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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9호] 레닌의 4월 테제 對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 인민전선 Ⅲ
  • 조회 수: 7038, 2019-11-21 14:07:14(2019-11-21)
  • 레닌의 4월 테제 對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 인민전선

    양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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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테제>의 전술에 관해 설명하는 두 번째 편지인 <우리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에서 레닌은 러시아 혁명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191723월의 러시아 혁명은 제국주의 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의 출발점이었다. 이 혁명은 전쟁 종결로의 제1보를 내딛었다. 2, 즉 국가권력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인도하는 것만이 전쟁의 종결을 보장할 수 있다. 그것은 세계적 규모로의 전선 돌파”, 자본의 이익이라는 전선을 돌파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전선을 돌파함으로써만 프롤레타리아트는 인류를 전쟁의 참화로부터 구하고 평화의 축복을 인류에게 안겨줄 수 있다.

    러시아 혁명은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를 만들어냄으로써 이미 이러한 자본 전선돌파직전까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를 끌어당긴 것이다.” (<우리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

     

    여기에 레닌의 총괄적인 전략 규정이 있다. 2의 혁명으로, 국가권력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인도하는사회주의 혁명으로 이행해야 한다. 이것이 제국주의 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의 완료로서, 전쟁의 종결을 보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러시아의 사회주의혁명은 인류를 전쟁의 참화로부터 구할 세계 사회주의혁명의 첫 주자가 될 것이다.)

    이 점은 앞서 4월 테제에서 이렇게 표현되었다.

     

    러시아 현 시기의 특수성은....혁명의 최초 단계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와 빈농의 수중으로 권력을 넘기지 않으면 안 되는 혁명의 두 번째 단계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행의 전략 규정은 주관주의적인 것이 아닌가? 구 볼셰비키의 비판처럼,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직접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화시키는 것목표로 하고 있는 공상적인 도식을 그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레닌의 전략 규정의 전제는 지금 러시아에 존재하고 있는 코뮌 형 국가, 즉 노동자 · 병사 · 농업노동자 · 농민 대표 소비에트다. 첫 번째 혁명이 만들어낸 (그리고 명백히 인민 다수의 직접적인 조직) 이 소비에트가 이행의 객관적 근거이자 물질적 담보다. 소비에트는 계급들의 상호관계라는 측면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를 구현하고 있지만, 국가 유형으로는 이미 민주주의 독재를 넘어선, “경찰, 군대, 관료 등 억압기구를 분쇄해서 없애버린코뮌국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맹아다.

     

    소비에트는 국가의 새로운 형태, 보다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유형이. “우리 혁명 속에서 성장해나가고 있는 새로운 유형의 국가.

    의회 부르주아 공화제에서 군주제로 되돌아가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듯이) 아주 쉽다. 군대, 경찰, 관료 등 억압 기구 전체를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기 때문이다. 코뮌과 노동자 · 병사 · 농민 등 대표 소비에트는 이 기구를 분쇄해서 없애버린다.”

    노동자 · 병사 소비에트는 파리 코뮌이 만들어낸, 그리고 마르크스가 노동의 경제적 해방을 이룩할 마침내 발견된 정치적 형태라고 이름 붙인 국가 유형을 재현하고 있다.” (<우리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

     

    노동자권력의 정치적 틀거리로서 코뮌 형 국가의 기초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중권력>에서는 이 점을 좀 더 상세히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혁명에 대해 서로에게 천 번이고 축하를 보내지만, 노동자 · 병사 대표 소비에트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 소비에트가 존재하고 있는 한에서, 그것들이 하나의 권력인 한에서 러시아에는 파리 코뮌 형의 국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명백한 진실을, 그들은 보려 하지 않는다.

    나는 한에서라는 단어를 강조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맹아적인 권력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권력은 부르주아 임시정부와의 직접적인 협정에 의해, 그리고 일련의 사실상 양보에 의해 스스로 부르주아지에게 진지를 내주었고, 지금도 내주고 있다.

    왜인가?.... 원인은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자각과 조직화가 불충분한 것에 있다.”

     

    2월 봉기를 주도한 프롤레타리아트가 소비에트를 만들어 군대, 경찰, 관료 등 억압 기구 전체를 분쇄해서 없애버리(적어도 수도 페트로그라드에서는) 권력을 쥐었지만, “계급적 자각과 조직화가 충분치 못해 권력을 부르주아지에게 넘겨준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존재하고 있는 소비에트로 모든 권력을 이양하는 것, “프롤레타리아트와 빈농의 수중으로 권력을 넘기는 것을 혁명 발전의 일반적인 전략 목표로 규정하는 것은 결코 주관주의적인, 머릿속에서 그려낸 전략 구상이 아니다. 레닌의 이러한 소비에트 권력’(“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요구를, 예를 들어 영구혁명론을 처음 정식화한 파르부스의 차르 반대, 노동자 정부!” 슬로건과 비교해 보라. 소비에트 같은 인민적 권력 근거를 전제하지 않음으로써 소수자에 의한 권력 탈취 요구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 슬로건은 확실히 주관주의적 위험, 또는 블랑키주의적 모험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레닌의 소비에트 권력’/ ‘코뮌국가요구는 명백히 노동자 · 농업노동자 · 병사 · 농민 대표 소비에트에 근거를 두고 있고, 따라서 다수자를 건너뛰지 않는, “다수자의 직접적이고 무조건적인 지배와 대중의 활동성을 완전하게 보증하는, 즉 이러한 대표 소비에트 내부에서 영향력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으로 귀착되는 요구다.

     

    이와 같이, 권력을 임시정부에 양도하는 바람에 현재 맹아적인 국가권력으로 머물렀지만, 그 유형에서는 이미 파리코뮌 형 국가(“인민으로부터 분리된 군대와 경찰을 인민 자신의 직접 무장으로 대체하는 국가”)인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의 존재가 바로 이행의 물질적 담보다.


    생활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독재를, 부르주아지의 독재와 서로 얽히게 했다. 다음 단계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지만,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는 아직 충분히 조직되고 각성되어 있지 못하다. 프롤레타리아트를 각성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전국에 걸쳐서 이러한 대표 소비에트가 필요하며, 이것은 생활의 요구다. 이 이외의 길은 없다. 이것이 바로 파리 코뮌이다!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는 부르주아지가 바라는 것과 같은 노동조합 조직이 아니다. 인민은 그것을 다르게, 그리고 보다 정확하게 보고 있다. 인민은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를 통치권력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인민은, 전쟁에서 벗어나는 길은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의 승리에 있다고 보고 있다. 바로 이것이 그 아래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한 국가 유형이다.” (<페트로그라드 시 협의회>)

     

    그렇다면, 이제 그러한 맹아적인 통치권력을 본연의 통치권력으로 성장 전화시키기 위해 남는 것은 충분한 계급적 자각과 조직화라는 과제다. 임시정부를 지지하고 임시정부와 뒤얽혀서 그 부속물이 되고 있는 소비에트를, 임시정부를 타도/대체하는 소비에트로 탈바꿈시켜낼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계급적 자각과 조직화를 소비에트 대중 속에서 이루어내는 과제다. 노동자 · 병사 대표 소비에트가 맹아딱지를 떼고 실제 노동자권력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이행하기 위해 지금 충족시켜야 할 이 과제는 어떠한 구체적 정세를 매개로 하여, 어떠한 전술적 임무로 제기되는가?

     

    지금 일정에 올라 있는 것은 이제 별개의 새로운 임무다. 이 독재 [노동자 · 병사 대표 소비에트로 실현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 내부의 분립, 즉 프롤레타리아적 분자 (조국방위주의에 반대하고 코뮌으로의 이행에 찬성하는 국제주의적, ‘공산주의적분자)와 소경영주적 또는 소부르주아적 분자 (코뮌으로 나아가는 것에 반대하고 부르주아지와 부르주아 정부를 지지하는 입장에 서 있는 치헤이제, 체레텔리, 스테클로프, 사회주의혁명가당, 그리고 그 밖의 혁명적 조국방위주의자들)를 분리시키는 임무다.

    지금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만을 말하는 사람은 생활에 뒤처진 사람이며, 그 결과로 사실상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 반대하여 소부르주아지 쪽으로 넘어간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혁명 전 볼셰비키고물보관소 (“구 볼셰비키보관소라 불러도 무방하다)에나 수용해야 마땅하다.” (<전술에 관한 편지>)

     

    구 볼셰비즘을 버려야 한다. 소부르주아지의 방침과 임노동 프롤레타리아트의 방침을 분별 하는 것이 필요하다. 혁명적 인민이라는 문구는 케렌스키에게는 어울리지만,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차르 니콜라이가 정리되어 버린 오늘에는, 혁명가라는 것은, 아니 민주주의자라는 것조차도 대수로울 게 없다. ‘혁명적 민주주의 파는 아무 쓸모도 없다. 그것은 공문구다. 그것은 계급 이해관계의 모순들을 덮어 가리기나 하지, 들춰내지 않는다. 볼셰비키는 노동자와 농민을 이들 모순의 존재에 눈뜨게 해야 하지, 그것을 얼버무려서는 안 된다.”

    볼셰비키는 프롤레타리아트와 소부르주아지를 분별해야 하며, “혁명적 민주주의 파라든가, “혁명적 인민이라든가 하는 말들은 케렌스키에게 줘버려야 한다. 러시아의 민주주의 파는 제국주의자다.” (<페트로그라드 시 협의회>)

     

    소비에트 내에서 혁명적 인민이라는 문구 하에 소경영주 · 소부르주아지와 임노동 프롤레타리아트 간 계급 이해관계의 모순이 덮어 가려지고 있다. 부유한 농민은 제국주의 약탈 전쟁으로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여겨 임시정부의 전쟁 계속 결정과 러시아 제국주의를 지지하고 조국방위주의에 찬성한다. 빈농(농민층의 다수를 이루는 반[]프롤레타리아)과 프롤레타리아트(농업노동자 포함)에게 이 전쟁은 불필요하며, 그들의 계급 이익과 이 전쟁은 양립할 수 없다. 계급적 자각과 조직화의 미비라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비에트 대중을 바로 이러한 계급 이해관계의 모순에 눈 뜨게 해야 한다. ‘혁명적 민주주의 파라는 이름으로, 대중의 눈에 한 묶음으로 처리되고 있는 국제주의자 · 공산주의자와 조국방위주의자 ·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 · 사회제국주의자를 분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구 볼셰비키를 자칭하는 우리의 동지들까지도이러한 분리, 분별시키는 임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지금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만을 말하, “그 결과로 사실상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 반대하여 소부르주아지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우리의 동지들까지도”, ‘단계를 건너뛰어 이 혁명을 직접적으로 사회주의혁명으로 전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거냐며 계급 이해관계의 모순에 눈뜨게 하는 임무를 망각하고 혁명적 민주주의 파의 간판 뒤에 숨고자 한다.

     

    여기서 이러한 분리, 분별시키는 임무가 제기되는 구체적 정세, 계급 제세력의 배치관계를 레닌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좀 더 살펴보자.

     

    부르주아지는 부르주아지의 단독 권력에 찬성한다.

    계급적으로 각성한 노동자는 노동자 · 농업노동자 · 농민 · 병사 대표 소비에트의 단독 권력에 모험주의적 행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적 의식을 명료하게 하고 그것을 부르주아지의 영향으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가능해지는 단독 권력에 찬성한다.

    소부르주아지 사회민주주의자”, 사회주의혁명가당 등등 는 동요하며, 그와 같이 동요하는 것에 의해 이 명료화와 해방을 방해하고 있다.

    이상이 우리의 임무를 규정하고 있는 현실의 계급적 세력관계다.” (<이중권력>)

     

    현 시기 평가에서 레닌은, 2월 혁명이 모순을 일정 해결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모순, 계급 제세력의 새로운 배치관계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구 볼셰비키를 비판한다.

     

    카메네프 동지의 오류는 1917년에 이르러서도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의 과거만을 본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미 그 미래는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임금노동자와 소경영주의 이해관계와 정책은 현실에서 이미 엇갈려 버렸기 때문이다. ‘조국방위주의문제,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태도 문제 같은 극히 중요한 문제들에서도 이해관계와 정책을 완전히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전술에 관한 편지>)

     

    우리가 1905년에 말한 것을 지금 반복해서 말하고, 농촌에서의 계급투쟁 [부농 대 빈농 · 농업노동자 간의]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의에 대한 배반이다.

    지금도 벌써 우리는 토지 문제의 해결을 제헌의회 소집 시까지 기다리려는 경향을 수많은 농민대회의 결정 속에서 발견하는데, 이것은 카데츠 쪽으로 기울고 있는 부유한 농민의 승리다.”

    우리의 임무는 이 소부르주아적 수렁으로부터 계급적 방침을 떼어내는 것이다.”

    소부르주아지는 완전히 그들에게 굴복했다. 만약 우리가 프롤레타리아적 방침을 떼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의를 배반하는 것이 될 것이다.” (<페트로그라드 시 협의회>)

     

    ,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가 기본 슬로건이었던 1905년과 비교하여 1917년 지금의 정세 조건은 어떻게 다른가?

     

    혁명을 최후까지 수행한다는 낡은 표현. 그러나 어떤 혁명을? 1905년의 객관적 정세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이 유일한 혁명적 분자였던 반면.... 오늘의 조국방위주의는 농민이 소부르주아 전술로 넘어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주의] 혁명을 최후까지 수행한다는 것은 의미를 잃었다.”

    볼셰비즘 정치로부터 새로운 방침이 태어나고 있다. 소부르주아지와 대부르주아지가 결합했다. 우리는 제계급의 이익의 상충을 우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농업노동자 농민과 소유자 농민은 서로 다른 입장이다. 전자는 제국주의 전쟁에 틀림없이 반대다. 후자는 조국방위주의에 찬성이다.

    조국방위주의는 소부르주아지가 노동자계급으로부터 떨어져나가 대부르주아지의 편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부분적으로 도시에서의 노동으로 생계를 영위하는 빈농에게는 이 전쟁은 불필요하다. 이 계급은 전쟁의 반대자다.” (<페트로그라드 시 협의회>)

     

    현재 러시아에서 지금 거의 모든 나로드니키 당들 (인민사회주의자, 트루도비키, 사회주의혁명가당)과 멘셰비키파 사회민주주의자의 기회주의적 당 (조직위원회, 치헤이제, 체레텔리 등)과 나아가 대다수의 무당파 혁명가를 사로잡고 있는 이른바 혁명적 조국방위주의는 그 계급적 의의에서 볼 때, 자본가와 마찬가지로 약소민족에 대한 억압으로부터 이윤을 끌어내고 있는 소부르주아지, 소경영주, 부농의 이익과 관점을 표현하고 있다.” (<페트로그라드 시 협의회>)

     

    이러한 정세, 이러한 계급 제세력의 배치관계 속에서 구 볼셰비키는 여전히 농민이 권력에 올라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완성할가능성만을 말하고, “부르주아지와 농민 간에 협정, 또는 계급협조가 존재함을 드러내주는 현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그러면서 구 볼셰비키는 농민과의 동맹을 포기해야 한다는 거냐’, ‘여전히 가능성이 남아 있는 농민혁명을 건너뛰어 직접적으로 사회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는 거냐, 소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를 분리시키는 것에 반대한다.

     

    마르크스주의자가 그와 같은 미래의 단계 [농민혁명에 의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완성]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농민이 부르주아지와 협정을 맺고 있는 현재에 자신의 의무를 망각한다면, 그는 소부르주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사실상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소부르주아지를 신뢰하라고 설교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농민이 임시정부의 꼬리를 이루고 있고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이 부르주아 정부의 부속물 역할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정세 속에서 구 볼셰비키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완성가능성을 내세워 소부르주아지를 신뢰하라고 설교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독립적인 투쟁을 제한, 억제하고 소비에트를 임시정부에 계속 묶어두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만을 말하는 사람은 생활에 뒤처진 사람이며, 그 결과로 사실상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 반대하여 소부르주아지 쪽으로 넘어간 사람이다.”

     

    이렇게 하여 구 볼셰비키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소부르주아 카우츠키 파로, “혁명적 민주주의파의 좌익으로 되어버렸고, 과거에 혁명적 전술이었던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는 구 볼셰비키의 손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 반대하는 계급협조 인민전선 전술로 되어버렸다. (물론, 구 볼셰비키는 멘셰비키처럼 임시정부에 대한 전략적지지자는 아니다. 구 볼셰비키의 지지는 현 시기 전술로서의 지지다. 구 볼셰비키는 향후 농민혁명에 의해 임시정부를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로 대체한다는 가능성을 전략 시나리오 안에 포함해두고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에조차도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완성한다는 범위 내에서의 독재지, 그 틀을 넘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의 전화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는 독재는 아니다. 구 볼셰비키에게 이러한 전화단계를 건너뛰어 직접적으로 사회주의를 도입하려는모험주의적인 발상이다. 구 볼셰비키의 전략 시나리오에서 두 독재는 서로 연결되지 않는 두 단계, 두 역사적 시대로 엄격히 분리되어 있다. 레닌은 구 볼셰비키기가 말하는 농민혁명 소부르주아지의 권력 장악시나리오가 지금도 가능한지는 알 수 없는 문제지만, 만약 지금도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에 도달하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소부르주아적 분자로부터 즉각, 단호히, 돌이킬 수 없이 프롤레타리아적 · 공산주의적 분자를 분리시켜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경우에도 프롤레타리아적 공산주의 당을 분리시키는 것에 의해서만이, 이들 소부르주아의 소심함으로부터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적 계급투쟁을 감행함으로써만이 그것은 가능해진다.”)

     

    이와 같이 프롤레타리아적 분자(방침)를 분리, 분별시키는 임무를 규정하는 현 시기 정세 조건은 다름 아닌 소부르주아지가 노동자계급으로부터 떨어져나가 대부르주아지의 편으로 넘어 간 것”, “농민이 소부르주아 전술로 넘어간 것이다. 이 정세의 특수성을 레닌은 다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금 들끓고 있다. 10년간이나 정치적으로 잠자고 있어 왔고, 차리즘의 끔찍한 압제와 지주, 자본가를 위한 고역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짓눌려 있던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이 깨어 일어나 정치에 돌입하고 있다. 그런데 이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 대부분은 소경영주, 소부르주아고, 자본가와 임금노동자의 중간에 위치한 사람들이다. 러시아는 모든 유럽 나라들 중 가장 소부르주아적인 나라다.

    거대한 소부르주아적 파도가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있고, 계급적으로 각성한 프롤레타리아트를 쪽수의 힘으로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압도하고 있다. 즉 아주 광범위의 노동자에게 소부르주아적인 정치적 견해를 전염시키고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평화와 사회주의의 최악의 적인 자본가를 불합리하게도 쉽게 믿어버리는 무자각적인 태도, 이것이 러시아의 현 시기 대중의 정치를 특징짓는다. 이것은 유럽의 모든 나라 중 가장 소부르주아적인 나라의 사회경제적 토양 위에서 혁명적 속도로 성장한 열매다. 이것은 임시정부와 노동자 · 병사 대표 소비에트와의 협정”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형식적 협정이라기보다 오히려 사실상의 지지, 암묵적 협정, 쉽게 믿어버리는 무자각적인 권력 양도임을 강조해둔다), 구치코프들에게는 두툼한 살코기 진짜 권력 를 주고, 소비에트에게는 단지 케렌스키들의 말뿐인 약속과 존경 (잠시 동안의), 아첨, 미사여구, 맹세, 굽실거리기만을 준 그 협정의 계급적 기초다.

    러시아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수적으로 힘이 부족하다는 것,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자각과 조직화가 부족하다는 것, 이것이 동전의 이면이다.”

     

    혁명적 조국방위주의는 거의 모든 것을 쓸어버린 소부르주아적 파도의 가장 중요한, 가장 두드러진 표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러시아 혁명이 더 한층 전진하고 성공하는 데 최악의 적이다.” (<우리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

     

    레닌은 이와 같은 계급 세력관계가 어떠한 종류의 전술을 요구하는지,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이러한] 실제 정세의 특수성으로부터 마르크스주의자에게 필요한 현 시기 전술의 특수성이 나온다. 이 특수성은 일차적으로 혁명적 민주주의 미사여구의 설탕물에 식초와 담즙을 붓는 것을 요구한다. 비판 작업, 사회주의혁명가당이나 사회민주당 등 소부르주아적 당들의 오류를 설명하는 작업, 의식적으로 프롤레타리아적인 당, 공산주의 당의 분자들을 훈련시키고 결속시키는 작업, ‘전반적인소부르주아적 도취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를 해방시키는 작업, 이것이 바로 그 식초와 담즙을 붓는 과업이다.”

    이것은 선전 작업에 지나지 않는듯이 보이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가장 실천적인 혁명적 작업이다. 왜냐하면 혁명이 정지해버리고 공문구에 빠지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은 외부적인 장애 때문이 아니라, 부르주아지가 폭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대중의 쉽게 믿어버리는 무자각성 때문이며,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서는 혁명의 전진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 이다.”

    이 쉽게 믿어버리는 무자각성과 싸우는 것에 의해서만 (그런데 이 싸움은 오로지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지적 설득에 의해, 생활의 경험을 보이는 것에 의해서만 수행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횡행하고 있는 혁명적 공문구의 광란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며, 프롤레타리아적 의식도, 대중의 의식도, 현장에서의 대중의 과감하고 결연한 창의도 진정으로 북돋을 수 있다.” (<우리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

     

    정세의 특수성에서 나오는 현 시기 전술의 특수성이란, 달리 말하면 경찰 · 상비군 · 관료 등 억압기구를 분쇄해서 없애버린 맹아적 통치권력으로서 노동자 · 병사 대표 소비에트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당장임시정부 타도에 착수할 수 없는, 무장봉기를 직접적일정으로 올릴 수 없는, 따라서 당장은 소부르주아적 도취로부터 깨워내는 쓰디쓴 비판 작업”, “참을성 있게 오류를 설명하는 일”, “분리, 분별시키는 일부터 해야 하는, 그러한 특수성이다. 우선은 혁명적 민주주의도취를 깨는, 사실상의 임시정부 지지인 인민전선 협정을 깨는, 그리하여 그로부터 프롤레타리아적인 당, 공산주의 당의 분자들이 분별정립하고 소비에트 내부에서 프롤레타리아적 방침으로 다수자를 획득하기 위해 조국방위주의적 유행병과 끈질기게 투쟁하는 것을 요구하는, 그러한 종류의 전술 (몇 년 뒤 초기 코민테른에서 노동자 통일전선전술로 정립된)이다.

     

    구 볼셰비키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라는 죽은 공식을 부여잡고 매달리느라 지금 존재하는 소비에트 내부에서의 이 같은 과업을 방기한다. 소비에트 내에서 조국방위주의적 · 소부르주아적인 대중적도취로부터 프롤레타리아적 방침을 끌어내 분별정립 시키는, 그러한 관건적인 임무에 반대함으로써 소비에트를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의 지배에 내맡기고 있고, 그리하여 임시정부의 부속물로 남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동지들까지도, 당장 임시정부를 타도해야 한다는 것인가 라는 식으로 단순하게문제를 제출하여 그토록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이유도바로 여기에 있다. 구 볼셰비키는 당장 타도아니면, ‘(비판적) 지지로 문제를 단순하게제출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건너뛰어사회주의 혁명에 이르고 싶어 하는블랑키주의적 위험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당장은 인민전선으로 임시정부와 함께 공동의전선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레닌은 대답은 단호하고 명료하다.

     

    소비에트가 권력을 잡게 하는 데는 살아 있는 힘이 소비에트를 밀어 올려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본가가 인민을 기만하여 계속하고 있는 이 전쟁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나라가 지금 파멸의 벼랑에 서 있다. 이 점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활로는, 사회주의 혁명 이외에는 없다. 정부를 타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모두가 이것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임시정부가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에 의거하고 있는 한, 그것을 간단히타도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소비에트 내부에서 다수자를 획득하는 것에 의해서만 그것을 타도할 수 있고, 또한 그 때는 반드시 타도해야만 한다. 전진하여 노동자 · 병사 대표 소비에트의 단독 권력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후퇴하여 제국주의 전쟁으로 향할 것인가, 이 이외의 길은 없다.” (<페트로그라드 시 협의회>)

     

    소비에트 내부에서 다수자를 획득하는” (“살아 있는 힘이 소비에트를 밀어 올리는) 노동자 통일전선 전술을 통해 소비에트를 바꿔내는, 즉 임시정부와 뒤얽혀 그 부속물이 되고 있는 소비에트를 임시정부를 타도/대체하는 소비에트로 재편하는 길만이 단 하나의 활로다. 이 길만이 맹아적인 노동자권력에서 실제 노동자권력으로의 이행, 코뮌 국가로의 이행을 보장하는 길이다. 그리고 전쟁으로부터, 임박한 파국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다.

     

    소비에트 내부에서, 혁명적 조국방위주의의 신봉자 대중 속에서 참을성 있게 설명하고 끈질기게 선전하자는 것, 그 자체야 구 볼셰비키로서도 반대할 부분은 없을 것이다. “참을성 있게설명하고 선전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조급하게 임시정부 당장 타도에 착수하자거나 직접적으로사회주의를 도입하자고 할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결국 문제는 선전의 방향, 내용이다. 어떤 방향, 무슨 내용인가? 레닌은 자본의 이익과 이 전쟁 간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을 설명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또 자본을 타도하지 않으면, 전쟁을 끝장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따라서 전 국가권력을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로 옮길 필요를 선전해야 한다고 한다.

     

    자본가들에 의해 시작된 전쟁을... 끝내는 것은, 자본가의 이윤을 보호하는 데 실제로 이익을 갖지 않는 계급, 진정으로 자본의 압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 · 반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수중으로 전 국가권력을 이양하는 것에 의해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것, 이 진실을 우리 당은 참을성 있게, 끈덕지게 인민에게 설명할 것이다.”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그것을 코뮌국가로 대체해야 할 필요를 설명, 선전하자는 것이다. 이 방향으로, 이 내용 쪽으로, 이러한 프롤레타리아적 방침쪽으로 다수자 전취에 볼셰비키 당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구 볼셰비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내용이며, 여전히 단계를 건너뛰어” “이 혁명을 직접적으로 사회주의혁명으로 전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모험주의적 전술이다. “블랑키주의를 절대적으로 배제하며, 다수자의 직접적이고 무조건적인 지배와 대중의 활동성을 완전하게 보증하고 있명백히 인민 다수의 직접적인 조직인 소비에트 내에서 참을성 있게 설명하는 노동자 통일전선의 과정을 거치자고 하는 데도 여전히 단계를 건너뛰는것이라고 한다. “이 소비에트 내부에서의 영향력 획득을 위한 투쟁으로 귀착되는 작업은 블랑키주의의 늪으로 빠져들 염려는 절대로 없는데 말이다.

     

    구 볼셰비키도 지금 당장만 아니라면 임시정부를 타도해야 한다는 데는 반대 입장이 아니다. 문제는 레닌이 그 타도/대체의 결과물로 상정하고 있는 국가권력이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코뮌국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구 볼셰비키는 절대 반대다.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을 분간하지 못하고 사회주의를 직접적으로도입하려 한 오류를 범했고 그래서 패배한 것이 파리 코뮌이 아닌가. 지금 레닌의 코뮌국가 요구는 그 같은 오류를 되풀이하자는 것 아닌가. 이러한 구 볼셰비키의 반론에 레닌은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카메네프 동지는 참을성 없이너무 나아간 나머지 파리 코뮌이 사회주의를 직접적으로도입하고자 했다는 식의 부르주아적 편견을 반복해서 표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코뮌은 불운하게도 사회주의를 도입하는 데 너무 더뎠다. 코뮌의 진정한 본질은 흔히 부르주아들이 말하는 데 있지 않다. 특별한 유형의 국가를 만들어냈다는 점, 거기에 코뮌의 본질이 있다. 그런데 러시아에는 그러한 국가가 이미 생겨나고 있다. 노동자 · 병사 대표 소비에트가 그것이다!” (<전술에 관한 편지>)

     

    레닌의 코뮌으로의 이행요구는 아무 전제도, 근거도 없이 무매개로 무언가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이 현실에서 이미 생겨나고 있는 것, 그것을 전제로 해서, 즉 현재 존재하는 소비에트를 전제로 해서, 싹으로 해서 그로부터 이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비에트의 존재는 임시정부에 권력을 양도하는 바람에 맹아적인 권력이라 하더라도 이미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단계를 경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구 볼셰비키는 토지 재분배를 비롯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과제들 중 많은 것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고, 따라서 그 혁명도 완료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여전히 권력체제는 그러한 과제에 걸맞게 민주주의 독재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민주주의적 과제에 조응하지 않는 코뮌국가 요구는 결국 단계를 건너뛰어농민을 배제하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수립하자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구 볼셰비키의 일원으로 노동조합 지도자인 미하일 톰스키는 4월 테제에 반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 독재는 우리의 주춧돌이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권력을 조직해야 하며, 이것을 코뮌으로부터 구분해야 한다. 왜냐하면 코뮌은 프롤레타리아트 혼자만의 권력을 뜻하기 때문이다.”

     

    레닌은 구 볼셰비키가 사실을, 실재하는 소비에트의 의의를 충분히 살펴보지 않, 죽은 도식으로 주의를 돌리고 있다고 반박한다.

     

    소비에트란 대체 무엇인가, 소비에트는 그 유형으로 볼 때 의회공화제보다도 한층 더 고도의 것인가 아닌가, 인민에게 더 유용하고, 더 민주주의적인 것인가 아닌가, 투쟁에 더 적합한 것인가, 예를 들어 식량 부족 등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에 더 적합한 것인가 아닌가 이와 같은 실생활이 일정에 올려놓고 있는 긴박하고 사활적인 문제로부터, “직접적으로 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식의 공허한, 자칭 과학적이지만 실제로는 아무 내용이 없는, 현학적인 죽은 문제로 주의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전술에 관한 편지>)

     

    구 볼셰비키는 민주주의적 과제의 해결을 오늘의 현실이 아니라 어제의 도식에서 찾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를 수립하지 못해서 여전히 과제가 미해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의 이중권력 정세, 그리고 소비에트가 권력을 임시정부에게 넘겨준 정세, 소부르주아지가 노동자계급에게서 떨어져나가 부르주아지의 편으로 넘어간 정세 등, 이러한 실제 사실, 현실의 계급 제세력의 배치관계는 그러한 민주주의적 과제조차도 전 국가권력이 소비에트의 손에 쥐어지는 것에 의하지 않고서는 달리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시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현 시기 모든 정세조건은 오직 노동자와 빈농의 손에 권력을 인도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서만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과제도 비로소 해결될 수 있음을 가리키고 있는데도 말이다. 전쟁과 자본가의 사보타지로 인한 당장의 기근과 닥쳐온 경제 붕괴와 전쟁 참화 앞에서 임시정부는 빵도, 토지도, 평화도 그 어느 것도 인민이 요구하는 것을 줄 수 없다. 민주주의적 과제 등 최소요구와 전쟁 중지를 실행하고, 나아가 임박한 파국에 맞서 싸우기 위해 은행과 자본가 신디케이트, 카르텔 등 독점 금융단체에 대한 통제와 국유화를 도입하는 등 아직 사회주의는 아니지만,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소비에트 권력뿐이다. 민주주의적 과제 등 최소강령의 실행과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걸음들[조치들]”이 서로 맞물려서 더 이상 그 양자를 시간적 선후(先後)의 과제로 분리할 수 없게 되었다. 임시정부를 소비에트로 대체하고, 맹아적 권력에서 본연의 권력으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 이행하는 것에 의해서만 이 모든 것은 가능하다. “전진하여 노동자 · 병사 대표 소비에트의 단독 권력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후퇴하여 제국주의 전쟁으로 향할 것인가, 이 이외의 길은 없다.”    <계속>


    <편집자 주>

    이 글은 본지의 요청으로 싣게 된 소중한 기고 글로 국제코뮤니스전망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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