더는 발전할 가능성이 없을 때이다.

     

    사회가 모든 생산 수단의 통제를 장악하는 것은 이것이 일어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이 존재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지고, 역사적 필요성으로 될 수 있다. 다른 모든 사회적 진보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계급이 존재함이 정의나 평등 등등에 모순된다는 통찰이 얻어진다고 해서, 이러한 계급을 폐지하겠다는 단순한 의지가 있다고 해서 실행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새로운 경제적 조건에 의해서만 실행 가능한 것으로 된다.” (엥겔스, 반뒤링론1894)

     

    이러한 새로운 객관적 조건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구별을 철폐하고 자본과 임금 체계, 상품 생산, 그리고 모든 민족적이며 계급적인 분리를 철폐할 수 있는 그러한 사회관계만이, 생산력의 진보적 발전을 허용하고 인류의 현재 필요에 대응하게 될 사회관계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것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 코뮤니즘은 계급,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어떤 종류의 개인적, 집단적 소유도 없는 사회여야만 한다. 자본주의가 이뤄놓은 생산의 사회화의 유일한 최절정은 사회 전체에 의한, 생산수단의 사회적인 몰수이다. 오직 계급 특권과 사적인 몰수의 철폐만이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사회관계의 자본주의적 성격 사이의 현존하는 모순을 극복할 수 있다. 모든 생산력과 생산수단의 사회적 몰수는 오직, 경제적으로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으면서 하나의 생산적인 집단으로서만 기능하는 피착취 계급,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수행할 수 있다.

     

      · 코뮤니스트 사회는 그러므로 결핍의 철폐와 인류의 필요를 위한 생산에 근거한다. 코뮤니즘은 풍요의 사회이며, 이 사회는 인류의 다양한 필요를 충족시켜줄 것이다. 생산력, 인문학, 기술과 지식의 수준을 통해서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경제적 힘의 지배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은 자신의 삶과 재생산을 결정짓는 조건에 대한 통제력을 의식적으로 획득함으로써, “필요가 지배하는 시대로부터 자유가 넘치는 시대로나아갈 것이다.

     

    인간의 필요를 위한 생산은, 인류의 해방은 오직 세계적 규모로 그리고 경제적 사회적 삶의 모든 측면에서 혁명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코뮤니즘은 가치 법칙을 철폐한다. 모든 인간에 의해 모든 수준에서 사회화되고 계획되는 코뮤니스트 생산은 오로지 사용가치의 생산에만 기반하며, 그 사용가치의 사회화된 직접적 분배는 교환, 시장, 화폐() 등을 배제한다.

     

     ·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사회, 경제적 경쟁과 경제적 무질서의 사회, 그러므로 개개인과 계급이 서로 충돌하고 경쟁하는 사회로부터, 인류는 코뮤니즘 아래에서 인류 공동체가 지배하는 사회로 진입한다.

     

    이 공동체에서는, 하나의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는 체제를 유지하는 정치권력의 모든 형식(정부, 국가, 경찰 등)은 착취와 계급 분리가 사라짐과 동시에 사라질 것이다. 통치권들의 존재는, 다시 말해 인간성과 인간의 창조성을 억압하는 모든 방식의 존재는 사물의 단순한 관리,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에게 자리를 내줄 것이다.

     

    코뮤니즘의 이러한 특징은 최소한의 윤곽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넘어서, 더 서술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광범위한 일반화에 국한된다. 더구나, 이러한 간단한 묘사 속에는 인간관계와 관련된 새로운 삶의 방식의 결과들이 다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사회 내부의 분리와 차별, 소외, 인간 사이의 세력 관계 등을 철폐가 담고 있는 의미도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심지어 이렇게 대략적인 개괄을 통해서도 자본주의 사회와 이전에 있었던 모든 사회들과 미래 세계 사이의 엄청난 차이를 볼 수 있다.

     

    착취가 없는 사회! 우리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살 수 있는 곳!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의 분리가 없는 곳! 자유의 의미가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 있는 자유 이상을 의미하는 곳! 놀랄만하지 않은가!

     

    비록 이렇게 인류가 만들어 가야 할 거대한 도약의 자세한 부분까지 생각할 수는 없을 지라도, 인류의 역사상 아직까지 이와 같은 종류의 질적 도약을 위한 필요성은 없었다는 점, 이것 하나는 명확하다.

     

    이 발언은 양날의 칼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런 종류의 도약은 오직 한 사회 계급이 자신의 역사적 과업을 완벽하게 의식하고 있을 때야 비로소 성취될 수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의식 수준을 성취할 수 있는 계급인 노동계급은 가장 극단적인 박탈, 가장 사나운 착취, 영속적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압력에 종속되어 있는 바로 그 계급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가 이전의 모든 사회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 이르도록 하는 코뮤니즘의 모든 특징 그 자체는 프롤레타리아트 존재의 취약함, 궁핍, 그리고 비인간성에 달려있다.

     

    사회 존재의 모든 비인간성이 프롤레타리아의 존재 조건에 집중된 형태로 존재하기때문에, 노동계급은 현재 그 자신의 상황에 집중되어 있는 사회의 모든 비인간적 측면을 극복하지 않고는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없다.”(맑스, 엥겔스, 신성 가족, 1844)

     

    착취당하는 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바로 그 입장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는 모든 사회를 해방시키고, 또한 계급이나 착취 없는 사회를 만들도록 강제되는 것이다.

     

    사회 내부에서 어떤 경제적 권력도 소유하지 않고, 생산의 지점에서 착취 받는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자신의 해방을 위해서 오직 스스로에게만 기대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연대와, 자신의 의식으로써만 자본주의에 반대할 수 있다. 이 두 무기는 그 자체가 미래 사회의 특징적인 원칙의 체화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반대가 매우 취약하고 깨지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지 사회와 대결할 때 기반으로 삼을 수 있는 경제적 특권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해방을 위한 최종적 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계속적인 압력에 극단적으로 취약하다.

     

    이것이 코뮤니즘을 향한 길이 필연적이지 못한 이유이다. 코뮤니즘은 길고 고통스러운 투쟁의 열매다. 이것이 어째서, 잃을 것은 그 쇠사슬뿐이며 쟁취할 것은 세계라는 프롤레타리아의 특별한 혁명적 역량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승리를 절대적으로 보장할 수 없는지, 그 발전에 대한 결정론적인 전망이 있을 수 없는지 이유다. 그러나 만약 이 새로운 역사적 신기원이 쟁취되지 못한다면, 인간성은 이름 없는 야만으로 전락하고, 아마도 그 최종적 파멸에까지 이를 것이다.

     

    따라서 코뮤니즘을 향한 길, 계급투쟁은, 일련의 승리와 패배로서, 일보 후퇴와 그에 뒤이은 새로운 승리라는 패턴의 연속으로서 나타난다. 이것은 의지와 의식 사이의 긴장, 끊임없는 재평가와 자기비판 사이의 긴장이라는 형태를 취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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