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코뮤니스트 10호] 코민테른과 암스테르담 사무국
  • 조회 수: 2342, 2019-12-26 23:23:06(2019-12-18)
  • 코민테른 창설 100주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코뮤니스트좌파


    코민테른과 암스테르담 사무국


     Anton-Pannekoek-1920.jpg

    <사진> 1920년 암스테르담 거리를 걷고 있는 판네쿡


    19193월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하 코민테른) 창설에 따라 유럽 코뮤니스트 운동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판네쿡과 네덜란드, 브레멘 좌파(독일)는 코민테른의 가장 열성적 옹호자들이었지만, 러시아에서의 볼셰비키 승리로 코민테른은 러시아의 주도 아래 결성되었다. 새로운 세계혁명운동의 성격에 대한 판네쿡과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레닌은 (1917 레닌 저작 중) 네덜란드와 브레멘 좌파의 주도적 역할을 기대하고 있었다.

     

    코민테른의 초기 몇 달 동안, 러시아와 서유럽 간 의사소통의 혼란으로 서유럽의 의미 있는 참가는 배제되었다. 서유럽을 참가시키는 문제는 처음 실제적인 수단을 통해 접근했는데, 즉 베를린에 서유럽 서기국을, 암스테르담에 서유럽 사무국에 두도록 결정했다. 암스테르담 사무국을 조직하기 위해 레닌은 네덜란드 맑스주의자 럿거스(S. J. Rutgers)를 선택했다. 엔지니어였던 그는 1915년 미국으로 건너가 판네쿡의 사상을 미국 사회주의 운동에 전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는 전후 모스크바로 와서, 코민테른 창설 시 홀란드(네덜란드) 코뮤니스트당(CHP)을 대표했다. 럿거스(Rutgers)는 레닌으로부터 세 가지를 위임받았는데. , 서유럽/미국의 다양한 코뮤니스트 그룹과의 관계를 구축할 것, 코뮤니스트 선전센터를 세울 것, 국제대회를 조직할 것이었다. 그리고 코민테른 집행부는 럿거스(Rutgers)에게 사무국을 판네쿡, 호르터, 홀스트(Roland Holst), 윈쿱(Wijnkoop), 라베스테즌(van Ravesteijn)으로 충원할 것을 지시했다.

     

    암스테르담 사무국은 19201월 국제대회를 암스테르담에서 조직하는 것을 직접적인 목표로 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국제대회는 많은 사람에 의해 코민테른 대회와 동급으로도 비추어졌다. 19202월 개최된 국제대회는 사무국 활동의 중대 사건이었으며, 사실상 최초로 서유럽 인터내셔널로 복무하고자 했다. 국제대회에서는 네덜란드 대표들이 지배적이었지만, 최소한 12개국에서 참가하여 코민테른 창설 시보다 더 많은 대표가 참여했다.

     

    국제대회는 제대로 조직되지 못했고, 경찰에 일찍 해산되었지만, 서유럽 코뮤니즘 개념의 특수성을 최초로 확정하였던 의미가 있었다. 국제대회에서 채택된 선언은 의회주의, 조합주의에 대해 명시적으로 비판하면서, 프롤레타리아의 새로운 조직화 원칙으로 노동자 평의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특히 중요했던 것은 판네쿡이 초안한 의회주의에 대한 테제였으며, 그것은 공개적으로 코민테른 정책에 도전하는 성격이었다. 판네쿡은 노조운동에 대한 테제에서도 동일하게 비타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서구에서 노조는 단지 자본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에게 반하여 배치된, 자본주의적 권력 시스템의 기구라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노동자 운동은 가능한 모든 힘을 가지고 노조 관료주의에 대항하여 투쟁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 이는 기존 노조 내에 혁명적 반대파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했지만, 실제적 과제는 미국의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 독일의 노동자연합(workers' unions)”과 같이 새로운 정신에 추동된 새로운 조직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의회주의, 노조운동에 대한 암스테르담 사무국의 반감, 그리고 (코민테른에 소속된) 각 당의 자율성에 대한 강조는 코민테른 지도력과 네덜란드 좌파 사이의 전망에서 주된 차이를 보여주었던 첫 공개적인 징후였다. 볼셰비키와 네덜란드 좌파 사이의 심각한 차이점은 침머발트 운동 시기까지 올라가지만, 양 당파의 차이는 혁명적 분위기 속에 얼버무려져 왔었다. 이후 몇 달 동안 판네쿡, 호르터, 홀스트 등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Communist International)지에 이데올로기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글들을 집필했다. 럿거스(Rutgers)가 암스테르담으로 떠날 때, 레닌은 판네쿡에게 모스크바에서 코민테른을 위한 상근 이론가, 선전가로 일할 것을 럿거스(Rutgers)에게 주문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처음에 볼셰비키와 코민테른 모두 의회주의 전술을 거부한다고 보고 그것을 당연시했다. 이 같은 가정은 번역된 레닌의 몇몇 저작에 기인한 것이었다. (특히, 판네쿡에 대한 찬사를 담은 국가와 혁명, 코민테른 초기 문건 등). 하지만 볼셰비키 이론과 실천은, 혁명가들이 대중을 각성시키기 위해, 부르주아 정당을 공격하기 위해, 결과적으로 국가 자체를 허물기 위해 의회 제도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오랜 기간 강조해 왔었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는 그것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홀란드코뮤니스트당(CHP) 내 분파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무국의 모든 구성원은 사무국을 서유럽의 주 혁명센터로 만들려는 희망 아래 단결했다. 사무국의 일상적 권력을 쥐고 있었던 윈쿱(Wijnkoop), 라베스테즌(van Ravesteijn) 등은 서구 코민테른의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에 따라, 그 같은 단결 분위기에 동참했다. 사무국은 그 에너지의 대부분을 유럽 전역에서 혁명적인 좌파 경향을 강고히 하려는 시도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네덜란드 좌파 활동가들은 프랑스, 잉글랜드, 스위스, 벨기에 등지의 좌파세력과 긴밀한 연대를 구축했지만 가장 긴밀한 관계는 판네쿡과 유대를 맺고 있던 독일 좌익 반대파와의 형성이었다. 독일 좌익 반대파에 대한 지원은 의회주의, 노조운동에 대한 사무국 테제에서 처음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판네쿡은 사무국 공식 출판물에서 반대파의 사례를 다루었다. 이 같은 일들로 사무국은 서유럽 서기국으로부터 지속적인 적대감을 사게 되었다.

     

    암스테르담 사무국의 공격적인 전투성, 독립적 전망은 - 자체 하위 사무국으로 - 전미(全美) 임시 사무국을 조직화하려고 했을 때, 가장 명확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전미 사무국 지부는 미국 코뮤니스트 운동 내 분파적 대립으로 혼란을 거듭하여, 문서상으로만 존재하는 조직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더욱 대담한 행보는 사무국이 베를린 서기국을 격하시켰던 것인데 즉, 암스테르담 사무국은 베를린 서기국을 사무국의 한 부문으로 만들고 그 의무를 재할당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사무국은 모스크바에서 창설, 조직한 지부를 대담하게도 일격에 복속시키려고 했다. 이 모든 것이 보여주는 바는, 암스테르담 사무국이 자신을 - 중앙권위(코민테른)의 도구가 아니라 - 미래 유럽 혁명을 위한 주() 혁명 센터로 간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무국의 독립적인 혁명적 전망은 많은 부분 서유럽에 특수한 코뮤니즘 개념화의 반영이었지만, 또한 그것은 암스테르담과 모스크바 사이의 소통 부재에 의해 크게 조장된 것이기도 했다. 사무국이 19201월 활동을 시작한 이래 럿거스(Rutgers)가 정기적 소통 수단을 갖추게 되는 4월 말까지, 사무국-모스크바 간에는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없었다. 하지만, 소통수단을 갖추게 된 시점에 사무국의 정책과 활동은 모스크바에 잘 알려지게 되었고, 코민테른 지도부는 상황을 극단적으로 곤혹스러운 것으로 간주했다. 분열 점은 사무국이 새롭게 형성된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KAPD)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코민테른 지도부의 반응은 신속했고 단호했다. 430일 모스크바 방송은 사무국을 폐쇄하고 그 기능을 베를린 서기국으로 이관한다고 발표한다. 그 결정은 협의와 호소의 기회 없이 내려진 것이었다. 이 조치로 서유럽 코뮤니스트들은 자신들의 코뮤니스트 센터를 만들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를 상실하게 되었다.

     

    정리 ㅣ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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